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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시의 고찰
2015년 04월 14일 20시 42분  조회:4779  추천:1  작성자: 죽림

 

        형이상시와 다형의 시세계

                           문학평론가/ 박방현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에 대한 고찰

 

 

  먼저 형이상시와 형이상학파시인(metaphysical poets)에 대해 일별해보고자 한다. 형이상시의 발생 동기에 대해 고찰해보자면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엄격하고 형식화된 소넷에 대한 염증과 복고적인 경향이 그 시대를 풍미했었고 그에 대한 식상食傷과 반동反動 심리에서 야기된 거부감이 팽배했으며 그뿐 아니라 17세기에 이르러 과학의 발달에서 오는 자각이 눈을 뜨게 된 데서부터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기존의 문예사조적 매너리즘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영국의 서정시인 중 일군의 시인들에 의해 형이상시가 시도되었으며 창출되기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런 형이상학적인 시에 관심이 많았던 시인들을 통칭하여 후대에 와서야 형이상학시인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형이상(形而上; metaphysical)이란 말은 철학용어로 그 사전적 의미는 형식을 떠난 것, 무형적(無形的)인 것, 형체를 초월한 것, 을 의미하며 형이하(形而下; physical)와 대조되는 말로 흔히 쓰여 왔던 것이다.

  르네상스 초기의 시들은 영국의 서정시에 새로운 소재와 표현방식을 제공했고 또한 참신한 시풍을 불어 넣었거나 창안해내도록 했지만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안일한 매너리즘에 빠져 페트라르카풍의 낡은 제재를 반복하고 진부한 표현 방식을 답습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예사조의 흐름에 독자나 시인들은 식상하게 되었고 그러한 시풍들에 대해 불만이 대두되었으며 17세기의 시대추이에 따라 16세기 시와는 차별화가 되는 참신하고 새로운 내용이 있는 시를 탐색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기존의 미사여구의 수사적인 시와 결별하고 시인 자신들의 개인적인 사상이나 관념과 체험들을 시에 통합시키고자하는 시도와 독특하고 차별화된 새로운 방법을 가미하여 창작하게 된 시들이 바로 <형이상학파시>이고 그런 시를 썼던 시인들을 이름 하여 <형이상시인>이라 명명했던 것이다.

  그러한 시인들 중의 대표적인 시인은 존 던(Donne, John; 1573-1631)을 거명할 수 있고 그런 시풍을 선호했던 일군의 시인들로는 허버트(Herbert, George; 1595-1633), 헨리 본(Vaughan, Henry; 1622-1695), 엔드류 마블(Andrew Marvell; 1621~1678), 커루(Carew, Thomas; 1594-1639), 서클링(Suckling, Sir John; 1609-1641), 러브레이스(Lovelace, Richard; 1618-1657), 크래쇼(Crashaw, Richard; 1613-1649) 등의 시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17세기 ‘형이상학파시’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비판적이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여졌다. ‘형이상학파 시인’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사무엘 존슨이었고 야유적인 의미로 명명한 용어이며 ‘형이상학파’나 ‘형이상학 시인’이라는 어휘도 시인들 스스로가 자칭한 바가 없고 그런 시도를 꽤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허버트 그리어슨에 의해 ‘형이상학’이란 텍스트의 편집이 있었고 엘리엇이 1921년에 ‘형이상학 시인’이라는 에세이를 썼으며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허버트 그리어슨과 T.S. 엘리엇, 리쳐즈, 엠프슨, 테이트, 랜슴, 브룩스등에 의해 재평가되어 각광을 받게 되었다. 시적 구조는 지적(知的), 논리적이고, 구어적(口語的) 표현을 많이 쓰고, 이미지와 비유의 대담성, 정교한 심리 분석 등의 특색이 있었다. T. S. 엘리엇의 비평을 계기로 해서 폭발적인 재평가를 받았으며 현대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필자가 이미 발표한 바 있는 다른 평론에서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란 어떤 시인가에 대해서 피력한 바가 있고 필자가 그 글의 일부를 여기에 다시 옮겨보겠다. 시인이고 평론가이며 현 한국 현대시인협회 이사장이었던 신규호교수는 형이상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6세기 후반 영국의 엘리자벳 시대의 천편일률적으로 형식화된 소넷에 대한 염증과, 스콜라 철학을 배경으로 하는 조잡한 복고적 경향에 대한 안티테제, 그리고 17세기 초엽의 과학에 대한 각성 등이 형이상시의 발생 배경이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그리어슨이 <메타피지컬 시집>을 편집하면서 ‘존 던 학파’, 또는 ‘형이상학파’라 칭했는데, 20세기에 와서 엘리엇, 리쳐즈, 엠프슨, 테이트, 랜슴, 브룩스 등 영미 비평가들이 이들의 시를 재평가하면서 그것이 이상적인 시로 일컬어지기 시작했다.

  형이상시에 대한 17세기 초엽의 경멸적 비평과는 대조적으로, 이에 대한 엘리엇 등의 현대적 재평가는 일차적으로 19세기 낭만주의 전통에 대한 반발이었고, 엘리엇 자신의 시가 지니는 현대적 특성, 즉 객관적 상관물, 사상의 정서화, 전통의 계승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존슨 박사 등이 강조하는 형이상적 컨시트는 외면적으로 전혀 관계없는 체험의 영역 간에 놀랍고도 교묘한 유추에 의해 형성된다. 가장 이질적인 생각들이 ‘폭력적 결합’에 의해 동일화됨으로써 고정관념에 갇힌 언어를 또 다른 새로운 세계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형이상시의 의도라 할 수 있다. 아이러니, 컨시트, 풍자 등이야말로 불완전한 언어의 한계를 언어로써 극복하고자 하는 시적 장치라고 하겠다.” 라 했고 박진환교수는 <당신도 시인이 될 수 있다>란 글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흔히 현대시를 메타언어라고 규정하는데, 메타란 두 의미론적 해석을 요구한다. 하나는 언어의 초월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뒤에 감추어진 비의秘意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초월적 기능은 의미의 확장이자 의미의 고정화를 거부하는 일종의 암시나 상징적 기능에 의탁된다. 그리고 비의는 드러나지 않는 것을 포착해 내는 일종의 새로운 의미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적 속성을 우리는 병치적 메타라고 하고 후자적 속성을 치환적 메타로 규정한다.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이질성 속의 동질성을 찾아 결합한다든지, 동질성 속의 이질성으로 이동한다든지 하는 일종의 변증법적 결합이다. 이러한 결합은 의미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대신 의미의 초월이나 의미의 암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의미의 물화나 의미의 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라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형이상시에 대해서 주목하고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시인을 지망하는 많은 초년생들이나 오늘날 대다수의 젊은 시인들이 지향하고 있는 부질없고 지나친 실험이나 상투적이고 편향적인 표현에 탐닉하고 있는 실정에 대해 커다란 아쉬움을 느끼고 오늘의 이런 시적 폐단을 최대한 억제하거나 탈피함은 물론 언어의 시적인 효과를 최대한으로 살리고 창조적 태도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며 나가서 존재의 궁극적 진실에 대한 긍정적 지향의지를 추구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어주고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형이상시라고 보기 때문인 것이다.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병폐나 단점들을 지향함은 물론 21세기의 초두인 이 시점에서 보다 창조적이고 수준 높은 예술성을 지닌 시를 창작하기 위해 많은 시인들이 고심하고 있기에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형이상 시에 대해 깊은 관심과 주목이 필요하다고 필자 역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해 있는 우리시의 위기는 눈앞의 현상적인 사물시 만을 추구하고 지향함으로 통합적 감수성의 메커니즘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고 오늘날처럼 복잡다단하고 다원화된 시대 속에서 시가 건전하게 육성발전 되고 독자들로부터 멀어진 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지만 편도偏道된 물상적物像的인 사물시의 세계만을 추구하는 것을 지양止揚하고 사상성과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가 서로 혼연일체를 이루는 통합과 조화의 감수성이 강조되는 시의 등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 비로소 독자들의 관심도 회복될 것이며 균형 잡힌 시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 분명하다. 오늘의 한국시는 누가 머라고 하든지 위기국면에 처해있음이 분명한 사실이고 이 위기로부터 탈출하여 독자들과 호흡을 함께 하며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미래지향적인 건전한 시로의 이행과 변화가 참으로 필요한 시점에 와있기 때문이다.

  형이상시의 특징을 기술해보자면 콘시트나 패러독스나 통징痛懲의 기법을 활용해 기존의 시가 지닌 미비점과 결점을 보완하여 시적 완결성을 추구하고 이상적인 시에 접근할 수 있는 시의 한 모델이 형이상시라 평가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현대시에서도 본인은 만해 한용운 시인과 다형 김현승 목과木瓜 구상시인 등의 시를 접하며 형이상시의 매력에 깊이 매료된 바 있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형이상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기 시작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고 우리 문단에 가장 비중 있는 시인들이자 평론가들인 문덕수교수를 비롯해서 성찬경 박진환 신규호 김지향 홍문표 교수 등 중량급에 속한 시인들이 입을 모아 한국시의 진로가 형이상시에 있음을 앞 다투어 피력하고 있고 이 분야에 관해서 지대한 관심들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한국시의 힘찬 부활을 통해 다시 독자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형이상시에 크게 주목할 필요가 있고 형이상시를 통해서 우리시가 부활의 홰를 크게 치도록 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기도 하다.

  오늘날처럼 물질문명과 신자유주의 사회의 수많은 병폐와 시행착오 속에 함몰된 채 허우대는 현대인들에게는 철학적이고 관념적이며 종교적인 깊은 고찰과 사색이 절실히 필요하고 그런 추상의 관념세계와 우리들이 당면한 현실세계가 형이상시의 시 정신 속에 하나로 융화되고 조화를 이루며 우리들의 현재는 물론 미래를 위한 생존의 좌표설정에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물질일변도에 의해 잘 못된 시류의 폐단과 편향성을 시정하거나 제거하고 정신과 물질이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게 해줄 수 있는 제격의 시가 형이상시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 시인들 모두가 시의 침체와 위기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이고 오늘의 시세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며 발전적인 시의 세계로 진입함은 물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다가올 미래를 온전하게 준비하거나 대비하기위해서는 형이상시 만이 그 막중한 임무와 역할을 족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다시 말하지만 형이상시가 오늘의 시대정신에 잘 부합됨은 물론 격변하는 시대적 추이에 부응할 수 있는 안성맞춤이자 시대의 격조에 맡는 시가 아닐까 생각된다.

  위에서도 기술한 바 있지만 다시 한 번 형이상시의 원류에 대해서 일별해보자면 형이상학파 시운동은 17세기에 이르러 영국의 존 던(John Donne) 외에 일군의 시인들이 있었고 그 중에 가장 유력한 형이상 시인으로는 존 던을 들 수 있다. 존 던은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 성공회로 개종할 때까지 종교적 박해를 경험했었고 뛰어난 교양과 운문의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빈곤 속에 살았다고 한다. 후에 세인트 폴 대성당의 수석 사제로 임명되었고 그런 배경은 존 던의 문학작품들이 초기의 연애시 풍자시 운문에서 말년에는 종교적 설법에까지 이르게 했으며 대담한 위트와 복잡한 언어구사를 했음은 물론 형이상시의 선구자로 자리하게 되었다. 존 던 시의 특징을 들어보자면 당시 시인들이 즐겨 쓰던 시적 장식은 물론 그리스와 라틴의 전설과 신화 같은 것이 없고 또한 그의 시에는 르네상스 시에 흔히 등장하는 목동이나 아름다운 장미화원이나 초원 등도 없다. 그의 시풍은 당시까지의 시단의 인습과는 전혀 다른 시풍이었고 또한 리얼리스틱했고 언어와 운율에서도 영국시의 흐름을 수정했던 것이다. 인습적인 시어와 비유 그리고 부드러운 리듬 대신에 풍자시에서나 사용했음 직한 반어적 표현과 일상 어법으로 구어적 리듬을 창조해 내었다. 뿐 아니라 가볍고 재기 발랄한 초기의 연애 시에서 후기에는 침울한 종교시로까지 변화해 갔다. 그의 후기 시는 죄나 죽음의 의식과 신앙이 복잡하게 서로 갈등하는 긴박한 고백과 대담한 이미지를 창출하여 격렬한 신에의 부르짖음으로 환치되었다. 존 단은 지성적인 예리함과 감각 내지는 관능적인 정열로 인생의 유한성과 무상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보여주었으며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리얼리스틱한 면을 강하게 나타내고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논리적인 전개를 잘 창출해냈다.

  그의 종교시에서는 기발한 기상을 사용하여 현실과 신앙세계의 갈등 그리고 천국에의 강한 열망을 보여주며 역설을 즐겨 사용했다. 두 개의 개념을 하나로 결합하여 확장하는 은유, 이른바 형이상학적인 비유(Metaphysical conceit)의 달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삶과 기쁨에 대한 건강한 욕구를 암시하며 반면에 깊은 감정들을 표출하기도 했다. 존 던의 많은 시편들에서 위트와 컨시트의 천재성을 감지할 수 있고 또한 다양한 시형과 불규칙한 리듬을 사용하여 매우 인습적이고 단조로운 분위기를 깨고 오히려 불협화음 속에 이루어지는 기상천외의 조화감과 다양한 경험의 유기적 동질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존 던의 시 중에서 그 예시로 아래에 두 편의 시를 소개해보겠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 던 (1572~1632)

 

그 누구도 온전한 섬으로 존재할 수 없나니 

모든 개인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를 이루는 일부이다

만약 진흙이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유럽 땅은 그 만큼 작아지게 되고

모래톱이 그리될 지라도,

그대의 영지나

그대의 친우가 그리되어도 매 한가지어라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 자신의 상실이니

나는 인류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라

그러하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려 하지 말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기에

 

 

 

      For whom the bell tolls a poem             

            by John Donne (1572~1632)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ach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ner of thine own

    Or of thine friend's were.

    Each man's death diminishes me,

    For I am involved in mankind.

    Therefore, send not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벼룩

              존 던

 

 

 

    이 벼룩을 보라. 그러면 알게 될 테니.

    네가 날 거절하는 것이 참으로 사소한 일이란 것을. 

    그놈이 먼저 날 빨고 이제 널 빨았으니

    이 벼룩 속엔 우리 둘의 피가 섞여 있다.

    넌 알고 있지, 이것이 아니란 걸,

    죄악도 수치도 처녀성을 잃은 것도.

         헌데 그놈은 구혼도 하기 전에 즐기고

         두 사람 피 빨아 한 피로 만들고 배불렸으니

         아! 우리 같음 이런 짓은 못 할텐데.

 

 

    아 잠깐! 한 마리 벼룩 속에 생명이 셋.

    우린 그놈 속에서 결혼보다 더 한 짓을 했다오.

    이 벼룩은 너이고 또한 나이며,

    우리의 혼인 침상이며 결혼식 올린 성전이니

    너와 네 부모가 아무리 반대한들 우린 이미

    이 살아있는 옥벽(玉壁) 속에서 만나 결합되었다.

    네 일상 버릇대로라면 날 죽이고도 싶겠지만,

    이 놈만은 살려주어야 한다,

    그건 자살이며 신성모독이며, 세 생명 죽이는 범죄이니. 

        

 

        잔인하게 별안간, 너의 손톱

        무죄한 피로 붉게 물들였군.

        너에게서 피 한 모금 빤 것 외엔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헌데 넌 자신 있게 말하길

        너도나도 벼룩쯤은 물려도 괜찮다고 하니

        옳도다! 공연히 두려워했구나.

        벼룩의 죽음이 네 생명에 지장 없듯

        내게 몸 허락해도 그대의 순결 지장 없겠지.

 

 

         THE FLEA

                   by John Donne (1572~1632)

      

 

    Mark but this flea, and mark in this,

    How little that which thou deniest me is ;

    It suck'd me first, and now sucks thee,

    And in this flea our two bloods mingled be.

    Thou know'st that this cannot be said

    A sin, nor shame, nor loss of maidenhead ;

         Yet this enjoys before it woo,

         And pamper'd swells with one blood made of two ;

         And this, alas ! is more than we would do.

 

 

    O stay, three lives in one flea spare,

    Where we almost, yea, more than married are.

    This flea is you and I, and this

    Our marriage bed, and marriage temple is.

    Though parents grudge, and you, we're met,

    And cloister'd in these living walls of jet.

         Though use make you apt to kill me,

         Let not to that self-murder added be,

         And sacrilege, three sins in killing three.

 

 

    Cruel and sudden, hast thou since

    Purpled thy nail in blood of innocence?

    Wherein could this flea guilty be,

    Except in that drop which it suck'd from thee?

    Yet thou triumph'st, and say'st that thou

    Find'st not thyself nor me the weaker now.

    'Tis true ; then learn how false fears be ;

    Just so much honour, when thou yield'st to me,

    Will waste, as this flea's death took life from thee.

       

  형이상시에 대한 해설은 이쯤해서 주리기로 하겠다. 이 논고의 제목에서 제시했듯이 이제 다형 김현승시인의 시세계를 일별해보고자 한다. 다형시인의 시 몇 편을 예시로 들어 검토하고 아울러 감상에 임해보고자 한다.

 

 

  다형茶兄의 시세계

 

 

  다형茶兄 김현승시인의 생의 이력을 여기 먼저 소개해보겠다. 김현승시인(1913.4.4~1975.4.15)의 아호는 다형茶兄, 남풍南風이고 부친은 김창국으로 고향은 전남 광주였다. 부친은 평양 숭실학교를 거쳐 평양신학교를 졸업했으며 그 시절 다형시인은 평양에서 출생했었고 부친이 목사가 되어 첫 부임지인 제주로 가게 되자 같이 가게 되었다. 그 후 부친은 고향인 광주 양림동으로 이사했으며 부친이 생을 마칠 때까지 양림 교회에서 다년간 시무했다고 한다. 다형은 이곳에서 7세 때부터 10여 년 동안 소년시절을 보냈고 광주 숭일 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 중학에 유학했으며 1932년 평양 숭실 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그 학교에 재학 하는 동안에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이란 시를 학교 교지에 발표하게 되었고 양주동의 인정을 받아 그 시가 다시 동아일보(1934. 3.25) 문예란에 발표됨으로 문단에 등단하는 절차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다형은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광주로 돌아와서 모교인 숭일학교에 재직하게 되었으며 왕성한 시작詩作활동을 했었다. 1937년까지 중앙일보, 동아일보, 또는 조선시단 등에 <황혼> <너와 나> <밤 마음> 등 20여 편의 시를 발표했다고 한다. 허지만 다형은 38년부터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절필하고 시작을 중단했다고 한다. 아마도 일제가 우리말과 우리글을 못 쓰게 압력을 가했고 더구나 신사참배를 하도록 크리스천들에게 강요를 했기에 다형은 심기가 불편했을 것이며 민족의식 때문에 절필을 했으리라 사료된다. 다형은 1946년 광주숭일중학교 교감으로 부임하면서 오랜 침묵을 깨고 시작활동을 재개하게 되었으며 정지용시인이 문화부장으로 재직한 경향신문에 주로 시를 발표했다고 한다.

  다형은 1951년에 조선대학교 문리대 교수가 되었고 1955년 오늘의 한국문인협회의 전신인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이 되었으며 전라남도 제1회 문화상을 수상했다. 이어서 다형은 1957년에는 한국문학가협회 상임위원이 되었고 1965년엔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위원장, 1970~73년까지 동 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한편 1960년엔 서울의 숭실대학교 교수, 그 후 1972년엔 동 대학 문리대 학장에 취임했다. 1971년에는 기독교문화협회위원장, 크리스천문학협회회장을 지냈고 <현대문학>지의 추천위원이기도 했다. 다형은 광주에 있는 동안에도 <시문학>지를 창간하여 후진양성과 향토문학에 기여한 바가 컸다. 다형의 시집으로는 <김현승 시초; 사상사간 1957> <옹호자의 노래; 선명문화사간 1963> <절대 고독; 성문각 1970> <견고한 고독; 관동출판사간 1974> <김현승전집; 관동출판사 1974> <마지막 지상에서; 창비사 1975> 등이 있고 그 외도 <한국현대시해설; 관동출판사 1972>란 시 해설집이 있다.

  이제 다형의 시세계를 일별해보기로 하자. 아래 시는 다형의 <눈물>이란 시이고 이 시는 필자가 발표한 다른 평론에서 이미 소개했던 시이기도 하다.

 

 

                  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현승 시인에 대해 위에서도 밝힌 바 있는데 다형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미션 학교인 평양 숭실 전문대를 나왔고 그의 시의 주제는 고독이었다. 고독의 개념자체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듯이 위 <눈물>이란 시어도 현상적인 사물이면서도 그 의미 해석에서는 다분히 추상성과 관념성을 강하게 지닌 어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형의 시편들에는 고독의 의미들이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고 또한 고독을 노래하되 절망을 전제한 고독이 아닌 절대자를 향한 강한 천착에서 울어 나온 긍정적인 고독이라 볼 수 있다. 제1연의 시는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눈물을 현상적 안목으로 볼 때는 눈에서 흘러나온 물기에 불과하지만 다형은 관념과 추상성을 가미하여 그 작은 눈물방울을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형상화했고 승화시켰으며 그러면서도 독자에게 전혀 거부감을 주지도 않은 채 자연스런 감동으로 이끌어간다. 이는 위에서 누누이 강조한 Conceit에 의해 현상적 눈물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세계로 끌어올렸고 시의 심상을 무리 없이 통합시켰으며 일치성을 이루는데 성공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심오한 시적인 의미확대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린 시연이라 볼 수 있다. 2연에서도 /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우리들이 흘리는 눈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수분과 염분과 소량의 무기물질로 이루어진 수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관념과 추상성을 용해시키고 이미지화하여 시인이 지닌 것 중에서 최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 눈물이라고까지 의미확대를 했으며 눈물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3연은 /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이 시연의 특이한 점은 현상적 눈물과 절대자라는 이질적이고 상이한 두 대상을 컨시트에 의해 무리하게 통합시켰음에도 불구하고 3연의 시행들은 시인의 절대자에 대한 최대의 외경심과 봉헌의 의지를 잘 표출했고 또한 구원을 꿈꾸는 절대 신뢰의 경지를 보여주는 시연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다형은 독자들에게도 무리 없이 깊은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4연에서는 /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사연의 시도 꽃과 열매를 대비시켜 꽃이 피는 것은 즐거움이고 환희이며 꽃이 지는 것은 분명 슬픔이고 애탄이지만 그 자리에 다시 열매를 맺게 하는 창조자의 위대하고 완벽한 창조의지를 잘 드러냈음은 물론 고도의 창조의지를 섬세하게 이미지화함으로 절대자에 대한 외경과 절대적인 전능성에 대해 극점까지 끌어올린 시연이며 현상과 추상의 세계를 잘 통합하고 상징화한 훌륭한 시연이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라고 마지막 결구를 맺고 있다. 위의 <눈물>이란 시의 시작동기에 대해 다형의 막내딸인 피아니스트이고 음악박사이며 서울대음대 한서대학교대학원 겸임교수인 김순배 씨의 말을 빌리자면 부친인 다형시인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기배오빠’를 여윈 후의 절절한 심정이 들어있다. 그 오빠 이외에도 두 명의 형제가 일찍 세상을 버렸으니 그 모든 아픔이 부친의 시에 스며들어 있지 않을 수 없다.”라고 전하고 있다. 세 명의 어린 아이들과 사별했음에도 그 절절한 아픔이 비애나 애탄에 머물지 않게 했음은 물론 그 슬픔을 넘어선 창조자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오직 시를 통해 보여주었고 슬픔을 넘어서서 완벽하고 차원 높은 환희의 경지까지 승화시켰으며 높이 끌어올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웃음을 주신 후에 눈물도 주었다>는 다시 말하지만 이 시구는 그의 절대자에 대한 신뢰를 순전純全하게 표현해주는 시연이기도 하고 이 <눈물>이란 시는 죽음마저도 초월한 절대자에 대한 커다란 신뢰와 그의 절대고독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까지 엿보게 해준다. 다음은 <플라타너스>란 시를 보기로 하자.

 

 

          플라타너스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느린다.

 

 

먼 길에 올제,

홀오로 되어 외로울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神이 아니다.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어느 먼-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窓이 열린 곳이다.

 

 

  위시인 <플라타너스>는 茶兄 시인의 시 중에서 독자들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는 시중의 하나이다. 위시에서 시의 소재이기도 한 플라타너스란 현상적 대상물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茶兄시인은 위시의 첫 연의 시의 모두에 <꿈>이란 관념적 시어를 등장시킨다. 플라타너스와 추상명사 <꿈>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고 생뚱맞기도 한 시어처럼 보인다. 더구나 첫 연의 마지막 시행에서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는 시연은 첫 시행의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의 물음에 대한 대귀對句 역시 엉뚱한 면이 없지 않다. 이는 플라타너스란 대상물을 하나의 사물로서 투시하고 그 대상을 직관력에 의해서 시화하려는 의도보다는 플라타너스란 대상물에 시인 자신의 형이상학적인 추상이나 관념을 투영시키고 컨시트(conceit)를 통해 조화롭게 합일시키며 일치성을 이루고자하는 의도성을 위 시연에서 우리들은 감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위시에서 플라타너스란 대상물을 통해서 시인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추상적 관념의 옷을 입히고자 하는 시적의도를 감지할 수 있고 나가서 위시가 성공한 시로 평가받는 것은 그러한 시화작업의 과정에서 전혀 무리가 없이 훌륭한 조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다시 언급해보자면 형이상시의 특징인 추상적 관념의 세계와 현상적 사물이 무리 없이 조화와 통합을 이루었기에 거부감 없이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훌륭한 시로써 변용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플라타너스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피조물이기도 하다. 창조자의 창조의지에 따라 봄이 되면 파란 잎을 피우고 여름이면 무성한 녹음을 만들어내며 위시에 표현했듯 그늘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가을이 오면 낙엽이지고 겨울이면 쓸쓸한 나목으로 서있기도 한다. 이와 같이 플라타너스는 생의 사계를 되풀이 하며 생존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플라타너스도 꿈이 있을까? 현란한 햇볕이 플라타너스에 비추면 향일성의 생존원리에 의해 잎을 피우고 가지를 뻗어내며 파란 무한공간을 향해 치솟아 오르며 마치 손을 벌리고 기도하는 모습처럼 거대한 몸뚱이를 만들어 간다. 아마도 플라타너스 역시 결코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존이나 자기구원의 세계를 꿈꾸고 있는지 모르고 어쩌면 플라타너스도 그런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허지만 플라타너스도 무상한 세월 속에서 동체와 가지는 노화되어 구멍이 뚫리고 고목이 된 채 어느 날 죽음에 이르게 되고 마는 것이다. 마치 우리 인간들이 모면할 길 없이 겪게 되는 생의 막중한 질곡의 하나인 생로병사란 동류항적 처지에 이르게 된다는 얘기다. 茶兄시인은 플라타너스의 생의 원리와 인간과의 상호간에 생명의 연결점을 간파했기에 <플라타너스>란 시의 첫 연을 도출해냈고 위시가 많은 사람들이 애송할 수 있는 좋은 시로 창작되기에 이르렀으리란 유추가 가능해지며 얼핏 보아서는 생뚱맞은 듯했지만 <플라타너스>와 시인의 추상적 관념의 세계가 마침내 그럴싸하고도 전혀 어색함 없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었으며 합일점에 이르게 되었으리라. 위시에서 다형은 형이상시의 시적논리를 훌륭히 성취시켰다고 볼 수 있다.

  다섯 연으로 된 <플라타너스>란 위시가 그런 맥락에서 바라보고 감상에 들어갈 때 플라타너스와 다형시인의 시세계가 동병상련적인 생의 아픔과 질곡과 고뇌와 고독의 문제가 혼연일체가 되어 매 연마다 절절한 시적감동으로 우리에게 전이되고 다형시인의 지적 감성적 시의 세계가 우리들에게도 그와 유사하게 감정이입이 이루어지게 되며 우리의 가슴을 폭넓게 적셔줌은 물론 그 시적감동에 흠뻑 빨려들고 마는지 모른다. 마지막 시연 속의 마지막 시행에서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窓이 열린 곳이다.> 라고 표현했는데 다형은 시인자신이 보듬은 생의 고독이 해소되기를 열망했을 것이고 그가 구원을 통한 영원한 나라로 입문할 수 있는 窓이 되어주기를 간구하는 구도적 사유에 대해 필자도 크리스천이기에 너무도 잘 공감이 가는 시구임을 미루어 감지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당면한 생존이란 난해한 문제들 앞에서 다형의 위시가 전해주는 절절한 여운 때문에 우리들도 생에 대한 강한 연민과 애착과 구원에 대해서 깊은 침잠에 빠지게 되는지 모른다. 그 다음 시로는 <가을의 기도祈禱>를 감상하며 아울러 분석해보겠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謙虛한 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肥沃한

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百合의 골자기를 지나

마른 나무 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필자가 다른 평론에서도 거론한 바 있지만 한 시인의 시작품의 경향이나 시풍을 결정하는데 가장 유력한 영향을 주거나 결정하는 배경으로 세 가지를 거론한 바 있다. 첫 째는 그 시인이 성장한 역사적 배경을 들었고 두 번째로는 그가 출생하고 성장한 개인사적 환경을 들었으며 세 번째로는 그 시인이 처한 문예사조의 흐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이 논리가 누구에게나 꼭 적용되는 원리라고 강변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략 그렇게 보아도 무방하리라고 필자는 생각해왔다. 위시의 필자인 茶兄시인도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필자의 지론과 거의 일치하지 않나 생각되어진다. 김현승시인은 1913년 생으로 일제에 의해 강압으로 치러진 한일합방의 혼란기에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는 한일합방 이후 한반도에 세워진 총독부에 의해 통치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분을 저들의 의도대로 종속시켰다. 총독은 정권 및 병권을 한 손에 쥔 전제군주와 같은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소위 일제의 36이란 긴 탄압과 강권의 암흑시대가 전개되었던 것이고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다형시인도 1945년 해방을 맞기까지 험난한 시련의 시기 속에서 교육을 받고 젊은 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일제가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기독교의 목사인 아버지의 신분은 다형시인을 그 누구보다도 고뇌하게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일이다.

  2차 대전이 진행했던 1940년대를 전후해서 해방이 되기까지 기독교인들이 신사참배를 하도록 일제는 강요했고 그에 반대하는 목사들을 순교하게 만들었으니 그 일제야 말로 김현승시인을 더없이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며 고독한 시인이 되게 했음이 분명하다.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에도 전쟁을 수행하던 동안 내내 8년이란 긴 세월을 절필했던 그 심정을 필자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그러기에 위시에 등장하는 <謙虛한 母國語>란 시어에서 필자는 한없는 감동과 아픔을 느낀다. 다형시인은 고뇌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엘리트 지식인으로 또한 탄압받는 크리스천으로 거기 더하여 정서적으로 예민한 젊은 시인으로 그가 감내해야할 아픔이 어떠했을지 우리로서는 충분히 상상하기에도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謙虛한 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위 일연의 시에서처럼 落葉들이 지는 때를 맞추어 다형시인으로 하여금 謙虛한 母國語로 기도하게 했고 거기서 머물지 않은 채 주위의 탄압받는 동족들을 위하여 둘째 연의 시행에서처럼 //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으리라. 이어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肥沃한/ 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다형시인에게 수시로 밀려오는 생존의 모든 아픔들을 홀로서는 견디기가 어려웠고 또한 해결할 방도가 없었기에 전능하신 절대자를 향해서 누구에게도 눈치 채이지 않게 홀로 눈물의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으며 핍박받는 모든 동포와 이웃과 시인자신까지를 포함해서 절절한 연민과 애정이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돌아보면서 진실로 그 모두를 사랑하기를 갈망했음이 분명하다.

  마지막 셋째 연인 //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百合의 골자기를 지나/ 마른 나무 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다형시인은 까마귀란 새에 대해서 유난하고 각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유추된다. 위시에서 뿐 아니라 까마귀가 다형시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까마귀란 새는 전래된 속설에 의하면 영계를 꿰뚫어보는 안목이 있는 새로 지목되기도 한다. 마치 죽음의 전령사처럼 고래로부터 인식되어 온 듯하다. 까마귀가 울어대면 마을에서 사람이 죽게 된다고 알려져 왔다. 우리의 영상물들 속에서도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죽음을 예감케 하는 음향효과로 많이 활용하기도 한다. 뿐 이니라 보은의 새로도 알려져 왔다. 어미 새들이 늙어서 눈이 보이지 않으면 새끼 까마귀들이 먹이를 물어다가 늙은 어미 새들을 알뜰히 보살핀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의미로 미루어보아 까마귀는 결과적으로 우리인간들과는 긴밀한 유대가 형성되어왔고 육친의 정에 대해 각별하게 눈을 뜨게 해주기도 하는 익조라고 볼 수도 있다. 다형시인이 어떤 시적의도에서 채택한 시어인지는 확연히 알 수 없지만 까마귀는 시적 의인화를 위해 상징적으로 도입한 게 아닐까 추측된다. 마지막 시연은 삶의 질곡과 고통을 헤쳐 나온 후에 안락한 안식을 누리는 경지를 이미지화하기 위해서 등장한 시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위시는 일본제국주의 포악한 침략주의에 의해 언어를 상실 당했고 고유의 풍속과 문화를 말살 당했으며 긴 세월 고난을 헤치며 살아야했던 시인의 처지와 동족들을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며 다형시인의 마음속에서는 끝없이 기도가 계속되지 안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한 고뇌 속에서 모국어에 대한 각별한 애착과 사랑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바로 <가을의 기도>가 아닐까 사료된다. 위시는 다형시인이 지닌 신앙적 철학과 추상적인 관념을 현실의 삶과 잘 조화시킴으로 이뤄낸 성공한 형이상시라고 보아도 무리가 전혀 없다는 얘길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이어서 다형시인의 <절대고독>시를 살피며 감상해 보자.

 

 

                 絶對孤獨

                                  김현승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永遠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體溫을 느낀다.

 

그 體溫으로 내게서 끝나는 永遠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는 나의 言語를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言語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無限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입을 다문다-나의 시는

 

 

   필자는 위에서도 거론한 바 있지만 명망 받는 한 시인으로 성공을 하고 입지를 굳히기에 이르려면 몇 가지의 전제조건을 구비함이 꼭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첫째로는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나야 하고 다음은 피나는 노력을 해서 그 재질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본다. 다음으로 그 시인의 시풍이나 시적 개성을 결정하는 요건으론 역사적인 시대배경과 문예사조의 흐름과 그 시인이 개인적으로 처한 출생과 성장배경이 중요한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茶兄시인은 위에서 누누이 밝힌 바지만 그 출생부터 순탄치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의 강요에 의해 한일합방이 이루어졌고 그 3년 후에 목사의 아들로 태어 낳다. 그가 성장한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서술해본다면 그가 유년시절이던 1919년에 3.1독립운동이 일어났었고 청소년 시절인 1929년엔 그가 살고 있던 광주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열화처럼 일어났으며 1941년엔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2차 대전이 발발했다. 연이어 1945년 드디어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었고 1950년에 6.25가 발발함으로 동족상잔의 잔혹한 전란을 겪기에 이르렀다. 다형은 일제 강점기 36년 중 33년 동안이나 참혹한 암흑기를 몸소 견뎌야했음은 물론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다형시인은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생존의 고뇌와 정신적인 아픔에 노출되었을 게 분명하다. 그가 1940년대를 전후해서 8년이나 절필을 하고 시마저 쓰지 안했던 것은 그의 정신세계의 아픔이 어떠했을 지를 단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일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세 아이들의 죽음을 몸소 겪어야했고 그 죽음 앞에서 목사의 아들이었기에 겪어야하는 육신적인 고뇌와 영혼의 아픔은 각별했으리란 짐작이 들기도 한다. 필자는 위시의 제목이기도 한 <절대고독>이란 어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고독이란 어휘는 자주 쓰기도 하고 흔히 듣기도 하는 귀에 익은 단어이지만 <절대고독>이란 말은 어찌 보면 생소하고 약간은 거부감을 느끼게도 하는 어휘이기도 하다. 다형시인이 다도茶道를 즐기고 또한 고독의 시인이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그의 생의 저변에는 위에서도 얘기했듯 고독의 문제가 밀도 있게 저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절대고독>이란 어휘가 귀에 익지 않은 어휘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절대고독>은 어떤 의미의 고독을 얘기하는 것일까! 필자의 해석이 꼭 정석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첫 번째로 쉽게 해소되지 않는 고독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봤다. 두 번째로는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사물 사이에서 대두된 고독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봤다. 세 번째로는 인간 단독으로 풀 수 없는 고독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네 번째로는 절대자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성립할 수 있는 고독에 대해서 <절대고독>이라 명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다형은 크리스천으로 유태민족이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도는 민족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에 의해서 아우스빗츠에서 6백만 명에 달하는 유태민족이 학살당했음도 알았으리라. 우리나라도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한 채 나라 잃은 민족으로 갖은 학대와 설음에 노출되어 고통을 당하는 처지에서 있었기에 양식 있는 지성인으로 크리스천으로 국권회복과 민족재건이 그의 기도제목이었을 것이고 그 기도의 응답이 쉽게 성취되지 않음에 때로는 절망했고 그로 하여 <절대고독>에 침잠해 있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눈물>이란 시에서처럼 아이들의 죽음이 몰고 온 생의 고뇌는 하나님과 다형과의 단독자적으로 풀어야 했을 절박한 문제이기에 그토록 <절대고독>에 깊이 침잠하게 되지 않았을까 사료되기도 한다. 그런 정항들로 그는 고독할 수밖에 없었고 누구도 쉽게 이해하거나 접할 수 없는 <절대고독>에 개안하게 되었으리란 추론을 해보게 해준다.

  다시 시의 원문으로 돌아가 보자. //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永遠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그가 처한 고독한 생존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가꿔온 영성을 통해서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고 <절대고독>의 문제로부터 잠을 깨고 개안을 했으리라는 유추를 가능케 하는 시연이다. //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體溫을 느낀다./ 그 體溫으로 내게서 끝나는 永遠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다형이 처한 현실과 그가 만지는 손끝에서는 아름다운 꿈과 몽환의 세계가 개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망의 무저갱으로 추락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의 신심과 긍정적 사유는 절망보다는 현실 속에서 다스한 체온을 느끼게 해주고 오히려 긍정적인 안목으로 희망과 꿈의 세계를 바라보게 해준다는 얘기일 것이다. // 그 끝에서 나는 나의 言語를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言語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한 때 8년이란 긴 세월 동안 절필을 하고 <절대고독>에 침잠해 있으면서도 그 시적언어들이 부정적이고 절망의 언어로 퇴락되거나 결코 파기시키지 안했으며 또한 그 시적언어들에 지나치게 집착하지도 않은 채 가벼운 마음으로 꿈을 꾸듯 시로 형상화했고 표출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인 듯하다. // 나는 내게서 끝나는/ 無限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입을 다문다-나의 시는// 마지막 연의 시는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어느 날인가는 시적세계와도 결별을 고할 수밖에 없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지만 그 시의 세계에 대해서는 정겨운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애정과 미련을 결코 버릴 수는 없는 시인의 심적 결의를 잘 들어낸 시연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형시인의 많은 시편들은 고독의 문제와 절대고독에 대해 잘 형상화되었고 이미지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나가서 추상과 관념의 문제들을 현상적인 사물에 빗대거나 컨시트를 동원해서 전혀 무리함도 없고 또한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흠잡을 데 없이 형이상시로 시의 옷을 훌륭히 잘 입혔으며 시적변용에 성공했다는 점을 필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수용하고 싶다. 그의 시세계는 고독이 주제인 것이 사실이지만 결코 절망이나 부정의 세계 속에 함몰되거나 탐닉하지 않고 유신론적 철학자인 <키엘케고르>가 절대자에게 구원을 호소하고 요청했던 것처럼 그는 목사의 아들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그가 믿고 의지했던 하나님께 생의 고독과 구원의 문제를 전폭적으로 의지했다고 본다. 다형의 시속에 면면히 저류하는 고독이란 시적 주제는 오히려 그의 시세계는 물론 생존의 문제들까지를 보다 완숙한 단계로 끌어올리는 견인차적인 역할을 충분히 잘 해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다형시인의 <절대신앙>이란 형이상시에 대해 시인이고 평론가이자 <한국형이상시협회> 회장인 최규철 문인의 평을 여기에 소개해 볼까한다. “이런 형이상시는 우리나라 시인의 시 중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김현승의「절대신앙」,「마음의 집」, 김춘수의「모자를 쓰고」, 김종삼의「나의 본적」, 박남수의「손」, 문덕수의「꽃과 언어」, 박진환의「가을 이미지」, 허영자의「얼음과 불꽃」등이 그것이다. 아래 예시는 김현승의「절대신앙」이란 시이다.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

.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풀어 줍니다.

 

       -김현승, 「절대신앙」전문 -

 

  이 시에서 우리는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 정신세계와 사물세계를 폭력적인 결합을 통해서 융합하는 형이상시의 시적 기상(Conceit)을 발견할 수 있다. 극도의 양극성을 띠우는 두 개의 사물에서 ’화자의 눈송이‘가 ‘절대자의 불꽃’ 속으로 뛰어 들어가 연소되어 삼켜지는 것은 절대 신앙을 가진 자만이 절대자의 불꽃 속으로 뛰어 들어가 자신은 사라지고 절대자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영광스런 상태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시의 제목인 ‘절대 신앙’이 암시해주고 있다. 박진환 교수은 그의 저서「21C의 詩學」에서 ‘불태우고 있는 그리하여 뜨거움으로 다가가는 신앙의 열정을 이에 상응하는 객관적인 상관물인 ‘불꽃’ 에 연관시켜 이 불꽃인 신앙심에 스스로를 던져 하나가 됨으로써 신앙의 절대성을 획득하기 위해 불과 하나가 될 수 있는,곧 불 속에서 녹아 하나가 될 수 있는,‘눈송이’ 에 연계시켜 등가물을 발견함으로써 육체의 소멸을 통한 정신에의 합일이라는 절대 신앙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러한 연상은 곧 컨시트(Conceit)에 의해서 만이 가능하다.” 라고 피력했다. 

 

 

      본고를 끝맺으며

 

 

  필자가 독자들이 애송하는 다형의 시 수편을 형이상시의 예시로 도입했고 필자 나름대로 다형의 시에 흠이 되지 않도록 조심스런 마음으로 검토하고 곁들어 감상을 해봤다. 위의 시들에서 보다시피 직관적이고 현상적인 세계를 형이상시의 컨시트와 은유와 알레고리 등의 기법을 도입해 사물과 관념이란 이원화의 세계를 잘 통합 조화시켜 관념의 육화肉化 내지는 형상화에 성공했고 그렇게 쓰인 다형의 시편들은 필자 역시 시의 맛과 깊이를 더해준 성공한 시들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에 이 논고를 쓰기에 이른 것이다. 다형시인은 다시 말하지만 친일 시편들을 썼던 시인들과는 달리 33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일제의 갖은 압박과 탄압을 받았고 일제가 2차 대전을 수행하던 기간 중엔 다형은 열정이 왕성한 30세 전후에서 35세에 이르는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연대를 살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출세와 영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절필을 한 채 침묵하며 그토록 아끼던 모국어로 시 쓰는 작업마저 중단했었으니 다형이 얼마나 지조의 시인이었는가를 여실히 대변해주는 것이다.

  또한 다형이 그가 아끼는 시편들은 대부분 가을에 썼다고 말했듯이 다형은 누구보다 가을을 사랑했고 그의 아호가 다형茶兄이듯이 그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깊은 고독에 침잠한 채 다향에 심취했던 것을 우리들은 잘 알 수 있다. 다형은 목사의 아들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다형이 남다른 고독에 눈을 뜬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인간과 인간사이도 그러하거니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서도 남다른 고독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인간들은 항상 시제의 일치를 이룰 수 없기에 하는 얘기다.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기도와 간구를 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즉시 응답을 줄 수도 있고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응답하실 수도 있기에 인간들은 때로는 고독할 수밖에 없기에 하는 말이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때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말씀하셨으며 그러기에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고독은 존재할 수 있고 그러기에 다형과 하나님의 관계에서도 고독이나 절대고독은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뿐 아니라 일제치하에서도 모국어母國語에 대한 사랑이 남 달랐음을 다형의 시편들 속에서 우리들은 감지할 수 있고 다형의 그런 모국어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시정신이 우리시의 품위를 크게 격상시켰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형은 조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리고 <현대문학>의 추천위원을 지내면서 후진 양성에 진력했었다. 시단의 기라성 같은 중견 시인들인 이성부 문병란 손광은 임보 진헌성 문순태 오규원 김규화 박홍원 박봉우 윤삼화 강태열 박성룡 조태일 양성우 김준태 씨 등의 혁혁한 시인들을 많이 배출시켰고 여기에 모두 거명하지는 못했지만 3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많은 후진들을 육성해 낸 공로는 한국시사에 기리 남음은 물론 독보적인 위치와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길이길이 칭송을 받아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위에 수편의 예시들을 제시하고 감상을 곁들여 고찰해봤으며 형이상시와 다형의 시편들이 상사점을 공유하고 있음은 물론 배면에 흐르는 시적 풍토나 경향이 상통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필자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논거를 제시했다고 본다. 이제 필자는 이 논고에 대해 스스로 완벽하다고 자부할 수는 없겠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는 미숙한 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필자는 현재 폐암과의 투병 중에 있고 그런 중에 있음에도 <형이상시와 다형의 시세계>에 대한 집필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다형 시에 대한 감상을 곁들여서 형이상시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고 일별해봤기에 안도하는 마음으로 이 논고를 끝맺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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