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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 시론을 중심으로
2015년 04월 20일 00시 05분  조회:4181  추천:0  작성자: 죽림
 
● 연기와 화염을 뿜으며
              타오를 수 있는 이 무명화(無名花) - 박용철 시론 -●

                                            / 김정수

1.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은 박용철의 시론을 「시적 변용에 대하여」(『삼천리 문학』. 1938)라는 그의 글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순수시 용어의 문제와 시문학파
우리는 일반적으로 '순수문학'과 '순수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중에서 '순수문학'이란 비평적 용어라기 보단 일종의 관습적 어법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즉 상업적 '대중문학'의 상대적 용어로 정착한 어휘라서 뚜렷한 학술적, 비평적 보편함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고, 다만 편의적으로 이용되는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순수시'에 이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순수시'에 비길 만한 '대중시'의 개념이 따로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이 용어는 우리 문학의 뚜렸한 유파적 변별의식과 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 용어의 사용은 각기 다르다. 어떤 논자들에게는 이 용어가 현재 문제되고 있는 '순수문학'이라는 용어와 함께 '예술파' '예술지상주의' '기교주의' 등등의 용어가 동일한 함의를 갖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순수시의 범주를 사회주의에 반기를 든 시이자 예술품으로 완성된 시라고 이해하는 논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30년대 초반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유형의 시인군이 여기에 포함될 터이다. 이로 볼 때 시문학파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향에 '순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비평적 기준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시문학파의 시론은 순수시론이 아닌 시문학파 시론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 시문학파의 발생요건을 몇 가지로 간추릴 수 있는데, 그 요인들은 크게 문학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으로 나누어진다. 문학 외적인 요인으로는 '당대 정치적 현실의 악화' 문제와 한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광범한 확대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문학 내적 요인으로는 안서 김억의 시론 작업과 해외 문학파의 성립, 그리고 모더니즘시와 시론의 형성을 꼽을 수 있겠다. 이러한 문학내외적 요인들로 인해 시문학파는 30년대 한국시단의 한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30년대 문학의 전방위적인 반 카프 경향이라는 심리적 공조가 보더 심층적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3. 박용철, 「시적 변용의 길」
그는 "우리의 모든 체험은 피 가운데로 용해한다"고 말한다. 즉 "피 가운데로, 피 가운데로, 한낱 감각과, 한 가지 구경과, 구름같이 떠올랐던 생각과, 한 근육의 움직임과, 읽은 시 한줄, 지나간 격정이 모두 피 가운데 알아보기 어려운 용해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는 보통 생각하는 것같이 단순히 애정이 아닌 것이다. 시는 체험인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체험만으로 시는 되지 않는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긴 생애를 두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의미와 감미(甘味)를 모으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의미와 감미를 모은다는 것은 박용철에게는 기억의 행위이다. "모르는 지방의 길, 뜻하지 않았던 만남,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이별"등을 기억해야만 한다. 또한 이런 기억의 행위는 곧 한 편의 시를 완성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러 밤의 사랑의 기억, 진통하는 여자의 부르짖음과 아이를 낳고 해쓱하게 잠든 여자의 기억"들이 시인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억이 많아진 때 기억을 잊어버릴 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말할 수 없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기억만으로는 시가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들이 우리 속에 피가 되고 눈짓과 몸가짐이 되고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는 이름없는 것이 된 다음이라야" 한 줄의 시가 만들어진다. 즉, 기억이 기다림을 통하여 나와 일체가 될 때 시가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열 줄의 좋은 시를 다만 기다리고 일생을 보낸다면 한줄의 좋은 시도 쓰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좋은 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한한 고난과 수련의 길을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용철은 "시인은 진실로 우리 가운데서 자라난 한 포기 나무이다"고 말한다. 즉 시인이 "뿌리를 땅에 박고 광야에 서서 대기를 호흡하는 나무로 서 있을 때만 그의 가지에서는 생명의 꽃이 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꽃을 피우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래서 박용철은 시인을 두고 "비상한 고심과 노력이 아니고는 그 생활의 정을 모아 표현의 꽃을 피게 하지 못하는 비극을 가진 식물이다"고 말한다. 
「시적 변용의 길」이라는 글에서 박용철은 시를 쓰는 과정의 구체화와 함께 시인의 자질됨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박용철에게 시는 시인의 자기완성이다. 시는 곧 시인의 삶 자체이자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독일의 시인 릴케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먼저 쓴다는 것이 네 심령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일인가를 살펴보라. 그리고 밤과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네 스스로 물어보라 - 그 글을 쓰지 않으면 너는 죽을 수 밖에 없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죽어도 그런 내심의 요구가 있다면 그때 너는 네 생애를 이 필연성에 의해서 건설하라" 

4. 박용철 시론의 의의
박용철 시론의 의미는 창작 체험의 내밀한 부분을 최초로 언표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 시어로서의 언어가 지닌 마술성을 이 땅에서 최초로 논리화했다는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당대의 많은 시인들이 제대로 된 한국어의 훈련 내지는 기술의 습득을 지니지 않고 조야한 논리나 구호만으로 시를 구성하려 했던 잘못에 대한 엄숙한 경고의 의미도 지닌다. 뿐만 아니라 박용철 논리의 많은 부분은 독특한 시론이 아니라 시를 쓰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환기했다는 의미도 지닌다. 즉, 시인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시적 완성에의 경로를 강조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1930년대에 형성된 이 시문학파 시론은 우리 근대문학이 그 시작에서 부터 빠져버렸던 오류를 극복하는데 중추적 역활을 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시란 문학이며 그것은 언어를 매재로 하는 예술의 하나일뿐이라는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널리 인지케 함으로써 우리 근대 문학의 한 단계 비약을 가능케 했다는 말이다.

5. 나가면서
조금씨 게을러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아닌 척,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젠 정말 떠날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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