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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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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쓰기 외우기 추고하기
2015년 06월 14일 21시 08분  조회:4264  추천:0  작성자: 죽림
“길은 달리면서 바퀴를 돌리지만

바퀴는 돌면서 길을 감고 있다

모나고 흠진 이 세상

둥글게 감고 있다”

-(‘바퀴는 돌면서’)


올해 칠순을 맞은 이우걸 시조시인이 단시조 70수를 묶은 시집 ‘아직도 거기 있다’(서정시학·사진)를 최근 출간했다. 등단작 ‘편지’, 대표작 ‘팽이’ 등 발표작 40수를 엄선하고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쓴 신작 30수를 함께 묶었다. 이근배 시조시인(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은 “단수 미학의 새 전범을 보여주는 이 시집을 머리맡에 오래 두고 읽어야겠다”고 추천했다.

최근작 단시조엔 시인의 인생 연륜과 시적 깨달음이 녹아있다. 시인은 ‘바퀴는 돌면서’에 대해 “젊은 시절 모질게 싸우기도 했지만 칠십이 되고 나니 거칠게 대항하지 않고 바퀴의 원처럼 둥글게 사는 것이 인생 사는 길임을 알았다”며 “세상사가 험하고 각진 길일지라도 인내하고 받아들여야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우걸 시조시인
관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밝은 양지보다 어두운 그늘이 시인의 눈에 더 들어왔다. 시인은 그늘이 주는 휴식, 위무, 치료의 역할에 주목하며 스스로 그늘처럼 살길 다짐한다. “세상 모든 그늘이란/그 사물의 어머니인 것/빛이었던 하루의 외롭고 아픈 상처를/안으로 쓰다듬어서/다시 내일을/일군다”(‘그늘’)

1973년 등단한 시인은 중앙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김상옥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절약된 언어 속에 깊은 의미를 담아내는 촌철살인이 단시조의 매력”이라며 “앞으로도 후배 시조시인들을 물심양면 도우면서 시조의 그늘로 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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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1 - 이우걸(1946~ )



죽은 아이의 옷을 태우는

저녁,


머리칼 뜯으며 울던

어머니가 날아간다...


비워서 비워서 시린

                                        저 하늘 한복판으로---


소멸은 물물(物物) 세계에서 필연이니, 먼저 죽고 나중에 죽는 것이 대단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자식 앞세운 부모는 숨이 붙어 있다고 산 게 아니다. 이 부모의 아픔을 ‘참척’이라고 하는데, 그 고통과 비통함이 얼마만 한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는 짐작조차 어렵다. “죽은 아이의 옷을 태우는 저녁”은 흘러가버린 지 오래다. 제 머리칼 뜯으며 울던 어미도 떠난 지 오래다. 온 것은 기어코 가는 것이니, 가는 것을 붙잡을 수는 없다. 지금 있는 것은 “비워서 비워서” 시린 하늘과 그 한가운데를 떠가는 기러기 떼다. 인생 허허롭다. <장석주·시인>

 ■ 나의 시조 이렇게 썼다 / 이우걸

                             
        · 외우면서 추고하기         

                        1

  내게도 비밀한 나만의 시조작법이 있다. 그것은 외우기이다. 시조에 접하게 된 계기도 
외우는 과정에서 이루어졌고, 좋은 시조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도 외우면서 이루어
졌다. 그렇다면 외우는 것이 어떤 면에서 좋은 방법이 되는가. 또, 외우면서 무엇을 고치
는가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2

  나는 초·중학교 시절에 늘 어머니를 위해 고시조를 붓글씨로 써야 했다. 어머니는 그
걸 외우시는 것이 당신의 낙이었다. 그 낙은 마치 옛 여인들이 기구한 그들의 한을 노래
에 실어 물레를 잣듯 시간을 자아가며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고시조 두루말이는 그 당시 우리 집에선 어머니의 교과서로 여러 개가 준비되어 있었
다. 그 교과서를 외우시는 어머니 곁에서 우리 식구들은 혹시 어느 구절이 틀리나 하고 
듣고 있었지만 틀리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이제 나 스스로도 시
조를 외는 버릇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조를 자꾸 외우다 보면 3장 12음보의 형
식미를 자연스레 알게 될 뿐 아니라 그 작품이 그려보이는 정경까지도 상상할 수 있었
다.
  이제, 나는 시조를 쓰는 시인이 되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시조감상 방법대로 지금은 내 시조를 감상하는 것이다. 그 감상 과정에서 
문제점이 생기면 손질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나의 추고방법이다. 그렇다면 내
가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얘기해야 할 순서가 된 것 같다.
  첫째로는 형식에 대한 점검이다. 시조는 두루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정형시다. 특히, 자
수로 해결되지 않는 운율의 미학을 시조는 지니고 있다. 따라서 자수는 맞으나 시조가 
아닌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자수로는 넘쳐나는 듯한데도 시조의 형식미를 잘 갖춘 시조가 
있다. 이에 대한 감식안은 시조를 많이 외운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법 아닌 비법이다.
  두번째로는 동원된 언어에 대한 점검이다. 가령, 격을 낮춘 비어를 발견했을 때 이 비
어를 동원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에 대해 심사숙고 하게 된다. 또 모음의 지나친 반복
이나 받침 사용의 문제점, 동어 반복의 문제점을 따지는 것이다. 지나치게 율감을 느끼
게 되는 경우 가벼운 서정시로서는 장점이 될 것이고 무거운 서정시의 경우는 단점이 
될 것이다. 또 모음의 반복이 리듬감을 살리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지루
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받침의 경우도 점검 대상이 되어야 한다. 발음해서 경쾌한 느
낌을 주지 못하는 경우 발랄한 서정시의 분위기를 필요로 할 때는 어휘를 바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로는 내용에 대한 점검이다. 여기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구조의 완결성이
다. 시조는 초, 중, 종장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시적 긴
장감을 유지하면서 초, 중, 종장은 서로 관계해야 한다. 또, 연시조의 경우 첫 수와 둘째 
수 혹은 셋째 수는 독립해 있으면서도 서로 한 시세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서로 관계없는 연시조라면 함께 묶어 같은 제목을 붙일 이유가 
없다.

                        3

  이제 나의 시조 쓰기 방법을 보이기 위해 몇 편의 작품을 들어보고 싶다.

    어릴 때 누나는 창녕에서 자랐고
    자라서 누나는 파주에서 살지만
    당신은 우리 누나를 욕하지 못한다.

    강도 산도 해도 달도 산 자의 인연일 뿐
    핏줄처럼 엉켜붙은 잡초들을 후벼파다가
    사변이 나던 이듬해 밤차를 타고 떠났다.

    이따금 엽서에다 누나는 소식을 쓴다
    성한 그, 다리로는 밟지 못할 고향땅에
    어머니 추우실까 봐 털옷도 짜 보낸다.
                                  우리 누나 ――6·25

  유월 어느 날이었다. 반공 구호가 신문이나 방송 채널에서 계속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신문이나 티비 채널의 도식적이고 의례적인 행사에 식상해서 몸서리치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시인인 나는 6· 25를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
었다. 이런 내용을 시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글을 써 본 사람이면 경험하곤 하
지만 정말 막막했다. 그 때 얼른 머리 속을 스쳐가는 상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
릴 때 아랫동네 한 처녀에 관한 것이었다. 즉, 그 처녀는 6·25이후 너무 가난해서 거리
의 여인이 되어 파주에 살고 있는데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고향 땅 발 못디딘
다.」고 외치던 그 처녀 아버지가 죽은 이듬해에 노랑머리 남자 아이와 얼굴이 검은 아
이를 데리고 몰래 밤에 고향에 왔다가 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6·25의 참상 중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가장 아픈 사건은 바로 죄없는 이 처녀의 인생사다. 따라서, 실감
을 느끼게 하기 위해 「우리 누나」의 일로 바꾸어 써 본 것이다. 처음엔 제목을 「6·
25」로 했다가 다시 「편지」로 했다가 최종적으로 「우리 누나」로 바꾸었다.

 나는 그대 이름을 새라고 적지 않는다
 나는 그대 이름을 별이라고 적지 않는다
 깊숙이 닿는 여운을 
 마침표로 지워버리며.

 새는 날아서 하늘에 닿을 수 있고
 무성한 별들은 어둠 속에 빛날 테지만
 실로폰 소리를 내는 
 가을날의 기인 편지.  
                                 「 비 」

  어느 가을날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나는 어떤 사람에게 열심히 사랑의 편지를 썼다. 
  그러나, 한번도 부치지는 못했다. 그 때 내가 하숙한 집은 일본식 가옥이었다. 그 지붕 
끝에 양철 물받침이 있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지면 실로폰 소리 같은 게 났다. 
  대학 2학년 어느 가을날, 나는 다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위의 시
조를 썼다. 비상과 하강의 이미지 배치. 그리고 사랑의 감정 ―― 어쩌면 가을에 내가 
만난 비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썼던 완성되지 못한 편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은 씌어진 것이다. 제목도 「편지」, 「가을 비」, 「비」를 두고 많은 시간을 보
낸 뒤 「비」로 정했다. 고심한 덕분으로 이 작품이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의 영광을 차지
했다.

                 4

  이제 다시 좋은 시조를 쓰는 방법으로 돌아가서 얘기해보자. 나는 그 비법으로 외우기
를 들었다. 그렇다. 시조는 특히 외우면서 추고해야 한다. 추고 기간은 길게 잡을수록 좋
다. 어떤 작품의 경우는 창작할 때부터 수작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많은 모순을 안고 태어난다. 그 모순은 추고라는 작자의 애프터 서비스를 통해 
말끔히 지워지게 된다. 어제까지 몰랐던 작품의 문제점을 오늘 다시 발견하고 그 문제점
을 잘 고치면서 느끼는 희열 또한 작은 것이 아니다. 과작이라도 좋다. 시인은 완결된 
한편의 작품을 묘비명에 새기기 위해 생애를 투자하는 사람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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