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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보다 먼저 눕고 먼저 울고 먼저 일어서는>> -"국민시인"
2015년 07월 05일 22시 34분  조회:4678  추천:0  작성자: 죽림
 

김수영

        -거대한 뿌리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 15 이후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 뿐이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 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 진창을 연상하고 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시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는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아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지금은 이어령 선생의 책을 보면서 교양수준이나 높일 궁리를 하지만 대학 다닐때에는 김수영이나 김지하 김남주 같은 이들의 시를 열심히 외웠다. 그 중 김수영 선생은 문장이 김지하나 김남주 같이 강렬하진 않아도 읽다보면 '세상이 어떤 것이고 그래서 지식인은 무엇을 할까 한다'라는 도발적인 발언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더욱이 김수영의 시처럼 육두문자를 시적인 은유 나 상징 속에 섞어 써도 천박하지 않게 느껴지는 시는 거의 드물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이어령 선생과 대조적이다. 지식인의 교양으로 무장한 이어령 선생은 순수문학을 주장하며 국어의 세련미를 갉고 닦았고, 김수영 선생은 순수를 약간 비웃으며 참여시의 부흥을 가져왔으니. 그 둘 사이의 순수문학논쟁이 어떤 것인지 대충 느낌이 간다.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이들이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는 박영희의 언술을 인용할때 김수영은 "나는 더러운 진창을 사랑한다. 진창을 사랑하지 않는 넘들은 미국넘 XXX나 빨아라 "라고 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등학교 국어 책은 김수영을 모더니즘 시인으로 분류하지만 그의 시 거대한 뿌리는 마치 탈근대론의 개론서를 읽는 듯 하다. 원래 모더니즘, 즉 근대는 사회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근대는 그런 믿음으로 인류를 봉건적 폭력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탈근대관점에서는 그런 믿음 또한 폭력적이다.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부정하고 청산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폭력을 잉태하기 마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분명 근대정신의 전형이다. 하지만 김수영은 그들에게 '네에미 X'라는 육두문자를 날려준다. 아마 김수영이 보기엔 그들은 진창을 사랑하지 않는 계몽의 화신들이고 통일도 학구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요강, 신전, 무식쟁이 등 무수히 많은 반동에 대한 애정이 이념의 폭력성으로 부터 그들을 구해내리라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대한 뿌리'의 가장 큰 미덕은 그 애정이 맹목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아래의 싯구처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가 어떤 면에선 잔소리 많은 역사선생님같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그들은 아무도 상상 못하는 거대한 뿌리 그 자체이기에

 

개인적으로 '거대한 뿌리'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비숍 여사의 등장이다. 비숍은 분명 서구적 근대화의 상징이다. 그것도 가장 악랄한 근대정신으로 평가받는 제국주의의 화신이다. 그런데 김수영은 비숍의 시선으로 조선역사를 이해한 후 진창에 대한 애정이 깊어만 간다. 어쩌면 김수영은 우리가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학문체계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생각했고 그 사실을 그냥 인정하기로 마음 먹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서구인의 시선으로 조선을 바라볼 수 밖에 없더라도 애정을 팔아 먹지 말라달라는 당부를 하려고 '거대한 뿌리'를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소월, 한용운, 윤동주, 서정주 등과는 너무나 다른 색깔과 목소리를 지니고 있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저 없이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김수영(1921-1968)이 한때 소설을 쓰고 싶어 했고, 실제 소설을 썼다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물론 그의 소설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고 그는 다시 시 쓰기에 매진했다. (짧은 분량의 소설 몇 편은 김수영 스스로 불태워버렸고, 계획했던 장편소설은 서두만을 쓰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어쨌든 ‘시인 김수영’이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은 김수영과 김수영의 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서울, 서울, 서울에 오래 살면서 나는 서울이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소설을 써보려는 것도 이 알 수 없는 서울을 알려고 하는 괴로운 몸부림일 것이다. 알 듯 알 듯 하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서울은 무엇인가? 이 결론 없는 인생 같은 서울, 괴상하고 불쌍한 서울, 이 길고 긴 ‘서울’에서까지의 숨 가쁜 노정에서 잠시 땀이라도 씻고 가기 위한 짧고 안타까운 휴식 같은 것이 나의 소설일 것이다.”

이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온 김수영이 억지춘향격인 신문기자로, 번역료를 떼이기 일쑤인 번역가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던 무렵에 쓴 메모의 일부다. ‘서울을 알려고 하는 괴로운 몸부림’, ‘서울에서까지의 숨 가쁜 노정’이란 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김수영은 일제 식민지배가 완전히 고착된 후인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환경 덕에 비록 병약하기는 했지만 부족함 없이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해방 전에는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징병을 피해 만주로 피신, 다시 해방 후에 서울로 돌아와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며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문물을 향유하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피난을 떠나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아 있던 김수영은 인민군에 의해 다른 문인들과 함께 북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강제 징병되어 훈련을 받고 의용군으로 전장에 배치됐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유엔군의 포로 신세가 된 김수영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억류된다. 

영어에 능통했던 덕에 통역 담당이 되었지만 포로수용소에서의 체험은 진저리처지는 지옥 그 자체였다. 피난지인 부산에 머물다 전쟁이 끝난 후 가까스로 서울로 돌아왔지만, 완전히 폐허가 된 서울은 그에게 ‘아늑하고 푸근한 고향’일 수 없었다. 

집안 대대로 서울토박이인 김수영에게 서울은 고향, 그러나 언제나 ‘낯선 고향’이었다. 남의 나라의 식민지가 된 고향에서 그는 남의 나라의 말을 모국어처럼 읽고 쓰며 성장기를 보냈다. 유학으로, 피신으로, 전쟁으로 고향을 등졌다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고향에 돌아와도 서울은 그에게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같은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대신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혼란과 혼돈, 아귀다툼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대립, 사회적 모순과 경제적 불안뿐이었다. 김수영은 환멸과 무기력에 빠져들었다. 서울은 그 자신이 표현한대로 ‘결론 없는 인생’, ‘괴상하고 불쌍한’, 타향보다 낯선 고향이었던 것이다. 

‘서울을 알려고 하는 괴로운 몸부림’과 일제강점기-해방공간-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그 ‘숨 가쁜 노정’은 과연 시보다는 소설에 어울릴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설을 쓰려던 김수영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속의 ‘산문적 열망’을 ‘시’로 승화시키는 일이었다. 시가 김수영의 진정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서울에서 안락함과 푸근함을 느낄 수 없었지만(자신의 고향을 찬미하는 시를 지은 시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순과 부조리로 점철된 인간과 역사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김수영은 특유의 커다란 두 눈을 부릅뜨고, 분노와 자유를 가슴에 담고, 고향인 서울을, 그 격동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우리가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 가를”이나 “혁명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등의 싯귀를 기억하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처럼 결국 혁명은 미완으로 그쳤고, 김수영은 절망 속에서 군사독재의 시작을 지켜봐야 했다. 

김수영은 불 같이 뜨거운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넘치는 에너지와 매력의 소유자이기도 했지만 정서적으로 불안정했으며 극단적인 성격과 폭음, 기행 등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적잖이 힘겹게 했다. 

반복되는 우울과 무력감으로 스스로도 고통 받았다. 물론 그러한 것들은 창작의 동력이 되어 불멸의 시를 탄생시켰고 빛나는 예술적 성취도 이뤘다. 그러나 ‘시인 김수영’이 아닌 ‘인간 김수영’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외롭고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김수영 평전>은 뜨거운 격정과 치열한 예술정신을 지닌 시인 김수영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객관적인 시선과 균형 잡힌 목소리로 인간 김수영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역시 당대의 시인인 최하림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전의 행간 곳곳에서 김수영을 향한 최하림의 지극한 애정과, 같은 시인으로서 고민하고 공감하는 삶의 진실들이 묻어난다. 

그러나 최하림은 김수영을 찬양하지는 않는다. “시는 새로운 면만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시대를 증명하는 목소리도 아니다. 시는 인간의 정서적이며 지적인 어떤 정신과 기능의 통일체다”라고 말하며 그는 숨는 듯 드러나는 저자로 시인으로서의 김수영과 인간으로서의 김수영을 조화롭게 아우르고 있다. 

나아가 이 평전은 한 인간의 전부, 그 모든 것을 온전하고 완벽하게 재현하고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독자에게 신뢰를 얻고 평전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김수영은 한때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또한 김수영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남편이었고, 형제였고, 연인이었고, 친구였다. 

직장을 그만둔 후 집에 닭장을 짓고 양계를 업으로 삼기도 했고, 신문을 통해 문사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술에 취해 서울의 쓸쓸한 밤거리를 비틀비틀 걸어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시인이었다. 이름뿐인, 허울뿐인 시인이 아니라 가슴으로 시를 쓰는 진정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들과 이 책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가 쓴 시처럼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선다.’ 그러나 그런 풀보다 먼저 눕고 먼저 울고 먼저 일어서는, 김수영, 그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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