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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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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인 - 박팔양
2015년 07월 09일 21시 52분  조회:4184  추천:0  작성자: 죽림
  

박팔양 시인 :

-서사시 <진달래>를 비롯하여 천여 편의 시와
         극 등 문학예술작품을 발표하여 북한 문단사에 일획을 장식한 시인.

-1905년 8월 경기도 수원에서 8형제의 막내아들로 태어남.

-경성법학전학교에 다닐 때부터 시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가짐.

-1923년 처음으로 시 작품 ‘물노래’를 발표함.

-1925년 8월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의 회원으로 문필활동 본격화

-장시 ‘ 민족의 영예’가 있고, 장편서사시 ‘눈보라 만리’가 있음

-애국열사릉에 안치됨.

-비전행장기수 박문재(52년 동안 남한에 수인으로) 씨가 시인의 아들임.

 
 


 

밤차 - 박팔양(필명: 김여수)

 

추방되는 백성의 고달픈 백(魄)을 실고

밤차는 헐레벌덕어리며 달어난다

도망군이 짐싸가지고 솔밭길을 빠지듯

야반(夜半) 국경의 들길을 달리는 이 괴물이여!

 

차창밖 하늘은 내 답답한 마음을 닮었느냐

숨맥힐 듯 가슴 터질 듯 몹시도 캄캄하고나

유랑(流浪)의 짐 우에 고개 비스듬히 눕히고 생각한다

오오 고향의 아름답든 꿈이 어디로 갔느냐

 

비닭이*집 비닭이장같이 오붓하든 내 동리

그것은 지금 무엇이 되었는가

차바퀴 소리 해조(諧調)*마치 들리는 중에

희미하게 벌려지는 괴로운 꿈자리여!

 

북방 고원의 밤바람이 차창을 흔든다

(사람들은 모다 피곤히 잠들었는데)

이 적막한 방문자여! 문 두드리지 마라

의지할 곳 없는 우리의 마음은 지금 울고 있다

 

그러나 기관차는 야음(夜音)을 뚫고 나가면서

‘돌진! 돌진! 돌진!’ 소리를 질른다

아아 털끝만치라도 의롭게 할 일 있느냐

아까울 것 없는 이 한 목숨 바칠 데가 있느냐

 

피로한 백성의 몸 우에

무겁게 나려 덥힌 이 지리한 밤아

언제나 새이랴나 언제나 걷히랴나

아아 언제나 이 괴로움에서 깨워 일으키랴느냐

(ꡔ조선지광ꡕ, 1927.9)

 

* 비닭이 : 비둘기.

* 해조 : 아름다운 가락.

 

 

<감상의 길잡이>

김여수(金麗水)라는 이름으로도 많은 시를 발표한 박팔양은 임화를 중심으로 한 단편 서사시 계열과는 달 리 서정성 짙은 프롤레타리아 시를 주로 창작하였다. 이러한 서정성은 일찌기 ꡔ요람ꡕ을 만들기도 하였던 시적 감수성이기도 한데, 이러한 성격에서 그는 초기 계급 문단에 관여하기도 하고 1930년대 중반 ‘구인회’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 시는 추방당하는 유랑민의 비애를 거친 호흡과 직설적인 어법으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각 연의 영탄적 표현에서 보듯 박팔양의 젊은 시절의 낭만적 어조가 짙게 배어 있다. 이 시에는, ‘숨맥힐 듯 가슴 터질 듯’한 ‘추방되는 백성’의 회한과 ‘무겁게 나려 덥힌 지리한’ 국경의 밤의 이미지가 ‘괴물’ 같은 기차의 이미지와 연관되어 식민지 현실의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주된 시어도 ‘추방’․‘고달픈’․‘헐레벌덕어리며’․‘달어난다’․‘답답한’․‘숨맥힐 듯’․‘가슴 터질 듯’․‘캄캄하고나’․‘괴로운’․‘적막한’․‘피로한’․‘무겁게’․‘나려 덥힌’ 등에서 보듯 피압박의 이미지가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어휘들이 대부분이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추방되는 백성’으로, 그는 ‘백성’이라는 시어에서 보듯 나 혼자만이 아닌 식민지 백성 전체를 대유한다. 그리하여 2연의 1행 ‘내 답답한 마음’은 4연 마지막 행의 ‘의지할 곳 없는 우리의 마음’으로 밤차를 타고 있는 모든 승객―모든 유랑객의 마음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비닭이집’ 같은 오붓한 고향을 등지고 ‘도망꾼’처럼 ‘솔밭길을 빠지듯’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나선 신세이다. 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밤차에 몸을 실어 낯선 북방의 산하를 헤맬 것이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을 따스하게 맞아 줄 ‘아름답든 꿈’은 없으리란 것을 그들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마음은 단지 ‘숨맥힐 듯 가슴 터질 듯 몹시도 캄캄’할 뿐이다. 모두 피곤히 잠들어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말없이 울고 있을 뿐인데, 차창에는 북국의 거친 바람이 부딪히고, ‘괴물’ 같은 밤차는 이러한 백성들의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그저 ‘돌진’할 뿐이다.

그러나 시적 자아는 이러한 추방된 백성으로 괴로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엇인가 의롭게 할 일, ‘아까울 것 없는 이 한 목숨 바칠 데’를 찾는다. 그것만이 이 괴로움에서 백성들을 깨워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추방의 원인이, ‘고향의 아름답든 꿈’이 사라지고 ‘비닭이집’ 같은 평화로운 고향이 지금은 황폐화된 것에서 보듯, 식민지 현실의 질곡에 있는 한, 시적 자아는 그러한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데에 한 목숨을 바치려 할 것이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서정성 짙은 프롤레타리아 시를 통한 박팔양의 작품 행동인 것이다. 

 

너무도 슬픈 사실-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 박팔양

 

날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녈픈 꽃을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로 아침 비비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 꽃을

무슨 말로 노래하라 하십니까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친구께서도 이미 그 꽃을 보셨으리다

화려한 꽃들이 하나도 피기도 전에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 있는

봄의 선구자 연분홍의 진달래꽃을 보셨으리다.

 

진달래꽃은 봄의 선구자외다

그는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외다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그 엷은 꽃잎은

선구자의 불행한 수난이외다

 

어찌하야 이 나라에 태어난 이 가난한 시인이

이같이도 그 꽃을 붙들고 우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이외다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오라는 봄의 모양을 그 머리속에 그리면서

찬 바람 오고 가는 산허리에서 오히려 웃으며 말할 것이외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 고 ―

(ꡔ학생ꡕ, 1930.4)

 

<감상의 길잡이>

 

우리의 시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시의 제재로 선택되는 것 중의 하나가 꽃이며, 그 중 진달래꽃은 우리 주위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친숙한 꽃이어서 그 동안 많은 시인들에 의해 주로 사랑과 관련된 주제를 취급하는 제재로서 특히 애용되었다. 그 비근한 예로 우리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들 수 있거니와, 위의 박팔양의 작품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진달래꽃’을 그 제재로 취급하고 있는 아주 드문 경우에 해당된다.

이 시의 진달래꽃은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 하로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이다. 다른 꽃들처럼 피었다가 지면 열매를 맺는 결실도 없이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일홍’과 같은 화려함이나 ‘국화’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도 없어서 노래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 꽃이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어서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이다.

그러나 선구자는 불행하다. 자신의 희생이 가져오는 화려한 결실을 직접 맛보지도 못하며 스러진다. 시적 화자는 따라서 그 동안 희생된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에 진달래꽃을 부여잡고 운다. 시제에서 보듯 시적 화자는 ‘진달래꽃’을 ‘봄의 선구자’로서 인식하지만, 그것은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서는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희생자로서의 이미지를 지닌다. 그러나 정작 진달래꽃 자신은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고.

결국 시인은 ‘진달래꽃’에 의탁하여 그냥 ‘오래오래’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적 삶을 비판하고, 순간에 스러지더라도 뚜렷이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선구자로서의 삶은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박팔양이 선택한 삶의 방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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