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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령감은?
2015년 10월 07일 20시 21분  조회:4164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인에게 영감은 무엇인가 

                                 / 이창배


흔히 시인에겐 영감의 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전광석화 같은 '신의 계시'가 내려 시인은 신들린 무당처럼 영감의 힘으로 자동적으로 시를 써내려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시는 결코 그렇게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할 생각인데, 그 얘기는 뒤로 미루고 우선, 그 영감에 대해 말해보자. 영감이란 말은 'inspiration'을 옮긴 말이지만 원어 이상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본래 서구문학에서 희랍 로마시대 이래, 시인은 시작 과정에서 자력이 아닌 초월자의 힘으로 시의 소재나 언어, 리듬 같은 것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호머나 버질 같은 서사시인들은 그들의 서사시의 첫머리에서 반드시 뮤즈신에게 영감을 기원하는 시구를 읊는다. 이것이 서사시의 기법상의 관행이 되어, 비근한 예로 고전 서사시의 전통을 잇는 존 밀튼은 그의 불후의 명작 [실락원]의 첫머리에서 "하늘의 뮤즈여...... 청하노니 나의 모험스런 노래를 도우시라"고 신의 영감을 간구한다. 
시가 신의 입김으로 쓰여진다는 생각은 17세기, 18세기 초 근대과학문명의 대두로 인간들의 의식구조가 달라질 때까지 이어졌고, 그후 낭만주의 문학 시대에 이르러서는 시인의 영감의 원천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샘솟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어?. 그러나 시의 원천에 대한 생각이 외부로부터 내부로 바뀌고 난 후에도 시인의 '시심'에 대한 신비스런 생각은 여전히 이어져 오늘날에도 약간 그 흔적이 남아 있었서 시인은 이슬을 먹고 사는 툭스한 사람으로, 그리고 시인의 체험은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것은 비단 시인뿐 아니라 예술가 전반에 해당하는 말이어서 예술가들을 현실세계에서 유리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그들의 기이한 행동거지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시인 卞榮魯는 자서전 [酩酊 40년]에서 술에 취해 살아온 평생의 기행, 기담을 고백했고, 중국의 시성 이태백 또한 술과 더불어 살면서 수많은 명시를 남겼다. 기타 동서고금 예술가들에 얽힌 기담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는 영감이니 신비니 초월 따위를 결코 인정히 않는 의식 속에서 살아온 지 오래다. 과학의 영원한 프론티어로 생각되던 인간 마음의 세계도 심리학의 발달로 그 신비가 허물어졌다. 일찍이 1920년대에 이미 I.A.리차즈는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심리학으로 다룰 수 없는 영역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인이 체험하는 세계가 우리의 일상체험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은 물론, 미적 체험이라는 것도 망상이라고 주장했다. 
리차즈에 의하여 시인이 겪는 체험은 우리가 조반을 먹고 신문을 읽는 일상체험과 똑같은 레벨로 격하된 셈이다. 그러면 무엇이 다른가. 리차즈는 말하기를 시인이 다루는 체험은 '일상적인 경험이 한층 전개된 것이고 한층 섬세하게 조직된 것일뿐'이라는 것이다. 리차즈가 말하는 체험의 '전개'와 '섬세화'는 정신력의 집중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집중력이야말로 천재의 비밀이다. 한 가지 시상이나 이미지를 붙들고 더욱 깊이 파고들면서 그 생각을 관찰하고 전개시키고 섬세하게 조직해나가는 힘은 시인 자신의 몫이다. 폴 발레리는 '주어진 1행'은 신이나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고, 나머지는 그가 자기 힘으로 발견한다고 말한 일이 있다. 
영국시인 스티븐 스펜서가 [작시법]이란 글 속에서 소개하는 바에 의하면 천재 음악가 베토벤은 주제가 되는 악상의 단편을 옆에 있는 노트에 적어두고 거기에 매달려 여러 해에 걸쳐 그것을 전개시켰다고 한다. 처음 그가 적어 놓은 악상은 아주 미숙하여 학자들은 이런 것을 가지고 어떻게 그런 기적적인 결과로 발전시켰는가 하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모차르트는 교향곡이나 사중주나 심지어는 오페라의 장면을 여행 중에, 혹은 급한 용무를 보면서 순전히 자기 머리 속에서 생각해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그가 평생 음악에 몰두하고 그 속에서 갈등, 고민한 수많은 시간이 있었기에 하나의 악상을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스펜더는 자신의 체험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는 어느 때 어떤 생활의 구체적 장면에서 한 마디의 단어나 몇 마디의 어구, 문장 같은 형식으로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노트에 적어 놓는다. 그것을 그는 '상상적 사고방식'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그 착상은 상상적 사고를 전개시킬 수잇는 단서여서 그것을 산문으로 설명하기는 쉽지만, 막연한 추상에 불과한 이러한 사상을 이미지로써 구상화하기 위하여서는 오랜 인내와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영감'으로 떠오르는 한 마디 단어나 문장은 별로 매력이 없고, 그것이 과잉 상태에 이르면 시를 쓰지도 못하고 생각만으로 그치고 만다고 한다. 써보려고 손을 대는 것 중에서도 일곱, 여덟은 완성을 못 보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택하는 방법은 되도록 많은 사상을 아무리 엉터리 형식으로라도 노트에 적어둔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서재의 선반에는 지난 15년 동안에 모아진 그런 노트가 20권은 족히 쌓여 있고, 그중에서 시를 쓸 때 어떤 것을 이용하고서 나머지는 버려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펜더의 경우 어쩌다 떠오르는 착상(영감)이 시로 살아나는 경우는 드물고, 시로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의 노트에 산적한 많은 경험의 스케치 중에서 이것과 저것이 결합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겪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 변형 과정을 엘리엇은 화학적 변화라고 했는데, 이 비유적 표현은 매우 설득력 있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엘리엇은 그 유명한 '몰개성 시론'에서 시인의 마음 속에 쌓이는 수많은 생각과 체험의 조각들이 시인의 '제작과정'중에 새로운 형태로 모양을 갖추어 나타난다고 하였고, 그 나타난 작품 속의 체험은 시인 자신의 체험과는 다른 '만들어진 체험' 즉, 시인 자신의 개성에서 벗어난 '몰개성'의 '예술적 체험'이라는 것이다. 즉 그것은 화학적 변화를 통한 새로운 체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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