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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열차를 타고...임진강역에서 내리고...자유의 다리를 건너 도라산역에 도착했다.
황량한 바람이 불고 철길은 여기서 막혔다. 저 하늘 우리 땅을 쳐다보며 참 답답하고 서글펐다.
'휴전선'- 도대체 뭐란 말인가?
박봉우 시인의 <휴전선> 시비 앞에서 오래 서있다.
신영복 님의 글씨를 오래 음미하다.
신영복글씨체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이런 시간에 이런 시(詩)가 있고
이런 글씨가 있어서 그나마 얼마나 다행이 아닌가...
휴전선
박봉우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高句麗) 같은 정신도
신라(新羅)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意味)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廣場)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休息)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 같은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어야 하는가
아무런 죄(罪)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감상의 길잡이] 박봉우의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육성(肉聲)의 시'이다. 그의 시는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불의와 비리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이른바 참여시의 특성을 갖는다. 50년대의 전쟁과 폐허로부터 60년대의 민주 혁명과 군사 독재, 70년대의 속 빈 강정 같은 풍요 속에서 느끼는 정신적 빈곤감, 80년대의 민주화 열망 등 광복 이후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달려온 우리 사회를 온몸으로 맞닥뜨리고 시를 쓴 시인이다.
이 시는 1956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얼마 안 되는 당시 상황에 대단히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민족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 날을 갈망하는 시인의 절규가 완곡한 산문 율조의 형식으로 절제되어 나타나 있다.
화자는 1·5연에서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155마일 휴전선을 마주하고 있는 민족의 분단 상황을 이상할 만큼 담담한 어조로 제시하고 있다. 화자는, 휴전선이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꽃'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꽃'은 실제의 꽃이라기보다는 전쟁은 일시 멈추었지만, 더욱 깊어진 증오심으로 대치해 있는 분단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요런 자세'라는 구절에서 '요런'은 '겨우 이것 밖에는 안되는'의 의미로, 일시 포성이 멈추기만 했을 뿐, 평화가 찾아온 것이 아닌 분단 상황을 비아냥거리는 화자의 심리가 내재해 있다.
2연에서 화자는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의 휴전선의 모습을 통하여 팽팽한 긴장감으로 대립하고 있는 남과 북의 현실을 제시하고 있다. 만주를 호령했던 '고구려 같은 정신'이나 삼국을 통일한 '신라 같은 이야기'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오늘날의 민족 상황을 비판하는 한편, 지금은 비록 남과 북이 허울좋은 이데올로기로 분단되어 있더라도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라며 통일의 당위성을 역설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이냐며 하루빨리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민족의 큰 소망으로 발전한다.
3연에서는 분단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분단은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이며, '정맥'이 끊어진 신체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화자는 분단 상황이 계속되면 될수록 민족사는 더욱 '야위어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며 절망하고 있다.
4연에서 화자는 '독사의 혀 같은 징그러운'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함으로써 동족 상잔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모진 겨우살이'와 같았던 6·25의 비극적 체험을 겪은 바 있는 화자는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이 바람에 쓰러지는 것 같은 전쟁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며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라고 외친다. 아무리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장식된 전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죄없는 백성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정치 지도자들의 허황된 정치 논리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참여시
▷ 어조 : 격정적, 통한적, 현실 고발적
▷ 표현 : 의문사의 종결 → 안타까움의 심정을 영탄적으로 표현
▷ 제재 : 전쟁으로 인한 슬픔
▷ 주제 : 분단의 비극과 그 극복의지
▷ 출전 : <휴전선(1957)>
○ 구성
▷ 1연 : 믿음 없는 대치 상황
▷ 2연 : 불안한 평화의 남과 북
▷ 3연 : 반목과 질시의 세태 비판
▷ 4연 : 멀어지는 관계
▷ 5연 : 전운 상존의 비극성
○ 시구 풀이
▷ 산(1연) : 국토의 대유
▷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1연) : 국토 분단의 적대적 상황, 불안한 현실
▷ 얼굴(1연) : 우리 민족의 상징
▷ 꽃(1연) : 일시적 평화 상태, 불안전한 상황의 한시적 삶
▷ 유혈(流血)(3연) : 전쟁의 대유
▷ 광장(3연) : 삶의 공간
▷ 정맥은 끊어진 채(3연) : 남북이 분단되어 단절된 채
▷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4연) : 전운(戰雲)의 상징어
▷ 모진 겨우살이(4연) : 참혹한 전쟁
▷ 요런 자세(5연) : 휴전으로 어정쩡한 평화가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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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역에 있는 박봉우의 <휴전선> 시비(詩碑)에 대해서 시비를 좀 걸어야겠다. 남북분단의 현장 임진각을 코앞에 둔 상징적 장소에 분단의 아픔과 처절한 극복의 염원을 노래한 한국시문학사의 대표작 '휴전선' 詩碑를 세운 건 정말 참 잘한 일이다. 詩도 詩이지만 신영복 선생의 글씨와 함께 태극 지향의 둥근 조형 또한 맘에 들고 적절하다.
그런데 문제는, 시비가 서 있는 자리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임진강역의 옆면 한 구석에 여러 방치물들과 함께 버려진 것처럼 쓸쓸하기 때문이다.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뿐더러 주변이 지저분하여 마치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조차 든다.
임진각이나 '자유의 다리' 주변, 평화누리공원 등 많은 사람들이 눈여겨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자리는 얼마든지 있다. 그게 어렵다면 역사 앞이나 최소한 산책길의 나무 아래라도 괜찮을 것이다. 새 자리를 찾아 옮겨야 한다. 시의 한 구절처럼 '요런 자세로 ....' 이렇게 서 있어서야 쓰겠는가. 2014년 1월 20일 눈 덮인 아픔의 현장에서 박봉우의 '휴전선'은 또다른 아픔을 주었다.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치유와 포용이다.
휴전선
박봉우(1934∼1990)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상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1956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 당선작으로, 당시 시인들이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를 천착하거나 현실과 유리된 자연이나 내면세계를 노래할 때, 민족 분단 현실에 주목한 작품으로 민족문학의 밑거름이 되고 '분단 극복 문학' 또는 '통일문학'의 가능성을 선구적으로 보여 준 작품이다.
박봉우는 '휴전선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평가는 분단 문제나 통일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이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임을 말해 준다. 당시 냉전 이데올로기의 대립 상황 속에서도 한쪽 이데올로기에 편향되지 않고, 분단 문제를 고도의 시적 감각으로 형상화해 낸 박봉우의 이러한 선지적 인식은, 당시로서는 그리고 지금의 평가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전쟁의 비극적 상황을 묘사하거나 전쟁의 비참함을 고발한 1950년대 시와는 차별성을 띠고 있다는 것, 분단 문제를 시적 상징 속에 고도로 매개화했다는 것, '분단'이 우리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로 제시될 것임을 드러낸 것 등이 박봉우의 시가 갖는 중요한 의미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6.25의 참상과 휴전, 분단의 비극적 상황을 실감나게 하는 현실 고발적인 시다. 60년대 반공 이데올로기의 열악함 속에서도 시인의 강인한 의지를 표출하여, 민족의 대화와 화해만이 공존의 길이라는 예언자적이고 선지자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시대적인 억압을 뛰어넘으려는 시인의 용기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미래를 선취한 시인의 자유롭고 활달한 상상력이다. 이 시의 생명력은 바로 현재적 가치를 그대로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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