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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광복以後 시: 김현승 - 가을의 기도
2015년 12월 17일 22시 26분  조회:3962  추천:0  작성자: 죽림


//김현승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3연이 각각 내용이 달리 하면서도 하나의 통일된 주제를 형성하였다. 제1연에서 '낙엽들이 지는 때'는 생의 종말을 뜻한다. 그 종말 앞에서 우리는 모든 가식을 다 벗어던지고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제2연의 '오직 한 사람'은 다른 의견도 있지만, '신(神)' 또는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제3연에는 이 시의 시상이 집중되어 있다. '굽이치는 바다'는 화자의 인생 행로인 것이다. 희로애락의 삶의 현장, 험난한 세파를 거쳐 그가 새로이 들어선 곳이 '백합의 골짜기'다. '백합'은 성서에서도 순결한 신앙 또는 신앙인으로 자주 비유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환희의 세계에 다다른 상태가 '백합의 골짜기'다. 그는 이곳에 그냥 안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최후에 다다라 더는 나아갈 수 없는 '마른 나뭇가지' 위에 자리잡고 있다.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는 시적 화자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절대 고독의 경지, 고절한 단독자의 실존 심상으로 화자의 고독한 영혼의 모습이다.
이 시에서 가을은 내면의 충실을 기하는 시기로,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신과의 만남을 가지는 계기로 다루어져 있다. 시인 자신도 단순한 서정 외에 좀더 깊은 생의 가치를 추구하고 싶어 이 시를 썼다고 한다.
=======================================


 

 

김현승(金顯承,1913년 ~ 1975년)-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다형(茶兄). 평양 출생. 기독교 장로교목사인 아버지 창국(昶國)과 어머니 양응도(梁應道)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목회지(牧會地)를 따라 제주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7세 되던 해에 전라남도 광주로 이주하여 기독교계통의 숭일학교(崇一學校)와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숭실전문학교 문과 3년을 수료하였다.

그 뒤 모교인 숭일학교 교사(1936), 조선대학교 교수(1951∼1959), 숭전대학 교수(1960∼1975),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1970) 등을 역임하였다. 문단활동은 숭실전문학교 재학 때 장시(長詩) <쓸쓸한 겨울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梁柱東)의 추천으로 ≪동아일보≫(1934)에 게재되면서부터 시작된 이후, 낭만적 장시 <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읍니다>(1934)·<새벽 교실(敎室)> 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그 뒤 1953년부터 광주에서 계간지 ≪신문학 新文學≫을 6호까지 간행하였으며, 이때의 시로 <내가 나의 모국어(母國語)로 시(詩)를 쓰면>(1952)이 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정신과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내용을 시로 형상화하여 독특한 시세계를 이루었다. 제1시집 ≪김현승시초 金顯承詩抄≫(1957)와 제2시집 ≪옹호자(擁護者)의 노래≫(1963)에 나타난 전반기의 시적 경향은 주로 자연에 대한 주관적 서정과 감각적 인상을 노래하였으며, 점차 사회정의에 대한 윤리적 관심과 도덕적 열정을 표현하였다.

그가 추구하는 이미지들의 특징은 가을의 이미지로 많이 나타나는데, 덧없이 사라지는 비본질적이고 지상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꽃잎·낙엽·재의 이미지와, 본질적이며 천상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뿌리·보석·열매의 단단한 물체의 이미지의 이원적 대립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표현한 시적 방법의 특징은 절제된 언어를 통하여 추상적 관념을 사물화(事物化)하거나, 구체적 사물을 관념화하는 조소성(彫塑性)과 명징성(明澄性)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후기 시세계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제3시집 ≪견고(堅固)한 고독≫(1968)과 제4시집 ≪절대(絶對)고독≫(1970)의 시세계는 신에 대한 회의와 인간적 고독을 시적 주제로서 줄기차게 추구함을 보여준다.

1974년에는 ≪김현승전시집 金顯承全詩集≫을 펴냈고, 유시집(遺詩集) ≪마지막 지상(地上)에서≫(1977), 산문집 ≪고독(孤獨)과 시(詩)≫(1977)가 간행되었다. 문학개설서로는 ≪한국현대시해설≫(1972)이 있다. 1955년 제1회전라남도문화상, 1973년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다. 광주 무등산도립공원에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가을의 기도/김현승 시 정영택 곡 이성진 외 실내악 연주

 

시 '눈물' 전문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 1977년 6월26일 세워진 이 시비는 시인의 1주기에 세우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내고향이 낳은 시인의 시비는 우리가 세우자는 전남 문협의 결의로 '김현승시비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한 결과 쉽게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비의 비신은 높이 360cm,넓이 140cm인데, 이 비신에 높이 240cm,넓이 120cm의 시문석을 낀 '십자형'시비로 무게가 10톤이나 된다. 돌은 전북 황등산 화강석으로 설계는 박춘상이 했고 글씨는 장전 하남호가 썼다.

 

1913년 4월 4일 목사인 김창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다형은 일곱살때인 1919년 광주로 이사, 생애의 대부분을 광주에서 보냈다. 문학소년이었던 그는 1932년 숭실전문학교에 입학, 본격적인 시작에 몰두하던 1934년 양주동교수에 의해 동아일보에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그의 초기시는 자연에 대한 예찬과 동경이 짙게 풍기는 민족적 로멘티시즘 혹은 민족적 센티멘탈리즘이었다. 이에 대해 시인은 '전자는 민족의 이상과 희망을 위한 20대의 꿈이고, 후자는 나라잃은 한이 맺힌 민족의 환경'이라 했다. 자연에서 소재를 얻었으되 자연을 그냥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미에 풍자와 해학과 기지가 있는 20년대에선 다소 색다른 시를 그는 썼다.

 

해방이 된 1946년 광주숭실학교 교감에 취임하면서 약10년동안의 침묵을 깨고 작품활동을 다시 시작한 다형은 초기시에서 볼수 없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하였다. 그 대표적인 시가 바로 '눈물'이다. 이 시는 그가 사랑하던 어린 아들을 잃고 그 슬픔을 기독교적 신앙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심화된 생명의 순결성이 엿보인다.

 

 이 작품에 대해 시인은 '외향적인 웃음보다는 내향적인 눈물에서 인생의 미와 가치를 찾으려 한다'고 덧붙혔다. 이 시기에 인구에 회자되는 또 하나의 대표시가 바로 '가을의 기도'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구비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나뭇가지 다다른 까마귀같이.

 

시집 <옹호자의 노래>를 중심으로 한 중기시의 특징은 가을과 기도, 눈물과 사랑, 그리고 신과 고독의 율조가 짙게 배어 있다. 그의 이러한 고독의 율조는 시집 <견고한 고독>(1968), <절대고독>(1970)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룬다.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로 시작하는 시 '절대고독'은 그의 말기 시의 본향이 되었다.

 

 1955년 제1회 전라남도 문화상과 1973년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던 다형은 1975년 4월 10일 숭전대학교 채플시간에 기도중 지병인 고혈압으로 졸도, 다음날 6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권 갑하 시인)

 
 
 

"투명하고 정직한 시인 - 김수영"에 대하여

.

"폭탄과 교훈과 시사를 한국시단에 던지던 김수영은 너무도 일찍 가고 말았다.

그는 과게에 만족하는 시인이 아니었다.언제나 앞을 내다보고 오늘의 정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자기만족을 모르는 시인이었다.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무모한 시인이라 불리었고 안일을 일삼는 사람들에게는 자못 전투적이라는 자책을 받았고, 소심한 사람들로부터는 심지어 위험하다고까지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는 자기의 소신대로 오늘의 한국시에 문제를 던지고 그것들의 해결을 위하여

가장 과감한 시적인 행동을 보여주던 투명하고 정직한 시인이었다."
                                                                            (김현승)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무등산 자락에 있는

다형 김현승님의 시비...

님은 갔어도 시는 영원하리라...
 

김현승  <신앙과 고독>

 

Ⅰ. 머리말

 시인 김현승은 기독교 문인으로서의 생애(1913~1975)를 이루어 간 사람이다. 그의 아호는 다형(茶兄)이다. 그는 중학생 시절인 1927년부터 40년간의 시작 활동을 통해 270편의 시를 6권의 책에 남겼다.

 김현승 시인은 1913년 전북 익산 출신인 아버지 김창국과 황해도 은율 사람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양응도 사이의 차남으로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숭실중학과 당시의 유일한 신학교엿던 평양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1917년 제주도의 성내교회로 첫 부임을 하였다. 그곳에서 3년을 지낸 뒤 김현승이 7세때 부친의 전근에 따라 광주로 오게 되었다. 광주 승일학교 초등과를 졸업하고 평양의 숭실중학에 진학하기까지 약 10년간을 광주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가정환경 때문에 서양 선교사와의 접촉이 많았고 기독교 문화속에서 성장함으로써 경건한 종교 의식과 생활 분위기는 일생을 통해 추구했던 인간과 종교의 영원한 신비에 대해서 써나간 그의 시적 소재와 주제 면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장 배경으로 인해 기독교적인 삶의 방식이 깊에 뿌리 박힌 그의 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시에 나타난 정신사적 맥락을 살핌에 있어 <양심>과 <고독>으로 대표되는 인간적 사고의 삶, <참회>와 <신에 대한 찬미>로 대표되는 종교적 사고의 삶과의 관계라 할 것이다. 왜나하면 그의 시와 삶속에 나타난 이 두가지 요소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의 정신사적 면모를 파악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김현승의 일생을 통한 시작을 인간중심의 세계관과 신 중심의 세계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그 관계에 따른 시인의 삶과 시정신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기독교가 그의 삶에 끼친 전반적인 영향을 알아보려 한다.

 

Ⅱ. 김현승 문학의 시기별 분류

제 1기 : 시대적 불행에 대한 인식을 민족적 센티멘털리즘으로 표현 (1934~1945)

 “나는 그 시절의 시풍은 나 자신이 생각할 때 민족적 로맨티시즘이 아니면 민족적 센티멘탈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중략)…그리고 그 무렵 나의 시에는 자연미에 대한 예찬과 동경이 짙게 풍기고 있었다.…(중략)…불행한 현실과 고초(苦楚)의 현실에 처한 시인들에게 저들의 국토에서 자유로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아무도 거기서는 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자연뿐이었다.” -굽이쳐가는 물굽이같이

 문단에 데뷔하여 해방 전까지 발표된 시는 18편이며, 이 중 16편이 『김현승시전집』중『새벽 고독』이라는 시집 이름으로 합본하여 수록되었으나 2편은 어느 시집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때의 시풍은 로맨티시즘과 민족적 센티멘탈리즘으로서 낭만적인 서정을 구가하였다. 이러한 경향을 띄게 된 이면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하에 있었던 우리의 민족적 울분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며, 젊은 혈기에도 맞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야기 하고 있다.1) 당시의 시인들이 노래하는 자연은 두가지 방향으로 설정될 수 있다. 한가지는 자연에 안주한 도피주의적 경향이며, 또 한가지는 자연을 상대로 하되 기지, 풍자, 현실에 대한 불만을 상징으로 표현하는 경향이었는데, 김현승은 후자에 속하는 시인으로 볼 수 있다.

제 2기 : 인간 내면 세계에 대한 성찰 (1934~1960년대 초)

 "나는 지금까지 내가 등한히 하였던 나의 인간의 내면의 세계에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너무도 外界的인 자연에만 치우친 나머지 인간의 내면적인 자연은 몰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으로, 외계로부터 내면의 세계로 관심을 돌렸다“ -굽이쳐가는 물굽이같이

 생존의 문제로 인해 10여년간 시작 활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김현승은 새로운 고민에 봉착하게 되었다. 조국이 광복된 현실에서 시의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이었다. 1930년대의 로맨티시즘이나 민족적 센티멘탈리즘은 이미 그 막을 내린 후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그의 생활속 깊이 뿌리박힌 기독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경건한 기도와 신앙심을 노래하고 인간의 내변적인 본질을 추구, 생명과 희망을 노래하였다. 또 사회 정의와 민족애의 시를 강렬하게 토로하기도 하였다.2)

 

제 3기 : 신보다는 인간에 의한 인간적 삶의 본질을 추구 (1960년대 중기~1972)

 “정신상의 문제로는 나는 인간으로서 새로운 고독에 직면해야 하였다. 이것은 앞서 말한 사회적인 이유로서의 고독과도 그 성질은 다르다. 그것은 한마디로 신을 잃은 고독이다. 내가 지금까지 의지해 왔던 거대한 믿음이 무너졌을때에 허공에서 느끼는 고독이었다.…(중략)…나의 고독은 구원에 이르는 고독이 아니라, 구월을 잃어버리는, 구원을 포기하는 고독이다. 수단으로서의 고독이 아니라 나의 고독은 순수한 고독 자체일 뿐이다.” -나의 문학백서

 『견고한 고독』『절대 고독』의 두 시집이 간행되었던 시기다. 제 1기와 제 2기에서는 신앙을 전제하고 시작활동을 했으나 제 3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신앙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고독의 세계로 가라앉게 되며 이러한 고독의 추구 결과 견고한 것들에 대한 지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제 2기의 시에서부터 복선을 드러내고 있는데 신성과는 결부된 자연과 양심의 견고함을 바탕으로 사회정의를 노래하던 그의 시에는 이미 신성 보다는 인간적 삶의 중요성이 더욱 강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인간 본질의 문제에 대한 시적 형상화 작업은 근본적으로 유일신에 대한 부정과 신앙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며, 고독에로의 방향 전환으로 나타났다.

 

 제 4기 : 인간적 삶의 한계와 허무를 깨닫고 오로지 절대자인 신에게로의 감사와 참회의 기도를 시로 형상화 (1973~1975)

 “그러나 내가 쓰러지고 나서는 나의 지대한 관심이 매우 달라져 버렸다. 지금 나의 애착과 신념은 결코 시에 있지 않다. 따라서 시에 대한 야심이나 욕심이 그 전과는 매우 달라졌다. 지금의 나의 심경은 시를 잃더라고 나의 기독교적 구원의 욕망과 신념은 결단코 놓칠 수 없고 변할 수 없다.” -나의 생애와 나의 확신

 김현승이 고혈압으로 쓰러져 타계하기까지 2,3 년의 짧은 기간이 된다. 그러나 그는 이 시기에 대해 쓰러지기 이전의 생애는 양적으로 거의 나의 일생에 해당하는 세월이었고, 쓰러진 후 지금까지의 생애는 2, 3년에 지나지 않으나 질적으로 나의 두 개의 생애는 맞먹는다고 할 수 있다고 술회하고 있다.3) 제 3기에서 신을 상실하고 인간의 보편적 본질이며 존엄성의 이념인 자유를 가지고자 하는 순수의지로서의 고독을 탐구하였으나 제 4기에 와서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신에게 귀의함을 보여준다. 

 

Ⅲ. 종교 - 김현승 문학의 전반적 주제

 “기본적으로 내 시에 아는 듯 모르는 듯 세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기독교의 성경일 것이다.…(중략)…예수의 말은 모두가 구체적이며 시적이다. 그의 행동도 그렇다. 그의 온 생활 자체가 시다. 나는 사복음을 읽으면 예수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시를 읽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고결하고 인정많고 고독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할 수가 있을까. 나는 이 예수의 언행을 어려서부터 읽었다. 그러므로 이 훌륭한 시가 내 시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내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것인가.”

 김현승 시인의 삶에서 그의 종교인 기독교를 빼놓고는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그가 잠시 신을 버리고 고독을 갈구 하였다 하지만 그가 추구한 절대적인 고독 마저도 그의 신앙을 더욱 굳히기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Ⅳ. 맺음말

지금까지 다형 김현승 시인의 문학관에 대한 전기적 배경과 그의 시 세계에서 나타난 기독교적인 특성을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의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여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시적 운율을 나타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시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시적 특성을 이루게 하였던 해방 이전까지의 성장 및 작품 활동 배경과 해방 이후의 생에와 작품 활동 배경 그리고 생애의 변천과정에서 나타나는 그의 시의 특성을 살펴봄 으로써 그의 생애가 지니고 있는 삶의 현상과 그의 시 세계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환경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 에게서도 발견해 볼 수 있었고, 앞으로 그 누구의 작품을 읽던간에 그가 살아온 삶의 질곡에 대해서 알아 본 후에야 제대로 그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할수 있으리라 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까마귀의 울음소리보다 못한 나의 시”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대목과 “시를 버릴지언정 나의 구원이신 나의 신앙을 다시금 떠날 수 없다”고 함으로써 누구나 추구해야 할 인간 본연의 절대자로의 귀환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그는 결과적으로 인간 본연의 가치추구의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그의 시를 통하여 올바른 문학적 탐구 정신을 잘 마무리한 시인의 삶을 이룩하였음을 엿 볼 수 있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시 맥락 읽기

1. 시의 화자는 누구인가?

2. 시의 화자가 이야기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3. 시의 화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4. 시에서 화자가 말하는 방식의 특징은 무엇인가?

5. 시의 화자가 대상을 향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6. 시 속에 나오는 ‘가을’은 어떤 특징을 가진 주는 계절인가?

7. 3연의 내용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8. 시의 화자가 대상을 향해 원한 것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시 맥락 생각해 보기

1.
2.
3.
기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소서’라고 문장을 끝내고 있어, 신을 향한 기도를 행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5.
가을에는 기도하게 해 줄 것, 겸허한 존재가 되게 할 것, 한 사람을 택해 사랑하게 할 것, 홀로 있게 할 것 등을 바라고 있다.
6.
낙엽들이 지며, 열매를 맺는 비옥한 느낌을 준다.
7.
한 마리의 까마귀는 굽이치는 바다를 건너고 백합이 가득한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를 만나는 모습을 통해 세월의 격랑을 헤치고 시련을 극복한 다음에 오는 작은 보람, 어쩌면 보잘것 없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그것에 대해서도 신에게 감사를 드리며 소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8.
가을이라는 계절을 내면의 충실함을 위한 시기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다듬으면서 신과의 만남을 차분히 준비하고자 하는 화자의 바람을 담은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자료 1. 김현승 탐구 작가연보

   
 


[김소월 초상]

남풍(南風), 다형(茶兄)
-1913년 광주 출생
-1934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재학중 교지에 투고한 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이 양주동의 추천으로 『동아일보』에 발표
-1937년 숭실전문학교 문과 졸업
-1951년 조선대학교 문리대 교수
-1955년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
-1960년 숭전대학교 문리대 교수
-1973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75년 사망

주요작품:
시집 : 『김현승 시초』(1957), 『옹호자의 노래』(1963), 『견고한 고독』(1968), 『절대 고독』(1970), 『김현승 시전집』(1974), 『마지막 지상에서』(1977), 『김현승의 명시』(1987),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1989)

대표작품:
가을의 기도, 가을, 눈물, 플라타나스, 아버지의 마음

참고사이트:
   
 

자료 2. 작가 생가, 작가 시비

   
 


[김현승 시비: 전남광주 무등산]


[김현승 시비]

 
 


[김현승시집 표지]

   
 

가을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 온다. //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寶石)을 만든다. //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 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눈물

더러는
沃土(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플라타나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오를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음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이 시는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을 맞이하여 마음의 충실함을 갈망하는 기도조의 시이다. 가을은 그 종말을 보면서 사람들이 많은 깨달음을 얻는 계절이기도 하다. 1연에서 ‘낙엽들이 지는 때’는 생의 마지막을 뜻한다. 생의 마지막 앞에서 화자는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되고 있다. 2연에서 ‘오직 한 사람’은 화자가 믿는 신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그 신을 택하고 믿으며 따르겠다는 말로 보인다. 3연에서 ‘굽이치는 바다’는 화자의 인생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다의 굽이치는 모습처럼 많은 인생의 고생을 거친 그가 새로이 들어선 곳이 ‘백합의 골짜기’이다. 하지만 그는 이 ‘백합의 골짜기’에 안주하지 못하고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르게 된다.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는 화자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절대 고독의 경지이며, 화자의 고독한 영혼의 모습이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가을이라는 계절을 배경으로 이 계절을 자신의 내면의 충실함을 위한 시기로 생각하고, 낙엽이 떨어지는 때가 되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다듬으면서 그러한 차분한 마음을 바탕으로 신과의 만남을 가지게 되는 계기로 삼는 화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는 시이다.
 
 
  ※ 김현승은 ‘기도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했을 정도로 기독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독백적인 기도 형식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여 시를 쓰고 있다. 그의 시적 경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아래 글을 읽으며 “-하게 하소서…”식의 어투가 시인의 정서 표현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와 「가을의 기도」를 통해 시인은 어떤 의미를 표현하고 싶었을지를 생각해 보자.
   
 
기도와 시적 언어
   
 
  김현승은 자기를 뒤돌아보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밝히고 있다. 반성과 다짐이라는 독특한 시 세계를 그의 시는 펼쳐 보이고 있다. 이럴 경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시 형식은 어떤 방식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즉 1950년대 남다른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그의 시의 형식적 특징을 살피려는 것이다. 
  우선 그것은 기독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독백적인 기도 형식을 가진 언어를 통하여 시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한 인간이 과거를 극복하고 참된 자아를 각성할 수 있는 단계에 가능한 이런 시 형식은 독백체를 쓰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참된 자아를 각성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미완성이나 부끄러움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양심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게 된다. 이 때 쓰이는 방식이 바로 고백체이다. 
  특히 기독교인이었던 김현승은 자신과 익숙한 기도와 찬송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기도와 찬송은 종교적인 신앙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언어적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기도라는 기독교인의 일상 언어를 통하여 자신의 정신이 자리하고 있는 위상을 밝히고 있다. 이런 점은 다음과 같은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인이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는 두 가지 태도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가진 언어 안에서 시를 선택하는 것과 시를 위하여 언어를 확장하는 일인데, 후자는 적극성을 띠우는 대신 실패하기 쉽고, 전자는 비진취적이면서도 작품으로서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전집』2.
   
 
  이런 방법 중에서 김현승이 선택한 것은, 기교주의나 모더니즘적인 수법의 시에서 보이는 후자보다는 전자인 ‘고전적인 수법’이다. 그 자신 일제 강점기에 시를 쓸 때에는 시대 조류에 편승하여 모더니즘적인 형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독자적인 시 세계를 만드는 단계에서는 이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있다. 자신과 가장 익숙한 언어를 통하여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선택한 익숙한 언어가 기도이며 노래이다. 그의 많은 시가 기도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 
  아울러 언어, 특히 서양 전래의 기도 형식에 어떻게 하면 ‘모국어’를 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는 사상보다는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시는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도 설명하고 있다. 감동의 핵심을 먼저 언어로 붙잡는다. 그리고 그 한 구절을 중심으로 그 감동을 정리하고 확대시켜 한 편의 시를 쓰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시 전체는 외울 수 없어도, 반짝이는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몇몇 시 구절은 오래오래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시는 분명히 언어의 심미적 세계에 의존하는 서정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리고 있는 서정의 세계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형식과 미의식을 표현하고자 했던 모더니즘 시의 언어와도 다르다. 이제 다음 시를 읽으면서, 이런 그의 시적 언어 탐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를 살펴보자.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시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하게 하소서……”라는 어투의 기도 형식을 빌리고 있는 이 시는 그의 전기 시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유나 상징과 같은 시적 기교보다는 종교인에게 일상적 언어인 기도는 소망을 직접 서술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다. 그의 시작의 출발점이 모더니즘의 기교였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언어를 통하여 표현되고 있다. 특히 모국어로 자신을 채워달라는 기도의 내용은 그 자신이 얼마나 언어와 시를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나를 암시해 주고 있다. 
그의 시에는 시적 화자의 정서가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기도 형식은 비유가 아니고 직접적인 기원인 것처럼 말이다. 형식상 기도 형식을 빌리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시에 표현된 ‘기도하고, 채우고, 사랑하고, 택하고, 가꾸고, 있고’ 등과 같은 동사들은 ‘기도하게, 채우소서, 사랑하게, 택하게, 가꾸게, 있게’의 형태를 띠게 된다. 자신의 바람을 신에게 보내는 기도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시에서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이미지는 ‘낙엽이 지는 때’이며,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비옥한 시간’이다. 자연의 계절인 가을처럼 인생에서 불혹(不惑)을 넘은 나이는 이런 나이다. 특히 소박하고 겸허하게 살고자 했던 기독교적 사랑의 실천자인 김현승에게는 더욱 그랬다. 기독교적인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백합의 골짜기’, ‘까마귀’와 같은 형상들이 이 시에 구사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형상의 의미 역시 그렇게 어려운 설명이 필요한 시어들은 아니다. 
우리 시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시적 전통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김현승의 시는 새롭게 출발하고 있다. 순수 서정시의 지나친 시어의 조탁이나 모더니즘의 난해한 비유, 이미지, 참여시의 어중간한 시적 언어와는 한결 다른 모습이다. 그의 시는 화려한 기교나 수사보다는 평범한 일상 언어를 시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1950년대 다른 시인들과도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또한 이 시는 자신의 현재, 즉 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의 소중한 열매를 맺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게 한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세월의 격랑을 헤치고 시련을 극복한 다음에 오는 작은 보람, 어쩌면 그것은 보잘 것 없는 것일 수 있다. 한 마리의 까마귀는 굽이치는 바다를 건너고 백합이 만발한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김현승은 이것을 소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서정주가 온갖 시련을 겪고 피어나는 국화에서 모진 세파에 시달리다가 돌아온 성숙한 누나의 모습을 만났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그가 기도와 노래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은 전기 시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 이런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기도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시교육론Ⅱ』, 윤여탁, 서울대학교출판부:서울, 1999.
   
 
  ※ ‘기도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 김현승은 8·15 해방, 6·25, 4·19라는 격동의 현대사를 겪으며 시를 발표해 왔다. 부정과 불의가 난무한 현실과 양심과 도덕이라는 내면 간의 갈등 사이에서 그는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써 왔는지, 그리고 비윤리적 현실 앞에서 신에게 순수의 양심과 의지를 지키고 회복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것은 어떤 의미와 한계가 있을지에 대해 아래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보자.

  김현승은 8·15 해방, 6·25, 4·19를 거치는 동안 발생한 사회부조리와 혼란 속에서 도덕적·윤리적인 문제를 지키기 위해 양심으로 맞서는 의지를 보여준다.

  나는 기독교 신교의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배웠고, 현세보다 내세가 더 소중함을 배웠다. 신이 언제나 인간의 행동을 내려다보고 인간은 그 감시 아래서 언제나 신앙과 양심과 도덕을 지켜야 한다고 꾸준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나라는 인간의 본질은 아마도 비교적 단순하고 고지식한 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나이가 먹은 뒤에도 이 신앙과 양심과 도덕을 곧이곧대로 믿고 지키려고 노력하여 왔다. 
        <중략>
  그러나, 인간들의 실제적인 현실은 양심과는 너무도 먼 거리에서 양심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살고 있다. 이른바 선험적인 원리와 경험적인 실전과는 너무도 차이가 심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정치다. 나는 불행히도 선진국에선 살아보지 못하였지만 후진국의 정치는 더욱 양심과는 멀다.

  위 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어려서부터 신앙과 양심, 그리고 도덕을 배웠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부정과 불의가 난무하여 양심과 도덕과는 거리가 멀자 그는 종교와 윤리의식을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오를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 「플라타너스」 전문
 
   
 
  그는 자연을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로 보고 동반자적 실체로 인식한다. 여기에서 그가 기독교 정신의 조화로운 관계에서 신과 관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플라타너스를 ‘너’로 지칭하여 동반자적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플라타너스가 가지고 있는 싱싱한 푸른 잎, 든든한 가지 등이 요인이며 그 나무의 실체는 바로 생명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은 당시의 정치상과 사회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안에서
물과 피로 육체를 이루어 가도,

너의 밝은 은빛은 모나고 분쇄되지 않아

드디어는 무형하리만큼 부드러운

나의 꿈과 사랑과 나의 비밀
살에 박힌 파편처럼 쉬지 않고 찌른다.

모든 것은 연소되고 취하여 등불을 향하여도,
너만은 물러나와 호올로 눈물을 맺는 달밤……

너의 차거운 금속성으로
오늘의 무기를 다져가도 좋을,

그것은 가장 동지적이고 격렬한 싸움!

 
 
- 「양심의 금속성」 전문
 
   
 
  1958년에 발표된 이 시에는 먹는 것은 물과 피이고 육체를 이루지만 ‘너’ 즉 ‘양심’만은 항상 은빛으로 빛나고 부서지지 않는 견고성을 지니고 있다고 양심의 가치를 표현해 내고 있다. “무형하리만큼 부드러운” ‘꿈’과 ‘사랑’과 ‘비밀’의 마음에 양심의 가책이 “파편처럼 쉬지 않고” 찌르는 것은 그가 끊임없이 일구어내고 있는 종교적 양심에 의한 자기 성찰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것은 “호올로 눈물”을 흘린다는 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불변의 양심을 ‘금속성’에 비유하여 양심의 가치와 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시에서 그의 무한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넓이와 높이보다
내게 깊이를 주소서
나의 눈물에 해당하는……

산비탈과
먼 집들에 불을 피우시고
가까운 곳에서 나를 배회하게 하소서.

나의 공허를 위하여
오늘은 저 황금빛 열매를 마저 그 자리를
떠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내게 약속하신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기적들 해가 지는 먼 곳으로 따라 보내소서.
지금은 비둘기 대신 저 공중으로 산까마귀들을 바람에 날리소서.
많은 진리들 가운데 위대한 공허를 선택하여
나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소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새 술을 빚어
깊은 지하실에 묻을 시간이 오면,
나는 저녁 종소리와 같이 호올로 물러가
나는 내가 사랑하는 마른 풀의 향기를 마실 것입니다.

 

 
 
- 「가을의 시」전문
 
   
 
  이 시는 구원의 시이다. 경건한 기도로 가난한 이웃들의 아픔에 희망의 빛을 주고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구원을 청한다. 그리고 가을에는 풍성한 결실 뒤에 빈 가지마다 “위대한 공허”를 주어 고독이 진리를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가을의 ‘허공’을 통하여 눈물을 사랑하면서 진리와 빛을 얻고자 하는 깨달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비윤리적 현실 앞에서 신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추구하고 기원하면서 순수의 양심과 의지를 지키고 회복하고자 기도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가을의 기도」전문
 
   
 
  그의 기도는 신앙적 의식에서 비롯된 모국어와 사랑, 그리고 고독이다. 절대의존의 신 앞에서 그는 신과 인간이 보다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반성의 기도를 하면서도 계속 기도하도록 해 달라는 고백과 요청은 신에 대한 자신의 굳은 의지의 발산인 것이다.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에서 볼 수 있는 고독의 요청은 인간의 순수 가치, 즉 경건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영혼의 요청으로, 신에 대한 경건성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신과 현실과의 관계를 끊는 고독이 아니라, 신과의 관계를 더욱 굳게 하기 위한 티끌 하나 없는 순수 기도의 시이며 일종의 영혼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도의 시는 대부분 ‘가을’을 소재로 구체화되고 있다.
 
『한국현대시인연구 하』, 문덕수 외, 푸른사상:서울, 2001.
 
 
  ※ 김현승 시인과의 스승과 제자라는 인연을 추억하고 있는 다음 글을 읽으면서 김현승 시인은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의 시 지도 방식과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 주위 사람들의 김현승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평가 등이 그의 시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자.
   
 
나의 스승 다형(茶兄) 선생
 
- 문병란(시인)
   
 
  우리말 가운데서 가장 고귀하고 존경스러운 말은 ‘어버이’, ‘스승’, ‘임금’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군사부일체’라는 윤리덕목을 내세웠을 것이다. 어버이는 혈연적 관계니까 너무도 당연시되고, 임금은 권력적 최고 기반이니까 거부감의 대상이어서 진정한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혈연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면서 존경과 흠모의 대상으로서 ‘스승상’은 최고의 위치가 아닐까. 
  학문이나 문학이나 모두 그 뿌리가 있고 인맥이 있게 마련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란 있을 수 없다. 서구의 문학사에서도 버질이 있어 단테가 나왔고 단체가 있어 세익스피어, 그가 있어 밀턴이 나왔다고 한다. 위대한 학문이나 문학 작품은 모두 전단계의 스승에 이어서 나오기 마련이다. 
  나는 1959년 10월 ≪현대문학≫이란 문예지 신인 추천제도를 통하여 김현승 시인의 인도를 받아 문단에 첫발을 디뎠다. 조선대학교 재학시절 문과대 국문학과 지도교수였던 김현승 교수님께 시 창작연습 시간에 써서 제출한 작품을 통해서였다. 좀처럼 접근하기 힘들고 깐깐하고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던 그분은 습작기 학생들을 칭찬하지 않았다. “이건 시 비슷할 뿐 시가 아니다.”, “이건 유행가 가사만도 못하다.”고 혹평을 한다는 말을 선배들한테서 들은 바도 있었다. 엄하고 꽤 까다로워 지도받기가 수월하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김현승 시인의 명성을 듣고 그분의 문하생이 되기 위하여 조그만 문재를 믿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저학년인 내겐 접근 기회도 오지 않았다. 그것은 교양과목이나 시론·문예사조론 강의를 듣고서도 짐작이 갔다. 1분만 지각해도 절대로 입실을 허가하지 않았고, 당시 적당한 대학교재가 없던 시절, 그분은 노트나 원고뭉치를 가지고 와서 읽어주며 받아쓰라는 형식의 강의였는데 끝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리면 문장의 도중에도 딱 중단하는 성미였다. 일면 괴팍하고 적당히 얼버무려 넘기거나 타협하지 않는 매우 엄격한 교수로 통했다. 용모도 40대의 후반이셨던 연령에 비해 깡말라 육덕이 전혀 없는 당신의 「자화상」이라는 시에서처럼 ‘사랑이고 원수고 몰아쳐 허허 웃어버리는/비만한 모가지일 수 없는 나’, ‘모질고 사특하진 않으나,/신앙과 이웃들에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의 싯구와 같이 학생들도 엉석부리는 일은커녕 일상적 질문도 수월치 않았다. 
  시골에서 문학 전집에 나오는 괴테나 바이런의 시들을 낭독하고 그 당시 교과서에 등장한 생명파나 청록파 시인들의 시에서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한 서툴기만 한 시학도로서 한없이 우러러뵈는 그분한테서 시재를 인정받기란 사실상 까마득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용기를 내었다. 습작노트에 가득 써놓은 50여 편의 시를 그분에게 바치기로 하였다. 상급 학년이 되기 전 안달이 나서 미리 그분의 인정을 받고 싶어 시도한 나의 노력이었다. 1개월 후, 그것도 내가 자청하여 강평을 원했더니 군데군데 시 비슷한 구절은 있지만 통일성이 모자라고 정말로 시가 된 구절은 두 행뿐이라고 평하였다. 상당한 칭찬을 예감했던 나는 너무도 엄한 혹평에 아찔하였으나 한편 오기가 생겨나 “이 영감을 기어코 굴복시키리라” 이런 뚝심도 생겨났다. 노트를 가져가겠노라고 했더니 다음에 쓴 시와 비교할테니 놔두고 가라고 하셨다. 얼마 후 그보다 많은 습작시를 다시 바쳤음은 물론이다. 당시 당신께서는 현대문학이나 사상계, 신동아 등에 일년에 4편 정도 발표하는 ‘실패작 없는 과작의 시인’이셨으니, 이 ‘다작의 돈키호테 같은 시학도의 다산성’에 어안이 벙벙하였을 것이다. 허나 두 번째 노트의 평을 듣지 못한 채 나는 1957년 8월 학보병으로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에 가서 고달픈 훈련병으로서 병영생활이 시작되었다. 
  병영에서 문안 편지를 올렸더니 두툼한 무게의 답신을 보내주셨다. 위로와 격려, 그리고 나의 시재에 대한 애정어린 다독거림이 들어있었다. 시재를 인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 가혹한 평을 한 것은 더 나은 작품을 쓰라는 격려였다는 것 등 한없이 따뜻한 스승님의 애정이 담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바친 습작노트 중에서 「고별」이라는 시 한편을 당시 지방신문인 ≪전남일보≫ 학생시란에 발표하여 그것을 오려가지고 편지와 동봉해 주셨다. 나는 그때 ‘아, 이것이 스승이구나.’하고 감격의 눈물이 솟구쳤다. 그 덕분에 나는 이미 시인으로 통했고 그 시는 많은 전우들이 돌려가면서 읽고 때묻고 닳아질 정도였으나 제대할 때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최일선에 가서도 시지망생이었던 소대장급인 이서인 중위, 유승국 소위 등과 일과 종료 후 시와 인생을 함께 토론하기도 하였고, 살벌한 군영에서 ‘영원의 여성’이라는 시적 부드러움이 많은 전우들에게 위안의 힘을 발휘하였는지 특별 대접을 받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김현승 은사님의 따뜻한 제자 사랑의 배려가 아니었더라면 나의 시의 싹이 제대로 자랄 수 있었겠는가. 학보병 복무기간 1년 6개월을 마친 후 복학하여 다시 은사님의 문하가 되었다. 스승께서는 퍽 반겨주셨으며 더욱 시작에 정진하라는 격려를 주셨다. 
  1959년 신학기 첫 시간 김현승 지도교수의 시 창작연습 시간이었다. 그분은 칠판에다 ‘가로수’라고 썼다. 당신께서도 잡지의 청탁을 받았으니 이 시간은 같은 제목으로 시를 쓰자고 말씀하셨다. 너무도 놀란 첫 시간, 우리는 모두 원고지를 꺼내놓고 시상을 모아 구상하기 시작했다. 90분 후 나는 두 편의 작품을 마련했다. 한편은 형태미를 실험한 가벼운 시였고, 한편은 병영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감회에서 시상을 이끌어낸 시였다. 
아무튼 그 시간에 쓴 당신의 작품 「가로수」는 사상계에 발표(1959)했고, 나의 시는 현대문학지에 초회 추천작으로 게재(1959)되었다. 학우들이 책방에 가보니 ‘너의 시가 추천작으로 게재되어 있더라’하여 알았지, 은사님께서는 추천했다는 말씀마저도 하지 않았다. 병영에 보내준 신문에 게재한 「고별」에 이어 두 번째 베푼 스승의 커다란 온정이었다. 나도 그 후 40년이다. 교단 생활을 하고 정년퇴임했는데, 이처럼 제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뒤돌아보게 되었다. 
  한번은 학우들이 저 찡그리고 계시는 김현승 교수를 웃게 할 수 있느냐 내기를 걸자고 하였다. 나는 자신 있다고 말하여 성공하였다. 까다롭지만 한번 문을 열어주시면 커피도 사주시고 당시 오두막이라는 경양식집에 가서 오트밀을 곁들여 먹는 비후까스도 사주셨다. 좋은 커피 감정법도 가르쳐 주셨으며 그분은 신동아에 유명 다방의 커피맛에 대하여 쓴 덕분에 커피를 공짜로 마신다 하였다. 커피 감정에 대한 자부심이 시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강했다. “커피는 세 번 마신다. 다방 문 들어서자마다 우선 확 풍기는 커피 내음을 코로 마신다. 두 번째는 종업원이 갖다놓은 커피잔의 까만 빛깔을 눈으로 마신다. 세 번째는 잘 저은 커피를 한 모금 혓바닥 위에 올려놓고 궁글린다. 그러면 좋은 커피는 혓바닥 위에 맹물처럼 빙그르르 구르지만 나쁜 커피는 입안과 이 사이에 텁텁하니 스며버린다.” 그래서 나도 그분에게서 배운 커피 감정법을 제자들에게 대물림으로 풀어먹곤 했다. 그분의 아호가 커피를 좋아해서 다형(茶兄) 아닌가. 
  1913년 4월 4일에 태어나 1975년 4월 11일 숭전대학교 채플시간에 기도하시다가 지병인 고혈압으로 쓰러지시기까지 62년간 사시다 『마지막 지상에서』(1974)를 최후의 시집으로 남기고 영명하셨다. 당신 가문에서 신봉하는 청교적 기독교 가풍에 의하면 가장 경건하고 행복한 임종을 맞이한 축복받은 시인이 아니었던가 한다. 
  죽기 전에 사람을 칭찬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미 고인이 된 그분을 두고 생각할 때 교육자로서 신앙인으로서 일생동안 일관하여 순수한 자아탐구의 시세계를 노래한 시인으로서 경건하고 성실한 삶을 살다간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었다. 
  그분의 시적 특성이 응결된 대표시집 『견고한 고독』이나 『절대고독』에 나타난 경건하고 청교도적인 절대적 고독의 시는 신을 향한 단독자로서의 실존적 자각을 통해 인간적 대결을 지어보이는 표현을 담고 있어, 우리 시단의 독특한 경지가 아닌가 한다. ‘순수시’, ‘절대시’, ‘사상시’ 이런 용어에 가장 잘 알맞은 시를 찾으려면 단연 다형 김현승의 시를 제쳐놓고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삼류 시인은 ‘모방’하고 일류 시인은 ‘표절’한다는 역설이 있다. 모방은 아류, 표절은 완전히 소화하여 창조한다는 뜻이리라. 과연 나는 스승의 시를 흉내냈는가 감쪽같이 훔쳤는가. 감히 그분의 문하로서 누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내가 뭐 논문감이 되나』, 우리문학기림회, 새미:서울, 2002
 
 
  ※ 아래 글을 읽으며 시인이 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정서에 어조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그리고 두 번째 제시문에 인용된 시와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의 사용된 어조의 특징과 그 효과에 대해 적어 보자.
   
 

어조와 시의 유형

시의 어조가 제재와 독자 그리고 화자 자신에 대한 태도라고 할 때 이것은 벌써 지향점의 차이에 따라 어조가 달라지고 이 어조의 차이가 시의 여러 유형이 된다. 
첫째 유형으로 전달이 화자(발신자)를 지향해서 언어의 ‘정감적’ 기능이 우세해지는 경우다. 서정시는 외침소리(아! 오! 하는 외침소리는 언어의 표현적 기능만 작용한 경우다.)를 발전시킨다는 진술은 여기에 해당된다. 이것은 전달내용에 대한 화자 자신의 정서적 반응이 강조되는 유형이다. 따라서 이 때 어조는 감탄·정조의 양상을 띤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량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 심훈, <그 날이 오면>

이 시의 어조는 매우 격렬하고 그만큼 화자 자신의 정감적 반응이 강조되고 있다. 서정시의 목적이 자기표현이고 서정이 자기표현의 주종이 되는 이상, 사실 서정시는 일인칭 화자 ‘나’를 지향하는 표현적 기능이 우세해지기 마련이다. 주정시는 그 표본이다. 그러나 20년대 초 감상적 낭만시처럼 언어의 표현기능이 지나치면 그만큼 미적 가치는 소멸되는 것이다. 
둘째 유형으로 전달이 청자(수신자)를 지향함으로써 대화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경우다. 이인칭 ‘너’를 지향할 때 언어는 ‘사동적’(지령적) 기능이 우세해진다. 이것은 전달내용에 대한 청자의 반응을 요구함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이 유형의 시에서 어조는 명령·요청·권고·애원·질문·의심 등의 양상을 띤다. 이 때 일인칭 화자가 이인칭 ‘너’에 대하여 종속적이냐 아니냐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 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 그럴듯한 녀석들은 대학원에 들어가
사랑보다 책 사 읽기에 바쁘고
하나 둘 기성복에 몸 맞추며
여편네와 허가받은 작부밖에 모르는 사내들
속절없이 외로워
당신은?
안녕히 비워 두셨나요
예고없이 비 내릴 때
오세요.

㈀은 신석정의 전원적 목가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이고, ㈁은 김현승의 신앙시 <가을의 기도>이고, ㈂은 김수영의 <눈>이고, ㈃은 이윤택의 배역시 <진이(眞伊)>이다. 열거된 이 모든 구절들은 형식상 청자의 반응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두드러지게 청유형이나 명령형 어미가 사용되고 있다. 이런 유형은 ㈀과 ㈁의 작품처럼 서정적일 수도 있지만 개화기 시가처럼 목적시에 가장 어울리는 형태인 것이다. 서간체 형식의 시, 송가(찬가), 식민지 시대의 선동적인 카프시, 정치적 투쟁가 등도 이 범주에 속한다. 
셋째, 전달이 맥락을 지향할 때 언어의 지시적(정보적, 표상적) 기능이 우세해지는 유형이다. 이것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렇게 전달이 작품의 제재 곧 화제의 지향일 때(3인칭 또는 탈인칭의 지향일 때) 어조는 정보전달에 적합한 소개·사고 등의 사실적·명시적 양상을 띤다.

학생들의 교복이 자율화된 시대
운전기사 강씨네는
연탄방에서 산다
마누라는 안집의 빨래를 해 주지만
밥은 따로 해먹는다.
미스터 강은 레코드로얄을 끈다.

- 김광규, <이대(二代)> 중에서

이 시에서 화자의 존재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객관적 보고자의 중립적 역할을 하고, 우리는 작품이 환기하는 관련상황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묘사시, 서술시, 참여시, 리얼리즘시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따라서 반사실주의적 추상시(절대시)는 언어의 지시적 기능의 가장 약화된 시유형이다. 
넷째, 언어의 시적(미적) 기능이 우세해지는 경우다. 이것은 전달이 텍스트(메시지) 자체에 지향하는 경우다. 여기서 텍스트 자체를 지향한다는 것은 표현방법에 지향한다는 뜻이다. 시적 기능은 말할 것도 없이 미적 효과를 목표로 한 것이며, 따라서 이 기능은 본질적으로 시를 시답게 하는 기능으로서, 시에 우세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따로 유형화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하면 시적 기능은 모든 시에 우세하면서 정감적 기능이나 지시적 기능, 또는 사동적 기능을 수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난히 시적 기능이 우세한 경우가 있다. 김영랑의 순수시나 김춘수의 무의미시(추상시)가 그것이다.

활자 사이를
코끼리 한 마리가 가고 있다. 
잠시 길을 잃을 뻔하다가
봄날이 먼 앵두밭을 지나
코끼리는 활자 사이를 여전히
가고 있다. 
너무 작아서 보이지는 않는
코끼리
코끼리는 발바닥도 반짝이는 
은회색이다.

- 김춘수, <은종이>

이 무의미시는 화자나 청자의 존재는 전혀 암시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작품 밖의 어떤 대상도 갖고 있지 않다. 어떤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만이 보일 뿐이다. 따라서 지시적 기능이 무화되어 있다. 그 대신 우리는 우람한 코끼리가 활자 사이를 걸어가는 비논리적 이미지의 결합방법에 관심이 초점화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의 어조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숙한 인간의 어조가 아니라 익명의 어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 설명한 바와 같이 어조는 화자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어조는 궁극적으로 화자의 문제다. 왜냐하면 어조는 화자의 인격이나 신분 또는 마음의 상태 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또한 어조는 청자의 신분, 정신상태도 드러낸다). 화자는 현대시론에서 매우 주목되고 있으며, 미학상의 여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시론』, 김준오, 삼지원:서울, 2002

   
 

주기도문, 빌어먹을

- 박남철

지금 하늘에 계신다 해도
도와 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나라를 우리 섣불리 믿을 수 없사오며
아버지의 하늘에서 이룬 뜻은 아버지 하늘의 것이고
땅에서 못 이룬 뜻은 우리들 땅의 것임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고통을 더욱 많이 내려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미움 주는 자들을 더더욱 미워하듯이
우리의 더더욱 미워하는 죄를 더, 더더욱 미워하여 주시고
제발 이 모든 우리의 얼어 죽을 사랑을 함부로 평론치 마시고
다만 우리를 언제까지고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 두시겠습니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이제 아버지의 것이
아니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밤낮없이 주무시고만 계시는
아버지시여
아멘

   
 
※ 도움말

  - 시의 어조는 제재와 독자, 화자 자신에 대한 태도를 드러내는 강한 요소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어조의 차이로 인해 시가 여러 유형으로 나뉘게 된다. 시를 쓸 때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어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다른 이에게 드러내는데 도움을 받게 된다. 시 속에서는 작가가 직접 등장하지 않고 화자를 통해 이야기하게 되므로 시의 어조는 화자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어조는 궁극적으로 화자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시의 어조는 시의 내용과 정서 표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편, 제시문을 통해 인용된 시는 제목에서 우선 알 수 있듯이 화자는 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기도조의 어조를 취한 것으로 보이나, ‘읊어 보시오’처럼 명령형(그것도 일흔 번이나 읊어 보라는 명령)을 사용하고 있고, 신을 향해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 두시겠습니까?’라는 반항적 어조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일용할 고통, 미워하는 죄, 얼어 죽을 사랑, 주무시고만 계시는 아버지’ 등의 어구를 통해서도 고통받는 현실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신을 향해 극도의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김현승의 시에서는 기도조의 어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고, 신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어 두 시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어조는 시의 내용과 정서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 외의 요소에 의해서도 시를 통한 감정 표현이 달라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시 감상을 하여야겠다.
   
 

 

 

 

광주=뉴시스=
다형(茶兄) 김현승(1913-1975) 시인의 기념사업 등과 맞물려 광주에서 문학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광주시와 다형 김현승시인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김현승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등과 맞물려 '광주문학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
(다형의 동생인 김현구 선생).

...

1913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현승 선생은 교회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7세때 광주 양림동으로 이사와 숭일학교와 숭실전문학교 등을 수료했다.

숭일학교 교사(1936)와 조선대학교 교수(1951-1959), 숭실대학 교수(1960-1975)를 거쳐, 한국 문인협회 부이사장(1970) 등을 역임했다.

다형은 한국전쟁때 광주에서 문학잡지 '신문학'을 4호까지 발간했으며, 이 과정에서 황순원의 '소나기'가 신문학을 통해 세상의 빛을 봤다.

다형은 문단에서 쟁쟁한 역할을 하고 있는 문병란, 손광은, 진헌성, 이성부, 오규원, 문순태, 이근배, 김종해, 김종철 시인 등 40여명을 '현대문학'에 추전, 문단에 입문시켰다.

손광은 김현승시인 기념사업회 회장은 "다형 선생은 광복 후의 혼란기에 김기림류의 모더니즘과 정지용류의 감각적 이미지즘에 경도돼 있던 우리나라 시단에 지성적 감수성을 개척하고 새로운 한국 현대시를 정립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며 "6.25때 자칫 단절될 뻔했던 시문학사는 물론 문학사의 맥을 이어온 것도 큰 업적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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