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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이형기 - 폭포
2015년 12월 19일 19시 24분  조회:4161  추천:0  작성자: 죽림

이형기 시인

폭포(瀑布)이형기(李炯基, 1933∼2005 )

 

그대 아는가

└시인

나의 등판을

└산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폭포-아픔의 상처

▶칼자욱 난 산

 

 

질주하는 전율과

└속도감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의 상태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벼랑이 있는 산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 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쏟아져 내리는 폭포. 날고자 하는 욕망

▶떨어지는 폭포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폭포의 심상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부딪히는 폭포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칼자욱 난 산

- <적막강산>(1963)

 

 

[어구풀이]

등판 : 등, 샘명체의 배의 반대쪽

내리친 :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

단말마(斷末魔) : 숨이 끊어질 때의 마지막 힘을 쓰는 정황을 이르는 말

복안(複眼) : 눈이 여러 개 모여서 이루어진 눈

맹목(盲目) : 사리에 어두운 눈, 또는 그러한 안목

나의 등판 : 여기서 '나'는 산을 가리킨다. 즉 산 자신의 한 부분을 등판으로 표현했다. 의인법적 표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칼자욱 : 산의 한부분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모습. 날카롭고 섬뜩한 느낌의 표현(폭포는 산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 존재의 고통을 감각화시켜 표현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비극성을 느끼게 해주고자 한 것.

시퍼런 칼자욱 : 산의 한 부분에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모습이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질주하는 전율 : 무시무시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표현이다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을 : 벼랑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 추락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하늘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 산 스스로 품고 있는 폭포의 하강을 자멸이라는 비극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맹목(盲目)의 눈보라 : 바위에 부딪쳐 떨어지는 폭포의 무수한 물보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구절. 현실적 고통으로 인해 끝없이 절망하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 삶의 투영. 아무런 목적도 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이미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폭포수의 떨어짐을 자연 현상 그 자체로 이해할 때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의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2억 년 묵은 칼자욱 : 삶의 역정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은 고통의 멍에. 폭포는 산에게 있어 오래된 상처이자 고통이다.(존재에 대한 시인의 비극적 인식)

 

 

[핵심정리]

갈래 : 서정시, 자유시, 관념시

운율 : 내재율

어조 : 인간 존재의 한계를 노래하는 관념적인 어조

성격 : 관념적, 주지적, 실존적

표현 : ① 정교한 언어구사를 통한 존재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줌.

② 수미상관의 구조로 안정감을 획득함

③ 자연적 소재를 관념화하여 표현함

④ 사람이 아닌 자연이 주체가 되어 시상이 전개됨

제재 : 폭포

주제 : 인간으로서 느끼게 되는 실존적 한계

출전 : <적막강산>(1963)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6, 70년대의 민중·참여 시인으로 손꼽히는 김수영의 폭포라는 시처럼 물이 위에서 곧장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를 소재로 시상을 발흥시키고 있다. 김수영의 폭포와 이 작품은 폭포를 시적 착상의 대상으로 하고 또 구체적인 자연물을 통해 관념의 세계를 표상하였다는 점에서 비슷한 성향을 지닌다. 그러나 작품 세계는 사뭇 다른데 작가가 이 작품에 내면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모습이다.

 

이 시는 산과 폭포라는 자연물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산의 절벽을 타고 내리는 폭포의 존재를 칼자욱이라는 섬뜩한 고통의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통의 이미지가 산 자신이 주체가 되어 구체화되고 있다. 이러한 사물 인식은 비극적이기조차 하다. 자연이 자연 자체로의 아름다움으로만 묘사되어 있지 않을 이 시를 통해 경험하게 된다. 자연은 우리 시에 있어서의 전통적 소재라 할 수 있다. 고전 작품 속에서의 자연은 인간에게 위안과 휴식을 제공하는 긍정적 존재로 등장한다. 또한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묘사되는 대상이다. 그러나 이 시의 자연 인식은 전통적 인식과는 상이하다.

 

그리고, 서정시는 대상을 파악하는 어느 한 순간의 가장 강렬하고 고양된 마음의 상태를 본질로 한다. 이 작품의 대상으로 채택된 폭포는 산의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대상은 단지 자연적인 소재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投射)시킨 형상물이다. 이 시의 발화 주체인 '나'는 시인이 아닌 '산'이며, 오히려 시인은 그 상대역으로서 청자인 '그대'가 되고 있다. 벼랑을 가로질러 내리친 칼자욱의 모습은 주체인 '산'의 입장에서 보면 지울 수 없는 고통의 멍에가 되며, 여기서 시인은 삶의 일상에서 느끼는 존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이라는 관념을 떠올리게 된다.

 

산 자체가 시적 화자가 되어 고통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고 보았는데, 1연에서 '그대'는 사람이고 '나'는 산인 것이다. 자신의 몸에 칼자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2연에서는 섬뜩한 속도감과 벼랑을 타고 내리는 폭포의 모습이 장수잠자리로 묘사되어 드러나고 있다. 4연에서는 떨어지는 폭포의 시퍼런 물줄기가 자신에게는 아주 오래된 상처라고 절규하고 있다. 이는 존재에 대한 시인의 비극적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교한 언어 구사를 통해 일상적 삶에서 느끼는 존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시의 대상인 '폭포'는 산의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흘러 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폭포'는 단순히 자연적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投射)시킨 형상물이다. 또한, 이 시의 발화 주체인 '나'는 시인 자신이 아닌 '산'이며, 시인은 그 상대역으로서의 청자인 '그대'가 되어 있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 시퍼런 칼자욱'의 모습은 주체인 '산'의 입장에서 보면, 지울 수 없는 고통의 멍에이며, 연속된 '벼랑의 직립'에서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를 피우며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현실적 고통으로 인해 끝없이 절망하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 삶의 투영이다. 추락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하늘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이 미약한 '장수잠자리'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인간적 삶이 거세된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진실된 양심의 소리를 세차게 토해 내는 '깨어 있는 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김수영의 <폭포>와는 전혀 다른 '폭포'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존재론적인 한계와 그 비극성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시는 형식적으로 시의 발화 주체인 '나'가 시인 본인이 아니라 산으로 설정되어 있고 시인은 그 상대이면서 청자인 '그대'로 설정되어 있다. 시인은 폭포라는 외부의 대상을 묘사하면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즉 이 시에서 폭포는 고도의 추상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낙  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나의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시를 보시니 쫌 익숙한 시인거 같지 않으세요?

교과서에서 한번쯤 봤을 법한 시인데요

오늘은 '낙화'라는 시를 지은 시인 이형기, 시인 이형기를 기리기 위해 매년 진주에서 개최되는 이형기문학제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형기시인

이형기 시인은 1933년 6월 6일 진주 출생으로 6 ·25 전쟁이 끝난 뒤 신문 기자로 활동하다

연합신문동양통신서울신문』 기자 및 대한일보』 문화부장 등을 역임하고 모교인 동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이형기 시인은 16살 때 한국 최초 예술제인 제1회 영남예술제(지금의 개천예술제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했고 서정주 시인과 모윤숙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습니다첫 시집 적막강산(1963)을 시작으로 돌베개의 시(1971), 풍선심장(1981), 알시몬의 배(1995), 절벽(1998), 존재하지 않는 나무(2000) 등과 평론집 감성의 논리(1978), 한국문학의 반성(1980) 등 300여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낙화는 첫시집인 적막강산에 수록된 시로 이형기의 대표 시로 손꼽힙니다이형기 시인은 2005. 2. 2일에 생을 마감하셨는데 그의 시는 초기에는 삶과 인생을 긍정하고 자연섭리에 순응하는 서정시를 주로 썼다면, 후기에는 허무에 기초한 관념을 중심으로 날카로운 감각과 격정적 표현이 돋보이는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진주 신안동 녹지공원에 있는 이형기 시비

이형기시인을 기리기 위해 진주에서는 매년 이형기문학제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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