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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의 시인 - 이형기
2016년 01월 05일 05시 04분  조회:4363  추천:0  작성자: 죽림

  

 

 

낙화(落花)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 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호 수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하던 청춘이
어느덧 잎 지는 이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같이 떨던 것이
이렇게 고요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같은 것을
단 하나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다.

 

 

 

 

폭포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의 종말을 
그 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을.


나의 자랑은 자멸이다. 
무수한 복안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그해 겨울의 눈                                  


그해 겨울의 눈은

언제나 한밤 중 바다에 내렸다

 

희뿌옇게 한밤 중 어둠을 밝히듯

죽은 여름의 반딧벌레들이 일제히

싸늘한 불빛으로 어지럽게 흩날렸다

 

눈송이는 바다에 녹지 않았다

녹기 전에 또 다른 송이가 떨어졌다

사라짐과 나타남

나타남과 사라짐이 함께 돌아가는

무성 영화 시대의 환상의 필름

 

덧 없는 목숨을

혼신의 힘으로 확인하는 드라마

클라이막스 밖에 없는 화면들이

관객 없는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언제나 한밤 중 바다에 내린

그해 겨울의 눈

그것은 꽃보다 화려한 낭비였다

 

 

 

 

랑겔한스 섬의 가문 날의 꿈                     

 

나 어느새 예까지 왔노라.

가뭄이 든 랑겔한스 섬

거북 한 마리 엉금엉금 기는

갈라진 등판의 소금 꽃.

 

속을 리 없도다.

실은 만리장성으로 끌려가는

어느 짐꾼의 어깨에 허옇게

허옇게 번진 마른 버짐이니라.

 

오 박토여.

반쯤 피다 말고 시들어버린 메밀 농사와

쭉쭉 골이 패인

내 손톱 밑의 반달의 고사(枯死)여.

 

가면 가는 그만큼

길은 뒤에서 허물어지나니

한 걸음 뗄 때마다 낭떠러지 하나씩 거느리고

예까지 온 길 랑겔한스 섬,

 

꿈꾸는도다 까맣게 탄 하늘.

물도 불도 그 아래선

한줌 먼지 되어 풀석거리는 승천의 꿈

랑겔한스 섬의 가문 날의 꿈이니라.

 

          ♠랑겔한스섬(랑게르한스섬Langerhans islets)

            이자 내에 섬(島) 모양으로 산재하는 내분비선 조직으로 췌도(膵島)라고도 한다.

            섬 모양으로 보이는 세포의 집단으로 1869년 독일의 병리학자 P.랑게르한스가

            발견하여 "랑게르한스섬"이라 이름 붙인 것
 



 

길                                                        
 

빈 들판이다

들판 가운데 길이 나 있다

가물가물 한 가닥

누군가 혼자 가고 있다

아 소실점!

어느새 길도 그도 없다

없는 그 저쪽은 낭떠러지

신의 함정

그리고 더 이상은 아무도 모르는

길이 나 있다 빈 들판에

 

그래도 또 누군가 가고 있다

역시 혼자다  

 

 

 

 

나뭇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뭇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세기 전의 해적선이 바다를 누빈다. 
나뭇잎만큼 많은 돛을 달고 
그 어떤 격랑도 지울 수 없는 
벌레 먹은 항적(抗跡) 


나뭇잎을 다시 들여다보면 
나무가 뿌리채 
그 밑바닥에 침몰해 있다. 
파들파들 떨리는 단말마의 
손짓 
잎사귀들이  

 

 

 

 

비 오는 날                                       

 

오늘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
노을도 갈앉는
저녁 하늘에
눈 먼 우화는 끝났다더라


한 색 보라로 칠을 하고
길 아닌 천리를
더듬어 가면...


푸른 꿈도 한나절 비를 맞으며
꽃잎 지거라
꽃잎 지거라


산 넘어 산 넘어서 네가 오듯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


 

 

 

들길                                                       

 

고향은

가난하게 돌아오는 그로하여 좋다.
지닌 것 없이
혼자 걸어가는
들길의 의미...


백지에다 한 가닥
선을 그어 보아라
백지에 가득 차는
선의 의미...


아 내가 모르는 것을,
내가 모르는 그 절망을
비로소 무엇인가 깨닫는 심정이
왜 이처럼 가볍고 서글픈가.


편히 쉰다는 것
누워서 높이 울어 흡족한
꽃 그늘...
그 무한한 안정에 싸여
들길을 간다.

 

 

 

 

산                                                         
 
산은 조용히 비에 젖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 
가을비 속에 진좌(鎭座)한 무게를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
표정은 뿌연 시야에 가리우고
다만 윤곽만을 드러낸 산 
천 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오후 한때 가을비에 젖는다.
이 심연 같은 적막에 싸여 
조는 둥 마는 둥
아마도 반쯤 눈을 감고
방심무한(放心無限) 비에 젖는 산 
그 옛날의 격노(激怒)의 기억은 간 데 없다.
깎아지른 절벽도 앙상한 바위도
오직 한 가닥
완만한 곡선에 눌려 버린 채
어쩌면 눈물 어린 눈으로 보듯
가을비 속에 어룽진 윤곽
아 아 그러나 지울 수 없다.

 

 

 

 

코스모스                                                
 

언제나 트이고 싶은 마음에
하야니 꽃피는 코스모스였다.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같은 그리움이었다.


송두리째-희망도 절망도
불타지 못한 육신
머리를 박고 쓰러진 코스모스는
귀뚜리 우는 섬돌가에
몸부림쳐 새겨진 이름이었다.


그러기에 더욱
흐느끼지 않는 설움 홀로 달래어
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련다.
까마득한 하늘가에
내 가슴이 파랗게 부서지는 날
코스모스는 지리라.

 


허무의 시인 이형기

 

 



이재훈(시인)

 

 





지난 2008년 7월 12~13일 이틀 동안 이형기 시인의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는 제1회 이형기문학제를 개최했다. 이형기 문학세미나, ‘불멸의 시인 이형기’라는 주제의 시극(詩劇) 공연, 청소년 시낭송 대회, 대금 산조, 허튼 춤 사위, 음유 시인의 축하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로 이형기 시인을 추억했다. 이형기 시인에 대한 조명과 평가는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경남 진주는 시인 이형기의 고향이자 문학의 원적지(原籍地)이다. 이형기는 진주농림학교 재학 시절 당시 16세의 나이로 제1회 개천예술제(1948년)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다. 차상은 박재삼 시인. 백일장 심사위원은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등 한국 문단의 기라성 같은 시인이었다. 이 개천예술제는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개최되고 있다. 이형기는 최연소 등단이라는 이색적인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1950년 17세의 나이로 <문예>지에 <비오는 날>이 추천되어 등단한다. 추천위원은 초회에 문학평론가 조현연, 2회 추천에 미당 서정주, 3회 추천완료는 모윤숙 시인이 했다. 이 최연소 등단기록은 아직도 문단에서 깨지지 않고 있다. 이형기는 1941년 진주 요시노(吉野) 소학교 시절부터 소설 미치광이로 불리며 문학적 재질을 드러낸 시인이다.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언론사에 20여 년 간 몸담다가 동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지냈다.

시인 이형기(1933~2005)의 이름 앞에는 늘 ‘문학 청년’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영원한 문학청년 이형기. 그는 작고할 때까지 문학에 대한 열정과 천재의식을 놓치지 않은 대시인이었다. 초기의 전통적 자연 서정의 세계, 중기의 주지주의적인 날카로운 감성과 새로운 언어 미학의 세계, 후기의 생태학적 고발과 문명비판의 세계로 변화하며 끊임없이 자기갱신을 한 시인이다. 이형기의 시세계 전체를 통어하고 있는 세계는 바로 ‘허무’라고 할 수 있다. 이형기의 ‘허무’는 초기시에서 후기시로 갈수록 다른 방향으로 펼쳐진다. 초기시에서는 자연의 순환원리를 통해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를 깨닫는 달관의 견지와 같은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후기시로 갈수록 실존적 허무로 성격이 바뀐다. 
이형기 하면 떠오르는 시가 바로 전 국민의 애송시인 <낙화>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낙화> 전문

위의 시는 가야할 때를 깨닫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치인들을 향한 경구로도 읽히고, 모주꾼이 술집에서 술값을 치르지 않기 위해 도망갈 때 읊는 유머로도 읽는다. 또한 존재의 조락(凋落)을 통해 죽음과 실존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은 시이다. <낙화>에서 중요한 부분은 ‘결별’을 ‘축복’으로 인식하는 지점에 있다. 존재의 결별이 또다른 탄생의 미학을 낳는다는 창조적 인식이 시를 지배하고 있다. <낙화>는 이형기의 초기시가 가진 ‘허무’의 성격을 잘 드러내 주는 시이다. 

진주시 신안동 공원에 있는 이형기의 ‘낙화’ 시비 ⓒ 이재훈


 

흔히들 이형기를 가리켜 ‘허무의 시인’이라고 한다. 이형기의 시적 세계관의 핵심은 ‘허무의식’에 있다. 그의 허무는 두 가지의 근거를 통해 발생되었다. 하나는 이형기가 경험한 근대적 자본주의와 문명체험이 허무의식을 갖게 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 변화되어 가는 사회적 현상을 목도했으며 인간성 상실의 위기의식을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또 하나의 근거는 스스로의 시적인 자각을 통해 이루어진 세계관이라는 점이다. 이형기는 끊임없이 자신의 시적 세계관을 회의하고 갱신하면서 몇 번의 시적실험을 거친 시인이다. 그러한 세계관의 변화는 다양한 독서체험과 시에 대한 갱신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즉 이형기가 도달한 ‘허무’는 생성과 소멸의 끊임없는 과정의 변증법적인 인식이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시의식이다. 허무를 통해 새로운 창조적 세계를 꿈꾸는 허무의 시인 이형기. 그의 시가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의미로 점점 깊이 와 닿는 계절이다. 

_ <논산문화>,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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