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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학자 - 오무라 마스오 교수 윤동주 묘 찾기까지...
2016년 03월 17일 19시 52분  조회:5740  추천:0  작성자: 죽림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자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대 명예교수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소명출판사에서 윤동주 시집 초판본을 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자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대 명예교수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소명출판사에서 윤동주 시집 초판본을 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한국학자 갈 수 없던 수교 전
육필원고도 최초로 조사·검토
일본인 이유로 성취 폄훼되기도
저작집 한국 출간 협의차 내한
“영화 ‘동주’ 보고 싶다”
연변과 백두산을 여행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용정을 거쳐 명동촌을 다녀온다. 용정에는 ‘선구자’ 노래에 나오는 일송정과 해란강 그리고 동주의 사촌 송몽규가 다녔고 동주 기념관과 시비가 있는 대성중학(현 용정중학)이 있다. 윤동주의 고향인 명동촌에는 동주가 다녔던 옛 명동교회가 남아 있으며 동주의 생가가 복원돼 있고 인근 산자락에는 동주의 묘도 있다.

 

해방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16일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진 윤동주는 화장 뒤 뼛가루 형태로 돌아와 이곳에 묻혔다. 그러나 해방과 분단,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등 현대사의 격변 속에 묘지는 잊혔다. 1948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처음 출판된 뒤 한반도 남쪽에서 동주가 가히 ‘민족 시인’의 반열에 오르는 동안, 특히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중국 안에서는 윤동주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가 되었다. 무덤은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되었다. 마침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게 되었다.

 

1985년 5월 한 일본인 학자가 망실되었던 윤동주의 묘를 ‘발견’했다. 와세다대 재외연구원으로 그해 4월부터 1년 동안 연변대학교에 연구 유학했던 오무라 마스오(83) 현 와세다대 명예교수가 그다. 오무라 교수는 그 전해 여름 일본 도쿄에 와 있던 동주의 동생 윤일주 교수(성균관대 건축공학과)한테서 형의 묘를 찾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 묘지의 대략적인 위치를 담은 약도를 건네받은 터였다. 당시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국교가 수립되기 전이라 한국인의 현지 방문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동주의 묘가 있는 용정은 당시 외국인이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었습니다. 공안의 허가증을 받아 5월14일 연변대학 교수 등 몇분과 같이 동주의 묘가 있다는 옛 동산교회 묘지를 뒤졌습니다. 묘지는 그동안 관리가 안 되어 묘지라기보다는 숲과 밭이 드문드문 널려 있는 산자락이었어요. 동주의 묘도 다른 묘들처럼 문화혁명 때 파괴되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지요. 일행이 위와 아래로 나누어 네댓시간쯤 헤맨 끝에 마침내 당시 연변대학 조선문학 교연실 강사였던 이해산 선생이 ‘시인(詩人)’이라는 글자가 적힌 묘비를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동주의 묘를 확인한 순간, ‘여기로구나!’ 싶은 마음에 감격에 겨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지요.”

 

‘오무라 마스오 저작집’ 출간 협의차 방한한 오무라 교수는 30년 넘은 옛일을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소명출판 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오무라 교수는 동주 묘를 확인한 닷새 뒤 다시 묘를 찾았다. 두만강 송어와 조선산 명태 등을 진설하고 유기 제기를 사용한 순 조선식 제사를 올렸다. 오무라 교수는 동주의 묘를 확인한 사실을 중심으로 동주 생가터와 동주가 다녔던 광명중학 학적부, 송몽규 생가와 광명교회 등을 확인한 결과를 담은 논문 ‘윤동주의 사적(事跡)에 대하여’를 <조선학보>(1986년 10월)에 발표했다. 그러나 동주의 동생 윤일주 교수는 그가 연변에 있는 동안 타계했고, 중국과 한국 사이에 전화는 물론 편지 연락도 불가능했던 터라 오무라 교수는 이듬해 귀국 뒤 한국을 방문해 윤일주 교수의 묘에 참배하면서 비로소 형의 묘를 찾았다는 사실을 ‘보고’할 수 있었다.

 

‘민족 시인’ 윤동주의 묘를 처음 발견한 이가 일본 학자라는 사실에 한국의 일부 언론은 “역사의 아이러니” 운운하며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 학자의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본인이라는 특권적 지위 덕을 본 것이라며 발견의 의의를 애써 깎아 내리는 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오무라 교수가 윤동주의 육필 원고를 최초로 조사하고 검토한 학자라는 사실 앞에 그런 폄훼는 설 자리를 잃는다.

 

“동주의 묘를 확인한 사실을 사진과 함께 보고한 뒤 저는 어느 정도 유족들의 신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1986년 여름 동주의 육필 원고를 눈으로 접할 수 있었어요. 동주의 친우인 정병욱 일가가 일본 관헌의 눈을 피해 마루 밑 독에 묻어 두었던 자선시고집, 역시 친구인 강처증이 보관해 온 유품과 작품, 누이동생 윤혜원 부부가 해방 뒤 용정에서 가지고 내려온 창작 노트 등이었지요. 그때까지 윤동주 문학과 관련해서 숱한 연구서가 나오고 많은 논문이 발표되었는데도 정작 육필 원고를 보겠다며 찾아온 학자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동주의 육필 원고를 처음 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역시 일본인이 처음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지 유족은 원고를 본 사실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오무라 교수가 동주의 육필 원고를 최초로 확인한 때로부터 무려 10년 뒤에야 왕신영 단국대 교수가 육필 원고를 보고 싶다며 유족에게 요청했다. 유족의 말을 빌리면 ‘윤동주의 제1차 자료를 상세하게 보고 싶다고 밝힌 지구상 두번째 인물’이었다. 오무라 교수와 왕 교수, 심원섭 연세대 강사와 유족인 윤인석 성균관대 교수가 함께 엮은 <윤동주 자필시고전집>(1999)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윤동주 연구의 텍스트 비평을 위한 일차 자료가 비로소 갖추어진 것이다.

 

오무라 교수는 이밖에도 동주의 릿쿄대와 도시샤대 학적부와 성적표, 도쿄 거처, 독서 이력 등 일본 유학 시절 행적과 자취를 탐구한 논문, 그리고 도시샤대 교정에 세워진 ‘서시’ 시비 중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의 일본어역 적합성 문제를 제기하는 등 윤동주와 관련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했다. 그 결과를 담은 논문집 <윤동주와 한국문학>이 2001년 소명출판에서 출간되었으며 역시 소명출판이 전체 6권으로 기획한 ‘오무라 마스오 저작집’의 제1권으로 이달 중에 다시 나온다.

 

윤동주 시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오무라 교수는 “성실하고 내면적인, 모든 것을 내면으로 내면으로 추구해서 표현하는 젊은이가 쓸 수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달랐다면 동주는 동시를 쓰는 시인이 되었을 텐데 시대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이는 윤동주 바람과 관련해서는 “유명해지든 그렇지 않든 윤동주의 가치는 그대로일 것”이라면서도 “영화 <동주>를 보고 싶다”고 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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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동주 친우’ 문동환 목사, ‘동주’ 각본가 만나 그를 추억하다


‘명동촌과 윤동주’를 기억하는 마지막 증인 문동환 목사(사진 오른쪽)와 영화 <동주>를 각본·제작한 신연식(왼쪽) 감독이 23일 낮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문 목사 자택에서 <동주>를 관람한 뒤 대담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시인 윤동주를 기억하는 이와 윤동주의 흔적을 좇아온 이가 한 자리에 앉았다. 영화 <동주>를 제작하고 시나리오를 쓴 신연식 감독은 23일 서울 영등포구 문동환(95) 목사 자택에서 작은 상영회를 열었다. 문동환 목사는 윤동주, 송몽규와 친한 벗이었던 고 문익환 목사의 3살 터울 동생으로 이들 가족은 명동촌에서 용정으로 옮겨가며 북간도의 땅을 함께 일구었다. 문동환 목사와 가족들이 둘러앉아 영화를 보며 윤동주에 대한 기억을 나눴다, 조카 문영금씨와 딸 문영미씨가 문동환 목사에게 평소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의 기억을 거들었다.

북간도의 소년 시절

신연식 감독(신) <동주>를 준비하며 여러 연구서들을 뒤지고 윤동주 시인의 조카인 성균관대 건축학과 윤인석 교수, 송몽규의 조카이며 <윤동주 평전>을 쓴 송우혜 선생 등을 만났다. 윤동주의 이야기를 전해받은 사람들을 만난 셈인데 문 목사님은 북간도 시절 윤동주와 송몽규를 직접 기억하는 분이다.

문동환 목사(문) (북간도) 명동을 떠오르게 하는 기억은 높은 나뭇가지위에 걸린 종탑(윤동주 시 <십자가>에 나온 첨탑)이야. 우리 집에서 학교쪽으로 가자면 먼저 윤동주네 집이 나왔는데 그 집은 과수나무가 그렇게 많았어. 아직도 생생한 것이 살구에 복숭아가 열린 것을 보면서 그걸 먹고 싶었던 생각. 2001년에 그곳을 다시 한번 가봤는데 집은 모조리 없어졌고 학교 운동장은 연초(담배)밭이 됐어.

영화의 북간도 장면은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에서 찍었는데 북방식 가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어서였다. 영화에선 사회주의 때문에 가족들이 용정으로 옮겨간 것으로 했다.

송몽규 아버지 송창희 선생은 명동학교 교사였는데 새 문명을 많이 접해서 도시에서 책을 받아보는 덕에 몽규·동주 형은 소년 잡지도 함께 돌려보곤 했는데 우리 형님(문익환 목사)이 그걸 몹시 부러워했지. 그들이 잡지도 만들고 몽규가 어른들에게 연설을 한 일은 초등학교 때였을 거야. 1929년 사회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명동학교가 인민학교로 바뀌고 곧 문을 닫았어.

용정 은진중학교는 일본어 교재를 갖다 놓고 한국어로 가르치던 곳이었어. 3·1절에 태극기를 올리고. 나중에 어른들께 들으니 몽규는 공부를 그리 잘 하다가도 탈출하곤 했다던데 결국 은진학교 2~3학년때 탈출해서 중국에 다녀왔대. 몽규와 동주 아버지는 사회주의로 넘어갔다가 나중에 다시 기독교 신앙인으로 돌아왔는데 몽규 형은 집안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

동주, 익환 형님 둘이 평양 숭실학교로 편입했는데 형님은 윤동주와 모자를 바꿔 쓰고 다녔대. 윤동주도 잘 생겼지만 우리 형님도 잘생겼거든. 윤동주에겐 형님이 모자덕에 잘생겨보였나봐. 계속 바꿔쓰자고 했대. 동주 형이 연희전문학교에서 시를 썼던 이야기도 후에 들었지. <쉽게 씌어진 시>라는 시도 있지만 실은 동주 형은 입에서 시가 줄줄 나오는 사람이 아니었어. 고민하면서 몇번이고 고쳐가는 아주 섬세한 시인이었어.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준하 선생,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 정일권 전 국회의장. <한겨레> 자료사진
문동환 목사가 말하길…
“윤동주네집 과수나무가 많았어
익환 형님 모자를 부러워했었지
동주는 아주 섬세한 시인이었어
짧은 삶에 큰 의미 남겨 부활한 셈”

신연식 감독이 말하길…
“영화 준비하며 많은 이들 만났는데
문 목사님은 그를 직접 기억하는 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태도 등
영화가 청년들에게 질문 남겼으면”


탈출한 자-못한 자

윤동주를 연구해온 일본 교수들을 만나기 위해 일본에 여러번 취재를 갔다. 송몽규가 다니던 교토 제국대와 윤동주가 편입한 교토 도시샤 대학 정확히 중간에 둘이 만나던 와이엠시에이 회관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 일본 경찰이 한국학생 모임을 급습하고 체포되기 전 몽규가 동주를 찾아간 것은 물론 만들어낸 이야기다. 소문으론 체포된 뒤 일본인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조선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던데 어딜 가나 감시가 살벌했던 것 같다.

나는 형과 함께 도쿄에 있는 일본 신학교에 다녔어. 1943년 장하구 선생(종로서적 대표)이 정세가 심상찮게 돌아간다고 판단해서 용정에 있는 우리집에 가서 학병으로 불려가기 전에 형제들을 얼른 집으로 데려오라고 했어. 집에서 ‘할머니가 위독하니 급히 귀국하라’고 전보를 보내고 우리는 만주에 있는 봉천신학교로 전학을 가겠다고 했지. 그런데 나를 못나가게 하려고 후쿠다 목사가 신학생회의를 소집했어. “기독교인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며 귀국을 말리길래 내가 이렇게 말해버렸어. “나는 일본을 위해 죽을 수도 없고 아무래도 일본을 사랑할 수가 없다.” 그때 일본을 탈출하지 못했던 동주·몽규 형이 죽어서 돌아온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지. 용정에서 목회하던 아버지(문재린 목사)가 동주 형의 장례식을 집전했어.

동주를 복기하는 이유

고인이 생전에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유족들이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고인의 유산이 보존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동주의 시가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시인이 되고 싶었던 동주의 열망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덕분이다. 연희전문 동기인 정병욱은 학도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윤동주 시집 초고를 어머니께 부탁했고, 동생 윤혜원은 피난을 오면서 동주가 남긴 원고를 지니고 왔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은 동주의 심정에 감정이입했다. 나도 20살때 연출부에 들어가면서 영화가 되지 못한 시나리오를 쌓아놓고 입봉 한번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이십대를 살았다. 동주는 시집 전체를 수도 없이 고쳐쓴 듯 하다. 끝내 등단을 하지 못했던 그 심정이 내게도 절실했다.

동주 형은 시에 대한 끓는 정열을 지니고 한편으론 어떻게 생존의 위기에 대처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일본 경찰에게) 걸려들고 말았어. 애달파.

그러나 중요한 건 죽음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 하는 거라고 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것을 알면서도 채찍을 들고 성전으로 향한 것은 죽으러 간 것이지. 그 사실이 예수의 짧은 삶에 의미를 남겼어. 그런 사람의 삶은 부활을 초래하는 거야. 동주 또한 그렇게 살았으니 오늘 우리가 둘러앉아 그를 이야기 하는 거지.

지금은 청년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기대하며 시대 정신을 갖고 살아가긴 힘든 시절이지만 동주의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혁기였다. 이 영화가 청년들에게 사적인 목표 외에 다른 것,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떤 태도로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남겼으면 좋겠다.

정리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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