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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는 "알파고", 소설쓰는 "알파고" 등장할수도 있다?...
2016년 03월 19일 06시 56분  조회:4805  추천:0  작성자: 죽림
서영인의 책탐책틈
러브 레플리카
윤이형 지음/문학동네 펴냄(2016)

 

알파고와 바둑기사 이세돌의 대결은 알파고의 4 대 1 승리로 끝났다.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을 이기는 단계에 왔다는 자찬, 기술 지배의 미래에 대한 우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정신은 인간의 것이라는 자족 등 반응이 엇갈렸다. 문학인들은 농담처럼 이제 시 쓰는 알파고, 소설 쓰는 알파고가 등장할 것이라고 으스스해하고 있다. 정말 그런 시대가 올지도 모르고, 전혀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니다.

 

어릴 적 기억이지만, 그때 거의 모든 집에 바둑판이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바둑판이 흔했는지 모르겠다. 주로 남자 어른들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풍경도 흔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꼼짝 않고 앉아 바둑을 두고, 이제 끝났나 싶으면 각자의 돌을 집어내고 다시 판을 시작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는 무료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바둑을 전혀 모르지만 그것은 무료와 지루에 집중하는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바둑은 점점 사라져갔다. 바둑판 위에 그 터무니없이 긴 시간을 얹어 두기에는 우리는 너무 바빴고, 바둑은 너무 비생산적이었으니까. 승부와 경쟁의 이벤트로 되살아난 바둑의 풍경에는 그러나 무료와 지루의 시간, 비생산의 시간은 없다. 구글은 세기적 흥행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것으로 인류의 미래를 주도하는 기업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문학이 인공지능 로봇을 통해 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산업기술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빨리, 더 잘하기 위해 로봇을 만든다면, 문학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 혹은 간절히 하고자 하는 일을 로봇을 통해 말한다. 윤이형의 <러브 레플리카>에는 청년의 얼굴을 한 베이비시터 로봇 데니(‘데니’), 신체를 냉동시키고 신체의 정보를 로봇에 이식시킨 스파이디(‘굿바이’)가 등장한다.

 

데니는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 인간의 감정과 욕구를 정확히 읽어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기능을 통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읽는다. 올드타운에서 늙은 몸으로 손자를 돌보는 노인이 “울 만큼 힘들다는 것”을 데니만이 안다. 그리고 데니만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말을 건다. 화성의 개발기지를 건설하는 스파이디들은 태양열 충전을 통해 다른 생명을 착취하지 않고 삶을 영위하며, 디지털신호로 전환된 전자뇌를 통해 타인과 교신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서로 교신하여 마침내 “개별적인 인격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하나의 공동체로 존재하는 데 성공”한다. 가난과 노동에 지친 삶이, 그로 인해 마모된 감정들로 희구하는 인간의 꿈이 거기에 있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서영인 문학평론가
데니의 교신은, 스파이디의 공동체는 결국 실패한다. 그 실패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불가능한 교신과 파열된 공동체의 삶을 견뎌야 하는 시간들에 대하여, 꿈꾸는 일이 살아가는 일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 우리의 나날들에 대하여, 문학이 해야 할 말이 아직 많다. 속도와 경쟁의 기술개발이 자본의 꿈이라면 착취 없는 공감과 교유의 삶은 문학의 꿈이다. 돈이 많이 드는 과학기술은 아무래도 자본의 편일 것 같다. 그러나 자본과 기술의 언더그라운드에서 문학은 여전히 저기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로봇들을 개발 중이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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