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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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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유월?!~ 詩 한바구니]- 유월
2016년 05월 30일 20시 54분  조회:3919  추천:0  작성자: 죽림
                   

유월

이상국(1946~ )

 
내가 아는 유월은 오월과 칠월 사이에 숨어 지내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유월에는 보라색 칡꽃이 손톱만 하게 피고 은어들도 강물에 집을 짓는다. 허공은 하늘로 가득해서 더 올라가 구름은 치자꽃보다 희다. 물소리가 종일 심심해서 제 이름을 부르며 산을 내려오고 세상이 새 둥지인 양 오목하고 조용하니까 나는 또 빈집처럼 살고 싶어서……

시집 《달은 아직 그달이다》(창비) 中


///
유월은 초여름으로 흘러들어가는 입구다. 그런 날에는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고 구름은 치자꽃보다 희다. 물소리도 심심해서 제 이름을 부르고 논다. 오월과 칠월 사이에 숨어 지내는 유월, 그 오목하고 조용한 세상을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다. 오월은 꽃, 칠월은 바다, 그러나 유월은 그 어떤 것으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쓸데없는 것들이 은근슬쩍 제 기품을 드러낸 까닭이다. 토종개구리의 빛깔이 가장 예쁜 것도 유월이다. 작물들이 꽃을 걸고 줄기를 세워 잎을 넓히고 뿌리를 곧게 잡는 시간이 유월이라 했다. 만물이 슬그머니 평화를 짓는 시간을 유월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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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이경교 (1958~ )

등대는 별의 출입문 바다로 띄우는 초대장, 나는 네 기별만 기다리다가 청춘을 다 보내고 말았으니

어둠 속으로 편지를 보내거나 해변의 낡은 우체통처럼 아직도 너는 서 있지만, 내가 받은 건 장밋빛 엽서가 아니라, 시퍼렇게 드러누운 늪, 한때 사랑했던 푸른 뻘이거나

너를 지나면 낯선 항구, 저기 처음 보는 여자가 있다 

나의 고해소 

시집 《목련을 읽는 순서》(시인동네) 中
 

///
세상의 모든 것엔 빛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삶의 등대를 얻는 일은 쉽지가 않다. 세상에 베이고 상처 입은 일 많을 때, 우리는 고해하고 싶어한다. 시인은 고해하는 마음으로 등대가 별의 출입문이고, 바다로 띄우는 초대장이라고 쓴다. 《등대로》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도 떠오르지만 그것보다 무수히 많은 사랑 고백들 아니 떠오를 수 없겠다. 그 사랑의 실패들이 우리에게 포용과 관용을 등대 불빛처럼 일러주지 않았던가. 비긋는 아침, 그대의 고해소는 어디에 있는가?

이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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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지나간 발자국

                     이경림 (1947~ )


사람이 잠시 살다 간 발자국을 문득 바라보는 일은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요해지는 순간일 것만 같아요. 시인의 말처럼 한참 살다 떠난 부뚜막같이, 다 저문 저녁같이 발자국은 사람 지나간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느 길에서 식은 온도로 한 사람의 시간과 흔적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발자국 주인도 고요한 소리를 떠나 어디선가 저물었겠습니다. 

김민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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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

함민복(1962년~ )

 
숟가락아 넌 뭘 먹고 사니?
먹여 줌을 먹고 산다고
꼭 어미들 같구나
그래 그래
불 물 나무 쇠 흙 해 달 공기
다 어미지
다 숟가락이지

목숨이 타고 가는 배 한 척이지 


시집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시인생각) 中

멀리 고향에 계신 어머니.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시고, 오늘은 아침 밥 한술 뜨셨을까요. 그저 먹여 줌을 먹고 살아가는 것. 이 세상의 어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그럴 테지요. 아무 욕심도 없이 우리를 배부르게 먹이고 살아가게 해준 어미는 물 불 나무 쇠 흙 해 달 공기에도 있군요. 그것들이 오늘도 우릴 먹이고 목숨을 살리니 고마운 어미, 고마운 숟가락입니다. 

김민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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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소설이 아니랍니다.

                ///김여선

주인공이 누구이며
어떻게 사랑이 시작 되었고
왜 이별을 해야하는지

시인의
마음을 해부하고
이야기를  구구절절 엮어내는 건

그건 그대가 쓰는 소설이지요

시는
삼류 소설을 쓰는
그대의 상상을 위해 쓰는 게 아니랍니다.

시는
한 컷의 사진이며
만인의 경험이자 인생입니다.

공감과 소통을 위해 태어난 생명입니다.

시는 아침 이슬처럼
손으로 잡으려하면 사라져버립니다.
그저 바라만 보아야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을 냅니다.

어떤 시인에게
물어도 대답은 같습니다.
‘詩는 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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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도미노일까요. 만다라일까요. 제 속에 알을 품고 있는 지 새는 몰랐다나요. 제 속에 새를 품고 있는 지 새 속의 알도 몰랐다나요.

 

새 속의 알 속의 새만 혀라는 것을 사용해 입술의 위치를 가늠해보고 있었다나요. 소름이 생겨난 때라나요.

신선함만큼 섬세함도 중요하죠. 홀쭉한 빛줄기에 매달린 어둠을 쪼았죠. 그럴수록 유려한 발목을 갖게 되는지는 모르면서요. 새를 닮은 그러나 새는 아니었던 바, 나는 부러지기 쉬운 발목과 죽음은 부드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조곤조곤 또박또박. 이런 화법을 가졌다면, 제 손으로 쓰러뜨린 도미노를 들어 한 장 한 장에 숨겨진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죠. 세상의 그림은 당신이 생각한 것처럼 되어있지 않다니까요. 당찬 언어로 그리고 말하죠. 물론 새는 뜻하지 않게 키우게 된 것인데, 중요한 사실은 알아서 찾아왔다는 사실.

깃에 기대어 죽는 바람의 명장면. 알 속의 혀가 입술의 위치를 짚어 보는 그런 명장면. 어쩌라고 알을 남기고 간 새가 있으니, 어쩌라고 나는 알은 처음 본 바가 아니니, 또 하나의 명장면은 임박한 것인가요. 알 속에서 새를 만나는 것은 나의 몫인가요. 알 속 알알알 소용돌이. 이미 퍼덕임은 시작되었죠. 물론 뜻하지 않게요. 에그. 에그머니! 독자일인은 이러려다 그만 두는 참.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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