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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제목은 참신하고 조화로워야...
2016년 06월 02일 23시 21분  조회:4101  추천:0  작성자: 죽림
[22강] 좋은 제목이란 어떤 것들인가


조태일님은 시의 좋은 제목이 가져야 할 덕목을
다음 몇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조태일님의 분류에 따
라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첫째-시 내용과의 조화와 통일성을 갖춰야 한다.

둘째-새롭고 참신한 것으로 독자의 관심과 호기심을
환기시켜야한다.

셋째-독자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상상력을 발동
시키게 해주어야 한다.

넷째-추상적이고 한정 범위가 넓은 것보다 구체적인
것이 좋다.

다섯째-제목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증폭시켜주는 것이
어야 한다.

1.제목은 시 내용과의 조화와 통일 성을 갖추어야
한다.

조화로움과 통일성은 미적 장치의 원리입니다. 잘
아시다싶이 시는 하나의 구조이며, 각기 부분적 요
소들이 모여서 서로 연결되고 조합되어서 이 구조를
형성합니다. 이 때 통일성과 조화로움이 구조를
이루는 중요한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구조는 "집합체"가 아니고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집합체"와 "전체"가 어떻게 들으면 같은 말인 것
같으면서도 아주 다른 말입니다. "집합체"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부분들을 모아놓은 것이지만 "전체"는
서로 필연적인 관련성이 있는 부분들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시는 각기 부분들이 생물체의 기관들처럼
서로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어 통일체를 이루어야
하므로 시의 제목은 주제나 의미, 정서, 분위기,
이미지 등과 서로 부합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시는 윤동주님의 <자화상>을
올려보겠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
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
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
이가 있습니다.

조태일님의 설명을 그대로 옮겨볼테니 마져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자화상>이란 제목은 위 시의 주제와 분위기를
잘 살려내는 데 아무런 손색이 없다. 다소 산문
적인 느슨하고 평범한 진술이지만 내용이 응집되
어서 탄력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자화상>이란
제목 덕분이다. 만약에 시인이 이 시의 제목을
<외딴 우물.이라든지 <한 사나이> <우물 속의 풍
경> <우물 속에 비친 모습> <응시> <우물 속을
들여다 보다가> <우물 속의 사나이> 등으로 다른
제목을 붙였다면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자화상>이
란 제목만큼 시적 주제나 의미들과 긴밀함을 유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째 설명을 들어보니 그럴 것 같지요? 아마 우리
거의는 나중에 예를 든 시의 제목을 선택했을 것
이 분명하거든요.


2.제목은 새롭고 참신한 것으로 독자의 관심과
호기심을 환기시켜야 한다.

전에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주장한 이론으로 낯
설게하기란 것을 배웠을 때도 이야기드린 적이 있
지만, 우리들의 일상적인 현실에서 매일마다 보는
것, 늘상 듣는 말 등은 우리들의 감각이나 정서를
집중시키지 못합니다. 이는 문학적 용어로 자동화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응한 생소화의 전략이야
말로 낯설게 하기인데요. 말하자면 무디어진 감각
경험에 충격효과를 줄 수 있는 참신성이 시의 내
용에서는 물론이지만 제목에서도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똑같은 소재와 주제를 다루더라도 제목이
주는 새로움 때문에 시의 맛이나 정서가 새롭게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예문으로 정호승님의 <누더기별>을 싣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눈길 위로
누더기가 된 낙엽들이 걸어간다
낙엽이 다니는 눈길 위로
누더기가 된 사람들이 걸어간다
그 뒤를 쓸쓸히 개미 한 마리 따른다
그 뒤를 쓸쓸히 내가 따른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내 인생이 편안해졌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비로소 별이 보인다
개미들도 누더기별이 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린다

좀 장황하기도 하지만 조태일님의 해설과 그의 시를
또한 예로 드는 것을 여러분이 참고하시기 좋게
올립니다.

"별을 노래하지 않은 시인은 진짜 시인이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별을 소재로 한 시, 별을 주제로 한 시,
별을 제목으로 한 시가 무수히 많다. 별이 가장
흔한 시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별은 더 이상 참신한
제목이 못된다. 그러나 위 시의 제목 <누더기별>은
"누더기"와 "별"이라는 이질적인 대상을 합성함으로
써 아주 새로운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시의 제목이 주는 참신성이나 새로움은 전혀
시적 정서를 불러 일으키기 어려운 제목에서도 생겨
날 수가 있다. 이런 경우는 그 제목이 주는 의외성
과 당돌함이 독자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며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필자가 쓴 연작시 <식칼론>
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내 가슴 속의 뜬 눈의 그 날카로운 칼빛은
어진 피로 날을 갈고 갈더니만
드디어 내 가슴살을 뚫고 나와서
한반도의 내 땅을 두루 두루 날아서는
대창 앞에서 먼저 가신 아버님의 무덤속 빛도 만나뵙고
반장집 바로 옆 집에서 홀로 계신 남도의 어머님 빛과
도 만나뵙고
흩어진 엄청난 빛을 다 만나뵙고 모시고 와서
심지어 내 남근 속의 미지의 아들 딸의 빛도 만나뵙고
더욱 뚜렷해진 무적의 빛인데도, 지혜의 빛인데도
눈이 멀어서, 동물원의 누룩돼지는 눈이 멀어서
흉물스럽게 엉덩이에 뿔돋는 황소는 눈이 멀어서
동물원의 짐승은 다 눈이 멀어서 이 칼빛을 못보나.

생각 같아서는 먼눈 썩은 가슴을 도려파 버리겠다마는,
당장에 우리나라 국어대사전 속의 <개헌>이란
글자까지도 도려파 버리겠다마는
눈 뜨고 가슴 열리게
먼눈 썩은 가슴들 앞에서
번뜩임으로 있겠다! 그 고요함으로 있겠다!
이 칼빛은 워낙 총명해서 관용스러워서
-조태일, <식칼론.3>-

위 시의 제목은 삭막하고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는
<식칼론>으로 붙인 것은 시를 쓸 당시의 정치, 사
회상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3선 개헌을 통해 영구
집권을 획책한 유신체제로 바뀌는 조짐이 보이자
여기에 대응하는 단호한 의지를 암시하기 위해
<식칼론>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미지의 제목을 붙이
게 되었다. 그러나 식칼은 우리들의 어머니가 부
엌에서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 때 사용되는 주방
기구이므로 전쟁에서나 혹은 사람을 죽일 때 쓰는
살인 검이 아니라 그와 대조되는 모성의 칼, 즉
활인검의 의미로 제목을 삼았던 것이다."

조태일님이 본인의 시를 예로 들고 그 제목에 대해
설명을 한 것처럼 이렇게 시의 제목 하나를 가지고
도 여러가지 관점으로 생각을 해서 붙인 것입니다.
저는 좀 다작을 하는 편이어서 시의 제목을 붙이
는데 여간 곤혹스러움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
나 시를 쭈욱 올렸을 때 클릭 수가 많은 것이 있고
눈에 띄게 적은 시를 보면서 아하, 이 것은 순전히
제목 탓이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럼 좋은 시 읽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심재휘님의 <구두끈을 매는 남자>입니다.

서소문 코오롱 빌딩 앞 횡단보도
낡은 신호등이 오늘은 먹통이다
명멸의 일생이 잠시 눈을 감는 동안
잰걸음으로 비둘기 한 마리
밥집 골목으로 들어간다
희미해진 횡단보도를 사람들이
슬금슬금 건너는 도심의 점심시간
눈이 한바탕 올 듯한 날씨에
하늘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사라진 꿈들이 서글프게
흩날리기 시작한다 좁은 하늘
그 높은 곳에서 이 넓은 거리를
자꾸 내려다 보는 이는
누구인가
횡단보도 한쪽 끝
사내 하나가
허리 굽혀 풀어진 구두 끈을 매고 있다
한껏 동여맨다 오늘따라
구두끈에 묶인 가족이
눈발에 춥다

다음은 서경온님의 <버려진 봄날>입니다.

쓰러진 담장이 있었다. 허물어진 우물가. 비가 새는
지붕 밑. 금이 간 아궁이가 보였다. 떨어져 나간
문짝, 텅 빈 외양간 옆이었다

온몸으로 불 밝히고 서서 살구꽃 환하게 피어 있었다.
주인 떠난 집. 버려진 봄날의 아름다운 SOS.
눈부시게, 눈물겹게......
손짓하고 있었다.


오늘 올린 시들은 제목이 어떤가 한번 보시기 바랍
니다. 시의 내용과 조화로우며 통일성은 갖추었는가
새롭고 참신하여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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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서서 자는 말 / 정진규
 
    
 
 
 
 
 

 
 
 

 
서서 자는 말
 

                                     정 진 규
  
내 아들은 유도를 배우고 있다
이태 동안 넘어지는 것만
배웠다고 했다
낙법만 배웠다고 했다
넘어지는 것을 배우다니!
네가 넘어지는 것을
배우는 이태 동안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았다
한 번 넘어지면 그뿐
일어설 수 없다고
세상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잠들어도 눕지 못했다
나는 서서 자는 말
아들아 아들아 부끄럽구나
흐르는 물은
벼랑에서도 뛰어내린다
밤마다 꿈을 꾸지만
애비는 서서 자는 말
 
 
정진규 시집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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