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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문학을 알아보다...
2016년 10월 31일 23시 34분  조회:5986  추천:1  작성자: 죽림

1918년 이전까지 체코족의 본향인 모라비아·보헤미아 지역은 독자적인 왕국을 이루었거나 주변 열강 영토의 일부로 분할되어 있었다. 체코 문학의 등장은 이 지역의 주민인 체코족이 역사적으로 주체성을 찾으려는 노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체코어로 씌어진 문서의 등장은 모라비아의 대공 로스티슬라프의 요청에 따라 863년 비잔틴 황제 미카엘루스 3세가 모라비아에 선교단을 파견한 일과 관련이 있다. 프랑크 왕의 정치적 비호를 받는 그리스도교도들이 서쪽으로부터 슬라브족의 땅 모라비아에 도착하자 모라비아의 대공 로스티슬라프는 프랑크의 영향력을 알아보기 위해 동쪽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주교이자 교사'인 인물을 구했다. 이 선교단은 키릴루스로 더 잘 알려진 노련한 학자이자 외교관인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동생 메토디우스가 이끌고 있었다. 이들 형제는 성서의 대부분과 중요한 전례서들을 키릴루스가 창안한 슬라브 문어로 번역했다. 키릴루스는 자신의 고향 살로니카의 슬라브 방언을 기초로 그밖의 언어, 특히 그리스어 및 모라비아 방언을 채용해 더욱 풍부한 문어를 만들어냈다. 이 고대 교회 슬라브어로 씌어진 가장 주목할 만한 문학적 업적은 이들 형제의 〈전기〉이다. 이것은 후대의 사본들만 남아 있으나 거의 확실히 900년 이전에 씌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들 형제가 선교활동을 한 그 땅에서 쓴 것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러나 10세기경에 쓰인 성 벤체슬라스(보헤미아의 군주 바츨라프:920~929 재위)와 그의 할머니 루드밀라에 관한 〈전설〉을 비롯한 다른 교회 슬라브어 문헌은 체코에서 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부터 등장한 라틴어 성자전들은 초기 보헤미아 공국 수도원의 중심지에서 이루어진 문학의 수준을 입증해주고 있다. 고대 교회 슬라브어는 1097년 라틴어가 보헤미아의 전례 언어로 쓰이게 되면서 사용이 중단되었다(성인전기학).

중세기의 문학

개요

남아 있는 체코어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3세기 후반에 씌어진 것이다. 프르셰 미슬 가문의 벤체슬라스 1세(바츨라프 1세:1253 죽음)와 오타카르 2세(1278 죽음)의 보헤미아 궁정에서는 독일어로 쓴 궁정문학을 장려했기 때문에 13세기말까지는 체코어로 씌어진 비중 있는 문학은 찾아볼 수 없다.

14세기에는 체코 문학작품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왔다. 14세기초에 씌어진 일군의 운문 '전설'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기교가 성숙했음을 보여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생애를 다룬 서사시 〈알렉산드레이스 Alexandreis〉는 최초의 세속문학이며 독일의 울리히 폰 에셴바흐가 쓴 알렉산드로스 서사시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체코어로 된 궁정시는 그다지 뛰어난 작품이 없으며, 그밖에 인상적인 서사시 〈달리밀 연대기 The Dalimil Chronicle〉는 체코족의 역사를 생생하고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다.

카렐 1세(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이기도 했음) 치하 보헤미아와 독일에서는 학문과 문학이 꽃을 피웠다.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작품으로는 시 〈성 카테리나의 전설 Legend of St. Catherine〉이 있다. 1350년경부터 산문 장르가 발달하기 시작해 성자전과 연대기, 그 다음에는 늘어나는 도시 중간계층을 위한 몇몇 인기 있는 중세 이야기체 시가 등장했다.

14세기말에 이르러서는 풍자시와 교훈시가 매우 뛰어난 독창성과 개성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익명의 풍자시 모음집인 흐라데츠 필사본과 파르두비체의 스밀 플라슈카가 왕권에 맞서 보헤미아 귀족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쓴 정치적 알레고리 〈신(新)귀족회의 Nová rada〉가 뛰어나다.

후스파 운동의 영향

14세기말 체코 문학에서는 사회적·도덕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슈티트니의 토마스는 체코어를 사용해 후스파 운동의 주요경향을 예고한 논문을 썼다.

얀 후스에 의해 추진된 이 종교개혁운동은 15세기 전반기에 보헤미아인들의 삶을 지배했다. 이 시기의 종교논쟁과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체코어 작품들이 대부분 실제적이고 논쟁을 위한 목적을 띠었다는 것은 당연하다. 후스가 문학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는 체코어로 설교하고 편지를 썼을 뿐 아니라 논문 〈보헤미아어 철자법 De orthographia Bohemica〉에서 주장한 체코어 철자법을 개혁했다는 데 있다. 후스파가 지은 단순하고 감동적인 찬송가들은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산물이었다. 후스파 전쟁은 바우첸 필사본에 실린 여러 편의 시와 많은 연대기, 그밖의 산문에 반영되어 있다.

얀 후스의 후계자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인물인 페트르 헬치츠키는 자신이 쓴 일련의 훌륭한 논문과 설교를 통해 급진적인 사회사상과 평화주의를 발전시켰다. 바로 헬치츠키의 사상을 토대로 보헤미아 형제단(Unitas Fratrum)이 발족되었다. 모라비아 교회의 원형인 이 분파는 다음 2세기 동안 체코 문학의 산실이 되었다.

16, 17세기 체코 문학

16세기에는 많은 양의 산문이 나왔는데 교훈적·학문적인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인문주의의 영향은 공인 역사가인 프세흐르디의 빅토린 코르넬이 쓴 우아한 문체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이 시기부터 나온 소규모 여행기들은 매우 흥미롭다.

체코 산문의 발전은 보헤미아 형제단 소속 학자들이 성서 번역작업을 통해 크랄리체 성서(1579~93)를 만들어내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 책의 언어는 고전 체코어의 본보기가 되었다.

1620년 빌라호라 전투에서 보헤미아의 프로테스탄트교도들이 합스부르크 군대에 패배한 후, 체코의 여러 지방이 합스부르크 제국에 통합되었고 프로테스탄트는 사멸했다. 귀족층은 거의 체코어를 알지 못하는 새로 온 사람들로 대체되었다. 체코 문학의 전통은 단지 망명귀족들 사이에서만 유지되었는데, 망명가들 중 얀 아모스 코멘스키(요한네스 아모스 코메니우스)가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다. 라틴어로 쓴 교육과 신학 문제에 관한 그의 저서와 체코어로 쓴 작품은 유럽적인 시각을 갖춘 작가·사상가로서의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세계의 미궁과 마음의 낙원 Labyrint svĕta a raj srdce〉(1631)은 체코 산문문학의 진수로 꼽힌다. 한편 예수회 교도의 몇몇 작품도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베드르지흐 브리델의 시와 보후슬라프 발빈의 라틴어 작품이 뛰어나다. 발빈은 조국의 과거를 연구하고 체코어를 옹호함으로써 애국심을 보여주었다.

18세기초에는 보다 높은 문학적 목적을 띤 작품은 사실상 체코어로 쓰지 않게 되었다. 조야한 체코어로 씌어진 드라마와 통속소설이 나왔을 뿐이나 민요를 포함해 농민들의 불만을 강하게 표현한 체코 시들은 인기가 있었다.

18, 19세기 체코 문학

18세기에 들어 역사주의와 복고적 취향이 불어닥치자 체코의 많은 학자들이 조국의 고대 문학과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합스부르크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정부의 중앙집권화 경향에 대한 당연한 민족적 반발로서 보헤미아 애국주의가 부활했고, 지방 귀족들의 자체 권력에 대한 관심으로 더욱 활기를 띠었다. 요세프 도브로프스키는 부활한 체코 문학어를 집대성했고 고대 체코 문학사를 쓰면서 이제껏 간과되어왔으나, 후대 문학가들이 따르게 될 양식을 밝혀주었다. 그 자신은 라틴어와 독일어로 글을 썼으나 운문체 연감을 남긴 안토닌 야로슬라프 푸흐마예르 등 몇몇 작가들은 다시금 체코어를 사용했다.

이와 동시에 18세기말의 사회적·정치적 발전으로 체코 문학을 수용할 대중들이 형성되었다. 1786년부터 프라하에서 체코어 희곡들이 공연되었고 도시의 발달로 형성된 새로운 중간계층을 겨냥해 바츨라프 마테이 크라메리우스가 펴낸 신문 등 근대 체코 저널리즘이 대두되었다.

도브로프스키는 체코어를 집대성하는 데 만족했으나 요세프 융만은 체코어를 근대적인 문학어로 만들기 위해 그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착수했다.

그는 밀턴의 〈실락원 Paradise Lost〉을 번역하는(1811) 등 번역작업을 통해 이를 실현했으며, 무엇보다도 기념비적인 체코어-독일어 사전(1835~39)을 펴내 결실을 보았다. 프란티셰크 팔라츠키 역시 체코 문화의 부흥을 가속화했는데, 그의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역사서는 고전 체코 문학의 마지막 걸작이었다.

일부 슬로바키아 사람들도 체코 문학 부흥에 이바지했다. 그중 얀 콜라르의 풍유적인 소네트 연작 〈슬라브족의 딸들 Slávy dcera〉은 부활한 체코어로 쓴 최초의 중요한 작품이다.

이 시기에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은 〈크랄로베 드부르 사본 Rukopis Královédvorsky〉·〈젤레나 호라 사본 Rukopis Zelenohorsky〉이다.

여기에 실린 시는 중세초에 쓴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비양심적이면서도 재능 있는 바츨라프 한카 등의 시인들이 만들어낸 위작이다. 비록 18세기말에 위작임이 밝혀지긴 했지만 이 두 작품은 남부 슬라브인들의 민중시를 모방한 낭만적인 시의 본보기로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모든 체코의 시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낭만주의 시인을 들자면 카렐 히네크 마하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서정시, 산문 단편들, 서정적 서사시 〈5월 Máj〉(1836) 등은 바이런과 윌터 스콧 경, 그리고 폴란드 낭만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강렬한 시적 통찰력과 완벽한 언어 구사는 더욱 돋보인다.

낭만주의에 대한 반동이 1840년대의 많은 작가 사이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카렐 하블리체크 보로프스키와 보제나 넴초바 같은 작가는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쏟은 산문의 거장으로서 체코의 산문을 한층 더 일상어에 가깝게 접근시켰다.

하블리체크는 정치 저널리스트로서 합스부르크가의 절대주의에 맞서 체코 민족의 권리를 대변한 비판적인 기사와 훌륭한 풍자시를 남겼다. 특히 유배지에서 죽기 직전에 쓴 〈라브라 왕 Král Lávra〉·〈티롤의 비가 Tyrolské elegie〉·〈성 블라디미르의 세례 Křest svatého Vladimíra〉 등이 대표작이다. 체코 문학에 중요한 공헌을 한 최초의 여성인 보제나 넴초바는 〈할머니 Babička〉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단편 속에 시골생활을 그린 이 작품은 정확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견고하면서도 체코 산문에서는 새로운 개성적인 언어가 뛰어나다.

하블리체크와 넴초바, 그리고 인기 있는 시인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 등의 작품은 1850년대에 정점에 이르렀고 부활된 체코 문학의 낭만주의 단계인 19세기 전반기에서 후반기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했다. 이 후반기에 작가들은 더 넓어진 독자층을 위해 글을 쓰면서 다른 유럽 문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가치 있는 문학을 수립하려 애썼다.

1858년 〈5월〉이라는 연감이 출판되었다. 마하를 기념해서 헌정된 이 책에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실려 있었는데 그중에서 얀 네루다와 비테슬라프 할레크가 출중하다. '5월' 그룹에서 중요한 소설가는 카롤리나 스베틀라(요한나 무자코바)인데, 19세기초 프라하 사회와 북부 보헤미아 시골을 다룬 그녀의 장편소설은 주제와 구성 면에서 낭만주의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나 심리를 분석하는 데 상당한 재능을 보여준다.

도덕적·사회적인 문제와 특히 19세기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가 그녀 작품의 주된 주제이다. 아돌프 헤이두크도 이 그룹의 후원을 받으면서 문학에 발을 내디뎠다. 그의 애국적인 시, 특히 체코 민족과 슬로바키아 민족의 연관성에 영감을 얻어 쓴 시들은 시대의 시련을 가장 잘 딛고 일어선 작품이었다.

1870년대에 이미 시와 소설 장르는 완전히 확립되었으나 드라마는 아직 그렇지 못했다.

문단은 〈루미르 Lumír〉·〈루흐 Ruch〉라는 잡지를 중심으로 명확히 두 그룹으로 갈라졌는데, '루미르' 그룹은 체코 문학의 유럽화를 강조했고 '루흐' 그룹은 민족적 전통과 주제를 중시했다. 세계주의 경향을 띤 '루미르' 그룹의 주도적 인물은 체코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야로슬라프 브르흘리츠키(에밀 프리다)였다.

그의 서정시는 놀랄 만한 언어 구사력을 보여주며, 최고 걸작을 담은 역사적 서사시들은 방대한 전집을 이루었다. 또한 그는 많은 유럽 작품을 번역함으로써 무엇보다도 큰 영향을 끼쳤고 그 자신 근대 체코 시어의 형성에 이바지했다. 역시 '루미르' 그룹 작가인 율리우스 제예르는 신낭만주의 서정시와 서사시를 통해 세계주의적인 사상을 표현했다. 그러나 자서전적인 요소가 많은 〈얀 마리아 플로이하르 Jan Maria Plojhar〉(1888)를 비롯한 그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더욱 독창적이다.

'루흐' 그룹의 중요인물은 스바토플루크 체흐인데 조국과 전통에 대한 사랑과 자유주의적 인간애에 기초한 작품을 썼다.

그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의 하나인 〈보리수 그늘 아래서 Ve stínu lípy〉는 체코의 시골생활을 목가적으로 그렸다. 한편 그는 풍자적 산문을 통해 체코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인물 브로체크를 창조했다. 체코의 장편소설은 세기말에 들어서 사실주의적인 묘사가 두드러졌다. 이 경향은 알로이스 이라세크와 지크문트 빈테르라는 2명의 중요한 장편역사소설 작가의 작품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미스트르 캄파누스 Mistr Kampanus〉 같은 빈테르의 장편소설은 역사가로서 행한 활동의 부산물이다. 두 사람 모두 체코의 역사를 낭만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세부복원 작업은 학문적 연구에 기반을 두었다. 이라세크의 장편소설은 자기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체코의 전 역사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의 성숙한 기교는 민족 쇠퇴기를 다룬 장편소설 〈암흑 Temno〉에서 가장 빛난다.

1890년대에 이르러 시에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는데 더욱 섬세한 내용과 복잡한 형식의 서정시가 안토닌 소바에 의해 산출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는 2명의 주목할 만한 시인 오타카르 브르제지나(바츨라프 예바비)와 페트르 베즈루치(블라디미르 바셰크)가 걸작을 선보였다.

브르제지나는 섬세하고 독창적인 언어로 개인적인 신앙을 표현했다. 자유시적 운율을 포함한 그의 운율구조는 후대의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베즈루치는 지방주의적인 시인으로, 그의 작품은 대부분 슐레지엔의 체코 민족이 당한 억압을 다루고 있다. 민족부흥이라는 낭만적 이상주의에 대한 1890년대의 비판적 반동은 T. G. 마사리크의 역사적·사회적 저작에 영향을 주었다. 문학비평에 대한 더욱 세련된 접근은 프란티셰크 크사베르 샬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조국의 위대한 작가들에 대한 그의 섬세한 해석은 필적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1918년 이후 체코 문학

1918년 독립 체코슬로바키아가 수립되면서 체코의 작가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맞이했다. 이 시기부터 체코 문학이 거둔 가장 훌륭한 성과는 특히 서정시의 극단적인 다양성이다.

체코 드라마도 제자리를 찾아 카렐 차페크의 이상주의적이고 풍자적인 희곡과 다재다능한 프란티셰크 랑게르의 희곡이 나왔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야로슬라프 하셰크는 〈훌륭한 군인 슈베이크 Osudy dobrého vojáka Svejka za svĕtové války〉(1921~23)라는 장편연재소설을 시작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를 배경으로 한 이 풍자소설은 폭넓은 찬사를 받았다.

프라하의 생활을 다룬 사실주의적 소설은 카렐 마테이 차페크 호트의 작품과 이그나트 헤르만의 가벼운 작품으로 성공적으로 다듬어졌으나 체코의 이야기체 산문은 개성이 매우 뚜렷한 3명의 작가들, 카렐 차페크, 이반 올브라흐트(카밀 제만), 블라디슬라프 반추라에 의해 절정에 달했다. 차페크는 섬세한 심리학적 분석인 웨일스 환상곡과 3부작 〈호르두발 Hordubal〉(1933)·〈유성 Povĕtro〉(1934)·〈평범한 삶 Obyčejny život〉(1934)·〈핵의 판타지 Krakatit〉(1924)·〈영원과의 전쟁 Válka s mloky〉(1936) 등을 썼다. 그의 최고 희곡은 중앙집권화된 20세기 기계사회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있는 〈R.U.R.〉(1920)·〈곤충의 놀이 Ze života hmyzu〉(1921) 등이다. 그의 〈R.U.R.〉를 통해 로봇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도입되었다. 그의 후기 희곡은 평화주의 대신 애국적 의무를 받아들이고 있다.

올브라흐트가 가장 성공을 거둔 작품은 루터교의 전통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반추라는 복잡하고 개성이 강한 문체로 성공을 거두었다. 얀 오트체나셰크의 장편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많은 소설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다. 전쟁중에는 심리학적인 소설이 바츨라프 르제자치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절정에 올랐다. 1948년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르제자치 등 많은 작가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수용했으나 오히려 문학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1960년대초에 정치적 통제가 느슨해지자 요세프 슈크보레츠키, 밀란 쿤데라, 루드비크 바출리크의 장편소설과 보후밀 흐라발과 아르노슈트 루스티크의 단편소설, 미로슬라프 홀루프의 시, 이반 클리마와 바츨라프 하벨의 희곡 등이 곧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정력적인 개혁가 블라디미르 파랄 같은 다른 작가들은 국내에서 비판적인 성공과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1968년 소련군이 침공해오자 이 가운데 많은 작가들이 해외에서 명성을 떨치면서도 국내에서는 탄압을 받았다. 많은 작가들이 서유럽으로 망명했고, 쿤데라와 슈크보레츠키는 문학의 주제와 처리를 선택함에 있어서 민족 혈통을 버리지 않은 채 망명국에서 곧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의 문학은 197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출판된 대부분의 작품보다 질적으로 우수하다. 같은 기간에 외국에서는 20세기 체코 문학이 이룩한 가장 뛰어난 업적에 대해 뒤늦게 관심을 보였다.

요세프 호라, 프란티셰크 할라스, 비테슬라프 네즈발,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가 2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 쓴 서정시가 특히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까지 생존한 세이페르트는 자신의 후기 시가 영어 및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 것을 보았다. 그는 198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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