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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쓰는것이 돈벌이 된다면 어렵다는 말은 사라질것이다...
2016년 11월 01일 21시 08분  조회:3612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6년 11월 01일 07시 20분 ]

 

후난(湖南)성 이장(宜章)현 츠스(赤石)향, 공중에서 바라본 루천(汝郴) 츠스(赤石)대교의 웅장한 모습

10월 27일 후난(湖南)성 이장(宜章)현 츠스(赤石)향, 공중에서 바라본 루천(汝郴) 츠스(赤石)대교의 웅장한 모습

 

교량 건설에서 7가지 "세계 제일(최고)"을 기록한 호남 여침고속도로 적석대교.
ㅡ 호남성 상서주 길수시 왜채진에서. 



좋은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최동호 


4. 새로움과 옛스러움 


세상살이 변화가 격해질수록 옛 것은 빨리 사라져 간다. 옛 것을 돌이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격언은 이제 그 효용성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새로움에만 집착하는 것이 최근 사람들의 심적 동향이다. 
'새 것 콤플렉스'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20세기 한국은 새로운 것을 추구했고, 그 결과 20세기 말에는 경제적 도약을 성취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우리가 재빨리 버리고자 했던 것들 속에 사실은 오늘의 경제적 기적을 이루게 하는 문화적 코드가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반문해 볼 시점에도 이른 것이다. 

이런 생각은 물론 과거로 돌아가자든가 과거의 것이 좋다는 폐쇄적 보수주의에 의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진정 새로워지려면 과거로부터 우리의 문화적·정신적 뿌리로부터 새로움이 터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되새겨 보자는 것이다. 과거의 것이 과거 그 자체로 되풀이될 때 그것은 새로움을 추동하기보다는 과거의 속박이 될 것이요, 새로움이 새로움 그 자체일 뿐일 때 그것은 알맹이 없는 새 껍데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음미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시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 소재가 옛스러운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옛스러움을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시를 쓰고 싶은 시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옛스러움을 살리기 위해서 오히려 옛스러움의 고착성을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귀향]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사람들은 이토록 슬픈 눈이 내리면 
시골집의 난로와 따뜻한 아랫목을 이야기한다. 
토끼몰이나 눈썰매 타던 일을 자랑하며 마음속에 고향의 난로를 
다시 피우는 것이다. 
쌓인 눈을 털어 내고 
낡은 문을 열면 어머니가 반가이 맞아 주신다고, 

옛날 나의 집 사립문은 늘 열려 있었다. 
눈 내리는 날은 
저 쌓인 눈을 밟고 반가이 가족이름을 부르며 
누군가 와 주기를 얼마나 목메었던가? 

몇 마리 까치가 울고 
매서운 바람이 늙은 소나무 위로 넘어가면 
눈 내리는 나의 하루는 그리움으로 저물어 
땟국물 절은 이불 속으로 야윈 몸을 숨긴다. 
- [귀향] 

위의 시를 읽고 있으면, 이 시가 초고속통신망이 세계를 감싸고 있는 오늘날에 쓰여진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는다. 먼 옛날 전설의 고향 시대의 추억 한 토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위의 시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과거는 모두 아름답다는 회고적 성향 때문일까. 또는 현실에 패배하고 과거로 복귀하려는 퇴행적 사고 때문일까. 

어떻든 이런 소재를 가지고도 위의 시가 가진 정태적 복고 취향이 아닌 시골 풍경을 어떻게 살려내는가가 우리들의 관심사이다. 우선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위의 시의 작자가 독자에게 심정적 호소를 매우 직접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 1 연의 '이토록 슬픈 눈', 제 2연의 '얼마나 목메었던가', 제 3연의 '그리움으로 저물어' 등등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나 이유보다는 당연히 모두 그럴 것이라는 주관적 판단에 의해 서술된 것들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특히 오늘의 독자들은 왜 '이토록 슬픈 눈'이 내리는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혼자만의 슬픔이라면 모르지만, 시란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슬픔을 공감하도록 할 때 하나의 작품으로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슬픔으로 인식될 때 슬픔은 그 슬픔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작자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시의 서두에서 '고향의 난로'를 피워 놓았다. 시골집의 사립문은 늘 열려 있다고, 누군가로부터 이름 불리워지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저물어 가는 하루 동안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리움을 이 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그리움은 그러므로 작자는 '목메이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을 위한 서술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리움을 말하고 표현하는 방법의 상투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좀더 개성적이기 위해서는 '쌓인 눈', '낡은 문', '매서운 바람', '늙은 소나무' 등의 관형어구들 또한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따져 읽어보면, 누구나 감지할 것이다. 이러한 관형적 표현들에서 우리는 새로움보다는 고착된 과거의 정서를 느끼는 동시에 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기다림 또한 진부한 기다림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땟국물 절은 이불'에서 작자는 조금 고심했을 것이다. 삶의 땀냄새가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 좋을지 나쁠지 선뜻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여겨진다. 

오히려, 나에게 말하라면 이런 표현들이 좀더 적극적이고 생동감 있게 살아나야 된다고 지적하고 싶다. 누군가를 소리내어 부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부름을 기다리며 하루종일 그리움으로 자신을 야위게 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좀더 분명히 말해 두고 싶은 것은, 이러한 소재나 그 속에 담긴 그리움 그 자체는 그것대로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작자의 고심과 처리 능력에 따라 새로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두들기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시골집을 떠올리고 고향 난로와 더불어 그리움을 말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낡은 것도 아니다. 선배 시인들이 많이 다루었을 법한 소재를 자기 발전이 없이 그들의 상당수가 사용한 어법 그대로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인해 옛스러움의 품격을 살려내지 못하고, 퇴행적 상투성으로 마무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크게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귀향]에서 읽을 수 있는 기다림을 간직한 작자에게 우리는 인간적 신뢰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그 신뢰가 농촌 공동체 시대에 통용되었던 인간적 유대감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과연 이 시의 작자에게 어머니와 가족이 없다면 어떠할까. 아마도 그것이 새로운 시대 우리들의 시적 화두가 될 것이다. 



5. 시 쓰기의 괴로움과 즐거움 

위에서 우리는 가급적 비판적 시각에서 몇 가지 예를 검토해 보았다. 위의 시를 썼던 분들에게는 아마도 지나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만큼 시적 감정을 정돈하고 마무리한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시를 써 본 사람들의 시 쓰기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시 쓰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양자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말이 아닐까. 아마도 잘 쓰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변명을 후자 쪽에 포함시켜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간단하다. 재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연습량이 문제이다. 불면의 밤들을 보내지 않고, 남을 흉내내어 한 두 번 시도하다 안되면 잘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시 쓰기가 출세의 수단이 되거나 돈벌이의 방법이 된다면 어렵다는 말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을 들여 전념한다 하더라도 쉽게 좋은 시가 쓰여지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방황과 좌절에 빠지기도 할 것이며, 때로는 스스로 흥분하여 환호작약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쓰기는 그것이 어떤 세속적 보상과 관련이 없다는 점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금방 보상이 주어지는 일이라면 누구나 쉽게 매달릴 것이지만, 동시에 또한 싫증나기도 쉬울 것이다. 

세속적 보상도 없고, 뜻대로 잘 되지도 않지만, 끝내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 시 쓰기에 자기 생존을 건다면, 그는 분명히 좋은 시를 쓰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칭찬보다는 웬만한 비판과 질책에도 끄덕도 하지 않는 강한 의지가 발동할 때 그 사람의 시 쓰기는 제대로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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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빙의 아버지 ― 이수익 (1942∼ )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랑이 사이로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 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化身)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을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오늘처럼 추운 겨울날, 한 중년 신사가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이때 자동차를 타고 있는지, 전철을 타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무심히 한강을 바라보다가, 커다란 얼음 조각들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얼음 조각들이 마치 아래의 자잘한 물살들을 품어주는 커다란 등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커다란 등. 그것은 이 중년 신사에게 몹시 익숙한, 그러나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를 불러왔다. 어린 시절의 그는 외풍이 심한 집에 살았지만 추운 겨울에도 아버지의 체온으로 따뜻할 수 있었다. 이러한 추억이 떠오르면서, 한강이 순식간에 아버지로 변신하는 부분은 참 놀라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덕택에 중년의 신사는 오늘의 한강교 위에서 다시금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마법 같은 회상의 순간은 중년 신사의 건조한 일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예전의 아버지가 아들의 언 발을 녹여 줬던 것처럼 말이다. 부자들만 유산이 있을까. 한강의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아들은 좋은 기억, 훌륭한 유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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