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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 록의 왕 - 최건도 음유시인 아니다?... 옳다...!
2016년 11월 10일 00시 25분  조회:3542  추천:0  작성자: 죽림

한 시대의 비가, 최건의〈한 쪼각의 붉은 천>

김 관 웅

 

 

차례:

1.       최건의〈한 쪼각의 붉은 천〉의 텍스트 소개

2.〈한 쪼각의  붉은 천〉의 상징적의미

3.〈한 쪼각의  붉은 천〉과 “문화대혁명”의 상호 텍스트성

4.  최건의 〈한쪼각의 붉은 천〉을 둘러싼 찬반 량론의 대립

5.  최건의 락음악이 우리들에게 주는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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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건의〈한 쪼각의 붉은 천〉의 텍스트 소개
 

최건(崔健)의 락음악(摇滚) 창작을 크게 전후(前后) 두 단계로 나누어 볼수있다.

첫번째 단계는 주로 1986년에 창작된 〈내가 모르는것 아니다(不是我不明白)〉,〈새 장정길에서의 락(新长征路上的摇滚)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从头再来)〉,〈더는 덮어감추지 않으련다(不再掩饰)〉,〈탈출(出走)〉 , 〈빈털털이(一无所有)〉등이다. 이 단계의 주요한 특점은 정신 대동란시대의 곤혹, 방황, 배회, 사색 및 자유에 대한 갈망과 추구를 표현하였다.

두번째 단계는 1990년 이후인데 이 시기에는 보다 높은 예술 수준으로 중국인들이 극좌정치로선의 통치하에서 겪었던 경력과 운명을 보여주었는데, 이 시기의 대표작은〈한 쪼각의 붉은 천(一块红布)〉이다.

그 가사 원문과 조선어역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那天是你用一块红布      그날 당신은 한 쪼각의 붉은 천으로

蒙住我双眼也蒙住了天    내 두 눈을 감싸주었고 하늘도 가려놓았네
你问我看见了什么        당신이 나를 보고 무얼 보았는가 물었을 때
我说我看见了幸福        난 행복을 보았다고 대답했었지


这个感觉真让我舒服      그 감각은 정말로 나의 마음 편안케 하여
它让我忘掉我没地儿住    내가 살곳이 없는것도 잊게 했지
你问我还要去何方        당신이 또 어디로 가겠는가 나한테 물었을 때
我说要上你的路          나는 당신이 가는 길로 따라가겠다고 대답했네.


看不见你也看不见路      당신도 보이지 않았고 길도 보이지 않는데
我的手也被你攥住        나의 손은 당신의 손에 굳게 잡혀 있었네
你问我在想什么          당신은 내가 무얼 생각하는가 나한테 물었를 때
我说我要你做主          나는 당신은 나의 주인이 돼주어야 한다고 대답했네


我感觉你不是铁          내 느낌에 당신은 무쇠덩이가 아니였지만
却像铁一样强和烈        무쇠처럼 강하고 뜨거웠네
我感觉你身上有血        내가 당신의 몸에 피가 흐르고 있음을 느꼈음은
因为你的手是热呼呼      당신의 손이 뜨거웠기 때문이였네
我感觉这不是荒野        난  그곳은 거치른 들판이 아니라고 느꼈고
却看不见这地已经干裂    그 땅덩어리가 말라서 갈라져있음을 발견하지 못했네
我感觉我要喝点水        난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可你用吻将我的嘴堵住    당신은 키스로 나의 입을 막아버렸네


我不能走我也不能哭      내가 더 갈수도 없고 울수도 없었음은
因为我身体已经枯干      내 몸은 이미 말라버렸기 때문이였지.
我要永远这样陪伴着你    내가 영원히 그대로 당신을 그냥 따르려 했음은
因为我最知道你的痛苦    당신의 고통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네.

 

이 가사에서 시적화자 “나”는 “당신”에 의해 두 눈이 붉은천에 의해 가려진 채로 행복감에 젖어서 “당신”이 끌고가는 대로 따라간다. “나”는 “당신”이 영원히 “나”의 주인으로, 상전으로 되여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목이 말라서 물을 먹자고 해도 “당신”이 키스로 “나”의 입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온몸이 다 말라서 빈사상태에 이르지만 “나”는 “당신”의 고통을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영원히 “당신”을 모시고 따르겠다고 한다. 이 가사의 겉에 드러난 표면적인 의미는 이처럼 명백하고 단순하다.

그러나 〈빈털털이〉와 마찬가지로 이 〈한쪼각의 붉은 천〉은 세상에 나타난 후에 즉각 광범한 공명을 일으킴과 동시에 치렬한 반대를 받았다. 그것은 찬양파나 반대파 모두 마치나 약속이나 한듯이 이 가사가 갖고있는 상징적의미를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해석의 방향이 정반대이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2.〈한쪼각의 붉은 천〉의 상징적의미
 

그 자체로 다른것을 대표하는 사물이나 현상 일체를 상징이라고 한다면 이 가사는 수사학적 의미에서 국부적인 상징이 아니라 작품 전체가 하나의  상징체계를 이룬다. 즉 가사중의 “한 쪼각의 붉은 천”, “거치른 들판”, “나”,”당신”,  “물”이나 “당신은 키스로 나의 입을 막아버렸네”와 같은 개별적인 심상이나 시행만 상징성을 갖고 있는것이 아니라 가사 전체, 즉 텍스트 전체가 상징성을 갖고있다는 말이다.

어느 때부라고 꼭 찍어 말하기는 어려우나 “붉은 색”은 중국에서 결코 일종 색채의 의미만 갖고있은것은 아니였다. 많은 경우에 “붉은 색”은 신앙이나 리상이나 추구를 상징하였는바 “홍색 중국” , “동방홍”, “오성 붉은기”, “홍보서(红宝书)”, “붉은 색의 바다(红色海洋)”, “붉디붉은 붉은 태양이신 모주석”……이 모든것은 온통 “붉은 색”으로서 “붉은 색”은 희망을 상징하고, 혁명을 상징하고, 행복을 상징했다. 그러나 중국인민의 정치생활과 정신생활에서 “붉은 색”의 범람으로 인하여 생겨난 홍색환각은 생명의 나무의 초록색이나 바다나 하늘의 푸른색이나 수확계절의 황금색이나 빙설세계의 흰색 등 다른 색깔에 대한 감응력이 쇠퇴하게 되였고 심지어 공포감까지 생겨나게 되였으며, “붉은 색” 자체의 진위(真伪) 및 그 다양성에 대한 분별능력마저 잃게 되였다. 특히 “붉은 색”이 범람하는 이런 와중에서 림표, 4인방 같은 정치간상배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팔아먹은 것은 홍색상표를 붙인 저질품이나 짝퉁들이였다.  비록 이들이 가짜산품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뛰여났으나 “문화대혁명”중에 나타났던 홍색 대범람은 홍색캡슐속에 넣은 정치독약과 정치몽혼약의 대범람이였다.

이런 정치독약이나 정치몽혼약을 달갑게 받아먹은 수많은 중국인들은 이 “홍색의 바다”에서 처음에는 “행복을 보았고”, “정말로 마음 편안 감각”을 갖게 되였다. 수천수억의 중국인들은 손에 붉은 모주석어록책을 받쳐들고 붉은 태양을 우러러 “모주석 만세 만만세”를 목이 터지라고 부르고 뜨거운 눈물을 좔좔  흘리면서 “살곳이 없는것도 잊은채” “모주석이 이끄는 길”로 천방지축 따라나섰다.

하늘과 땅이 온통 붉은 색으로만 도배되여 그만 그 청일색의 붉은 빛깔로 하여 현운증을 일으켜 까무라칠번 했지만 그 때는 이미 “나의 손은 당신의 손에 굳게 잡혀 있”었던 터라 도망칠래야 도망칠수 없었고 또한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당신이 내가 무얼 생각하는가 나한테 물었를 때/나는 당신은 나의 주인이 돼주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당시 이른바 “민주(民主)”란 무었이였던가? 바로 혁명의 수령이 인민의 주인으로 되여주는것이였다. 혁명의 수령이 인민들의 주인으로 되여 주지 않으면 인민들은 바람에 나붓기는 여린 풀처럼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방향을 잡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민주”였다. 문화대혁명 당시 전국에 널리 퍼졌던 〈큰 바다에서의 항행은 조타수에 의지하네(大海航行靠舵手)〉라는 노래가 이 점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大海航行靠舵手          큰 바다에서의 항행은 조타수에 의지하고

万物成长靠太阳          만물이 자라남은 태양의 덕분이네

雨露滋润禾苗壮          비와 이슬이 적셔주어 곡식들이 자라고

干革命靠的是毛泽东思想。혁명은 모택동사상에 의지해야 하네.

鱼儿离不开水呀,        고기는 물을 떠나 살수 없고

瓜儿离不开秧。          호박은 넌출을 떠나 열릴수 없네

革命群众离不开共产党,  혁명군중은 공산당을 떠날수 없고 

毛泽东思想是不落的太阳。모택동사상은 지지 않는 태양이라네.

 

그런데 갑자기 그 조타수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고 태양도 서산으로 기울어지려고 하고 비가 내리지 않는데 어찌 이슬이 맺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마른 목을 추기려고 물을 좀 먹으려고 했으나 “당신”은 혁명적인 키스로 “나”의 입을 막아버린다. 어떻게 하랴? 기진맥진한 사람들은 분분히 “물”을 찾으려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국, 카나다 후에는 서독, 호주, 그 다음에는 일본, 벨지크……그러나 “나”는 떠나려고 하지도 않고 울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나”의 몸이 말라서 비틀어졌고,  “나”는 “당신”의 고통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이러한 “노예근성”, “복종심리”, “짝사랑 콤플렉스”는 중국인, 특히는 지식인들의 수천년 동안 내려오면서 형성되였던 비극성격이였다. 력사가 지식인들을 거듭 짓밟고 우롱하였으나 그들은 언제나 묵묵히 참고 견디여왔다. 력사가 그들에게 조금만 사과를 해도 그들은 눈물코물 흘리면서 감지덕지해 했다. 최건의 〈한쪼각의 붉은 천〉은 이러한 중국 지식인들의 인격의 비극을 가장 준확하게 그려냈으며, 동시에 “붉은 천”이라는 이 상징부호를 동원하여 수억의 인민들이 눈먼 망아지처럼 워낭소리 듣고 따라가듯이 혁명수령을 그릇된 로선을 맹종하여 전 중국이 온통 혁명과 계급투쟁의 아수라장으로 되였던 한 단락의 력사의 내함에 대한 전반 중국인들의 비장한 심리체험을 반영하였다.

최건의〈한쪼각의 붉은 천〉이르러서 중국의 상흔음악은 사상예술상에서 고봉에 오르게 되였으며, 이 노래는 가장 심각한 한 시대의 비가(悲歌)라고 평가 받고 있다. 최건의〈빈털털이〉와 〈한쪼각의 붉은 천〉은 일종 문화 력량으로서 음악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미술, 영화, 희곡, 무용 심지어 문학마저 추월해 버렸음을 표징한다.

 

3.〈한 쪼각의  붉은 천〉과 “문화대혁명”의 상호 텍스트성

 

탈구조주의리론중의 하나의 중요한 리론범주가 바로 “상호 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다.  문학텍스트는 하나의 독립적이고 페쇄적인 계통이 아니라 다른 계통과 밀접란 상호 련관성을 갖고있다는 주장이 “상호 텍스트성” 리론이다. 하나의 문학적텍스트라는 기호체계를 문화라는 큰 기호체계속의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면 개별 문학작품을 사회의 문화와 떼여놓고 다루던 형식주의나 구조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그것의 사회문화적의미화의 과정을 보다 전면적이고도 준확하게 파악할수 있다.

최건의 〈한 쪼각의 붉은 천〉이 갖고있는 상징적의미를 보다 전면적으로 그리고 준확하게 파악하려고 하면 반드시 중국에서 혁명수령의 개인권위, 혁명수령에 대한 개인숭배가 극에 달하였던 문화대혁명의 실상과 이 가사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상호 텍스트성”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중국력사는 물론이고 세계력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수 없는 “문화대혁명”의 발발은 모택동의 개인의 주장, 개인의 의지와 직접적련관성이 있다. 모택동은 중국인민을 령도하여 중국을 도탄속에서 구원한 중국인민의 대구성인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택동 같은 절세의 위인도 중국의 수천년의 봉건전통의 관성속에서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였다. 특히 수깁년의 혁명전쟁 가운데서 점차 수립되여온 모택동의 절대적인 권위는 점차 당내에서 모택동의 일언당(一言堂)으로 나타나게 되였으며, 이는 봉건사회의 제왕의 권위와 별다른것이 없게 되였다. 주지하다시피 민주주의의 지고한 원칙은 “공화(共和)”의 원칙으로서 이는 혁명수령의 절대적권위와는 수화상극이다.

1966년 8월, 모택동은 중화민족을 심중한 재난속에 빠뜨려넣은 이른바 “문화대혁명”을 발동하였다. 비록 우리들이 지금 돌이켜보면 황당하기 그지없었던 대소란이였진만 광범한 중국인민, 특히는 당년의 청년세대들은 추호의 거짓도 없는 진실한 신앙을 갖고 이 동란속에 주동적으로 뛰여들었다는 점이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마치도 하늘의 수많은 행성들이 태양을 따라 돌듯이, 마치도 지상의 수천만 송이의 해바라기들이 태양을 따르듯이 중국의 수천만의 홍위병들은 붉은 홍위병완장을 두루고 붉디붉은 붉은 태양 모택동, 붉은 사령 모택동을 따라나섰던것이다.

“문화대혁명”의 주력군이였던 수천수백만의 홍위병들은 얼마나 경건하고 유치하였던가. 모택동이 한번 명령만 내리면 그들은 피를 흘리고 목이 날아날지언정 자기의 청춘과 정열을 모조리 “문화대혁명”의 제단우에 바칠 각오를 갖고있었다. 중국의 청년들은 너무나도 천진하고 너무나도 불쌍했다. 그것은 그들의 이런한 경건함과 뜨거운 정열은 지극히 우매하고 비인간적인 천방야담식의 활극들이 중국땅에서 비일비재로 벌어지게 하였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작가 량효성(梁晓生)의 회억록 《한 홍위병의 자백》중의 한단락을 인용하기로 한다.

 

“모주석이 명령만 내리면 우리들은 오대양에 뛰여들어가 자라를 잡고, 구천에 날아올라 룡을 잡으며 전 세계의 제국주의, 수정주의, 반동파들을 향해 최후의 돌격전을 벌릴 각오를 갖고있었다. 빠리를 산산쪼각 내고, 뉴욕을 짓밟아 버리고, 런던을 해방하고 모스크바를 광복시키며, 크레물린궁의 붉은기를 빼앗아 북경으로 가져다가 천안문성루우에 꼽으려고 했다. 그리고 레닌의 수정관을 빼앗아 북경으로 옮겨와 천안문광장에다 모시려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뜨거운 피로 새로운 세계를 붉게붉게 물들이려고 생각했다. ……”

 

지금의 시점에서 본다면 이는 순전히 잠꼬대 같은 소리이고 미치광이의 과대망상증이지만 이는 확실히 그때 수천만 나젊은 홍위병들의 공동한 리상이였다. 당시 홍위병들은 마치도 몽혼약을 먹은 사이비종교의 신도들처럼 리성을 잃고 날뛰였다. 그들은 문화대혁명을 하지 않으면 중국은 필연코 붉은 색깔이 변하고 천백만의 사람들의 머리가 땅바닥에 나뒹굴게 되며, 세계의 3분의 2의 로동대중들은 지옥속에서 살고 있기에 자기들이 해방시켜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중국의 홍위병들은 처음에는 문화대혁명의 도구로 되였다가 종당에는 문화대혁명의 희생품으로 전락하였다. 수많은 홍위병들이 학업을 전페하고 무단적인 투쟁에서 붉은 피를 흘리면서 목숨을 잃었고, 종당에는 시골로 변강으로 쫓겨가게 되였다. 중국의 수천만 홍위병 세대는 10년이란 귀중한 청춘의 세월을 문화대혁명이란 이 제단우에 제물로 고스란히 바치고 말았다.

중국의 봉건전통의 뿌리에서 뻗어나온 전제주의, 몽매주의, 개인미신, 종법사상 등은 중국인들의 뿌리 깊은 맹종, 노예근성, 복종심리, 유치함과 결합하여 “문화대혁명”이라는 이 전대미문의 10년 동란을 불러왔던것이다. 절대적권위를 갖고 있는 혁명수령이 친히 발동하고 그 혁명수령을 무조건적으로 따랐던 수천만의 중국인들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대재난이고 일장 악몽이였다. 최건의 〈한쪼각의 붉은 천〉에서 서정적자아인 “나”는 혁명수령을 맹종하였던 수천만 중국인들의 상징적형상이고, “당신”은 혁명수령의 상징적인 형상이라고 해석해도 대과(大过)는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개괄한다면 “문화대혁명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령의 제왕사상과 공화(共和)원칙의 겨룸이였고 수령의 절대적권위와 당의 민주력량간의 겨룸이였다. 그런데 전자가 승리하고 후자가 패했다.”[①]

최건의〈한쪼각의 붉은 천〉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이 한 시대의 비극을 가장 심도 있게 표현한 가사이다.

 

4.      최건의 〈한쪼각의 붉은 천〉을 둘러싼 찬반 량론의 대립
 

최건의〈한쪼각의 붉은 천〉은 창작된 후에 전국적으로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다. 우선 문화대혁명을 겪었거나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이 노래를 소리 높혀 긍정하였다.

 

“나는 오랜 지식청년이다. 처음 최건의 〈한쪼각의 붉은 천〉을 들었을 때 깊이 감동되였다. 솔직하 말한다면 붉은 색은 우리 같은 당년의 지식청년들에게 있어서 그 감수가 너무나도 깊다. 붉은 색은 당시 우리들의 신념과 리상의 상징이였다. 문화대혁명 당시 무력충돌이 일어났는데, 나의 제일 친한 동학이 자기 홍위병조직의 붉은 기발을 지키기 위해 대방이 내리치는 칼에 십여곳이나 찔려 선혈이 랑자하였다. 그가 흘린 피도 붉은 색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미욱한지 모르겠다. 그뒤로 나는 붉은 색만 보면 온몸이 불편해졌고 구역질이 났다. 그래서 나는 붉은 색을 보지 않으려고 우리 집안의 모든 문과 창문을 모두 흰 페인트로 칠했다. 붉은 색은 일장 악몽이였다. 〈한쪼각의 붉은 천〉은 정말 잘 썼다. 심도가 있다. 삼십도 안된 그가 어떻게 이런 심도있는 작품을 창작했는지 정말 불가사의하다. 나는 최건의〈한쪼각의 붉은 천〉과 〈빈털털이〉는 그의 작품들중에서 가장 력사 심도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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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梁晓生 《凝视九七》,经济日报出版社,1997年,제 265페지.
[1] 赵健伟 《崔健在一无所有中呐喊 - 中国摇滚备忘录》, 北京师范大学出版社, 1992년, 제263페지.

“나는 대학생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나는 짜개바지를 입고있었으니 그 시대의 사정을 모른다. 그러나 필경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어제날의 일이므로 우리들 역시 그 력사의 그림자의 영향에서 벗어날수 없다. 내가 최건의 〈한쪼각의 붉은 천〉을 처음 들었을 때 우선은 그 비극적인 풍격에 감동을 크게 받았다. 〈빈털털이〉와 마찬가지로 이 노래에도 일종 비장미가 흘러넘친다. 이런 비극적 미가 갖고있는 힘은 〈우리의 생활을 꿀보다 달콤하네〉같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노래만 들어오던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최건의〈한쪼각의 붉은 천〉과 〈빈털털이〉는 그 비할바 없이 진솔한 마음의 소리와 비장한 힘으로 단꺼번에 우리들의 심금을 크게 울렸다.”[③]

 

중국에서는 그 누구도 최건의 락음악을 홍보해 주지 않았으며, 각종 행정수단으로 강박적으로 들으라고는 더욱 하지 않았다. 최건은 중국 대륙에서 유일하게 관변측의 전파매체를 타지 않고 대성한 가수이다. 이 자체는 일종 문화반역정신의 상징으로서의 최건의  락음악은 진정으로 인민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하여 왔음을 보여준다. 최건의 락음악은 우리들에게 시대와 동보적으로 전진하고 인민대중과 운명을 같이 하면서 인민대중에게 사상내용이 심각하고 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선물해야만 인민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물론 최건의 〈한쪼각의 붉은 천〉은 일부 좌적사상을 갖고있는 사람들로부터 “자산계급자유화”의 산물이라는 비판과 부정을 받기도 했다. 이를테면 1990년 6월 26일, 중국의 한 저명한 로시인은 중국문화계의 최고장관의 신분으로 최건의 〈한쪼각의 붉은 천〉의 가사를 거론하면서 “자산계급 자유화”라고 부정하기도 했다.[④] 이에 대해 최건은 조금도 숙어들지 않고 자기를 변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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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상서 제263페지.
[1] 동상서, 제264페지를 참조하라.

“저의 부친은 공산당원이고 저의 모친은 공청단원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려서부터 사회주의환경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 무슨 자산계급으로 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자유를 추구하려는 념원이 있는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유는 종래로 인류사회가 추구하는 종극적임 목적중의 하나가 아닙니까.” [⑤] 

 

“저는 중국문화속에 마땅히 이런 개념을 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매개 사람들은 모두 위대하다는 개념 말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마다 자기는 독립적존재로서의 의의를 갖고 있고 그러한 기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갖도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복종하려고만 하는 그런 사람이 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복종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을 질식시켜 죽이고 자기가 날로 왜소해지게 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기의 창조력을 압살하게 됩니다. 한 사회가 진보할수 있는 원인은 매개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창조력과 위대한 일면으로 그 사회를 부각시키고 만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락음악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인식하는 면에서 일정한 기여가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⑥]

 

최건은 이처럼 개성이 뚜렷하고 자시의 소신을 속이는 법이 없이 당당하게 주장하여 왔다. 최건의 락음악의 선률과 가사에는 모두 이러한 개성의식이 뚜렷하게 표현되여 있는것이다.

최건은 최근 몇년동안은 영화제작에 정열을 쏟고있다. 《북경잡종(北京杂种)》(1993), 《나의 형제자매(我的兄弟姐妹)》(2004), 《태양은 여전히 솟아오른다(太阳照常升起)》(2006)에는 배우로 출연했고, 《처녀막 재생 년대(修复处女膜年代)》(2006), 《성도여, 나는 너를 사랑해(成都我爱你)》下集(2009),《푸른 뼉다귀(蓝色的骨头)》(2010)등에서는 감독을 담당했다. 우리들은 최건의 영화창작에서도 락음악의 창작에서처럼 큰 성취를 쌓아올리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5.      최건의 락음악이 우리들에게 주는 계시
 

최건의 이른바 “요우꾼(摇滚)”은 20세기 5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미국에서 류행한 대중통속음악의 일종인 락(rock)의 영향하에서 생겨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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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상서, 제11페지.
[1] 동상서 제272페지.

주지하다시피 락은 미국의 당대 통속음악으로서 어쩌면 가장 선명한 포스트 모던적인 예술양식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최건은 당시 중국에서는 가장 전위적인 예술가라고 평가할수 있다. 

그러나 최건은 단순히 미국의 락음악의 이 형식을 중국에 이식(移植)하는데만 머물지 않고 락이란 이 양식에 중국 1980년대의 시대적정서를 접목시킴으로써 그 시대를 살았던 중국인들의 마음의 목소리를 대변할수 있게 하였다. 바로 이런 까닭에 그의 락음악은 전 중국을 열광시킬수 있었던것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최건의 락음악을 극력 반대하는 사람들도, 극력 지지, 성원하는 사람들도 모두 사회적측면에서, 정치적측면에서 그의 락음악의 상징적의미를 파악하고 해석하였다. 이는 최건의 락음악은 결코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예술”,  ”시대를 위한 예술”,  “인간을 위한 예술” 그리고 최건 본인이 극력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는 정치적요소가 다분한 예술이였음을 알수 있다.

설사 최건이 본인이 자기의 락음악의 정치적경향성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고 해도 수용미학의 각도에서 볼 때 수용자들은 필연적으로 최건의 락음악에 자기의 주관적인 정감과 생각을 가미하게 되는 법이다. 수용미학의 각도에서 볼때 최건의 락음악이 국내국제적으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게 된것은 커다란 적인 영향은 확실히 국내외에서의  최건의 락음악의 영향은 그 정치적영향이 음악적영향보다 더 컸던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다. 그것은 락음악 역시 일종 정신적인것으로서 정신적인것에는 필연적으로 정치 혹은 신앙적요소가 가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 중국을 진동시켰던 최건의 락음악과 사회, 시대, 인간, 정치와 밀접한 련관성을 생각할 때마다 필자는 자연스럽게  몇년전에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우리 문단의 개별적인 사람들이 탈정치, 탈사회, 탈시대, 탈민족의 탐미주의적인 문학주장을 머리속에 떠올리게 된다.

사실 서양의 모더니즘문예운동에는 형식주의적인 실험적요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결코 탈정치, 탈사회, 탈시대, 탈민족적인 탐미주의의 단일구조로 이루진것은 결코 아니였다. 이를테면 표현주의소설가 카프카의 많은 작품은 근현대문명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소외를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왔고, 실존주의철학가이며 문학가인 사르트르의 많은 작품들 역시 자본주의문명사회의 부조리와 황당성 그리고 이러한 부조리와 황당한 사회속에서 자기의 본질을 선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의 고통과 곤혹을 보여주었으므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한 탐미주의와는 인연이 없다.

우리문단에 최근 년간에 나타난 탐미주의문학경향은 결코 자신의 독창적인 창조는 아니며 백여년전의 서구에 나타났던 탐미주의의 힘 빠진 메아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스스로 대단한것처럼, 아주 새롭고 신선한 것으로 착각하지만 전반 인류문학예술의 발전사의 맥락에서 본다면 아무런 20세기 말 21세기에도 연장되고 있는 중국조선족문단에서의 이른바 “탐미주의”나 “모더니즘”이나 “실험문학”들은 별로 신선한 감도 주지 못한다. 마치도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낯익은 제비들이 돌아온것(似曾相似燕归来)”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탐미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와 영국에서 한때 류행했던 문예사조로서 문학예술은 그 스스로를 위하여 있는것이므로 도덕적, 정치적, 민족적, 사회적 그리고 기타의 비예술적표준에 의하여 판단수 없다는것이 근본 립장이였다. 문학예술의 독립성을 강조한 면에 있어서, 문학예술을  문학예술 이외의 다른 분야의 속박에서 해방시켜주려고 하였다는 측면에서 탐미주의는 나름대로의 존재의 리유와 일정한 합리성을 갖고있다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일정한 도를 넘으면 모두 자기의 합리성을 상실해 버리게 된다. 탐미주의가 도를 넘어서 문학예술과 모든 기타 분야와의 련관성을 완전히 부인하면서 문학과 예술이 현실생활의 모습이나냄새를 멀리하면 할수록, 현시대 인간들의 희노애락과 담을 높게 쌓으면 쌓을수록 더 순수하고 아름다워진다고 주장할 경우에는 자기의 존재의 합리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문학예술은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의 일종 대화이고 일종 심령의 소통이고 정감의 교류와 공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남에게 보이지 않는것을 전제로 하는 “일기 쓰기”나 자기 침실안에서 창문을 꽁꽁 닫아놓고 자오자락(自娱自乐)을 목적으로 하는 “노래 부르기”와는 달리 무릇 대중매체에다 발표를 전제로 하는 문학예술행위는 본질적으로 개인적행위가 아니라 사회적행위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문학이 준엄한 격변기에 처한 우리민족의 어려운 실존상황을 외면하고 오로지 탐미주의적인 언어실험이나 이미지조합이나 유치한 환상세계에서만 소요하게 된다면 그런 문학예술은 조만간에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될것이다.

그것은 문화는 민족의 혈맥이고, 인민대중들의 정신적고향이며, 문학예술은 민족정신의 홰불이기 때문이다. 결코 단순히 개인적취미와 개인적기호에 좇아 영위되는 언어실험이나 상아탑속에서의 순개인적인 상상이나 몽환속에서의 잠꼬대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이후 최건의 락음악이 한동안 전 중국의 수많은 청중들을 열광케 한 이 사실은 우리들에게 문학예술은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인간들의 희노애락을 외면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것을 알려주고 있다.

 

 

 

 

                         2011년 12월 13일 연길 자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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