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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상각 / 김관웅 / 조성일 / 허동식
2016년 11월 10일 00시 29분  조회:3856  추천:0  작성자: 죽림

리상각 시백의 창작경향의 변화양상을 론함

김관웅 연변대학 교수


목차

 1. 들어가는 말

 2. 향토적 서정시와 정치적 리념에 립각한 송가의 창작시기(1950년대 중반 - 1980년대 초반)

  3. 자연, 인간 례찬의 랑만주의적 창작경향의 시기(1980년대 초반 -1990년대 중반까지)

  4.  시적 풍격의 변화시기와 사실주의적 경향의 대두시기 (1990년대 중반-현재까지) 

  5. 마무리는 말

--------------------------------------------------


 1. 들어가는 말

  리상각 선생님은 중국조선족시단의 원로시인이다. 리상각 선생임은 현대자유시, 가사, 시조뿐만 아니라 수필, 민간문학수집정리, 문학편집, 문학신인 양성 등 여러 면에서 중국조선족의 문학발전을 위하여 한평생 자신의 정열을 불태우고 필생의 노력을 경주한 분이다. 리상각 선생님은 1980년 처녀시집 《샘물이 흐른다》로부터 시작하여 근간시집 《뼈다귀》와 수필집《그대는 달》에 이르기까지 지난 28년 동안에 30권에 달하는 시문집을 출간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근년에 들어서서 리상각 선생님은 고희를 넘기셨지만 여전히 로익장을 과시하면서 많은 시집, 수필집들을 정력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2006년 한국학술정보에서 펴낸《리상각시전집》전부 5권을 비롯하여 2000년에 펴낸 시조집 《에밀레종》, 2007년에 펴낸 풍자시집《뼈다귀》, 2005년 한국 신성출판사에서 펴낸 미니인생수필《가난이 사람을 가르친다》, 2008년에 펴낸 수필집《그대는 달》등 이루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모님이 병환에 계시고 선생님 자신의 건강도 여의치 않은 상황 하에서도 이처럼 부지런히 필경을 하시고 이렇게 많은 시문집들을 펴내셨다는 점은 젊은 우리들을 놀라게 한다.

  나는 리상각 선생의 저선시집 《달빛이 내린다》의 시평에서 선생임의 총체적인 창작경향을 “땅을 딛고 하늘을 우러른 시인” 이라고 평가한 적 있다.즉 리상각 선생님의 시 창작을 비롯한 전반 문학창작에는 고전주의, 랑만주의, 사실주의 그리고 일부 현대주의로서의 상징주의적 요소도 혼재해 있다. 현실을 관심할 뿐만 아니라 리상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창작경향 혹은 시학주장을 《동정호를 지나며》(1983년)에서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백 식 랑만주의와 두보 식의 사실주의를 겸비하기 위해 노력한 시인이라고 할수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리상각 선생의 창작경향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바 있는데 이 평가는 리상각 선생님의 전반 창작에도 두루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본론문은 리상각 시백의 반세기에 달하는 문학창작의 궤적을 스케치 식으로 그리면서 주로는 그 장작경향의 변화양상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2. 향토적 서정시와 정치적 리념에 립각한 송가의 창작시기(1950년대중반 - 1980년대초반)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 특히 정치적인 속박이 강하던 시기에 많은 작가나 시인들은 그 시대의 시대적인 정신이나 세류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리상각 시인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기에 리상각 시백은 많은 향토서정시와 애정시 그리고 당시의 정치적 리념에 립각한 송가들을 창작했다.  <수박밭에서>, <나리꽃>, <여름은 좋아요>, <풍년메나리>, <당을 따르는 마음>, <찬송>, <칼리브해는 노호한다>, <윁남인민과 함께>, <빨래하는 처녀>, <4.5운동의 영웅들을 노래하노라>, <산에도 그이 사랑, 들에도 그이 은정>,  등 인데, <빨래하는 처녀> 가 습작기의 애정시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맑은 냇물은 깨끗한 강바닥을 
쉼 없이 가는데
무더운 여름철 냇가에서 
꽃 같은 처녀 빨래를 하네

방치소리 찰딱찰딱 
산으로 마을로 찰딱찰딱 
비누거품은 분주히 흩어지고 
처녀의 얼굴 냇물에 어리네

그러나 처녀는 모른다네 
시원스레 내려치는 방치소리 
총각의 마음을 건드리는 줄 
찰딱 소리 총각을 애태우는 줄

     - 리상각 <빨래하는 처녀> 전문


  이런 시들은 시적 정서의 단순성, 서정의 직설성, 창작기법의 단순성 등 습작기의 특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당과 수령을 노래하고 사회주의를 노래하는  송시들은 리상각 시백만이 아니라 당시의 대부분 시인들의 단골제재였다. 리상각 시백의 경우에 <산에도 그이 사랑, 들에도 그이 은정>이 바로 이러한 송시의 한 전형이다.

모아산 푸른 고개 꽃피는 고개
주 총리 다녀가신  행복의 고개
넘어갈 적 넘어올 적 그 은정 못 잊어
과원도 이 마음도 한없이 설레이네

신풍벌 넓은 벌은 기름진 들판
주 총리 다녀가신 기쁨의 들판
푸른 하늘 저 끝까지 금물결 넘치니
오늘도 그이 말씀 귀전에 울려오네

산에도 그이 사랑 주렁진 열매
들에도 그이 은정 황금의 파도
살기 좋은 이 강산에 낙원을 꽃피워 
천만년 그이 유지 길이길이 빛내가리

        - 리상각 <산에도 그이 사랑, 들에도 그이 은정> 전문


  현실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인민대중의 정신세계와 밀착된 진실한 감정과 서정은 시의 생명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많은 송가들은 허위적인 랑만주의로 진실한 감정의 다각적인 표현을 대신하였다. 리상각 <산에도 그이 사랑, 들에도 그이 은정>은 한 시인이 그 시대를 초월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그 단적인 실례이다.  

  3. 자연, 인간 례찬의 랑만주의적 창작경향의 시기(1980년대 초반 - 1990년대 중반까지)

  조성일선생의 지적하신 것처럼 “리상각선생은 1950년대 중반에 문단에 데뷔하여 문화대혁명시기까지는 다른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그 시대의 풍조에 따라 정치리념적인 ‘송가’창작에 집착했다.”1)그러다가 개혁개방의 력사시기에 들어서서는 아름다운 산수자연을 노래하고 향토정서와 인정미를 노래하는 서정시의 창작에로 전향하여 많은 수작들을 창작하였다. 노래말이기는 하지만 이 시기의 리상각 선생의 자연향토적 랑만주의적 풍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두루미>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랫말은 아름다운 선율의 날개를 달고 중국조선족사회에 널리 전파되였다. 


깨끗한 압록강 모래섬 가에 
백설 같은 두루미 하얀 두루미 
떼지어 내려앉네 깃을 다듬네 
맑은 물에 흰 몸을 씻고 또 씻네

뒤맵시 앞맵시 보아달라고 
이 다리 저 다리 껑충거리며 
마주섰다 돌아섰다 하는 그 모양 
오고가는 배손들의 흥을 돋구네


   개혁개방 이후의 리상각 선생님의 시 창작경향에 대해 한국의 황송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이상각 시인의 경우, 그는 사실주의를 중시하지만, 그의 시는 본래 사실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그는 미적이며 조화적인 시세계를 중요시한다. 추악하고 불쾌한 부분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 문학과는 판이한 성격의 시세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 사실주의에 있어서 벨린스키의 지론에 접근되어 있으면서도 이미지를 중시하는 전경화(前景化)라든지, 객관사물에  주관적 정서를 투사하는 방식을 보면 랑만주의의 요소도 있어서 전통적인 시적요소에 현대적 요소도 가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2)    

   나는 리상각 선생의 저선시집 《달빛이 내린다》의 시평에서 선생임의 총체적인 창작경향을 “땅을 딛고 하늘을 우러른 시인” 이라고 평가한 적 있다.즉 리상각 선생님의 시 창작을 비롯한 전반 문학창작에는 고전주의, 랑만주의, 사실주의 그리고 일부 현대주의로서의 상징주의적 요소도 혼재해 있다. 현실을 관심할 뿐만 아니라 리상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창작경향 혹은 시학주장을 《동정호를 지나며》(1983년)에서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 리상각 시인은  주관적으로는 이백 식 랑만주의와 두보 식의 사실주의를 겸비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에 의하면 개혁개방 초기로부터 지난세기 90년대 중반이전까지 리상각 선생의 창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는 향초인정적인 요소가 다분한 랑만주의적 경향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했다고 인정한다. 리상각 선생의 전반 시창작과 수필창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고전주의와 랑만주의적 요소로서 그 일생의 창작을 관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고향에 대한 향수, 부모에 대한 그리움, 님에 대한 사랑을 토로하거나 전원풍경과 자연산수나 그리고 토속적인 민속민풍을 노래한 향토정서가 짙은 랑만주의적 시나 수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시나 수필들에서는 미사려구나 현란한 기교를 일부러 배제해버리기나 한 듯 일상의 입말 같은 꾸밈없는 시어로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들을 노래하고 있다. 필자는 리상각 시인의 이러한 질박한 향토적인 랑만주의적 성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 적 있다. 

  “성장을 하고 번화가에서 활보하는 도시녀성의 세련성과 화려함도 인정해야 하지만 치마고름을 입에 물고 입만 방긋하는 시골녀인의 수집음과 질박함도 아름다움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리상각 선생님의 시조나, 시나 수필에서 느낄 수 있는 미는 바로 후자하고 생각한다.”

  이런 랑만주의적 경향의 시나 수필들에서 나타는 감정표현의 방식은 흔히 직설적이다. 이를테면 서정단시 <어머니의 손>, <실개울>, <한복> 같은 작품들에 서 잘 보여 진다. 그렇다고 이런 랑만주의 시문들이 다 무기교인 것은 아니다. <집안의 해> 같은 시에서는 안해라는 낱말에 “집안의 해”라는 창조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 단순성과 명료성 속에서  재미나는 시어의 창조 및 참신한 의미부여를 함으로써 상큼함 맛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게 한다.


우리 집안의 해 
당신을 나는 안해라고 부른다 

당신이 내 곁에 있으면 
집안이 환해진다.

당신이 훌쩍 떠나면
집안이 캄캄해진다

   - 리상각 <집안의 해>


  이와 같은 시적 주제는 수필집 《그대는 달》에서 더욱 확장되고 부연되고 있다. 이 수필집은 한국 황송문 교수님의 말을 빌린다면 “아내에게 바치는 사랑의 노래”이다. 리상각 선생님에게 있어서 김세영 사모님은 단테에게 있어서의 베아트리체 같은 녀성이고, 페드라르카에 있어서 로라 같은 녀성이다. 리상각 시나 수필에서 김세영 사모님은 현실적인 안해이면서도 구원(久遠)의 여성상이고 또한 리상 중의 여상상이다. 그래서 리상각 선생님은 1행시 <안해>에서 “내 안해는 모나리자보다 더 이쁘다”고 했던 것이다.

  랑만주의문학에서의 직설적인 감정표현을 반대한다고 하여 서정시에서 감정을 추방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서정시의 핵은 영원히 감정(情)이다. 감정표현을 떠난 서정시는 서정시가 아니다. 서정시에서 상징성 회화성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강조하다나머지 감정표현을 포기해서는 절대 안 된다. 서정시에서 상징성 회화성은 정감표현의 수단으로 되어야 하지 목적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리상각 선생님의 랑만주의적 성향을 띤 시작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심미적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4. 시적 풍격의 변화와 사실주의적 경향의 대두시기 (1990년대 중반 -현재까지)

  1990년대 중반 이후 리상각 시백의 리상각 선생의 시적풍격에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은 시적인 소재와 주제 면에서 선행시기의 시들보다 넓고 깊어졌다. 이 시기에 들어와서 리상각 시백은 인생을 관조하고 반성하는 시적인 주제들을 많이 다루었다. 이런 시들에서는 청빈을 고수하는 안빈락도의 선비정신의 향기가 풍기고 현실의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비판, 풍자가 넘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런 시들은 90년대 중반이전의 향토적인 랑만주의적 경향의 시들과는 달리 시의 형식 및 기교 측면에서도 보다 높은 원숙(圓熟)함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가급적이면 직설적인 표현을 지양하고 이미지를 통해 상징적으로 시적인 주제를 표현하고자 객관사물에 자신의 사상과 정서를 부여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력연히 드러난다. 랑만주의적인 감정의 여과 없는 직설에서 탈피하여 가급적이면 이미지화를 통해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암시적으로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도처에서 보인다. 그의 <허수아비>(1997)에서 이 점을 잘 보아낼 수 있다.


한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제가 할 일은 다 한다 
한 마디 말이 없어도
두려워하는 자 있다

허름한 옷을 입을 걸치고도 
추위와 배고픔을 모른다

밤낮 외롭게 지내지만 
욕심도 불평도 없다

팔 벌린 채 먼산 바라보며
세상을 우습게 안다

     - 리상각 <허수아비> 전문


  명리를 위해 촐랑거리고 분주히 설치는 소인배들이 득실거리는 인간속세를 랭철하게 바라보면서 자기의 “살아가는 법”을 직설이아니라 논이나 밭에 서있는 허수아비라는 이 객관사물을 빌어서 표현한 수작이다. 부동의 침묵의 미학에 남루함과 기아를 초탈하는 안빈락도(安貧樂道)의 청빈사상 및 독립오세(獨立傲世)의 도고한 삶의 자세를 상징적 수법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부귀공명을 탐하는 현실속의 속인들을 우숩게 아는 처사(處士)의 풍모를 허수아비라는 이 이미지를 빌어서 표현한 점은 리상각 시백의 대단한 시적안목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의 “낯설게 하기”의 한 성공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시상(詩想)은 만고풍상을 겪고 난 후의 초탈에서 오는 깨달음에서 연유하는 것이며 아울러 시인의 시 창작에서의 보다 높은 예술적 경지에로의 승화이다. <파도>(1997), <일몰>(2001), <물잠자리>(2003), <침묵>(2004),  <우뢰>(2002) 등 시작들은 시적 발상, 시적주제나 시적 표현 등 여러 면에서 <허수아비>와 일맥상통한 수작이다. 이 중에서 <파도>(1997)만 보기로 하자.

높이높이 쌓아올리다 
스스로 마구 무너뜨린다 
죽기내기로 주먹을 쥐고 달리다 
기슭에 부딪쳐 부서진다 
목이 터져라 웨치다 
자기소리를 삼켜버린다 

날개를 저었으나 날지 못하고 
접었다 폈다 하다 팽개치고
푸른 기발을 날리다 찢어버리고
주먹을 휘두르다 쓰러지고
칼날을 세웠으나 베지 못하고

달리다가 다시는 돌아서지 못 한다 
달리는 것 같지만 제 자리를 못 떠난다 
소리소리 외친 뒤 끝에 남은 게 뭐든가 
내 삶의 파도여 가련한 발자취여 
오늘도 만들고 마스고 솟구치다 무너진다

              - 리상각 <파도> 전문


 이 시는 파도라는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부각하다가 마지막에는 류추련상을 동원하여 자신의 인생과 관련지어 놓는다.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본 뒤의 일종 달관의 경지나 자신의 일생에 대한 진실한 반성과 참회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이런 고차원의 시를 쓸 수 없는 것이다.

  이 시기 리상각 시백의 문학창작에는 랑만주의적 성향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실을 관심하고 현실에 참여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사실주의적이고 참여문학적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리상각 선생의 현실참여적인 경향은  근년에 펴낸 풍자시집 《뼈다귀》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이점에 대해 조성일 선생님은 시인으로서의 리상각의  창작궤적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문단에 데뷔하여 문화대혁명까지는 주요하게 리념적인 송가 창출에 집착하다가 개혁개방의 새로운 력사 시기에 진입하여서부터는 자연과의 친화력, 향토정서와 인정미가 흘러넘치는 서정시의 창작에로 전향하여 큰 성과를 올렸다면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시의 필봉을 풍자에 돌려 현실의 부조리와 삶의 모순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우리 시단에 시와 삶, 시와 현실의 간격을 허용치 않는 풍자시의 장을 열어놓았다.” 

  <유령의 공소>는 우리당의 력사에 있었던 반민생단투쟁과 문화대혁명에서의 좌경로선의 피해를 직설적 수법으로 반영하고 있고, <부러워라 나는 력사학자>에서는 마음대로 력사를 자기의 리익에 좇아 왜곡하고 뜯어고치는 기이한 사회현상을 반어적인 수업으로 비꼬고 있고, <일몰>은 상징적인 수법으로 현실의 암흑과 부조리와 비리와 맞서 싸우면서 광명을 지향하는 서정적 자아의 격정을 표현하고 있다.


우주의 지붕을 
화려하게 장식하더니
높푸른 하늘을 죄다 걷어간다
급급히 지평선너머로 
꺼져가는 일몰

마지막으로 가물거리는 
작은 초불 하나 

캄캄한 세상을 훔쳐보다가 
락조는 사라지고
초불은 꺼지고 
해는 천만길 어둠속으로 
미끄러져내려간다 

절망도 한순간 
공포도 한순간 

평화의 고요한 밤은 다가온다 
달콤한 꿈자리
사랑의 밤은 온다

아름다운 어둠을 두고
몸부림치며 사라져간 일몰
오늘의 일몰은 다시 오지 않는다

빨갛게 타던 
그 작은 초불 하나만
내 가슴안에 들어와
나를 괴롭힌다

눈부신 새 하늘 탄생을 위하여 
아 피를 토하며 우는 
밤새 한 마리

   - 리상각 <일몰>


  이 시에서는 현실사회 속에 존재하는 암흑면을 일몰후의 “캄캄한 세상”에 비기면서 비록 가냘프기는 하지만  “가물거리면서 빨갛게 타는 작은 초불”처럼 어둠 속을 밝히고, 새 하늘의 탄생을 위하여 “피를 토해 우는 밤새 한 마리”로 되려는 시인의 심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치렬한 현실인식을 갖고 있는 리상각 선생은 사회의 페단과 현실의 비리와 부조리에 비폭로, 비판, 풍자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성일 선생은 이 점에 대해 이미 전면적인 분석을 하였다.

  “이 시집에 수록된 풍자시들의 주제적 성향을 유심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양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중 주요한 것들만을 간추려내면 혼탁한 세상에 칼질하기, 위정자들에게 물 먹이기, 도덕적으로 추락된 인간들을 비꼬기, 사랑의 기만허울을 발가벗겨 창피주기 등이라고 할 수 있다……이를 테면 <거목의 꿈>, <백설문답>, <가령>, <량심>, <하늘꽃>, <비를 다오>, <벼락편> 등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편들은 ‘안팎으로 썩어간 마음들이 어린애 기저귀조차 오염’시키는 어지러운 세상, 그리고 사나운 야수와 온갖 세균, 독종들이 횡행하는 세상에 우의개세(寓意慨世)의 정서를 쏟아내면서 그것들을 쓸어 눕히고 전멸시킬 <혹한의 빙하기>가 도래하고 ‘대살 같은 비’가 내리고 ‘어둠을 사르는 번개’가 치라고 대성질호하고 있다.   ”1)

  확실히 리상각 시인은 이러한 경향은 탈현실, 탈정치, 탈이데올로기, 비공리, 탐미주주의적인 시학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는 판이하다. 최룡관씨는 최근 10년 가까운 동안에 이른바 “시 실험”이나 “시 혁명”을 부지런히 호소하다가 요즘에는 자신의 탐미주의적인 시학관을 공개적이고도 아주 명료하게 내놓았는데. 아래의 인용문에서 그 일단을 보아낼 수 있다.

 “시는 의미를 전달하여 누구를 교육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그려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정말 좋은 시는 민족의 한계, 국경의 한계, 당파의 한계를 받지 않는 인류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다. 문학의 시대와 정치시대는 다르므로 시는 어떠한 이데올로기에도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시는 인생을 파고드는 일이며 자연의 섭리를 파고드는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시는 현실에서 오지만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현실의 중복도 복사도 아닌 비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을 초월한 환성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시의 핵심은 변형인데 변형을 떠난 시는  3류의 시로는 될 수 있지만 결코 차원 높은 시로는 될 수 없다고 믿는다. 시의 목적은 시일뿐이다. 시인이 시외의 다른 목적을 가질 때는 시가 타락하는 때라고 믿는다…”2)

  최룡관 씨의 이런 탐미주의적인 시학관의 잣대로 재면 이러한 현실관심, 현실참여, 현실 비판의 리상각 선생님의 시들은 “3류의 시”로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리상각 선생님의 시는 현실관심, 현실참여, 현실 비판의 사실주의적 정신이 넘치는 시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작품들에는 오늘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일종 보편적인 정서를 체현하고 있는 것이다. 

  리상각 선생의 이러한 사실주의적 성향을 띤 시작들은 자연스럽게 사실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진실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진실성에는 원래부터 두 가지 경향이 있다. 하나는 착한 것에 대한 가송이고 다른 하나는 악한 것에 대한 폭로와 비판이다. 리상각의 근작시집 《뼈다귀》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경향이 병존하고 있다. 특히 악에 대한 증오로부터 발원되는 악에 대한 폭로와 비판, 풍자, 조소의 시편들이 적지 않다. 가송과 폭로는 결코 절대적으로 충돌되고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량극이 아니다. 리상각 선생의 근년의 문학창작에서는 이 량자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리상각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였다.

  “인간은 모든 사물에 대하여 다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서정으로 시를 쓰는 시인은 모든 사물을 다 시로 쓸 수 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가릴 것 없다.”3)

  지금 우리 시단에서 상당히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는 현실 탈리의  탐미주의적인 경향이다. 리상각 시인의 사실주의적인 창작경향은 우리시단의 이러한 현실 탈리의 병을 치유하는데 있어서 량약(良藥)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5. 마무리는 말

  첫 번 단계(1950년대 중반 - 1980년대 초반)와 두 번째 단계(1980년대 초반- 1990년대 중반)에서의 리상각 시백의 시적 정서는 단순하고 소박하고 류창하고 아름답다. 때 묻지 않은 천을 하늘에 내건 듯하다. 오염되지 않은 원색적인 시어는 초가지붕에 내려앉은 첫눈처럼 포근하고 정갈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시가 일반적으로 깊이가 모자라고 창작기법이 너무 단순하다. 한마디로 향토적인 랑만주의적인 성향이 그 주조(主潮)를 이루고 있다.

  리상각 시백의 창작에서의 세 번째 단계(1990년대 중반 -지금)는 시인으로서의 우화등선(羽化登仙)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 리상각 시백은 구각(舊殼)에서 탈피하여 한 마리의 화려한 호랑나비로 변신하여 시의 하늘에서 자유롭게 날아예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정감을 여과없이 직설적으로 드러내던 랑만주의적인 정서표현에서 탈피하여 시적인 대상물을 찾아서 자신의 사상과 정감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상징적 수법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시의 이미지화 작업에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했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이미지화가 아닌 사상과 정감의 표현을 동시에 지극히 중시하였다. 이시기에 이르러서 리상각 시백은 시 창작에서 이미지화를 하면서도 괴상한 이미지 조합이나 폭력적 이미지조합을 하는 초현실주의적 표현수법은 배우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하나의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부각하여 그 속에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용해시켜 넣었다. 동시에 난삽한 시어가 아니라 명징한 시어를 구사하기에 노력했다. 알기 쉽게 쓰면서도 객관대상을 시화하는 능력이 조금은 례사롭지 않음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리상각 시백의 이시기의 이미지 시들은 영미의 이미지스트들의 이미지 시와 아주 비슷한 감을 주지만 또 그보다 사상 감정 표현의 심도는 더욱 깊다.

  창작의 우렬을 가리는 기본 기준이 독창성이라는 - 남의 냄새가 아니 나는- 잣대로 재여 보면 반세기 남짓한 동안 정직한 인품과 시 정신으로 확연한 자기만의 시의 화전(火田)을 일궈낸 리상각 시백의 개성적인 로고는 우리 시인들의 구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의 종점은 누구나 례외가 없이 죽음이다. 이런 의미에서 리상각 시인의 말처럼 인생은 허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리상각 시백은 시의 바다에서 출렁이는 파도처럼 “만들고 마스고 솟구치고 무너지고” 다시 “솟구치고 마스고  만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변의 향토에 굳건히 두발을 딛고 서서 하늘을 우러러 아름다운 노래를 힘차게 부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8년 3월 12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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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상각의 시를 론함


                                /조성일


리상각씨는 20세기 50년대 중반 조선족문단에 데뷔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장 반세기를 주름잡으면서 자기의 삶을 시창작에 걸고 줄기차게 필경(笔耕)을 하고있다. 

흘러간 세월에 리상각은 무시로 덮쳐드는 정치적풍파와 인생살이의 갖가지 어려움이 밀려드는 상황속에서도 빼여난 예술적기량과 각고의 노력에 기대여 20여권의 시집(장편서사시집, 서정시집, 시조집, 풍자시집 등)을 출간함으로써 조선족시문학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따라서 그는 조선족시단의 앞자리에 좌단(左袒)하고있는 거보적인 서정시인이며 시조시인이며 풍자시인이다.  

시인 리상각씨의 창작년보를 훑어보면 서정시, 서사시, 풍자시, 시조 창작 등이 우리의 눈길을 끌고있다. 그는 문단에 데뷔하여 “문화대혁명”시기까지는 주요하게 리념적인 “송가”창출에 집착하다가 개혁, 개방의 새로운 력사시기에 진입하여서부터는 시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여 시의 소재, 주제, 표현기법 및 기타 형식의 새로운 변주를 시도하는 대담한 창조적실험을 진행하였다. 그는 새로운 력사시기에 진입하여 인간사랑, 자연례찬, 현실참여 등과 직결되는 서정시, 시조창작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떠올렸으며 최근 몇년동안에는 시의 필봉을 풍자에 돌려 현실의 부조리와 삶의 모순을 비판의 도마우에 올려놓음으로써 우리 조선족시단에 시와 삶, 시와 현실의 간격을 허용치 않는 풍자시의 장을 열었다. 실로 그는 풍자시로 시의 령역의 개방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의미를 표출하였고 조선족시단에 저항세계의 신선한 풍경을 구축하였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필자는 주로 그의 시창작에 나타난 특징에 대해서 필자나름대로의 생각을 굴려보려 한다. 

1. 인간미 추구와 초월적인 인격지향 

리상각은 자기의 미학주장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나는 고희에 이르러서야 이런 생각이 깊어졌다. 물론 시인은 인간미를 찬송하는것이 창작의 기본이다. 사랑과 인정과 꿈의 세계를 찬미하며 창조하는것이 시라고 주장하여왔다. 시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그려주는 예술이지만 그 속에 숨쉬는 인생의 꿈과 환상과 신념을 보여주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인생에 대한 시의 지향성이다. 희망이 없는 인생은 죽은 인생이고 지향성이 없는 시는 생명력이 없다.” 

리상각은  인간미를 찬송하는것이 창작의 기본이며 사랑과 인정과 꿈의 세계를 찬미하며 창조하는것이 시라고 인정하고있다. 

인간미에 대한 추구는 인정세계와 고향사람들을 다룬 시, 친지와 이웃들을 다룬 시,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시, 허위적이고 파행적인 삶을 비판, 풍자한 시들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그 저변에서 울리는것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깨끗한 삶에 대한 지향, 님의 상실, 고향상실, 민족의 비극으로 인한 향수와 한, 불의에 대한 도전이다. 특히 뜨겁고도 끈끈한 정을 기반으로 한 그의 사랑시는 사랑의 기쁨, 짝사랑의 외로움, 리별의 안타까움과 그리움, 실련의 아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있지만 그의 사랑시조에서 주조(主调)를 이루는것은  뜨거운 련모의 정과 애절한 그리움이라 생각된다. 이런 련모의 정과 그리움은 매우 깨끗하고 밝으며 순결한 지향점을 갖고있는것이 특징적이다. 

시인의 이런 인간사랑과 인간미의 추구는 초월적인 인격리상을 자기의 시를 떠올리는 에너지로 삼고있다. 

그의 시에는 하늘, 별과 같은 천체이미지, 다시 말하면 원격(远隔)이미지가 많은데 그는 삶의 근원적이면서도 존재론적인 의미를 되새기면서 속세와 멀리한 격고(格高), 경고(境高)의 탈속세계를 지향하고있는것이다. 이런 지향은 초월적인 인격리상이라 할수 있다. 삶의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현실에 등을 돌린 비력사적랑만주의세계관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의 부정적인 면을 초극하려는 상징성을 갖고있는것이다. 그리고 또 죽음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도 평온한 심태를 갖고있는 그의 달관의 경지를 넘볼수 있기도 하다.  

가진것 하나 없는/ 한줄기 외길/ 아침해살 안고 떠나 어느덧 서산노을// 하늘끝 닿으면/ 하얀 쪽배 갈아타고/ 은하수 건너서/ 별바다 들어서리 
                                
                             ―서시 “일엽편주”에서  

티없이 깨끗한 하늘빛/ 조심조심 밝고 가노라니/ 어느덧 천국의 구름밭으로/ 들어섰나보다 나는/ 별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 듣는다 
                                                                
                                  ―“눈 내리는 밤”에서 
이런 지향은 “침묵”에서도 나타나고있다. 

“산이여”/ 나는 산을 불렀다// “산이여”/ 산도 산을 부른다// 마주쳐오는 소리/ 나는 산으로 다가섰다// 입을 다물고/ 산이 나를 외면한다// 할 말이 너무 많아/ 침묵인가 산이여// 이제부터 나도/ 산이 되리라 

이 시에서 산은 은둔이나 침잠의 처소로서가 아니라 탈속과 불변성, 강인, 인고, 앙망(仰望)의 정상이미지로 천체이미지와 궤를 같이하고있다. 서정적자아는 바로 이런 산과 일체가 되여 대화, 교감하고있다. 이 시를 읽노라니 부지중 리태백의 “홀로 경정산을 마주보면서(独坐敬亭山)”이라는 시가 련상되였다.  

뭇새들은 하늘높이 날아가버리고/ 외로운 구름은 홀로 하늘에서 노니네// 서로 마주보아도 싫지 않은이/ 애오라지 자내 경정산뿐인가 하노라(众鸟高飞尽, 孤云独去闲. 相看两不厌, 只有敬亭山) 

리상각시백의 “침묵”과 리태백의 “홀로 경정산을 마주보면서” 이 두수의 시는 비록 시제는 달라도 그 교묘한 솜씨는 똑같음을 발견할수 있다. 즉 두 시인은 모두 자신의 정감을 시적인 대상인 산에 이입하였다. 그리하여 시적대상인 산과 시적자아인 나는 동일성을 이루었으며 바로 그리하여 나는 바로 산이고 산은 바로 나로 되여있는것이다. 바로 이러하였기에 산은 친구처럼 친절하고 정취가 있는 인격체로 되여 시적자아와 서로 교감하고 대화를 나눌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리상각씨의 “침묵”은 김관웅교수가 지적하다싶이 물아일체(物我一体)의 경지에 오른 시이며 따라서 “동양적인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르고 동양적인 신운(神韵)이 있는 수작이다.” 

이런 시는 초탈적인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는 나오기 어려운 시이다. 리상각의 시는 바로 이러한 초월적인 립장에 서서 여유만만한 태도로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악을 굽어보면서 쓴것이라고 할수 있다. 필자는 리상각시백의 이러한 초월적인 인격리상이 곧 그의 시를 떠올린 에너지라고 생각해본다.  

2. 자연의 생명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례찬 

.그의 시문학에서 우리에게 싱그럽게 안겨오는것은 자연관계시이다. 그는 자연을 객관적상관물로 하여 자연과 인간의 친화력과 교감을 떠올리면서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의미를 지닌 생명성에 대한 감각적쾌감과 자연의 아름다움, 순결성을 찬미하는것이 특징적이다. 

그의 시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순결함과 싱그러움에 대한 감각적쾌감과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열망이 투사되여있다. 실로 그의 자연시에서는 풍경과 물상이 거의다 생명성으로 충일되여 자연과 시적“자아”가 상호 확산적교감을 보여주고있다. 

적지 않은 경우 그의 시에서 자연물들은 흥겨운 분위기를 보이고 시적“자아”는 법열의 상태에 있다. 그의 이런 시들을 시적“자아”와 자연과의 극복할수 없는 “존재론적거리”를 전제로 한것이 아니라 량자의 친화력에 뿌리를 내리고있다. 따라서 그의 자연시에는 비극적정조가 거의 없는것이 특정적이다. 

3. 풍자와 해학을 통한 사회비판  

리상각시문학의 주제풍향에서 또 하나 이채를 보여주고있는것은 풍자와 해학을 통한 인륜도덕과 사회의 그릇된 풍조에 대한 비판이다. 리상각시백은 바로 옛 지성들의 올곧은 뜻을 귀감으로 하여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는 어지롭고 복잡한 세상, 어디서나 볼수 있는 추하고 고약한 현상에 비분강개(悲憤慷慨)를 참지 못해 비판적지성으로 나타나 풍자적메타포를 동원한 저항시편―풍자시 창출의 급물살을 일궈냈던것이다. 

시집 《뼈다귀》에 수록된 풍자시들의 주제풍향을 유심히 살펴보면 여러가지 양상을 보여주고있지만 그중 주요한것들만을 간추려내면 혼탁한 세상에 칼질하기, 위정자들에게 물먹이기, 도덕적으로 추락된 인간들을 비꼬기, 사랑의 부재를 발가벗겨 창피주기 등이라 할수 있다.  

버려진 뼈다귀를/ 제꺽 물고/ 흘끔거리며 간다// 흘끔거릴수록/ 빼앗자고/ 달려드는자 있다// 고기 한점도 없는데/ 무얼 바라고 이악스레/ 물고 뜯을가?// 뼈다귀 하나때문에/ 으르렁소리만/ 높아간다 
           
                                   ―“뼈다귀”전문 
                                                                                                               -       
이 시를 읽으니 “니전투구(泥田斗狗)”라는 성구가 생각난다. 이 성구는 진흙밭에서 개들이 벌리는 서로 물고 뜯는 싸움을 빌어 인간사회에서의 사람들사이에서의 명쟁암투(明爭暗斗)를 일컫는 말이다. 시인은 고기 한점  붙어있지 않는 뼈다귀를 객관적상관물로 하여 현실에 존재하는 서로 물고 뜯고 으르렁대는 “니전투구”의 현상을 풍자적과장과 예리화의 수법으로 희화화(戏画化)하고있다. 이 시에서 아무렇게나 내뱉는듯한 시인의 목소리는 뜻밖에 짙은 공명대를 형성하고있는것이다. 특히나 구성의 단단한 끝맺음과 상징성은 깊은 여운을 남기고있다. 이 시는 매섭고도 활달한 시선, 강인한 언어, 뛰여난 류추능력, 기발한 위트, 예리한 과장, 상징화가 종합적으로 멋지게 배합된 수작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금치 못하게 하면서도 슬프고 섬찍하게 한다. 그의 이런 빼여난 시적작업은 높은 경지에 이른 시인의 솜씨를 엿볼수 있게 한다.  

한자리만 지키고있어도/ 제가 할 일은 다한다// 한마디 말이 없어도/ 두려워하는자 있다// 허름한 옷을 걸치고도 추위와 배고픔을 모른다// 밤낮 외롭게 지내지만/ 욕심도 불평도 없다/ 두팔 벌린채 먼산 바라보며 세상을 우습게 안다 
                                 ―“허수아비”전문 

이 시는 부귀공명이라는 이 “화택(火宅)”속에서 살아가는 권세나 재물때문에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속세의 소인배들을 직설이 아니라 허수아비란 객관적상관물을 빌어 우의적(寓意的)으로 풍자, 조소한 또 하나의 수작이다. 이 시에 대해 김관웅교수는 다음과 같이 멋지게 평가하고있는데 필자도 동감이다. 

부동과 침묵의 미학에 람루와 기아를 초탈하는 안빈락도(安貧乐道)의 청빈사상 및 독립오세(独立傲世)의 도고한 삶의 자세가 보이는 작품이다. 부귀공명을 탐내는 현실의 속인들을 우습게 아는 처사(处士)의 풍모를 허수아비라는 이미지를 빌어 표현한 점은 리상각시인의 대단한 시적안목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의 낯설기화의 한 성공의 사례가 아닐수 없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만고풍상을 겪고난후의 초탈에서 오는 깨달음에서 연유하는것이며 아울러 시인의 시창작에서의 보다 높은 예술적경지에로의 승화이다. 

4. 그의 시어와 표현기법상의 특징 

리상각시백은 언어적감수성이 예민하고 언어의 내포적의미를 재치있게 활용할줄 아는 장인(匠人)으로 안겨온다. 그의 시어는 평이하면서도 투명한 언어감각과 지적인 세련을 거느리고있으며 물흐르듯 활달하고 자연스럽다. 그의 언어에는 현란함이 없으며 굉장한 수식도 없다. 그의 언어의 평이성, 소박성과 지적세련성은 구체적현실에 대한 그의 깊이있는 성찰을 통해 얻어진것이다. 하기에 거기에는 경험의 진실성이 온전하게 자리잡고있는것이다. 또한 그의 최근 몇년간의 적지 않은 시들 특히 시집 《뼈다귀》는 리상각시백이 “서문”에서 고백하다싶이  “역설과 반어와 야유로 씌여진 아이로니시집”으로서  전통적인 예술기법의 계승과 더불어 현대시의 마력인 이미지, 상징, 역설, 아이로니 등 기법들을 시의 구성뿐만아니라 부분적인 언어표현에서도 자유분방하게 능란하게 활용함으로써 시의 예술적력도(力度)를 높여주고있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고픈것은 모더니즘의 표현기법을 대담하게 차용하고있지만 시의 서정성과 운률을 살리고있으며 지어는 민요의 운률까지 돋보이게 하고있는것이 특징적이다. 그의 시에서 시를 전개시켜나가는 언어진술의 톤 자체가 싱싱하고 통쾌한 기개를 뻤셀遲막館?새로운 시적호흡에 적지 않은 성공을 보여주고있으며 다양한 언어의 춤은 탄력적인 공감대를 마련해주고있다. 이밖에도 그는 일상적인 비어(卑語)나 속어(俗語)를 과감하게 시에 도입시키는 새로움을 보여주고있다. 
   
5. 그의 시풍 

리상각씨는 결코 절망의 시인이 아니라 희망의 시인이요, 그의 시학은 희망의 시학이라 일컬을수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현실세계를 부정한다거나 떠나고싶은 생각을 갖기보다 현실세계중의 그릇된것들을 초극하고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마련하고싶은 생각에 물젖게 된다. 그의 시풍은 밝고 깨끗하며 향토적정서가 짙으며 섬세하고도 서정적이며 명랑하고 락천적이다. 그의 시는 사실주의, 랑만주의, 현대주의 등의 복합에 의한 변이적인 자기나름의 민족시로서 랑만적인 색채가 짙다.  

“리상각시인은 깨끗하게 시를 쓰는 서정시인이다. 그의 시조도 마치 시조풍으로 쓴 서정시 같아서 정서적으로 느낌이 매우 좋다. 꽃바람 맞는듯한 상쾌함, 조약돌을 굴리는듯한 석수간의 깨끗함, 하얀 눈속에서 첫 련인을 만나는듯한 정다움, 이런것들이 하나의 복합체로 독자를 매혹시킨다.”(김철) 

6. 희망사항 

하지만 일부 시들에서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인간 내심의 고민과 고통, 한을 존재론적시각에서 파고 들어감이 부족한것 같으며 예술적인 견지에서 볼 때 묘사대상이 욕망에 가리워지고 감정에 휩싸여 묘사대상과 주체 사이의 심리적거리가 부족하며 감지한 사실을 형상화하기보다 론리화함으로써 추상화에 떨어지고 벌거벗은 육성이 직설적으로 울리고있다. 이런것들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리상각은 시집 《뼈다귀》의 “서시―일엽편주”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높낮은 파도길에/ 작은 갈잎 하나/ 떴다 가라앉았다/ 그네를 뛰며 간다// 외로운 꿈새/ 누구를 바라고/ 아슬한 물고개/ 넘어넘어 왔더냐 
    
이 시가 말해주다싶이 리상각씨는 “일엽편주”가 되여 홀로 외로움을 씹으며 세월의 격랑에 휘말려 부침(浮沈)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리상각은 서정시인, 시조시인일뿐만아니라 훌륭한 풍자시인으로 자리를 굳히였다. 

시인 리상각씨는 70 고개에 치닫고있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젊음의 생기가 분출하고있는바 이 경우 시조집 《에밀레종소리》의 머리시조중의 마지막 몇대목을 새겨보는것은 무익한 일이 아닐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해솟는 산에 오르듯 

하루 또 하루 엮어갈 
황홀한 새 천년은 

어쩌면 신비론 세상이리 
기분이 둥둥 뜬다 

필자는 리상각시인이 여생에 우의 시조에서 보여준 그런 젊음의 정서적흥분속에서 작은 그릇에 우주를 담고 읊을수록 맛이 나고 만방에 향기로운 우리 민족의 시의 꽃송이를 더욱 알뜰히 가꾸어나가길 바라마지않는다. 
 


 

<<연변문학>> 2008년 5월호===================

리상각시인의 시 <두루미>에 대한 나름의 시평
2009년 03월 26일 14시 13분                                  작성자: 허동식
     리상각시인의 <두루미>가 최초에 시로 씌여졌는지 아니면 가사로 씌여졌는지는 잘 모르지만은 내가 흥이 날 때는 부르고싶은 노래이다. 또 아름다운 시로 느껴지는 시편이다.  <두루미>에서 한  구절을 따오면서 나름의 감상을 적어본다.  
백설같은 두루미 하얀 두루미
떼를 지어 내려앉네
깃을 다듬네
 
두루미는 알지 못하네
그 모습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
1      백설같은 두루미 하얀 두루미/떼를 지어 내려앉네 /깃을 다듬네  이 부분은
거의 질박할 정도의 시어로  <두루미>를 묘사형으로 구성된 서술형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서술형 그림이란 말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련환화라든가 환등으로 표현되는 그림을 서술형 그림이라 칭할수 있다면, 하늘에 날아예는 하얀 두루미들--하나 둘 또는 일거에 백사장에 내려앉는 두루미들--부리로 깃을 다듬는 두루미들 이런 순서로 두루미가 형상화되였고 그림화되였다.  
2   백설같은 두루미 하얀 두루미/떼를 지어 내려앉네 /깃을 다듬네
이상 순서적인 그림화된 이 부분은 또 두루미의 動性을 靜성적으로 옮기어 적은 부분이다. 두루미의 동적인 이동과정과 행위과정을 하나하나 구분하여 그 순서대로 정적으로 다루었다. 정적으로 다루었지만 정속에는 동이 흐르고 그 와중에 동과 정이 잘도 조화된 생명감(어떤 생명도 자연적으로는 동과 정의 연합체이다)이 넘치는 부분이다.
3      두루미는 알지 못하네/ 그 모습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부분은 옛날 중학교 어문교과서에서 말하는 소위 주제사상개괄이라 할수도 있겟지만은 나는 두루미의 내심적인 안온과 靜性을 동적(심리활동)표현으로 마무리지었다 함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문자언어의 제한성으로(조선문은 표음문자로서 중구어처럼 一字로  天機를 다루기가 힘듬도 사실이다) 蜻蜓点水식 또는 완전은페식 경지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나는 표상으로 보여지는 두루미의 靜성에 내재하는 동적원동력을 잘 표현한 시구라고 생각된다.
4  시인의 원초의 의도는 잘 모르지만 , 독자로서 나는 <두루미>는 조선족의 심미리상과 사회리상이 조화스럽게 기록된  시편이라 생각된다.
 조선족이 먼 옛날부터 두루미를 즐김은 흰색으로 표현되는 人性의 순진성과 고요하게 표현되는 삶의 우아함을 지향함이 전통으로 되여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 이런 문화전통에는 유학의 심미리상과 사회리상이 내재한다. < 두루미>에 나타나는 흰빛의 고요한 韻과  그림으로 펼쳐지는 舞는 우리의 재래적 심미리상의 절창이며 <떼를 지어>는 자연스럽고 화목하고 조화된 사회리상의 시적재현으로 보여진다.

5  또  <그 모습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에는 자민족에 대한 자평과 무조건적인 무한대의 민족애 그리고 긍지감이 많이도 담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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