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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신과 녀인들
2016년 11월 10일 21시 12분  조회:4185  추천:0  작성자: 죽림
 

                 로신 주변의 녀인들 

      --문화급변시기에 로신의 애정생활에서 나타난 문화충돌

 

                                           김병활

 

1. 로신은 신이 아니라 속세의 인간이였다.

 

  1936년 10월, 로신이 세상을 떴을 때 령구 우에는 <<민족혼>>이라는 만자를 쓴 천이 덮여 있었다. 모택동은 로신을 매우 높이 평가하면서 그를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사상가, 위대한 문학가>>라고 지적하였다. 모택동은 만년에도 로신의 잡문을 읽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사실 지난날 여러 가지 원인으로 로신을 너무 신격화하여 경모하고 숭배하였기에 보통사람들은 로신에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림표, 강청 일당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로신을 신격화하고 로신의 <<절대적인 권위와 위망>>을 자기들의 정치적 야심에 리용하여 자기들의 <<적수>>를 박해하고 제거해 버렸다. 이리하여 로신과 론쟁이 있었거나 그에게서 비판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례를 들면 강청이 <<문예기수>>되려하는데 주양이 시답지 않아하자 로신이 1930년대에 쓴 잡문에서 <<네 사나이(四條漢子)>>라고 풍자한 말을 빌어 주양과 그의 동료들을 타격하였다. 그 결과 로신은 아무런 인정미도 없는 신과 같은 무서운 존재로 외곡되였다. 기실 로신은 보통인간들이 갖고 있는 희노애락을 다 갖고 있는데 이것을 알게되면 우리는 로신에게 접근하기 쉬울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우상을 신격화하기 좋아한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우상화, 신격화에 따른 부작용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로신을 대함에 있어서도 그가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충분히 긍정하는 동시에 그도 일상생활에서는 우리와 별다를 바 없는 보통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런 인식 방법 중의 하나가 로신의 애정생활을 리해하는 것이다.

  우상화, 신격화 시기에 로신에게서 허물이 될수 있는 부분은 모두 감춰버리려고 애썼다. 례컨대 지난 시기 우리는 허광평이 로신의 본처인 줄로만 알았을 뿐, 사실 법률상에서는 주안이 본처이고 허광평은 여론의 시비가 생길 소지가 있는 <<동거녀>>라는 것은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는 그 시대에 로신이 그런 길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대해 충분히 리해해야 한다. 본문에서는 로신의 곡절적인 애정과 혼인 생활을 통해 봉건사회로부터 근대사회, 현대사회에로 과도하는 시기에 로신에게서 표출된 문화충돌과 인간성을 고찰해보려고 한다.

 

2. 로신의 위대한 업적

 

  로신의 본명는 주장수인데 후에 남경수사학당에 입학할때 주수인으로 고쳤다. 그는 1881년에 절강성 소흥의 한 명문대가에서 태여났다. 그의 조부 주복청(주개부)은 북경에서 관리로 있다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과거시험 회뢰사건에 걸려들었다.

  이 일로 로신의 아버지는 과거를 보아 출세하려는 희망이 끊어졌고 또 화병으로 페병에 걸려 앓게되였다. 가산을 탕진한 로신의 집에서는 하는수 없이 골동품을 팔고 옷견지들을 전당잡히면서 아버지의 병치료를 하였다. 그때 장남인 로신이 전당포로 드나들었는데 명문가족의 큰 도련님이였던 그는 일락천장하여 전당포주인의 랭대와 멸시를 받으면서 세상의 랭혹함을 뼈에 사무치게 느끼였다. 로신의 아버지의 병은 당시에 불치의 병으로 인정되였던 페결핵인데 명의로 자처한 중의(中醫)들은 자기들의 도끼의사와 같은 무능함을 인정하기 싫어 언제나 괴상한 약방문을 내놓았고 그것을 구하지 못하면 가족의 성의가 없다고 나무라기 일수였다. 례를 들면 약방문에는 3년 서리맞은 사탕수수그루, 겨울날에 호수바닥에서 채집한 갈대뿌리, 제일 처음 교배했던 귀뚜라미 한 쌍... 등인데 마치 봉건사회에서 녀자가 정조를 잃으면 죽을 죄를 진것처럼 귀뚜라미도 정조를 잃으면 약재에 들어갈 자격도 없는 듯 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후 로신은 자신의 전도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는 과거시험을 보아 관리가 되는 길을 포기하였고 지방 토호렬신의 막료가 되거나 장사를 하여 돈을 버는 일도 하기 싫었다. 그는 별다른 세상과 접촉하면서 남들이 걸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탐색해보려 하였다. 가정경제가 파산된 상황에서 그는 어머니가 준 단돈 8원을 가지고 등록금을 면제하는 남경수사학당(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훌륭한 남자는 병사로 되지 않는다는 당시의 관습도 아랑곳하지 않고 로신은 등록금을 내지 않는 이 사관학교에 적을 두고 서방에서 들어온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해군을 양성하는 이 학교는 매우 보수적이였는데 수영장에서 학생 둘이 익사하자 귀신을 노엽혔다고 야단치며 수영장을 메우고 그 우에 절당을 짓고 향을 피우며 신명에게 빌었다. 이에 실망한 로신은 남경륙사학당(륙군 사관학교)에 적을 옮겼고 졸업시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일본 출국류학 시험에 합격하여 일본류학을 떠나게 되었다. 

  일본에서 로신은 만청왕조를 반대하는 광복회 등 혁명파와 접촉하였고 만청왕조신민(臣民)의 상징인 긴 머리태를 잘라버렸다. 그후 그는 중국 류학생들이 많은 도쿄의 학교를 피해 센따이 의학전문학교(지금의 동북대학)에 입학하였다. 그 학교에서 로신은 후지노선생과 같은 훌륭한 교수를 만나 학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나 중국인을 기시하는 일본인 학생들의 도전도 받았다. 로신의 시험성적이 중간층에 속하자 일부 일본인학생들은 <<무능>>한 중국학생이 어떻게 급제를 할수 있느냐고 의심하면서 후지노선생이 시험문제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라고 억측하였다.

  또 한번은 수업이 끌날 무렵 남은 시간에 국가정세를 홍보하는 환등영화를 돌렸는데 일본군이 대련에서 로씨야군을 전승한후 로씨야 정탐이라고 하는 중국인을 사형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때 일본인 학생들은 만세를 부르며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로신은 환등에서 자기의 동포를 죽이는 장면을 아무런 표정도 없이 구경하는 건장한 중국인 간객(看客)들을 보고 쇼크를 받았다. 로신은 중국 사람들에게 결핍한 것은 몸에 생긴 병이 아니라 령혼 속에 생긴 병이라고 인정하고 무지한 군중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의학을 버리고 문학에 종사하기로 하였다.

  1909년에 로신은 역시 일본에서 류학하면서 일본인 안해까지 얻은 둘째동생 주작인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약 7년간의 일본 류학생활을 마치고 절강에 돌아와 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후 남경 국민정부의 교육부에서 첨사로 있었고 남경정부가 북경으로 옮겨가자 따라서 북경에 갔다. 북경에서 로신은 교육부의 일을 보는 한편 고전문학을 정리하여 중국에서 처음으로 계통적인 현대판 <<중국소설사>>를 써냈다. 그리고 북경대학, 북경녀자사범대학 등 대학교에서 중국소설사와 문예리론을 강의하였다. <<5.4>>운동전야에 <<신청년>>잡지 편집부의 성원이며 북경대학 교수인 전현동이 찾아와 <<무쇠집>>안에서 혼곤히 잠들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깨우쳐야한다는 도리를 력설하자 신해혁명의 실패로 인해 방황하고 고민하고 있던 로신은 거기에 동조해 중국현대문학의 첫 작품으로 인정되는 <<광인일기>>를 창작하고 발표하였다. 

  <<광인일기>>는 한 미치광이의 입을 빌어 중국 력사책에 씌여있는 이른바 <<인의도덕>>이란 바로 <<식인(食人-吃人)>>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자기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모두 <<사람고기>>를 먹은 사람들인데 아직 <<사람고기>>를 먹지 않은 <<아이들을 구하라>>고 웨쳤다.

  그후부터 로신은 한번 들었던 필을 놓을수 없어 륙속 소설을 창작하였는데 그중에서 <<아Q정전>>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명작으로 되었다. 이리하여 서방의 <<동. 키호테>>, 동방의 <<아Q>>는 이미 세계문학에서 손꼽는 두 전형형상으로 되었다. 로신은 일생동안 소설집 세권을 출판하였는데 <<납함>>, <<방황>>, <<고사신편>> 등이다. 그리고 산문집<<아침꽃을 저녁에 줏다>>, 산문시집 <<야초>>, 잡문집 16권, 서신집 <<량지서(兩地書)>>, 번역작품 등 수많은 문학유산을 남겼다. 그중 <<야초>>는 상징주의수법으로 자신의 심령 심처의 고민을 표현한 작품들로서 예술성이 가장 높다고 평가받고 있다. 잡문은 로신의 문학에서 홀시할수 없는 분야인데 중국현대문화의 백과전서라고 일컸는다. 로신의 잡문은 리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만약 로신의 잡문을 모르면 로신을 모른다고들 말한다. 로신이 이런 업적을 이룰수 있은 것은 많은 요소가 작용했겠지만 연구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떠나 그 자신이 체험한 굴곡적이고 복잡한 애정과 혼인 생활이 불합리한 사회를 파헤치려는 동기로 되었을 가능성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3. 로신 주변의 녀인들, 그리고 곡절 많은 애정혼인 생활

 

  로신은 어렸을때부터 외삼촌의 딸 금고(琴姑)와 죽마고우였다. 사춘기에 들어선 후에도 둘은 아주 친한 사이로 되었다. 로신이 남경으로 공부하러갈 때 금고가 바래주었는데 그때 금고는 로신에게 당시 문인들에게는 귀중한 소지품이였던 만년필을 선물로 주면서 애모의 정을 암시하였다. 지난 날 중국에서는 고종사촌과 이종사촌 사이에 결혼할수 있었는데 로신의 어머니도 자기의 외조카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고 두집 사이에는 언약이 있었다. 그런데 사주팔자를 보니 금고가 <<양띠>>였는데 남자가 양띠이면 당당한 사회인으로 될수 있지만 녀자가 양띠이면 남편을 먼저 죽이는 살이라고 인정되였다. 이리하여 금고의 고모인 로신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가 근심되여 오래동안 정식으로 청혼을 하지 않았다. 이에 외삼촌은 화가 나서 딸 금고를 다른 남자한테 시집보냈다. 금고는 영문을 모른채 마음없는 남자한테 시집가서 얼마 후 우울증으로 앓다가 죽고 말았다. 림종전에 금고는 왜서 고모가 다 대답한 혼사를 파기했는지 몰라 원통하다고 했다 한다. 사후에야 이 일을 알게 된 로신은 매우 애통해했다 한다.

  로신이 일본에 류학간후 로신의 어머니는 주안(朱安)이라는 처녀를 며느리감으로 물색하였다. 그런데 22세나는 주안은 로신보다 3살 이상이였고 체형이나 용모가 채 성숙되지 못한 감(발육이 미숙한 감)을 주었고 일자무식인데다가 전족까지 한 보수적인 녀성이였다. 이에 효자인 로신도 어머니의 의사를 거역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너무 재촉하면 주안이 전족을 풀고 글공부를 해야한다는 조건부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주안이 로신의 요구를 들어줄리 없었다. 하지만 로신의 동의 없이 약혼까지 다 해놓은 로신의 어머니는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이 혼약을 물릴수 없었다. 그러던 중 로신이 일본에서 일본 녀자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몇을 낳았다는 헛소문이 고향에 전지해지자 로신의 어머니는 더는 참을수 없어 모친의 병이 위독하니 급히 돌아오라는 급전을 보냈다.

  맏아들이고 효자인 로신은 백사불구하고 고향집에 돌아와보니 집에서는 결혼준비를 다해놓고 신랑인 로신이 오기만 기다렸다. 그때 친척들은 신파인물인 로신이 절때 이 혼인을 받아들이지 않을것이며 혹시 받아들인다해도 구식혼례를 극구 반대할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비양거리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로신은 뜻밖에 일언반구도 없이 꼭두각시연극을 노는 듯이 가족에서 시키는대로 구식혼례를 치렀다. 로신은 가짜 머리태를 달고 신랑이 되였고 주안은 붉은 비단천으로 머리를 덮고 신부가 되었다.

  로신 연구가들은 그때 로신의 심리상태를 분석하면서 왜 일본에서 류학하고 긴 머리태까지 자른 신파인물 로신이 그토록 순순히 어머니가 마련한 강제혼인에 순종하였는가를 파고들었다. 그 원인의 하나는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이 어려서부터 유가적 교육을 받은 로신에게 여전히 작용하였기에 사회적으로 국가정치와 낡은 문화를 비판할때는 용맹한 투사였지만 가정에서는 여전히 유가전통을 버리지 못하고 효자가 되여 어머니의 령을 거절 못하였다는 것이다. 로신의 말대로 하면 그 자신은 여전히 과도적인물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것이말로 로신 식의 복수방법이라는 것이다. 소설 <<고독한 사람(孤獨者)>>에서 일찍 일본에 류학하고 돌아와 신파 인물로 되였던 위련수가 할머니의 장례를 전통적인 구식으로 치르는것으로 말썽을 일으켜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삼자는 일가친척들에게 복수한것과 같은 것이다. <<야초>>중 산문시 <<복수>>에서는 두 남녀가 알몸으로 결투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결투중에 구경군들이 몰려오자 두 남녀는 구경군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지 않는 방식으로 복수하기 위해 그냥 선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하면 로신이 <<환등사건>>으로부터 시작해서 평생 가장 미워한 사람들이 바로 남의 불행을 재미있는 구경거리로 삼는 간객(看客)들이였다. 때문에 이런 간객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전통적 방식으로 혼례식을 치렀다는 것이다. 

  혼례식 날 저녁 신방에 들어간 로신은 장밤 울었다한다. 그에게 조카벌이 되는 한 녀인의 회억에 의하면 이틑날 아침 신방에서 나온 로신의 얼굴은 온통 시퍼렇게 물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너무 울어 눈물이 베개를 적시여 베개물감이 얼굴을 시퍼렇게 물들였다는것이다. 그후 로신은 다시는 신방에 들어가지 않았고 나흘후에는 동생 주작인을 데리고 일본에 가버리고 말았다.

  로신은 <<수감록 40>>에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한 <<낯선 젊은이>>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가련한 중국사람, 사랑이여! 나는 물라라, 그대가 무엇인가를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고 내 또한 아무도 <사랑>한 적이 없었노라. 내 나이 열아홉에 부모가 나를 장가들여 주었나니 지금까지 수년을, 우리는 그래도 화목하게 살아왔노라. 허나 이 혼인은, 완전히 남의 주장으로 이루어진 것, 그들의 어느날의 롱담이, 우리의 백년가약으로 되었더라. 마치 두 짐승이 주인의 명령을 따른것같구나--쯧쯧, 의좋게 <함께 살아라>! 사랑이여 가련하구나, 나는 그대가 무엇인지 알길 없거니!>> 로신의 이 피타는 절규를 그의 혼인과 련계시켜보면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고 할수 있겠다.      

  일본에서 귀국하고 사범학교와 교육부에 취직한후 20여년 동안 로신은 한번도 주안과 한방에서 자지않았다. 장손을 안아보고 싶은 로신의 어머니는 주안을 보고 며느리가 아기를 낳을줄 모른다고 푸념질하였는데 여태껏 순종하기만 하던 주안은 크게 반발하여 <<큰 선생(로신)이 나를 보는체도 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아기를 낳을수 있어요?>>라고 말하였다 한다. 로신은 자기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주안을 소개할때면 이 사람은 어머니의 며느리이며 어머니가 자기에게 준 선물일 뿐이라고 롱조로 말하군 하였다.

  후일에 주작인도 북경에 돌아와 로신의 알선으로 북경대학 교수로 되었는데 맏형인 로신은 아버지역할을 대신하느라고 자기 돈으로 북경 골목에 집을 짓고 3형제가 한 울안에서 살았다. 그런데 가계는 일자무식인 주안이 맡아볼수 없어 둘째며느리인 주작인의 일본인 안해 하다노부꼬(羽田信子)가 맡아하였다. 주작인의 안해는 원래 일본에서 로신 형제가 투숙한 하숙집의 비천한 시녀였으나 중국에 온후 마치 귀부인인양 돈을 물쓰듯하였다. 로신은 <<내가 인력거를 타고 벌어온 돈을 그들이 승용차를 타고 써버리니 어찌 당해내겠는가>>라고 근심되여 주작인에게 충고를 주었다. 이에 앙심을 먹은 하다노부꼬는 로신을 모해할 궤계를 꾸미였다. 즉 남편 주작인이 없는 사이에 로신이 자기가 집에서 목욕할 때 희롱했다고 남편한테 고자질하였다. 사리에 아둔한 주작인은 시비곡직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처럼 자기를 돌봐준 로신을 때리고 집에서 내쫓아버렸다. 자기가 번 돈으로 지은 집에서 일본인 제수의 음모에 걸려 동생에게 매를 맞고 쫓겨난 로신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후일 그는 <<고사신편>>에 수록한 소설 <<벼린 검(鑄劍)>>에서 연지오자(宴之敖者)라고 부르는 협객이 정의를 위해 목숨 바쳐 복수하는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이 <<연지오자(宴之敖者)>>라는 이름자를 해체해서 풀이하면 바로 <<집에서 일본 녀인에게 쫓겨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주작인보다 체소하고 힘이 약한 로신은 할수 없이 집을 떠나 세집에 이사갔는데 이 기회에 주안더러 친정집에 가라고 요구하였다. 이는 사실상 리혼을 의미하는것이였다. 리혼은 자본주의사회 이후의 개념으로서 주안으로서는 오로지 구중국에서 전해 온 휴(休), 출(出), 즉 남편이 일방적으로 안해를 내쫓는다는 뜻으로 리해할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눈치를 알아차린 주안은 <<나는  살아서는 주씨네 사람이 되고 죽어서는 주씨네 귀신이 되겠다.(生是周家人,死是周家鬼)>>고 <<결심 발표>>를 하고 로신의 집에서 죽어도 나가려 하지 않았다. 로신은 주안을 강박적으로 친정집에 돌려보내면 구식 녀자인 주안이 자살할런지도 모른다고 근심되였고 또 주안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으며 그는 단지 이 사회의 희생품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한창 정력적인 나이에 홀몸으로 산다는 것은 로신에게 있어서 실로 참기 어려운 일이였다. 이런 성고민에서 해탈하기 위해 로신은 자신에게 성압박(자신에 대한 성학대)을 실시하였다. 추위로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그는 북방의 추운 겨울에도 홑바지를 입고 다녔고 잘 때에도 엷은 이불을 덮었고 난로를 적게 피워 집안 온도는 늘 령하 3-4도였다 한다. 20여년의 이런 고행승같은 생활로 하여 로신의 심리는 어느 정도 괴벽해졌는바 늘 고독하고 우울하였고 남을 잘 의심하고 때로는 성격이 과격하였다. 이는 부유한 가정에서 걱정없이 자란 곽말약의 호방한 성격과는 완전히 달랐다.

  로신이 북경에 있을 때 녀 제자 몇이 로신의 생활 속에 뛰여들었다. 먼저 주작인의 친구의 녀동생 허선소(許羨蘇)가 북경에서 공부할 때 주씨네 집에서 하숙하면서 로신을 알게 되였다. 이때 허흠소는 마음속으로 로신을 사모했는데 로신의 겨울옷이 엷은 것을 보고 털내의를 떠주기도 했다. 로신도 허선소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였으나 유가적 륜리에 속박되여 서로 진심을 표달하지 못하였다. 로신에게 미련을 둔 허흠소는 줄곧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가 로신과 허광평이 결합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단념하였다.

  허광평(許廣平)은 북경녀자사범대학 학생인데 아주 대담하고 활약적인 학생회 간부였다. 그는 로신의 강의를 들은 후부터 로신의 집으로 자주 놀러다녔다. 허광평은 원래 북경대학 남학생인 리소휘와 련애하였는데 허광평이 성홍렬로 입원하였을 때 간호를 하다가 전염되여 병사하고 말았다. 이에 심리적 타격을 받은 허광평은 련애문제를 별로 념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로신의 가정생활이 그토록 비정상적인 것을 알고 로신을 동정하기 시작하였다. 1924년 북경녀자사범대학에서는 교장 양음유(전종서의 부인 양강의 고모)를 축출하는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양음유가 허광평을 포함한 학생회 간부들을 퇴학주자 로신은 교수들을 조직하여 교육부에 항의서를 제출하는 한편 작은 골목에 세집을 내고 수업을 견지하였다. 후에 이 학생운동이 승리하였는데 그 과정에 허광평은 로신과 더 감정이 깊어졌고 둘 사이에는 편지가 오갔다. 이런 편지들은 후에 <<량지서>>에 수록되였다.

  이때 고장홍(高长虹, 광표사의 책임자)이라는 로신의 제자도 로신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는 로신의 집에서 허광평과 만난후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한번 허광평이 그가 쓴 책을 읽어 보자고 하였고 이로 인해 둘 사이에 편지가 오갔다. 이에 고장홍은 허광평이 자기를 사모한다고 오해하고 짝사랑을 하였다. 그런데 허광평이 로신과 련애한다는 소문이 돌자 고장홍은 미칠 듯이 로신을 미워하면서 신문에 시를 발표하여 자신과 허광평은 해와 달처럼 사이좋게 련애하는데 로신이라는 검은 하늘이 해와 달을 덮어버렸다고 야단쳤다. 로신의 <<고사신편>>중의 <<달나라로(奔月)>>에서는 스승을 배반한 예(羿)의 제자 봉몽이 스승인 예가 자기를 방해한다고 암전을 쏘아 죽이려 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기실 고장홍이 스승인 로신을 공격한 것을 메타포 기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허광평이 주동적으로 로신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쥬피트의 화살>>을 쏘면서 사랑의 신호를 보냈지만 로신은 주저하였다. 우선 자기는 주안과 형식적이나마 결혼한 사람이고 또 허광평과는 나이 차이가 많기에 자칫하면 허광평의 전도를 망칠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광평의 끈질긴 추구에 승복하고만 로신은 허광평이 로신의 손을 잡자 <<당신이 승리하였소, 나도 사랑을 할수 있소(你胜利了,我可以爱!)>>라고 감격하여 말하였다. 이리하여 자신은 평생 사랑을 할수 없는 사람이라고 비관했던 로신은 허광평의 진공 앞에서 <<애정의 포로>>가 되었고 노예생활과 같은 주안과의 관계에서 해탈되여 참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수 있게 되였다.

  로신은 허광평과 새 가정을 이루기 위해 북경을 떠나 남방으로 이동하여 경제적 기초를 마련하려고 하였다. 둘은 2년간 갈라져 있다가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였는데 로신은 하문대학에 가서 교편을 잡고 허광평은 광주 중산대학에 갔다. 로신의 애정관에서 특기할 것은 리상적인 애정은 경제적기초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로신은 잡문 <<노라는 집을 나간 후에 어떻게 될것인가(娜拉走后怎样)>>에서 노라가 용감하게 가출하였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기에 백기를 들고 남편한테 돌아오거나 기생으로 전락하는 길 밖에 없다고 단언하였다. 로신의 유일한 애정소설 <<그녀의 죽음을 슬퍼한다(傷逝)>>에서도 자유련애로 새 가정을 이룬 자군과 연생은 경제적 궁핍으로 결국 애정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보다싶이 이미 중년에 들어 선 로신은 애정과 혼인에 대해 현실을 무시한 랑만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설에 대해 로신을 비방하기 좋아하던 문인들은 이 소설은 자전체 소설인바 소설의 소재는 바로 로신이 직접 체험한 일이고 남자 주인공은 바로 로신이라고 억측하고 조소하였다. 그리고는 녀자 주인공 즉 로신의 <<애인>>의 정체를 추궁하느라고 떠들었다. 이에 로신은 너무 어이없어 <<중국에서는 사람 노릇을 하기가 정말 힘들다.>>라고 개탄하였다.  

   하문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로신은 교수들의 편협적인 종파 싸움이 싫어 하문대학을 떠나 광주중산대학에 전근하였는데 이때부터 허광평은 로신의 조교로 되었다. 1927년 4월 12일 상해에서 장개석이 군사정변을 일으켰고 광주에서는 <<4.15>>사변이 일어나 로신이 평소에 사랑했던 공산당원 제자들이 피살되였다. 당시 교무처장으로 있었던 로신은 제자들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격분하여 그는 교수직을 사퇴하고 허광평과 함께 상해로 왔다.

  상해에서 로신은 10년간 허광평과 동거하였고 아들 주해영을 보았다. 원래 허광평은 애기를 낳지 않으려 했고 필요시엔 언제든지 로신과 갈라질 각오를 했다. 그런데 피임에 실패하여 애기를 낳고 말았다. 하지만 주해영의 탄생은 두 사람에게 무한한 행복을 안겨주었다. 로신은 또 허광평으로 인해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훌륭한 내조가 있었기에 허약한 체질이면서도 주야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일부 천박한 문인들이 로신이 자신의 학생을 첩으로 삼았다고 야유하였지만 허광평은 이런 여론에 당당하게 맞섰고 이른바 본처인 주안도 이에 대해 별로 불평이 없었다. 주안은 자신이 어쨌든 본처이고 허광평은 첩에 불과한데 그가 낳은 아들이면 곧 자신의 아들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죽으면 주해영이 나서서 제사를 지내 줄 수 있으니 저승에서 아귀신(餓鬼神) 신세를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때문에 주안은 주해영이 태여났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로신은 생전에 주안의 생활비를 보장해주었고 주안의 친척의 어려움도 해결해 주었다. 로신 서거후 허광평도 주안의 생활비를 대주고 여러 모로 돌봐주었다. 

  허광평은 원래 학문과 재능이 뛰여난 녀성으로서 사회적으로 큰일을 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로신을 위해 가정주부로 있으면서 자신을 <<희생>>하였다. 그는 로신으로 하여금 후반생에서 두 번째 생명을 얻게 하였다. 로신 서거후 허광평의 노력으로 일찍 1938년에 로신전집을 출판할 수 있었고 일제가 상해를 침입했을 때 허광평은 감옥에 같히면서도 로신의 유고를 보존하였다. <<문화대혁명>>시기에 강청이 그 유고를 강탈하자 로신의 유고를 생명처럼 간주했던 허광평은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만약 로신의 신변에 허광평이 없었다면 상해에서 이룩한 로신의 업적은 상상할 수도 없다. 또 허광평과 같은 녀인이 있으므로 하여 로신은 비인간적인 고통에서 해탈될수 있었고 인간본연의 생활을 누릴수 있게 되었다. 보다싶이 로신은 신이 아니라 보통 인간들이 갖고 있는 희노애락과 칠정륙욕(七情六欲)을 다 갖고 있으면서 속세에서 살아 숨 쉬였던 사람이였다.  

 

                                                             2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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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신이여 돌아 오시라

2014년 03월 09일  작성자: 백진숙


 
   도서관이 새 청사에로의 이사준비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던 작년4월 중순의 어느날이였다. 직장 후배들에게서 낡은 청사를 곧 허문다는 소식을 얻어들은 나는 아침밥을 먹기 바쁘게 사진기를 들고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향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이미 다 낡아버린 도서관은 마치 지팽이를 짚고 서있는 등굽은 로인네와 같았는데 자기의 사명을 다 했음에도 눈물을 흘리면서 “제발 허물지 마소, 난 아직 할일이 있다우.”하며 서 있는것만 같았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듯 마음이 아파났다.
 
   배움의 전당이였고 늘 푸른꿈을 심어주었던 신성한 곳, 내 젊음이 머물었던 자리, 책 읽기가 좋아서 여러차례 승진의 기회도 포기하고 도서관 사서 노릇만 고집했던 나, 자기 집처럼 늘 아끼고 사랑했던 도서관, 눈물이 금방 떨어지려고 하였다. 얼른 두눈을 감아 버렸다.
 
   나는 사진기를 여러 각도로 바꾸면서 련신 사진들을 찍어댔다. 그러다가 도서관 동쪽켠에 있는 로신동상도 한장 찍으려고 다가가다가 그만 멈춰서고 말았다. 문득 한 독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여 나타났다.
 
   “아Q”같고 “공을기”같고 상림 아주머니” 같고 “광인일기”의 주인공같은 사람 J이다. 왜서인지 그만보면 나는 로신의 글에서 나오는 이 몇몇 인물들이 늘 머리에 떠오르군 한다.
 
   질질 끓는 여름에도 그는 늘 두꺼운 커피색 골덴옷을 입고 겨울에는 때가 낀 자주색 털실 모자에 지난세기 60-70년대 류행되였던 국방색 겨울외투를 입고 다닌다. 해와 달이 바뀌여도 그의 이런 옷들은 바뀔줄 모른다. 글을 쓰는 이 시각에도 로신 동상을 산 로신으로 간주하고 그와만 이야기 하던 얼굴이 안쓰럽게 안겨온다. 이제 이것을 허물어 버린다면 그는 누구와 말하며 또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다시 도서관에 발길을 돌릴수 있을것인가?
 
   도서관의 사서들이나 독자들은 그를 “공을기”나 “아Q”나 “상림아주머니”처럼 놀려 주지는 않지만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다. 이 점이 그를 얼마나 힘들게 했으랴!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하루가 멀다하게 책 보러 다니군 하였다.
 
   10여년전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설날 아침에 맨 먼저 도서관에 온 10명 독자들에게 관장님은 친히 두툼한 목책을 선사하여 설날에도 책을 읽는 그들을 격려해 주셨다. 기타 아홉명 독자들은 모두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로 그쳤으나 그날 그가 받은 감동은 그야말로 컸다. 첫사람으로 열람실에 들어서는 그에게 설 인사를 건넸더니 여직까지 도서관에서 자기와 말을 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며 그렇게 기뻐할줄이야! 목책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내앞에 선 그는 새해 축복을 뜨겁게 해주었다.
 
   “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분이 좋아진 그는 말이 많아졌다. 자기는 도서관에 와서 많은 자료를 베끼는데 이 목책을 유용하게 잘 쓰겠다며 몇번이나 거듭 말하였다. 이러는 그가 측은하여 후에는 인사도 스스럼없이 하고 말도 몇마디씩 걸군 하였다.
 
   집에서 도서관으로 또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것이 그의 생활의 전부였다. 베낄것이 뭐가 그리 많는지 온 종일 베끼고 또 베껴서는 그것들을 호주머니 여기저기에 잔뜩 집어 넣는다. 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이 있으면 점심도 거른채 계속 보군 했는데 어떤때는 퇴근 종소리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다가도 할말이 있으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로신동상앞에 가서 울분을 토로하거나 격정높이 연설을 하군했다.
 
    한번은 살그머니 동상곁에 다가가서 그의 연설을 들은적이 있다. 세상에! 그보다 더 훌륭한 정치가가 어디 있으며 그보다 더 말 잘하는 연설가가 또 어디 있으랴! 사회의 페단들과 부정부패를 얼음에 표주박 밀듯 얘기하는데 틀린말이 하나도 없었다. 책을 많이 보아서일가 그는 아는것도 많았는데 로신 동상과 말하는것을 빼면  모든것이 정상이였다.
 
   “로신은 하늘나라에 갔기에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마치 낯선사람 쳐다보듯 한참 뜯어 보더니 로신의 간력을 줄줄이 외우고 나서 자기는 오직 로신만 숭배하는데 그는 신선과 같기에 하늘나라에 갔어도 자기말을 다 알아 듣는다며 모든 인민이 잘살고 부강에로 나가자면 그래도 그와 말해야만 된다고 하였다.
 
   문뜩 로신의 “광인일기”에서 형이 자기를 잡아 먹으려 한다고 벌벌 떨면서 갖은 이상한 생각과 말들을 하던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러던 몇년전의 어느날, 로신동상 앞에서 또 연설하던 그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한 독자의 급한 웨침소리에 달려 나가보니 터진 머리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우리둘은 함께 피를 깨끗히 닦아 주고 정신을 차리자 좋은 말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만약 로신의 넋이 살아 있다면 이러는 그가 가여워 아마 많은 눈물을 흘렸으리라. 인사 한마디에도 그렇게 기뻐하는 그에게 나는 왜 빵 한쪼각, 물 한병이라도 사주지 못했을가? 후회되는 마음 금할수 없다.
 
   그런데 그후부터 도서관에 오는 차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얼마후엔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또 물어보면 다들 모른다고 한다. 그럼 그도 “공을기”처럼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이미 죽어 버렸단 말인가?
 
   로신은 아니 로신동상은 힘든 이 세상을 외로이 살아가는 j에게 유일한 삶의 끈이였고 정신적 지주였던것이다. 이 정신적지주가 없어지니 불쌍한 그가 그만 삶의 끈을 놓아 버렸단 말인가?
 
   작년 9월, 도서관의 락성식에 참가하였다가 새로 일떠선 멋진 청사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때의 그 희열을 무엇으로 말하랴. 마치 모진 세집살이를 하다가 새 아빠트에 든 그런 기분이였다.
 
   그런데 옥에 티라고 할가 도서관의 이런 선진적이고 우아한 환경임에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함해남을 어쩔수 없었다. 그것은 책과 붓을 들고 서있던 예전의 로신동상이 없는것이다. 원래 낡은 청사는 없어졌지만 그곳의 로신 동상만은 그대로 가져와야 한다고 아니 그것보다 더 크고 멋진것을 새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도서관의 지적인 분위기를 더 한층 높이고 j와같은 독자들도 모여들수 있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이 세상은 똑똑한 사람이나 정상적인 사람들만 모여사는 곳이 아니다. “아Q”나 “공을기”나 상림 아주머니” 같은 사람 또 J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도서관은, 도서관의 사서는 자신의 사회적직능과 함께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키워야 하며 부족한 그들도 도서관이라는 이 지식의 바다에서 마음껏 헤염칠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너와 나의 이런 작은 사랑이 모여서 아름다운 세상은 만들어 지는것이다.
 
    로신동상만 세우면 그가 다시 도서관으로 달려 올것같은 생각을 때때로 하군한다. 지금 장애인 열람실도 따로 나왔으니 여기에 높은 인격과 책임감을 겸비한 사서를 안배한다면 그도 도서관에 와서 기쁘게 독서하며 자기의 인생을 즐기것이다.
 
   지난날 참으로 그들을 사랑했던가? 많이 부족했던 어제날을 깊이 반성해본다. "도서관 정문앞에 로신동상을 세웠으면." 이 아이디어가 참신한지 새관장님께 말씀드리려고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리며 나는 진정 높이 웨친다.
 
   로신이여, 돌아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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