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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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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 詩는 아직도 어둠의 아방궁전에서 자라고 있다...
2016년 11월 26일 20시 37분  조회:3742  추천:0  작성자: 죽림
(21세기 영미 실험시 산책)
 
 
영미 실험시 배경과 경향
 
 
 
 
1. 글을 들어가며
 

 
어는 고드름은 시간과 함께 남모르게 더욱 굵어지며 자란다. 녹는 고드름은 뜨거움과 함께 더욱 가늘어지며 사라진다. 동굴의 석순(石筍)은 세월과 함께 어둠 속에서 말없이 자란다. 석순을 형성하는 동굴 속 물 흐름은 보이지 않아도, 시야에 드러나지 않은 어둠 속에서 나름대로의 멋진 아방궁을 퇴적시킨다. 어느 날 먼지 빛으로 공개되는 동굴 궁전은 너무 신비로워 그리스 강장제에 도취된 눈동자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실험시는 결빙되는 고드름처럼 속으로 얼고, 초봄에 전통시가 녹아 내리기를 기다린다. 실험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둠의 궁전에서 석순으로 자라며, 우연한 조명으로 세상의 눈길 받기를 기다린다. 실험시는 고드름처럼 머리 위에서 찌르며 자라고, 석순의 뿌리처럼 어둠에서 단단히 생장한다. 하나의 물방울로 시작된 결집(結集)이 더욱 성장하며 화려한 새로운 시 세계를 이룬다. 더 이상 숨으며 팽창될 시공간이 부족할 때, 실험시의 고드름이나 석순은 깨어지고 세상에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실험시는 새로운 시 쓰기다. 밑으로만 늘어지는 고드름의 흔적이 싫어서 옆으로 위로 성장하고 싶어하는 마음의 결정체다. 새로운 형상과 무늬로 퍼지기를 욕망하는 새로 형성되는 석순의 속살 아픔이다. 한 시대의 퇴적된 정신 층을 쓸어버리려는 바람(慾, 風)의 모임이다. 그 작은 모임은 홀로 서는 외로운 학 다리가 두려워 새로운 실험성을 공유하는 집단의 나눔이 되려한다. 나눔의 장(場)이 모여서 새로운 물줄기를 모아내고, 노란 사막에 한밤의 비내림으로 새로운 빗자욱을 남긴다.
 
20C를 갓 넘긴 새 천년 시대에도 실험시가 생장하는 시 동굴에 지난밤부터 내린 새로운 빗자욱이 엿보인다. 겉으로 바로 드러나지 않고, 아직 수로를 형성하여 도도히 흐르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감지되는 물줄기의 자욱이 드러난다. 20C를 투영하는 지하수가 모래 속의 거울이 되어 분명한 잔상(殘像)으로 반영하는 한 세기의 흔적이 있다. 20세기말의 정신적 흐느낌과 새로운 시 쓰기의 물줄기가 실험시의 수맥을 찾는 대나무 가지에 살풋이 느껴진다.
 
흔히들 20 세기말의 새로운 시대의 감성과 몸짓을 포스트모던(Postmodern)이라는 용어로 대변한다. 어두운 세기말적인 정감과 새로운 기대에 대한 상반된 감성을 표현 투영하는 모든 급진적 정신 활동을 실험적(Experimental)이라고 한다. 이러한 새로움의 모색과 무한한 가변성의 세계를 쫓는 새로운 형태/내용의 시를 실험시라고 정의한다. 실험시는 영어로 “experimental poetry, " "avant garde poetry," "innovative poetry" 등으로 불리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새로움을 향한 강렬한 정신적 발돋음, 실험성이 된다. 시 쓰기의 새로운 방향성 추구, 새로운 표현과 의미의 모색이 실험시의 목적이며 생명이다.
 
모든 시(어)에는 사라지는 지점이 있다. 인간의 지성과 감성에는 과거가 스러지고 새로움이 들어서는 교체의 시기가 있다. 너무 익숙한 편안함이 싫어서 새로운 낯설음을 찾아 나서는 정신적 여정이 있다. 낯설음에 매료되는 탐험성이 실험을 추구하게 한다. 실험시는 이렇게 상실되는 시어의 의미, 놓친 조각을 새롭게 되살리는 작업이다. 기존에 포착된 지점을 재구성하기보다는 상실된 부분을 더욱 탐색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움의 탐구가 모든 실험시의 맥박이며 핏줄이다. 실험시는 전통을 버리려 하면서도, 고아로서 떨어지지 않는 지혜가 있다. 멀리 떠나려는 설레임을 항상 새로 각색하는 용기와 의지를 드러낸다.
 
특히 미국 실험시는 유럽의 시 경향과 비평이론의 영향을 받아 더욱 강렬하게 새로워 지려한다. 유럽의 모태를 벗어나 신세계의 자유와 자본주의의 팽배를 더욱 즐기며 새로운 실험시를 시도한다. 현대의 모든 문화의 집산지로서 최고의 실험성을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미국 실험 시인들은 학제간 상호 교류를 통한 문화적 융합접을 더욱 천착한다. 시와 영적 감각성이 높은 서구 화단의 영향도 수용한다. 특히 유럽의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화풍을 통한 시적 감수성을 더욱 새롭게 개발한다. 특히 큐비스트(cubist)나 다다이스트(dadaist) 화가들의 그림에서 많은 실험적 영감을 얻고 있다. 또한 언어학적 비평이론과 해체이론, 프랑스 철학 비평이론 등의 영향으로 미국 대학 내의 비평문학이 새롭게 발전되면서, 시에서도 새로운 성향이 발전하게 된다.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따른 마르크스(Marx) 이론이나 사회주의 및 자본주의 이론 등도 실험시의 노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준다.
 
미국의 정치적 패권주의와 문화적 제국주의가 더욱 왕성해지면서, 실험성 높은 시적 경향이 자연스레 강화된다. 평안과 풍요의 정신성 속에서 정신세계와 지적 만족을 위한 새로운 시 경향을 추구하는 것은 가히 본능적이라 하겠다. 현대 문화의 다양성만큼 시 경향도 다양하게 추구하게 된다. 시의 실험성은 자연, 풍토, 문화적 환경, 인간적 기질 등의 제반 요소에 따라서 급변하고 요구되는 것이므로, 문화제국으로서 군림하는 미국의 실험시는 예측할 수 없는 다양성을 표출하고 있다. 전 지구적인 위기와 변화의 물결을 대변하는 정신성을 프론티어(frontier) 정신으로 맞서나간다. 그들의 전방위(前方位)를 겨냥하는 총구는 대열을 이루어 정확히 발사되고 있다.
 
이러한 영미 시단에 나타나는 실험시 경향을 4회에 걸쳐 탐방해본다. 우선 미국 실험시의 성장 배경과 일반 특성을 먼저 접근해본다.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각 시인과 실험시 집단별로 구체적 시를 감상하면서 변화와 실험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영미 시단의 실험시 추세와 내용을 이해함으로서 토착적 국내시에 새로운 시적 감성과 실험시 추구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앙망한다.
 
 
 
 
 
 
 
2. 실험시의 형성 과정
 
 
 
 
i) 새로운 유행
 
최근 10-20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지성인 사회(특히 대학 사회)나 대중사회에서 시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각 대학의 문예창작과나 시 창작 워크샵, 일반 시 낭송회에서 새로운 시 발표가 성시(盛市)를 이루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 시 형식, 내용, 틀을 벗어난 자유를 향유한다. 신선한 표현 매체와 실험시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어찌 보면 쓸데없는 짓거리처럼 느껴지는 시내용이 진지하게 논의되며, 새로운 매체를 통한 새로운 창작법이 진지하게 모색된다. 모더니스트 시인(W. C. Williams, Gertrude Stein 등)을 비롯해서 비트 세대 시인(Allen Ginsberg, Lawrence Ferlinghetti 등), 뉴욕 시인(Ashbery 등), 고백시인(Sylvia Plath, Robert Lowell, Anne Sexton 등), 구체주의자(E. E. Cummings 등), 이미지스트(Robert Bly, James Wright 등), 더 나아가서 이러한 2차세계대전 전후 세대들의 시를 전통시라고 반발하는 새로운 실험주의자들의 낯선 이름이 광고문구처럼 논의된다. 90년대의 실험시 연구자들은 현 시대의 사회 정치 현상과 문화성에 대해 더욱 심각한 탐구를 시도한다. 이들이 연구하는 실험시적 내용은 너무나 다양하여서 쉽게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실험시 연구 자체가 신조류의 문학형태로 나타나는 듯하다.
 
이처럼 미국사회, 특히 대학사회에서는 각종 실험시가 출현 연구되고 있다. 이 현상은 새로운 시의 문예부흥 시대의 다가옴을 예고하는 듯하다. 시문학사에는 항상 이중적 대립성이 편재한다. 전통적 소네트, 서사시, 하이꾸 등의 전통시를 새롭게 도입하려는 성향과 다른 한 편으로는 전통을 거부하는 듯한 실험시가 강하게 대비된다. 전통시의 새로운 모색이든, 이탈된 실험시의 추구이든지 간에, 모든 실험시 경향은 현대 사회의 새로운 정치성과 다양한 포스트모던 성향을 반영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의 복잡한 개성과 색다른 삶의 다양성을 고려하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일례로 시 낭송과 토론이 왕성한 대학 구내의 커피샵에서는 시각적 효과를 높이는 영상시, 시인지 음악인지 구분이 어려운 소리시, 연극인지 시인지 경계가 모호한 행위시 등이 망설임 없이 발표된다.
 
이러한 현대의 실험시 경향은 과거의 시 역사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새로움이란 과거의 궤적(軌跡) 위에서 새롭게 비트는 표현 작업이다. 이러한 새로움의 변화를 간단히 더듬어 본다.
 
우선 실험시는 1950-60 연대의 비트 세대의 시 현상에서부터 뿌리를 발견하게 된다. 비트세대(Beat Generation) 시인들은 탈정치적, 반지성적, 낭만적 염세주의 성향을 보여주는 새로운 시 경향을 시도하였다. 그 후 베트남 전쟁 여파로 퇴폐적이고 반동적인 사회현상이 새로운 히피 문화로 반영되었다. 그 후 히피 문화성이 쇠퇴하면서 시도 전체적으로 쇠퇴기를 맞이한다. 특히 전통시, 운율과 각운을 맞춘 정형시나 자유시 등이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듯했다. 대학의 시 교육에서도 시보다는 다른 장르 문학이 선호되는 듯했다. 무용이나 대중 예술, 행위예술에 비교해서, 언어 예술인 시가 급진적인 사회변화에 만족스럽지 못한 표현수단이나 예술행위로 인식되기도 했다. 시는 단순히 상아탑 속의 학자들의 얘기이며, 아직 정신적 세례를 받지 못한 대중들과는 요원한 고상한 취미일 뿐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시란 마치 깊은 내적 고민을 토로하는 정신적 표현물, 지적 산물로만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80년대부터 탈냉전 사태를 통해 미국적 패권주의가 더욱 강화되면서, 새로운 사회 정치적 요구, 지적 변화에 부응하여 새로운 시 쓰기 경향이 나타난다. 각 대학의 문창과에서 대학교수보다는 현장 시인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기존의 전통적 시 쓰기에 대한 담론보다는 실험성이 강한 시 쓰기가 시도되었다. 시는 더 이상 상아탑 속의 죽은 대상이 아니라, 현대 사회 속에서 동참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식되었다. 현시대에 맞는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 간결하고 강렬한 시가 새로 조명 받게 된다. 전통 시적 표준을 거부하고 새로이 변화하는 시대성에 발맞추려는 시도가 진행된다. 잘 포장된 상품 같은 획일적인 현대 사회성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새로운 감성과 사유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매체로서 시를 선호하게 된다. 시는 산문과 달리 자유로운 감성과 미래성을 보장하는 듯한 표현력을 갖는다. 새로운 감성, 흥미로운 생각을 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가 지성인과 대중의 환영을 받게 된다. 모든 형태의 시가 수용 가능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전통시의 찬반(贊反), 사유시의 강조, 무의미 시 선호, 정치적 성향 시, 일반 대중적 세속시, 등의 다양한 취미와 내용이 시로 표출되었다.
 
이처럼 시는 복잡한 현대 생활에서 새로운 일탈(逸脫) 방법으로 점점 선호되었다. 단순한 오락으로 자리매김 하기보다는 지적 쾌감이나 여유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시를 선택하였다. 대중은 산문과 달리 간단하고 짧은 공간에서 자유로운 사상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시적 특질에 매료되었다. 시가 여가거리로 격상되었다. 문화 생활의 충족조건으로 시가 필요되었다. 특히 젊은 층에게는 전통적 진부한 시 표현이나 정치적 슬로건, 광고 문구 등에 식상하고, 일상적 언어 표현이 너무 진부하고 재미가 없어서,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서 시적 감성과 통찰력, 재치, 폐부에 와닿는 표현 등을 모색하게 된다. 그 새로운 모색의 결과가 언어 장난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삼행시나 광고문구를 넘어서는 시적 표현으로 발전하게 된다. 시는 조금만 변화를 주어도 의미나 감성 전달이 확 달라지는 표현수단이므로, 새로움 선호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시가 자연히 새로운 감성 표현수단으로 선호되었다.
 
이 결과로 1990년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세기말적인 현상에 맞는 새로운 표현력을 시에서 발견하게 된다. 보다 영적(靈的)이고 감성 표현적이며 현실 반동적이고, 폭팔적 표현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세기말적 현상은 어느 시대에서나 발견되나, 21C의 새로운 천년(millenium)을 앞둔 시대에서는 그 느낌이 더욱 강화되었다. 일례로 선(善)을 발견하는 수단으로서 시를 찾기보다는 인간적 악(惡)의 내면성을 보기 위해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선호하기도 한다. 시는 다른 어떤 문학적 표현수단보다도 즉각적이며 표현 강도가 높다. 현 시대의 사회적 악, 세기말 사상을 표출하는 시적 감성은 자연스레 등장한다. 이렇게 새로운 구원과 깨달음의 방편으로 새로운 유형의 시는 새롭게 다가온다.
 
이러한 새로움의 추구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실험적 표현 양식이 나타난다. 우선적으로 서구 정신사를 대변하는 전통적 사상시(Dante, Louise, Keats, Milton, Christina, Urure등)를 새롭게 읽는 노력이 나타난다. 전통 속의 실험적 시를 통한 명상 작업을 시도하고, 새로운 미학으로 현세상을 읽기 위한 창조적 상상력을 시도한다. 이러한 전통의 새로 읽기는 다양한 비평 조류에서 정전(正典)을 다시 읽기 현상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비평의 일상화에 의해서 일반 시민들도 시인이 세상을 보듯이 일상적 사물에서 새로운 의미와 깊은 생의 통찰력을 발견하게 된다. 종래에는 기존 시인들만이 향유하던 자연과 사물에 대한 생의 음미법을 일반 대중들도 같이 공유하게 된다. 이에 따라 시의 저변 확대가 더욱 강화되고, 시의 대중화에 따른 새로운 변화가 더욱 가속화된다. 실험시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자연히 형성된다.
 
 
 
 
ii) 비트 세대(Beat Generation)의 전통
 
 
 
 
실험시의 전통은 멀리 정원 끝의 조망으로 보면 모더니즘에서부터 시작되지만, 가까운 조망으로는 비트세대의 시인에서부터 연관을 짓는다. 이 시인 집단은 1955-60년대 사이에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던 서정시 시인들로서, 탈정치적, 반지성적, 낭만적 염세주의 시 성향을 보여주는 시인들이다. “짓밟힌,” “얻어터진,” “축복에 겨운(beatific)”처럼 모순적인 극단의 반대 의미를 가진 비트(Beat) 의미에서 이들의 사회적 태도와 시적 성향을 암시 받는다. 이들은 스타일이나 주제, 형식적 표현의 통일성 요소보다는 새로운 표현법을 추구한다. 이러한 시인으로는 휘트만(Whitman)적인 강렬한 자유를 구가하는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b),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자동 암시적으로 시를 쓰는 잭 케루악(Jack Kerouac), 신중하면서도 다다이스트(Dadaist)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시의 대장장이 로렌스 펠링게티(Lawrence Ferlinghetti), 등이 있다.
 
이들은 모더니스트와 유럽 시 경향을 총망라하여서 사실주의, 마르크스주의 성향, 감성 및 초감각적 엑스타시(황홀경), 언어의 실험 성향 등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로 이들의 시는 재즈처럼 자유분방하고 영감적이며, 황홀 상태에서 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들은 종교적 감정과 감수성을 보이는 신비주의에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신비주의 성향이 미국적 풍토와 문화성과 어울려서 새로운 시적 감성을 잉태하게 한다. 이러한 비트 시인들의 일반 성향은 미국이 더욱 강대해지면서 새로운 실험시의 표본으로 자리잡게된다.
 
일례로, 실험시의 전통은 언어의 청각성(aurality)에서 추적할 수 있다. 미국시단에서는 1930년대와 1950년대에 두 차례 좌파 성향이 나타나는데, 전자를 구 좌파시인이라 하고 후자를 신좌파 시인이라고 한다. 이 때 “new left"라는 칭호는 당시의 정치 성향이외에도 새로운 시적 특질을 암시해준다. 이 새로운 시 경향은 바로 시의 음악성, 청각성이다. 비트 세대에서는 노래나 주문(chant) 같은 반전시(反戰詩)를 행위예술 하듯이 낭송하였다. 대표적으로 Ginsberg는 노래부르는 가수처럼 시를 표현하였다. Ginsberg 시 "Kaddish"는 미친 공산주의자 Naomi 어미를 위한 유대교의 망가(death-epic)다. 비트 세대 시인인 Kerouac 시는 jazz 처럼 들린다.
 
 
 
 
(삽화 시)
 
Kaddish의 마지막 5절은 공동묘지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처럼 울려나온다.
 
 
 
 
주여 주여 하늘의 울림소리 남루한 나뭇잎 사이로 바람 기억의 함성 까악까악 일생 나의
 
탄생 꿈 까악 까악 뉴욕 버스 깨어진 구두 거대한 고등학교 까악 까악 모든 주님의 환상들
 
주여 주여 주여 까악 까악 까악 주여 주여 주여 까악 까악 까악 주여
 
 
 
 
여기서부터 과거와 달리 시가 대중가요처럼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발견하게 된다. 구어체 사용을 통해 대중에게 읽히고 노래처럼 부르는 시를 쓰게 된다. Wilbur 의 “두꺼비" 같은 시 성향이 쉽게 대중에게 접근되어 간다. 최근의 이러한 구어체 시 운동은 MTV 출연으로 유명한 Maggie Estep을 통해서 시가 대중시, 상업시로 근접하는 계기를 맞게된다. 또 Edwin Torres는 구어체 시 운동에서 보다 심각하게 시를 표출하고 있다. 최근 시인의 구어체 시어법은 비트 세태의 전통을 계승하고, 모더니즘, 더 거슬러 올라가서 Whitman의 시 전통을 계승하면서, 시를 대중주의(popularism)로 발전시키고 있다.
 
시의 대중성은 자연히 정치적 참여성으로 발전한다. 1차 세계대전후 세대인 1930년대 좌파 시인들(Edwin Rolfe, Ruth Lechlitner 등)이나 2차 세계대전후 비트 세대는 모두 동일하게 정치적 성향을 갖게 된다. 국회의원이 단순히 소방전 같다는 시 표현에서 세태의 풍자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정치적 급진주의(political radicalism)성향은 시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러한 정치성은 실험시의 주요 모티브가 된다. 현대인은 오락산업화된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에, 현대 실험시는 정치적 요소를 많이 표출한다.
 
물론 비트 세대 시는 전 세대(모더니스트)와 30여년의 세월의 차이에 의해서 30년대의 시 성향과는 사뭇 다른 시 형태를 보여준다. 비트 세대는 심각하고 전통적 가치를 표현하기보다는 자연스럽고 캐쥬얼한 시를 선택한다. 벽난로에 앞에 앉아서 편안히 졸고 있는 강아지처럼 자기 사유를 마음껏 향유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일상적 사물(슈퍼마켓, 거리, 경찰, 거리의 물웅덩이 등)을 노래한다. 당시의 메카시 선풍에 휩쓸리지 않고, 좌익사상에 실망한 상태로 자기 나름대로 미국 가치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본연의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시인으로서 자유로운 형식과 언어, 정신을 구가하였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시 대상에 조율하듯이 명상해나간다. 자기 스스로 새로운 도구가 되어서 새로운 표현매체를 창조한다. 스스로 자기 인식의 관찰자가 되는 동시에 해설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의 시적 리듬은 생체리듬과 닮아 있다. 이러한 자연스런 호흡이 바로 자연스런 시쓰기를 의도한다. 가장 자연스런 마음이나 표현은 곧 자연스런 파괴가 가능한 새로운 시 쓰기를 강요한다.
 
이러한 감성의 자연 발생적인 성격(spontaneity)이 새로운 시 사조로 자리잡게 된다. 실험시는 땀 흘리며 애쓰는 작업을 거부한다. 자연스레 흘러나오듯이 편안한 표현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 발레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고난도의 기술을 자연스레 땀 흘리지 않고 연기하듯이, 아무리 어려운 시적 상황이나 사상도 자연스레 토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추는 춤은 예술이라 하지 않고 중노동이라 한다. 의도적이고 애간장을 태우는 시 쓰기는 예술이라기 보다는 고생이 된다. 실험시는 지적 노동이나 의도적 고생이 아니다.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새로운 성향이 되어야 한다.
 
자연스러움은 수많은 훈련과 반복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자연스런 실험시 쓰기는 원숙한 기존의 시 쓰기를 전제한다. 기존의 시 쓰기의 틀을 완성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새로운 실험시가 탄생 가능하다. 자연스러움은 완전한 통제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시인의 새로운 시적 감성은 다양한 경험과 대체 감성 표현이 가능할 때 자연스럽다. 실험시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기존의 완성미를 대변한다. 자연스러운 발레 동작이 완전한 균형과 고난도의 기술을 마스터 할 때 가능하듯이, 시의 자연스러움 즉 새로운 시 쓰기도 기존의 시를 완성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시에서의 자연스러움은 시 쓰기의 기본 3 과정인 착상, 시작(詩作), 대중 전달에서 나타난다. 독특한 시상(詩想), 비의도적이고 검열하지 않는 듯한 시 쓰기, 자연스런 전달력 등에서 자연스러움을 발견하게 된다. 실험시는 이렇게 자연스런 시 쓰기에 의해 자연스레 태어난다. 시를 새롭게 쓰려는 의도와 생각, 표현법, 전달 과정에서 새롭고도 자연스런 실험시가 탄생한다.
 
이런 자연스런 시쓰기는 의도적으로 반복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시 쓰기가 곧 퍼포먼스처럼 일회성으로 순간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지기 쉽다. 영감처럼 일어나고 스러지는 성격을 보여준다. 이러한 즉각성(immediacy)이나 즉흥성(improvisation)은 이미 고도의 절제와 완성, 훈련을 바탕으로 가능하다. 아무리 순간적으로 변화를 주더라도, 그 근본을 완전히 습득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실험시는 이러한 수준의 완결도를 기본으로 하여 형성된다. 실험시의 자연스러움은 고도의 건축적 완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비트 세대 시인의 전통은 90년대에도 유효하게 작용한다. 자연스런 언어의 흐름대로 시를 표현하고, 감성과 황홀경을 신비하게 표현하고, 현시대적 감수성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고, 표현 도구로서 소리와 행위를 동원하고, 현실 염세적인 비판적 시성을 보여주는 실험시는 이미 비트세대에서 뿌리가 자라고 있다. 이들의 뿌리 위에서 사유시, 소리시, 행위시, 전자시, 무의미시, 매체시 등의 다양한 실험적 시가 탄생된다.
 
 
 
 
3. 실험시란 무엇인가?
 

 
i) 실험시의 일반 특성
 
실험시는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시다. 현시대에 맞는 시적 의사소통 방법의 결과로 나타나는 시가 실험시다. 현대 인간의 의식 속에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되는 것이 안 되는 것이고, 안 되는 것이 되는 것으로 헛갈릴 때가 많다. 이러한 의식 현상이 시에서는 모순과 조화의 수사법으로 나타난다. 동질성과 비동질성의 병치법(juxtapositions of association and dissociation)이 된다. 최근까지도 현대인간은 꿩 잡는 자가 대수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삶이 보다 풍요해질수록 결과보다는 삶의 질, 살아가는 과정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시에서도 시대성이 그대로 반영된다. 포스트모던 실험 시인들은 시 쓰기 과정을 중시하지, 시어가 의미하는 직접적인 내용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즉 형식과 내용보다는 시를 쓰는 그 과정 자체를 더욱 중시한다. 시를 쓰는 그 자체로 만족한다. 그들의 목적은 시와 시어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기존을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 추구에서 쾌감을 맛본다. 이렇게 시는 시대성을 벗어날 수 없는 정신활동이다.
 
이러한 시대성과 실험성의 상관관계에서 시는 현실을 주도하려는 욕망을 가진 시인들에 의해 창조되어진다. 따라서 실험시는 새로움의 변화 추구에서 일단 전위성을 갖게 된다. 전위성은 독특함(uniqueness), 미완성, 이탈, 비타협성, 초월성 등을 의미한다. 실험시의 전위성은 우선적으로 완성되지 않는 새로운 시도로 인식된다. 목표를 향한 과정성의 중시, 변화 자체를 향유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실험시는 기존시의 틀을 의도적으로 벗어나려 한다. 새로운 의미를 증명하기보다는 무의미성이라도 일단 행하고(쓰고) 보는 진취력이 있다. 실험시는 새로운 시도의 성공 여부를 개의치 않는다. 실험적으로 움직이며 새로운 시적 생명력을 탐구하는 데에 스스로 만족한다. 실험시는 항상 굴러가는 돌이기를 원하지, 일정한 구멍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다. 기존시와 실험시는 안주와 거부의 차이일 뿐이다. 실험시가 안주하면 다시 기존시가 되며, 기존시가 안정을 거부할 때 실험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감성적, 형식적, 언어적, 의식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현대 실험시는 시 의미가 너무 깊어서 무질서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시 주제가 너무 일상적이라서 약간 평범한 기분을 줄 수 있다. 그렇잖으면 일상적 시제나 내용을 벗어나서 너무 특이한 시를 쓰려고 한다. 현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한계치를 시로 표현하려고 한다. 개성을 강조하는 최고 끝자락을 표출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해를 거부하는 듯한 난해성 속에서도, 시 자체로는 그렇게 재미없고 지루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시가 낯설고 괴상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지지만, 톡톡 튀는 지적 자극을 준다. 현대 실험시는 지루한 표현을 용납하지 않으며, 신선한 자극(지적 및 감성적 자극)을 중시한다.
 
이러한 일반 특성 이외에 주요 특성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미국 예일대 교수인 Elizabeth Alexander는 "훌륭한 시는 적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의미는 적확한 언어 구사, 특정 시 상황에 맞는 정확한 시적 감성의 표현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연히 감성의 분출보다는 냉철한 지적인 시적 표현을 중시한다. 감성적으로 엄격하고 정확하게 구사되는 시 표현을 말한다. 실험시는 전통적 서정시의 감성 표현을 거부하고 기계적, 금속적, 객관적 감수성을 중시한다. 낭만주의적인 풀어짐보다는 어찌 보면 고전주의적인 차가운 이성, 절제된 감성, 단아한 형식, 풀어지면서도 가볍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내면이 무거운 듯한 표현을 선호한다. 실험시는 언어 구사의 적확성을 가장 강조한다.
 
실험시에는 언어시적인 요소가 많다. 문장간의 연결성이 별로 없는 듯한 파편적인 문장(“new sentence," Ron Silliman이 그의 산문시 ”Albany"에서 사용한 용어)을 많이 사용한다. 시행 길이는 기능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한다. 파편적 언어의 의미는 전체 맥락에서 구성력을 갖는다. 개별적 문장이나 어휘는 즉각적인 의미를 제공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실험시의 언어적 요소는 접속사 없이 단어/구/절을 자유롭게 연결하는 구문(parataxis)을 사용하고, 의도적으로 시어의 위치를 변경하고, 의도적으로 시어를 생략하고, 언어장난하듯이 사념을 표현하고, 고정된 그림을 거역하듯이 이미지를 그려나가고, 의도적으로 소리 유희하듯이 시어를 선택하고, 화자 및 주어를 감추면서 전통적 표현법을 회피한다.
 
실험시는 시적 표현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가 많다. 이것이 실험시의 미결정성, 과정성이다. 구체적으로 지시되지 않고 항상 열려있다. 무한한 지시성은 구체적 상징이나 지시어로 존재하지 않고 은유나 환유로 무한히 열려있다. 이해하는 사람에 따라서 무한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지시의 무한성은 시 의미와 비유의 무한성으로 연결된다. 실험시는 한정되기를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실험시는 불명확성 속에서 사실주의를 표방한다. 이러한 사실주의적인 불명확성 속에서 실험시의 변화로운 시공간이 형성된다. 부분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시 의미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되도록 수수께끼처럼 그대로 남겨두고 시가 진행된다. 실험시는 신비적 요소와 일상적 요소를 동시에 담는다. 난해한 신비성이 불명확한 은유와 비유를 제공하고, 일상적 편안함이 읽기 쉽고 재미있는 재치를 제공한다. 실험시에는 시를 위한 시처럼 시작법(詩作法)을 위한 메타포이트리(metapoetry) 요소가 있다. 시 쓰는 방법론이 곧 인생의 방법론처럼 인식되는 시가 많다. 실험시는 대개 작가의 개성이 간섭하듯이 드러나는 작가적 지배력을 거부한다. 시를 독자에게 열어놓는다. 시인은 독자가 읽고 싶은 대로 시를 던져놓는다. 시인은 상호 모순되는 듯한 언어, 소리, 언어 구조(색채)를 상호 교차하듯이 정교하게 써놓는다.
 
이러한 실험시의 특성을 보여주는 시인을 가볍게 언급해본다.
 
미국의 저명한 실험시 작가인 Fanny Howe는 의미의 아이러니를 더욱 밀고 나아가서 미국시의 기교의 경계선을 허물정도로 새로운 시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시의 질료인 언어 자체에 대해 회의한다. 언어성에 회의하면서도 그는 새로운 시적 의미에 대한 탐구를 계속한다. 현대 사회의 인간성, 정치성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심각하거나 우울한 색감보다는 민감한 유머를 즐겨 사용한다. 대체적으로 그의 시는 소리를 중시하고, 전체적인 시 의미나 시적 무드를 선호한다. 그의 시는 실험적 탐구성을 강조하기 위해 연작시(sequence)를 많이 쓴다.
 
Carol Snow 같은 시인은 “어휘 문장”(Vocabulary Sentences)이라는 연작시에서 언어시적 요소를 많이 추구한다. 가벼운 듯하나 내면적으로 울림소리가 커다란 시를 즐겨 쓴다. 언어시적 예를 들어보면, “Are" 제목의 시에서 ”누구는 구제 받고/ 누구는 빠진다,“ "During"에서는 ”그 동안 그가 내 손을 잡고 있는 것,“ "만족”에서는 ”25년간의 결혼 후에야, 그녀의 호기심이 만족되었다.“ 이처럼 그는 간결한 경귀 같은 실험시를 많이 쓰고 있다.
 
실험시 시인의 공통적 특징은 언어에 대한 새로운 탐구성이다. 그들에게는 언어가 곧 사물이며, 사상이 된다. 이러한 언어가 곧 사상이라는 견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회자되어 있다. 미국 모더니스트 시에서는 이러한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테니스 코트 맹세”(The Tennis Court Oath, 1962) 작가인 비트 세대 시인 Ginsberg는 “언어가 사상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시어는 의미 구분과 단락 설정이 어려운 상태를 보여준다. 머잇 속의 생각처럼 언어가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의 “수많은 의존심”이라는 시는 “나는 의존한다 의존하고 있다 나를 보라 깊은 어둔 밤 속으로 의존하는 그 의존에서부터 나는 아침에 의존하며 나타난다 노래하는 나는 의존한다 노래는 의존하는 나에게 의존한다.” 이것은 내면의 마음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고 경쾌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자아의식이 흐르는 대로 마음이 팽창하는 느낌을 제공한다. 이러한 시 의식은 세잔느(Cezanne)의 화법(畵法)과 별 다름이 없다. 동양의 호흡법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더니스트들의 숨쉬고 확장하는 과정이 새로운 형식주의자(New Formalists)들을 자연히 탄생시킨다.
 
이러한 실험시의 기본은 이미 비트 세대 시인에서부터 발견된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면 실험시의 산실 역할을 한 비트 시인들의 시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로렌스 펠링게티(Lawrence Ferlinghetti)의 시 “개(Dog)"를 살펴본다. 그의 시 의식은 생각(비교, 의식)과 경험이 일치되는 듯한 시 경험을 제공해준다. 그는 직접 개의 실존을 경험하듯이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감성을 표현한다. 그는 인간의 지성으로 고도의 인간 마음과 강아지의 정신세계를 혼연일체 시키고 있다.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생각이 추상적 세계(abstraction)가 되고,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시적 의구심과 마음이 근본적인 사상과 존재의 문제를 의문하고 있다.
 
그 시의 일부분을 번역해본다.
 
 
 
 
강아지가 거리에서 자유롭게 뛰어간다
 
그는 강아지 삶을 살아간다
 
스스로 생각할
 
스스로 사유할
 
모든 것을 만지고 냄새맡고 실험하며
 
모든 걸 조사한다
 
위증죄의 은혜도 없이
 
진정한 사실주의
 
진정으로 말할 이야기가 있는
 
진정으로 같이 말할 꼬리가 있는
 
진정으로 살아있는
 
컹컹 짖는
 
민주적인 강아지
 
진정으로 자유로운
 
기상(氣像)에 종사하는
 
존재론에 대해
 
무언가 말할 게 있는
 
실재에 대해
 
무언가 말할 게 있는
 
그걸 어떻게 보는지
 
그걸 어떻게 듣는지
 
머리를 갸우뚱 옆으로 틀고서
 
거리 한 모퉁이에서
 
마치 승자의 레코드판
 
겉 사진
 
마악 찍으려는 듯이
 
주인의 목소리
 
들으면서
 
바라보면서
 
살아있는 의문부호처럼
 
거대한 축음기
 
속으로
 
혼란스런 존재의
 
경이로운 텅 빈 뿔을 가진
 
항상 모든 것에
 
승리의 해답을
 
마악 토해내려는 듯이
 
보이는
 
 
 
 
 
 
 
ii) 실험시의 기본 원리 및 개념
 
 
 
 
실험시를 이해하기 위해 기본 원리나 개념을 먼저 정리해본다.
 
우선 실험시는 시의 오리지널리티를 부정한다. 시 쓰기는 결국 서로 표절하고 상호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독립된 시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는 본래부터 타인이나 전통에서 새롭게 각색할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새로운 시 쓰기는 전통이나 타인에서 새로 빌려오는 것뿐이다. 모든 시는 상호 영향성을 준다. 이러한 언어의 근본성, 시어의 차용성이 실험시의 근본 출발점이다. 타인의 시를 새로 각색하고 패러디하고, 변형하여 표현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 새로움이나 실험시란 근본적으로 표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 실험시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한 베르나데트 메이어(Bernadette Mayer)의 실험시 쓰기 연습법을 살펴본다. 실험시 쓰기 연습에서 실험시의 속성을 암시 받는다.
 
첫째, 쓰여지지 않은 것을 써야 한다. 실험시는 지수나 디지털로 될 수 있다.
 
둘째, 가장 어울리지 않는 주제, 마음상태, 내용을 시로 써야한다.
 
셋째, 빈 종이에 쓰지 말고, 이미 적혀있는 종이에다가 시를 써본다. 기존의 활자와 어울려서 새로운 시를 탄생시킬 수 있다.
 
넷째, 졸작의 시를 찾아서, 잘 연구한 뒤에 그에 어울리는 졸작을 써보도록 한다. 졸작을 쓰면서 새로운 시 쓰기를 발견할 수 있다.
 
다섯째, 거울 속의 자아상을 바라보면서 “나”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시를 써본다. 자아가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자아를 부정하는 시를 쓸 때에 새로운 시 쓰기가 가능하다.
 
여섯째, 산문을 시로 개작(改作)하는 작업을 해본다. 일례로 산문의 첫 단어와 끝 단어만을 발췌하여 시 형식으로 다시 써보면, 색다른 시를 발견하게 된다.
 
일례로, 애국가를 가지고 개작해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민국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이것을 이렇게 새로운 시 형태로 개작할 수 있다.
 
동해물 닳도록
 
하느님 만세
 
무궁화 강산
 
대한민국 보전하세
 
일곱째, 언어를 의도적으로 체계적으로 변형시켜본다. 일례로 각 품사별로만 시를 써본다. 동사면 동사, 명사면 명사로만 시를 써본다.
 
여덟째, 동일한 하나의 사건으로 여러 개의 시를 써본다.
 
이렇듯, 실험시는 문창과의 워크샵 시 쓰기 연습 시간에 시도되는 실험성처럼 느껴진다. 대개는 시의 고유한 표현력을 유지하면서도, 시적 형식이나 표현 방법을 새롭게 변화하는 방법론을 실험성이라고 한다. 언어의 변화성을 일차적으로 실험시의 가치로 본다. 현대 실험시의 특징은 시어의 기본 단위를 문장(sentence)보다는 시행(line)이라고 한다. 완전한 문장을 통한 의미 전달보다는 불완전하지만 새로운 탈격을 통해 새로운 시적 감수성을 모색한다. 이러한 형식과 의미 단위의 변화는 W. C. 윌리암스의 모더니즘 성향에서부터 비롯되어서 Robert Creeley가 적극 주장하는 시형식의 파괴성에서부터 뿌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성향이 현대 아방가르드 시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이 표현 단위의 변화는 자연히 구두점(punctuation) 사라짐, 완전한 문장 부정, 단어 및 단어의 연결, 등과 같은 실험적 변화성으로 나타난다. 완전히 통일된 (어느 면에서는 고정된) 의미 전달보다는 항상 열려진 의미 해석, 보다 풍부한 의미의 개방을 위하여 시행의 변화를 추구한다.
 
또 실험시는 시각(視覺)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거울 앞에 서서 자아상을 바라보는 일차적 평면성보다는 거울 뒤에 나타나는 자아상을 보려한다. 자아를 입체적으로 떨어트려 놓고 보려한다. 시인이 스스로 시에 드러나면서 실체를 보이려 하지 않고, 시인 스스로가 다른 시각으로 꺽어진 곳에 숨어있는 자신을 훔쳐보는 듯한 시야를 표현한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의 변화성뿐만 아니라, 시를 보는 의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실험시는 시의 초점, 의식의 주체, 시각의 각도가 어디에서부터 쏘아지는지 분명하지 않다. 잉크제트에서 분출되는 간헐천의 용솟음처럼 예기치 못한 의식의 구멍에서 시가 튀어나온다. 이러한 시각의 사각지대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때, 실험시는 마냥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러한 언어적 변화성과 시각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실험시는 이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예술이론에서 근원이 발견된다. 그는 조각가, 화가, 시인으로서 새로운 시론을 강조한다. 시인의 창조행위는 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진행된다고 한다. 시인은 단순한 중간자(mediumistic being)로서 예술적 계수(係數)로만 작용할 뿐이라고 한다. 이 말은 시인이 표현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표현이 우연히 발생되는 것이 시라고 한다. 이러한 포스모던한 예술이론에서 현대 실험시의 경향이 예측된다. 시인은 체스플레이어, 창문 닦는 사람, 치즈 나르는 사람, 숨쉬는 사람에 불과하기에, 우연히 발견되는 언어에 우연히 미쳐서 환호하는 예술가일 뿐이다. 실험시는 우연히 발견되는 치즈 한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언어적 우연성, 예술적 행위성, 영화 같은 극성(劇性), 그림 같은 회화성에서 실험시는 항상 새롭게 변화를 추구한다.
 
이 외에도 실험시는 항상 전통시의 토대 위에서 새롭게 발전한다. 모더니스트 중에서 실험적 성향을 보인 거르투르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실험적 언어 시, 윌리암스(W. C. Williams)의 이미지 시(Kora in Hell, 1918), 애쉬베리(Ashbery)의 “테니스 코트의 맹세”(1962) 등을 기초로 해서 발전한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시에서 언어의 리듬과 변화를 통해 소리시(sound poetry)가 탄생된다. 이외에도 실험시의 보편 성향인 사유시(Meditation poetry), 행위시(Action poetry), 언어시(Language poetry), 전자시(Electric poetry) 등으로 변모한다.
 
현대 미국 실험시의 대표 시인으로는 론 실리만(Ron Silliman), 찰스 번스타인(Charles Bernstein), 앨런 대이비스(Alan Davies), 린 헤지니안(Lyn Hejinian), 수전 하우(Susan Howe), 부루스 앤드류(Bruce Andrew), 훼니호우(Fanny Howe), 마크 레빈(Mark Levine), 캐롤 스노우(Carol Snow) 등이 있다.
 
 
 
 
4. 실험시의 구체적 공통성
 
 
 
 
실험시의 본능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 발전을 모색한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기본 공통적 성향을 안고있다. 그 기본 특성을 몇 가지만 추려본다.
 

 
1) 사실주의 성향
 
 
 
 
현대 실험시는 다양한 형태 속에서도, 대개는 사실주의 성향을 보여준다. 낭만주의의 감성이나 눈물, 서정보다는 현실의 실재적 사실(facts)을 구성적으로 표현한다. 사실적이면서도 실험적인 포스트모던한 시를 병행하고 있다. 사실적 측면과 실험적 측면은 서로 양립될 수 없는 듯한데도, 현실 사회의 현실성을 실험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서, 현대 실험시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시 표현 기법은 “사실 그대로"인데, 이 말은 사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레 표현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낯선 실험적 기교라도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대로 표현한다. 5개 단어의 미완성 문장으로 시를 쓰려고 할 때, 그냥 자연스레 흘러나오듯이 시를 쓴다. 인간의 보편 감성(죽음, 사랑, 등)에 대해서도 감성적으로 토로하듯이, 추상적 지식을 장식하듯이 표현하지 않고, 모든 감성을 억제하고 사실 그대로 싸늘하게 객관적으로 표현한다. 실험시는 기계적 차가움, 지성적 냉혹함, 노년의 달관성 비슷한 감성의 형태를 보인다. 이것이 실험시의 특징인 객관적 태도, 탈자아적 성향, 원거리 시야 등을 암시한다.
 
이러한 현대판 사실주의 성향은 자극적이거나, 인상주의적 감흥이나, 수사학적 화려함을 배제한다. 즉 비현실적인 것(irreality)을 배제한다. 시인이 직접 경험하고 상상할 수 있으며, 시인의 표현능력 범위 내에서 가능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언어적 기교를 이용하여 새롭게 시를 쓰면서도 현실적 문제를 사실 그대로 표현한다. 추상적, 형이상학적, 관념론적인 표현을 싫어한다. 시는 살아있는 현실을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고 믿는다.
 
시인의 개인적 경험과 상상력을 직접 사실적으로 표현한다는 면에서 전통적 사실주의와 별다르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실험시의 사실주의 성향은 기존 사실주의와는 시 형태나 표현성에서 다른 점이 보인다. 그 중에서도 실험시적 사실주의는 사실성을 다섯 개 시어(詩語) 정도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기존 사실주의처럼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어휘를 동원하지 않고, 일정한 어휘 내에서 사실주의 성향을 표현한다. 즉 각 시행이나 일부 문장이 사실주의 성향을 보여주지, 전체 문장이나 시 전체적으로 사실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실험시는 현재성, 현실적 긴박감, 강한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실주의 성향을 도입할 뿐이지, 전체적으로 사실주의를 목표로 해서 시를 쓰지는 않는다. 다만 도구로서 이용할 뿐이지 목표로 차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실험적 사실주의는 기존 사실주의와 성질상으로 차이가 난다. 여기서 성질적, 기질적 차이점은 언어의 변화성, 의도적인 언어의 비틀어쓰기 성향을 말한다. 실험시는 시 자료(내용)의 사실적 표현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언어를 의도적으로 색다르게 표현하려 한다. 전치사로만 시를 쓰던가, 시 구문을 의도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내용의 사실적 표현과는 달리 언어적, 구문적 실험 행위가 돋보인다. 실험적 사실주의는 외부 사물을 사실적 묘사보다는 인식과정의 사실적 표현을 말한다. 즉 주제가 되는 사물에 대한 사실주의가 아니라 예술적 표현수단으로서의 사실주의가 된다.
 
 
 
 
 
 
 
II. 언어적 요소
 
사실주의 성향과 동시에 실험시는 언어의 새로운 특성을 추구하는 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언어의 실험성은 모더니스트 시에서부터 뿌리가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언어적 형식 면에서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거투르드 스타인(Gertrude Stein), 윌리암스(William Carlos Williams), 루이스 주코프스키(Louis Zukofsky), 존 애쉬베리(John Ashbery)의 맥락을 유지해나간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이 강한 시를 언어시라고 부른다.
 
 
 
 
a) 언어시
 
대개 멋진 시적 형식과 내용을 갖춘 시보다는 언어적 변형을 시도하는 실험시를 언어시라고 한다. 이러한 언어시는 시적 문맥(context)을 탈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면에서 언어라는 한계성에 내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면이 있다. 이러한 언어의 변형은 시사(詩史)에서 끊임없이 추구해온 노력이다. 모든 시는 언어구조물이다. 언어 구조적 건설을 통해 새로운 시적 감성을 표출하려는 노력은 항상 존재하여 왔다. 그 과정에서 언어시는 대개 정치에 대한 표현을 많이 한다. 정치가 갖는 인간 지배력을 생각하면, 언어시가 풍자적으로 해체하는 대상이 자연히 정치가 된다. 언어시는 결국 언어로서 현시대의 상황적 의미와 내용을 표출하는 정신작업이 된다. 다만 그 표현 양식이 새로운 언어로 언어학적 변형을 통해 새로운 시적 감성을 드러내는 형태를 취할 뿐이다.
 
이렇게 세상사에 목소리를 내는 시는 결국 “목소리 시(voice poem)로 발전한다. 이 유형의 시는 독자와 시인의 쌍방간의 의사전달을 중시하는 시다. 자아 주체적인 시인이 또 다른 자아로서의 독자에게 독특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개념이 강한 시다. 즉 양자 간의 도전적인 의사통신을 목적으로 중간 색의 언어와 투명하면서도 자연스런 언어를 이용하여서 상호 관계를 형성하는 시를 말한다. 이 때 시인은 자신의 경험이나 감성을 자신의 메시지로 전달하려고 한다.
 
언어시를 추구하는 시인들은 주로 1940-1950 연대에 태어난 시인들이다. 이들은 주로 Toothpick, Lisbon & the Orcas Islands (1973); Alcheringa (1975); Open Letter (1977); Hills (1980); Ironwood (1982); Paris Review (1982); The L=A=N=G=U=A=G=E Book (1984); Change (1985); Writing/Talks (1985); boundary 2 (1986); In the American Tree (1986); "Language" Poetries (1987) 같은 시 전문지에서 시를 발표하였다. 언어시 계통의 시인들은 아직 다양하게 분산된 상태로 각자 시작 발표를 하고 있지만, 현대시 잡지, 비평서 등에서 언급되는 시인은 80 여명 정도가 된다. 최근에는 This, Tottel's, Roof Hills, Miam, Qu, L=A=N=G=U=A=G=E, The Difficulties, A Hundred Posters, Sulfur, Temblor, Sink, and Tramen 같은 시지에서 언어시가 자주 발표된다. 그 중에서 대표적 시인들을 일부 기술해본다. Bruce Andrews, Rae Armantrout, Steve Benson, Charles Bernstein, David Bromige, Clark Coolidge, Alan Davies, Ray DiPalma, Robert Grenier, Carla Harryman, Lyn Hejinian, Susan Howe, Steve McCaffery, Michael Palmer, Bob Perelman, Kit Robinson, Peter Seaton, James Sherry, Ron Silliman, Diane Ward, Barrett Watten, Hannah Weiner 등이 중요시되는 시인들이다. 이들은 후에 언급될 실험시에도 중복되어 활동한다.
 
이들은 1970년대 이후로 소규모의 언론 및 대담 활동을 통해서 전통적 학문적 비평과는 약간 다른 사회적 홍보 활동, 시 표현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문화활동의 과정으로서 시를 전도하는 입장에서 보다 왕성하게 네트워크를 형성하듯이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 실험시 작가들의 통합된 활동은 1933년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활동하던 실험시인 모임인 흑산파(Black Mountain school) 시인들(Charles Olson, Robert Duncan, Denise Levertov, Jonathan Williams, Robert Creeley) 이래로 가장 정교한 시학파를 형성하는 듯하다. 이러한 활동이 현대 실험시를 급속히 새로운 유형의 시로 정착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스타인(G. Stein)의 영향으로 세상은 정의하기보다는 규정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그냥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에서 명사와 같은 고정된 운명론, 결정론대로 시를 쓰지 않고, 인생의 연(緣)의 한 과정으로 시를 쓰려고 한다. 시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과정론으로 애쉬베리의 시 "나무들(Some Trees)"을 즐겨 인용한다. 이 시를 평하면서, 시인 부루스 앤드류(Bruce Andrew)는 언어와 의미를 포기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내면에 숨어있는 인위적이고 필요한 선택을 자의식적으로 인식해내는 시 쓰기를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전통 언어를 해체하기 위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이러한 성향에서 윌리암스의 시성을 답습하고 있다. 언어시를 통해 시는 구체적인 이데올로기의 투쟁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언어시 시인들은 어느 실험 시인보다도 언어에 대한 실험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모든 실험시 특성을 가장 먼저 시도한 시인 그룹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들의 언어적 시 표현의 특성, 불명확성, 난해성, 혁신성 등은 기타 실험시 작가 군에게 공통적으로 전파되고 있다.
 
이러한 영향성이 언어시를 대표적 정치 표현시로 규정하는 듯하다. 어느 시대이든지 시대성에 반대하는 정치 성향의 시가 존재하는데, 현대에는 언어시가 그러한 정치비판성을 보여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와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해 언어시는 여권운동, 동성애 운동 시처럼 정치 지향적 시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언어시의 사회성을 너무 일방적으로 정치성향 시로 규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일례로 번스타인의 시 "쟁기보습판을 들여올려라"를 자본주의 사회의 비판시로 규정할 수 있을까?
 
 
 
 
간단히 긁기 위해, 생략하라,
 
노(시간)를 치워라.
 
흉악한 침수가 모든 최상의
 
배를 공격한다. 손, 심장은
 
미끄러지지 않는다, 견고하게
 
(애처롭게) 떠나간다.
 
 
 
 
이러한 언어시는 자본주의 정시성에 대한 비평보다는 시인과 독자와의 관계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라고 이해하면 보다 쉽다. 언어시라고 할 때, 대개는 언어에 대한 특별한 태도를 의미한다. 스티브 맥캐퍼리(Steve McCaffery)는 1976년에 “주제의 죽음”이라는 에세이에서 언어시는 특별한 스타일이나 관행이 아니고 언어에 대한 관심을 중시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언어적 관심은 언어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시 쓰기를 총칭한다. 이러한 언어적 관심에서 언어시인들은 시인마다 서로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상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을 몇 가지 정리해본다.
 
첫째, 언어적 무의미를 통한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 새로운 언어적 의미 조건을 개발하는 실험성이 있다.
 
둘째, 언어적 의미는 세상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과 객관 사이에 상호 작용하는 속내용이라고 인식한다.
 
셋째, 소쉬르(Saussure)의 언어학 이론을 도입하여 언어 특성을 시에 적용해본다.
 
넷째, 시어의 고정된 의미에 묶이지 않고, 항상 언어의 상관관계를 새로 적용하려 한다.
 
다섯째, 언어의 물질적 측면(소리, 리듬, 구문 등)을 강조한다. 인식과정에서 형식적 유관성, 의식의 투명한 장소에서 퍼져나오는 의미와 인식력을 표출하려 한다.
 
 
 
 
그러면 1회분을 마감하면서 언어시를 몇 개 읽어본다. 실험시의 특성처럼 마감되지 않은 새로운 글쓰기의 여운을 다음 호로 넘겨버리면서 새로운 기대와 쾌감을 남겨놓는다.
 
 
 
 
서론(序論)에서 멀지 않는
 
 
 
 
엄격한 아름다움 --
 
개혁 그리고 말살
 
양자(兩者)를 위한 공간
 
동시에 하진 않지만
 
낡음 밑에 지어 논 새로움(Kenning 詩誌, 3권, 1호 발췌)
 
 
 
 

 
사례 모음집
 
 
 
 
1 1 1
 
2 2 2
 
3 2 1
 
 
 
 
분류학의 발명과
 
제시 -- 좌에서 우로
 
읽기, 그 순서를 강요하며
 
남는 것으로 부터
 
 
 
 
 
 
 
얘기하는 것으로는 시를 얻지 못한다
 
 
 
 
로저, 네 차례야. 세상은 바보가 아냐!
 
너가 네 눈을 얻자 광대함은
 
끈적이는 담요의 벽돌 밑으로 사라진다,
 
바보들만이 회계과를 감히 쳐들어가지
 
못한다. 생명보험 계리사의 기와 무늬
 
(권고하는 비애감)처럼 동작을 취하고,
 
풍선 같이 부푸는 전구처럼. ... (찰스 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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