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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러시아 상징주의를 주도한 이론가·시인.
본명은 Boris Nikolayevich Bugayev(Bugaev).
러시아 상징주의는 서유럽 문학·예술의 모더니즘 운동과 러시아 고유의 동방정교회 영성(靈性)에서 유래한 문학운동으로, 인생과 자연에서 발산되는 알레고리를 통해 신비하고 추상적인 이상을 표현한 문학 유파이다.
수학교수의 아들로 학구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모스크바의 문학 엘리트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특히 19세기의 신비주의 철학자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의 세계의 목적과 최종적 해결에 관한 종말론 사상을 흡수했다. 이상주의를 통해 가혹한 현실에서 사변적 사상으로 눈을 돌린 그는 1901년 최초의 주요작품인 〈북방 교향곡 Severnaya simfoniya〉(1902)을 완성했다.
이 산문시는 시, 음악,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회화까지도 결합하려는 노력을 반영했다. 이같은 새로운 문학 형식을 띤 또다른 3편의 '교향곡'을 잇달아 발표했다. 다른 시에서도 그는 혁신적 문체를 계속 개발했으며 불규칙한 운율('절름발이 韻脚')을 반복 사용해 러시아 시 형식의 혁명을 시작했는데 문학 동료인 알렉산드르 블로크가 이 노력의 결실을 거두었다.
첫 3권의 시집 〈담청색 속의 황금 Zoloto v lazuri〉(1904)·〈재 Pepel〉(1909)·〈납골당 Urna〉(1909)은 블로크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시 형식을 빌린 일기이다. 1909년에 첫번째 장편소설 〈은빛 비둘기 Serebryany golub〉(1910)를 완성했다. 가장 유명한 소설 〈페테르부르크 Peterburg〉(1913~14년에 걸쳐 연속 출판됨)는 초기의 '교향곡'을 바로크식으로 연장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1913년에 오스트리아 사회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신봉자가 되어 스위스 바젤에 있는 슈타이너의 인지학자(人智學者) 집단촌에 들어갔다. 이들은 불교의 명상적 종교 체험에서 비롯된 신비주의적 신앙 체계를 신봉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는 스위스에 머무르는 동안 제임스 조이스의 문체를 연상시키는 짧은 자전소설 〈코티크 레타예프 Kotik Letayev〉(1922)를 쓰기 시작했다. 1916년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며 다른 상징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1917년의 볼셰비키 혁명을 열렬히 환영했다. 짤막한 시 〈그리스도가 부활했도다 Khristos voskrese〉(1918)는 러시아 사회주의의 메시아적 약속을 찬양한 작품이다. 그러나 블로크가 죽고 소비에트가 문학 동료들을 처형함에 따라 환멸을 느껴 해외로 떠났다가 1923년에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가 발전시킨 새로운 창작 기교는 훗날 러시아 시와 산문 양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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