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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시인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2016년 12월 11일 23시 17분  조회:6567  추천:1  작성자: 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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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버틀러 예이츠Nobel Prize.png
William Butler Yeats
1911년에 조지 찰스 베레스포드가 찍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사진
1911년에 조지 찰스 베레스포드가 찍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사진
출생 1865년 6월 13일
아일랜드 아일랜드 더블린 샌디마운트
사망 1939년 1월 28일 (73세)
프랑스 프랑스 제3공화국 망통 Hôtel Idéal Séjour
직업 시인
국적 아일랜드 아일랜드
사조
수상내역 노벨문학상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 1865년 6월 13일 ~ 1939년 1월 28일)는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19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노벨 위원회는 "고도의 예술적인 양식으로 전체 나라의 영혼을 표현한, 영감을 받은 시"라는 평가를 남겼다. 아일랜드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1] 예이츠는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자신들의 뛰어난 작품들을 완성해 낸 몇 안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2] 예술가인 잭 버틀러 예이츠의 형이며 존 버틀러 예이츠의 아들이다.

 

 

생애[편집]

더블린에서 태어나서 그 곳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그의 유년시절은 슬라이고 주에서 보냈다. 어린 시절에 시를 공부했고, 어렸을 때부터 아일랜드의 전설과 신비주의 모두에 매료되었다. 두 가지 주제 모두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있으며, 이후 세기가 바뀔 때인 1900년 무렵 까지도 그의 작품에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 가 처음으로 낸 시집은 1889년에 출간되었고, 그 시집에 담긴 시들은 느리고 서정적이었는데 이러한 표현은 라파엘 전파의 서정시와 마찬가지로 영국 시인 두 사람 곧 에드먼드 스펜서와 퍼시 비시 셸리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예이츠

화가 집안에서 출생한 그는 화가를 지망하여 미술 공부를 시작하였다. 뒤늦게 를 쓰기 시작하여, 1889년 처녀 시집 <마신의 방황>을 발표하여 와일드 등 유명한 시인들에게 절찬을 받았다. 그의 초기 작품은 낭만적이었으나 후기에는 점차 상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아일랜드 자유국이 세워지자 원로원 의원으로 정계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국민 극장 창설에 앞장섰다. 대표작으로 시집 <갈대 사이로 부는 바람>과 희곡집 <심원의 나라> 등이 있다.

어린 시절[편집]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샌디마운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인 존 버틀러 예이츠(1839-1922) 는, 윌리엄마이트 군의 군사이자 리넨 상인이었다가 1712년 세상을 떠난 저비스 예이츠의 자손이었다. .[3] 저비스 예이츠의 손자 벤저민은 킬데어의 부유한 지주의 딸인 메리 버틀러와 결혼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부친인 존은 결혼할 당시에 법률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곧 런던의 헤더리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법률 공부를 중단했다.[4]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모친인 수전 메리 폴렉스핀은 슬라이고에서 제분업과 운송업으로 성공한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다. 윌리엄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가족은 외갓집과 함께 지내기 위해 슬라이고로 이사하는데 그 곳은 어린 시인의 가슴 속에 어린 시절 속 공간일 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집으로 남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슬라이고는, 사실로써 뿐만 아니라 상징적으로도, 예이츠에게 “마음속의 고향” 이 된다.[5] 버틀러 예이츠 가족은 무척 예술적인 집안이어서, 그의 남동생 잭은 유명한 화가가 되었고, 누이 엘리저베스와 수전 메리(가족들과 친구들은 그들을 롤리와 릴리라고 불렀다)는 미술 공예 운동에 가담하였다.[6]

예이츠가 어렸을 때, 아일랜드에서는 개신교 우위(Protestant Ascendancy) 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급격한 시대 변화로 인해 개신교 신자였던 예이츠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그의 가족은 아일랜드에 벌어지는 변화에는 전반적으로 찬성했지만 19세기 민족주의의 부활로 인해 재산에 피해를 입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예이츠의 인생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97년, 예이츠의 전기집을 쓴 포스터(R. F. Foster) 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20세였을 당시의 세상을 이해해야한다는 나폴레옹의 말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경우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라고 했다.[7] 개신교 신자가 권력을 잃어가면서 예이츠의 어린 시절에도 그림자가 드리웠다. 1880년대에는 정치가 파넬(Charles Stewart Parnell) 이 권력을 얻으면서 홈룰 운동(아일랜드의 토지를 영국계 지주들의 손에서 되찾아내려는 운동)이 널리 유행했고 1890년대에는 민족주의가 급속도로 퍼져나갔으며, 세기말에는 가톨릭 신자가 기득권층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은 예이츠의 시 문학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고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그의 시도는 그의 국가의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8]

1867년, 예이츠의 부친 존이 영국에서 예술 공부를 계속하기를 원하자 그의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한다. 예이츠의 부모는 처음에 아이들을 집에서 교육하였다. 예이츠의 모친은 아이들에게 아일랜드 전래동화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부친은 예이츠를 슬라우 지역으로 데려가 자연사 탐구를 도우면서, 독특한 지리와 화학 교육을 제공하였다.[9] 1877년 1월 26일, 어린 시인은 고돌핀 학교에 입학해 4년 동안 학교를 다닌다.[10] 예이츠는 학업 면에서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으며, 그의 담임교사는 성적표에 “나쁘지 않은 수준. 다른 과목보다는 라틴말에 능한 듯함. 철자법에 매우 취약함.”이라는 평가를 남겼다.[11] 예이츠는 수학과 언어 공부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마 그가 음치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12]) 생물과 동물학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1880년 말, 예이츠의 가족은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더블린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의 가족은 처음에는 도심에서 살다가 후에 호스 시 교외로 이사했다. 1881년 10월, 예이츠는 더블린에 위치한 에라스무스 스미쓰 고등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재개한다.[13]부친의 화실이 학교 주변에 위치했던 덕분에 예이츠는 많은 시간을 화실에서 보냈고 도시의 유명한 화가들과 작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즈음, 그는 시작(詩作)을 시작했고, 1885년 예이츠의 초기 시들과 <사무엘 퍼거슨 경의 시 (The Poetry of Sir Samuel Ferguson)> 라는 제목의 수필집이 더블린 대학 논평지(Dublin University Review)에 발표되었다. 1884년에서 1886년까지, 예이츠는 토마스 거리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예술학교(현 국립 예술 디자인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의 초기작품들은 그가 17살이었을 때 지어졌는데 그중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왕위에 오르는 마법사에 관한 시(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가 있었다. 이 시기에 예이츠가 지은 다른 작품에는 어느 양치기에게 이교도로 고소당한 여인, 주교, 그리고 수사에 관한 연극을 비롯해 사랑과 관련된 시, 그리고 중세시대 독일 기사에 관한 설화시 등이 있다. 그의 초기작들은 지극히 평범했고, 비평가 찰스 존슨(Charles Johnson)의 말에 따르자면 “아주 아일랜드답지 못하고 그에게 속삭이는 꿈이라는 어둠에서 나온 것” 같다고 하였다.[14] 하지만 그의 초기 작품들이 셸리,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 그리고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시의 구절들과 분위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에 반해, 예이츠가 이후에 지은 작품들은 아일랜드의 전설과 전래동화, 그리고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영향을 받았다. 예이츠는 후에 블레이크를 “인간들에게 위대한 진실을 전달해 준, 위대한 조물주 중 하나”라고 칭하며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15] 1891년, 예이츠는 <존 셔먼(John Sherman)> 과 <도호야(Dhoya)> 를 출판했는데 전자는 중편소설이었고, 후자는 짧은 이야기였다. 두 작품은 더블린의 더 릴리풋 프레스(The Lilliput Press)에서 1990년 재출판 되었다.

청년 시인[편집]

예이츠의 가족은 1887년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1890년에 예이츠는 플릿 스트릿(Fleet Street) 술집에서 정기적으로 시낭송을 하면서 알게 된 런던 시인들 중 한 명인 어니스트 리스(Ernest Rhys)와 라이머클럽(Rhymers' Club)을 공동설립하였다[16]. 이 때 발표한 작품들은 훗날 <비극적인 세대(Tragic Generation)>[17] 라는 이름으로 1892년 첫 번째, 1894년에 두 번째 작품집이 출판되었다. 그는 에드윈 엘리스(Edwin Ellis)와 함께 처음으로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작품집을 완성시키면서, 잊혀진 시 를 재발견하게 된다. 훗날 셸리(Percy Bysshe Shelley)에 대한 에세이에서 예이츠는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Unbound)>를 다시 읽어보았다. 신성하다고 여겼던 그 어떤 책들보다도 훨씬 확고한 세계가 있는 것 같았다.”라고 썼다.[18]

 
존 버틀러 예이츠가 그린 1900년도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초상

예이츠는 평생 신비주의나 심령론, 점성술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일생동안 광범위한 주제의 글들을 읽고 초자연현상 연구단체인 <고스트 클럽(The Ghost Club, 1911년)> 회원이 되었는데, 특히 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의 글에 영향을 받았다.[19]1892년 초에 예이츠는 “내가 신비로운 힘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지 않았더라면 블레이크집에 단 한 단어도 쓸 수 없었을 것이며, <캐서린 백작부인(Countess Kathleen)>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비로운 인생이야말로 나의 모든 행동과,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모든 글의 중심이다.”라고 저술했다.[20] 신지학자인 모히니 채터지(Mohini Chatterjee)가 연구했던 힌두교, 그리고 신비주의 등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예이츠의 그러한 관심은 훗날 그의 작품에서 큰 토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비평가들은 지적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러한 영향력을 무시하고 있다. 특히 위스턴 휴 오든(W.H. Auden)은 이러한 면에 대해 “다 큰 성인이 뻔한 마술과 쓸데없는 인도(India) 의식에 사로잡혀 우스운 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비판했다.[21]

처음 주목을 받았던 작품은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를 시적 모델로 한 판타지 작품 <아일랜드의 위상(The Isle of Statues)>이었다. 이 작품은 더블린 대학 논평지(Dublin University Review)에 실렸으나 그 이후 재출판되지는 않았다. 첫 단독 출판집은 <모사다 극시(Mosada: A Dramatic Poem> (1886)라는 소논문으로, 예이츠의 부친이 돈을 들여 100부를 인쇄하게 된 것이었다. 그 후 1889년에는 그가 1880년대 중반에 지었던 시들을 모아 <오이진의 방랑기(The Wondering of Oisin and Other Poems)> 라는 작품집을 발행하였다. 예이츠 전기작가인 포스터(R. F. Foster)는 이 긴 제목의 시집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게일(Gael)식 이름, 두드러지는 반복기법, 끊어짐 없는 운율이 세 단락에 걸친 이 시들에 미묘한 변화를 준다.”라고 말했다.[22]

We rode in sorrow, with strong hounds three,

Bran, Sgeolan, and Lomair,

On a morning misty and mild and fair.

The mist-drops hung on the fragrant trees,

And in the blossoms hung the bees.

We rode in sadness above Lough Lean,

For our best were dead on Gavra's green.

포근하고 맑은 어느 날의 안개 낀 아침,

힘센 사냥개 세 마리 브란, 스지란, 로메이어와 함께,

비탄에 잠겨 말을 타고 달렸네.

향기로운 나뭇잎 끝에 이슬 맺히듯,

활짝 핀 꽃잎 끝에 꿀벌들 맺혔네.

린 호수 그 위를 슬픔에 잠겨 달렸네,

가브라의 초원에서 죽어 여한이 없으니.

<오이진의 방랑기>는 아일랜드 신화 중 피니언 편(Fenian Cycle)의 구절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사무엘 퍼거슨 경과 라파엘 전파 시인들로부터 받은 영향 또한 드러내고 있다.[23] 완성하기까지 2년이 걸린 이 시는 그가 아직 미성숙했던 시절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훗날 예이츠가 다룬 가장 중요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되는데, 그것은 바로 행동하는 삶을 넘어 명상하는 삶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 작품 이후에 예이츠는 더 이상 장편시를 쓰지 않았다. 사랑 또는 신비롭고 난해한 주제에 대한 명상을 담은 초기 시들로는 <시들(Poems,1895)>, <비밀의 장미(The Secret Rose, 1897)>, <갈대밭의 바람(The Wind Among the Reeds, 1899)>이 있다.

1885년에 예이츠는 더블린 연금술회(Dublin Hermetic order) 창립에 합류하게 되었다. 6월 16일에 열린 첫 번째 회의에서 예이츠는 의장 역할을 맡았다. 같은 해, 신지학협회 (Theosophical Society) 런던지회에 강의를 하러 온 체터지와 공동으로 더블린 신지학회 지부(Dublin Theosophical lodge)를 열었다. 다음 해에 예이츠는 그의 첫 강신회에 참여하였다. 훗날 신지학협회와 신비학, 특히 황금여명단(Golden Dawn)의 장미 십자회 이념이 접목된 신비학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1912년에 열린 강신회에서는 자신을 ‘레오 아프리카누스(Leo Africanus)’라 칭하며 예이츠의 수호신 또는 반(反)자아라고 주장하는 혼령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쓴 산문집이 이다.[24] 예이츠는 1890년에 황금여명단에 정식으로 가입되어 'Daemon est Deus inversus(‘악마는 신의 다른 이름’이라는 뜻)'라는 마법명을 받았다. 이 이시스 우라니아(Isis-Urania) 종단 사원의 열렬한 전도자였던 예이츠는 그의 숙부인 조지 폴렉스펜(George Pollexfen)과 모드 곤(Maud Gonne), 플로렌스 파르(Florence Farr)를 입단시켰다. 그는 비록 개인숭배가 저변에 깔린 추상적이고 독단적인 종교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는 있었지만 황금여명단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매력을 느꼈다.[25] 예이츠는 플로렌스 파르, 맥그리거 매터즈(Macgregor Mathers)와 함께 협회의 권력 투쟁에 가담하였으나, 블리스 로드 사건(Battle of Blythe Road)이 있던 당시 매터즈가 알레이스터 크로울리(Aleister Crowley)를 퇴출시키고 황금여명단의 소유물들을 독점하도록 하는 데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하였다. 황금여명단이 해체되어 여러 분파로 나뉜 후에 예이츠는 1921년까지 샛별회(Stella Matutina)에서 활동하였다.

조지와의 결혼[편집]

1916년, 51세가 되던 해에 예이츠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그는 1916년 여름에 모드 곤(Maud Gonne)에게 마지막으로 청혼을 했다.[26] 곤의 정치 혁명 활동 경력과 클로로포름 중독, 1916년 부활절 봉기사건에 연루되어 훗날 영국군에게 처형당한 존 맥브라이드(John MacBride)와의 순탄치 않았던 결혼생활 등 그녀에게 있었던 최근 몇 년간의 개인적인 재앙들 때문에 그녀는 부적절한 아내로 여겨졌다. 전기작가인 포스터(R.F. Foster)는 예이츠의 마지막 청혼은 모드 곤과 결혼하려는 진심어린 마음 보다는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1908년 앨빈 랭던 코번(Alvin Langdon Coburn)이 찍은 예이츠

예이츠는 조건을 붙여서 무관심한 태도로 청혼했으며, 내심 그녀가 거절하기를 바랐다. 포스터(R.F. Foster)에 따르면 그가 의례적으로 모드에게 청혼하고 의례적으로 거절당했을 때, 그의 생각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녀의 딸에게로 옮겨갔다.” 이조 곤(Iseult Gonne)은 당시 21세로 모드가 루시앙 밀레보이예(Lucien Millevoye)와의 사이에서 낳은 둘째 아이였다. 그녀는 그 때까지 슬픈 삶을 살아왔다. 짧은 생을 살고 간 그녀의 오빠를 환생시키려는 시도에서 태어났고, 태어나자마자 몇 년 동안은 그녀의 엄마의 입양된 조카로 소개되었다. 그녀는 11세에 계부에게 성추행을 당했고,[27] 후에는 아일랜드 공화국군을 위해 총기 밀반입자로 일했다. 15세 되던 해, 그녀는 예이츠에게 청혼을 했었다. 그리고 예이츠는 모드 곤에게 접근한지 몇 개월 후에 이조 곤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그 해 가을, 예이츠는 올리비아 셰익스피어의 소개로 만난 25세의 조지 하이디 리즈(Georgie Hyde-Lees, 1892-1968)에게 청혼했다. “조지, 안돼. 그 사람은 곧 죽을 노인이야.”라는 그녀의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이디 리즈는 청혼을 받아들였고, 그 해 10월 20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들의 나이차이와 예이츠가 신혼여행 도중 품었던 후회와 회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혼생활은 성공적이었다. 부부는 안느(Anne)와 마이클(Michael) 2명의 자녀를 낳았다. 비록 나중에 예이츠가 다른 여성들과 불륜관계를 맺었을 때라도 조지는 그녀의 남편에게 이렇게 썼다. “당신이 죽은 후에 사람들은 당신의 불륜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할거에요.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에요. 왜냐하면 난 당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사람인지 기억하고 있을테니까요.”[28]

그의 결혼생활 초반에 예이츠와 조지는 사이코그래프법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안에서 조지는 그들이 “선생님”라고 부르는 다양한 영혼, 안내자들과 소통했다. 영혼들은 글자와 역사에 관한 복잡하고 난해한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 했고, 부부는 이를 무아지경(최면상태)의 환경과 단계, 원뿔, 나선형에 대한 설명을 통한 실험을 하면서 발전시켰다.[29] 예이츠는 이 내용을 《비전》(1925)으로 출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1924년에 그는 자신의 출판인인 워너 로리(T. Werner laurie)에게 “나는 아마 이 책이 내 책 중의 책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고 인정하는 글을 썼다.[30]

문체[편집]

예이츠는 20세기 영시 작가의 주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상징시를 즐겨 지었는데 작품 속에서 사물을 암시적으로 형상화시키거나 상징적 구조를 주로 사용했다. 그는 단어를 선택하고 배열하는 과정에서 표면적 의미 이상의 추상적 의미를 전달하는 동시에 공명을 불러일으켰다.[31] 그가 사용한 상징은 대부분 그 자체로서의 의미와 더불어 무형적이고 영원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들이었다.[32]

다른 모더니즘 작가들이 자유시 창작을 시도한 것에 반해 예이츠는 기존 문학 양식의 대가로서 문학 양식을 지켜나갔다.[33] 하지만 그 또한 모더니즘 사조의 영향을 받아 차츰 종래의 시어법에서 벗어나 소박한 언어와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서술을 사용하였다. 이와 같은 변화는 그의 중기 작품인 《일곱 개의 숲에서》(In the Seven Woods), 《책임》(Responsibilities), 《초록 투구》(The Green Helmet) 등에 두드러진다.[34] 예이츠의 후기 작품에는 보다 개인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가 사망하기 20년 전에 지어진 작품들에서는 그의 아들과 딸에 대한 언급이나[35] 늙음에 대한 사유가 드러난다.[36] 《서커스 동물들의 탈주》(The Circus Animals' Desertion) 이라는 시에서 예이츠는 후기 작품 창작의 영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Now that my ladder's gone

I must lie down where all the ladders start

In the foul rag and bone shop of the heart.

이제 나의 사다리가 사라졌으니

모든 사다리가 시작하는 곳에 누워야하겠다

마음 속 낡은 중고가게 안에

예이츠는 1919년 이래로 골웨이 주 고트 인근의 투르 발릴리(Thoor Ballylee) 탑 (위도53°06'11.4", 경도08°46'29.2") 에서 매년 여름을 보내다가 1929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그 여름별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이츠는 1932년 더블린 근교 래스파에서 리버스데일(Riversdale) 휴양지를 임대해 머물기도 했지만 그의 삶의 발자취는 주로 아일랜드 외부에 남겨져 있다. 그는 말년에 창작활동에 주력하면서 많은 운문, 연극, 산문시 등을 발표했다. 1938년, 예이츠는 그의 희곡 《연옥》(Purgatory) 의 첫 공연을 감상했다. 같은 해에 그는《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자서전》(Autobiographies of William Butler Yeats) 을 완성했다.[37]

예이츠의 초기 작품 중 대부분이 아일랜드 전설과 민담을 소재로 삼은데 반해 그의 후기 작품은 보다 현실과 관련된 사항을 다루고 있는 만큼 예이츠의 초기 문체와 후기 문체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예이츠의 작품은 시기별로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초기 작품은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받은 어조와 함께 화려한 수식을 특징으로 삼으며, 인정없는 비평가들의 말에 따르자면, 부자연스러우리만큼 격식을 갖추고 있다. 예이츠의 초기 시에는 서사시인 《오이진의 방랑기》(The Wanderings of Oisin)이나 《아일랜드의 위상》(The Isle of Statues) 이 있다. 《오이진의 방랑기》는 예이츠가 남긴 유일한 장편시이다.[38] 그의 다른 초기작품에는 사랑이나 몽환적 주제에 관한 서정시가 있다. 중기 작품을 창작할 때 예이츠는 초기 시의 라파엘 전파적 경향을 떨쳐내고 [39] 새로운 특징의 시를 짓는다.[40] 그가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던 여성적이고 우미하던 스타일은 딱딱하고 건조한 남성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환상적이던 심상은 금속적이라 할 만큼 구체성을 지닌 심상으로 전화한다. 예이츠의 중기 작품을 좋아한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이 부드러우면서 강인한 리듬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측면에서는 매우 모더니즘적이라고 평가한 반면, 그의 작품을 비방한 비평가들은 시적 형상화가 부족하다고 평했다. 예이츠의 후기 작품들에는 시인이 강신론의 영향을 받아 얻은 창의적인 영감이 잘 드러난다. 여러 가지 면에서 후기 작품들은 초기 작품들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는데 예이츠의 초기 작품인《오이진의 방랑기》에서 다뤄졌던 세속적인 기사와 종교적인 성직자 사이의 갈등이라는 주제는 후기 작품《영혼의 대화》(A Dialogue Between Self and Soul)에서 다시 한 번 나타난다.[41]

어떤 비평가들은 미술 분야의 파블로 피카소와 비슷하게 시 분야에서는 버틀러 예이츠가 19세기에서 20세기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었다고 평가하지만, 예이츠가 정말로 T.S. 엘리엇 (T. S. Eliot) 이나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와 더불어 모더니즘 작가로 인정받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42] 모더니즘 작가들은 《재림》(The Second Coming) 이 예이츠가 엘리엇의 모더니즘을 모방해 유럽에서 문명이 쇠퇴함에 따라 바치는 장송곡이라고 평가했지만 훗날의 비평가들은 이 시가 예이츠의 종말론 이론에 관한 시이기 때문에 1890년 대 사회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내렸다. 예이츠의 작품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그가《초록 투구》(1910) 와《책임》(1914)를 짓기 시작했을 때이다. 시인이 늙어감에 따라 그의 시 속 심상은 강력해져가서《탑》(The Tower) (1928),《나선 계단》(The Winding Stair) (1929), 그리고《새 시들》(New Poems) (1938) 은 20세기 시 가운데 가장 강력한 심상을 이용한 작품들로 손꼽힌다. 신지학과 주술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예이츠의 환상적 경향[43] 은 예이츠의 후기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시를 보고 지적 신뢰도가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예이츠의 후기 작품에 드러나는 형이상학은《환상》(A Vision) (1925) 에 나타난, 소수의 사람들만 공유했던 근본과 연관되어 해석돼야 한다.[44]

예이츠가 1920년 쓴 《재림》은 20세기 창작된 시 가운데 시적 형상화가 무척 두드러지는 시이다.

Things fall apart; the centre cannot hold;

Mere anarchy is loosed upon the world,

The blood-dimmed tide is loosed, and everywhere

The ceremony of innocence is drowned.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

모든 것이 파괴되고 그 중심은 무너진다

오직 혼돈만이 지상에 만연하다

온 누리에 핏빛으로 얼룩진 조수가 퍼지고

순결한 의식은 물에 잠긴다

선인은 주저하고 악인의 열정은 가득하다

이 시에서 “선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존재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물질주의의 바람 앞에서 전통 문화를 지키는데 무능력했던 기존의 기득권층이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역사는 반복되고 당시 사회는 순환하던 역사가 마무리되고 새롭게 기독교가 성장하는 시대였다는 예이츠의 믿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And what rough beast, its hour come round at last,

Slouches towards Bethlehem to be born?

그런데 마침내 때를 맞이하여 태어나고자 베들레헴으로

뚜벅뚜벅 걷고 있는 저 거친 짐승은 누구인가?

예이츠와 연극[편집]

예이츠는 19세기 말의 아일랜드 연극운동의 주요한 추천자이기도 했다. 1904년에 설립된 더블린의 애비 극장이 초기의 곤란을 극복하고 존속한 것은 예이츠의 작가로서의 재능과 지도자로서의 통솔력이 크게 기여했었다.

그러나 근대극에서의 예이츠의 참된 공헌은 사실주의로 덮여 있던 연극에 시극(詩劇)을 회복시켰다는 점이다. 예이츠의 초기의 시극 <심원의 나라>(1894), <캐슬린 백작부인>(1899), <환영(幻影)의 바다>(1897-1906) 등은 관객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것이며, 계속되는 <모래시계>(1903), <왕의 인구(人口)>(1903), <별에서 온 유니콘>(1907)에서는 극적 수법에 진보를 보이고 있다. 또한 농민극(農民劇)이나 아일랜드 전설에 의거한 영웅극도 썼다.

만년의 작품에서는 예이츠 시극의 특징인 단순한 표현에 포함되는 사상의 심원(深遠)함이 관객의 지성(知性)과 상상력에 가장 강하게 의존하는 형태로 정점에 이르렀다. <창가에 쓰여진 말>(1934), <연옥(煉獄)>(1938)이 그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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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시인 예이츠 시 모음(1)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아일랜드

1865년 6월 13일 - 1939년 1월 28일

 

 

 

 

 

하늘의 천

 

 내게  금빛과 은빛으로 수 놓은

하늘의 천이 있다면

 

어둠과 빛과 어스름으로 수 놓은

파랗고 희뿌연 검은 천이 있다면

 

그대 발 밑에 깔아 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 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깔아드리오니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니

 

 

 

위로 받는 것의 어리석음

 

친절한 나의 친구가 위로합니다.

 

" 자네가 연모하는 여인의 머리위에도 

어느덧 잿빛 실이 수 놓아 지고

영롱한 눈 가엔  

삶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구나

 
시간은 흐르고 
 
자네의 빛나는 마음도 잔잔해지겠지
 
지금은 힘들지라도
 
인내의 시간이 자유롭게 해주리니
 
 
 한데, 가슴이 단 한톨도 위로 받질 않네요
 
그녀의 빛나는 영혼이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깊은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그녀가 지닌 아름다움의 불꽃은
 
삶의 의미를 더해가며
 
더욱 세차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아, 초 여름의 뜨거운 정열이
 
그녀의 눈동자에 가득할 때조차
 
이 정도로 빛나진 않았을 테지요 
 
 
아, 타는 가슴아
 
그녀가 나에게 주는 작은 시선에도
 
친구의 위로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지 않느냐
 
 

 

 

 



William Butler Yeats


낙엽(The Falling of the Leaves) 가을은 우리를 사랑하는 긴 잎새들 위에도 머리 위 로웬나무 잎사귀도 노랗게 물들고 젖은 들딸기 잎도 노랗게 물들었다. 사랑이 시드는 시간이 닥쳐와 이제 우리들의 슬픈 영혼들도 지칠 대로 지쳤다 자 우리 헤어집시다.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그대 수그린 이마에 입맞추고 한 방울 눈물을 남기고서... AUTUMN is over the long leaves that love us, And over the mice in the barley sheaves; Yellow the leaves of the rowan above us, And yellow the wet wild-strawberry leaves. The hour of the waning of love has beset us, And weary and worn are our sad souls now; Let us patt, ere the season of passion forget us, With a kiss and a tear on thy drooping brow.

 
술노래(Drinking Song)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그것 뿐. 나는 입에 잔을 들며 그대를 바라보고 한숨 짓는다.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버드나무 정원에서(Down By The Salley Gardens) 버드나무 정원에서 그녀와 나 만났었네. 눈처럼 흰 작은 발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며 그녀는 내게 일러주었지. 나뭇가지에 잎이 자라듯 사랑을 수월히 여기라고. 그러나 난 젊고 어리석어 그녀의 말 들으려 하지 않았네. 강가 들판에서 그녀와 나 서 있었네. 기대인 내 어깨 위에 눈처럼 흰 손을 얹으며 그녀는 내게 일러주었지. 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수월히 여기라고. 그러나 젊고 어리석었던 나에겐 지금 눈물만 가득하네. DOWN by the salley gardens my love and I did meet; She passed the salley gardens with little snow-white feet. She bid me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her would not agree. In a field by the river my love and I did stand, And on my leaning shoulder she laid her snow-white hand. She bid me take life easy,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But I was young and foolish, and now am full of tears.

   
덧없어라(Ephemera) 「예전엔 지칠줄 모르고 내 눈을 들여다 보던 그대의 눈이 이제는 망설이는 눈꺼풀로 서글프게 내려뜨네요. 우리의 사랑이 이울어 가는겁니다」 그러자 그녀는 「우리의 사랑은 이울었지만 다시 한 번 호젓한 호숫가에 서 봅시다. 처량하게 지친 아이, 정열이 깊숙히 잠이 든 온화한 이 시간에 둘이 함께. 별들은 어찌나 멀어 보이는지, 우리의 첫 키스도 얼마나 아득한지 참으로 늙었군요. 나의 마음은」 그들은 생각에 잠긴 채 낙엽을 따라 걷다가, 남자가 천천히 여자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정열은 곧잘 방황하는 우리 마음을 피곤하게 했지요」 나무가 그들을 에워싸고 노란 나뭇잎이 빛 바랜 별같이 어스름 속에 떨어지는데 늙은 토끼 한 마리가 다리를 절며 오솔길을 달려 온다. 그에게는 가을이 오고, 그들은 다시 한 번 호젓한 호숫가에 섰다. 돌아보니 그녀는 그녀의 눈같이 이슬 맺힌 고엽을 말없이 주워 모아 가슴과 머리에 꽂고 있었다. 「아, 슬퍼하지 말아요」 그는 말했다. 「우리가 지친 것은 또 다른 사랑을 기다리기 때문이요. 미움과 사랑으로 후회없는 시간을 밀고 나가요. 우리 앞에는 영원함이 가로 놓였고, 우리의 영혼은 사랑 그리고 끝없는 이별의 연속이니까」 "YOUR eyes that once were never weary of mine Are bowed in sotrow under pendulous lids, Because our love is waning." And then She: "Although our love is waning, let us stand By the lone border of the lake once more, Together in that hour of gentleness When the poor tired child, passion, falls asleep. How far away the stars seem, and how far Is our first kiss, and ah, how old my heart!" Pensive they paced along the faded leaves, While slowly he whose hand held hers replied: "Passion has often worn our wandering hearts." The woods were round them, and the yellow leaves Fell like faint meteors in the gloom, and once A rabbit old and lame limped down the path; Autumn was over him: and now they stood On the lone border of the lake once more: Turning, he saw that she had thrust dead leaves Gathered in silence, dewy as her eyes, In bosom and hair. "Ah, do not mourn," he said, "That we are tired, for other loves await us; Hate on and love through unrepining hours. Before us lies eternity; our souls Are love, and a continual farewell."

    
그대 늙었을 때(When You Are Old) 그대 늙어 머리 희고 잠이 많을 때 난로가에 앉아 졸게 되거든 이 책을 꺼내 보세요. 그리고 천천히 읽으며, 한때 그대 눈이 지녔던 그 부드러운 눈길이며 깊은 그늘을 생각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다정하고 우아했던 시절을 사랑했고 그대의 아름다움을 거짓 혹은 진실함으로 사랑하였던가를. 다만 한 남자가 그대 순례자의 영혼을 사랑하였고 그대 변하는 슬픈 얼굴을 사랑하였던 것을. 그리고 빛나는 창살가에 고개 수그려 조금은 슬프게 중얼거려요. 어떻게 사랑이 달아났고 높은 산을 거닐며 별들의 무리 속에 그의 얼굴을 감추었는가를. WHEN you are old and grey and full of sleep, And nodding by the fire, take down this book, And slowly read, and dream of the soft look Your eyes had once, and of their shadows deep; How many loved your moments of glad grace, And loved your beauty with love false or true, But one man loved the pilgrim Soul in you, And loved the sorrows of your changing face; And bending down beside the glowing bars, Murmur, a little sadly, how Love fled And paced upon the mountains overhead And hid his face amid a crowd of stars.

     
쿨 호수의 백조(The Wild Swans At Coole) 나무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으로 단장하고 숲 속의 길들은 메말라 있다. 10월의 황혼녘 물은 고요한 하늘을 비치고 돌 사이로 넘쳐흐르는 물 위에는 쉰 아홉 마리의 백조가 떠 있다. 내가 처음 백조의 수를 헤아린 이래 열 아홉 번째의 가을이 찾아왔다. 그땐 미처 다 헤아리기도 전에 백조들은 갑자기 날아올라 요란스런 날개 소리를 내면서 끊어진 커다란 원을 그리며 흩어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지금껏 저 찬란한 새들을 보아 왔건만 지금 나의 가슴은 쓰리다. 맨처음 이 호숫가 황혼녘에 저 영롱한 날개 소리를 들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던 그때 이래 모든 것은 변해 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피곤을 모른 채 짝을 지으며 차가운 물 속을 정답게 헤엄치거나,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들의 가슴은 늙을 줄 모르고 어디를 헤매든 정열과 정복심이 여전히 그들을 따른다. 지금 백조들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고요한 물 위에 떠 있지만 어느날 내가 눈을 뜨고 그들이 날아가 버린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어느 등심초 사이에 집을 짓고 어느 호숫가나 웅덩이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인가? THE trees are in their autumn beauty, The woodland paths are dry, Under the October twilight the water Mirrors a still sky; Upon the brimming water among the stones Are nine-and-fifty Swans. The nineteenth autumn has come upon me Since I first made my count; I saw, before I had well finished, All suddenly mount And scatter wheeling in great broken rings Upon their clamorous wings. I have looked upon those brilliant creatures, And now my heart is sore. All's changed since I, hearing at twilight, The first time on this shore, The bell-beat of their wings above my head, Trod with a lighter tread. Unwearied still, lover by lover, They paddle in the cold Companionable streams or climb the air; Their hearts have not grown old; Passion or conquest, wander where they will, Attend upon them still. But now they drift on the still water, Mysterious, beautiful; Among what rushes will they build, By what lake's edge or pool Delight men's eyes when I awake some day To find they have flown away?

      
흰 새들(The White Birds) 될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이여, 우리 물거품 위 두 마리 흰 새가 되련만 흐르는 별들의 불꽃에 우리는 지쳐버렸구나. 미처 그 빛이 사라지기도 전에 하늘가 낮게 걸린 황혼녘 푸른 별 그 불꽃이 우리들 가슴에 끝없는 슬픔을 일깨웠네 피로가 찾아든다 이슬에 젖어 꿈꾸는 저 백합과 장미로부터 아, 꿈꾸지 마라 사랑하는 이여, 흐르는 별의 불꽃은 사라지리니 푸른 별의 불꽃을 꿈꾸지 마라. 이슬은 내리는데 낮게 걸려 서성이니 될 수만 있다면 떠도는 물거품 위 두 마리 흰 새가 되련만. 그대와 나는 수많은 섬들과 수많은 다나안 해안으로 내 마음 이끌린다 시간이 우리를 잊고 슬픔도 다가오지 않는 곳 장미와 백합 그리고 가슴 태우는 불꽃도 이내 멀리 사라지리니 사랑하는 이여 우리가 물거품 위를 떠도는 두 마리의 흰 새가 될 수만 있다면 I would that we were, my beloved, white birds on the foam of the sea! We tire of the flame of the meteor, before it can fade and flee; And the flame of the blue star of twilight, hung low on the rim of the sky, Has awaked in our hearts, my beloved, a sadness that may not die. A weariness comes from those dreamers, dew-dabbled, the lily and rose; Ah, dream not of them, my beloved, the flame of the meteor that goes, Or the flame of the blue star that lingers hung low in the fall of the dew: For I would we were changed to white birds on the wandering foam: I and you! I am haunted by numberless islands, and many a Danaan shore, Where Time would surely forget us, and Sorrow come near us no more; Soon far from the rose and the lily and fret of the flames would we be, Were we only white birds, my beloved, buoyed out on the foam of the sea

       
방황하는 인거스의 노래(The Song Of Wandering Aengus) 내 머리 속에 불이 붙어 개암나무 숲으로 갔었지. 개암나무 한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딸기 하나를 낚싯줄에 매달았지. 흰 나방들이 날고 나방 같은 별들이 깜빡일 때 나는 시냇물에 딸기를 담그고 작은 은빛 송어 한 마리를 낚았지. 나는 그것을 마루 위에 놓아 두고 불을 피우러 갔었지. 그런데 마루 위에서 무엇인가가 바스락거리더니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지. 그것은 머리에 사과꽃을 단 어렴풋이 빛나는 소녀가 되어 내 이름을 부르며 달아나 빛나는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 나 비록 골짜기와 언덕을 방황하며 이제 늙어 버렸지만 그녀가 간 곳을 찾아 내어 그녀의 입술에 입맞추고 손을 잡고서 얼룩진 긴 풀밭 속을 걸어 보리라. 그리고 시간이 다할 때까지 따보리라. 저 달의 은빛 사과를 저 해의 금빛 사과를... I WENT out to the hazel wood, Because a fire was in my head, And cut and peeled a hazel wand, And hooked a berry to a thread; And when white moths were on the wing, And moth-like stars were flickering out, I dropped the berry in a stream And caught a little silver trout. When I had laid it on the floor I went to blow the fire aflame, But something rustled on the floor, And some one called me by my name: It had become a glimmering girl With apple blossom in her hair Who called me by my name and ran And faded through the brightening air. Though I am old with wandering Through hollow lads and hilly lands. I will find out where she has gone, And kiss her lips and take her hands; And walk among long dappled grass, And pluck till time and times are done The silver apples of the moon, The golden apples of the sun.

        
첫사랑(First Love) 하늘에 떠가는 달과도 같이 잔인한 아름다움의 종족으로 자라긴 했지만 그녀는 잠시 걷다 얼굴을 붉히고 내 가는 길을 막고 서 있었다. 마침내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몸이 살과 피의 심장을 지니고 있다고 그러나 내 손을 그 위에 올려 놓고 돌의 심장임을 알아낸 이후 나는 많은 것을 시도하였으나 하나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 달 위를 지나가는 모든 손은 미치고야 만다. 그녀의 미소에 나는 변해서 그만 시골뜨기가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를 서성거리며 달이 나타날 때 하늘에 떠도는 별들보다 한층 더 공허한 마음이 되었다. THOUGH nurtured like the sailing moon In beauty's murderous brood, She walked awhile and blushed awhile And on my pathway stood Until I thought her body bore A heart of flesh and blood. But since I laid a hand thereon And found a heart of stone I have attempted many things And not a thing is done, For every hand is lunatic That travels on the moon. She smiled and that transfigured me And left me but a lout, Maundering here, and maundering there, Emptier of thought Than the heavenly circuit of its stars When the moon sails out.

         
오랜 침묵 후에(After Long Silence) 오랜 침묵 후에 하는 말 - 다른 연인들 모두 멀어지거나 죽었고 무심한 등불은 갓 아래 숨고 커튼도 무심한 밤을 가렸으니 우리 예술과 노래의 드높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함이 마땅하리. 육체의 노쇠는 지혜, 젊었을 땐 우리 서로 사랑했으나 무지했어라. SPEECH after long silence; it is right, All other lovers being estranged or dead, Unfriendly lamplight hid under its shade, The curtains drawn upon unfriendly night, That we descant and yet again descant Upon the supreme theme of Art and Song: Bodily decrepitude is wisdom; young We loved each other and were ignorant.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The Lake Isle Of Innisfree)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을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 윙윙대는 숲 속에 나 혼자 살으리.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은 온통 은은히 빛나고, 한낮은 자주빛으로 타오르며, 저녁엔 홍방울새의 날개 소리 가득한 그 곳.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u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e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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