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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초보자들이 개척해야 할 부분은 시를 극적으로 쓰는것...
2016년 12월 20일 17시 24분  조회:2706  추천:0  작성자: 죽림

 

감격조의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ㅡ이창배 교수 



다음에 인용하는 김소월의 걸작으로 애송되는 [초혼]의 경우도 감격적 어조가 두드러진 시이다. [초혼]이란 말 은 사람이 죽었을 때 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난 후에 장례식을 치르는 관례에서 비롯된 말이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시인은 죽은 애인을 못 잊어 비탄에 잠겨 절규한다. 
죽은 이가 과연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 절규를 통해 슬퍼서 몸부림치는 시인의 비애의 감정이 처절하게 호소해온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흩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나가 않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나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이해가 가지만 원숙한 시인은 그 감정에 매달려 몸부림치지 않고 내적인 감정을 외적인 장면이나 사물로 객관화한다. 
이 점에서 같은 시인의 작품이지만 [진달래꽃]은 훨씬 잘 쓴 시라 하겠다. 
[진달래꽃]에 대한 해석이 반드시 일치하진 않겠지만 사랑하는 애인과의 이별 장면이 제시된 것은 틀림없다. 
이 장면을 통하여 전통적인 한국 여인에 대한 시인의 감정이 정확히 구상화된 점에서 이 시의 작품성이 높이 평가된다. 
이 시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다음 장으로 미루고 [초혼]에 제시된 것과 같은 애인의 죽음에 대한 비애의 감정이 感傷에 흐르지 않고 구상화되자면 시가 어떻게 씌어져야 하는가를 유사한 주제를 다룬 또 다른 한 편의 시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사무치게 그리운 여인이여, 당신은 어떻게 내게 말을 하는가요. 
지금의 당신은 이전의 당신이 아니라고, 
나에게 전부였던 그 당신이 변했던 시절, 그때가 아닌 
우리 사이가 아름다웠던 처음 그때와 같다고 말하는군요. 
들려오는 목소리가 정말로 당신인가요. 그렇다면 봅시다. 
내가 집 근처에 다가들면 늘 기다리고 
서 있던 당신의 모습, 그래요, 그때 내가 보았던 
그 상쾌한 하늘색 가운까지도 똑같은 당신의 모습을. 
아니면, 이 목소리는 축축한 초원을 가로질러 무심히 
이쪽으로 불어오는 미풍에 불과한가요. 
당신의 목소리는 이제 파리한 불가해한 것으로 변하여 
이 근처 어디서고 다시는 안 들리는군요. 

그래서 나는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낙엽은 여기저기 떨어집니다. 
바람은 북쪽에서 가시덤불 사이로 가냘프게 스며들고, 
여인의 부르는 목소리. 


이 시를 보면 하디에게는 죽은 부인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사이가 좋았던 시절에 그녀는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남편을 멀리 집 밖에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다정한 아내였음을 또한 알 수 있다. 
그 아내가 죽으니 이제 생시의 원망과 그리움이 한 데 뒤섞여 못 견디게 보고 싶어 한다. 환각으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에 이끌려 비틀거리며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는 시인의 외로운 심정이 이 짤막한 한 편의 "극"을 통해서 잘 전달된다. 
이 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감정을 인물과 장면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감정의 절제를 기하여 낭만적 한탄과 초월에서 벗어나 감정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극적 수법이다. 엘리엇은 잘 씌여진 시는 아무리 짧은 한 편의 서정시라도 극적이지 않은 시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시의 초보자들이 개척해야 할 부분이 그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테니슨의 시보다 예이츠와 하디의 시가 잘 쓴 시이고, [초혼]보다 [진달래꽃]이 잘 쓴 시라고 평할 수 있다. 
다음에 인용하는 서정주의 [부활]이란 시도 김소월의 시, 하디의 시와 같은 주제를 다른 시로서 시인의 감정이 어떻게 형상화되어야 좋은 시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내 너를 찾아왔다. 수야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더니. 
수야, 이것이 몇 만 시간만이냐. 

그날 꽃상여 山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볼 머리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 촛불 밖에 부엉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江들은 또 몇 천 리, 한 번 가선 소식없던 그 
어려운 住所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 중에서도 열아홉 살 쯤 스무 살 쯤 되는 애들 -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 속에 들어앉아 
수야! 수야! 수야! 너 이젠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군나. 


이 시에 등장하는 "수야"라는 아이가 실명인지 가명인지는 가릴 필요가 없고, 아마 "열아홉 살 쯤 스무 살 쯤" 나이에 죽은 여자아이임에 틀림없다. 
시인은 이 아이가 죽은 뒤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어서 그 모습이 늘 눈에 밟혀 종로 바닥을 걸으면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그 애가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명랑하고 맑은 모습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에 시달려 왔음을 알 수 있다. 
죽은 수야에 대한 사무치게 그리운 심정이 부활의 사상으로 바뀌면서 자초지종에 대한 설명도, 애절한 감정의 표출도 없이 장면과 이미지만으로 잘 전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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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자랑 ― 임길택(1952∼1997)

새로 오신 선생님께서
아버지 자랑을 해보자 하셨다

우리들은
아버지 자랑이 무엇일까 하고
오늘에야 생각해보면서
그러나
탄 캐는 일이 자랑 같아 보이지는 않고
누가 먼저 나서나
몰래 친구들 눈치만 살폈다

그때
영호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술 잡수신 다음 날
일 안 가려 떼쓰시다
어머니께 혼나는 일입니다

교실 안은 갑자기
웃음소리로 넘쳐 흘렀다


  
 장소는 탄광촌.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에 위치한 초등학교의 교실이다. 어느 날, 새 선생님이 오셔서 아버지 자랑을 해보자 말했다. 여기서 잠깐, 부디 이 선생님의 의도를 오해하지 말자. 그는 아이들의 배경과 재력을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은 착하디착한 시인 선생님,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광부의 아이들이다. 

 난생처음 아버지 자랑을 해야 하는 아이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대체 우리 아버지는 뭐가 잘났을까. 요새 초등학생들 같으면 남한테 질세라, 사실에 허풍을 보태서 목청껏 떠들 텐데 이 아이들은 주저주저했다. 내 아버지의 잘남이 네 아버지의 잘남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 아버지 자랑이 곧 내 자랑이 된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없는 아이들이다. 금방 떠올리지 못하는 이 아이들은 너무나도 순수하다. 
 

 

 영호가 내놓은 대답이 특히 엉뚱하고 귀엽다. 숙취에 시달리며 바가지 긁히는 일이 아버지가 잘하시는 일이란다. 이 아이는 얼마나 진지한지, “떼쓰시”는 아버님 자랑에 꼬박꼬박 높임법까지 사용하고 있다. 

 시의 제목만을 보았을 때는 오해하기 쉽다. 직책 높고 돈 많은 아버지가 있다는 말일까. 대단한 아버지와 귀한 자식의 집안 자랑을 들어야 한다는 말일까. 그런데 읽어 가다 보면 굳었던 마음이 풀리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아버지’와 ‘자랑’. 이 두 단어의 조합에 왜 우리는 지레 움츠러들었던 것일까.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버지 자랑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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