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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집 제목을 워낙 "병원"이라 붙일가 했단다...
2017년 01월 09일 19시 06분  조회:6087  추천:0  작성자: 죽림

 

# 윤동주()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1917.12.30~1945.2.16) ​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신사참배 거부로 자퇴하고, 광명중학교 졸업 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자화상」「쉽게 쓰여진 시」을 발표하였고 문예지 『새명동』발간에 참여하였으며, 대학시절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중이던 1945년 2월, 스물 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유해는 그의 고향인 연길 용정(龍井)에 묻혔다.

그의 사후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은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1948년에 출간되었다. 1968년 연세대학교에 시비가 세워졌으며, 1985년부터 한국문인협회가 그의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윤동주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연변작가협회의 기관지인 「연변문학」에서도 동명의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십자가」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이같은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빼어나고 결 고운 서정성을 빛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서정적 민족시인'이라는 평가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되뇌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며 부끄러운 삶을 경계했던 시인은 그 댓가로 일제에 의해 젊은 나이, 스물 여덟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출처: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 윤동주 유고시집>

 

 

윤동주 시인의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출처: 윤동주-  별을 노래하는 마음>

일본 유학 중이다가 귀국했던 때의 윤동주와 송몽규 등 사진. 뒷줄 맨 오른쪽이 윤동주.
 
중국 지린성에 있는 시인 윤동주의 생가​

 

은진중학교

 

"은진중학교는 미션스쿨로서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리는 거기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애국가를 목청껏 부를 수 있었다.

동주와 나에게 이것은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동주가 은진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1934년 12월 24일은 동주의 생애에 퍽이나 중요한 날이었던 것 같다.
그날을 기해서 그는 자기 시에 또박또박 날짜를 적어 넣는다.
그날은 그의 나이 만 17세를 엿새 앞둔 날, 크리스마스 전날밤이었다.
동시만 써오던 자기 속에서 불현듯 시가 탄생하는 것을 보고
그 날을 자기의 둘째 생일로 알고 날짜를 적어넣은 것이 아닐까?”
(문익환 목사)
 
 
숭실중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뒷줄 왼쪽부터 장준하, 문익환, 윤동주
 

숭실중학시절 조부 윤하연 장로의 회갑연

 

윤동주 시인 '최후의 사진'
1943년 초여름, 교토(京都) 우지(宇治)강 구름다리에 늘어선 9명의 청춘남녀.
이들 중 단정한 교복 차림에 눈매에는 우수가 깃들어 있지만
굳게 다문 입술에는 범상치 않은 단호함이 엿보이는
청년 윤동주(1917∼1945)가 유난히 돋보인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던 시인 윤동주가
일본 유학시절 남긴 유일한 사진이자 최후의 사진이기도 하다. 
<출처: 세계일보>​
 

 

 

-윤동주

 

은진중학교 때의 그의 취미는 다방면이었다.

축구 선수로 뛰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교내 잡지를 내느라고

등사 글씨를 쓰기도 하였다.

기성복을 맵시 있게 고쳐서 허리를 잘룩하게 한다든지

나팔바지를 만든다든지 하는 일은 어머니 손을 빌지 않고

혼자서 재봉틀로 하기도 하였다.

2학년 때이던가, 교내 웅변대회에서

「땀 한 방울」이란 제목으로 1등 한 일이 있어서

상으로 탄 예수 사진의 액자가 우리 집에 늘 걸려 있었다.

절구통 위에 귤 궤짝을 올려놓고

웅변 연습을 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 윤일주, 「윤동주의 생애」, 『나라사랑』, 23집(외솔회, 1976)

<출처: 나는 문학이다, 장석주, 2009. 9. 9., 나무이야기>

 

'지금의 세상은 온통 환자 투성이'​

「별 헤는 밤」을 완성한 다음 동주는

자선 시집을 만들어 졸업기념으로 출판을 계획했다.

「서시」까지 붙여서 친필로 쓴 원고를 손수 제본을 한 다음

그 한 부를 내게다 주면서

시집의 제목이 길어진 이유를 「서시」를 보이면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처음에는(「서시」가 완성되기 전) 시집 이름을

「병원」으로 붙일까 했다면서

표지에 연필로 ‘병원’이라고 써넣어 주었다.

그 이유는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리고 병원이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 때문에

혹시 앓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느냐고

 겸손하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 『나라사랑』, 23집(외솔회, 1976)

<출처: 나는 문학이다, 장석주, 2009. 9. 9., 나무이야기>



병 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 
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 
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 
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출처: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 1941.11​

 

 

 ​

'병원'이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었던 시집은

바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출처: YES24>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윤동주, '병원'​

 

"일제 강점기, 암흑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한없는 부끄러움을 이야기했던 젊음.

출간하고팠던 시집조차 마음대로 낼 수 없어 원고를 서랍장 깊이 넣어야 했던

 그는 지금의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손석희 

<출처: JTBC>​

"지금의 세상은 온통 환자 투성이, 병원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에

혹시 이 시집이 앓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윤동주

윤동주 :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집필 의도 및 감상 
연희 전문학교 문과 졸업반이었던 윤동주(尹東柱)는 그 동안 써 놓은 시 19편을 모아 시집을 발간하려고 하였다. 총 77부 한정판으로 하여 <병원>이란 제목으로 출간하려고 했으나 시집 제목이 좋지 못하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제목으로 시집명을 고치었다. 그러나 그의 시 가운데 <슬픈 족속>, <십자가> 등이 일제 검열에 통과하기 어렵겠다는 이양하(李敭河) 교수의 충고로 시집 출판을 포기하고 수제본(手製本) 시집 3권을 만들었다. 그 중 한 권은 이양하 교수에게, 다른 한 권은 후배 정병욱(鄭炳昱 ; 1922~1982)에게 주었는데, 결국 정병욱에게 준 시집이 살아남아 해방 후 1948년에 유고 시집(遺稿詩集)으로 발간되어 유동주란 시인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서시>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로 윤동주 시 세계의 모든 요소가 이 한 편에 반영되어 있다. 윤동주의 시는 ‘부끄러움’의 미학(美學)인데, 시대 현실에 대한 그의 성찰과 인생 태도가 이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자기 한 몸을 희생하여 이상을 실현하려는 그의 순교자적 의식은 ‘부끄러움’의 자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목표를 달성하려는 굳은 의지와 결의를 <서시>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이 시의 모티프가 되는 시어는 ‘부끄럼•죽음•별’인데, ‘부끄럼’은 현실에 대한 시적 자아의 반응이고, ‘죽음’은 수단으로서의 자기 희생을 뜻하며, ‘별’은 시적 자아가 목표로 삼아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 세계를 뜻한다. 이 세 시어야말로 윤동주 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으로, 윤동주의 시 정신을 분명하게 상징한다. 

기본 이해 항목 
주제 : 부끄러움 없는 삶을 소망함. 
성격 : 상징적, 의지적, 참여적, 자기 성찰적, 감각적. 
어조 : 고백적, 의지적 어조. 
이 시를 이해하는 관점 : 반영론적 관점. 
시상 전개 방법 (제1연) : 시간 이동에 따른 전개. 
[현재(제1,2행)→과거(제3,4행)→현재(제5,6행)→미래(제7,8행)] 
창작 연월일 : 1941년 11월 20일. 
출전 :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시어 및 구절 풀이 
죽는 날까지 ㅡ 평생, 일생 동안, 살아 있는 동안. 
하늘 ㅡ 1) 절대적 가치관의 표상. 2) 자기 성찰(自己省察)과 반성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우러러 ㅡ 시적 자아가 지상의 현실에 위치하여 천상(天上)의 영원한 가치를 찾고자 함을 알 수 있다.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ㅡ 시대 현실 속에서 치욕적인 자세를 스스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청교도적인 자세를 표명하고 있다. 이것은 끝까지 자기의 양심과 지조를 지키겠다는 시인 스스로의 결의와 소망을 나타낸 의지의 표명이다. ‘ ~없기를’ 다음에 ‘기원한다’, 혹은 ‘바란다’가 생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ㅡ 이 구절은 <맹자(孟子)>의 ‘진심장구(盡心章句)’ 중 ‘군자삼락(君子三樂)’의 제2락인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ㅡ 우러러 하늘에 부끄럼이 없고, 굽어 남에게 부끄럼이 없는 것”의 구절에서 영향받은 것이라 하겠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ㅡ 1) 섬세한 심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2) ‘잎새에 이는 바람’은 보통 사람은 인식하기 어려운 미세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시적 자아는 그 바람이 지금은 미약한 존재이지만 앞으로 거대한 폭풍으로 변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리한 시인의 감각으로 예감하고 있다. 3) 시적 자아는 시대 현실과 맞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4) 불안의 시대에 시인의 사명은 현실 상황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하여 시를 통해 이것을 나타내고, 부정적인 현실에 저항하며 미래상(未來像)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 플라톤이 이상국(理想國)의 제도와 구조를 설명한 저서 <국가>에서 주장한 ‘시인 추방론(追放論)’은 이와 같은 시인의 본질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즉 시인은 영원한 이상을 추구하는 자이기 때문에 ‘이상국’에서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상국’에 시인이 존재하는 한 완전한 ‘이상국’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통해 윤동주는 시인으로서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잘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ㅡ 시에 나온 별은 대체로 ‘이상•동경•영원성•아름다움’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구절의 ‘별’은 ‘영원한 가치’를 뜻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영원한 가치를 기리는 심정으로’로 풀이할 수 있다. 
모든 죽어가는 것 ㅡ 이 시가 씌어진 일제 말엽의 암흑기에 우리 민족이 처한 곤혹(困惑)한 시대 상황을 말한다. 
사랑해야지 ㅡ 휴머니즘의 정신으로 죽어가는 민족을 살리고 싶은, 민족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나한테 주어진 길 ㅡ ‘길’은 시적 자아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적 자아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하늘이 시적 자아에게 명령한 소명 의식(召命意識)을 말한다. 그 ‘길’이란 어두운 시대 현실에서 민족을 구출하기 위한 자기 희생의 순교자적 의지를 말한다. 
걸어가야겠다 ㅡ 확신과 결의를 표명하여 시적 자아의 미래 지향적 실천 의지를 분명히 나타낸다. 
제2연 ㅡ 한 행으로 된 제2연을 독립시킨 것은 제1연의 주관적 관점이 제2연에 와서 객관적 관점으로 바뀌는 것을 구분하여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ㅡ ‘오늘 밤’과 ‘바람’은 암흑의 시대 현실을, ‘별’은 이상과 동경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객관적 관점에서 고도의 상징으로 시화(詩化)한 것이다. 평론가들은 이 구절을 윤동주의 시 구절 중 절조(絶調)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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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고향 북간도 용정의 동쪽 외곽에는 ‘영국더기’란 자그마한 언덕이 있다. 용정 사람이라면 모두 알만한 곳이다.‘영국더기’란 영국 사람이 살던 언덕이란 뜻이다. 일제 강점기에 영국 국적을 가진 캐나다 장로회 선교사들이 살던 동네를 일컫는 말이다.

1907년 캐나다 장로회는 용정에 선교사를 잇달아 파송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선교를 시작했다. 성도가 늘어나자 캐나다 장로회는 용정 동쪽 산비탈 언덕 10만 제곱미터를 사들여 사택과 제창병원, 명신여학교, 은진 중학교, 동산교회 등의 건물을 지었다. 보잘것없던 시골 동네가 근대 서양문화를 접하는 통로가 됐고 항일 민족운동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윤동주와 송몽규, 문익환도 이 영국더기에 있는 은진중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1941년 일제는 강제 퇴거령을 내리고 캐나다 선교사를 영국더기에서 몰아냈다. 이후 영국더기는 조락의 길을 걷는다.

일본 관동군 부대가 진주하면서 ‘군부더기’로 불리다가 일제가 패망한 이후에는 동북군정대학 길림분교로 바뀌었다. 이마저도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 영국더기에 있던 제창병원, 동산교회, 명신여학교, 은진중학교는 흔적도 없이 파괴돼 사라졌다.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영국더기는 지금 허름한 가옥들이 판자촌을 이루듯 가득 들어서 있다. 좁은 소로를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가면 윤동주의 묘소가 나온다. 양지바른 언덕엔 비탈을 따라 봉분이 꺼진 수많은 무명의 묘가 가득하다. 간혹 십자가가 새겨진 비석을 통해 이곳이 옛 동산교회 묘지 터였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윤동주 묘가 있다. 용정시 정부는 지난 1997년 6월 3일 윤동주 묘소를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정하고 2014년 7월 15일에는 표지석까지 세웠다. 표지석에는 보호범위를 돌비석을 중심으로 앞으로 5m, 뒤로 10m, 좌우 5m라고 명시해 놓았다.

송몽규 선생은 영화 ‘동주’에서 많이 조명돼 일반인도 많이 알게 됐지만, 뼛속까지 독립운동가로 일본 유학 중에 윤동주와 함께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윤동주의 아버지 윤영석의 친구인 김석관 선생이 쓴 ‘청년문사 송몽규 묘’라고 새겨진 비석만이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윤동주 묘역에는 또 하나의 표석이 세워져 있다. “윤동주의 할아버지 윤하현, 할머니 남신필, 아버지 윤영석, 어머니 김용, 동생 윤광주 이 다섯 분은 이 동산 어딘가에 잠들어 계시지만 오늘날 묘소를 찾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라고 쓰여 있다.

윤동주가 아끼던 막내 동생 윤광주는 1962년 11월 30일 폐결핵으로 서른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폐결핵 환자라 급히 시신을 수습하는 바람에 아직도 무덤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북간도로 이주한 윤동주 일가족은 이렇게 사라지고 윤동주는 관리할 사람도 없는 공동묘지에 불귀의 객이 되었다. 



더욱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윤동주 묘소도 우리가 찾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윤동주의 시를 흠모하던 일본인 ‘오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교수에 의해서다. 1985년 당시 와세다 대학에서 소위 잘나가는 교수였지만 연변대학으로 와 윤동주 찾기에 나섰다.

오오무라는 윤동주의 ‘서시’,‘자화상’,‘별헤이는 밤’ 같은 작품은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세계적인 명시’라고 극찬했다. 오오무라 교수의 각고의 노력 끝에 윤동주의 묘소를 찾을 수 있었다. 윤동주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진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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