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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년 6월 12일(오스트리아)~1918년 10월 31일
1906년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였으나 보수적인 학교에 반발하여
몇몇 동료들과 ‘새로운 예술가 그룹’을 결성하고 3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오스트리아 화가 연맹’의 클림트를 만나 많은 교류를 하였다.
다뉴브 강가의 스타인 교회 Church in Stein on the Danube
1913, 판넬에 유채,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에곤 쉴레 자화상 Self Portrait,
1912, 32.2 × 39.8cm, 오스트리아 비엔나 레오폴드 미술관 Sammlung Leopold
붉은 옷을 입고 선 여자 Standing Woman in Red
1913, watercolor 구아슈 그림물감과 연필 Gouache, watercolor and pencil,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맹인 The Blind,
1913,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성가족 The Holy Family
1913, 종교 성화 religious painting
빨간 브라우스와 왈리 Wally with a Red Blouse
1913년 경, 개인 소장
쉴레의 연인이며 미술에 눈을 뜨게 한 모델, 발리 노이질(Wally Neuzil), 그녀가 열일곱 살이던 때 클림트에게 물려 받았다.
연인 남녀 Lovers Man and Woman
1914, 캔버스에 유채, 119 x 139cm, 개인 소장
쉴레는 그녀를 만난 이후 언제나 모델 발리 노이질(Wally Neuzil)의 '몸'을 잊지 못했다.
기대누운 금발의 여자 Reclining Woman with Blond Hair
1914, 종이 위에 그림물감, 볼티모어 미술관 Baltimore Museum of Art, Baltimore, MD, USA
왼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앉은 여자 Seated Woman with Her Left Hand in Her Hair
1914, 종이에 그림물감, 오스트리아 빈 알베르티나 판화수집 미술관 Graphische Sammlung Albertina, Vienna, Austria
초록색 스타킹 The Green Stockings
1914, 리차드 나지 갤러리 Richard Nagy Gallery
오렌지 스타킹을 신고 서 있는 누드 Standing Nude with Orange Stockings
1914, 리차드 나지 갤러리 Richard Nagy Gallery
검정 스타킹과 붉은 가터를 한 여인 Semi-nude in Black Stockings and Red Garter
1913, 리차드 나지 갤러리 Richard Nagy Gallery
속옷 입은 여자 Girl in Underclothes
1917, 리차드 나지 갤러리 Richard Nagy Gallery
이야기 속의 난쟁이와 여인 Woman with Homunculus
1910, 리차드 나지 갤러리 Richard Nagy Gallery
옷 벗는 여자 Woman Undressing
1914, 종이에 물감,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1,001 Paintings you must see before you die) 중 선정된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작품
젊은 엄마 Young Mother
1914, 캔버스에 유채, 오스트리아 비엔나 안톤 페슈카 콜렉션 Collection of Anton Peschka, Vienna, Austria
안톤 페슈카(Anton Peschka)는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비엔나 미술학교 동기로, 쉴레보다 다섯살이 많지만 절친으로 지내다가 나중에 실레가 자신의 여동생을 소개해주어 결혼하게 된다. 안톤 페슈카도 물론 화가다.
죽음과 처녀 Death and the Maiden
1915, 캔버스에 유채, 오스트리아 국립갤러리와 바로크 예술박물관인 벨베데레 궁전미술관 O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Austria
앉아있는 커플 Seated Couple-에곤 쉴레와 그의 부인 에디트 쉴레 Egon and Edith Schiele
1915, 오스트리아 비엔나 알베르티나 판화 미술관 Graphische Sammlung Albertina, Vienna, Austria
러시아 전쟁 포로 Russian prisoner of war, 그리고리 클라디스츄일리 Grigori Kladjischuili
1916, 미술책에서 인용 repro from art book,
물방앗간 The Mill
1916, 켄버스에 유채, 독일 하노버 니더작센 주립미술관 Niedersachsisches Landesmuseum, Hannover, Germany
배 깔고 누운 여성 Female Nude Lying on Her Stomach
1917, 비엔나 알베르티나 판화 미술관 Graphische Sammlung Albertina, Vienna, Austria
드러누운 여성 누드 Reclining Female Nude
1917, 종이에 물감,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보라색 스타킹을 신고 앉은 여자 Seated Woman in Violet Stockings
1917, 종이에 물감,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녹색 스타킹을 신고 기대누운 여자 Reclining Woman with Green Stockings, 처제 아델레 하름스(Adele Harms)
쉴레는 1915년 아내 에드트 하름스(Edith Harms)를 만나 결혼한다. 그 집에는 여동생 아델레 하름스(Adele Harms)가 있었고 두 자매의 아버지는 자물쇠 장인이었고 종교는 개신교였다. 쉴레는 두 자매 모두 마음에 있었지만 언니 에디트와 결혼한다.
구부린 무릎으로 앉은 여자 Seated Woman with Bent Knee
1917, 크레온, 구아슈, 물감 crayon, gouache, watercolor, 체코 프라하 국립미술관 Narodni Galerie, Prague, Czech Republic
여전히 처제 아델레 하름스(Adele Harms)가 모델이다.
크루마우 여름 풍경 Summer Landscape, Krumau,
1917, 모던 아르누보 Art Nouveau (Modern) 스타일, 켄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체코슬라바키아의 몰다우 강변의 어머니 고향 크루마우를 쉴레는 자주 갔다.
포옹 The Embrace,
1917, 캔버스에 유채, 98 x 169 cm, 오스트리아 비엔나 벨베데레 궁전미술관 O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Austria
이미 소개해드린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1,001 Paintings you must see before you die) 중 선정된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작품.
죽은 모습은 실레 자신의 자화상이고, 처녀는 쉴레에게 '꿈에도 잊지 못할'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발리 노이칠(Wally Neuzil)이다.
앞으로 구부린 긴머리 여성 누드 Long haired nude, bent over forward, jerk view
1918, 종이 위에 목탄 Charcoal 스케치, 29 x 45.8cm,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초록 스타킹을 신고 앉은 여자 Seated Woman with Green Stockings
1918, 종이에 물감,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뒤돌아선 여자 Semi Nude, Back View
1918, 종이에 연필화, 49.5 x 31.7cm,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가족 The Family
1918, 캔버스에 유채, 152 x 162.5cm,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 벨베데레 궁전미술관 O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Austria
예술가를 억압하는 것은 범죄다, 그것은 인생의 꽃봉오리를 짓밟아버리는 살인이다. Hindering the Artist is a Crime, It is Murdering Life in the Bud(제목이 길다), 1912, 종이에 수채화 물감, 48.6 x 31.8 cm, 개인 소장
'나는 나의 예술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최후까지 기꺼이'
노일렝바흐의 감옥 Afera v Neulengbachu에서
1914년 쉴레 Schiele in 1914 by Anton Josef Treka
1913년 쉴레는 클림트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예술가 동맹’의 회원이 되었으며, 빈 분리파 전시회에 참여했다. 그리고 베를린의 평론지 <디 악티온>의 편집진에 합류했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1915년 에디트 하름스(Edith Harms)와 결혼했다. 쉴레는 바로 군에 징집되어 러시아 전쟁 포로를 호송하는 일에 배치되었지만 재능을 인정받아 그림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에는 유럽의 주요 전시회에 여러 차례 참가하면서 재정적인 안정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에곤 쉴레/육체와 풍경
작은 마을 Die kleine Stadt II,
1912~1913.
몰도우 강의 크루마우 View of Krumau an der Moldau,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89.5 × 90.5cm, 오스트리아 그라츠 빅토르 소장품전시미술관 Sammlung Viktor Fogarassy
"봄에는 삶의 찬가를 꿈꾸었고, 찬란한 여름에는 의기양양했으며, 새하얀 겨울을 그릴 때면 웃음을 터트렸다.”
검정 스타킹의 여인 Woman With Black Stockings[발레리 뉘질(Valerie Neuzil)]
1911년 21세 쉴레는 클림트로부터 여성 한 명을 소개받는다. 17세의 그녀 이름은 발레리 뉘질(Valerie Neuzil), 쉴레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이고 선정적인 드로잉의 모델이 되었던 여성이다.
초록 모자를 쓴 여인 Woman in green bonnet,
1914, 48.4 x 31.2cm, 오스트리아 비엔나 알에르티나 판화미술관 Albertina, Vienna, Austria
쉴레에게 본격적인 미술을 일깨워준 그의 모델 발레리 뉘질(Valerie Neuzil)
쉴레의 누드 드로잉에 품격을 높혀준 그녀 발레리 뉘질(Valerie Neuzil)은 쉴레와 4년동안 작업 동지이며 삶을 동반자였다. 1915년 쉴레가 부인 에디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기대누운 금발의 여성 Reclining Woman with Blonde Hair,
1912, 30.5 x 44.7cm, 종이에 수채화 그림물감, 개인 소장
두 여자 Two Female Nudes, 한 사람은 드러눕고 한 여성은 무릎 꾼 One Reclining, One Kneeling, 1912, 34.93 x 46.04cm, 종이에 수채화 그림물감, 개인 소장
푸른 스타킹의 여자 Woman with Blue Stockings
1912, 31.75 x 44.13cm, 종이에 수채화 긔림물감,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등을 뒤로 기댄 두 여인 Two Women
1915년, 종이에 연필과 템페라 기법 알베르티나 판화미술관
이 해에 쉴레는 오랫동안 동거동락해온 자신의 작업 동반가 발레리 뉘질(Valerie Neuzil)과 결혼을 결심한 아내 에디트 하름스(Edith Harms)와 두 여인의 '기묘한 쌍곡선' 얽히고 섥힌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무릎 꿇은 여인 Kniendes Madchen
1917, 46 x 28.8cm, 독일 뮌헨 국립 판화 미술관 Statliche Graphische Sammlung
에곤 쉴레의 사진들
Egon Schiele. (June 12, 1890 - October 31, 1918)
자신의 작품 앞에서 에곤 쉴레 Egon Schiele, 1914
에곤 쉴레 1916년 경 Egon Schiele. ca. 1915-18
에곤과 아내 에디트 하름스, 그리고 친척 Egon and Edith Schiele with Edith’s nephew Paul Erdmann. Photograph 1915
조안 피셔 사진가의 사진 Photograph by Johannes Fischer. 1915
에곤 쉴레와 그의 모델 발레리 뉘질 1910, Egon Schiele, Valerie Neuzil
쉴레는 1918년 클림트의 사망 이후 오스트리아를 이끄는 예술가의 지위에 올라서게 되며, 그 해 3월 빈 분리파 전시회에서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예술적으로, 경제적으로 클림트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가족》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그의 아내가 당시 유럽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했고, 그 자신도 독감에 감염되어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잃은 지 사흘 만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대표작에는 《자화상 Self-Portrait》(1910), 《자기 응시자들 II The Self-Seers II》(1911), 《추기경과 수녀 The Cardinal and Nun》(1912), 《죽음과 소녀 Death and the Maiden》(1915), 《포옹 The Embrace》(1917), 《가족 The Family》(1918) 등이 있다.
에디드 쉴레 죽어 가다 Dying Edith Schiele,
쉴레의 마지막 드로잉 Schiele's last drawing, 1918, 미술책에서 재현 repro from art book
임신 6개월이던 그의 아내 에디트 하름스가 죽어 가는 최후의 모습을 스케치 하던 쉴레는 그림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흘 뒤 역시 그도 죽었다. 그가 죽어 가는 모습은 그릴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드로잉이 되었다.
머리 위로 손을 꼬아쳐든 자화상 Self-Portrait with Arm Twisted Above Head, 에곤 쉴레를 아무리 흉내내어도 역시 에곤 쉴레의 존재감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에곤 쉴레, 머리 위로 손을 꼬아쳐든 자화상 Self-Portrait with Arm Twisted Above Head (1910, 종이에 목탄과 수채화 물감 watercolor and charcoal on paper, 17¾″ x 12½″ [45.1 x 31.7cm]).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뉴욕 신미술관 Neue Galerie, New York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는 에곤 쉴레 Egon Schiele with arms raised above his head. 1914년 3월 March 1914. Photograph by Anton Josef Trcka. 쉴레 사인이 된 그림 앞에서 Overpainted by Schiele and signed twice
쉴레 1914년 Schiele in 1914 by Anton Josef Treka d’Antios
에곤 쉴레가 그의 그림 앞에 앉아 그가 깎아만든 나무 말 목조각을 들고있는 사진 by Anton Josef Treka. 1914. 비엔나 알레르티나 판화미술관 Albertina Museum, Vienna 소장 사진
아마 1915년 사진 Egon Schiele, Vienna (ca. 1915) by Johannes Fischer
에곤 쉴레 Egon Schiele (1890~1918)
그래서 그토록 부지런을 떨며 살다가 애석하게도, 1918년 10월 31일 28살의 나이로 죽다.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의 한 장면. 지금까지 나왔던 무수한 '예술가' 영화와, 이 작품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주)티캐스트
화가라는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영화들은 대개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 아니, 그렇게 분류할 수 있다. 우선 명작의 탄생 비화가 궁금하다. 그럼 화가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둘러보는 게 먼저다. 그러다 보면, 주변 가족과 연인(이나 뮤즈), 친구(와 소울 메이트)들이 두둥실 떠오른다. 이를 위해 특정 시기를 조명하기도 하고, 전체 인생 여정을 따라 잡기도 한다.
이 모두는 예술가의 고뇌로 수렴되기 마련이다. 숱한 화가와 예술가의 삶을 그린 영화들이 이렇게 범주화된다. 그러 패턴이 존재하건만, 관객들은 궁금하고 또 궁금한가 보다. 그 예술가들의 창작 혼이 어디로부터 연유하는지, 또 그들 각자의 사정은 어땠는지 말이다.
그렇게 화가를, 예술가의 생애를 조명한 주목할 만한 '예술'영화들이 한 해에만 어림잡아 서너 편은 꼭 소개된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작품들은 한국 관객들이 유달리 좋아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실화'(!)아닌가.
인상주의 미술의 거장 폴 세잔과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대명사 에밀 졸라의 발자취와 우정을 그린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에 이어 또 한 편의 예술가가 세밑 극장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2일 개봉, 주말 관객 1만을 돌파하며 26일까지 1만3617명을 동원한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아래 <에곤 쉴레>)가 바로 그 작품이다.
매년 연말, 대형 미술 전시가 북새통을 이루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에곤 쉴레>의 흥행 역시 스크린으로 에곤 쉴레의 작품을 감상하려는 예술영화 관객들이 극장을 찾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9세 이상 관람가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에곤 쉴레>는 크리스마스 당일 34%라는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했고, 26일까지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에곤 쉴레>는 이른바 '예술가 영화'의 패턴에서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에곤 쉴레와 그의 네 여인들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에곤 쉴레의 '죽음과 소녀'.ⓒ (주)티캐스트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의 한 장면. 그림 '죽음과 소녀'와 포즈가 같다.ⓒ (주)티캐스트
가난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유복했다. 대신 매독에 걸린 아버지는 광기에 사로잡혔고, 어머니는 남매에게 지독히도 무관심했다. 두 살부터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지만, 정식 미술 교육은 받지 않았다. 그래도 빈 예술 아카데미에 최연소로 입학했다.
그러나 태생적인 자유분방함이 아카데믹하고 보수적인 학풍과 맞을 리 만무했다.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구스타프 클림트도 질투했던, '죽음과 소녀' 등의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친근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에곤 쉴레는 '천재'였다.
이 천재의 죽음의 목전에서부터 짧았던 전성기를 되짚는 <에곤 쉴레>를 연출한 디터 베르너 감독은 아마도 에곤 쉴레의 먼 후배쯤 될 듯싶다. 역시 오스트리아인으로서 먼저 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이후 연극과 드라마, 영화 연출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만큼, 에곤 쉴레의 영감을 자극한 실제 오스트리아 빈을 비롯해 체코, 이탈리아, 룩셈브루크 등 유럽의 풍광을 유려하게 담아냈다. 또 영화 말미, 에곤 쉴레가 속한 '빈 분리파'가 전시회에 등장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는 실제 작품이기도 하다. <에곤 쉴레>는 그런 '메이드 인 오스트리아', '메이드 인 유럽'의 흥취가 물씬 배어난다.
이 베르너 감독이 영화화의 모태로 삼은 작품은 <죽음과 소녀–에곤 쉴레와 여자들>이다. 5년간의 조사를 거친 작가 힐데 베르거는 에곤 쉴레와 뮤즈들의 관계가 그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천착했다. 에곤 쉴레가 미성년자 납치 및 추행 혐의로 고소된 사건이나 그의 마지막 뮤즈였던 에디트 하름스에 관한 영화 속 내용 역시 이 원작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 점에서, '에곤 쉴레의 여자들'이란 원작의 부제는 영화의 부제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에곤 쉴레의 강렬했던 청춘을 조명하는 <에곤 쉴레> 또한 그의 예술 세계를 풀어 가는 실마리로 그를 사랑했고, 그에게 영감을 줬던 네 여인과의 순간을 이야기의 주요 얼개로 배치했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만나는 에곤 쉴레의 작품과 그의 생애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의 공식 포스터. 그가 여성과 만나고 헤어졌던 과정을 그렸다.ⓒ (주)티캐스트
유일하게 정을 나눈 혈육이자 남매를 넘어선 교감과 애정 관계로 그려진 동생 게르티 쉴레, 역시 유일하게 에곤 쉴레의 작품 속에 이름을 남긴 댄서 모아 만두, '영혼의 반쪽'이라 할 만한 모델 발리 노이질,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부인 에디트 하름스. <에곤 쉴레>의 이야기 구조는 이 네 여성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리는 것으로 채워진다.
여성을 작품의 전면에 내세웠고, 사랑하는 여인들을 꾸준히 모델로 삼았던 에곤 쉴레였기에,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일견 적절한 선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중심을 차지하는 인물은 클림트를 통해 소개 받은 발리 노이질이다. 에곤 쉴레가 발리 노이질과의 사랑과 이별을 담았다고 평가받는 <죽음과 소녀>는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등장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발리 노이질은 모델뿐만 아니라 에곤 쉴레의 정신적, 일상적 지지자이자 동반자였고, 미성년자 납치 및 추행 혐의로 재판에 구금됐을 때나 군에 복무하게 됐을 때도 그의 곁을 지키며 헌신했다. 베르너 감독은 <죽음과 소녀>와 같은 구도의 장면을 그대로 찍었을 만큼, 둘의 관계를 영화의 중심 축에 가져다 놓는다.
그리하여 발리 노이질과의 관계와 파국이야말로 <에곤 쉴레>에서 격정적인 삶을 살았던 한 젊은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으로 기능한다. 한편으론, 발리 노이질과 여타 여성들과의 관계는 결국 무엇이 에곤 쉴레를 고뇌하게 만들었고, 또 어떻게 범인들과는 다른 길을 갔는가를 드러내는 반사판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관계와 사랑이 전부는 아니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가 배경인 <에곤 쉴레>는 그가 겪는 음란함에 대한 시시비비나 군 징병을 통해 당대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나 제1차 세계대전한창이던 유럽의 역사적인 맥락이 어떻게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거시적인 시각까지 제공해 준다.
그리고, 에곤 쉴레의 작품들. 에곤 쉴레는 1918년 10월 31일, 28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약 300여 점의 유화와 2000여 점이 넘는 데생과 수채화를 남겼다. <에곤 쉴레>는 그의 미완성적인 <가족>을 필두로, 발렌 노이질을 모델로 한 <발리의 초상>, <검정 스타킹을 신은 발리 노이질> 등이 등장하고, <무용수 모아>, <소도시> 등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을 고루 포착해 미술 애호가들의 구미를 자극시킨다.
에곤 쉴레가 드로잉을 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그리는 장면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팬이라면, 그림 교환 장면에서 등장하는 <검은 머리 소녀>나 <죽음의 삶>이 스크린으로 비칠 때 무척이나 반가울 듯 하다.
결론적으로, 여타 예술가의 초상을 그린 작품마냥 <에곤 쉴레>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작이나 문제작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범인들의 시각에서 예술가의 예술혼의 어떤 양상을 훔쳐보는 경험은 분명 흥미진진한 일이다. <에곤 쉴레>가 그리는 뜨거운 청춘과 시대를 앞서간 작품 세계, 다소 비극적인 죽음의 궤적 역시 이 범주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미술애호가라면, 에곤 쉴레의 팬이라면, 극장에서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알현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작품도, 영화의 주제도 결국은 젊은 예술가의 예술혼과 사랑으로 귀결된다. 보편적인 예술가의 이야기로 읽어도 무방하다. 오스트리아로부터 날아 온 <에곤 쉴레>는 그렇게 충분히 '클래식'하다.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의 한 장면. 낯선 화가의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주)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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