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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삶과 리듬과 "8복" 등은 모두모두 반복의 련속이다...
2017년 02월 10일 18시 03분  조회:2362  추천:0  작성자: 죽림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시적 의미를 함축한다는 것 


시는 일정한 거리에 오면 행갈이를 하고 신문은 행갈이 없이 계속 진행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다음은 행갈이의 보기.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무릎까지 시려오면 
편지를 쓴다 
부치지 못할 기인 사연을 


이 시를 산문으로 표기하면 이렇다.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그리고 무릎까지 시려오면 부치지 못할 기인 편지를 쓴다. 
" 그러나 시인은 이렇게 표기하지 않고 왜 행을 갈아가며 표기했을까?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리듬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리듬이 함축하는 의미 때문이다. 
" 손발이 시린 날은 / 일기를 쓴다"는 시행을 읽는 경우 무엇이 다른가? 
전자의 경우 우리는 중간에서 쉬지 않고 비슷한 속도로 리듬 없이 계속 읽어 나간다. 
예컨데 "손발이 / 시린 날은 / 일기를 / 쓴다"처럼 중간에서 쉬고 
동시에 이런 휴지에 의해 우리는 "손발이"와 일기를"을 강조하게 된다. 
이 두 부분, 특히 "손"과 "일"에 강세가 놓인다. 

한편 이런 읽기는 산문과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산문의 경우 의미는 "손발이 시린 날", 그러니까 추운 날은 일기을 쓴다는 사실, 
곧 하나의 정보뿐이지만 시의 경우 "손발이 시린 날"은 독립적인 의미를 띠면서 다음 행과 연결된다. 
따라서 이 시행은 단순히 부사구의 기능, 말하자면 "일기를 쓴다"는 중심 문장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2연의 "무릎까지 시려 오면"과 대립되고, 
따라서 추위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시린 손발과 일기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렇지 않은가? 
손발이 시린 시간에 어떻게 일기를 쓴다는 말인가? 
물론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손발이 시리면 따뜻하게 녹여야지 무슨 일기인가? 
그러므로 이런 표현은 아이러니이고 이런 표현이 시적 효과를 준다. 

요컨대 행갈이 때문에 "시린 손발"은 추위에 대한 감각, 삶의 추위, 가난, 고독을 의미하고 
"일기" 역시 자기 성찰, 자기 고백, 지기와의 만남 같은 여러 의미를 함축한다. 
이런 의미는 가슴이 시린 밤이면 시를 찾아 나서고(3연), 등만 보이는 사람을 
보이는 사람을 부르고(4연) 마침내 자신을 유월에도 녹지 않는 서리꽃으로 인식하는(5연) 전체 시와 관계된다. 

중요한 것은 리듬 때문에 행갈이를 하고 이런 행갈이가 독특한 시적 의미를 함축한다는 것. 

그렇다면 리듬rhythm이란 무엇인가? 
리듬이란 흔히 율동 혹은 운율로 번역한다. 
그러나 좀더 세분하면 첫째로 율동이라는 일반적 개념, 
둘째로 운율이라는 문학적 개념, 
셋째로 음의 강약을 나타내는 박자라는 음악적 개념, 
나는 다른 책에서 리듬을 광의 율동 개념과 협의으의 운율 개념으로 나누어 살핀 바 있다. 
율동이란 주기적인 반복 운동이고 운율이란 시의 경우 소리에 의한 주기적 반복 운동을 뜻한다. 

따라서 광의의 개념인 율동은 시를 포함하여 일제의 우주현상, 자연현상, 생명현상에 두루 나타난다. 
율동은 좀더 부연하면 상이한 요소들이 재현하는 주기적 반복 현상을 말한다. 
우주의 경우 일출 / 일몰의 반복, 자연의 경우 바다는 썰물 / 밀물의 반복, 
생명의 경우 인간의 호흡이 그렇다. 
내쉼/ 들이쉼의 반복이 삶이고 이런 반복이 머추면 인간은 죽는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숨쉬기이고 숨쉬기는 호흡이 암시하듯이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일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호흡은 숨결을 거느리고 그것은 숨쉬는, 호흡하는 속도나 높낮이를 뜻한다. 
요컨대 호흡과 숨결은 생명의 본질이고 시, 음악, 회화의 리듬도 비스한 의미르 띤다. 
시의 고향이 리듬이고 리듬이 숨결이라는 것은 이런 사정을 전제로 한다. 

시의 경우 리듬은 크게 정형시와 자유시로 나누어 살필 필요가 있다. 
정형시는 말 그대로 리듬이 일정한 형식을 소유하고, 자유시는 그런 형식에서 자유롭다. 
정형시의 리듬은 율격meter과 각운rhyme이 대표적이고 
자우시의 경우도 작운은 존재하고우리 시의 울격은 흔히 음수율, 음보율,로 나타난다 

자유시의 리듬은 정형시의 울격이나 일상어의 억양를 변형시킨 경우와 
리드의 단위로 이런 소리 요소를 포기하고 형태소, 
낱말, 어귀, 이미지, 어절, 통사 및 그 형식의 반복에 의해 성취되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리듬의 단위를 소리에 두는 경우와 소리가 아닌 문법적 요소에 두는 경우이다. 
전자를 전통적 리듬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현대적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에는 김소월, 박목월, 등이 후자에는 이상, 김수영 등이 포함되고, 
나는 자유시의 리듬이 보여주는 이런 양상을 다른 책에서 살핀 바가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른 문제들을 살피기로 한다 

그리고 이런 리듬, 곧 형태소, 낱말, 어구, 어절, 이미지, 통사 형식의 반복에 대해서는 내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이미 발표한 <반복, 반복, 반복>에서도 말한 바 있다. 
물론 그때는 리듬이 아니라 시적 효과를 강조했지만 아무튼 반복이 문제이다. 
글쓰기도 반복이고 시쓰기도 반복이고 사랑도 반복이고 식사도 반복이고 감기도 반복이고 우울도 반복이다. 
반복이 삶이고 삶은 호흡이고 숨쉬기이고 이 호흡과 숨결이 강조되면 리듬이 된다. 

먼저 어절의 반복에 의한 리듬의 보기. 



나는 

쿠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_ 체게바라,<쿠바>(이산하 엮음) 



어절의 반복이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의 반복을 말하고, 
이 시의 경우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라는 형식이 반복된다. 
내용의 반복이 아니라 ' -고 싶었고'라는 형식이 반복된다. 
이 시의 내용은 아르헨티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쿠바로 건너가 카스트로와의만남을 계기로 게릴라 혁명 투쟁에 임한 게바라의 쿠바에 대한 
애정, 물론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반복되는경우도 있다. 다음은 문장의 내용이 반복되는 경우.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운동주, <8복 --마태복음 5장 3~12절> 


시인은 동일한 문장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반복하고 
한 행을 비운 다음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는 문장으로 시를 완성한다. 
완성인가? 
다시 생각하면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는 문장은 '슬플 것이다'가 아니기 때문에 
침묵을 내포하는 진술 형식에 가깝고, 
그러므로 앞에서 반복된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 대한 아이러니의 효과가 강조된다. 
물론 이런 형식은 리듬과 함께 8복이라는 내용을 전제로 한다.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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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서브마린 
―이용한(1968∼ )

 

 

흑산도에 밤이 오면
남도여관 뒷골목에 노란 서브마린 불빛이 켜진다
시멘트 벽돌의 몰골을 그대로 다 드러낸,
겨우 창문을 통해 숨을 쉬는지는 알 바 없는
서브마린에 불이 켜지면
벌어진 아가미 틈새로 하얗고 비린 담배 연기가 흘러나온다
세상의 험한 욕이란 욕도 거기서 다 흘러나온다
갈 데까지 간 여자와 올 데까지 온 남자가
곧 죽을 것처럼 한데 뒤엉킨
서브마린에서는 때때로 항구의 악몽과 통곡이
외상으로 거래되고
바다의 물거품과 한숨이 아침까지 정박한다
지붕위에선 밤새 풍랑이 일고
지붕 아래선 끈적한 울음 같은 것들이 기어간 흔적이
수심에 잠긴 뻘밭 같기만 한데,
밤 깊은 서브마린에서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세상은 다 끝난 것만 같은데,
아침이면 다들 멀쩡하게 바다로 출근하는 것이다
죽을 것처럼 살아서 거짓말처럼 철썩거리는 것이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고 나면
어김없이 서브마린에 노란 불빛이 켜지고
항구의 낡은 사내란 사내 거기서 다 술 마신다
저렇게 버려진 잠수함으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지만,
한 번 시동 걸린 사내들은 어디든 간다
목포의 눈물에서 흑산도 아가씨까지
거기서 술을 팔든 몸을 팔든 내 알 바 없지만,
남도여관 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나는
바닥의 절박한 생을 끌고 가는 한 척의 슬픈 잠수함을 본다. 


이 시가 실린 이용한 시집 ‘안녕 후드득 씨’는 눅눅한 정조로 마음의 갈피가 달라붙은 듯한 화자의 결코 낭만적이랄 수 없는 방황과 방랑의 기록이다. 그러나 화자는 제 자신이나 만사를 관조하고 드물지 않게 유머를 구가해 독자 마음에 바람을 쐬어준다. 그래도 쓸쓸함과 황폐함, 그리고 막막한 비관주의가 내내 떠돈다. 길고양이들의 행복한 순간들을 사진과 에세이로 담은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로 이용한을 기억하는 독자에게는 뜻밖인 어두운 정서다. 

‘서브마린’은 선창가 뒷골목의 무척 허름한 술집, 노란 불빛으로 그 창이 밝혀지면 ‘갈 데까지 간 여자와 올 데까지 온 남자’들이 밤새도록 고성방가와 악다구니와 욕설을 쏟아낸다. ‘겨우 창문을 통해 숨을 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기서 술을 팔든 몸을 팔든 내 알 바 없지만’은 언뜻 말도 참 이상하게 한다 싶지만, 냉담해서나 무시해서가 아니라 과객의 예의로 그 서글픈 정황을 짐짓 ‘알 바 없다’는 것이다. 취흥에 도도해지는 게 아니라 ‘수심에 잠긴 뻘밭’으로 가라앉으며 ‘세상 다 끝난 것만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술집 ‘서브마린’. 흑산도 뒷골목의 비릿한 삶이 다 여기 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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