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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 The Bar at the Folies-Bergere>, 1882, 유화, 97-130cm.
마네가 살롱에 출품한 마지막 작품입니다. 웨이트레스의 뒤 거울에 술집 내부가 비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임을 알 수 있으며, 모자를 쓴 남자가 거울에 비친 웨이트레스와 마주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거울에 의해 환상적인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작품입니다. 거울에 비친 화려한 파리의 세계, 불빛 아래 서성이는 남자와 여자들의 실재감을 느끼게 하는 술병과 과일의 대비 등 마네의 회화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거울 속 웨이트레스의 뒷모습과 오른편 남자의 앞모습이 원근법으로는 일치하지 않지만, 마네는 이런 모순을 개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화적 구성을 위해 자유롭게 그렸습니다.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의 부분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의 부분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의 부분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의 부분
마네가 카페의 장면을 마지막으로 그린 대작 <폴리 베르제르 술집>은 그의 대표작들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폴리 베르제르 술집은 카페, 카바레, 서커스 공연장이었으며, 입장하는 데 2프랑만 내면 되었습니다. 1869년에 영업을 시작하여 부르주아들의 매춘 장소 또는 불륜의 커플이 만나서 즐기는 곳으로 알려진 이곳은 상점 점원, 가수, 배우, 댄서, 한량에서 예술가, 작가, 사업가, 은행가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출입했으며, 매춘하는 창녀들의 연령도 다양했습니다. 각종 술이 진열되어 있는 내부에는 밝은 등이 켜져 있었고,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요란했으며, 담배연기가 가득했습니다. 마네는 그 명소에서 몇 시간씩 앉아 스케치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마네가 웨이트레스 쉬종에게 유니폼을 입은 채 자기 화실로 와서 포즈를 취해줄 것을 청하자 그녀는 선뜻 응했습니다. 그녀는 목에서 가슴까지 사각으로 파진 기다란 드레스에 꼭 끼는 벨벳 조끼를 걸치고 마네의 화실로 왔습니다. 마네는 대리석으로 카운터를 만들고 그녀에게 카운터 뒤에 서서 포즈를 취하게 했습니다. 마네는 술집의 세 카운터 가운데 하나를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꽃과 술병들은 마네에 의해 연출되었습니다. 마네는 그녀로 하여금 웨이트레스에게 어울리는 화장을 하게 했으며, 적당한 헤어스타일, 귀거리, 목걸이를 하게 해서 중산층이나 노동자 출신으로 보이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마네는 쉬종의 가슴에 작은 꽃다발을 달게 하고 관람자를 향해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쉬종의 멍한 시선과 꽃다발이 심한 대조를 이룹니다. 쉬종 앞에 두 송이 장미가 유리잔 안에 있는데, 장미는 고대에 비너스에게 헌화한 꽃이라서 술집의 웨이트레스를 현대판 비너스에 비유한 듯한 인상을 줍니다. 흰 장미는 순결을 상징하고, 핑크 장미는 신성한 사랑을 상징하며, 꽃병은 순결을 상징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모파상은 『벨 아미』에서 이 술집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습니다.
“분칠을 덮어쓴 한물간 여인들이 홀 주위의 카운터에 우두커니 서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바로 술과 사랑의 상인이었다.”
올랭피아의 차세대라 할 수 있는 금발의 쉬종 뒤에 거울이 사용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림이 관람자의 인식에 혼돈을 주는 이유는 거울이 아니라 그림 오른쪽에 나타난 쉬종의 뒷모습과 모자를 쓴 남자의 모습입니다. 거울이 쉬종의 등 뒤에 가로로 길게 부착되어 있으므로 거울에 반사된 모습을 통해 관람자는 카페 내부의 장면을 볼 수 있지만, 병렬된 그녀의 뒷모습은 거울에 반사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뒷모습은 또 다른 여인의 모습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림의 구성상 뒷모습은 또 다른 여인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모자를 쓴 남자 모델은 실재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거울에 반사된 모습처럼 보이며, 두 사람의 위치를 설명해줄 만한 거울이 그곳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인식으로는 이 그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네는 불가해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우리의 인식세계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회화에서는 이 같은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마네가 살던 당대 파리의 삶을 기념비적으로 그렸다는 의의를 지닙니다. 그는 이 작품에 모든 기교와 폭넓은 주제 그리고 마지막 열정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모자를 쓴 남자는 앙리 뒤프레이이며, 거울에 반사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마네의 친구들이 있는데, 화면 왼쪽 끝에 모자를 쓴 남자는 화가 가스통 라투세이고, 그 옆에 흰 옷을 입은 여인 메리 로랑과 잔 드 마르시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리고 그림 윗 왼쪽 끝머리를 자세히 보면 공중에서 스커스하며 그네를 타는 한 여인의 발목이 보입니다. 이 작품이 1882년 살롱에서 소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는데, 도저히 인식될 수 없는 세계가 실재처럼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마네의 인생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과 기념비적 해석은 항상 관람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제공했습니다. 이 그림은 구도상 잘 맞지 않다고 늘 논란이 되지만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가이 이러한 구도현상을 만들어 낼수 있다하니... 이 명화는 고가격 그림으로 정평나 있는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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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의 명작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마네가 회저병을 앓고 있던 1882년 그린 작품으로 그는 이듬해 사망했다. |
- 배경은 비쳐진 술집 모습
- 투시법상 각도 안 맞고
- 신사는 존재하지 않아
- 실상·가상의 분열을 표현
- '보이는 자'인 종업원은
- '보는 자'인 여신으로 승화
- 매혹적 표정에 담긴 고독
- 포즈는 검은색 'A자' 형상
- 랭보의 詩에도 등장해
살롱전 심사에서 낙선함으로써 인상파의 길을 열었던 마네가 1882년 마지막으로 살롱에 출품했던 그림 속으로 이제 우리는 들어가자.
한 여자가 화면 가운데 서 있다. 불빛 속에 어리는 푸른 그늘처럼, 소란 가운데 문득 서늘한 침묵처럼. 그녀는 19세기 화려한 프랑스 파리, 보들레르가 "이곳은 모든 기상천외의 일들이 꽃처럼 피어난다./오, 나의 고뇌의 수호신, 사탄이여"('파리의 우울')라고 외친 그곳의 밤 속에, 저 오만하고도 슬픈 근대의 불빛 아래 서 있는 것이다.
테이블과 2층 선이 만들어내는 가로선을 뚫고 수직으로 솟아오르듯, 그러나 힘겹게 그녀는 서 있다. 그녀의 얼굴을 스쳐 가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미묘한 표정들은 무엇인가? 냉소인가, 비애인가, 아니면 연민인가? 에두아르 마네(1831~1883) 최후의 명작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은 이상한 거울상을 통해 한 여자의 모순된 내면세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수수께끼가 거울 속에
원작과 다른 습작. 마네가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을 완성하기 전 그린 습작. 각도가 비틀어져 있지 않고 투시법에 정확히 맞춰져 있다. |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마네는 회저병을 앓고 있었다. 그 병은 1년 뒤 '빛과 색채의 화가' 마네를 불빛도 색채도 사라진 영원의 세계로 데려가고 만다. 폴리-베르제르는 카페이자 카바레이며 서커스 공연장이었다. 만년에 마네는 자주 이곳 한 구석에서 스케치하곤 했다. 마네는 의식하지 못했을까, 그가 창조한 이미지가 그의 삶이 다한 다음에도 자신을 위반하면서 기이한 모순 속을 떠돌게 될 것을? 아니, 그가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던진 것이었을까? 배경에 거울을 배치했을 때 말이다.
화면에서 서 있는 여자의 배경은 모두 거울상이다. 눈앞에 있을 실제 술집 광경과 이를 반영하는 거울상 사이에 여자는 서 있다. 화면에는 수많은 인물(거울상)이 보이지만, 실제 그녀는 화면 속에 혼자다. 군상 속의 적막, 여기는 소란의 중심이면서 밑 없는 고요다. 실상과 가상 사이에 혼자 선 그녀는 그 자신이 또한 실상이면서 가상이다.
거울에는 그녀 뒷모습이 나타나는데 투시법상의 각도와 전혀 맞지 않는 위치에 있다. 더구나 그녀와 함께 거울에 나타난 신사는 실제 그녀 앞에 그녀를 반쯤 가리고 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사는 거울에만 있고 현실에는 부재한다. 화가의 실수가 아니다.
이 그림을 위한 습작(오른쪽 작은 그림 참조)을 보면 투시법에 정확히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이건 화가가 우리에게 던진 수수께끼임에 틀림없다. 비틀린 각도와 실체 없는 신사 때문에 그녀의 정면(실상)과 뒷면(가상)은 통합되지 못하고 분열한다. 가상과 실상이 분열하면서도 공존하는 공간, 그 기이한 공간의 여자를 마네는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거울의 풍경은 또한 그녀가 술집의 모든 사람에게 보이는 위치에 있으면서 동시에 모두를 보는 위치에 있음을 알려준다. 그녀가 모두에게 보이는 위치에 있을 때 그녀는 어김없이 화려한 극장식 술집의 여급이다. 그리하여 초점을 잃은 눈가에는 나른한 유혹과 쓸쓸한 그늘이 서린다. 그녀의 검은 리본 목걸이와 가슴의 꽃 장식에도 화려하면서도 우울한 파리의 밤이 스멀거린다. 잠깐이라도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라.
그 잠깐 사이에도 왠지 쓸쓸한 매혹과 알 수 없는 비애감이 당신의 등을 서늘하게 스쳐 갈 것이다. 그녀는 19세기 화려한 밤의 상품으로 거기 진열돼 있는 것이다.
진열대에 있는 과일과 술병들이 만들어낼 갖가지 색채의 헛된 열정은 불빛이 꺼진 뒤, 이 도시 골목길을 또한 얼마나 스산하게 할 것인가?
■랭보 시와 만나는 이 그림
'시선은 지배'라고 사르트르가 말했던가. 이미지의 세계에서도 보는 자는 보이는 자를 지배한다. 그녀가 보이는 존재에서 보는 자로 전환될 때, 문득 그녀는 화면을 지배하면서 여신으로 솟아오른다. 거울에 반영된 술집의 풍경은 그녀의 시선이 포획한 우주이다. 그녀 앞에는 장미 두 송이가 유리잔에 꽂혀 있다. 장미는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바쳤던 꽃이었으니, 이제 풍성한 테이블은 여신을 위한 성스러운 제단이며, 그녀 얼굴에 어리는 비애는 유럽의 저무는 밤에 대한 여신의 연민이 된다. 여신은 한 시대를 연민하는 것이다.
보이는 자이면서 보는 자인 그녀는 여급이자 성스러운 여신이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이 이중성은 여성을 타락한 이브이면서 동시에 성스러운 마리아로 보았던 중세 이중성의 근대적 버전인 셈이다.
모델의 이름은 실제 폴리-베르제르 술집의 여급인 쉬종이다. 그녀의 포즈는 화가에 의해 연출된 것이겠지만, 계획된 연출 속에도 알 수 없는 우연은 스며든다. 그녀의 자세는 두 팔과 검정 드레스의 파인 가슴 선에 의해 우연히(?) 알파벳 A 형상을 이룬다. 우연이란 얼마나 공교로운 것인가. 검은 옷의 A, 그것을 우리는 랭보의 '모음들'이라는 괴이한 시에서 당혹스럽게 만난다.
검은 A, 흰 E, 붉은 I, 초록 U, 푸른 O. 모음들,
내 얼마 후 너희들의 은밀한 탄생을 말하리라.
아(A), 지독한 악취 주변을 윙윙거리며
번쩍이는 파리 떼 털들로 뒤덮인 검은 코르셋, 또는 어둠의 만(灣).
여신이 되기 위해 그녀는 우선 타락한 세상 속에서 악취 나는 "검은 A" "검은 코르셋"의 요화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말하지 않던가,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황지우)고. 그리하여 여급과 여신은 아파하는 하나의 몸이 된다. 이브와 마리아는 본래 한 몸인 것이다.
그녀의 배경 전면의 거울상은 그림 전체에 스민 모호한 푸른 얼룩처럼, 그녀를 둘러싼 삶이 모두 허상임을 말하는 것일까? 왼쪽 상단, 초록색 신발을 신은 채 허공에 걸려 있는 두 다리는 지금 서커스가 공연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왠지 허공에 걸린 허상의 삶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생명력, 무궁한 생명력
인도 신화는 이 세상이 모두 비슈누 신의 꿈이라 한다. 비슈누가 눈을 뜨면 세상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거울상들도 그녀의 슬프고도 고단한 눈이 감기면 홀연히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그녀는 지금 화려하고 소란한 근대적 삶, 그 그늘의 어두운 허무를 힘겹게 눈 뜨고 견디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브도 아니고 마리아도 아니다. 바로 근대라는 척박한 시대를 견디어 가야했던 '여자'라는 여리고도 모진 생명력이다.
동아시아의 현자 노자(老子)는 이 생명력의 근원을 '골짜기의 신'이라고 했다. 노자는 원초적인 페미니스트이다.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것을 검은 암컷이라고 한다(谷神不死, 是謂玄牝)." '골짜기의 신' '검은 암컷'은 여성성이 가진 무궁한 생명력의 은유다. 랭보의 상상계 속에 떠도는 "어둠의 만" 또한 그 검은 암컷이 아닐까. 불멸하는 검은 암컷! 검은 A! 이 '골짜기 신'의 이미지는 남자의 역사를 통해 끊없이 은폐되고 왜곡되면서도, 그러나 끈질기게 되살아난다.
/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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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런던의 코틀드 갤러리에서 가장 인기있는 그림입니다
마네가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데 한번 보자구요.
화가들은 그림 귀퉁이의 조그만것도 많은 신경을 써서 그려넣습니다
여기서도 뒷배경에 어른거리게 비치고 있는 전등을 통해서 여인 바로 뒤에 거울이 있다는 것을 표현했구요
왼쪽 아랫쪽에 자세히 보시면 사람들이 있는것으로 이층 술집이란것을 알게 해주죠
왼쪽 윗 구석에 보시면 사람의 발이 보일거에요 그리고 복장과 뭔가를 밝고 서있는것으로 보아 서커스 그네 같죠?
결국 이그림은 서커스 공연을 하는 2층 술집의 커다란 거울이 걸려있는 바에서 한 여인이 앞을 바라보고 장면입니다
오른쪽 위를 보시면 한 남자가 여인에게 말을 걸고 있네요.
그것으로 보아 여인은 그냥 앞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얘기하는 중이었구요.
그리고 하얀 천이 깔려있는 탁자위에 술과 꽃 그리고 과일이 올려져 있네요
머리를 말아올린듯 보이는 앞을 보는 여인은 뭔가 대답을 하기 직전에 사진에 찍힌듯한 화면입니다.
어쩌면 여인이 무슨 대답을 할지 망설이는 잠시를 스샷한 멍때리는 굴욕샷 일수도 있겠죠
이런 상황을 작가는 관람자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부터는 그림을 보는 관람자로서의 저의 의견입니다
신고전주의 그림과 다르게 뒷 거울에 비춰지는 사람들은 대충 뭉게서 표현했구요.
테이블의 하얀색은 여러색을 섞어표현한것이 인상주의 색채가 분명해 보입니다.
뒷 배경의 여인들은 화려하게 차려입고 주변은 굉장히 소란스러워 보입니다
그 와중에 멍때리는 듯한 표정의 여인은 고요함을 나타냅니다.
이래서 군중속의 고독을 표현했다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도시에서의 고독을 표현한 대표적인 화가는 미국의 에드워드 호퍼가 있죠.
아마도 그 역시 마네에게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겠죠.
술과 같이 진열된 것처럼 보이는 여인은 실제 폴리 베르제르의 여급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쉬종이라고 하고 마네의 부탁으로 화실에 와서 모델을 섰다고 하죠
당시엔 상당수의 젊은 여인들은 매춘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여인 또한 상품처럼 진열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유리병속의 장미로 마네는 또 장난을 쳐봅니다
신고전주의 그림에서 여인에게 장미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상징합니다
잘록한 허리, 풍만한 가슴, 가슴에 꽃장식을 한 아름다운여인(그러나 몸파는여인)을 아프로디테에 비교합니다
또한 활짝 피어있는 꽃, 싱싱한 과일, 젊은 여인을 보면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바니타스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가장 아름다울때를 보여주며 항상 죽음을 기억하고 삶에 겸손하라는 바니타스라는 주제를 다룬 정물화죠.
하얀장미는 순결을 뜻하고 핑크장미는 신성한 사랑을 뜻하는 상징입니다
술집여급에게 이런상징은....^^ 이렇게 마네는 묘하게 뒤틀고 있죠.
마네는 또한 검정색을 잘쓰기로 유명합니다
보통 인상파들은 검은색은 잘 안쓰거든요.
빛을 통한 화려한 색을 섞어 어둡게 만들긴 해도 검정색은 좀 꺼려합니다.
하지만 마네는 검정색을 굉장히 세련되게 만들고있습니다
모던한 검정.. 마네로부터 제대로 나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린 사람이 마네자나요...
유리에 반사된 그림을 생각해보면 여러 그림이 떠오르지만 그중에 유명한그림이
북유럽 르네상스를 주도한 얀 반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 있겠고
스페인의 대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라스메니나스가 있겠군요.
하지만 전 이그림을 본 순간 떠올린 그림이 갈라를 그리고 있는 달리 그림입니다
정확한 제목은 <실제 거울에 반사된 여섯개의 실제 각막으로 뒤로부터 영원성이 부연된 갈라를 그리고 있는 달리> 라고 하죠
이렇듯 거울은 옛날부터 내려오던 그림의 소재입니다.
여러가지 의미와 상징으로 쓰이는 거울을 통한 그림인것으로 보아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있겠네요
그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울에만 등장합니다
거울 밖은 현실이고 일에 지쳐 우울한 여인이 있습니다 거울속은 화려하고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실제와 이상의 경계라고나 할까요. 그냥 그렇다구요~^^
가장 논란이 되는 거울에 비춰진 뒷모습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누구나 아시겠지만 거울에 비친 여인이 남자와 이야기 하려면 그림에 남자의 뒷모습이 나와야겠죠
아니면 여인이 옆모습으로 보여야 그나마 납득이 될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을 정면으로 잡고 그러면 반사되는 뒷모습은 거의 가리겠죠?
옆에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뒷 모습은 한참 시선을 비틀어 놓았습니다
실수 였을까요?
여기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제가 해석한다면 시선의 분할입니다
정면에서 본 여인과 옆에서 본 여인을 한 화면에 그린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세잔은 영향을 받아 정물화를 그렇게 그리고
그 영향을 받아 피카소가 입체파를 탄생시킨것이 아닐까 하는것이 저의 상상입니다.
마네가 몇년만 더 살았어도 피카소는 세잔의 영향을 받은것이 아니라 마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을까요?
마네는 이야기합니다
" 나는 내가 본것을 그리며 다른사람이 보기에 좋아보이는것을 그리지않는다.
나는 거기에 있는것을 그릴 뿐 있지도 않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 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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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인 폴리베르제르는 19세기 말 유명했던 파리의 카페로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각종 사회계층의 사람들은 카페에 모여 먹고 마시고 즐겼는데
카페는 타인을 보는 동시에 그들에게 보여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감상자의 눈과 상상력이 잠시도 한 눈 팔수 없는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인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전성기 마네의 회화에서 나타났던 전형적인 화면 배치와 구성이다.
한가운데 있는 여자 바텐더는 쉬잔은 생각에 잠겨 있다.
화면 왼편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으며,
오른편에는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쉬잔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 뒷모습만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그림은 쉬잔의 몽상인듯 보면 볼 수록 더욱 매력적이다
마네는 자신에게 친숙한 공간을 그렸다.
마네는 이곳을 자기집처럼 편안하게 여겼으며, 느긋하고 한가한 시골이나 전원도시보다
대도시에서 느껴지는 혼잡함과 거친 주변인의 삶을 더 좋아했다.
각계급의 칵테일
미네는 보통 자신의 작품에서 원색적인 상징을 피하고 대신 사실적인 방식으로 근대 생활방식을 묘사하고자했다. 그러나 이 술병들은 중요한 의미의 뉘앙스를 함축하고 있다. 부유한 상류층의 술이었던 삼페인이 잉글리쉬바스 맥주 바로 옆에 놓여 있다.
빨간 삼각형 라벨로 금방 알아 볼 수 있는 바스 맥주는 하층 계급들이 주로 마시는 술이였다. 카페의 사회역시 정장 차림의 신사들, 노동자들, 고급창녀들이 뒤섞여 환담을 나누는 장이였다.
즙이 많은 과일
유리잔에 꽂여있는 꽃과 볼에 담겨있는 과일은 정물은 금방이라도 물감이 흘러내릴 것처럼 풍부한 색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네는 직접 사물을 관찰하여 그린 정물화를 많이 남겼다. 한쌍의 장미는 쉬잔의 옷에 꽃힌 꽃들을 강조.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마지막 걸작이 된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는 마네 예술의 특성이 잘 나타난다. 폴리베르제르 술집의 종업원이 마네의 부탁으로 마네의 화실로 와서 모델을 섰다고 한다. 뒤의 거울을 통해 드러났듯이 그녀는 어떤 남자 손님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의 말을 듣는 것 같지는 않다. 그녀는 분주하고 복잡한 술집 내부의 난산한 풍경과 함께 관람자에게 술집 종업원으로서의 아무 의미도 없는 고달픈 삶을 무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듯하다. 마네는 그러한 그녀 앞에 장미 두 송이를 헌화하여 그녀를 현대의 비너스로 격상시키고 있다. 흰 장미는 순결을, 붉은 장미는 사랑을 상징한다는 전통적인 도상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주위에 가득 널려 있는 술병들 사이에 비너스에게 헌납된 장미꽃은 묘한 비애를 느끼게 한다.
쿠르베가 만국박람회에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인 〈화가의 화실〉이 낙선하자 자비를 들여 박람회장 근처에 자신만의 개인전을 열고 그 카달로그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더 이상 모방하지 않을 것이다……생동감 있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모더니즘은 '예술 자체의 예술'을 표방한 쿠르베의 아방가르드 정신 선언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선언이 성문화되기 이전에 이미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798~1863)에 의하여 모더니즘 화풍은 시작 되었다. 화가들의 이러한 모더니즘에의 인식은 문학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예술을 위한 예술론」보다 오히려 빨랐다. 마네도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나는 내가 본 것을 그리며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은 것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거기 있는 것을 그릴뿐이며, 있지도 않는 것을 그리지는 않는다." 마네는 본 것을 그렸다. 그러나 그는 눈으로만 대상을 보지 않았다. 마음의 눈으로 대상의 깊은 내면을 보았다.
주제 그림인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 차용된 거울 효과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림 오른쪽 술집 여종업원의 뒷모습과 신사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모습일진데, 그녀의 정면과, 그녀의 뒷모습과, 그녀 앞에 앉은 것으로 예상되는 남자가 다 일직선상에 있게 되어 모두 가려지게 될 것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필자는 불가능한 공간 설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뒤에 있는 거울이 술집 벽에 부착된 대형 거울이어서 술집 내부가 배경화면처럼 연출되었고,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신사와 마주보는 광경을 화가는 약간 빗겨 오른쪽에서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대상 요소들의 배치와 화가의 시선' 그림 참조). 단지 여자가 거울 면에 평행으로 서있지 않고 화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만 고려하면 된다. 그래도 여자 앞에 놓인 탁자가 사선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남긴 한다. 미술은 과학이 아니니까, 이 정도에서 화가의 재량이 들어갔다고 생각하자.
멍하니 바라보는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이 그림은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그림같죠?
코톨드 갤러리의 가장 큰 전시실에 걸린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인데요~
다른 사람도 그 자리에 서서 그림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이 그림을 응시하고 있답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그림과의 대화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지금 그림 속의 인물과 대화하고 있는 셈이죠!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 똑바로 서 있는 검은 옷의 여인이 우리의 시선을
묵묵히 마주 바라봐요~ 그녀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어요!
그녀는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하지만 무표정 어딘가에는
매일같이 노동의 오는 고단함이 묻어나오기도 하죠!
이 그림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는 카페,여자,밤 검은색 등 화가 마네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모던한 요소들이 총집결해 있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출처] 멍하니 바라보는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작성자 도루뭉이
마네는 특히 내면을 표현하는데 탁월했다. 마네가 내면을 표현하는 힘을 잘 나타내 주는 또 하나의 걸작을 감상해 보자. 이 그림의 제목이기도 한 그림의 모델 베르테 모리소(Berthe Morisot, 1841~1895)도 화가이다. 언니 에드마(Edma)와 함께 1861년부터 유명한 풍경화가인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에게 6년간이나 사사 받았다. 모리소는 1868년 팡탱 라투르(Fantin-Latour)의 소개로 마네를 만나 이후로 예술혼을 서로 주고받았으며, 그의 모델을 자주 서 주었다. 마네는 그녀를 모델로 〈발코니〉, 〈휴식〉, 〈베르테 모리소〉 등의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1874년 마네 동생 외젠(Eugene Manet)과 결혼하여 마네의 집안사람이 되었다. 1892년 남편이 죽고 난 후 자신도 병들어 1895년 3월 2일 파리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자의식과 자존감이 남달랐던 화가 베르테는 모델을 설 때도 자신 만의 개성을 강하게 표현하였으며 화가의 주문에 따라 수동적인 포즈를 취하지 않았다. 마네도 그녀의 이러한 포즈를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매우 만족해했다. 〈베르테 모리소〉를 통해서 우리는 마네가 표현한 베르테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자신감을 볼 수 있다.
배경과 모자와 옷은 최대한 단순하게 붓질만 남겼으며 명암이 확연히 양분되게 그린 얼굴의 윤곽이 그녀의 미모와 어울린 그녀만의 개성을 잘 나타낸다. 확실히 이전의 인물화(초상화)들과는 다르다. 붓질이 거칠고 과감한 생략이 있지만 오히려 모델의 인격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더욱 정교하고 사실적인 인물들은 그냥 화면 속의 인물이며 관람하고 있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마네의 이 그림을 보면 그녀가 옆집에서 만났던 이웃 같기도 하고 그녀의 사생활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모델인 베르테의 모습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보는 것 같지 않고 그녀의 정신을 만나는 것 같은데, 이것이 모델의 내면을 그리는 마네의 힘이다.
마네는 스페인의 대가들 중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vá Velazquez, 1599~1660)와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1748~1828)를 대단히 존경하였다. 특히 벨라스케스를 화가 중의 화가라고 생각하며 그의 그림을 수없이 모사하며 연구하였다. 그의 초기 인물화 중 가장 걸작에 속하는 〈피리 부는 소년〉은 벨라스케스의 영향이 많이 나타난 그림이다. 벨라스케스의 〈메니프〉나 〈바야돌리드의 파블리오스〉에서 배경을 약화시키거나 거의 없애면 중심인물이 부각된다는 점을 배웠다. 그 당시 파리 화단의 유행이었던 일본화의 영향도 보이는데 단순한 색채와 강렬한 외곽선으로 인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소년 바지의 외곽선은 동양의 서예와 같은 일획의 선으로 강한 효과를 성공시키고 있다. 앞선 대가들의 화풍을 자기 것으로 습득한 마네의 열린 마음과 충분히 훈련된 기교에 시대를 앞선 정신이 더하여져 탄생한 걸작이다.
마네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을 강하게 나타내며 한 화면 안에 여럿이 등장하더라도 서로간의 관계성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관계성은 오히려 마네가 진정 원했던 모델 각자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로 마네의 모델들은 화면 속에서 무표정하며 정지된 자세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내면의 전달은 더욱 효과적으로 성취된다. 마네의 〈풀밭에서의 점심〉도 네 사람의 인물들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 각자 자기의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오른쪽 남자만이 다른 인물들에게 말하는 것 같은데 나머지 사람들은 전혀 그의 말을 듣는 것 같지 않다. 그 둘은 관객을 빤히 쳐다보며 무표정 속에서 서로의 내면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은 〈피리 부는 소년〉도 마찬가지다. 피리를 부는 것 같지 않다. 단지 피리를 입에 대고 관객을 쳐다보는데 오히려 그 소년의 순수한 마음과 성스러움이 돋보이게 표현되었다.
이 소년 모델은 마네의 아들인 레옹이다.
[출처]에두아르 마네 "폴리 베르제르 바"|작성자아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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