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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계관시인 - 테니슨
2017년 04월 18일 21시 48분  조회:4045  추천:0  작성자: 죽림
 
출생 1809. 8. 6, 잉글랜드 링컨셔 서머스비
사망 1892. 10. 6, 서리 알드워스
국적 영국

요약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 계관시인으로, 대표작 <인 메모리엄>을 펴냈다. 아버지의 광범위한 문학교육 덕분에 10대가 되기 전에 포프, 스콧, 밀턴의 문체대로 글을 썼다. 케임브리지 재학시절 <팀벅투>라는 시를 발표하여 총장상을 받는 등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또한 그 시기 그의 생애에서 가장 깊이있는 교제가 된 아서 핼럼과 사귀게 되었다. 그러나 1833년 핼럼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동안 절망적인 시기를 보냈다. 이 시기 <율리시스>, <고행자 성 시미온>의 초판과 세상을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는 시들을 썼다. 1850년 수년에 걸쳐 써오던 핼럼에 대한 애도시들을 담은 대표작 <인 메모리엄>을 출판하여 큰 성공을 얻으며 계관시인으로 추천받았다. 그 후 시집 <모드> 등을 발표하여 당대 최고 시인으로 자리를 굳혔다.

개요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초기생애와 작품

테니슨은 오랜 링컨셔 가문에서 12명의 자녀 중 4번째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교구목사였다.

그의 두 형인 프레더릭·찰스와 함께 테니슨은 1815년 라우스 그래머 스쿨에 입학했지만 그 학교를 좋아하지 않아 1820년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의 아버지는 재정형편이 어려웠으나 그에게 광범위한 문학교육을 시켰다. 테니슨은 조숙해서 10대가 되기 전에 포프·스콧·밀턴의 문체대로 글을 썼다. 1930년에 사후출간된 미발간 시집 〈악마와 숙녀 The Devil and the Lady〉는 젊은시절의 작품으로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적 운문에 대한 뛰어난 이해력을 보여주고 있다.

테니슨은 바이런의 영향력을 가장 많이 받아 1824년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실의에 빠졌으며 "바이런이 죽었다"고 돌에 새겼다. 한편 같은 해 테니슨의 아버지는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술마시는 것에서 위안을 구했다. 이런 가정적 불행으로 낙담했으나 테니슨은 계속 프레더릭·찰스와 함께 〈두 형제 시집 Poems by Two Brothers〉(1826, 출판 1827)을 썼다. 1827년 테니슨과 찰스는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프레더릭과 합류했다. 그곳에서 테니슨은 역사가 헨리 핼럼의 천재적인 아들 아서 핼럼과 사귀게 되었다.

이것은 테니슨의 생애에서 가장 깊이 있는 교제였다. 두 사람은 열렬한 지적 흥미를 가진 학부생 모임인 사도회의 일원이 되었다. 시인으로서 테니슨의 명성은 케임브리지에서 점차 커져갔다. 1829년 〈팀벅투 Timbuctoo〉라는 시로 총장 상을 받았고, 1830년 〈서정시집 Poems, Chiefly Lyrical〉이 출간되었다. 같은 해 테니슨·핼럼과 다른 사도회원 등이 페르디난드 7세에 대항하는 혁명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스페인으로 떠났으나 혁명은 실패했다.

그러는 동안 핼럼은 테니슨의 여동생 에밀리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으나, 그녀의 아버지는 1년 동안 편지 왕래조차 금지했다.

1831년 테니슨의 아버지가 죽었으며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부채를 알아내면서 테니슨은 더욱 비참해졌다. 그는 학위를 받지 못한 채 케임브리지를 떠나야 했고, 그의 할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경제적인 배려를 해주었다. 같은 해에 핼럼은 〈잉글리시맨스 매거진 Englishman's Magazine〉에 〈서정시집〉에 대한 찬사를 게재했다.

핼럼은 1832년 에밀리의 구혼자로 인정받고 서머스비로 갔다. 1832년 테니슨은 〈시름을 잊은 사람들 The Lotos-Eaters〉·〈예술의 궁전 The Palace of Art〉·〈샬럿의 처녀 The Lady of Shalott〉 등을 포함하는 또다른 시집을 출간했다. 이 시집에 실린 시 중에 〈블랙우즈 매거진 Blackwood's Magazine〉을 통해 〈서정시집〉을 공격했던 스코틀랜드의 작가 존 윌슨을 크리스토퍼 노스라는 가명으로 풍자한 단시가 있다.

테니슨의 이러한 공격은 윌슨이 새 시집에 대해 〈쿼털리 리뷰 Quarterly Review〉에 혹평을 싣도록 만들었다. 혹평은 테니슨을 절망시켰으나 그는 계속 옛 시를 다듬고 새로운 시를 썼다.

1833년 가족들이 핼럼의 약혼을 인정했으나 9월에 빈을 방문중이던 핼럼이 갑자기 죽었다. 테니슨에게 그 충격은 상당히 컸으며 한동안 절망적인 시기가 계속되었다. 그의 형제 중 에드워드·찰스·셉티머스 등이 정신질환을 겪었고, 자신의 시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의 슬픔을 더욱 가중시켰다.

연구에 의하면 로자 베링에 대한 청혼이 거절당했고, 소피 론스리에 대한 애착으로 심리적인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그의 가장 특징적인 시 〈두 목소리 The Two Voices〉(원제는 〈자살에 대한 명상 Thoughts of a Suicide〉)·〈율리시스 Ulysses〉·〈고행자 성 시미온 St. Simeon Stylites〉·〈아서 왕의 죽음 Morte d'Arthur〉의 초판 등을 썼다. 또한 핼럼의 죽음을 기념하는 〈인 메모리엄 In Memoriam〉의 구성부분이 된 시 몇 편과 나중에 〈모드 Maud〉로 발전된 서정시들을 쓴 것도 이 시기였다.

1836년 5월 그의 형 찰스는 혼캐슬의 루이자 셀우드와 결혼했고, 결혼식장에서 테니슨은 그녀의 여동생 에밀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에밀리의 아버지는 그의 방랑벽, 술과 담배 중독, 진보적인 종교관 때문에 테니슨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1840년에는 편지 왕래가 금지되었다. 그동안 테니슨가(家)는 서머스비를 떠나 런던 근처에서 다소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테니슨이 정치가 윌리엄 유어트 글래드스턴,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 시인 월터 새비지 랜더 등의 많은 유명인사들과 교제했던 것도 이 시기였다. 1840년 테니슨은 유산을 벌목사업에 투자했으나 실패하고, 재정적인 곤경에 빠졌다.

악화된 건강과 정신적 불안정으로 그는 거의 파국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당시 유행했던 '수료법'(水療法)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주요문학작품

1842년 그는 〈시집 Poems〉(2권)을 출간했는데, 한 권은 1830, 1832년 판의 개정선집이고 다른 한 권은 새 시집이었다.

새로운 시로는 〈아서 왕의 죽음〉·〈두 목소리〉·〈록슬리 홀 Locksley Hall〉·〈죄의 모습 The Vision of Sin〉 등과 〈5월의 여왕 The May Queen〉·〈클라라 베르 드 베르 Lady Clara Vere de Vere〉·〈벌리 경 The Lord of Burleigh〉 등 독특한 순진성을 드러내는 시가 있다. 전반적으로 새 시집은 평판이 좋지 못했다. 그러나 이무렵 총리였던 로버트 필이 그의 경제적 근심을 덜어주었다.

1847년 그는 최초의 장시이며 독특한 반(反)여성주의적 몽상시 〈공주 The Princess〉를 출간했다.

1850년은 그의 전환기였다. 테니슨은 에밀리 셀우드와 다시 편지 왕래를 시작했고, 약혼을 인정받은 후 결혼했다. 그동안 에드워드 모손은 테니슨이 수년에 걸쳐 써오고 있던 핼럼에 대한 애도시를 출판하라고 제안했다. 처음 그 시들은 〈인 메모리엄〉이라는 제목을 붙여 익명으로 출판되었으나, 서평자나 대중으로부터 큰 성공을 얻게 되어, 빅토리아 여왕과도 우정을 나누고 같은 해 계관시인으로 추천받았다.

결혼 후 테니슨의 생활은 좀더 안정되고 외면적으로는 평온해졌으며 두 아들 핼럼(1852~1928)과 라이오넬(1854~86)을 두었다. 1853년 테니슨가가 와이트 섬 화링호드에 집을 구하면서 방황과 불안정의 시기는 끝났다. 테니슨은 여생의 대부분을 그곳과 1868년에 여름별장으로 지었던 서리 주 할스미어 근처에 있는 앨드워스에서 보냈다.

처음에는 비평가들이 실망했다고 평하기도 했던 웰링턴의 죽음에 대한 송가(1852)와, 처음에는 신문에 게재되고 나중에는 〈모드〉 시집으로 나온 발라클라바의 경비병 돌격에 대한 유명한 시(1855)로 국가적인 시인으로서의 지위가 확고해졌다. 〈모드〉는 '단일극'으로서 독자들로부터 상당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테니슨의 숭배자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주인공의 병적인 정신상태·히스테리·호전성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모드〉는 테니슨이 가장 애호했던 작품이었다. 그가 오랫동안 구상했던 아서 왕 작품이 〈왕에 대한 찬가 Idylls of the King〉(1859)로 발간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테니슨은 대중의 인기를 혐오했으나 대중적인 명성을 누렸다.

1864년에 나온 〈이녹 아든 Enoch Arden〉으로 그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이 시는 이녹이 사랑하는 아내 애니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 숭고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새로운 아서 왕 전설류의 〈목가〉가 1869년 〈성배와 그외 시들 The Holy Grail, and Other Poems〉로 출판되었다.

1874년 테니슨은 시극을 써보려고 생각했다.

1875년 〈메리 여왕 Queen Mary〉이 나왔고 요약판으로 1876년 라이시움에서 상연되었다. 뒤이어 〈해럴드 Harold〉(1876, 공연 1877)·〈베케트 Becket〉(1884)와 '시골 비극'을 그린 〈5월의 약속 The Promise of May〉을 썼으며, 1882년 11월 글로브에서 〈5월의 약속〉 공연은 실패로 끝났다. 그의 유일한 산문 작품인 이 극은 당대의 종교적·도덕적·정치적 성향에 대한 테니슨의 점증하는 낙담과 분노를 보여준다. 그는 이미 〈나인틴스 센추리 The Nineteenth Century〉(1881. 11)에 〈낙담 Despair〉이라는 시를 발표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 시로 인해 스윈번의 모방시와 수많은 논설·강의·강론이 나왔다. 후기의 테니슨의 신념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입장은 〈티레시아스 외(外) Tiresias and Other Poems〉(1885)에 출간된 〈옛 현인 The Ancient Sage〉에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시인은 전생과 후생에 대한 암시적인 느낌을 기록하고 있다.

1884년 테니슨은 어느 정도 망설인 끝에 귀족작위를 받아들였다.

1886년 주로 근대의 퇴폐에 대한 힐책으로 이루어져 있고, 초기시에서 보여주었던 필연적인 인간 진보에 대한 믿음을 철회했던 〈60년 후의 록슬리 홀 Locksley Hall Sixty Years After〉이 들어 있는 새 시집을 출간했다. 그당시 유행했던 진보적 사상에 대한 도전으로 글래드스턴은 1887년 1월 〈나인틴스 센추리〉에 반박하는 글을 썼다. 1889년 테니슨은 와이트 섬으로 가는 도중 〈장벽을 넘어 Crossing the Bar〉라는 유명한 단시를 썼다.

같은 해 그는 〈드미터 외 Demeter and Other Poems〉를 출간했는데, 그중에는 〈봄의 경과 The Progress of Spring〉의 도입부로 훨씬 일찍 씌어졌고 재발견된 훌륭한 서정시 〈메리 보일에게 To Mary Boyle〉와, 그의 시작 생활의 우화적 결산인 〈멀린과 섬광 Merlin and the Gleam〉이 들어 있다. 1892년 희곡 〈포레스터스 The Foresters〉가 뉴욕 시에서 성공적으로 공연되었다. 건강이 악화되었으나 마지막 시집 〈이논의 죽음, 아크바의 꿈 외 The Death of Oenone, Akbar's Dream, and Other Poems〉의 교열을 볼 수 있었다.

평가

테니슨에 대한 현대적 평가는 〈율리시스〉의 지속적인 위대성, 서정시들의 독특한 예리함, 무엇보다도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시로서의 〈인 메모리엄〉의 지위 등을 인정하면서 시작되었다.

테니슨 작품의 현실적·희극적인 면은 현대에 와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래톱을 넘어〉나 〈담장 틈바귀에 핀 한송이 꽃 Flower in the Crannied Wall〉에서처럼 그의 위대성의 근원을 이루는, 인생의 신비에 대한 경외감은 지난 세기의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20세기의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주고 있다.

비록 테니슨의 작품들이 빅토리아 시대의 전성기보다는 덜 기억되고 있다 하더라도, 남아 있는 그의 작품들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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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Tennyson

앨프리드 테니슨

번역 : 故 장영희 교수

 

Ring Out, Wild Bells

우렁찬 종소리여 울려 펴져라

 

 

Ring out, wild bells, to the wild sky,

울러퍼져라 우렁찬 종소리, 거친 창공에

 

The flying cloud, the frosty light;

저 흐르는 구름, 차가운 빛에 울려 펴져라,

 

The year is dying in the night;

이 해는 오늘 밤 사라져 간다,

 

Ring out, wild bells, and let him die,

울려퍼져라 우렁찬 종소리, 이 해를 보내라,

 

Ring out the old, ring in the new, (......)

낡은 것 울려 보내고 새로운 것을 울려 맞아라,

 

Ring out the false, ring in the true, (......)

거짓을 울려 보내고 진실을 울려 맞아라,

 

Ring out the feud of rich and poor,

부자와 빈자의 반목을 울려 보내고

 

Ring in redress to all mankind,

만민을 위한 구제책을 울려 맞아라,

 

Ring out a slowly dying cause,

울려 보내라 서서히 죽어 가는 명분을

 

And ancient forms of party strife; (......)

그리고 케케묵은 당파 싸움을,

 

Ring out the want, the care, the sin,

울려 보내라 결핍과 근심과 죄악을,

 

The faithless coldness of the times; (......)

시대의 불신과 냉혹함을,

 

Ring in the love of truth and right,

울려 맞아라,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을

 

Ring in the common love of good,

울려 맞아라, 다 함께 선을 사랑하는 마음을.

 

 

 앨프리드 테니슨(1809 ~1892)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즈의 뒤를 이어 계관시인이 되었다.

그의 詩들은 아름다운 운율과 서정미가 있어 국내의 독자들에게도 愛頌 되었다.

 

 장영희의 열두달 英美 詩 선물 "다시 봄" 중에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모두 같은 모양입니다.
테니슨은 19세기 영국 시인이지만,
마치 
지금의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힘들고 버거운 한 해였지만,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모든 
거짓, 반목, 불신을 역사속으로 보내야겠습니다.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우리 마음에도 
종을 울려서,
진리와 정의와 
선을 사랑하는 마음을 맞아들여야겠습니다.

 

 사실 12월 31일과 1월1일은 하나도 다를게 없는 똑 같은 하루지만,
그래도 마치 이제까지의 불운과 실수, 
슬픔을 다 떨쳐 버릴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작에 가슴 설레고, 괜히 희망이 솟구 
치기도 합니다. 
1년 후 오늘, 또 다시 힘들고 버거운 해였다고 한숨 지어도 좋습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합
니다.
자꾸 스러져 가는 희망을 다잡
고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여정의 첫 발자국을 힘차게 내 딛으려고 
합니다.

 

 

모래톱을 넘어서


- 앨프리드 테니슨 -



해는 지고 저녁별 빛나는데
날 부르는 맑은 목소리
내 멀리 바다로 떠날 적에
모래톱에 슬픈 울음 없고

너무도 충만하여 소리도 거품도 일지 않는
잠자듯 흐르는 그런 조수 있었으면
끝없는 심연에서 나온 이 몸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갈 때에

황혼이 깃든 녘 저녁 종소리,
그리고 그 뒤에 짙어지는 어두움
내가 배에 오를 때
이별의 슬픔 없기를

시간과 공간의 경계 너머로
물결이 나를 멀리 실어 낸다 해도
내가 모래톱을 건너고 나면 
내 인도자의 얼굴을 대면할 수 있기를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계관시인입니다. 여기 소개하는 이 시는 테니슨의 나이 팔십 세에 지은 것으로 최후의 작품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이 시를 그의 시선 집 맨 끝에 실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봐서 그 자신도 마지막 시라고 생각한듯합니다.

그렇기에 그의 장례식에서 아내가 이 시를 낭송했겠지요. 따라서 이 시는 그의 “백조의 노래 (swan song)"라 해도 조금도 지나칠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이 시를 종종 백조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번역하기도 하는 것이요...

인간이 가장 두려워히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평온함이 묻어나는 시입니다. 강이나 바다처럼 커다란 물이 주는 이미지는 죽음과 갱생 즉 새로운 삶입니다. 고대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고대 종교 제의나 현대의 기독교에서 죄악에 물든 어제의 나는 죽고 깨끗한 영혼의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상징적 의식으로 사람을 물에 담갔다 일으키는 침례 의식을 베푸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지요.

세계 모든 신화에 나타나는, 죽은 자가 스틱스 강이나 요단 강처럼 커다란 물을 건너는 장면도, 다 그런 이유일 겝니다. 따라서 이 시의 바다는 이승 세계와 저승세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며, 모래톱 (sandbar)은 육지와 바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입니다.

이제, 자기의 죽음을 예견한 테니슨이 건너지 않으면 안 될 이 세상과 영원한 세계의 경계인 모래톱에 서서, 먼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그곳을 그리며 읊은 시입니다. 머릿속에 이 시의 장면을 하나하나 그리며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석양(sunset)이 지고 저녁별(evening star)이 뜨고 황혼(twilight)녘에 들려 오는 저녁 종소리(evening bell)는 다 죽음과 관련된 어두운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 어둠을 밝혀 주는 별 그 자체의 이미지는 '신'이라는 절대적 타자와의 대화이면서 그 신에게로 다가가는 매개체로 보입니다. 해가 지면(sunset)서 날이 어두워지듯 이제 테니슨의 인생도 황혼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 별(신)이 나타나 맑은 목소리로 그를 부릅니다. 그는 이제 신을 따라 죽음의 세계인 저 먼 바다로 항해를 시작해야만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간절히 기원합니다. 자신이 바다로 떠날 때 이별의 슬픔이 더는 없기를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죽음이라는 것이 육신의 죽음을 통해 죽음 저 너머에 있는 내생의 새로운 삶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진실로 굳건하고 경건한 믿음의 시인인 테니슨은 죽음 앞에 서서 두려움이나 이별의 눈물과 헤어짐의 서러움보다는 저녁(죽음)을 지나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그를 인도해준 인생의 길라잡이였던 신과의 만남을 그리며 오히려 황홀한 감정에 빠져드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낭만논객의 사회자인 김동건 아나운서도 황홀하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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