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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인 - 장 드 라 퐁텐
2017년 04월 24일 23시 09분  조회:5163  추천:0  작성자: 죽림

장 드 라 퐁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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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드 라 퐁텐

장 드 라 퐁텐
(Jean de La Fontaine, 1621년 7월 8일 ~ 1695년 4월 13일
프랑스의 시인이자 동화 작가이다.

생애[편집]

라 퐁텐은 1621년 7월 8일 프랑스 샹파뉴의 샤토티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연 속에서 성장하면서, 자연과 자유를 사랑하게 되었다. 후에는 고전을 연구하며 시·극·우화 등을 썼다.

판차탄트라와 같은 고대 인도 문학, 이솝, 호레이스 등에서 영감을 받아서 1668년에서 1695년까지 발표한 시문으로 된 우화집으로 유명하다. 라 퐁텐의 우화는 이솝 우화에 비해 내용 면에서 인간 세태에 대한 풍자의 강도가 세다.

루이 14세의 여섯 살 난 손자에게 헌정된 최초의 우화집인 《우화 선집》(Fables Choisies)에는 124개의 우화가 실려 있는데, 동물에 비교하여 사람의 참다운 모습을 생각케 해 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프랑스 언어의 시적 기능을 잘 살린 수작으로 꼽힌다. 오늘날에도 프랑스 지식인들은 라 퐁텐의 시구절을 즐겨 인용한다. 1995년 프랑스에서는 라 퐁텐과 우화 기념우표 시리즈를 발간한 바 있다.

한국어로는 《라 퐁텐 우화집》 또는 《라 퐁텐 그림우화》와 같은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

그의 소설로 《프시케와 큐피드의 사랑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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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621년 07월 08일
사망 1695년 04월 13일
국적 프랑스
대표작 《우화 시집》, 《콩트와 노벨》 등

17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우화 작가로 동물을 의인화하는 형식을 통해 프랑스 사회를 풍자했다.

 
장 드 라 퐁텐
장 드 라 퐁텐

라 퐁텐은 프랑스 고전주의 시대의 대표적 시인으로, 도덕적 우화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의 우화는 오늘날까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듣고 자라는 이야기들이다.

동물을 의인화하여 인간 희극을 부각시키는 우화는 라 퐁텐이 만들어 낸 장르는 아니다. 우리에게 우화로 매우 잘 알려져 있는 고대 그리스의 이솝이 대표적인 우화 작가이며, 그 밖에도 작자를 알 수 없는 많은 동서양의 민간 동화들이 우화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라 퐁텐 이전의 우화들이 교훈을 주려는 목적에서 이야기의 줄거리를 형식적으로 차용하는 데 반해, 라 퐁텐의 우화는 그가 고안한 단막 희극이라고 할 수 있다. 라 퐁텐은 고대 그리스의 이솝 이야기, 동양의 우화 등에서 차용한 동물과 고대 영웅 이야기를 기반으로, 서정시, 풍자시, 대화, 콩트 등 다양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만들면서, 독창적인 사회 비판 우화, 인간 희극을 만들어 냈다.

장 드 라 퐁텐은 1621년 7월 8일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샤토 티에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그 지역에 있는 왕실 산림의 감독관이어서, 라 퐁텐은 어린 시절 산림에서 뛰놀고 사냥을 했으며, 아늑한 시골 마을에서 한가롭게 몽상하고 독서를 하며 자랐다. 20세 때 오라토리오회 신학교에 들어가 졸업한 뒤 성직자가 되었으나 곧 그만두었다. 후에 다시 법학을 배워 고등법원 변호사가 되었으나 별다른 야망도 없고, 쾌락주의자였던 탓에 얼마 일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이후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고 같은 계층의 여성과 결혼하여 평범한 삶을 살기로 한다. 이에 26세 때 마리 에리카르와 결혼하고, 31세 때 아버지의 지위를 물려받았는데, 성격상 이마저도 부담스러웠는지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으며, 35세 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산림 감독관 일도 생계를 위해 자리를 유지하는 수준으로만 했다. 글을 쓰면서 그는 자주 파리에 가서 문인들과 교류했으며, 퓌르티에르, 샤플랭 등의 문인들과 '원탁 기사회'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37세 때 재무장관 푸케에게 장시 〈아도니스〉를 헌정하면서 그의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라 퐁텐의 쾌활하고 다소 안이한 성격이 푸케의 성격과 잘 맞았던지, 라 퐁텐은 푸케가 실각하는 1661년까지 그의 측근에서 왕실 어용 시인으로 활동했다. 푸케가 루이 14세를 화나게 하면서 실각 위기에 처했을 때 라 퐁텐은 왕에게 아량을 베풀어 용서해 달라는 〈보 성의 님프들의 비가〉를 써서 올리기도 했는데, 이 일로 루이 14세의 미움을 받아 아카데미 프랑세즈 입회를 1년간 금지당하였다.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라 퐁텐은 다소 실의에 빠졌으나 곧 새로운 후원자와 친구들이 생겼다. 이후로는 오를레앙 대공비, 드 라 사블리에르 부인, 뒤 델바르 부인 등의 후원을 받고 그들의 집에서 기거하였다. 오를레앙 대공비의 후원을 받으면서는 몰리에르, 라신 등 당대 인기 작가들과 교류했으며, 드 라 사블리에르 부인의 후원을 받을 때는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살롱 중 하나인 그녀의 살롱에서 많은 학자와 철학자, 작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드 라 사블리에르 부인의 집에서는 20년이나 기숙했는데, 이 부인은 개와 고양이 그리고 라 퐁텐과 함께가 아니면 여행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를 총애했다. 그럼에도 그는 드 라 사블리에르 부인이 죽은 뒤 델바르 부인이 자신을 후원하겠다는 전언을 보내자 시종에게 "기다리고 있었소. 지금 댁으로 가려던 참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후원자들의 호의 덕분에 라 퐁텐은 한평생을 안온하고 근심 없이, 경쾌하고 방탕한 사교계 생활을 했다.

이런 성격과 생활 방식 때문인지, 라 퐁텐이 프랑스 문학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건, 1살 연하인 몰리에르, 18세 연하인 라신이 이미 명망을 떨친 지 한참 후였다. 44세 때부터 3년에 걸쳐 운문 이야기집인 《콩트와 노벨》을 펴내면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으며, 오늘날 '라 퐁텐 우화'로 널리 알려진 우화시들은 47세 때나 되어서야 발표되기 시작했다. 《콩트와 노벨》은 이탈리아 문학, 특히 보카치오의 문학에서 각 이야기들의 재료와 형식을 빌려 온 것으로, 색을 밝히는 성직자들, 음탕한 여자들 등 당대 프랑스의 상스럽고 음탕한 이야기들을 관능적이고도 해학적인 필치로 그린 작품이다(라 퐁텐은 만년에 종교에 귀의한 뒤 이 작품의 음란함을 인정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우화 시집》은 총 12권으로 세 차례에 걸쳐 출간되었는데, 라 퐁텐은 이 작품집에서 동서양의 다양한 우화 형식에 자신만의 실험을 더해 당대 프랑스 사회를 해학과 기지, 풍부한 표현력으로 교묘하고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1692년 프랑스에서 발행된 《우화 시집》 속표지
1692년 프랑스에서 발행된 《우화 시집》 속표지
라 퐁텐이 자필로 쓴 《우화 시집》 한 페이지
라 퐁텐이 자필로 쓴 《우화 시집》 한 페이지

첫 번째 《우화 시집》 6권을 펴내고 난 이듬해에는 경쾌하고 재기 발랄한 이야기집인 《프시케와 큐피드의 사랑》을 펴냈다. 그 밖에도 성인전(聖人傳)의 이야기들을 변용한 《성(聖) 말크의 수인(囚人)의 시》, 테렌티우스를 번안한 《환관》, 시정 사건을 소재로 한 소극(笑劇) 《보리샤르의 익살꾼》, 《다프네》의 오페라 대본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들을 썼다.

라 퐁텐은 천진난만할 정도로 안이하고 태평무사한 성격으로 자유분방하게 한평생을 살았다. 작품 역시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모든 소재, 모든 분야에 대해 세간의 평판을 신경 쓰지 않고 쓰고 싶은 것을 썼다. 그렇다고 해서 게으르거나 방종한 이기주의자는 아니었으며, 상당한 학식과 약삭빠름, 재간꾼으로 위장한 음모가적 기질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귀족들을 비롯해 철학자, 문인, 학자 등 주변 많은 인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인물이었음은 틀림없다.

니콜라 랑크레, 〈벌 받는 가스콩〉
니콜라 랑크레, 〈벌 받는 가스콩〉

《우화 시집》의 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

그의 작품들은 번뜩이는 통찰력이나 작가적 고민의 흔적,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 등을 토대로 했다고는 보이지 않으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전, 특히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부터 단테, 보카치오 등에 대한 정통한 이해를 기반으로 쓰인 것이다(라 퐁텐은 후일 《위에게 주는 서간집》에서 고전에 대한 존중을 역설하기도 한다). 또한 라 퐁텐의 작품들은 매우 사실적이며, 해학 뒤에 날카로운 비판이 서려 있다. 이는 그가 겉모습처럼 낭만주의자, 낙천주의자만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라 퐁텐은 성격상 문제인지 열정적인 개혁가도 되지 못했다.

라 퐁텐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문학적 유산들을 기반으로 당대 프랑스 사회를 풍자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도덕률을 전파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때문에 《우화 시집》은 각 편이 형식적으로 불완전하고 가벼운 소극으로 보이지만, 그 뒤에는 당대 프랑스인에게 필요한 보편적인 도덕률과 인생관이 깔려 있다. 이런 인생의 진실에 대한 라 퐁텐의 통찰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내용적 측면만이 아니라 구어체의 사용, 풍부한 언어 표현력,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변화무쌍한 자유시 형식으로 이후의 프랑스 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Daum백과] 장 드 라 퐁텐 – 문학사를 움직인 100인, 이한이,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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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프랑스의 시인· 대표적 우화작가.
대표작은《우화시집》.
시구의 거의 완벽한 음악성, 동물을 의인화하여 인간희극을 부각시키는 절묘성 등이 높이 평가된다.

샹파뉴 지방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1641년 오라토리오회(會)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그만두고 법률을 공부하면서 F.모크루아, 퓌르티에르 등의 문인과 교유하였다. 1658년 재무장관 푸케에게 장시(長詩) 《아도니스 Adonis》를 바치기 시작하여 1661년 그가 실각할 때까지 어용시인으로서 수많은 소시편(小詩篇)을 바쳤다. 푸케 실각 후에는 오를레앙 대공(大公) 부인, 드 라 사블리에르 부인, 델바르 부인 등의 집에 기식하면서 몽상가적인 성격과 천진난만성으로 재미있는 여러 일화를 남기고 생애를 마쳤다.

우화시인(寓話詩人)으로서 불후의 명성을 남긴 그의 작품 종류는 다양하다. 그외에도 서정소시(敍情小詩), 서간시(書簡詩), 보카치오와 아리오스토 등으로부터 취재한 풍류담(風流譚) 《콩트와 누벨 Les Contes et Nouvelles en vers》(1665∼1685), 아풀레이우스에게서 주제를 얻은 소설 《프시케와 큐피드의 사랑이야기 Les Amours de Psyché et de Cupidon》(1669), 성인전(聖人傳)에서 취재한 《성(聖)말크의 수인(囚人)의 시 Poème de la Captivité de Saint Malc》(1673), 키니네의 효용을 노래한 《키니네송(頌) Poème de Quinquina》(1682)을 비롯하여 테렌티우스의 번안 《환관(宦官) L’Eunuque》(1654)과 시정사건(市井事件)에서 취재한 소극(笑劇) 《보리샤르의 익살꾼》(1659 상연?) 등 극작에도 손을 대어 《다프네》(1682) 등 오페라 대본도 썼다.

그의 대표작은 12권으로 이루어진 《우화시집 Fables》(1668∼1694)으로, 약 240편의 우화시가 엮어져 있다. 예지와 교묘한 화술로 폭력을 제압한 고대의 노예 이솝에 대한 공감과 우화의 장르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흥미에서 출발하여 이솝 ·동양 우화를 비롯한 다양한 소재를 독창적 수법으로 다루어 서정 ·풍자 ·경묘(輕妙)한 대화 ·콩트풍(風) 등 모든 패턴을 구사(驅使), 일종의 자유시형으로 노래하였다. 시구(詩句)의 거의 완벽한 음악성 및 동물을 의인화하여 인간희극을 부각시키는 절묘성 등은 후세의 모방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오늘날에도 어린이들에게까지 친숙한 프랑스 유일의 우화작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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