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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의 구절구절 섬세한 언어적 쾌감을 줄줄 알아야...
2017년 05월 06일 20시 46분  조회:2312  추천:1  작성자: 죽림



김종원 시집 [이별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서평 

김순진 
  

*미완의 아름다움 

시인은 만남과 이별을 매개로 성장을 꿈꾼다. 
미완성은 극도의 완성에서 오는 불안감과 산비탈을 내려가야 하고, 꽃이 만개했을 때 지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면, 김종원 시인은 이제 70%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는 시인이고 그 완성을 위해 정진하는 가능성을 내재한 시인이라는 점에 큰 매력을 느낀다. 
가장 생생하고 적나라한 전쟁을 보도하기 위하여 종군 기자들은 전장에 목숨을 걸고 들어간다. 이는 김종원 시인이 사랑시와 이별시를 가장 잘 쓸 수 있다는 시인이라는 논리를 뒷받침해 준다. 그 세대의 가장 깊은 관심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이고 이별이며 그를 통틀어 망라할 수 있는 소재 이성이다. 



이별한 사람들은 
가끔, 
일요일 오후 낮잠을 자다가 
약속시간에 늦은 줄 알고 
그와 자주 만났던 곳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때가 있다 

어디 갔을까 
어디 갔을까 
내 사랑이 어디 갔을까 

습관이 
이별을 아직 인정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이별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전문 

김종원 시인은 젊지만 그간 살아온 역정은 실로 파란 많다 하겠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가장으로 자란 그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고 스스로 개척하는 우직한 남정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의 깔끔하고 수려한 외모엔 어쩐지 그늘이 진다. 그것은 그의 집안이 모두 외국의 이민을 가고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김종원 시인이 힘든 세상을 헤쳐 오는데서 오는 그늘이 아닐까? 
그가 이처럼 심오한 이별의 시, 가슴 절절한 사랑의 시를 쓰는 데는 내력이 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란 말이 있다. 그 말은 정승 집안에 정승 나고 백정집안에 백정난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김종원 시인이 어려서부터 시를 쓰게 된 것은 물론 그가 자라온 시련의 성장과정도 큰 요인이 될 수 있겠지만 집안 내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김종원 시인의 집안 할아버지가 바로 '내 마음은‘을 쓰신 초허 김동명(超虛 金東鳴) 시인인 것이다. 

내 마음은 호수(湖水)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김동명「내 마음은」 일부 

이 시는 김동명 시인의 시이다. 김종원 시인은 사람의 감정을 자연에 잘 이입할 뿐 아니라 김동명 시인에서 볼 수 있는 장시가 그의 시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그의 할아버지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는 선천적인 시인인지 모른다. 
이 시집의 시들이 자연을 축소하고 감정을 극대화한 시이지만 자신을 이 시집이라는 거울 속으로 침전시키고, 그 촉촉함을 화운데이션 바르는 스무 살 소녀의 감정처럼 빗줄기가 창으로 흘러내리듯 우리내 가슴으로 젖어든다. 그의 이별에 대한 절절함은 풀잎이슬에 맺힌 아침이슬보다도 선명하다. 
불행했던 과거와 시를 쓰는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거리에서 시인은 부모와의 매듭에 고리를 푸는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산에 들어가는 것만이 출가는 아니다. 김종원 시인은 이 시집 한 권을 탈고하기 위하여 집을 나와 자취방에 전전하면서 그 흔한 컴퓨터나 TV조차 들여놓지 않고 오로지 시에 대한 사랑에 대한 이별에 대한 일념으로 사른 그의 시정신이야말로 프로정신으로 뭉쳐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프로정신과 아마추어 사고는 아마도 그의 시세계를 꽃봉오리를 보는 듯 미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아닌가? 


* 신세대 고민의 해법 모색 

식사를 하다가 
유독 하나 남은 깍두기가 
눈앞에 보여 
날카로운 포크로 
깍두기를 밀어보았다 

툭 치면 친 만큼 뒤로 물러서는 너 
아프면 아프다고 
싫으면 싫다고 내색도 않고 
아무런 반응 없이 물러만 가는 깍두기를 
보며 눈물이 났다 
「깍두기와 나의 신경전」일부 

김종원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묘사하는데 발군의 재치를 보이는 시인이다. 
그는 현 세상의 물질 만능을 적절히 소화하며 글에 접목시킬 줄 아는 현대시 언어구사 능력이 뛰어난 시인일 뿐 아니라 감정몰두에 충실한 눈물의 시인이다. 
그의 사랑은 짧게 끝난 듯 보이나 그의 내면의 아픔은 결혼식장 드라이아이스 연기처럼 퍼져 이 시집을 아름다운 배경음으로 감동시키고 있다. 



유난히 전화하는 걸 좋아하는 니가 
전화기를 열 때마다 보이는 오빠 사진이 
너를 힘들게 하진 않겠니? 
아침잠이 많아 
늘 학교에 지각을 해서 대신 자리를 
맡아주던 오빠가 없는데, 
이제 없는데 
이제 그 모든 것이 
모두가 현실인데 아프지 않겠니? 
울지 않고 잘 지낼 수 있겠니? 
잘 살 수 있겠니? 
「훈련소 앞에서/남자의 독백」[일부] 

어떻게 내가 오빠를 보내고 
오빠 이름 석자를 기억해 가며 편지를 쓸 수가 있겠어? 
매일 밤 그리워하다가 
그리움에 지쳐 잠이 들 텐데 
[중략] 
오빠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주체하지도 못하는 눈물이 흐를지도 모르는데 
나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아이처럼 돌려달라고 
오빠 돌려달라고 떼쓸지도 모르는데 
「훈련소 앞에서/남자의 독백」[일부] 

그때, 
어서 입소하라는 조교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짧은 머리가 어색해 쓴 모자를 벗기 시작했다. 

낯선 나의 짧은 머리를 보고 
너는 울기 시작하고, 
그런 너를 
울지 말라고, 제발 울지 말라고 말리며 
내 눈에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냥 다 미안하다......... 
다시 너에게 돌아가는 날 
이 모든 아픔 다 갚아 주리라. 
그때까지 부디 아프지 말고 
오빠 없다고 울지 말고 
잘살아줘 

「훈련소 앞에서」일부 

김종원 시인은 신세대 시인이다. 시인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우리들의 친구이며 애인이고 때론, 소개팅에 나가 딱지맞은 가련한 청춘이다. 자장면이 최고의 메뉴인 푼돈바라기 청춘이다. 
그는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대한민국의 건강한 청년이다. 가장 일반적이고 모태가 되는 이별인 군복무의 이별이 실제로 젊은이들에게는 얼마나 크고 소중한 일인가? 그의 시정신은 그런 건강미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하는 애인을 두고 나라에 몸 바칠 줄 알기에 더욱 숭고하다. 
남자가 헤어지고 운다는 것은 어쩌면 남자답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가장 남자답고 사람다운 행동이다. 나는 시골에서 소를 기르던 경험이 있다. 어미소가 송아지를 팔 때 송아지를 찾아 목이 쉬어라 우는 것처럼 그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 스스로 시작에 몰입하면서 보이지 않는 사랑 노래를 목쉬어라 부른 셈이다. 
말하자면 그의 여성상과 사랑의 깊이는 감히 그를 남자라 부르기보다는 수절하고 기다리는 춘향정신과 통한다 할 수 있고, 한 마리가 죽으면 따라 죽는다는 원앙새의 사랑과도 비교될 수 있다. 그가 남성임에도 이별을 그리 서럽게 울며 잊지 못함은 그의 내면에 남성만의 진실한 사랑이 이 시인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정말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서둘러 집을 나서야 했는데,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서두른다고 서둘러서 급히 약속 장소를 갔습니다. 
그렇게 급하게 약속 장소에 도착한 후에 
세수도 못하고 그곳에 온 
나의 푸석푸석한 모습을 단장해 보려고 
화장실의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보았습니다. 
당신이 사 준 남방에, 
당신이 골라 준 면바지에, 
당신이 좋아하던 안경을 쓴 내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그렇게 서둘러서 
세수도 못 하고 서둘러 왔는데 
지금 내 눈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아닌 당신입니다 
오늘은 왠지 하루가 짧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불길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내일 볼 시험은 접어버리고 
강남 역으로 갔더랬습니다. 
하늘이 흐려지더니, 결국 
비가 오더군요, 후....... 
이런 날에 비가 오는 건지, 아니면 
비가 오는 날에 이런 건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술이 몸에 좀 받을 것 같네요. 

「아직도 사랑합니다」일부 

대장장이가 잘 드는 칼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로 수 없이 많은 담금질을 하며 두드리고 연마한다. 칼이라는 것은 아무 쇠나 그라인더에 갈아서 만들면 잘 드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칼이라는 것은 잘 들어야 할 뿐 아니라 충격에도 유동적으로 견디어 이가 나가지 않아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용도에 맞아야하는 것이다. 
사랑시를 쓰는 시인의 대상이 꼭 정해진 것은 아니다. 물론 60대,70대 원로 시인들도 사랑시를 쓸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야기는 당사자에게서 듣는 것이 가장 솔깃하며, 이별 이야기는 그 당사자 주변에만 머물러도 눈물이 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이별시는 조금만 읽어도 눈물이 난다. 


혼자 달리다 
혼자 서성거리다 
너를 만났다 

누구의 심부름인 줄을 
꿈에도 모르고 
사랑을 실어 나르고 
희망을 밀어 넣으면 
이런 게 행복이다 생각하며 
결국엔 
다른 사람의 심부름인 줄 
꿈에도 모른 채 

지금껏 
참 오랜 동안 
헛 사랑을 했다 

「헛 사랑」전문 

우리는 때로 독백한다. 세상을 향하여 푸념하고 때론 산에 올라 욕지거리를 한다. 하는 일마다 안 풀려 좌절한다. 왜 내가 하는 일은 꼭 이 모양일까? 왜 나는 되는 일이 없을까? 그러나 김종원 시인은 그런 슬럼프를 시를 지으며 소화해냈다. 밥 대신 술을 마시며 고독으로 시를 쓰고, 담뱃재를 컴퓨터 온 방에 떨어뜨리면서도 이별한 여인을 그리는 시를 썼다. 그는 슬럼프를 시라는 구조자를 매개로 성장을 꿈꾼다. 그의 시가 속물 시나 모자람 시를 탈피하고 이처럼 지적 거울에 반사된 삶의 흔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만의 뚝심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 스물여덟 살에 중앙대학교를 다니는 그의 외견도 그 마스크만큼이나 매력이다. 그러나 외모로 보면 185cm의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에서 무슨 시 정렬이 그리 쏟아져 나올 수 있을까 의아해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사람을 끄는 눈매와 천사표 그 자체의 외모완 달리 며칠이고 방구석에 틀어 박혀 써 내는 근성은 그만의 매력이다. 



양파를 냉장고에 넣어둔 채 
한동안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잊혀진 동안 
양파 껍질들은 서로 살을 맞대고 
견뎌내느라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썩어가고 있었다. 

나는 양파 껍질을 하나하나 떼어 낸다. 
썩었다고 떼어내고, 
짓물렀다고 떼어내고 
떼어내고, 또 떼어내도 
서로 겪은 상처가 
너무나 크다. 

나는 
끝이 날 때까지 상처를 떼어낸다. 
양파껍질은 모두 다 떼어지고 
나는 눈물을 흘린다. 
단지 양파가 너무나 매울 뿐이라고 
그래서 눈물이 나오는 거라고 
정말 그럴 뿐이라고....... 

이제 내 손에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양손이 진물처럼 
슬픔이 범벅이 되어 있을 뿐 

「슬픔 범벅」전문 

이 시에서는 다른 시와 다르게 은유를 통한 참신한 이미지 형상화와 생명과 생활의 거리를 
좁혀가면서 큰 시인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그의 시는 차라리 수필에 가깝다. 그는 진솔한 표현을 무기로 언어의 덧칠이 없이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으로 몰입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외형을 택하기보다는 사람의 솔직한 감정을 그래도 가감 없이 표현해 자기완성의 계기로 삼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나고 사랑하며 이별한다. 그것은 어쩌면 인생살이의 모델이고 필연 이리라. 만나고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별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외로움에서 자라나 깊은 이별을 실감하였고, 더욱이 친척들이 모두 외국으로 이민 간 상황에서 명절이면 도시의 골목바람을 온 몸으로 견디며 자라나 잠시 잠시의 사랑보단 깊은 이별의 아픔과 가슴앓이를 이겨내고 있는 이 젊은 시인에게 우리는 격려의 손길을 뻗어야한다. 
그의 이 소중한 시집 “이별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가 서점에서 인터넷에서 기립박수를 받는 것은 어쩌면 내 일이고 내 친구의 일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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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
―이육사(1904∼1944)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는 다 익어도 빛깔이 푸른 포도다. 칠월 어느 쾌청한 날, 포도 잎사귀 아래 송이송이 탐스러운 청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무르익어 가는데, ‘먼 데 하늘이’ 알알이 비췻빛으로 영롱한 포도에 들어와 박힌다. 푸른 포도 알 하나하나 그 작은 몸에 하늘을 담고 있다. 그 광경만으로도 홀릴 만한데 포도밭 저 아래 바다가 넘실거린다. ‘흰 돛단배 곱게 밀려서’ 오고. 실제 시인이 잘 알고 사랑하는 고장의 꿈결같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조국 광복에의 염원을 서정적 시어에 담았다. ‘육사’는 시인이 항일운동으로 수감됐을 때의 수인번호 ‘64’에서 딴 호(號)라고 한다. 


곳곳의 섬세한 언어감각이 쾌감을 주는 시다. 푸르고 파랗고 하얀 색조의 시각적 이미지가 독자의 가슴을 서늘하고 싱그럽게 씻어준다. ‘주저리주저리’는 부사 ‘주절주절’의 방언인데, ‘과실 따위가 많이 매달렸거나 어우러져 있는 모양’, 혹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모양’을 이른다. ‘이 마을 전설’과 포도송이를 아울러 꾸미기에 이처럼 적절할 수가 없다. 기어이 찾아올 손님이 입고 있을 것이라는 청포(靑袍), 푸른 도포는 더 옛날 조선시대 중간층 관직의 상징으로 시에서는 애국지사를 뜻할 텐데, 청포도와 맞물리는 말이다. 청포도는 청포를 입은 포도니까, 조국에 빛을 찾아올 지사일 테다. 그러니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또한 숨은 뜻이 있는 것이다. ‘전설’과 ‘아이’는 과거부터의 꿈과 미래의 희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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