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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물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렌즈"이다...
2017년 06월 14일 23시 05분  조회:2392  추천:0  작성자: 죽림
현실과 꿈 사이의 희망온도

       박남희(시인)


  1.공갈빵의 희망온도

  이영식 시인처럼 시와 사람이 일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나는 지금까지 이영식 시인만큼의 호인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그는 인품이 따뜻한 시인이다. 따라서 그의 시도 따뜻하다. 하지만 시와 사람이 이처럼 한결같은 따스함을 유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영식 시인의 ‘따스함’을 그의 시의 한 모티브인 ‘희망 온도’에서 발견한다. 최근에 발간된 그의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이 『희망온도』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영식 시인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느껴지는 교감과 정서를 온 몸으로 체감하고 싶어한다. ‘희망온도’는 그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느끼고 싶어하는 가장 이상적인 온도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개념이다. 그의 시는 대부분 일상성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일상성 뒤에는 언제나 ‘희망온도’가 지향하는 그의 꿈이 자리하고 있다. 현실과 꿈 사이에 존재하는 ‘희망온도’는 이영식 시인의 시와 삶을 이끌어 가는 천칭저울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등단하고 2년 뒤인 2002년에 첫 시집『공갈빵이 먹고 싶다』를 상재한 바 있다. 그의 첫 시집은 주로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자들의 소외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시집의 표제시인「공갈빵이 먹고 싶다」만 하더라도 길거리에서 빵을 굽는 여자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단지 소외된 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새로운 시적 의미를 발견한다. 이처럼 사소한 소재를 통해서 새로운 미학적 의미를 발견해내려는 노력이야말로 이영식 시의 가장 큰 미덕이다.   

빵 굽는 여자가 있다
던져놓은 알, 반죽이 깨어날 때까지
그녀의 눈빛은 산모처럼 따뜻하다
달아진 불판 위에 몸을 데운 빵
배불뚝이로 부풀고 속은 텅─ 비었다
들어보셨나요? 공갈빵
몸 안에 장전된 것이라곤 바람 뿐인
바람의 질량만큼 소소해 보이는
빵, 반죽같은 삶의 거리 한 모퉁이
노릇노릇 공갈빵이 익는다

속내 비워내는 게 공갈이라니!
나는 저 둥근 빵의 내부가 되고 싶다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
몸 전체로 심호흡 하는 폐활량
그 공기의 부피만큼 몸무게 덜어내는
소소한 빵 한쪽 떼어먹고 싶다
발효된 하루 해가 천막 위에 눕는다
아무리 속 빈 것이라도 때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며
슬며시 돌아눕는 공갈빵,
차지게 늘어붙는 슬픔 덩이가
불뚝 배를 불린다

       -「공갈빵이 먹고 싶다」전문

  이영식 시인의 등단작이기도 한 이 시는 공갈빵을 통해서 세상을 읽어내는 묘미가 남다르다. 이 시는 ‘공갈빵’이 시의 은유로도 읽힌다는 점에서 일종의 메타시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공갈빵’이 시의 은유라면 ‘빵 굽는 여자’는 시인 자신의 은유인 셈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빵굽는 여자의 눈빛이 따뜻한 것까지 시인을 닮았다. 속이 텅 비고, 몸 안에 장전된 것이라곤 바람뿐인 빵이야말로 시의 모습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시인은 ‘공갈빵’ 즉 시가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과 “몸 전체로 심호흡 하는 폐활량”을 가지고 있는 ‘꿈’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자신의 시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힘을 믿고 있으면서도, 때를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희망온도’는 그의 시와 꿈을 알맞게 익혀주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의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은 모두 온도 모티브를 통해서 상동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그의 첫 시집에는 표제시가 있는데 반해, 두 번째 시집에는 ‘희망온도’라는 제목의 시가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면「눈물렌즈」라는 시에 ‘희망온도’라는 시어가 나온다. 이 시는 ‘눈물’과 ‘희망온도’를 연결시켜 일상적인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내려는 노력이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어머니, 눈물 너머 바라본 도시의 숲과 새들이 슬퍼요

밤 도토리 몽땅 털린 다람쥐 청설모가 슬프고

아파트 공사장 쇠붙이로 둥지를 엮는 철새가 슬퍼요

눈물 닦인 세상은 슬픔 밖인 줄 알았는데

구겨진 신문지로 견디는 노숙의 잠이 슬프고

나어린 가장들 라면 끓이는 소리 설거지 소리가 슬퍼요

어둠 속 떼 지어 일어서는 붉은 십자가 숲에서도

눈물로 녹여야 닿을 수 있는 희망온도가 있나봐요

언제부터 실금이 갔는지 슬픔이 자꾸 새요, 어머니

                   -「눈물렌즈」전문

  이 땅에는 점점 눈물이 사라져가지만, 뻑뻑한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눈물이 필요하다. 특히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까지 보고 느끼는 시인이야말로 ‘눈물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때때로 ‘눈물렌즈’는 세상을 부옇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들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들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눈물렌즈를 끼고서야 세상에 숨어있던 슬픔의 실체를 똑바로 보게 된다. 시인은 인간 욕망의 산물인 문명의 힘에 희생되어 가는 ‘다람쥐’, ‘청설모’, ‘철새’의 슬픈 모습을 ‘노숙자’나 ‘나어린 가장’과 대비시키면서, 점점 피폐화되어 가는 자연환경의 실상과 만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희망온도’가 필요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이영식 시에 나타나는 ‘희망온도’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시인의 ‘눈물’과 관계된다는 점에서 내재적인 성격을 지닌다. 눈물이 사라진 세상 속에서 시인의 눈물이야말로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는 마음의 ‘렌즈’인 것이다. 

   2.희망온도의 ‘거리’와 ‘사이’

  희망온도는 주체와 대상, 대상과 대상의 일정한 ‘거리’와 그 ‘사이’에 존재한다. 일종의 촉감을 공간적으로 바라보려는 시인의 이러한 태도는 관계성을 중시하는 그의 인생관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의 대부분의 시에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일정한 거리에 ‘희망온도’가 존재한다. 그 희망온도는 시인으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고, 슬픔이나 그리움이나 사랑을 느끼게도 해주며, 때로는 몽유의 세계 속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이렇듯 시인은 ‘희망온도’를 주로 공간적으로 느끼고 싶어하지만, 공간은 시간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간과도 연관된다. 두 번째 시집『희망온도』에 나오는 다음의 시는 ‘희망온도’가 시간과 공간에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겨울 강가에 불을 놓다가
허공에서 꺼지는 눈송이를 보았다
어깨 위 붐비다 사라지는 눈발들
나는 아우의 유품 몇 점을
푸새 더미 불길 속에 던져 넣었다
한 사람의 생애처럼 반짝
곧추섰다가 숨을 죽이는 불꽃
갈대가 머리 풀고 어깨 들먹인다
홀로 먹먹한 마음, 하릴없이
강가에 밀려온 부유물에 가 닿는다
패트병. 라면봉지, 주인 잃은 신발…
삶의 파편들로 만원사례다
강은 깊이를 더해 흐를 뿐인데
나는 너무 많은 꿈 띄워 놓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절망했던 것일까
한 겨울 언 강에 던져놓은 돌멩이도
참고 기다려야 강 바닥에 닿으리

            -「강물의 시간」부분
    
  이 시를 읽어보면 ‘희망온도’를 시간적 개념으로 바꾸어 보면 ‘강물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인은 죽은 아우의 유품을 태우기 위해 겨울 강가에서 불을 놓다가 “한 사람의 생애처럼 반짝/ 곧추섰다가 숨을 죽이는 불꽃”을 보게 된다. 이런 불꽃의 모습은 허공에서 흩날리다가 사라져버리는 눈발의 모습과 흡사하게 수직적 소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급격하게 타오르다 사라지는 불꽃처럼 격동하던 시인의 먹먹한 마음은 패트병, 라면봉지, 주인잃은 신발 같은, 강가에 떠내려온 부유물을 보면서 차츰 가라앉게 된다. 시인의 마음 속에서 너무 뜨겁던 온도가 알맞은 ‘희망온도’를 되찾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시인이 ‘강물의 시간’을 인식하면서부터 가능해진다. 시인은 “강은 깊이를 더해 흐를 뿐인데/나는 너무 많은 꿈 띄워 놓고/기뻐하고 슬퍼하며 절망했던 것일까”라고 자신의 반성하면서 자신의 수직적 열망의 온도를 수평적 강물의 시간에 침잠시켜서 ‘희망온도’를 복원해 낸다. 그는 “한 겨울 언 강에 던져놓은 돌멩이도/참고 기다려야 강 바닥에 닿”는 이치를 강물의 시간을 통해서 새롭게 깨닫는다. 
  이번에 발표된 시들 중에는 그의 두 번째 시집의 제목과 같은「희망온도」라는 제목의 시가 들어있다. 이 시는 ‘희망온도’가 그의 따뜻한 마음의 산물임을 말해준다.

새해가 밝았다

甲남乙녀 
너와 나, 누구랄 것도 없이
먼 듯 가까운 듯
사부작사부작
서로 마음 기대어도 좋은
눈빛 하나로 닿는 따뜻함의 거리를
희망온도라 하자

창이 작은 집
바람벽 위 자동보일러 눈금처럼
아주 뜨겁지도 않고
아주 차갑지도 않게
서로 손 잡아 끌어주며
갱엿 하나 녹이는 가난한 사랑을
희망온도라 하자

     -「희망온도」부분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먼 듯 가까운 듯” “눈빛 하나로 닿는 따뜻함의 거리” 즉 따뜻한 인간미를 희망온도라고 말하면서, 기름을 절약하느라 보일러의 눈금을 바라보며 차지도 덥지도 않게 온도를 유지하던 어린 시절의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사랑 역시 희망온도라고 말하고 있다. 시인이 이처럼 시를 통해 희망온도를 말하고 있는 것은 이 시대가 너무 차갑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시의 말미에서 “너와 나, 꿈꾸는 사람이 되자/ 희망온도를 높이자”라고 말함으로써 이 시대가 차가운 것이 꿈을 잃어버린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의 시 「아부이가방에들어가신다」는 꿈이 없이 가난에 찌들어 살던 부모님 세대의 풍경을 자조적인 어법으로 그리고 있다. 시인은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잘못 읽을 경우 ‘방’이 ‘가방’이 되는 것을 그대로 패러디해서, 그동안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오신 부모님께 효도한답시고 귀뚜라미 보일러 하나 놔드리고, 부모님은 기름이 없어서 ‘가방’으로 표현되는 좁은 방 속에서 새우잠을 자는 모습을, 도시에서 여우같은 아내와 꿀잠을 청하는 자신의 모습과 대비시켜 허울뿐인 효도를 반성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것은 단지 가난의 문제가 아니라 ‘희망온도’의 문제인 것이다. 이 시를 통해서 보면 ‘나’와 ‘부모님’과의 거리는 도시와 농촌만큼 멀다. 그렇기 때문에 “아부이의 희망온도는 가방 아래 불기 없는 구들장 밑으로 숨어내려간다”. 그렇기 때문에 밤새 문풍지가 울고, “아부이 아버지를 덮고 어무이 어머니를 덮고 꿈조차 꽁꽁 얼려 주무”시는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대접을 받고 살고 싶은 시골 부모님의 소박한 꿈은 ‘희망온도’를 잃고 꽁꽁 얼어버리게 된다.   

  3.백치시인과 희망온도  

  이번에 발표된 신작시들을 보면 「백치시인」연작이 3편이나 끼어있다. 그의 두 번째 시집에 실려있는「백치시인1~7」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이 시들은, 시인 자신의 메타언어적 시관이 흥미롭게 드러나 있다. 이영식 시인의 「백치시인」 연작은 신달자 시인의 「백치애인」의 패러디라고 볼 수 있는데, 신달자 시인의 「백치애인」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애타는 심정을 모르듯이, 이영식 시인의 「백치시인」역시 자신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무지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백치시인 8」은 잡지에 시를 발표할 때 시인 이름 아래 덕지덕지 붙어있는 허명의 수식어 대신 넉넉하게 비어있는 여백이 산뜻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백치시인 9」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아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선생의 말을 역으로 패러디해서 “시를 읽지 않았다//혀에 바늘이 돋지 않았다//시를 쓰지 않았다//밥맛도 좋고 쾌변이었다//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나서 돌연  

아니다!

함박꽃이 찢어지게 얼굴 열고

종자돼지가 새끼를 열두 마리나 낳았는데

아무 일도 아니라니,

오늘 하루 큰 역사를 이루었던 것이다. 

라고 하여 또 다른 반전을 꾀하고 있다. 이 시의 이러한 반전은 시인이 시를 쓰는 것만이 시가 아니라 자연이 피워내는 꽃이나 돼지가 새끼를 낳는 일도 시와 같이 중요한 일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영식 시인의 「백치시인」은 삶에 무지하고 세상에 무지하고 자연의 섭리에 무지한 시인 자신을 나타낸다. 이 시는 시인의 의식 속에 언행일체言行一体, 즉 시와 삶이 하나라는 생각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의식은「백치시인 10」에도 드러나 있다. 

공자야 놀자
퀴즈야 놀자
영어야 놀자
한자야 놀자
논리야 놀자

공자 맹자보다 훨씬 앞서 삶을 이끌었던,
놀자

놀자, 가라사대
서점 한 구석 책꽂이 속에 벌서고 있는, 너는
언제 한번 신명나게 놀아볼래?

시야!

  “놀자, 가라사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시는 요즘 서점에서 유행하고 있는 ‘놀자’ 시리즈에 나오는 ‘놀자’라는 단어를 ‘공자’, ‘맹자’와 유사한 의미로 패러디해서, 지금까지 한번도 신명나게 놀아본 적이 없는 시의 불쌍한 처지를 우화적으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이 시 역시 글과 놀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는 의식이 깔려있다. 이처럼 시인은 현실과 꿈 사이에 벌어져 있던 거리를 좁혀서 ‘희망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볼 때 이영식 시인의 시에서 패러디와 풍자는 현실과 꿈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장치인 셈이다. 특히 최근들어 그의 초기시에서는 흔히 찾아보기 힘든 패러디 시가 많이 보이는 것은 그의 의식 속에서 꿈틀거리던 깨달음이나 의식이 더 이상 내면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밖으로 분출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희망온도’는 그의 내면에서 끓고 있던 마그마를 의식 밖으로 끌어내어 새로운 화석으로 거듭나게 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패러디 시에 그다지 관대하지 않다. 그는 두 번째 시집에 실려있는 시「백치시인 1」에서 “가끔 언어를 비틀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성찬을 베풀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어느새 개다리소반에 찬밥이다”고 말함으로써, 90년대 이후 거대담론이 사라진 후 점점 왜소화되는 신변잡기식 시쓰기에 자성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그는 “세상의 저녁, 어느 한 불빛이 내 시를 읽고 있는가? 우리가 상한 날개 껴입고 헛춤을 추는 것은 아직도 추락할 꿈이 남아 있음이라”고 하여 시가 지니고 있는 역설의 힘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영식 시인은 따뜻하면서도 예리하고, 백치같으면서도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의 ‘희망온도’가 현재 어떤 눈금에 와 있는지를 가늠할 줄 아는 시인이다. 그는 그가 이 땅에 내놓고 싶어하는 ‘공갈빵’이 어떤 온도에서 가장 고소하게 익는지를 아는 시인이다. 그는 척박한 현실을 벗어나 하루쯤 넉넉한 나비의 꿈에 들어 몽유의 세상을 즐길줄 아는 시인이다. 그는 이제 단호하게 말한다. “시, /이 깊은 꿈도 생의 은유라면/세상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수면내시경」), 그가 그동안 무수한 허무의 벽을 넘어 내적 확신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자신을 교란시켰던 것이 혼란이 아니라 집착이었음을 몸소 체득했기 때문이다.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영식의 시가 더욱 희망적인 것은, 시인이 이미 리얼리즘 시의 한계가 ‘집착’에 있는 것을 알고 ‘몽유’의 열린 세상 속으로 새로운 모색의 시작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몽유’는 때로 모호하고 불확실하지만 ‘공갈빵’을 알맞게 익혀주는 효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시인은 이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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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강기원(1957∼ )

죽집에 간다
홀로, 혹 둘이라도 소곤소곤
죽처럼 조용한 사람들 사이에서
죽을 기다린다
죽은 오래 걸린다 그러나
채근하는 사람은 없다
초본식물처럼 그저 나붓이 앉아
누구나 말없이 죽을 기다린다

조금은 병약한 듯
조금은 체념한 듯
조금은 모자란 듯
조그만 종지에 담겨 나오는 밑반찬처럼
소박한 어깨들

죽집의 약속은 없다
죽 앞의 과시는 없다
죽 뒤의 배신도 없을 거라 믿는다
고성이 없고
연기가 없고
원조가 없고
다툼이 없는 죽집
감칠맛도 자극도 중독도 없는
백자 같은, 백치 같은 죽

무엇이든 잘게 썰어져야
형체가 뭉개져야
반죽 같은 죽이 된다
나는 점점 죽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요지를 이빨 사이에 낀 채 긴 트림을 하는
생고깃집과 제주흑돼지 오겹살집 사이에서
죽은 듯 죽집은 끼어 있다
죽은 후에도 죽은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죽은 ‘곡식을 오래 끓여서 알갱이가 흠씬 무르게 만든 음식’이다. 입맛을 돋우고 영양가를 높이기 위해 소고기니 닭고기니 전복이니 버섯이니 굴이니,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먹을 사람의 식성에 따라 다른 재료를 더 넣기도 한다. 뭉근한 불에 놓고 지켜보면서 끓어 넘치거나 눋지 않도록 가끔 저어주며 만드는, 시간과 정성이 듬뿍 들어가는 죽. 그걸 알기에 죽집에서 ‘채근하는 사람은 없다’. 솥에서 사발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냄새와 훈김 속에서 ‘나붓이 앉아’ ‘말없이 죽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성정은 죽처럼 순할 테다. ‘조금은 병약한 듯/조금은 체념한 듯/조금은 모자란 듯’ 보이기도 하는 그 순함.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인 죽은 푹푹 떠먹을 수 없다. 한 숟가락씩 떠서 호호 불어가며 조심스레 입에 넣으면 모든 재료가 어우러져 푹 퍼진 죽이 혀에 감긴다. 그 맛에 죽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소화불량이거나 치아가 부실하거나 식욕이 없는데 무얼 먹긴 먹어야겠는 사람들이 죽을 찾는다. 화자는 죽이 좋아 죽집에 간 게 아닌 듯하다. 이빨을 가진 포유류의 ‘씹는 맛’을 만끽하는 ‘고깃집’ 사이에 ‘죽은 듯 끼어 있는 죽집’에서 화자는 ‘점점 죽이 되어가는 느낌이’란다. 어딘지 아픈 듯한 사람들, 삶의 전장에서 한 발 물러난 듯한 사람들이 한 사발 죽을 기다리는, 쓸쓸하고 평화로운 죽집…. 죽집 안팎 풍경과 죽의 속성을 삶에 대한 성찰로 뭉근히 이끄는 시어들이 깔끔하고도 씹을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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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시인은 한편의 좋은 시를 위하여 수백편의 시를 쓰고 버릴줄 알아야... 2017-04-03 0 2555
375 혼을 불사르지 못하는 시인은 그 생명력이 짧을수밖에 없다... 2017-04-03 0 2344
374 시인은 구도자로서 억지를 부려 결과물을 얻어서는 안된다... 2017-04-03 0 2307
373 시적 령감은 기다리는 자의것이 아니라 땀흘려 찾는 자의 몫... 2017-04-03 0 2406
372 시를 쓰는 행위는 신과의 씨름이다... 2017-04-03 0 2323
371 시는 시인의 삶을 반추하는 그 시대의 사회적 산물이다... 2017-04-03 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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