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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숙 동시인의 <<첫눈>>에 대하여 말해 보고저 필을 들었다. 우선 그의 <<첫눈>>이 어떤시인지 읽어보자
첫눈
황희숙
떨어 진다
쬐꼼한
은빛 보석이
떨어 진다
커다란
그물에
떨어 진다
땅거미
반찬으로
제목이< 첫눈>이니깐 시인은< 첫눈>을 맞는 기쁨으로 <첫눈>에 대한 시야를 남달리 한것 같다. 이 시를 보면 제목이 <첫눈>인데 시문에는 첫눈이란 말이 없다 <쬐꼬만 은빛 보석>이 떨어진다 하였고 <그물, 땅거미 반찬>이라 했다. 시인은 떨어지는 <첫눈>을 보면서 상상을 뛰여넘어 환상속에서 이질적인 이미지 <은빛 보석, 그물, 땅거미 반찬>을 보았다.
쟈크 라캉은 이렇게 말했다. <사물 관계가 시각을 통해 이루어 지고 재현의 여러 통로로 배열될 때 무엇인가 빠져나가 사라지고 단계별로 전달되며 숨겨져 들리지 않는 이것이 바로 응시다. 세계는 모든것을 바라보지만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세계가 응시를 촉발시키는 그 순간 생소함 역시 시작이다. > 라고 했다. 이 어록을 살펴보면 사물관계가 시각을 통해 이루어 질때 재현의 여러통로란 다선이란 뜻으로 풀이되고 무의식 공간에서 생소한 이미지로 된 사물 즉 리좀이 만들어 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또 무엇인가 빠져나가 사라지고 단계별로 전달되며 숨겨져 들리지 않는 이것이 응사라 했는데 이런 응시가 하이퍼시가 아닌가 싶다. 하이퍼시에서 리좀으로 된 이미지는 무의식 공간에서 환상속을 날아 다니면서 여러 갈래로 접속될수 있는 복잡한 련관성의 지도를 만들어 가는, 깨여지고, 부서지며 재생하는 것으로 령토화 되고 재령토화 되며 절편된다. 또 숨겨져있는 그 무엇이 많고도 많다. 쟈크라캉은 또 <응시는 왜곡 된 상이다>라고 했다. 응시가 왜곡된 상이란 말은 변형된 사물이란 말이다, 하이퍼시가 환상속에서 얻어지는 허상도 응시라 할수있다. 응시는 하이퍼시고 하이퍼시는 판도라 상자라 말하고싶다. 쟈크 라캉의 어록에서 <사물 관계가 시각을 통해 이루어 지고 재현의 여러 통로로 배열될 때 무엇인가 빠져나가 사라지고 >라 했는데 우의 시에서 시각을 통해 <첫눈>을 보았고 재현의 여러통로란 상상을 뛰여넘은 환상속에서 이미지로 된 <은빛 보석, 그물, 땅거미 반찬>이 배열 되였으며 빠져나가고 사라진다 했는데 <첫눈> 자리에 <은빛 보석>이 자리를 차지하고 <첫눈>이 빠져 나가고 <은빛 보석>
자리를 또 그물이 차지하고 은빛 보석은 빠져 나가고 이렇게 단계별로 전달 되였다.
시 첫련에< 떨어 진다> 쬐꼼한 <은빛 보석이> 라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황홀하게 빛나는< 은빛 보석>이 떨어지는 것으로 이미지화 했다. 이< 은빛 보석>은 시인의 의도된 생각이 아니다. 무의식 공간에서 상상으로 얻어진 이미지며 리좀이며 령토다 여기에서 이미지란 탈과념 된 사물을 말하는데 그것이 은빛 보석이다. 이 은빛보석이 바로 하나의 응시라고 할수 있겠다. 리좀이란 끊임없이 련결되고 도약하며 일탈하는 련쇄라 했다. 리좀자리에 있는 은빛 보석은 돌과도 련결될수 있고 꽃과도 련결되였다가 도약하여 일탈하는 련쇄이다. 령토란 련결되였다가 도약하며 차지한 자리를 말한다.
두번째 련에서는 <떨어 진다 커다란 그물에> 이번에는 그물로 이미지화 했다.
삼련에서는 <떨어 진다 땅거미 반찬으로 > 라 한다. 시인은 시를 쓸때 몇십분의 일초, 몇백분의 일초의 것을 쓴다고 한다. 많이 오지 않는 첫눈이 녹으면서 어둠이 깃들때 시인은 어둠속에 사라지는 눈을 보고 환상속에서 땅거미 반찬으로 이미지화 했다. 시는 이미지로 말하고 이미지의 움직임으로 보여 준다 했다. 쟈크 라캉이 말했듯이 신비로운 우연의 형태로 갑작스레 접하게 되는 경험이겠다. 시인은 <첫눈>을 응시하면서환상의 나래를 마음껏 펴고 훌륭한 하이퍼 동시 <첫눈>을 썼다 .
깜찍한 아이들 언어로 횡적구성으로 되여있다. 횡적구성이란 한수의 시에서 성질이 다른 이미지가 함께 생성되여있는것을 말한다. < 첫눈>이란 시에는 <은빛 보석>도있고 <그물>도 있고< 땅거미 반찬>도 있다.이런 것들은 모두 성질이 다른 것들인데 한수의 <<첫눈>>에서 공생한다. 그들은 제각기 자기 의미를 가지고 있음으로 련과 련을 바꾸어 놓아도 될수있고 독자가 참여하여 더 내리 써도 무방하다. <<떨어 진다> <하얀 쌀밥으로>> 이런식으로 말이다. 시인은, 쟈크 라캉이 말했듯이 신비로운 우연의 형태로 갑작스레 접하는 떨어지는 첫눈을 보면서 환상속에서 <은빛 보석, 그물, 땅거미 반찬>이란 사물을 떠 올리게 되였다. <첫눈>은 <은빛 보석>에 의하여 빠져 나가고 사라지였다. <은빛 보석>은 다음련에 의하여 산생된 <그물>에 의하여 빠져나가 사라지고 <그물>만 남았다. <그물>은 또 <땅거미 반찬>에 의하여 빠져 나가고 사라지였고 <땅거미 반찬>만남았다. <은빛 보석>은 <첫눈>을 대체 하였고 <그물>은 <은빛 보석>을 대체하였고 <땅거미 반찬>은 <그물>을 대체 하였다. 마치 파도가 솟구쳤다가 물앉고 하는 것처럼, 산봉우리가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
또 각 련마다 같은 말이 있을 때는 링크로 되고 없을 때는 초링크로 되는데 이 시에서는 각 련마다 <<떨어진다>>가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링크로된 하이퍼동시에 해당된다
이상 <첫눈>에 대한 단상을 마친다.
2017. 9. 21.
다선적인 동시 “첫눈” 에 대한 단평 / 강려
필자는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도 모르고 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제4회 윤동주문학상 동시상을 수상한 황희숙선생님의 동시 “첫눈”에 대한 필자만의 단평을 감히 몇자 적어본다.
“떨어진다 /쬐꼬한 / 은빛 보석이 // 떨어진다 / 커다란 / 그물에 // 떨어진다 / 땅거미 / 반찬으로 // ” 이번 4회 윤동주문학상 동시상을 수상한 황선생님의 “첫눈’의 전문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속에 “은빛 보석”, “커다란 그물” “땅거미의 반찬” 등 서로 다른 이미지가 함께 공존한다고 하겠다 . 즉 동시가 단선이 아닌 다선으로 되여있는 실험적인 동시라 하겠다.
그럼 단선은 무엇이고 다선이란 무엇인가? 단선이란 줄이 한가닥 이라는 말이라 하겠다 . 즉 외줄이라는 말이라 하겠다 다선이란 줄이 여러가닥이란 말이라 하겠다.
“숙제 기계, 오 숙제 기계 / 여태껏 본 것 가운데 가장 완벽한 발명품 / 숙제를 넣고 은화 하나를 집어넣으세요 / 그러곤 스위치를 탁 누르면 단 십 초 안에 / 숙제가 끝나서 나옵니다 대단히 빠르고 말끔하게 / 자, 여기 나왔습니다 9 더하기 4의 답은 3입니다 / 3이라고? / 어이쿠 / 생각했던 것만큼 / 완전한 건 아닌 모양이군 //” 미국의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시인, 음악가로 폭넓은 예술활동을 했다는 쉘 실버스타인의 단선적인 동시 ”숙제기계” 전문인데 전반동시가 하나의 이미지에 대한 서술만 있다. 즉 숙제기계가 대신해준 수학숙제의 답이 틀리게 나왔다는 것만 쓰고 있다. 즉 단선구조인것이다
근데 “첫눈”은 “숙제기계” 와 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하나의 이미지를 갖고 쓰는 종적구성이 아닌 여러개의 이미지로 구성된 횡적구성으로 된 동시라 하겠다 .
1련에서 시적화자는 첫눈이 “은빛보석”으로 떨어지고있는 그림을 보여준다. 누가 떨군 은빛보석일까는 어린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고 하겠다 . 2련에서 시적화자는 그물에 떨어지는 첫눈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즉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아이가 상할가봐 산 들 길 나무 등이 이쁜 그물이 되여 떨어지는 첫눈을 받아준다는 사랑의 그림이라 하겠다. 3련에서 시적화자는 땅거미의 반찬으로 떨어지는 첫눈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어쩜 어둠이 맨 이밥만 먹는게 안쓰러워 구름이 소고기반찬이며 달알채며 준다는 따뜻한 그림이라 하겠다
필자는 1련, 2련, 3련이 차원이 다른 이미지로 씌여졌기에 련과 련을 서로 바꿔도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작과 끝이 따로 없기에 읽는 독자가 더 써내려갈수도 있는것이다. 종적구성이 아닌 횡적구성으로 된 동시이니까
총적으로 황쌤의 동시 “첫눈”은 동심의 크레용이라 할수있는 “은빛보석 “ “그물’’ 반찬”으로 첫눈 오는 날의 정경을 3장의 이쁜 그림으로 우리한테 펼쳐보여주고 있다. 시적화자는 혼자가 아닌 어울림의 미학을 깨닫고 있다. 복잡한듯 매련마다 링크인 “떨어진다” 는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단순한 연결을 하고 있어 어린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언젠가 한국 권오삼동시인님의 “여러빛갈의 동시 읽기”란 평론에 <<‘여러 가지 방향의 여러 가지 동시를 읽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교과서에 수록된 동시가 어린이에게 주는 영향은 크다 하겠고, 한 방향에만 치우친 동시를 게재할 때에는 의외의 폐단을 가져 올 우려조차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내용이 될 소재의 다면 다양을 권해야 하겠다. 감각적인 시, 사유적인 시, 유희에서 얻은 시, 노동에서 얻은 시……그 외 온갖 방면에서 시를 찾아내게 할 일이다.절대로 어느 한 종류의 시만 시로 알게 해서는 안 되겠다.’ (이원수 아동문학전집 28권. 아동문학입문 317쪽)>> 라는 단락을 읽은적 있다 . 그러면 황선생님의 동시 “첫눈”은 동심의 눈높이에서 어린 독자를 배려하고 쓴 우리한테 본보기를 보여준 그 여러빛갈의 동시들중의 가히 실험동시라 할수있는 다선적인 동시라고 본다
필자는 황희숙선생님의 새로운 정진을 기대한다.
20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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