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반달" = "하얀 쪽배(小白船)"
2017년 10월 16일 23시 54분  조회:3428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대 현대
출생 1903년
사망 1988년
유형 인물; 윤극영(尹克榮)
직업 작곡가
대표작 제비 남매, 우산 셋이 나란히, 고기잡이, 외나무다리, 담모퉁이, 반달, 설날, 까치까치 설날, 할미꽃, 고기잡이, 꾀꼬리, 옥토끼노래, 고드름, 따오기
성별
분야 문학/현대문학

요약 1903∼1988. 동요작가·동요작곡가·아동문화운동가.

개설

서울 출생으로, 조선 말기의 승지 윤직선(尹稷善)의 손자이다. 세칭 반달할아버지로 불렸다.

생애 및 활동사항

교동보통학교(校洞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1917년 경성 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1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음악학교[東京音樂學校]·도요음악학교[東洋音樂學校] 등에서 성악과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1923년 색동회 창립동인이었으며, 조선 가사를 붙인 찬송가곡이나 일본 노래뿐인 시대에 동요 창작을 시도했다. 1923년 7월 서울에서 개최된 ‘전조선소년지도자대회’에 참가해, 「동요에 대한 실재론」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1924년 서울로 돌아와 동요단체 ‘다리아회’를 조직하고 어린이문화운동과 동요 창작과 작곡 운동을 전개했다.

1926년 1월 피아니스트 오인경과 만주 용정(龍井)에 가서 동흥중학교·광명중학교·광명고등여학교 음악 교원으로 교편생활을 했다. 이후 10년간 「제비 남매」·「우산 셋이 나란히」·「고기잡이」·「외나무다리」·「담모퉁이」 등을 작곡했다. 1936년 가을 서울로 돌아와 음악 활동을 했으며, 그 해 일본으로 건너가 1937년 극장 가수로 취직하며 예술단 창립을 구상했다.

1940년 서울·간도를 거쳐 중국 하얼빈예술단을 창립했으나 실패했다. 1941년 용정에서 역마차 사업을 하다가 간도성협화회(間島省協和會)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얼빈에서 예술 활동을 하다가 1946년 용정에서 경비대에 붙잡혀 3년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1947년 톈진[天津]에서 손수레를 끌다가 남한으로 탈출했다.

1924년 「반달」을 비롯해 「설날」·「까치까치 설날」·「할미꽃」·「고기잡이」·「꾀꼬리」·「옥토끼노래」 등의 창작 동요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면서 「고드름」·「따오기」 등의 동요에 곡을 붙여 동요보급운동을 전개했다. 점층수법에 의한 동요 창작과 작곡을 통해 초창기 아동문학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1950년대 초 북경(北京)에서 조선족 김정평과 그의 아버지 김철남이 「반달」을 중국어로 번역 편곡, 레코드로 취입해 30년간 애송되다가 1979년 「하얀 쪽배[小白船]」라는 제목으로 중국 전국 통용 음악교과서에 수록되었다. 1956년 제1회 소파상을 수상했고, 1963년 서울교육대학 제정 ‘고마우신 선생님’에 추대되었으며, 1970년 국민훈장목련장을 받았다.

1987년 어린이의 심성계발과 순화를 목적으로 동화·동요·그림·연극 등의 활동을 조직적으로 추진하는 단체인 동심문화원(童心文化院)을 설립, 운영했으며, 1988년 사망했다.

주요 저서로는 동요작곡집 『반달』(1925)과 『윤극영 111곡집』(1963) 등 다수가 있다.

============================덤으로 더...

윤극영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Picto infobox music.png
윤극영
尹克榮
기본 정보
출생 1903년 9월 6일
대한제국의 기 대한제국 한성부
사망 1988년 11월 15일 (85세)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제국의 기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의 기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직업 테너 성악가
바이올리니스트
동요 작사가
동요 작곡가
동요 편곡가
지휘자
아동문학가
아동문화운동가
극작가
장르 서양 고전 음악
민족 동요 음악
활동 시기 1922년 ~ 1988년
가족 아버지 윤희구(유교 성리학자)
자녀는 슬하 3남 1녀
고종사촌 형 심우섭(언론인)
고종사촌 형 심명섭(개신교 목사)
고종사촌 형 심훈(소설가)

윤극영(尹克榮, 1903년 9월 6일 ~ 1988년 11월 15일)은 동요 〈반달〉을 작사, 작곡한 대한민국의 동요작가이자 동화작가이다. 별명이 반달 할아버지일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았다.[1]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생애[편집]

한성부 출생으로, 1922년 도쿄에서 ‘색동회’를 조직하고 다음해에 〈반달〉, 〈고드름〉, 〈〉을 비롯하여 30여 편의 동요를 작곡했다. 1926년엔 한국 최초의 동요작곡집 《반달》을 출판하기도 했다. 8.15광복 후 만주 지린 성 룽징과 중화민국 허베이 성 톈진에 있다가 1947년 월남하여 ‘노래동무회’를 조직했으며, 동요 100여 곡도 작곡했다.[2] 1988년 11월 15일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경력 및 수상[편집]

소속[편집]前 색동회 회장

경력[편집]1903년 한성부 출생

학력[편집]경성 교동보통학교 졸업

수상[편집]
1956년 제1회 소파상 수상

작품 및 평가[편집]

그는 홍난파·박태준과 함께 동요 작곡계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2] 대표작으로 《반달》, 《설날》, 《고기잡이》, 《기찻길 옆 오막살이》 등이 있다.

각주[편집]

  1. 이동 「반달 할아버지」尹克榮 선생 "모두들 童心으로 살면 社會 밝아져요", 《경향신문》, 1984.4.12.
  2. ↑ 이동:  한국음악/한국음악/한국의 서양음악가/작곡가/윤극영, 《글로벌 세계 대백과》
  3. 이동 童心과 함께 산 平生, 《동아일보》, 1988.11.16.

=======================

요약 작곡가. 동요 작곡의 선구자이다. 동요집에는 〈반달〉·〈설날〉·〈꾀꼬리〉·〈귀뚜라미〉·〈두루미〉·〈꼬부랑 할머니〉·〈흐르는 시내〉·〈소금쟁이〉·〈고드름〉·〈파랑새를 찾아서〉 등 모두 10편의 동요가 실려 있다.

 

도쿄 음악학교의 사범과 재학시절인 1922년 방정환·조재호·진장섭·손진태·정순철·고한승·정병기와 함께 한국 최초의 어린이 문화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고 동요를 작곡하면서 어린이운동을 이끌었다.

1923년 조선소년운동협회를 조직하고 그해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제정했다. 1924년 동요 〈반달〉을 작곡하고, 한국 최초의 노래단체인 '달리아회'를 조직·지도했다. 일본 창가 말고는 부를 노래가 마땅히 없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반달〉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널리 불렸던 노래였다. 1926년 〈반달〉이라는 제목으로 동요집과 레코드 집을 펴냈다.

동요집에는 〈반달〉·〈설날〉·〈꾀꼬리〉·〈귀뚜라미〉·〈두루미〉·〈꼬부랑 할머니〉·〈흐르는 시내〉·〈소금쟁이〉·〈고드름〉·〈파랑새를 찾아서〉 등 모두 10편의 동요가 실려 있다. 그해 북간도로 이사한 뒤에도 동요 작곡을 계속했고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400편 이상의 동요를 남겼다. 1968년 그의 업적을 기리는 노래비가 창경궁에 세워졌고 지금은 어린이대공원으로 옮겨져 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410 오늘의 시는 하나의 시적 세계어의 성립을 지향해야.. 2017-04-18 0 1889
409 시가 려과없이 씌여지면 시가 산만해지고 긴장감을 잃는다... 2017-04-18 0 1829
408 불쌍한 시들을 위하여 시인들은 장인정신을 갖추어야... 2017-04-18 0 2134
407 시는 쉬지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여야... 2017-04-18 0 2025
406 시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필치로 속이 꽉차게 써야... 2017-04-18 0 2236
405 시는 삶의 희노애락이 얼룩진 보물상자에서 나온다... 2017-04-18 0 2371
404 시는 상투적인 설명에 그치지 말아야... 2017-04-18 0 2403
403 시인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오늘도 많이 떨어지고... 2017-04-18 0 2092
402 초현실주의는 문학예술운동을 넘어선 삶의 한 방식이다... 2017-04-11 0 3660
401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영화를 본후 시쓰기... 2017-04-10 0 2797
400 단시 모음 2017-04-10 0 3053
399 시는 온몸으로 온몸을 다해 밀고 가는것이다... 2017-04-10 0 2111
398 장 콕토는 시인이자 화가이자 영화감독이였다... 2017-04-10 0 2927
397 "...뼛가루 한점이라도 원쑤의 땅에 남길수 없다"... 2017-04-09 0 3380
396 "부끄럼 없는 인생"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2017-04-08 0 2346
395 시는 압축과 생략의 문학이다... 2017-04-08 0 2713
394 시작은 조탁(彫琢)과 사랑이다... 2017-04-08 0 2509
393 윤동주의 무기는 "시"였다... 2017-04-06 0 2325
392 시는 정서의 흐름으로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2017-04-06 0 2445
391 [시문학소사전] - "그로테스크"란?... 2017-04-05 0 2615
390 [시문학소사전] - "아라베스크"란?... 2017-04-05 0 3499
389 현대시를 알려면 현대시의 구조를 알아야... 2017-04-05 0 3208
388 시인은 추한 명예를 베고 눕지 않는다... 2017-04-05 0 2435
387 시를 쓰는 기본자세는 사물에 대한 애정이다... 2017-04-04 0 2575
386 현대시는 전통과 현대 서구적인것의 접목작업을 공감하기 2017-04-04 0 2265
385 시작하기전 철학공부를 하지 안아도 된다?... 꼭 해야 한다!... 2017-04-03 0 2250
384 시작은 섣부른 감정을 억제하고 간접화법으로 노래하라... 2017-04-03 0 2154
383 시는 멀리에 있는것이 아니라 가까운 삶속에 있다... 2017-04-03 0 2647
382 어머니의 말은 풍성한 시의 원천 2017-04-03 0 2051
381 시에 우리 겨레의 숨결을 옮겨 놓아야... 2017-04-03 0 2355
380 시작은 생활로부터의 도피이며 해방이다... 2017-04-03 0 2605
379 시를 짓기전 들여마셔야 할 공기와 내뱉어야 할 공기가 어떤지 생각해보기... 2017-04-03 0 2237
378 "쉬운 시"는 눈으로 쉽게 읽히고 가슴속에 깊은 향기를 풍긴다... 2017-04-03 0 2381
377 시는 정보의 전달 수단이 절대 아니다... 2017-04-03 0 2691
376 시인은 한편의 좋은 시를 위하여 수백편의 시를 쓰고 버릴줄 알아야... 2017-04-03 0 2555
375 혼을 불사르지 못하는 시인은 그 생명력이 짧을수밖에 없다... 2017-04-03 0 2344
374 시인은 구도자로서 억지를 부려 결과물을 얻어서는 안된다... 2017-04-03 0 2307
373 시적 령감은 기다리는 자의것이 아니라 땀흘려 찾는 자의 몫... 2017-04-03 0 2405
372 시를 쓰는 행위는 신과의 씨름이다... 2017-04-03 0 2323
371 시는 시인의 삶을 반추하는 그 시대의 사회적 산물이다... 2017-04-03 0 2220
‹처음  이전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