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자 문국진의 분석
두 개의 ‘도비니의 정원’ 비교
고양이 등장 여부로 자살 추정
내과 의사 박광혁의 진단
죽음에 이르게 한 술에 주목
마지막 과정 의료과실 의혹도
법의학,
예술작품을 해부하다
문국진 지음
이야기가있는집
미술관에 간 의학자
박광혁 지음, 어바웃어북
요절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90)는 문제적 인간이었다. 미친 듯이 그림에 탐닉했던 그는 귀를 자르고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등 짧고 굵은, 나아가 극적인 삶으로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최근 개봉한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는 그의 죽음에 얽힌 의구심과 작품세계를 회오리치는 화풍으로 살아 움직이게 해 불행하게 살다 갔지만 남긴 것 많은 사나이 고흐의 일생을 반추하고 있다.
법의학자와 의사 두 명이 동시에 고흐에게 집중한 것은 그러니까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풍부하고 신묘한 콘텐트의 인간도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는 심지어 고흐의 죽음을 규명한 책을 쓰려 ‘자료 부검’을 실시해 그의 사인을 파헤쳤다. 그림 속 인물의 생로병사가 궁금한 내과의 박광혁씨는 고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독주(毒酒) 압생트를 영감을 준 ‘초록 요정’이라 부르고,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의사 두 명을 거론하며 의료과실의 가능성을 내비친다. 고흐의 죽음은 동생 테오 가족을 위한 자살이면서, 동시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한 ‘사회적 타살’이란 것이 두 의학도의 결론이다.
의학의 눈으로 명화(名畫)를 해부하면 억울한 죽음이 좀 줄어들 수 있을까. 문 교수는 예술가의 경우, 작품을 검체(檢體)로 분석해 법의학이 목적하는 인권의 침해 여부나 사인 등을 가려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술작품을 즐기는 새로운 감상 방법도 될 수 있어 일석이조인 이 분야를 ‘예술법의학’ 또는 ‘의학탐정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을 파헤친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문국진 교수와 박광혁 내과의도 고흐의 죽음을 분석한다. [중앙포토]
다시 고흐로 돌아가 보자. 문국진 교수는 고흐가 생을 마칠 무렵인 1890년에 그린 ‘도비니의 정원’ 두 점을 비교해 검은 고양이가 ‘있고 없고’로 자살했음을 입증한다. 꽤 흥미로운 추측이지만 100% 확증할 수는 없다. 다만 고흐가 남긴 편지 800여 통과 600여 점 작품을 샅샅이 분석해 자살에 대한 전형적인 위험인자를 내포하고 있는 자살학의 교본임을 밝힌 점은 평가할 만하다. 문 교수는 “예술 해부의 대상이 되는 창작물 중에서도 미술작품은 가장 믿을 수 있는 분석 대상이 된다”며 “시대를 증언하는 증인의 역할을 한다”고 결론짓는다.
인권 침해를 줄이고 억울한 입장에 처하는 사람이 없도록 검시제도 수립을 강력히 주장해온 문 교수의 책이 다소 딱딱한 데 반해, 박광혁 내과의의 명화 속 의학 이야기는 시시콜콜 의학 상식이 곁들여지면서 상상력을 자극한다. ‘통풍’을 주제로 영국 정치 풍자화가 제임스 길레이의 작품을 소개하고, 스페인 화가 주세페 데 리베라의 ‘안짱다리 소년’이 실은 선천적인 기형인 내반족 환자임을 증명한다. 그는 “한 점의 그림에서 오랜 상처를 치유할 처방전을 얻기도 한다. 이것이 의사인 제가 그림에 매료된 이유일 것”이라고 말한다.
두 의학도가 그림을 뜯어보는 시각을 보면 역시 ‘의사의 눈’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이 예리한 눈의 메스로 통찰한 가정은 모두 맞을까. 이미 타계한 화가들은 말이 없다. 상상은 자유다. 미술과 만난 법의학이 내린 진단은 인류의 미래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술작품을 법의학적 안목으로 분석해 인권의 침해 여부와 사인을 가려내는 일도 어떤 의미에서는 제2의 창작에 속한다 할 수 있다”는 문국진 교수의 한마디가 느껍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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