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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굴 하숙방에서 쓸쓸하게 운명한 "시의 왕" - 폴 베를렌느
2017년 12월 26일 23시 51분  조회:4268  추천:0  작성자: 죽림

 

 

 

  

 

 

가을 노래 / 베를렌느 

 

 

가을날 바이올린의 서글픈 소리

 

하염없이 타는 마음 울려 주누나. 

 

종소리 가슴 막혀 창백한 얼굴

 

지나간 날 그리며 눈물 짓는다.

 

쇠잔한 나의 신세 바람에 불려

 

이곳 저곳 휘날리는 낙엽같아라.

 

 

 

내 마음에 눈물 내리네/베를렌느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가슴 속 깊이 스며드는


 이 슬픔은 무엇일까?



속삭이는 비 소리는


 대지 위에, 지붕 위에!


울적한 이 가슴에는


 아, 비 내리는 노래 소리여!

 


역겨운 내 맘 속에


 까닭없이 눈물 흐른다.


웬일일까! 배반도 없었는데?


이 슬픔은 까닭이 없다.



사랑도 미움도 없이


 내 마음 왜 이다지 아픈지,


이유조차 모르는 일이


 가장 괴로운 아픔인 것을!

 

 

베를렌느

Paul-Marie Verlaine
1844~1896
프랑스 상징파의 시인 

 

 

 


로렌 주에서 태어났다. 파리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부에서 공부하였으나 중퇴하고,

 

20세에 보험회사에서 일하다가, 파리 시청의 서기로 근무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시풍은 낭만파나 고답파의 외면적이고 비개성적인 시로부터 탈피하여 무엇보다도

 

음악을 중시하고 다채로운 기교를 구사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토성인의 노래><화려한 향연><좋은 노래>

 

<말  없는 연가 예지(叡智) Sagesse (1881)> 등이 있다.

 

 

 


 

 

//

    

 





흰 달빛--- / 베를렌느

 

 

흰 달빛

숲속에 환하고;

가지가지마다

한 목소리 흘러나와

나무 그늘 아래로---

 

오, 사랑하는 이여,

 

연못은

깊은 거울,

그 속에 검은 버드나무

그림자 드리우고

그 위에 바람이 운다---

 

자, 지금은 꿈꿀 때,

 

크고도 부드러운

안식이

달무리진

창공에서

내려오는 듯---

 

지금은 더없이 그윽한 때.

 

 

가을 노래 / 베를렌느

 

 

가을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외로운

가락으로

      내 마음 여이나니.

 

종소리 나면

가슴 꽉 막혀

      파리한 얼굴로

지난 날

돌이켜보며

      눈물 흘린다.

 

나도 가버리리라,

모진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떠도는

      낙엽과 같이

 

 

거리에 비 내리듯--- / 베를렌느

 

                   거리에 조용히 비가 내린다.

                        -아르튀르 랭보-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맘 속에 눈물 내린다.

가슴 속에 스며드는

이 외로움은 무엇이런가?

 

속삭이는 비 소리는

땅 위에, 지붕 위에!

울적한 이 가슴에는

아, 비의 노래 소리여!

 

역겨운 내 맘 속에

까닭 없는 눈물 흐른다.

무엇, 배반은 없다고?

이 슬픔은 까닭 없는 것.

 

사랑도 미움도 없이

내 마음 왜 이다지 아픈지,

이유조차 모르는 일이

가장 괴로운 아픔인 것을!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 베를렌느

 

       1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아들아, 나를 사랑하여

야 한다. 너는 보지 않는가?

창에 찔린 내 옆구리, 빛나며 피 흘리는 내 심장,

그리고 너의 죄로 무거운 내 아픈 팔을

 

그리고 내 두 손을! 그리고 너는 보지 않는가? 십자가와

못들과 담즙과 해면(海綿)1)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네게

육(肉)이 지배하는 이 괴로운 세상에서

내 살과 피, 내 말과 목소리만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나 자신도 너를 죽기까지 사랑하지 않았던가?

오, 성부(聖父) 안의 내 형제여, 오, 성신(聖神)  가운데

내 아들이여

그리고 나는 기록된 바와 같이 고난을 받지 않았던가?

 

나는 너의 최후의 고뇌를 흐느껴 울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는 네가 밤마다 흘리는 땀을 흘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심한 친구여, 그대는 내가 있는 곳을 찾고 있다고?

 

                                                 1)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목 마르다고 하자

                                                               군사들은 담즙(혹은 초)로 적신 해면을

                                                               그의 입에 갖다 대었다는 성경 구절을 말함.

 

           8

 

아, 주님이시여, 어찌된 일입니까? 아아! 저는 지금 엄

청난 기쁨으로

온통 눈물에 젖어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저에게 기쁨과 동시에 고통을 줍니다.

그리고 악(惡)과 선(善)은 똑같이 저를 끄는 힘을 가졌습

    니다.

 

저는 웃고, 웁니다. 주님의 목소리는 마치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나오라 부르는 나팔 소리와 같습니다.

저는 봅니다, 방패 위에 높이 실려가는

청백(靑白)의 천군 천사(天軍天使)들을

그러나 이 나팔 소리는 저를 자랑스러운 불안으로 이끌어

갑니다.

 

저는 당신이 저를 택하심에 황홀하여 또한 두렵습니다.

저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관용을 압니다.

아! 얼마나 큰 노력이, 그러나 이 얼마나 뜨거운 열정(熱情)

입니까! 그리하여 저는

 

겸허한 기도에 가득 차 지금 여기 있습니다. 비록 이 크

나큰 심적 동요는

당신의 목소리가 저에게 알려 주신 소망을 아직은 혼동하

고 있어,

저는 떨면서 갈망하고 있습니다.

 

 

폴 베를렌느(1844~1896):

베를렌느의 생애는 추문으로 얼룩지고 비참과 불행으로 연속되었다.

한 마디로 의지라는 것이 결여되어 음주와 방랑과 본능적 충동에 휘말려 아내에게는 동성애로 인해 이혼 당하고, 두 번이나 감옥살이를 하였으며, 만년에는 가난과 병으로 계속 자선 병원의 신세를 져야만 했던 인생이었다. 그런데 이 추하게 생긴 용모와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알콜 중독자인 그에게 이렇게 맑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시가 흘러나왔다는 것은 기이한 신의 배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폴 베를렌느는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도시 메츠에서 출생하였다. 외아들로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 7세 때 부모와 함께 파리로 올라와 당시의 보나파르트 중고등 학교(지금의 콘돌세 중고등 학교)에 입학, 이를 졸업하고 바카로레아(대학 입학 자격 시험)도 합격하였다. 그러나 세상일에 별다른 야심이 없는 그는 대학 진학에는 뜻이 없어 얼마 후 그가 20세 되던 해 그의 아버지 친구의 주선으로 파리 시청의 하급 서기로 들어갔다.

 그 후 7년 동안 보불 전쟁이 일어나 그가 그 자리를 물러나기까지, 그는 줄곧 같은 과, 같은 자리, 같은 책상에 앉아 매일 똑같은 일을 되풀이 했다. 그렇다고 불평하거나 전직을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의 유일의 관심사, 유일의 노력은 마음이 내키면 시를 써 보는 일이었으며 유일의 즐거움은 퇴근 후 카페에 들러 압생트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문학과 세상일을 이야기하는 일이었다. 그의 음주벽은 이 때 이미 상당히 진전되어 그의 부모나 친구들도 걱정할 정도이었다.

 그는 시청 재직시 2권의 시집인 <토성인 시집 (1886)>과 <우아한 잔치(1869)>를 자비로 출판하였다. 이 두 시집이 나왔을 때 위고를 비롯, 일부 문인들의 형식적인 찬사와 격려도 없지 않았으나 그의 진가를 알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870년 보불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그는 마틸드 모테라는 16세 소녀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했다. 비록 전쟁의 위험과 불행이 예견되었으나 이로써 베를렌느는 오랜 외로움과 무위 끝에 그의 생애에 밝은 햇빛이 비추는 듯했다. 이 아름다운 심경을 노래한 얄팍한 시집이 <기쁜 노래(1871)>이다. 그러나 가정적 불행은 너무나 빨리 찾아왔다. 결혼한지 1년도 못 되어 랭보라는 소년이 나타났다. 베를렌느 보다 10년이나 아래인 17세의 폭풍 같은 이 천재는 그를 삽시간에 정복하고 지배하였을 뿐 아니라 그의 신혼 가정을 산산이 부셔 버렸다. 드디어 베를렌느는 아내와 가정을 버리고 랭보와 함께 벨기에-영국 등지를 방랑하며 동거 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 두사람 사이에도 갈등이 생긴다. 부뤼셀에서 사소한 일로 베를렌느는 랭보에게 총을 쏘아 부상케 하여 벨기에의 몽스 감옥에서 2년 동안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1875년 1월 베를렌느는 어머니만이 홀로 기다리는 옥문을 나섰다. 그는 2년 동안의 옥중 생활로 참회하고 새사람이 되었다. 그는 감방에서 <무언(無言)의 연가>를 써서 아내 마틸드에게 용서를 구하고, 출옥하기 얼마 전에는 신비적인 체험을 통하여 열렬하고 눈물겨운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가 이로부터 훨씬 뒤에(1881) 출판한 시집 <예지(叡知)>와 이외의 몇 편의 작품집은 이 때의 종교적 체험을 순수하고 솔직하게 담은 것이다.

 감옥을 나온 그는 새사람이 되어 자기 힘으로 살기 위하여 파리를 떠나 그 후 몇 해 동안 영국과 벨기에의 시골 중학교의 교사로 초빙되어 프랑스어 또는 영어를 가르쳤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선생으로 학생들과 학부형에게 사랑과 존경도 받았다. 한때는 농부가 되어 농원을 일으키려고 노력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결심도 노력도 허사였다. 그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사탄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그 이유로서 그가 내심 극진히 사랑하여 온 아내 마틸드가 그이 호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법적으로 헤어지게 된 사실을 든다. 여하튼 그는 다시 술을 마시게 되고 본능적 충동과 욕구가 그를 엄습해 그는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 올라왔다. 파리에서의 그의 생활은 비참 그것이었다. 팔리지 않는 원고를 들고 떨리는 한 손에 단장을 짚고 한 쪽 다리를 끌려 두 눈을 반쯤 감고 파리의 거리를 헤매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어려운 동안에도 시작(詩作)과 소설과 평론 등의 작품 활동은 계속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그의 시학(詩學)이 들어 있는 <옛날과 지금(1884)>, 그리고 당시 문단에서 무시되거나 참다운 가치가 알려지지 않았던 코르비에르, 빌리에 드 릴르-아당, 말라르메, 랭보와 자기 등 불행한 시인들의 예술적 가치를 논한 그의 시론 <저주받은 시인들(1884)>은 문단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잊혔던 이들 시인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1886년, 그를 사랑하고 돕고 보살펴 주던 유일의 보호자인 그의 어머니도 죽었다. 이 헌신적인 어머니를 그는 한 해 전에 목을 졸라 죽게 할 뻔하여 1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이제 베를렌느는 혼자 살아가기 위해 더욱 많은 시. 소설, 수기, 잡문 등의 글을 써야 했다. 이 가운데는 그의 시 작품 가운데 걸작이라고 인정되는 "평행하여(1889)"도 들어 있다.

 그가 50세가 된 만년에는 그의 시가 차츰 알려지고 젊은 시인들 특히 상징주의와 데카당(퇴페주의)파의 시인들 사이에서 그의 시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고 이것은 또 그의 불행하고 파란 많은 생활과 겹쳐 그를 둘러싼 일종의 문학적 전설이 생겨났다. 이제 그는 카페나 병원으로 그를 찾는 많은 젊은 문인들에게 새로운 예술을 가르치는 시단의 소크라테스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 젊은 문인들의 추대로 르콩트 드 릴르의 뒤를 이어 '시의 왕'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896년 그는 52세로 빈민굴의 하숙방에서 청부의 팔에 안겨 쓸쓸하게 죽었다. 그러나 그의 유해는 운집한 시인, 화가, 문인, 배우 등 그의 숭배자들에 둘러싸여 성대하게 바티뇰 묘지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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