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쇼의 하이쿠 기행/ 마츠오 바쇼 지음/ 김정례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하이쿠(俳句)는 일본의 전통 시다. 홋쿠(癸句)라고도 하는데, 3행에 17음절로 5'7'5로 구성되어 있다. 세로로 쓸 때는 한 줄로 쓰는 게 일반적인데, 가로로 쓸 때는 행의 의미를 분명하게 구별하기 위해 3행으로 쓰기도 한다.
하이쿠는 서정시이며 계절을 지칭하는 낱말이 반드시 들어간다. 가끔 하이쿠를 두고 '언어유희' '지적재치'라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으나, 모든 시(詩)가 그렇듯 하이쿠 역시 지적재치나 시적 아름다움을 넘어, 살아 있는 것들의 의미와 본질,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장맛비 내리고 // 물가에 서 있는 // 물새의 다리가 짧아지네.'
이는 하이쿠의 거장 마츠오 바쇼(松尾芭蕉)의 작품이다. 바쇼는 렌가(連歌)와 단카(短歌)에서 비롯된 짧은 시를 '하이쿠'라는 하나의 형식과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하이쿠란 용어는 그의 사후에 나왔다.
장마가 시작되고, 강의 물안개는 짙어지고, 물은 점점 불어난다. 거기, 물새는 꼼짝 않고 서 있다. 바쇼가 이 강물 앞에서 만약 '장맛비 내리고, 강물이 불어나네' 라고 읊었더라면 그것은 시가 아니라 현상에 그쳤을 것이다. 해가 뜨고 지고, 날이 밝고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 것은 다만 현상일 뿐이다. 이 현상 속에서 삶의 본질을 발견할 때, 비로소 그것은 시가 되고 하이쿠가 된다. 물가의 물새와 점점 물속으로 잠기는 다리는 유한한 시간 속에 살아있는 것들을 은유한다.
이 같은 특징은 비단 바쇼의 작품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52세로 세상을 떠난 타다토모(忠知)을 보자.
'이 숯도 한때는 // 흰 눈이 얹힌 // 나뭇가지였겠지.'
타다토모는 찻물을 끓이기 위해 숯불을 피우면서 이렇게 썼다. 숯은 땔감으로 생의 마지막 절차를 따르는 중이다. 시인은 검은 숯에서 찻물을 데워줄 '열기'를 보는 게 아니라, 그것이 생명으로 활기찼던 푸른 시절을 생각함으로써 살아 있는 것들의 유한함을 노래하는 것이다. 숯을 통해 지금은 살아서 찻물을 끓이고 있지만 머지않아 생을 마치게 될 시인 자신의 운명 혹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따져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그것이 생각처럼 답하기 쉬웠더라면 그 많은 시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많은 하이쿠 시인들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하이쿠에 반드시 들어가는 '계절어'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시간과 인연 맺고 살아가는 존재의 유한함을 토로하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쿠는 도쿠가와 시대(에도막부 시대;1603~1867) 단카와 함께 유행했다. 당시 마츠오 바쇼가 쓴 하이쿠는 대부분 렌가와 홋쿠였다. 하이쿠라는 말은 하이카이(俳諧 : 17음절의 우스꽝스러운 시)의 하이와 홋쿠라는 단어의 쿠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계절을 암시하는 단어 혹은 묘사가 반드시 들어가야 했지만, 나중에는 주제범위가 넓어졌고, 가능한 적은 단어로 더 많은 것을 암시하는 예술로 발전했다.
18세기 요사부손(與謝蕪村), 18, 19세기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9세기 말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등이 유명한 하이쿠 시인이다. 현대 일본에는 프로와 아마추어 하이쿠 시인이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과 유럽, 한국에도 하이쿠를 짓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
전통 하이쿠에 들어가는 계절어처럼 ... 어떤 면에서 인생은 한편의 하이쿠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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