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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의 사상가이며 도가(道家)의 시조이다.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
『노자도덕경』이라고도 불리우는 『노자』는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상당히 발전한 무렵부터 한(漢)대까지의 도가 사상의 소산(所産)이다. 『노자』의 중심 사상은 인의(仁義) 등 도덕이나 지혜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인민을 지배하려고 하는 유가(주로 맹자)에 대하여, 도덕ㆍ지혜를 버리고 지배의욕을 버리고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의하여 지배하려고 하는 정치사상과, 동일하게 무위무욕(無爲無欲)으로 남에게 겸양하는 것에 의하여 성공ㆍ보신(保身)하려고 하는 처세술이다.
이들에 대한 근거로서, 현상의 배후에 불가지(不可知)의 실재(實在)인 도(道)를 설정하여, 우주생성설과 음양의 자연학을 도입하여, 세계는 도(道)로부터 나오고 '도'에 의하여 생성ㆍ사멸의 운동을 한다고 하는 객관적 관념론을 전개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자 [老子] (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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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사람들은 자기 밖의 황제 안에서 자기의 직접성을 보았지만, 다음의 단계에 이르면 자기 내면 안에서 자기를 보고자 하는 교설이 나타난다. 이것이 도교이다[『종교철학』 16. 328 참조]. 헤겔에 따르면 내적인 것, 즉 추상하는 순수사유로의 이러한 방향은 이미 고대 중국에서 발견되지만, 그러나 그 교설이 좀더 변화하여 심화된 것은 후대에서이며, 특히 노자에서이다. 노자에 의해서 심화된 교설에서는 사상이라는 순수한 지반으로의 이행이 싹트고 있다. 그러나 사상의 추상에 전념하는 사람들은 그것 자체에서 순수한 불사의 존재가 되고자 의도했다. 그러므로 생명성 · 의식 · 정신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사상은 완전한 추상에 그치게 된다.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공자와 노자를 동시대인이라고 하고 있지만, 현대의 연구에서 노자는 공자보다 100년가량 후(춘추시대 말기)로 되고 있다. 헤겔은 노자에 관한 자료로서 아벨 레뮈자(Abel Rémusat 1788-1832) 「노자의 생애와 견해에 관한 각서」(Paris 1824)와 『노자도덕경』의 번역을 읽고 있었다.
-핫타 다카시(八田隆司)
[네이버 지식백과] 노자 [老子, Lao-tse] (헤겔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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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에서는 규정성의 파기와 언어에 대한 부정을 강조하는데, 유가사상이 중국 북방의 황하유역에서 형성된 것인 반면, 이런 무위자연의 사상은 중국 남방의 양쯔강유역에서 형성되었다는 기질적인 차이로 설명되기도 한다.
즉, 북방은 생존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적이고 투쟁적이어야 하지만, 남방은 날씨가 온화하고 자연 조건이 순조로워 평화적이고 낭만적이었는데, 이런 분위기의 차이가 사상 형성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유가사상이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덕목을 설정하여 예교(禮敎)를 강조하면서 현실적인 상쟁대립이 전제된 반면, 『도덕경』의 사상은 상쟁의 대립이 인위적인 것으로 말미암아 생긴다고 보고, 무(無)와 자연의 불상쟁(不相爭) 논리를 펴나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도덕경』의 사상은 학문적인 진리 탐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위·진, 남북조시대처럼 사회가 혼란과 역경에 빠져 있을 때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혜를 밝혀 주는 수양서로서도 받아 들여졌으며, 민간신앙과 융합되면서 피지배계급에게 호소력을 지닌 사상 및 세계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우리 나라 자료에는 『삼국사기』 권24 백제본기 2 근구수왕 즉위년조에 근구수왕이 태자로 있을 때 침입해 온 고구려군을 패퇴시키고 계속 추격하려 하는 순간, 휘하의 장수 막고해(莫古解)가 다음과 같이 간언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듣기로는 도가의 말에, 족함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얻은 것이 많은데 더 욕심을 내어서 무엇합니까?” 이 말을 듣고 추격이 중지되었다고 하는데, 이 구절은 『도덕경』 제44장에 나오는 말이다.
『도덕경』의 구절이 장수의 입에까지 오를 정도였다면 당시 사회에서는 상당히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졌던 것임에 틀림이 없고, 나중의 일이지만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도 비슷한 내용의 시를 수나라 장수에게 보낸 것이 『삼국사기』에 나타나 있다.
『삼국유사』 보장봉로조(寶藏奉老條)에는 당나라 고조(高祖)가 고구려인의 오두미교 신봉 이야기를 듣고 624년 천존상과 함께 도사를 보내어 『도덕경』을 강론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이듬해 영류왕은 당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불(佛)·노(老)를 배우고자 하였고, 고조는 이를 허락하였다는 것이다.
노자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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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논어
인.예.정명사상.덕치.대동사회를 주장
맹자-맹자
인의.성선설.왕도정치.민본주의.역성혁명을 주장
노자-도덕경
도.무위자연.상선약수.무위정치.소국과민 주장
장자-장자
도.소요유.물아일체.제물론.좌망.심재를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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