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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970년 5월《사상계》에 발표한 김지하의 담시(譚詩)이다. 담시란 “어원적으로 무가(舞歌)에서 출발한 장르로서 서정적, 서사적, 드라마적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특수한 형식”(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인 서구의 발라드(ballade)를 번역․차용한 번역어인데, 김지하는 전통적인 민중적 예술 형식인 판소리의 미학을 계승하여 극적 요소, 서정적 요소, 서사적 요소를 모두 결합한 ‘소리’를 ‘담시’라고 규정했다.
김지하는 1970년대에 여러 편의 담시를 창작했는데, 「오적(五賊)」은 그 첫 번째 발표작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개발독재 과정에서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富)를 축적한 대표적 인물형을 을사오적에 빗대어 비판한 정치시이자 풍자시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오적’의 구체적 정체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다. 김지하는 이들 다섯 인물 유형의 한자 표기를 ‘개견(犬)’자(字)가 들어가는 새로운 조어로 표기함으로써 그들을 동물화했다. 이 시의 구체적인 배경은 6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인데, 시인은 국민들 대다수가 가난하게 살고 있음에도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이들 ‘오적’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 비판하기 위해 이 시를 썼다.
특히 이 시에는 ‘오적’ 이외에도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할 임무를 맡은 포도대장이 등장한다. 경찰이나 사법당국을 상징하는 포도대장은, 그러나 시에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오적에게 매수되어 죄 없는 국민들을 투옥하는 권력의 앞잡이로 등장한다. 결국 포도대장은 날벼락을 맞고 갑작스럽게 죽는데, 이는 고전소설의 권선징악을 차용하여 경찰과 사법당국을 비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김지하의 이 작품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사상계》는 폐간되었고, 작가와 편집인 등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오적」은 외화(外話)와 내화(內話)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판소리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다. 이 시에서 외화(外話)에는 창작의 배경을 서술한 부분(“~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과 자신의 시가 구전되는 이야기를 집약한 것임을 밝히는 뒷말(“~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같은 거지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의 두 부분이 포함된다.
내용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화(內話)는 9개의 작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적을 소개함-오적의 행적을 소개함-포도대장에게 오적을 체포하라는 어명이 떨어짐-꾀수가 오적으로 오해받아 고문을 당함-꾀수가 오적들의 거처를 밝힘-오적을 체포하기 위해 포도대장이 출동함-포도대장이 오적에게 매수당해 꾀수가 체포됨-포도대장은 오적들의 앞잡이가 되어 살아감-오적과 포도대장이 날벼락을 맞아 급사함>이 대략적인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다.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담시는 민중적 장르이기 때문에 오적에 대한 비판과 풍자는 매우 적나라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시의 화자는 오적 이야기가 마치 전래되는 이야기를 구술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으나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처럼 공간적 배경을 ‘서울’로 설정함으로써 60~70년대 한국의 정치․경제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 시가 발표될 무렵 우리 사회는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국가권력의 강압적인 통치에 신음하고 있었다. 발표 직전인 1969년 9월에는 국회에서 대통령의 3선 개헌안이 단 6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통과됨으로써 군부 정권의 장기 집권 시도가 노골화되었고, 발표 즈음인 1970년 3월에는 정인숙이라는 여인이 한강변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4월에는 부실 시공한 와우아파트가 붕괴되어 33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해 11월에는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것을 요구하며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배경으로 발표된 「오적」의 영향력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 작품이 발표된 《사상계》5월호는 5,000부가 모두 팔려 매진되었다고 한다.
「오적」은 외화(外話)와 내화(內話)로 구성되었다. 외화는 창작의 배경을 밝힌 부분과 자신의 이야기가 창작이 아니라 구전되는 내용임을 밝히는 뒷말로 이루어졌고, 내화는 ‘오적’에 해당하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의 부정 비리를 고발하고 조롱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의 행복한 삶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안위와 출세만을 살피는 정치인들은 문학의 유력한 비판 대상이었다. 하지만 정치인에 대한 김지하의 비판은 지금 보아도 섬뜩할 정도의 살기와 풍자이다. 특히 박정희를 비롯하여 권력을 장악한 군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장면은 지금 읽어도 흥미롭다.
시인 김지하가 1970년 『사상계(思想界)』 5월호에 발표한 장편 풍자시.
‘이야기조의 시’라는 의미로 ‘담시(譚詩)’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당대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비리의 실상을 을사오적(乙巳五賊)에 비유해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이 작품은 발표 직후의 사회정치적 파장으로 더 유명하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전통적 운문양식인 가사, 타령, 판소리사설 등을 현대적으로 변용함으로써 새로운 풍자적 장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대담한 사설의 도입과 함께 이루어진 언어의 해체를 부분적으로만 보게 된다면, 시적 긴장이나 정서의 절제보다는 격렬한 사설조에 조소와 풍자의 어조를 담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해학을 동반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비장함을 드러내기도 하는 이 풍자의 어조는 운문양식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경지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이래 으뜸 /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게 일쑤요 /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 (중략) / 서울이란 장안 한복판에 다섯도둑이 모여 살았것다.’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그 풍자성과 격렬한 어조는 시대성 또는 상황성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지는 실천적 의지를 보여준다. 시어의 반복과 대담한 생략, 이념적 추상성을 제거해 주는 의성 · 의태어의 활용, 시의 언어로서 부적절한 것으로 취급되어 온 비어와 속어의 배치 등은 김지하의 담시가 보여주고 있는 수사학적 특징들이다. 이러한 수사적 장치는 권위에 대한 부정, 비리에 대한 풍자와 비판, 시인의 행동적 의지의 적극적인 구현을 위해 기능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지하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대상은 재벌, 국회위원, 고급관료, 장차관, 장성 등이다. 이 다섯 역적을 탄핵하려 하지만, 포도대장마저 매수되어 오적(五賊)의 개집을 지키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다. 하지만 이 작품은 포도대장과 오적(五賊)들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벼락을 맞고 급살한다는 결말을 통해 당시 정치 세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가 발표된 직후 시인 김지하는 반공법(反共法) 위반으로 100여 일간 투옥되었고 잡지 『사상계』는 강제 폐간당한다.
<정의>
1993년 5월 솔 출판사에서 펴낸 김지하 시집.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분단 시대를 통과해오면서 우리 민족문학사는 불운과 고통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만큼이나 깊이 상처가 나고 그 상처는 치유를 잊은 대 거듭 덧났다. 민족문학사는 그러나 그 신음의 세월 속에서도 저 찬란한 민족사의 전통과 기억을 마침내 되살려 꽃피우니, 그 화려하고 장엄한 개화가 바로 김지하의 담시(譚詩)이다. 부정과 부패로 찌든대로 찌든 군사 독재 정권이 탄압과 흉계를 노골화하기 시작하던 1970년에 시인 김지하는 통쾌 무비하게 군사 정권의 부패상을 통타하는 내용의 장시를 (담시)라는 독창적인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민족의 무한한 문화적 긍지인 판소리 형식에 실어 당시 부정 부패의 주범들을 (오적 五賊)으로 규정, 이들의 반-민주적, 반-민족적 행태를 통쾌하게 풍자하고 공격한 담시 (오적 五賊)은 살벌했던 군사 공포 통치에 대해 정면 항전을 전개한 민주적이고 민중적이며 애족적인 시인의 행동하는 양심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김지하의 담시가 지닌 귀중함과 탁월함은 단지 이러한 행동하는 양심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더 깊이는 오랫동안 짓눌리면서 무수히 유실되어온 우리 민족의 정통적 문화적 유산을 후련하게 복권시키고 창조적으로 계승한 민족문화사적 의의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
<세부사항>
*김지하
1995년 9월 17일자 일간지에 김지하 시인은 고통과 수난, 압박의 상징이었던 과거의 `지하`란 이름을 버리고 `김형`이라는 필명(筆名)을 사용한다고 하며, 새롭게 태어난 모습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1941년 전남 목포 출생으로 196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했다. 그는 6.3 사태(1964) 당시 대일 굴욕 외교 반대 투쟁에 참가한 이후 1970년대를 온통 도피와 체포와 투옥을 거듭하며 살아왔다.
오로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만세`를 부를 날을 애타게 염원하며 절규하듯 살아왔다. 1963년 첫 시 <저녁 이야기>를 발표한 이후, <황톳길> 계열의 초기 민중 서정시와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판소리 가락에 실어 통렬하게 비판한 특유의 장시(長詩) <오적(五賊)> 계열의 시들, <빈 산>, <밤나라> 등의 빼어난 70년대의 서정시들, 그리고 80년대의 `생명`에의 외경(畏敬)과 그 실천적 일치를 꿈꾸는 아름다운 `생명`의 시편들을 만들어 냈다.
1975년에는 `로터스(LOTUS) 특별상`을 수상. 시집으로 <황토(黃土)>(1970), <타는 목마름으로>(1982), <애린>(1986),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8), <별밭을 우러르며>(1989), <남(南>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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