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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 "윷놀이"
2020년 02월 24일 23시 14분  조회:5427  추천:0  작성자: 죽림

한국세시풍속사전

윷놀이

 

 

윷-국립민속박물관

윷-국립민속박물관

분야 놀이
계절 봄(음력 1월)
날짜 음력 1월 1일
다른이름 사희(), 척사희()
관련정일

정의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윷이라는 놀이도구를 사용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어울려 즐기면서 노는 놀이. 사희() 또는 척사희()라고도 한다.

유래

윷놀이 유래에 대한 연구는 다각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아직 그 정설은 없다. 부여의 관직명인 저가()·구가()·우가()·마가()·대사(使)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는 가설이 유력하다.

유래

윷놀이에 대해서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자료는 중국의 『북사()』와 『태평어람()』인데 이 책에는 부여의 저포()·악삭() 등의 잡희()가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백제, 고구려, 신라에도 윷놀이가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므로 윷놀이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

고려말 『목은집()』에서 이색()은 저포를 세시풍속이라 하고 현재의 윷판과 같은 것으로 윷말을 써 가며 저포놀이를 하는데, 변화가 무궁하고 강약을 가릴 수 없는 이변도 생겨서 턱이 떨어질 지경으로 우습다고 하였다. 또 남녀노소가 어울려 윷놀이하는 광경을 그린 시()도 있다.

최세진()의 『훈몽자회()』와 이수광()의 『지봉유설()』 에도 윷놀이에 대한 기록이 있고, 특히 김문표()의 『중경지()』 사도설조()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稿)』 사희변증설조()에서는 주역과 성리학적인 견지에서 윷놀이를 논술하고 있다. 그리고 『동국세시기()』에서는 윷과 윷판뿐만 아니라 윷패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윷놀이는 삼국시대 이전에 널리 전승되었고, 고려말 이전에 현행 윷판과 같은 것이 쓰이면서 시()에 등장할 정도로 성행하였으며, 나아가서 조선조에는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될 정도로 크게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윷놀이는 윷과 윷판 및 윷말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놀 수 있다. 이 간단한 도구가 준비되면 편을 갈라서 윷을 던져 나온 윷패에 따라 윷말을 써서 먼저 4동이 나면 승리한다. 매우 간단한 도구와 단순한 방법으로 놀이를 하지만 놀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수들이 흥을 돋우기도 하고 탄식을 자아내기도 한다.
윷의 종류는 가락윷·밤윷·콩윷 등으로 구분된다. 가락윷은 장작윷과 싸리윷이 있다. 장작윷은 길이 20센티미터 정도에 직경 3~5센티미터 정도의 소나무 두 개를 쪼개어 만들고 싸리윷은 길이 10센티미터에 직경 2센티미터 가량의 싸리나무를 쪼개어 만든다. 가락윷은 대체로 중부지방에서 많이 가지고 논다. 밤윷은 굵기가 새끼손가락 정도, 길이는 3센티미터 정도 되는 윷을 종지에 담아 손으로 움켜쥐고 흔들어 바닥에 붓는 식으로 논다. 주로 경상도 등의 남부지방에서 많이 논다. 콩윷이나 팥윷은 콩이나 팥알의 절반을 쪼개어 만든 윷으로 주로 북부지방에서 많이 논다. 
윷판이 언제 만들어져서 보편화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고려 말기 이색의 『목은집』에 현행의 윷판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려말 이전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문표는 『중경지』 사도설조에서 윷판 중앙의 ‘방혀’는 북극성이고 윷판의 바깥까지 둥근 모양은 하늘을, 안의 모난 것은 땅을, 윷판을 이루는 점들은 별자리를 뜻한다고 했다. 그리고 윷판의 네 점과 중점을 오행에 견주어 설명하고 있다. 윷말이 윷판을 돌아 나오는 양상을 춘분()·하지()·추분()·동지()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윷말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는데, 남자들은 주로 바둑알을 많이 이용하고 여자들은 숯이나 사금파리 등을 이용한다.

놀이방법

윷놀이를 할 때 편 구성은 아주 다양하게 할 수 있다. 크게는 마을 단위와 문중 단위로 편을 가르지만 개별 윷놀이는 아주 다양하게 편을 가를 수 있다. 편을 가를 때 윷을 던져서 편을 가르기도 하고 또 마을의 골목이나 도랑을 경계로 가르기도 한다. 개별 윷놀이나 문중 윷놀이를 할 때는 주로 나이순으로 윷을 던져서 편을 가르고, 마을 전체가 놀이를 할 때는 마을의 골목이나 도랑 등을 경계로 가른다. 간혹 지역에 따라 심지를 뽑아 편을 가르기도 한다.
마을 전체나 문중이 윷놀이를 할 때는 마을의 큰집이나 종가() 혹은 서원() 마당에서 한다. 그러나 소수 인원이 윷놀이를 할 때에는 방이나 대청 등 적당한 공간만 있으면 놀 수 있다.
윷놀이를 할 장소가 결정되고 편을 가르면 바로 윷놀이가 시작된다. 먼저 윷을 던져서 선후의 차례를 정한다. 선후가 결정되면 상대편과 교대로 윷을 던져서 나오는 윷패에 따라 윷말을 써서 윷말 4동이 다 나면 이긴다.
윷말은 ‘참’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간다. 놀이꾼이 윷을 던져서 나온 윷패에 따라 윷말을 쓰는데 윷말이 전진하다가 자기편이나 상대편의 윷말을 지나쳐 갈 수 있다. 이때 만약 자기편의 윷말이 있는 지점에 도착하면 두 윷말을 묶어서 한꺼번에 나아간다. 만약 윷말이 상대편 윷말이 있는 곳에 도달하면 그 윷말을 잡으며 윷을 한 번 더 던진다. 그러나 참에 있는 윷말을 잡았을 때는 한 번 더 던질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와 같이 윷판에 윷말을 쓰는 데 다양한 규칙이 있어서 승부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뒤도나 자동임신, 퐁당 등의 변이 요소가 새로이 등장해서 승부에 더 큰 변수가 생긴다.

의미

윷패는 4개의 윷을 던져서 엎어지고 젖혀진 상황에 따라 도·개·걸·윷·모로 결정된다. 윷 3개가 엎어지고 1개가 젖혀진 것은 도라 하여 한 밭을 가고, 2개가 엎어지고 2개가 젖혀진 것은 개라 하여 두 밭을 가며, 1개가 엎어지고 3개가 젖혀진 것은 걸이라 하여 세 밭을 간다. 그리고 4개가 모두 젖혀진 것은 윷이라 하여 네 밭을 가고, 4개가 모두 엎어진 것은 모라 하여 다섯 밭을 간다. 윷과 모를 했을 때는 ‘사리’라 하여 한 번 더 던진다. 윷패에 따라 밭 수를 이렇게 계산하는 근거는 동물의 걸음걸이에서 찾는다.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상징하고 있다. 즉 가축의 크기와 빠르기에 따라 윷패의 밭 수와 윷말의 움직임이 결정된다. 
윷놀이는 정월의 마을 축제로서 남녀노소 누구나 신명으로 놀이를 한다. 윷놀이는 재미로도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윷판은 농토이고, 윷말은 놀이꾼이 윷을 던져 나온 윷패에 따라 움직이는 계절의 변화를 상징해 풍년을 가져오는 것으로 여겼다.

기능

윷놀이가 다른 놀이에 비해 승부의 재미가 특히 큰 것은 이 놀이가 가지는 우연성의 원리와 윷말을 쓰는 원리 때문이다. 또한 윷말을 쓰는 원리도 정해진 규칙을 따르면서 윷패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서로 잡고 잡히면서 승부를 겨룬다. 여기에는 무궁무진한 변화가 따르므로 놀이꾼과 응원꾼은 흥분과 탄식을 교차되는 가운데 놀이에 몰입되어 무아지경에 이른다. 이처럼 윷놀이는 윷패의 우연성과 윷말쓰기의 합리성이 윷판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작용하여 다양한 변수 속에서 승부를 가리기 때문에 독특한 재미가 있다. 이러한 재미는 승부와 직결되기 때문에 마지막 윷말이 갈 때 그 절정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민속놀이 중에서 집단놀이는 주로 지역이나 마을에 의해서 전승된다. 마을 단위로 전승되는 집단놀이는 마을 주민이 참여하여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함으로써 마을공동체가 통합하게 된다. 윷놀이는 지연공동체와 혈연공동체를 통합시킨다.
우리 선조들은 윷판을 농토로 삼고 윷놀이를 통해 윷말을 돌려 계절을 변화시키면서 항구적인 풍년농사를 기원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윷놀이를 하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윷놀이는 윷·윷판·윷말을 이용하여 흥겨운 놀이기도 하지만 윷을 가지고 하는 윷점도 있다. 『동국세시기()』 제석조()와 『경도잡지()』 원일조(), 『오주연문장전산고』 사희변증설조에도 새해의 길흉이나 농사에 대해서 점을 치곤했다는 기록이 있다.

변천과정

윷놀이는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중의 하나가 윷패의 변화이다. 윷패는 도·개·걸·윷으로 일컬어지는 사진법 놀이에서 도·개·걸·윷·모로 일컬어지는 오진법 놀이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은 뒤도가 하나 더 생겨나서 육진법의 놀이로 변화되었다.
뒤도란 윷 하나에 특정하게 표시하여 놀이를 할 때 이것 하나만 젖혀지면 도가 아니고 뒤도라 하여 윷말이 앞으로 한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한밭 물러나게 된다. 따라서 윷패가 하나 더 생겨나고 윷말이 후진함으로 해서 많은 변수를 초래하여 더욱더 흥미를 자아낸다. 도 자리에 있던 윷말이 다음에 뒤도를 하면 한밭 후진하여 참으로 간다. 때로는 윷을 하여 마지막 동이 났지만 사리를 하면 한 번 더 노는 규칙에 따라 던져서 뒤도가 나면 참의 자리로 되돌아 와야 한다. 이로 인해서 승패가 뒤바뀌기도 한다. 이 뒤도의 등장은 산업화에 따라 나타나는 복잡한 사회상이나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투기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농경사회에 기반을 둔 윷놀이가 산업사회의 사회·문화에도 기능적으로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윷판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윷말이 윷판을 시계방향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간다. 사회·문화 변화에 따라 길이 바뀐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윷판에 자동임신·자동유산·퐁당 등이 등장했다. 윷판의 특정한 곳에 표시하여 여기에 다다르면 한 동 가던 것이 두 동이 되기도 하고, 한 동 가던 것이 죽기도 한다. 이는 윷판에 새로운 변이 요소가 등장한 것이다.
전자는 그 시대의 생활 양식과 사고 체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선시대에 생활양식은 좌측이 우선이고 한자 문화의 영향으로 문서()나 가사() 등 모두 좌서()로 썼다. 또 사고 체계도 음양오행설()이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내려 있었다. 그러나 서양 문물의 도입으로 동양적 사고 체계가 서양적 사고 체계로 바뀌었다. 또한 신교육구국운동이 전개되면서 학교가 급격히 증가하여 한자기록시대에서 한글기록시대로 바뀌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회 변화가 윷말이 윷판을 돌아가는 길을 변화시킨 것이다.
자동임신은 뒤도라는 윷패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윷판에도 변화를 주어서 승부에 변수를 주고 놀이가 더욱 재미있도록 했다. 자동임신 밭에 가서 한 동이 두 동으로 횡재를 하지만 반드시 그 뒤에는 자동유산이나 퐁당 밭을 둠으로써 위험을 수반하도록 한다. 이러한 요소 등장은 뒤도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이후 사회 병리적 현상이나 부동산 투기 심리 등이 반영된 결과이다.
윷과 윷말은 그 변화가 미약하다. 그것은 생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썼기 때문이다. 윷은 일반적으로 소나무나 싸리나무 대신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카시아나무를 많이 이용하고, 또 공장에서 만든 제품도 나온다. 윷말도 마찬가지다. 생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단추나 동전 등이 많이 쓰인다.
산업화에 따라 마을공동체는 무너졌지만 강한 생명력을 지닌 윷놀이는 새로운 전승집단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도시문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아파트에서 윷놀이가 행해지는 것이다. 물론 놀이꾼은 농민이 아닌 도시 근로자이다. 이들은 주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나 계()모임, 동창회 등이다. 즉 특수 목적으로 모인 집단이다. 이처럼 윷놀이는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혈연·지연으로 구성되었던 풍농을 기원했던 놀이에서 이제는 특수 목적을 지닌 집단이 친목을 도모하는 놀이로 변해가고 있다.

지역사례

경북 안동에서는 윷놀이를 할 때 윷판과 윷말 없이 머리 속에 윷판을 그려 놓고 윷판의 명칭을 이용하여 윷말을 운영하는데 이를 ‘건궁윷말’이라고 한다. 따라서 마을 주민들은 윷판의 명칭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또 안동에는 저포송()과 채윷대풀이이라는 윷노래가 전승되고 있다. 이 노래는 도송()·개송()·걸송()·유송()·모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해도 장연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시절윷놀이를 한다. 대보름날 아침 ‘산패’와 ‘들패’로 나누고 각기 2~3명의 대표를 뽑아 수숫대로 만든 작은 윷을 가지고 시절윷놀이를 벌인다. 산패가 이기면 밭농사가, 들패가 이기면 논농사가 잘 되며 양쪽이 비슷한 점수를 얻으면 두 농사가 다 잘 되리라고 믿는다.

산윷(보습윷)은 평안도, 함경도에 분포되어 있는 놀이로 윷판과 윷말이 없이 노는 것이 특징이다. 산가지나 콩·팥 등을 늘어놓고 윷을 던져 나온 수대로 산가지나 콩·팥을 거두어 많이 차지하는 편이 이기는 놀이다.

의의

농경사회에 있어서 농사의 흉풍은 삶과 직결된다. 그래서 농한기인 겨울철에도 세시풍속을 통해 항구적인 풍년농사를 기원했다. 우리 조상들은 정월에 윷놀이를 통해 지연·혈연집단을 통합했을 뿐 아니라 풍년농사를 갈망했다. 윷놀이는 농경사회에 기반을 두고 전승되어 왔으나 산업사회에서도 기능적으로 적응하면서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 金宅圭. 韓國農耕歲時의 硏究, 1985년
  • 安東民俗資料誌, 1981년
  • 東國歲時記, 牧隱先生文集, 五洲衍文長箋散稿, 訓蒙字會
  • 林在海. 민속문화론. 學과 知性社, 1986년
  • 김인구. 윷놀이 俗 原形 再構를 위한 試論, 1986년
  • 成炳禧. 윷놀이의 比較民俗的 考察, 1990년
  • 임재해. 윷놀이의 이치와 민중적 세계관, 1991년
  • 朴長煐,. 安東地方의 윷놀이 硏究,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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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윷판-국립민속박물관

한지윷판-국립민속박물관

이미지 갤러리

출처: 한국세시풍속사전

[네이버 지식백과]윷놀이 (한국세시풍속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윷놀이

 

 

윷놀이

윷가락을 던지고 말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 정월대보름날의 전통 놀이이다.

이칭별칭 사희, 척사희
유형 놀이
성격 민속놀이

목차

  1. 정의
  2. 내용

정의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즐기며, 4개의 윷가락을 던지고 그 결과에 따라 말[]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

내용

한자어로는 ‘사희()’라고 한다. 2인이 대국()하여 각각 4말을 가지고 29밭이 있는 윷판을 쓰는데, 말 길은 원근()과 지속()의 방법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인원수가 많을 때에는 두 패 또는 세 패로 편을 나누어서 논다.

우리 나라 설날놀이의 하나로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유서 깊고 전통 있는 놀이이다.

이 놀이의 명칭이 윷놀이인 것은 나무막대기 넷을 가지고 노는 놀이이므로, 도·개·걸·윷·모 중 넷을 뜻하는 윷과 놀이가 복합된 것이라 추측된다. 윷의 한자어 사()도 나무막대기 넷을 가지고 논다는 뜻이다.

윷놀이가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하여 이익()은 ≪성호사설≫ 사희조()에서 “윷놀이를 고려의 유속()으로 본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북사 ≫와 ≪태평어람 ≫ 등의 문헌에 백제에는 저포()·악삭() 등의 잡희()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이 저포는 오늘날의 윷놀이와 유사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윷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또, 일본 ≪만엽집 ≫ 주석()의 권위자인 시카모치(鹿)는 ≪만엽집고의 ≫에서 일복삼향()을 ‘고로 (コロ)’, 삼복일향()을 ‘시쿠(シク)’라 방훈(:두루 해석)하였는데, 가쓰라기()는 이 삼복일향을 ‘시쿠’, 일복삼향을 ‘고로’라 훈()한 데 대하여 의문을 품어 오다가 우리 나라의 윷놀이 중에서 그것을 발견하였다.

삼복일향과 일복삼향이란 도()와 걸()이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마침내 그 뜻을 구명하였다. 즉, 우리 한자음으로는 ‘’자를 ‘걸’이라고 발음하므로 걸이 와전되어 ‘고로’로 되었다 하며, 그 일례로 현재도 노루[]를 일본인은 ‘노로(ノロ)’라 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이 이두법()은 신라에서 건너간 것으로 생각되거니와 시쿠는 ‘도’, 고로는 ‘걸’이라는 우리말이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사카이()는 그의 ≪일본유희사 ≫에서 “일본문화는 주로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이것을 소화하여 일본화 하였으며, 당시 당나라문화도 삼한()을 거쳐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삼한과의 교섭도 역시 빈번히 행하여졌던 관계상 그곳의 문화·문물과 같은 것도 일본에 많이 들어왔고, 유희도 역시 그러하였다.”라고 하여 일복삼향의 유희가 삼국시대에 우리 나라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학설로 미루어볼 때, 윷놀이는 고려시대는 두말할 것 없고, 8세기 일본의 ≪만엽집≫이 찬성()되기 이전, 즉 신라시대에 이미 있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윷에는 가락윷(채윷)과 밤윷의 두 종류가 있다. 가락윷은 길이 3치, 너비 4푼 가량의 작은 윷과 길이 5치, 너비 6푼 가량의 중윷(서울윷)이 있고, 이보다 큰 윷은 장작윷 또는 장자윷이라 한다.

가락윷은 박달나무 같은 단단한 나무로 만드는데, 가운데는 굵고 양끝은 조금 가늘게 하고, 등은 둥글게 하여 화조() 등을 채화()하거나 낙화()한다.

배는 약간 평평하게 하되 모서리를 살짝 둥글려서 구르기 좋게 한다. 농가에서는 참나무로 크고 굵게 장작만 한 윷을 만드는데, 손이 작은 사람은 한 손아귀에 쥐기가 어려워서 두 손으로 던질 정도이다. 이것이 장작윷이다. 밤윷은 길이 6푼, 너비 4푼 가량이다. 이 명칭은 다 그 윷의 생김새에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장작윷 또는 가락윷이라 함은 그 모양이 장작의 축소형처럼, 또는 엿가락처럼 생긴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밤윷은 밤알처럼 작아서 그렇게 부른다. 밤윷은 장작윷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인데, 세로로 쪼개어 4개를 1조()로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많이 사용한다.

사용할 때에는 간장종지 같은 것에 넣어 손바닥으로 덮어 쥐고 흔들어 던지는데, 손가락으로 그 종지 하반부를 쥐고 그 속에 든 밤윷만 땅바닥에 던진다.

또, 이 밖에도 정식 윷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농민들 사이에 콩밭에서나 또는 팥밭에서 작업하다 점심시간이나 잠시 쉬는 사이에 팥이나 콩 두 알을 가지고 그 절반을 쪼개어 흔들어서 땅바닥에 던져 노는 일이 더러 있다.

이러한 윷은 그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그것이 팥이면 팥윷이라 하고 콩이면 콩윷이라 한다. 이밖에 상수리나 도토리, 살구씨, 은행 등의 열매를 이용하기도 한다. 살구씨나 은행은 양면을 두 가지 빛깔로 칠하여 쓴다.

먼저 29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윷판[]을 펴놓고 놀이를 하는데, 2, 3명이 보통이지만 인원이 많을 때에는 두 패 또는 세 패로 편을 나누어서 한다.

이 때 서로 윷가락을 던져서 끗수가 많고 적음에 따라 선후 차례를 정한다. 그리고 윷말은 각자 또는 각 편이 네 개씩 가지고 사용한다. 게임은 정해진 선후에 따라 시작한다.

윷가락을 던져서 네 개가 다 엎어진 것은 ‘모’요, 네 개가 다 잦혀진 것은 ‘윷’, 두개가 엎어지고 두개가 잦혀진 것은 ‘개’, 한 개가 엎어지고 세 개가 잦혀진 것은 ‘걸’, 한 개가 잦혀지고 세 개가 엎어진 것은 ‘도’라고 한다.

윷말의 가는 말[]을 보면 도는 한 발, 개는 두 발, 걸은 세 발, 윷은 네 발, 모는 다섯 발을 간다. 이와 같이 다섯이 각각 걸음이 다르다. 말 네 개가 모두 입구()인 도에서 출발하여 참먹이[]를 먼저 빠져나가는 편이 이긴다.

윷말 쓰는 법에 대하여 살펴보면, 윷말 한 마리를 ‘한 동’이라 하고, 두 마리면 ‘두 동’, 세 마리면 ‘석 동’, 네 마리면 ‘넉 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나 윷이 나오면 한번 더 할 수가 있으며 계속 나오면 계속할 수가 있다.

윷말은 윷가락을 던져서 그 수가 나타나는 데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가는 말이 마지막 자리인 참먹이(결승점)를 나오는 데에는 길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는 말이 모에 오면 ‘모도’·‘모개’·‘방()’으로 나올 수가 있어, 이 길은 가장 가까운 길이다.

그러나 던진 윷가락이 도·개·걸이 아니고 윷이나 모가 나오면 ‘속윷’이나 ‘속모’로 가야 하므로 이 때는 부득이 ‘찌모’(쨀밭:윷판의 첫 밭으로부터 꺽이지 않고 열다섯째 되는 밭)를 거쳐서 참먹이로 나가야 한다.

또, 가는 말이 걸이나 윷에 있는데, 던진 윷가락이 개나 도가 나오면 모로 가서 앞밭으로 접어들어 빠른 길로 나갈 수가 있지만 그렇지 못하여 걸이나 윷이 나오면 나는 말은 뒷밭까지 치올라가서 ‘뒷도’·‘뒷개’로 가야 한다.

이렇게 하여 올라간 말이 ‘뒷모’에 오게 되면 그 말은 그 안으로 ‘뒷모도’·‘뒷모개’로 내려와서 윷가락의 그 나오는 끗수에 따라 참먹이로 나가게 된다.

그런데 ‘뒷걸’이나 ‘뒷윷’에 있던 말이 던진 윷가락의 끗수가 걸이나 윷이나 모가 나오면 이때는 부득이 ‘찌도’와 ‘찌개’의 가장 먼길로 돌아가야 한다.

윷말을 잡을 때에는 앞서 가는 상대편 말 자리에 이편 쪽 말이 뒤따라가다가 같은 자리에 서게 되면 상대편의 말을 잡게 된다. 그러면 또 한번 윷가락을 던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상대편의 잡힌 말은 애써 멀리까지 간 것이 헛수고가 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윷가락을 던져서 처음 말이 모자리에 있는데, 다음 차례에 또 모가 나오면 처음 것을 업고서 달린다. 두 마리가 한꺼번에 뛰게 되므로 매우 유리한 입장에 서지만, 뒤따르는 상대편 말이 이것을 잡게 되면 두 말이 한꺼번에 죽게 된다.

그러므로 윷놀이는 윷가락을 잘 던져서 모나 윷이 잘 나오게 하여 연달아 던지는 데에도 승부에 영향이 있지만, 말을 잘 쓰고 못 쓰는 데에도 승패에 많은 영향이 있다.

윷가락의 호칭은 일반적으로 하나를 도, 둘을 개, 셋을 걸, 넷을 윷, 다섯을 모라 부르는데, 이는 끗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도·개·걸·윷·모는 본래가 가축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본다.

즉, 도는 돼지[]를, 개는 개[]를, 걸은 양()을, 윷은 소[]를, 모는 말[]을 가리킨 말이다. 도는 원말이 ‘돝’으로서 어간() 일부의 탈락형이다.

돝은 돼지의 고어로 지금은 일반적으로 돼지라고 하지만 아직도 종돈()을 ‘씨돝’이라 부르고, 또 일부 노인들 사이에는 돼지고기를 ‘돝고기’라 부른다.

<용비어천가> 제65장에 “엣 도틀 티샤()” 하였고, ≪두시언해≫에는 “아침 imagefont엔 imagefont과 도티 흐텟도다().”라 함을 보아도 도가 돼지임이 분명하다.

개는 지금도 개[]이다. 걸은 일부에서 코끼리( ), 또는 신마( )라는 말이 있으나 이는 다 잘못이다. 지금의 양()을 옛날에는 ‘걸’이라 하였다. 자전()에 수놈의 양을 결[0x9560]이라 하는데, ‘0x9560’자를 ‘수양 결’이라 함을 보아 분명하다. 또, 큰 양은 갈()이라 하는데, ‘’자를 ‘거세한양 갈’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걸은 한자인 결(0x9560)·갈()자의 취음()인 것이 분명하다. 윷은 소[]이니 방언에 슈·슛·슝·imagefont·중·쇼·소라고 함을 보아 알 수 있거니와 ≪훈몽자회 ≫에 “저()를 imagefont뎌, 포()를 imagefont표, 탄()을 imagefont놀탄”이라 하였음을 보아서 imagefont은 슛으로, 이 슛은 또 윳으로 변하였는데, 최근에는 철자법 때문에 윷으로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ㅿ음(반치음)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ㅈ음으로도 변하였으나 대체로 ㅅ음과 ㅇ음으로 변하였음을 본다. 모는 말[]이다. 방언에 몰·모·메라 함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모는 몰의 어간 일부 탈락형이다.

≪훈몽자회≫에 “를 imagefont마”라 하였고, <용비어천가> 제109장에는 “imagefont리 이 기퍼()” 하였음을 본다. 이 ‘·’(아래아)음은 후대로 내려오며 ‘오’·‘아’음으로 변하였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지금도 ‘오’로 사용됨을 본다. 팔을 ‘폴’이라 하고, 파리를 ‘포리’라 함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들 가축은 고대인에게 있어서는 큰 재산이었고 또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가장 친밀한 짐승이었다. 그러므로 그 가축의 이름과 함께 몸의 크기와 걸음의 속도도 윷놀이에 이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즉, 몸 크기의 차이를 보면 개보다는 양이, 양보다는 소가, 소보다는 말이 더 크며, 또 걸음의 속도도 돼지가 한 발자국의 거리를 뛰는 사이에 말이 한 발자국을 뛰는 거리는 돼지의 다섯 발자국 뛰는 정도의 거리가 되므로, 이렇게 대비하여 끗수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

윷판은 29개의 동그라미로 되어 있다. 윷판의 유래에 대하여 종래 일부에서는 상대() 오가()의 출진도()라 하기도 하고, 부여()의 관직제()를 모의()한 사출도()에서 나왔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설은 윷판이 어떻게 보면 그 관직제를 모의한 것 같이도 보이는 데에서 나온 견해일 뿐 그 이상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초점은 윷판의 동그라미가 왜 29개인가에 있다. 이에 대하여 가장 유력한 설은 조선 선조 때의 문인 김문표()의 윷판설[]이다.

그의 설을 보면,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요, 안의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니, 즉 하늘이 땅바닥까지 둘러싼 것이다. 별의 가운데에 있는 것은 추성()이요, 옆에 벌려 있는 것은 28수(宿)를 본뜬 것이다. 북진()이 그 자리에 있으며 뭇별이 둘러싼 것을 말한다. 해가 가는 것이 북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들어가 중앙을 거쳐 다시 북으로 나오는 것은 동지의 해가 짧은 것이요, 북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들어가 서쪽까지 갔다가 다시 북으로 나오는 것은 해가 고른() 것이요, 북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지나 남으로 들어갔다가 곧바로 북으로 나오는 것은 추분의 밤이 고른 것이다. 북에서 시작하여 동을 지나고 남을 지나고 서를 지나 또다시 북으로 나오는 것은 하지의 해가 긴 것이니, 즉 하나의 물건(윷판)이로되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는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윷놀이는 오늘날 단순한 하나의 오락으로서 정초에 하는 놀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본래의 뜻은 세초()에 농민들이 윷놀이로 농사의 풍흉을 점치던 고대 농경시대의 유풍의 하나로 보인다.

산촌()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보름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산촌의 젊은이들이 모여 높은지대 편[便]과 낮은지대 편[便]의 두 편으로 나뉘어 윷놀이를 하였다.

그 때 높은지대 편이 이기면 그해의 농사는 높은지대 편이 잘된다고 하였고, 낮은지대 편이 이기면 낮은지대 편의 농사가 잘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놀이가 끝나면 그들은 마을의 넓은 마당으로 나와서 모심기놀음[]을 하였다.

이러한 습속으로 보아서 윷놀이의 본의는 농사 점으로 하여오던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그 본래의 뜻이 차츰 없어지고, 오늘날에 와서는 단순히 오락적인 놀이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 놀이는 한때 놀이와는 달리 아무 때나 하지 않고,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하다가 거의 예외 없이 이 놀이를 그만두었다. 이것을 보더라도 윷놀이는 일반적으로 아무 때나 하는 놀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농가에서 세초에 행하는 허다한 민속점()은 이를 방증()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이러한 농사의 점단( : 점을 쳐서 판단함)에 있지 않고 단순히 유희나 도박이라면 연중 아무 때라도 많이 하여야 될 것인데, 윷놀이는 그렇지 않다.

요컨대, 윷놀이는 상대()에 농민들이 목편()으로 해마다 세초에 그해의 풍흉을 점단하는 데 그 뜻이 있었다고 보며, 그 이유는 이와 같은 농사에 관한 점풍( : 점술과 지술)행위가 대개 세초에 있음에서 입증된다.

참고문헌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중경지(中京誌)』
  • 『잠곡필담(潛谷筆談)』
  • 『주영편(晝永編)』
  • 『성호사설(星湖僿說)』
  • 『한국의 세시풍속』(최상수, 고려서적, 1960)
  • 『日本遊戱史』(酒井欣)
  • 『日本の遊戱』
  • 「한국윷놀이의 연구」(최상수, 『신라가야문화연구』 1, 청구대학 신라가야문화연구소, 1966)
  • 「윷의 유래와 명칭 등에 관한 고찰」(이일영, 『한국학보』 2, 일지사, 1976)

관련이미지 95

윷놀이

윷놀이윷가락을 던지고 말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 우리 나라 설날 놀이의 하나로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이미지 갤러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윷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동아시아의 놀이

윷놀이

 

 

나무꾼의 윷놀이

나무꾼의 윷놀이

윷놀이 분포도

윷놀이 분포도

윷은 숫 ⇨ 윳을 거쳐 굳어진 듯 하다. 다음이 용례이다.

저(imagefont 뎌 저사수도박()(『훈몽자회』 초 하 ; 10)
포(imagefont 포 유학자회저()(『훈몽자회』 초 하 ; 10)
탄(imagefont놀 탄 탄포도박()(『훈몽자회』 초 하 ; 10)

한자 뉴(, 『오주연문장전산고』), 뉴(, 『경도잡지』), 유치(, 『잠곡선생필담()』) 등은 소리 값을 빌려 적은 것이다. 가장 그럴 듯 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의 사희()이다. ‘사’는 가락이 넷인 데에서 왔다(『태종실록』 17년, 『세종실록』 26년).

윷은 우리네가 오래 즐겨온 으뜸 놀이 가운데 하나이다. 정월 대보름이면 집 안은 물론이고, 골목마다 윷판이 벌어지게 마련이었다. 윷가락을 잡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윷가락

윷가락

윷밭과 말

윷밭과 말

윷은 기구나 노는 방법이 간단하고 누구와도 즐길 수 있다. 나는 기차에서 손톱만큼 접은 방석 딱지를 원뿔꼴로 말아 세운 신문지 안으로 떨어뜨리며 놀았다. 주위 사람을 부추겨서 달걀 · 땅콩 · 소주 따위의 내기도 걸었다. 그 재미로 말하면, ‘지화자’를 외쳐며 두 손으로 뿌리는 장작윷 못지 않았다. 40여 년 전에는 서울에서 대전까지도 서너 시간이 좋이 걸렸으니, 기차에서 윷판을 벌일만도 하였던 것이다.

‘빽도’와 ‘맞춤나기’ 규칙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빽도는 일()자를 그은 가락이 젖혀져 도가 되면, 말을 온 길로 한 밭 뒤로 물리는 것이고, 맞춤나기는 참먹이[출구()]에 이른 말은 반드시 도를 쳐야 나가는 규칙이다. 따라서 상대의 뒤를 바짝 좇다가 오히려 덜미를 잡히거나, 끝내 도가 나지 않아 판이 뒤집히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 둘은 아슬아슬한 맛도 맛이려니와, 판이 기울었더라도 끝까지 희망을 지니게 하는 묘미가 있다.

윷을 언제부터 놀았을까? 『주서()』 에 “투호 · 저포 따위가 있으며, 특히 바둑을 즐긴다”고 적혔다(「백제전」). 저포()가 윷이라면, 적어도 6세기초 이전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고려 이색(1328~1396)의 저포시 내용은 윷놀이를 닮았으며, 앞에서 든 대로 최세진도 저포를 윷으로 새겼다. 이수광(1563~1628)도 『지봉유설()』에 “정초에 남녀가, 뼈나 나무를 잘라 만든 네 토막을 던져서 승부를 짓는 놀이가 탄희()”라며, 『훈몽자회』에서 ‘탄’을 ‘저포’라고 한 것을 보기로 삼았다. 『동국세시기』에도 “사희는 저포이자 탄희”라고 적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규경은 저포와 윷을 한 가지로 설명하면서도 “윷과 저포는 거의 비슷하여, 양자를 판별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권57 「희구변증설()」). 『경도잡지』도 마찬가지이다.

붉은 싸리나무 두 토막을 쪼개어 네 쪽으로 만들며 길이는 10센티미터쯤이다. 콩을 반으로 나누기도 한다. …(중략)… 이수광이 『지봉유설』에 나희()라 적었지만, 나는 저포()로 생각한다. 사희()는 저포 종류이지만, 저포 자체는 아닌 것이다(권2 「세시」 원일).

최남선도 “옛 사람 가운데 윷이 지나()의 저포에서 나온 것인듯 생각한 이가 있지마는 꼭 어떨까” 주저하였다. 신원봉은 윷과 저포는 다른 놀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저포에서 다섯 가락()을 쓰는 외에, 노는 방법과 이름이 다른 점을 증거로 들었다. 그가 든 『태평어람』 내용이다.

저포는 이렇게 논다. 자() 360개를 3등분하고 그 사이에 관() 둘을 둔다. 말은 여섯, 가락은 다섯이다. 가락 위는 검은색, 바닥은 흰색이다. 검은색 면 둘에 독(), 흰색 면 둘에 치()자를 새긴다. 다섯을 한 번에 던져서 모두 검은색이 나오면 노()가 되어 16채() 얻는다. 둘이 검은색, 셋이 흰색이면 치()로 14채이다. 둘이 검은색, 셋이 흰색이면 독으로, 10채이다. 다섯이 흰색인 백()은 8채이다. 이 넷은 귀한 채이다. 개() 12채, 새() 11채, 탑() 5채, 독(禿) 4채, 효() 2채, 궤()는 3채이다. 귀한 채가 나오면 거듭 던지는 동시에, 말을 잡고 관을 통과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못하다.

또 신원봉은 이고()의 『오목경()』을 들고 “저포는 저포와 저포판 그리고 말을 가지고 노는 점에서, 윷가락과 윷판 윷말을 가지고 노는 윷놀이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던지는 가락 수와 차이 외에도 놀이판의 구성이나 가락에 새기는 글씨, 가락을 던져 나온 채에 대한 명칭 등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한편, 성병희는 “현재 안동지방에 ‘저포송’이라 하여, 오래 전부터 전승되는 윷놀이 가사가 있다. 특히 안동군 북후면 도촌동과 남선면 신흥동에서는 요즈음도 정초 윷놀이에 흔히 이 가사를 부른다.”면서, 저포와 윷을 하나로 보았다.

15세기 후반에 나온 김시습의 한문 소설 『만복사 저포기( )』는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그린 애정물이다. 전라도 남원의 양생이 만복사에서 짝이 없음을 한탄하며 지내던 중, 부처와의 저포놀이에서 이긴 대가로, 아름다운 아내를 맞았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어째서 주인공이 부처와 저포를 벌였다고 하였을까? 이 놀이가 불교 전래나, 불교 자체와 연관되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인도 승려들은 쉴 때 장기를 즐겼기 때문이다.

밭 이름 도 · 개 · 걸 · 윷 · 모는 부여의 관직명인 저가() · 구가() · 우가() · 마가()에서 왔다고 한다. 곧 저가는 도, 구가는 개, 우가는 소인 슝이 윷으로 바뀌었으며, 모는 마가가 뿌리라는 것이다. 걸이 코끼리라는 설이 있었으나, 임동권의 주장대로 노새를 가리키는 거루()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밭 이름은 집짐승의 크기와 달리는 속도에 따라 붙인 듯 하다.

이익이 『성호사설』에 인용한 김문표()의 『사도설()』 내용이다.

위가 둥근 것은 하늘, 아래가 모난 것은 땅을 상징한다. 중앙에 추성()이, 사방에 28수(宿)가 있다. 북에서 떠난 말이 동을 거쳐 가운데로 들어왔다가 다시 북으로 나오는 것은, 동지의 태양 궤도 그대로이다. 북에서 떠난 말이 동과 중앙을 지나, 다시 서를 거쳐 북으로 나오는 것은 춘분의 태양 궤도이다. 북에서 떠난 말이 동 · 남 · 서를 거쳐, 북으로 되돌아 나오는 것은 하지의 태양 궤도이다. 북에서 떠난 말이 동 · 남을 지나 북으로 나오는 것은 추분의 태양 궤도이다.

네 개의 말은 사시()를 가리키고, 둥근 나무 토막 넷을 엎어지거나 잦혀지게 한 것은 음양을 나타낸다. 말을 던지면 세 개가 엎어지고 하나가 잦혀지거나, 두 개가 엎어지고 두 개가 잦혀지거나, 하나가 엎어지고 세 개가 잦혀지거나, 네 개가 모두 잦혀진다. 넷은 땅, 다섯은 하늘을 뜻하는 수이다.

둘이 마주 앉아 던져서 고농()이 이기면 산골 농사가, 오농()이 이기면 바닷가 농사가 잘 될 징조이다. 반드시 세시()에 윷놀이를 하여 그 해 흉풍을 점친다.

이에 대한 이익의 설명이다.

윷은 고려 풍속인 듯 하다. 고농과 오농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중략)… 안정복()은 이 책을 선조() 때 송경()의 김문표()가 지었다고 하였다.

추성은 북두칠성의 첫 별이다. 넷은 윷을, 다섯은 모를 이른다. 하도() 낙서()에서 1 · 3 · 5 · 7 · 9는 천수()를, 2 · 4 · 6 · 8 · 10은 지수()를 가리킨다(제4권 「만물문」 사도()).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이렇게 적었다.

…(전략) 심익운()도 사희경()을 지었으므로 (김문표의 사도설)을 확인할 수 있다. 윷가락을 도 · 개 · 걸 · 윷 · 모라 부른다. 정월 초하룻날 아낙네들이 던져서 길흉을 점쳤다. 세 번 던진 뒤 주역의 64괘를 본 받아 점사를 붙였다. 혹 이것도 문표가 지었던가?

심익운의 『사희경』은 전하지 않지만, 당시 윷점이 성행되었고 이를 64괘로 풀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신원봉은 『경도잡지』에 실린 64괘에 대해, “윷과 주역이 서로 다른 이질적인 사상 체계였음에도 이를 잘못 해석한 결과”라고 하였다.

마당에서 벌이는 윷놀이

마당에서 벌이는 윷놀이

앞에서 든 고농 · 오농 운운한 대목은 황해도 장연지방의 시절 윷놀이를 연상시킨다. 산과 들에 사는 사람들이 윷을 놀아서 들 쪽이 이기면 벼농사가, 산 쪽이 이기면 밭농사가 잘 되리라 여긴 것이다. 이밖에 가족이나 개인의 한 해 운수를 알아보는 ‘윷점’도 있다. 윷놀이를 정월 초부터 대보름 사이에 벌이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또 윷밭을 익산 미륵사의 주춧돌을 비롯하여 여러 산꼭대기의 큰 바위에 새겨 놓은 것도 옛적에는 놀이로서보다 신의 뜻을 알려는 의례로 벌였던 것을 알리는 보기로 생각된다(익산 미륵산 바위에 새긴 윷밭 · 밭을 따로 그린 그림 이미지 참조).

익산 미륵산 바위에 새긴 윷밭

익산 미륵산 바위에 새긴 윷밭

익산 미륵산 바위에 새긴 윷밭을 따로 그린 그림

익산 미륵산 바위에 새긴 윷밭을 따로 그린 그림

곳에 따라 윷 가락으로 여러 놀이를 즐겼다. 자새받기 · 손가락꼽기 · 산가지따기 들이 그것이다. 충청남도 부여지방의 자새받기이다.

한패가 던져 도가 나면, 똑같이 잦혀진 윷가락 옆에 다른 가락 하나를 세워 대고, 잦혀진 가락이 서너 뼘 밖으로 떨어지도록 던진다. 이것이 엎어지면 다시 한 번 던진다. 개가 나면 잦혀진 가락 두 개를 나란히 붙인 다음, 다른 가락 두 개의 끝으로 좌우 양쪽에서 떠서 한꺼번에 엎는다. 걸이 나면 잦혀진 세 가락 중 두 개를 조금 떼어 나란히 놓는다. 이들은 잦혀도 좋고 엎어도 좋다. 잦혀진 나머지 하나를 나란히 놓은 두 가락 위에 잦혀서 걸쳐 놓는다. 엎어졌던 나머지 가락으로, 걸쳐 놓은 가락의 한 끝을 탁 쳐서 엎는다.

윷이 나면 네 가락을 손바닥에 나란히 모아 걸쳐놓은 채, 공중으로 띄워 올린 다음, 손바닥을 재빨리 뒤집으면서 넷을 다시 잡는다. 이를 잦혀치기라 한다. 모가 나면 엎어치기를 한다. 네 가락을 나란히 모아 손 등에 걸쳐놓았다가 공중에 띄운 다음 재빨리 다시 잡으며, 손바닥을 잦히거나 가락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

콩 윷놀이

콩 윷놀이

이렇게 거듭해서 열 번 마친 쪽은 잦혀치기 · 엎어치기 · 돌려잡기 · 장작패기 등 더 복잡한 과정으로 넘어간다. 장작패기는 윷가락 셋을 그림 '손가락 꼽기'처럼 놓고, 나머지 가락으로 한 가락 끝을 탁 치되, 셋이 각기 흩어져서 서로 닿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를 먼저 끝내는 쪽이 이긴다.

손가락 꼽기

손가락 꼽기

손가락꼽기와 산가지따기는 평안북도 희천군에 퍼져 있다. 손가락꼽기는 엄지손가락을 모, 집게손가락을 윷, 가운뎃손가락을 걸, 약손가락을 개, 새끼손가락을 도로 정하고, 가락을 던져서 손가락을 먼저 모두 꼽는 쪽이 이기는 놀이이다. 이미 가운데 가운뎃손가락을 꼽은 경우, 걸이 나오면 소용이 없다.

산가지따기는 산가지를 그림 '산가지따기'처럼 늘어놓고 윷이 나는 데에 따라 따는 놀이이다. 산가지가 없음에도 그에 해당하는 윷이 나오면 물어내야 하며, 산가지가 남아 있지 않으면 그만큼 빚이 된다. 이렇게 하여 산가지를 많이 딴 쪽이 이긴다.

산가지따기

산가지따기

중국의 저포가 하 · 은 · 주 시대에 나왔다고도 하지만, “노자가 서융(西)에서 배워왔으며, 호족()은 점도 친다.”는 『태평어람』의 설명이 그럴듯하다. 동한의 마융()도 “노자가 호()에 들어가 저포를 두었으며, 판은 흰 단양목이나 자주 빛 양탄자로 만든다.”는 내용의 저포 노래를 지었다.

호나 서융은 신강성 및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위글족으로, 서융이 아라비아라는 설도 있다. 기원전 5~4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저포로 점을 쳤다는 부분은 흥미롭다. 『수서()』나 『북사()』 「돌궐전」에도 “남녀가 모두 저포를 좋아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저포에 빠져 재산을 날리고 패가 망신하였다는 기사도 적지 않다.

저포는 남북조시대(4~6세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진서()』의 “갈홍은 학문을 좋아했으나 집안이 가난하였다. …(중략)… 바둑을 어떻게 두는지도, 저포의 치명()도 몰랐다.”는 내용이 그것이다(「갈홍전()」).

당시의 저포는 360자로 이루어진 판에 다섯 개(또는 네 개)의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숫자에 따라 말 여섯 개를 옮겼다. 주사위의 등은 검고 배는 흰빛이며, 모두 엎어지는 노()의 점수가 가장 많고, 꿩() · 송아지() · 백()의 순이었다. 이들이 나오면 다시 던졌고, 남의 말을 잡거나 문을 지나갔다.

저포는 당대에 이미 사라졌다. 『태평어람』에 “당 덕종(, 785~805) 때 낙양 현령 최사본()이 옛 문헌에 쓰인 저포놀이를 즐겼다.”고 적힌 것이다.

다음은 상병화()의 저포 설명을 요약한 것이다.

한대 이전에 육박()이라 불리다가 뒤에 저포 또는 오목()으로 바뀌었다. 육박이라는 이름은 여섯 개의 가락()을 던져서, 말 여섯 개를 옮기는 데에서 왔다. 12개인 말의 반은 희고 반은 검다. 고대에 육박이라고 한 것은, 말과 가락이 중요한 기구였기 때문이다. 저포는 박()의 다른 이름으로, “오목()을 가장 높이 꼽는다.”거나, “오목으로 가락을 삼는다.”는 말처럼, 저포가 다섯 개의 가락을 쓰는 까닭에 오목이라 불렸다. 대로 만드는 가락의 길이는 20센티미터쯤 된다.

육박치기 모습

육박치기 모습

『오목경』에 “저포 가락 다섯 개는 본디 나무였으나 뒤에 상아나 뿔로 만들었으며, 위는 검고 아래는 희다. 이 가운데 두 개의 흰 쪽에 새를, 반대쪽에 소를 새겼다. 꿩과 소가 잦혀져서 소 두 마리가 나타나면 꿩 둘이 보이지 않고, 꿩 둘이 보이면 소 둘이 보이지 않는다.”고 적혔다.

『산당사고()』에 “올빼미() · 노() · 꿩() · 송아지() · 새()로 승부를 짓는다. 머리에 올빼미를 새긴 것이 으뜸이며 노 · 꿩 · 송아지 · 새의 순으로 나간다.”는 내용이 있다. 육조에서 당까지는 다섯 가락이 모두 엎어진 것을 노라 하였으며, 반대를 오백()이라 일렀다.

처음에는 둘이 놀다가 동진 때는 셋 이상이, 당대에는 다섯이 놀았다. 초기에는 올빼미 가락을 가장 높은 수로 쳤으나, 동진대에는 노와 꿩을 첫손에 꼽았다. 놀이판에서 “노 나왔다.” 또는 “꿩 나와라.” 외친 것은 이 때문이다. 노는 꿩보다 세다.

남송()의 무제는 안사백()과의 저포놀이 때, 꿩이 나와 기뻐하였으나, 사백이 노를 내자 얼굴색이 바뀌었다고 한다. 진() 유의()가 동부()에서 놀 때, 다른 이는 모두 흑과 소가 나왔음에도 자신이 던진 가락이 꿩이 되자, 기쁜 나머지 옷을 벗고 주위를 돌며 “노를 내고 싶었지만 일부러 내지 않았다.”며 외쳤다. 이번에는 유유()가 천천히 집어 던졌다. 네 개는 흑이고, 다른 하나는 굴러갔다. 이에 사람들이 크게 소리치자 노가 되었다. 역시 노가 꿩을 누른 것이다. 남송 명제가 제장()과 저포를 놀 때, 이안인()이 다섯 번이나 이어 노를 내어 황제가 놀랐다는 기록도 있다.

『국사보()』에 “가락() 360개를 셋으로 나누고 양관()을 둔다. 한 사람이 여섯 개의 말을 쓰며 가락 다섯을 던져서 왕채()가 나오면 한 번 더 던진 뒤, 말을 움직여 관을 벗어난다.”고 적혔다. 『오목경』에는 “말이 처음 관을 벗어나면 업어서 간다.”는 내용도 보인다.

옛적에는 놀이()에도 신이 깃들여서 사람의 부귀를 좌우한다고 여겼다.

진의 모용보()가 가락을 던지기에 앞서 “저포에 신이 있다고 합니다. 부귀를 바라오니 원컨대 노를 세 번 주십시오.” 기도하자, 모두 노가 나왔고, 그는 기쁜 나머지 옷을 벗고 맨발로 환성을 질렀다고 한다.

저포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적지 않다. 앞의 상병화도 “말을 움직이고 가락을 던지는 것 등에 대해 상세히 적은 책이 없다. 가락을 던져서 나온 수의 이름은 알지만, 다른 것과의 연관성도 불분명하다.”고 적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놀 때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떠는 행위가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윷놀이는 우리에게서 건너갔다. 8세기 말의 『만엽집()』에, “하나가 엎어지고 셋이 잦혀진 것()은 고로, 셋이 엎어지고 하나가 잦혀진 것()은 사쿠라는 대목”이 있다. 고로와 사쿠는 우리말 걸과 도의 이두식 표기이다.

가쓰라기 스에지()는 앞 책 권제10(), 권제12(), 권제13()의 삼복일향() · 일복삼기() · 일복삼향()을 들어 “윷놀이 때 주사위 대신 네 개의 가락을 던졌으며 …(중략)… 이 때문에 사희() 또는 척사()라 불렸다. …(중략)… 겉과 바닥 수에 따라 말을 옮긴다.”고 하였다. 8세기 무렵에 윷을 놀았던 셈이다. 또 다른 학자()는 “척사()의 유희적 내용을 고(구)려로부터 전해 받은 우리가, 그 놀이에 쓰는 이름을 그대로 썼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전략) 당시 당조() 문화 유입 경로로 삼한()을 거친 것은 사실인 동시에 삼한과의 교섭 또한 빈번하게 이루어진 까닭에, 그들의 문화와 문물도 많이 들어왔다. 유희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적었듯이 고(구)려의 미광()과 수광() 등이 매사냥을 일본에 가져온 것처럼, 고(구)려의 다른 놀이도 당연히 일본에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척사() 또는 척사()라 불리는 놀이이다. …(중략)… 그 시기는 아마도 나라조 일 것이다.

한편, 시바 료타로오()는 김사엽()이 “윷놀이에서 한 개가 엎어지고 세 개가 잦혀진 것을 이르는 일본말 ‘고로’는 곧 우리말 ‘걸’을 가리킨다.”고 주장하였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네 개의 나무 토막을 던져서 한 개가 엎어지고 세 개가 잦혀진 것을 고로(ころ, , 걸)라 한다. 오늘날 마작()에서 중국어 용어를 쓰듯이 만요()시대 사람들이 이 놀이를 할 때의 용어는 조선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어 고로가 ‘무렵’ 또는 ‘굴림대’나 ‘주사위’라는 뜻인 까닭에 윷놀이의 걸(고로) 곧, 1복3향()이라고 적는 재치를 부린 것이다.

마스가와 고우이치의 설명이다.

『강담초()』에 사가()천황(809~823) 때의 낙서 가운데 일복삼앙() 운운한 대목이 있다. 이것도 역시 윷의 말을 이른다.

당시는 조선으로부터의 지식인과 기술자의 도래()도 끊임없이 이어졌으므로 조선의 반상유희()가 전해진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무슨 까닭인지 윷은 일본에서 오래 이어 내려오지 않았다.

규슈 다자이후()에서 가장 오랜 윷 가락이 나왔다. 네 개의 작은 막대기(길이 5센티미터, 너비 1센티미터)로, 각각 하나에서 넷까지 금을 그은 것이다.

의 고향은 어디인가? 많은 학자들은 저포와 윷이 인도의 파치시(Pachisi)에서 나왔다고 한다. 파치시는 인도뿐 아니라, 중동에서 오래 전부터 즐긴 놀이이다. 방선주가 “중국명인 저포가 외국 이름인데다가, 챠우파와 추푸의 중국 발음이 비슷한 점 등을 들어, 인도에서 들어왔다.”고 한 것은 옳다.

인도의 파치시놀이

인도의 파치시놀이

페르시아의 파치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갔고, 이것이 다시 우리게로 건너와 윷이 된 것이다. 저포 놀이의 전모를 알 수 없지만, 우리네 윷과 닮은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만, 우리네 밭이 29개인 것은 고려시대에 우리 식으로 바꾼 결과로 보인다.

파치시는 왕 · 코끼리 · 말 · 양으로 불리는 네 개의 말을, 십자 꼴로 벌여 놓은 3 × 8개의 밭 위로 옮기는 놀이이다. 말은 붉은색 · 검은색(뒤에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 노란색 · 연두색으로 구별한다. 중심부에서 출발한 말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자기 쪽 왼편 끝에 이른다.

말은 등이 둥글고 바닥에 홈을 판 7~8개의 조개 껍질로, 이를 던져서 나온 숫자에 따라 옮긴다. 두 개가 엎어지고 나머지가 잦혀지면 2점, 엎어지고 잦혀진 것이 각 셋이면 3점, 둘이 엎어지고 넷이 잦혀지면 4점, 하나가 엎어지고 나머지가 잦혀지면 5점이다. 그리고 모두 잦혀진 6점이 나오면, 한 번 더 던진다. 이밖에 하나만 잦혀지고 나머지가 엎어지는 10점 때도 더 던진다. 여섯이 모두 엎어져 ‘파치시’가 되면, 최고점인 25점을 따며, 역시 한 번 더 던진다. 우리네 윷처럼, 남의 말 자리에 이르면 그 말을 잡으며, 잡힌 말은 처음 자리로 되돌아간다.

인도의 파치시는 무갈 왕조 때 성행되었다. 귀족들은 프아디프아시크림 궁전 · 아그라 궁전 · 알아바드 궁전에 놀이판꼴 정원을 꾸미고, 궁녀나 심부름꾼을 말 삼아 이리저리 옮아 다니게 하는 초호화판 놀음을 벌였다. 이것은 세일론 · 미얀마 · 수마트라로 퍼져나갔고, 서쪽으로 페르시아와 팔레스티나를 거쳐 스페인과 소말릴랜드까지 들어갔다. 노는 방법은 지역에 따라 조금 다르다. 조개 껍질은 파치시(25점이라는 뜻)라 부르지만, 양끝이 뭉툭한 긴 타원꼴 가락이나 장방형 윷가락 세 개는 챠우파(Chaupar, 네 개로 벌어진 헝겊 판), 또는 챠우서(십자꼴 말판)라 부른다.

한편, 임동권은 중국의 저포는 다섯 가락()이고, 고구려 관련 기록에도 보이지 않는 점을 들어 윷이 중국에서 들어오지 않고, 우리 나라 남부 지방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윷은 아메리카대륙 원주민들도 즐겨 놀았다. 콜로라도 · 뉴멕시코 · 유타주의 선사시대 유적에서 뼈 윷이 나와 역사 오랜 사실을 알려 준다. 로스엔젤레스 서남박물관(SouthwestMuseum)에는 우리네 밤윷만한 것에서부터, 큰 가락윷에 이르기까지 서너 종류가 있다. 컬린은 “윷놀이를 130여 부족들이 즐겼으며, 거의 전 지역에 퍼졌다.”고 하였다. 이 지역의 윷 형태나 말판 모양 그리고 노는 방법 등은 우리 윷과 차이가 많지만, 같은 것 또한 적지 않다.

길이 25센티미터의 버드나무를 반으로 쪼갠 오클라호마주 쿄와(Kiowa)족의 네 가락은 단면이 우리 것처럼 반달꼴이다. 윷이 나오면 한 번 더 던지고, 누운 것이 하나면 한 밭, 둘이면 두 밭, 셋이면 세 밭 가고(그러나 모는 열 밭, 윷은 다섯 밭 간다), 같은 밭에서 만나는 말을 잡으며, 이를 처음부터 다시 쓰는 점도 우리와 같다.

뉴멕시코주의 주니(Zuni)족은 우리처럼 윷으로 점을 쳤다. 컬린도 “본디 북아메리카의 윷놀이는 활 모양을 본뜬 것으로, 남서지역 원주민이 받드는 전쟁의 신과 관련이 깊다.”고 적었다.

윷가락은 막대꼴 외에 반달꼴 · 둥근꼴 · 의자꼴 · 동물꼴 등이 있다. 동물의 뼈나 식물의 씨앗 따위로 만드는 반달꼴이나 둥근꼴 윷은 우리네 밤윷을 닮았고, 던질 때도 소쿠리나 쟁반을 이용한다. 사람 · 여우 · 새 등의 동물꼴은 그린랜드와 알래스카 일대의 에스키모족 윷이다. 의자꼴은 뼈나 나무로 깎은 작은 의자의 등이 바닥에 닿는가, 바로 서는가에 따라 점수를 내는 윷으로, 서북 해안에 퍼져 있다. 가락은 흔히 3~4개이지만, 6~8개를 던지기도 한다. 밭 형태나 크기도 각기 다르다.

크리(Cree)족 윷 (네) 가락 길이는 35센티미터쯤이며, 한 쪽은 평평하게 다른 쪽은 둥글게 다듬었다. 그림 '크리족 윷가락'처럼 두 개의 바닥에 불에 달군 부젓가락으로 가위다리표를 하고, 다른 두 개에 흰 칠을 한다. 놀이 방법은 우리와 같지만 승부는 다르게 짓는다. 이들은 말을 밖으로 내지 않고 바닥에 떨어지는 가락 형태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예컨대, 세 개가 엎어지고 흰 가락 하나가 잦혀지면 6점, 두 개가 엎어지고 흰 가락 두 개가 잦혀지면 24점, 세 개가 엎어지고 가위다리표 하나가 잦혀지면 14점, 두 개가 엎어지고 가위다리표 두 개가 잦혀지면 56점, 모두 엎어지면 14점을 따며, 가위다리표가 모두 잦혀지면 이긴다.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며 네 패로 나뉘어 겨룬다.

윷은 남아메리카 사람들도 놀았다. 특히 파라과이와 볼리비아의 챠코(Chaco)부족 윷은 우리 것과 같을 뿐 아니라, 이름조차 ‘윷’이라는 보고도 있다. 멕시코 여러 부족은 파톨리(Patoli)라 부른다. 특히 네 개의 옥수수 알을 짝으로 삼는 북 과테말라 케치(Kekchi)족은, 우리처럼 누가 먼저 시작하는가를 가락을 던져 정한다. 그리고 던지기 전에 유리한 짝이 나오기를 바라 “모 나와라.” 또는 “모 나왔다.” 소리친다.

남아메리카 윷은 1521년 아즈텍(Aztec)족을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이 단편적인 보고를 남겼지만, 19세기말에 이르러 멕시코의 파톨리와 인도의 파치시가 이름은 물론 노는 방법이 닮은 사실이 밝혀졌다. 같은 시기에 타일러(E. B. Tyler)가 “멕시코 윷은 아시아에서 건너왔고, 이것이 다시 북아메리카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인도에서 페르시아 · 중앙아시아 · 동북아시아를 거쳐 아메리카로 들어갔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이들 지역에는 윷뿐만 아니라 문화적 친연성을 보이는 문화 요소가 적지 않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의 윷 이름인 ‘파르치시(Parcheesi)’가, 인도의 파치시와 남미의 파톨리를 연상시키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 우리는 머리가 뛰어난 사람들은 밭을 쓰지 않고, 머리 속에 그리며 놀았으며, 이를 ‘걸궁윷말’이라 일렀다.

인용 문헌

  • 리근영, 1964년, 「윷놀이」 『조선의 민속놀이』, 군중 문화 출판사
  • 방선주, 1991년, 「아시아 문화의 美州 傳播」 『아시아문화』 제7호,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 성병희, 1989년, 「윷놀이의 비교민속학적 고찰」 『민속학연구』 제1집, 안동대학교 민속학회
  • 신원봉 편역, 2002년, 『윷경』, 정신세계사
  • 유득공, 19세기 말, 『경도잡지』
  • 이하우, 2003년, 『바위문화 이야기』, 민속원
  • 임동권, 1983년, 「사희고(柶戱考)」 『한국민속문화론』, 집문당
  • 최남선, 1973년, 「조선상식」 『육당 최남선 전집』 3, 현암사
  • 홍석모, 19세기 중반, 『동국세시기』
  • 尙秉和 지음, 秋田成明 옮김, 1969년, 『中國社會風俗史』, 平凡社
  • 葛城末治, 1974년, 「東アジアの古代文化」 『朝鮮』 第164號
  • 司馬遼太郞 지음, 박이엽 옮김, 1998년, 『탐라기행』, 학고재.
  • 酒井欣, 1934년, 『日本遊戱史』, 建設社
  • 增川宏一, 1978년, 『盤上遊戱』, 法政大學出版局
  • Stewart Culin, 1907년, Games of the North American Ind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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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국립민속박물관

윷-국립민속박물관

이미지 갤러리

출처: 한국세시풍속사전

[네이버 지식백과]윷놀이 (동아시아의 놀이)

 


천재학습백과 초등 체육 4학년

윷놀이를 즐겨보기

 

 

교과과정 초등학교 > 4학년 > 연간 > 체육 4 > 5. 여가 활동

윷놀이란 

윷놀이는 삼국 시대 이전부터 전해 오는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하였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놀이로 풍년을 기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1. 윷놀이 방법을 알고 놀이하기

1) 윷판에 대해 알아보기

- 말을 쓰기 위하여 그린 판으로 둥근 원에 20개의 밭(칸)과 그 안쪽에 9개의 밭(칸)이 교차하여 총 29개의 밭(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윷 셈하는 방법 알아보기

- 네 개의 윷가락을 동시에 던져 나온 경우의 수 : 도 → 한 칸, 개 → 두 칸, 걸 → 세 칸, 윷 → 네 칸, 모 → 다섯 칸 앞으로 움직인다.
- 한 번 더 던지는 경우: 윷·모가 나오는 경우, 상대방의 말을 잡는 경우

3) 윷놀이에 사용되는 용어와 규칙 알아보기

- 말: 윷판에 위치를 표시하는 소품으로 동전, 바둑알 등을 이용한다.
- 말 쓰기: 한 편에 보통 네 개의 말(넉동)을 갖고 시작하며 새로 말을 달거나 말을 옮길 때에 사용한다.
- 업고 가기: 자기편 말이 있는 곳에 말이 또 오게 되면 업어서 함께 이동할 수 있다. 두 개를 업고 가면 두동사니, 세 개를 업고 가면 세동사니, 네 개를 업고 가면 넉동사니라고 한다.
- 잡기: 말을 옮길 때 밭에 상대편 말이 있으면 그 말을 잡는다. 잡힌 말은 처음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 이기기: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한 바퀴 돌아 상대편 말보다 먼저 네 개의 말이 모두 나오면 이긴다.

4) 말이 움직이는 길에 대해 알아보기

- 던지는 끗수가 꺾어지는 밭(칸)에 오면 빠른 길로 갈 수 있다.

‘모 → `걸’을 놓았을 때

‘모 → `걸’을 놓았을 때

‘윷 → 윷 → 개’를 놓았을 때

‘윷 → 윷 → 개’를 놓았을 때

‘모 → 윷’을 놓았을 때

‘모 → 윷’을 놓았을 때

‘윷 → 윷 → 윷’을 놓았을 때

‘윷 → 윷 → 윷’을 놓았을 때

5) 윷놀이하기

- 두 편(한 편에 4~5명 정도)으로 나누고 윷가락을 두 개씩 던져 차례를 정한다.
- 모둠원끼리 던지는 순서와 말을 쓰는 사람을 정한다.
- 번갈아 가면서 윷을 놓는다.
- 4개의 말(말 개수 정하기)이 상대편보다 먼저 말판을 돌아오는 편이 이긴다.

2. 사람 윷놀이하기

사람 윷놀이

사람 윷놀이

1) 놀이 방법

- 한 모둠이 5명으로 두 모둠(10명)으로 나눈다.
- 매트 4장을 붙여 윷판을 만든다.
- 지름 4~5m 정도의 원을 그려 말판을 그린다.
- 양 모둠 두 사람씩 4명이 윷이 되고 나머지 2명씩은 모둠 조끼를 입고 말이 된다.
- 모둠의 1명씩은 시작 신호와 자기 모둠의 말 쓰는 역할을 한다.
- 모든 말(2명)이 상대편보다 먼저 말판을 돌아 나오면 이긴다.
- 학급 구성원의 인원수에 따라 말의 수를 조정하여 놀이를 시행한다.

2) 사람 윷놀이하기

-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한다.
- 눈을 가리고 누워 ‘시작’신호와 함께 3초간 움직인 후 멈춘다.
- 나온 윷 패에 따라 자기편 말 쓰는 사람의 지시를 받고 말이 움직인다.
- 말 쓰는 사람이 번갈아 가며 시작 신호를 하여 윷을 놓는다.

3. 참고 자료 - 여러 종류의 윷

1) 가락 윷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길이 15~20cm, 지름 3~5cm 크기의 윷으로 가운데는 굵고 양끝은 조금 가늘며 등은 둥글고 배는 약간 평평하게 하되 모서리를 살짝 둥글려서 구르기 좋게 한다.

2) 밤 윷

굵기가 새끼손가락 정도인 나무로 1~2cm가 되게 만든 윷으로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많이 사용했으며 종지 같은 것에 넣어 손바닥으로 덮어 쥐고 흔들어 던진다.

3) 콩 윷

정식 윷은 아니지만, 농부들이 밭에서 점심시간 등에 콩알이나 팥알을 반으로 쪼개어 땅바닥에 던진다.

가락 윷

가락 윷

밤 윷

밤 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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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국립민속박물관

윷-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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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세시풍속사전

[네이버 지식백과]윷놀이를 즐겨보기 (천재학습백과 초등 체육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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