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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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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개성 이해와 작품 감상 |
시조는 본래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정서보다는 유교의 관념을 전달하고자 했지요. 그런 까닭에 사대부들의 시조는 인간의 솔직하고 꾸밈없는 정서를 전달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조의 성격을 뒤바꾼 사람들은 다름 아닌 기녀들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기녀들은 예능에 탁월한 재주를 지닌 이들이었습니다. 시와 글씨, 그림, 악기 연주와 노래 등 다양한 방면에서 재주를 뽐냈지요. 그러던 중 기녀들은 사대부들이 즐기던 시조까지 짓기에 이르렀지요.
그런데 기녀들의 시조는 양반 사대부의 것과는 그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기녀들은 남녀 간의 애정 및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또한 한문투를 벗어나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이 표현된 작품들을 창작했습니다.
이들에 의해서 시조는 사대부의 문학에서 벗어나 조선 후기에는 중인 계층의 전문 가객들이 즐겨 짓는 문학 장르가 되었고 그 후에는 일반 백성들까지 즐기게 되었습니다. 기녀들의 시조는 시조가 ‘국민 문학’으로 발전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이 시조는 기생 홍랑이 지었습니다. 산에 있는 버들가지를 골라 꺾어 임의 손에 보내면, 임께서 그 가지를 창밖에 심어 두고 보다가 새 잎이 나면 그것을 자신으로 알아봐 달라는 간곡한 심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아마도 시적 화자가 사랑하는 임과 이별하며 자신을 잊지 말라는 정표로 버들가지를 주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물망초의 꽃말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네요.
자, 어떤가요? 사대부의 시조처럼 유교적 이념이 담겨 있나요? 오히려 여러분 머릿속에는 고려 가요 「가시리」라든가 「서경별곡」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이처럼 기녀들의 시조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는 데에 전혀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기녀는 누가 뭐래도 황진이일 것입니다. 그녀는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기록에 남아 있지는 않지만 얼굴이 아름답고 시를 잘 지었으며 글씨도 뛰어났고 음악에도 재주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그녀는 서경덕, 임제를 비롯하여 당대에 뛰어난 문인, 유학자 들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합니다.
그녀가 남긴 작품은 시조 6수와 한시 4수밖에 없지만 창의적인 발상이 뛰어나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작품은 대개 남녀 간의 사랑을 소재로 삼았는데 그리움, 애달픔, 아쉬움, 후회 등의 정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단 이 작품에서 “어론 임”이라는 표현은 ‘사랑하는 임’이라는 말입니다. ‘얼다’는 ‘물이 언다’는 의미 이외에 ‘남녀가 사랑을 나눈다’는 의미도 있지요.
자,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 낸다고 되어 있네요. 밤을 어떻게 베어 낼 수 있을까요? 밤은 추상적인 대상이기 때문에 아무리 베려 해도 베어 낼 수 없는 것인데 말입니다. 황진이는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밤과 같은 추상적인 시간을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대상으로 바꿔 놓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 많은 밤 중에 동짓달 밤을 잘라 냈을까요? 이는 우리나라 절기와 관련이 깊습니다. 우리나라 절기 중에서 밤이 가장 긴 절기가 동지입니다. 따라서 동짓달 밤을 잘라서 이불 아래 넣어 두었다가 펴면 그 어떤 날보다도 밤이 길게 흐르겠지요. 그러면 시적 화자는 사랑하는 임과 그 어떤 밤보다도 오랫동안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황진이의 표현이 기발하지 않습니까? 이 밖에도 서리서리, 굽이굽이처럼 의태어를 사용한 것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황진이가 잘 살렸다는 근거이지요.
이 외에도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와 같은 시조에도 황진이의 문학적 진가가 발휘되고 있습니다. ‘벽계수’는 푸른 시냇물을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왕족인 ‘벽계수’를 가리키는 말이며, ‘명월’은 밝은 달을 가리키는 동시에 ‘황진이’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황진이의 기생 이름이 명월이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이 시조는 왕족 벽계수에게 인생은 덧없는 것이니 자신과 함께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자고 권유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중의적인 표현을 통해 상대를 유혹하는 기지가 잘 나타난 작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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