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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부 101] - 33...
2020년 04월 04일 21시 47분  조회:3467  추천:0  작성자: 죽림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사랑한 후에>는 선경후정,
<앞으로>는 수미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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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짜임새

시는 어떤 문학 장르와 비교해 봐도 개성이 강한 장르입니다. 시에 사용되는 짜임새도 다양하지요. 선경후정, 수미상관 등은 모두 시의 짜임새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노랫말의 짜임새이기도 하지요. 예컨대 노래 두 곡의 가사를 들여다볼까요?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저 석양은 나를 깨우고
밤이 내 앞에 다시 다가오는데
이젠 잊어야만 하는 내 아픈 기억이
별이 되어 반짝이며 나를 흔드네
저기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의 커다란 울음으로도 달랠 수 없어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오늘밤엔 수많은 별이 기억들이
내 앞에 다시 춤을 추는데

들국화, <사랑한 후에> 중에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으면
그 소리 들리겠네 달나라까지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윤석중 작사의 동요, <앞으로>

선경후정이란 경치를 먼저 제시하고 경치에서 느낀 감정을 그 뒤에 표현하는 짜임을 뜻해요. 마침 <사랑한 후에>의 가사는 석양이 지는 하늘 아래 정경을 묘사한 후, 이별의 기억에 젖어드는 자신의 감정을 그리고 있네요.

다음으로, 수미상관은 시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비슷하거나 같게 만드는 방법을 말하는데, <앞으로>를 보세요. 노래의 시작과 끝이 반복되고 있지요? 자, 그럼 각각의 용어와 효과를 시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아볼까요?

선경후정 : 경치를 제시한 후 감정을 노래한다

선경후정은 문자 그대로 경치를 보여 주고 그다음에 화자의 정서를 제시하는 방법을 가리킵니다. 이런 방법은 과거에 한시에서 많이 쓰였지요. 자연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거나 위로를 받거나 또는 흥겨움을 느낄 때 전통적으로 쓰였던 방법입니다.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긴 둑에는 풀빛이 짙어가고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그대를 남포에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저 물은 언제쯤 마를까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하네

정지상, 「송인」

위 작품은 친구를 보내며 쓴 작품으로 이별의 슬픔이 잘 나타난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별의 정서를 단순히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지요. 슬픈 노래를 부른다며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풀빛이 짙어 간다는 경치를 먼저 제시하고 이별의 눈물을 흘린다는 감정 표현에 앞서서 대동강 물이라는 경치를 먼저 제시하고 있지요. 이처럼 감정을 표현하기에 앞서 경치를 제시하는 시의 전개방식을 선경후정이라 합니다.

수미상관 : 머리와 꼬리가 닮았다

수미상관은 처음(머리)을 가리키는 ‘수(首)’와 끝(꼬리)을 가리키는 ‘미(尾)’가 서로 관련성을 지닌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과 끝 구절을 비슷하거나 같게 해서 전달하려는 시적 의미를 강조하는 방법이지요.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시의 형태가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얻게 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 「산유화」

위 시에서 처음과 끝은 유사한 시 구절로 반복되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꽃이 피고 지는 현상이 전체적으로 순환구조를 이루면서 자연 현상이 지속되고 반복된다는 것을 제시하기에 적절한 짜임새를 이루고 있지요. 이처럼 수미상관의 짜임은 시적인 의미를 만들어 가는 데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여 말하면 이 시에는 기승전결의 구조도 함께 나타나 있습니다. 기승전결은 본래 한시의 구성 방법이었지만 현대 시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지요. 대개 ‘기’에서는 시상을 제기하고 ‘승’에서는 시상을 심화하며 ‘전’에서는 시상의 전환이 나타나고 ‘결’에서는 중심 생각이나 정서가 제시됩니다. 「산유화」는 ‘기’에서 ‘산에 꽃이 핀다’는 시상을 소개하고 있고, ‘승’에서는 ‘꽃과 떨어져 있는’ 화자의 처지를, ‘전’에서는 ‘꽃을 좋아하는’ 화자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으며, ‘결’에서는 자연 현상을 다시 소개하여 전체적인 완결성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공간이나 화자의 시선을 이동시켜 시를 전개할 수도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시를 전개할 수도 있지요. 또한 기승전결의 짜임이나 점층적인 전개방식도 생각할 수 있으며, 이미지를 대비시켜 시의 짜임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시의 짜임새를 몇 가지 더 살펴보겠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의 이동에 따라

선경후정이나 수미상관처럼 전통적인 시상 전개방식 외에도 우리 시에서는 다채로운 시상 전개방식이 존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시상이 전개되는 방식입니다. ‘아침—점심—저녁’, ‘과거—현재—미래’,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은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 전개되는 방식을 가리키지요. 이러한 시간적 구성을 다른 말로 추보식 구성이라고도 합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 중에서

이 시에서 1연과 2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어 있습니다. 2연에는 계절적인 표현이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천둥이 치고 먹구름이 오는 것을 볼 때 여름 장마가 연상되지요. 이어지는 3연과 4연에 국화꽃이 피어난다는 표현이 있으니 이 시는 전체적으로 계절의 흐름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간의 이동도 시상 전개방식으로 유용하게 쓰입니다. 화자가 위치한 공간이 변화하거나 정서의 흐름이나 전개 양상이 공간의 이동에 따라 전개되는 것입니다.

검정 사포를 쓰고 똑딱선(船)을 내리면
우리 고향의 선창가는 길보다는 사람이 많았소
양지바른 뒷산 푸른 송백(松柏)1)을 끼고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깃발(旗)처럼 다정하고
낯설은 신작로 옆대기를 들어가니
내가 크던 돌다리와 집들이
소리 높이 창가2)하고 돌아가던
저녁놀이 사라진 채 남아 있고
그 길을 찾아가면
우리 집은 유 약국
행이불언(行而不言) 하시는 아버지께선 어느덧
돋보기를 쓰시고 나의 절을 받으시고
헌 책력(冊曆)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님 옆에서
나는 끼고 온 신간(新刊)을 그림책인 양 보았소

유치환, 「귀고」

이 시는 시적 화자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자기 고향을 찾아가며 쓴 시입니다. 고향의 선창가에서부터 집에 이르기까지 공간을 이동하면서 각 공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과거의 추억들이 하나둘 소개되지요. 이런 점에서 이 시는 공간의 이동에 따라 화자의 정서가 전개된다고 볼 수 있지요. 공간의 이동은 시상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제까지 소개한 내용은 모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시의 짜임일 뿐 전부를 소개한 것은 아닙니다. 시인 각자의 개성에 따라 얼마든지 독특한 짜임새를 생각해 볼 수 있지요.

뜬금있는 질문

이미지가 대립하며 시상이 전개될 수도 있나요?

하나의 작품에서 이미지가 대립하며 시상이 전개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같은 시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바다’는 험난하고 ‘나비’는 연약한 존재인데 이 두 가지 이미지가 함께 제시되면서 시상이 전개되지요. 이런 대립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면 두 대상이 모두 보다 더 선명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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