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바다에 동동 떠있는 산호꽃인가, 새하얀 물결에 활짝 핀 인삼꽃인가.”
사슴떼의 신기한 풍경이다. 남영전시인이 산호나 인삼 같은 보물로 사슴을 비유한 것이다.
피나 태반이나 뿔이 사람들에게 진귀하게 쓰이는 사슴은 신비한 동물로서 고대 동이족의 사양권에 속하였다.
우리 조상들의 사슴숭배를 보여주는 두가지 신화가 있다. 해모수신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해모수가 류화와 혼인하려고 류화의 부친 하백(河伯)을 찾아가니 하백은 자기와 술법겨룸을 해서 이기면 혼인을 허락한다고 했다. 먼저 하백이 잉어로 변하자 해모수는 수달이 되였고 하백이 사슴으로 변하자 해모수는 승냥이가 되여 그를 쫓는다. 하백이 사슴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토템이 사슴이기 때문이였다.
다른 하나는 고주몽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고주몽이 비류국을 병탄할 때 사슴을 거꾸로 매달아 사슴의 울음소리로 하늘을 진동시켜 큰비를 불러와 비류국을 물바다에 잠기게 한 것이다. 이 경우의 사슴은 대지와 하늘을 매개(媒介)하는 우주의 동물이다. 그리고 고주몽은 호풍환우(呼风唤雨)의 능력을 가진 주술신이요, 사슴은 그 주술의 효험을 보장하는 령적 동물이다. 사슴이 하백의 토템이였으므로 하백의 외손자 고주몽의 령토 확장을 도와주는 수호신 토템으로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상의 토템이 후대의 수호신으로 된 사례중의 하나이다.
이 두 신화는 우리 조상들의 유구한 사슴숭배력사를 증명하고 있다.
조상들의 사슴숭배는 록각숭배에서도 표현된다. 사슴의 머리에 떠인 여러 가닥의 뿔들은 봄에 돋아나 한해 동안 자라면서 각질로 굳어졌다가 이듬해 봄이면 떨어져 나가 락각이 돼버리고 그 자리에 또 새뿔이 돋아나 자란다. 록각의 이 순환기능은 우리 선조들에게 사슴이야말로 머리에 나무를 키우는 신비한 동물로 인정되였고 따라서 그것은 달이나 곰이 가진 재생의 원리로 보였을 것이다. 하물며 록태나 록용, 록혈이 인간들의 영양품으로 되여있음에랴. 우리의 선조들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이란 무거운 과제였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일차적 삶에 대하여 고민한 나머지 달과 곰처럼 재생의 원리를 지닌 삶을 영구한 삶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신라 왕관(王冠)들이 록각모양으로 장식된 것은 영원한 왕권의 상징이요, 록각이 산 사람의 수장품(收藏品)과 죽은 사람의 부장품(陪葬品)으로 쓰이였다는 사실을 보면 사슴이 우리 민족 십장생(十长生)의 하나로 숭배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인 남영전은 토템시 <사슴>에서 민족의 토템인 사슴의 형상을 부각하면서 그의 토템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안개 감도는 신비한 천국에 오르내리고/이 세상 울창한 수림 속 드나드는 사슴/”은 하늘과 대지 사이를 오가는 천사로 무궁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사슴의 이런 무궁한 생명력은 “풍요한 륙지 찾아내느라/사악한 도깨비 쫓아내느라/” 애쓰며 대자연과의 박투 속에서 자신을 련마하고 지켜낸 민족의 령혼이다.
“붕새의 날개와 더불어/신단수의 가지와 더불어/” 억세고 영원한 생명력의 사슴은 력사의 풍운을 헤치고 우뚝 일떠선 슬기롭고 근로용감한 우리 민족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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