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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렬사비11]진광화 석정 묘소에 깃든 이야기 2
2017년 04월 21일 18시 23분  조회:1364  추천:0  작성자: 리함

건군 90돐 기념 특별기획-중국대륙의 겨레렬사기념비(11)

□ 리 함

1

모택동은 벌써 옹근 하루 낮과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27일 밤에도 잠들 수가 없었다. 만약 팔로군총부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어느덧 동녘이 희붐히 밝아왔다. 이때 129사 류백승부대에서 팽덕회가 부대를 이끌고 석회요(石灰窑) 서북방향에서 포위를 헤치였고 좌권이 포위돌파중 장렬히 희생, 라서경 등 동지들이 흑룡동(黑龙洞) 방향에서 포위를 헤쳤으나 또 적들과 조우하게 되였다는 전보가 왔다.

모택동은 금방 온 전보문을 갖고 주덕을 찾았다. 이 두 로전우의 얼굴에는 더없는 초조와 불안이 비꼈다. 허나 팽덕회가 있는 한 총부가 있고 총부가 있는 한 태항산 항일근거지가 엄연히 존재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었다.

그 시각도 100여명의 조선의용대 전사들은 목숨을 내걸고 팽덕회 부총사령과 팔로군총부를 지켜 싸우고 있었다. 5월 27일 새벽, 하청구에 이른 후 라서경은 긴급회의를 열고 아군의 전체 비전투원들은 분산시켜 각기 행동하라고 지시하였다. 조선인 40여명 비전투원들은 한밤중에 화옥산(花玉山)에 이르렀다가 또 4개 분조로 갈라졌다.

조선의용군 지도자인 석정, 진광화 등이 희생된 오늘의 장자령, 하북성 섭현 경내에 위치해있다.

진광화, 석정, 최채 등이 소속한 분조는 녀성도 몇명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권총 한자루와 수류탄 몇개 밖에 없었다. 날샐 녘에 그들은 한 산비탈의 관목림에 숨었다가 100여명의 적들에게 발견되였다. 진광화는 숲속의 동지들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석정, 최채 두 동지를 보고 셋이서 적들의 주의력을 딴 데로 끌자고 하였다. 그들 셋은 숲속에서 나와 산비탈을 따라 죽기내기로 내달았다. 진광화의 지시에 따라 그들 셋은 또 세갈래로 갈라져 뛰면서 적의 화력을 분산시켰다. 찰나 진광화와 석정이 부동한 지점에서 각기 다리에 부상을 입고 더 뛸 수 없었다. 진광화는 적들의 시선을 벼랑가에로 끌었다. 적들이 거의 다가들 무렵 진광화는 주저없이 벼랑에 훌쩍 몸을 던졌다.

적들이 진광화에게로 쏠리는 그 사이 석정은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기여서 벼랑사이에 몸을 숨겼다. 우리 글로 된 《석정전기》에는 “적들이 퇴각한 후 동지들이 그를 찾아왔을 때 그는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희생되여있었다.”라고 씌여있지만 중문 연구자료는 이와 다른 면을 보이고 있어 주의를 끈다. 인터넷 http://blog.sina.com-청산간객(清山涧客)에는 〈태항아리랑 조선의용군의 이야기〉라고 제목한 상영생(尚荣生)의 텔레비죤 특별프로 해설사가 올라있는데 시간은 2007년 4월 2일이고 해설사에는 이런 단락이 있어 주의를 끈다.

“…우리는 몇번이나 조선의용군 지도자 석정, 진광화 등이 희생된 장자령(庄子岭)에 올랐다. 산우에는 지금도 팔로군과 조선의용군 상병원들이 들어있던 산굴이 있다. 그때 석정은 포위돌파를 지휘할 때 몸에 중상을 입었는데 피가 멈추지 않았다. 전우들은 그를 장자령의 한 산굴에 전이시켰지만 사흘이 지나 피를 너무 흘린 탓으로 장렬히 희생되였다.

2

상영생은 태항산 련화산자락에 있는‘조선의용군렬사기념관’관장으로 알려진다. 상영생의 이 텔레비죤 특별프로 해설사로 보아 석정이 희생될 때 석정 한사람 뿐이 아니였다. 해설사에 따르면 1942년 5월에 있은  반‘소탕’의 나날에 장자령에는‘팔로군어머니’라고 불리우는 리재청(李才清)녀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남편과 아들들과 함께 목숨을 내걸고 수십명 팔로군과 조선의용군 상병원들을 하나하나 장자령의 산굴에 옮긴후 보살폈다. 석정도 그가 보살핀 조선의용군 상병원가운데 한 사람이였을지도 모른다.

이 해설사의 저자인 상영생은 중국항일전쟁과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60주년이 되는 해 여름에 한국손님들을 안내하여 장자령 산허리에 거주하는 리재청의 곽씨댁 옛집을 찾았다. 옛집 뜨락에는 100여년의 수령을 가진 호두나무와 버드나무 두그루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들을 맞아준 이는 리재청의 손자 곽수홰(郭树槐)였다. 곽수홰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거주한 방 뜨락에는 할머니 리재청이 무척 즐기며 아끼던 무궁화(木槿花) 두그루가 있다고 하였다.

무궁화라면 한국의 국화가 아닌가?! 흥분된 상영생 일행이 두그루 무궁화나무를 찾으니 무궁화나무는 꽃핀 상태로 푸르싱싱한 모습으로 맞아주었다. 할머니가 왜서 무궁화 두그루를 심었는가고 물으니 곽수홰는 모르겠다면서 당년 조선의용군 상병원들이 이 집에서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동을 달았다. 참으로 무궁화 두그루에 깃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당년 영웅어머니로 불리운 리재청의 처소

그 후 한패 또 한패의 한국손님들이 해발 1700여메터의 이곳 태항산 장자령에 올라 진광화와 석정의 희생지를 찾아보았다고 해설사는 말하고 있다. 한국 MBC는 기록편 《태항산의 불꽃—조선의용군의 이야기》를 찍기까지 하였다. 그중 한국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라는 훈터 블로그에는 〈나의 항일무장투쟁기 답사기 1부〉가 보인다. 글에서 저자는 2013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한단, 섭현, 호가장 등지 화북지역 항일무장투쟁지를 현지답사하였다면서 석정, 윤세주 렬사가 부상을 입고 사경에 처했을 때 〈밀양아리랑〉을 불러달라고 하였다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태항산 장자령 흑룡동에서 윤세주 렬사가 생전에 좋아하던 고향노래 〈밀양아리랑〉을 느린 곡조로 불렀다고 한다. 〈밀양아리랑〉노래 가사(진용선, 《중국조선족의 아리랑》, 한국 수문출판사, 2001년 1월, 제126페지.)는 이러하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씨구

넘어 넘어 간다

정든 님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후렴)

지척이 천리라더니 도랑사인데

호박잎만 흔들흔들 날 속인다

(후렴)

시화나 년풍에 목화풍년 들면

열석새 무명짜리 혼수차림 하세

(후렴)

(리현기 창 김태갑 수집)

3

다시 당년 1942년 5월로 돌아가면, 5월 27일 밤에 포위를 헤친 팔로군총부와 북방국의 인원들이 소남산(小南山)림에 모였다. 팽덕회가 밀탈곡장에서 동지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니 부총참모장 좌권과 진광화, 석정 등 수십명의 동지들이 장렬히 희생되였었다. 모두가 비분 속에 잠기였다. 이때 팽덕회가 동지들을 돌아보며 짙은 호남말투로 입을 열었다.

“…동지들, 우리 모두 눈물을 닦고 이를 악물고 참모장을 위하여 복수합시다! 희생된 전우—조선동지들을 위하여 복수합시다! 비참하게 죽은 동포들을 위하여 복수합시다!”

이어 팔로군총부와 당중앙과의 련계가 이어지고 내외 협공으로 적들의‘5월대소탕’을 물리쳤다. 이번 반‘소탕’에서 조선동지들은 팽덕회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 팔로군부대와 어깨 겯고 싸우면서 목숨으로 팔로군총부와 근거지를 지켜냈다. 그러나 팽덕회의 심정은 무겁기만 하였다. 팔로군총부와 북방국에 대한 적들의 습격으로 하여 좌권과 진광화, 석정 등 수십명 동지들이 장렬히 희생되였는데 이는 항전이 시작된 이래 팔로군 수뇌기관과 조선의용대가 당한 가장 큰 손실이였다. 조선의용대 전우들이 아니였더면 팔로군총부의 안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였다.

 


장자령의 한 바위에 새겨진 관련 글

팽덕회 부총사령은 반‘소탕’에서의 조선동지들의 역할과 희생을 여실히 당중앙에 보고하면서 조선동지들을 보호할 데 대한 의견을 피력하였다. 조선동지들을 아낄 데 대한 당중앙의 지시가 전달되였다. 그때부터 조선의용대 전사들은 당중앙과 팔로군총부의 배려로 직접적인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정력을 집중하여 군사훈련과 정치문화학습에 몰두하였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팽덕회는 팔로군 야전정치부에 지시하여 중공중앙 북방국과 18집단군 야전정치부의 명의로 조선의용대 렬사 기념방법을 전문 규정하게 하였다. 팽덕회 부총사령의 지시에 좇아 팔로군총부와 변구당조직에서는 태항산근거지 군민들에게 통지를 내여 피어린 항전에서 영용히 희생된 진광화, 석정 등 10여명 조선의용대 렬사들의 영웅업적을 널리 학습할 것을 호소하였다.

한편 팽덕회는 당중앙에 청시하여 팔로군 포병퇀 퇀장이며 조선인인 무정을 새로 개편된 조선의용군 사령원으로 파견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때 팽덕회는 팔로군 총사령 주덕이 연안으로 돌아간 후 태항산근거지와 화북 적후싸움터의 당, 정, 군, 민의 중책을 한몸에 짊어지고 있었다. 중공중앙과 중앙군위에서는 팽덕회의 청시에 따라 팔로군부대의 포병퇀 퇀장으로 있던 무정을 조선의용군 사령원으로 임명하게 되였다.

4

중공중앙의 임명과 더불어 무정이 조선의용군 사령원으로 태항산근거지에 나타난 때는 언제일가?

1941년부터 1942년 7월까지 무정의 발자취를 쭈욱 헤아려보면 무정의 활동은 팔로군 포병퇀만이 아닌 화북조선청년련합회 활동, 조선의용군의 설립과 많이 이어진다. 무정의 조선의용군 사령원 정식 부임을 두고 어떤 자료는 화북조선청년련합회 제2차 대표대회 기간인 1942년 7월이라 하고 어떤 자료는 1942년 말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말한다. 그러나 조선의용군 출신들이거나 조선의용군 관련 력사의 견증자들의 증언은 이와 다르다.

먼저, 조선의용군의 녀전사인 리화림의 장편회고의 한단락을 보기로 하자.

“1942년 8월 ,당중앙에서는 무정동지를 조선의용군 사령원으로 태항산근거지에 파견하였다. 그때 정률성이 무정동지와 함께 연안에서 왔다.” (리화림, 〈진리의 향도 따라〉, 《중국의 광활한 대지우에서》, 연변인민출판사, 1987년 8월 출판, 제241페지.)

여기에서 리화림은 무정의 태항산근거지로의 파견시간을 1942년 8월이라고 밝히면서 이 시간대에 정률성과 함께 연안에서 왔다고 지적하였다. 그 후 리화림은 자기의 장편회고록 《머나먼 려정》에서도 1942년 8월의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1942년 8월에 중공중앙은 무정동지를 파견하여 조선의용군사령부의 사령원을 담임하도록 결정하였다. 그는 부임한 후 의용군전사들에게 정치군사훈련을 진행하였다. 그때 나는 부녀대의 대장 직을 맡고 가정, 녀성 및 아동 사업과 군정학교의 후근사업까지 하였다.”

리화림은 첫 회고문으로부터 근 20년 세월이 흐른 지난 세기 90년대 초반까지도 이 같이 회고하여 변함없음을 보여주었다.

태항산 장자령을 찾는 유람객들     /이상 모두 자료사진

/2017년 3월 18일 재정리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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