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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려행 (28) 초모정자에 올라 봉오골 굽어보다
2006년 03월 19일 00시 00분  조회:3456  추천:91  작성자: 리함

초모정자에 올라 봉오골 굽어보다

리 함

1

봉오동으로 말할 때 정녕 잊을수 없는 력사의 고장이다. 두만강변의 삼툰자로부터 후안산, 봉오동으로 이어진 그 유명짜한 그제날의 봉오동전투가 이 골안치기 상촌에서 벌어졌었다., 언녕 삼툰자를 굽어볼수 있는 도문의 일광산, 후안산 고려령 산행을 마친 연우산악회 일행은 3월 18일 주말산행코스를 봉오동과 그 주변일대를 한눈에 굽어볼수 있는 초모정자로 잡았다.

연우산악회 일행 9명을 태운 스타엑스—서풍패 전용차는 한시간도 되지 않아 우리 일행을 50킬로메터밖의 동북방 석현의 수남촌을 지나 봉오저수지 입구에 이르도록 했다. 입구에서 간소한 수속절차를 마치고 부근의 봉오동반일전적지 기념비부터 찾았다. 제법 한그루 로송아래 규모를 갖춘 기념비로서 도문시에서 1989년에 세운것인데 연변력사연구소시절인 1991년 11월 23일, 봉오동전적지를 처음 답사할 때까지만도 이 기념비는 존재하지도 않고 봉오저수지 땜우 길가에 스산한 세멘트패말이 두개 세워져있을뿐이였다.

2

봉오동반일전적지 기념비에서 기념촬영을 한후 일행은 봉오저수지로 통한 올리막 포장도로를 따라 나아갔다. 골짜기를 가로 막은 봉오저수지 땜과 눈뿌리 모자라게 뻗은 저수지가 시야에 안겨들었다. 이 저수지는 도문시 음료수의 주요원천으로서 1982년에 완공되였는데 땜우 길가의 봉오동반일전적지 패말은 사라지고 얼음에 덮힌 저수지가 아직도 겨울날의 연속이라며 우릴 반겨주고있었다. 저수지 저 멀리 북쪽가에는 오늘의 산행지—초모정자가 하늘을 떠이며 솟아있었다.

봉오저수지땜을 지나서부터는 산허리아래를 가른 흙길이 저수지 북쪽가에 그대로 나타난다. 특이한 경치는 저수지 량안 산들이 참나무숲으로 덮힌데서 바람에 불려온 가랑잎이 길우에 수북히 쌓인것이였다. 산행에 성수난 목장님이 씩씩한 모습으로 가랑잎을 헤치며 장끼를 보이였다. 그 모습이 우스워 일행은 첫 스타트부터 즐거운 비명속에 빠져버렸다.

갑자기 북쪽하늘이 거무칙칙하게 흐려오더니 천지간을 덮어버렸다. 바람이 불어치며 싸락눈이 흩날려 근심이 태산같다. 사뿐사뿐 다가서는 봄날에 싸락눈이 비줄기로 번져갈 때는 큰일이다. 그속에서 20분간을 걸으니 거먼 비구름이 사뭇 가시여지며 따사로운 태양이 봄볕을 뿌리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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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구비진 길가에서 상공님의 지휘하에 필요한 몸놀리기체조를 마친 뒤 북쪽산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경사진 산비탈은 첫시작부터 힘에 부치여 산허리를 지른 새 송전탑밑에서 쉬지 않으면 안되였다. 오늘 첫선을 보이는 향기님이 무드기 사과와 귤들을 내놓아 산속의 휴식은 즐거움으로 흘러넘치였다.

얼떠름해진것은 그 시각이였다. 필자와 신진님은 북쪽의 산정상이 초모정자라고 보는데 송이님은 저수지 땜우에서 초모정자까지 송전탑을 세여보았다며 이제 송전탑 세개를 지나야 초모정자쪽에 접근한다고 모를 박는다. 머리를 설레설레 젓다가 일단은 송이님의 주장을 따르기로 했는데 남으로 경사진 산비탈 한구간을 지나 송이님이 옳다는것이 판명되였다.

또 깊은 골짜기가 나지였다. 송이님은 벌써 골짜기 바닥 동쪽켠에 보이는데 동으로 향한 가파른 산비탈을 내리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가랑잎속은 가끔 눈이 녹아내린 얼음이여서 무턱대고 내리다가는 봉변을 당하기가 십상이다. 한데서 오래만에 처음 산행에 가담한 향기님은 대단한 조심성을 보여준다. 뿌리님, 봄비님, 수정님도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발목싸개로부터 아래우옷, 배낭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산행인의 신식차림인 뿌리님이 한결 신나고 젊어보인다.

벌써 산비탈 릉선우에 일어선 송전탑을 두세개는 지난것 같다. 다음 구간 골짜기 저켠은 잡목이 우거져 왼쪽으로 산비탈을 에돌며 초모정자로 향한 산등성이를 따라야 했다. 이상한것은 말라버린 참나무와 쓰러진 참나무들이 산등성이와 남쪽비탈에 가득 널린것이라 할가, 처음에는 그닥 주의를 돌리지 못했는데 산등성이의 한구간에서 쉬면서 보노라니 산불이 지나간 자리였다. 타버린 참나무 그루터기마다 여나문개, 10여개 참나무 애나무들이 자라난것으로 보아 산불은 10년 안팎의 일로 헤아려졌다. 그번의 산불은 수십년생으로, 고목지대로 된 이곳 산지대를 전부 태워버려 아까운 참나무들이 앙상하게 죽어버리고 이제는 그 그루터기에서 자라난 애나무들이 키높이 산을 다시 덮고있었다. 대자연의 자연회생이 어떤 힘인가를 알려주는 자연공부시간이였다. 옛시에 이르기를《들불은 다 태워버릴수 없거늘, 봄바람에 실려 다시 자라》난다더니 과연 그른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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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산등성이를 따라 뻗어간 송전탑 몇개 산구간을 지나야 했다. 초모정자를 앞둔 서쪽켠의 한 산봉우리에 올라서니 저기 동쪽가에 하늘을 떠인 초모정자가 우뚝 솟아있었다. 서쪽가에서 보는 초모정자는 대단히 높아 소소리 창공을 찌르고있었는데 서남쪽 정상부는 맨숭맨숭한 번대머리였다. 북쪽은 완만한 경사지대를 이루고 남쪽은 벼랑이고 그 아래는 가파른 산지대였다.

가까이에서 초모정자를 대하기는 정말이지 처음이다. 간혹 등산객들이 다녀갈뿐 연길쪽과는 생소한 산이기도 한 초모정자를 두고 산악회 안내팀인 필자와 심진님 그리고 대장 상공님은 단순한 산행으로만 생각지 않았다. 력사를 탐구하는 이들과 봉오동을 답사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저아래 봉오골 바닥을 지나 봉오동 상촌에 이르는데서 봉오동과 그 주변일대 전모를 본다는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였다. 심진님과 필자가 초모정자에 올라 봉오골을 굽어보자고 하니 모두가 대찬성이였다. 그래서 오늘 초모정자산행이 펼쳐진것이였다. 그 기분은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우리만치 잔뜩 부풀어올랐다.

초모정자는 해발 556메터를 헤아리는 산인데 민간에서는 이 산이 초모자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초모정자(草帽頂子)라고 부른다. 우리 독립군부대와 항일의 피어린 이야기가 서려있는 초모정자, 봉오골 북쪽가 산등성이를 따라 이 초모정자쪽으로 움직이는 일행은 신나기만 했다. 송이님이 《항일빨찌산이 왜놈치러 간다.》고 소리를 높이니 일행은 진짜배기 항일빨찌산과 진배없다. 항일전가와 씩씩한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노래속에 도취된 이들은 뿌리님, 수정님, 송이님 등이였다.

어느덧 초모정자 정상과 이어진 북쪽가 산릉선이다. 일행은 산릉선 송전탑밑에서 잠간 다리쉼을 하고는 정상과의 돌파전을 벌리였다. 오불꼬불 오솔길이 정상으로 이어진데다가 완만한 경사지대여서 그다지 힘에 부치지가 않았다. 정상중턱에 오르니 벌써부터 사방이 발아래 펼쳐진다.

선뜻 시선에 잡혀오는것은 초모정자 서남쪽산야이다. 봉오저수지와 북쪽 석현일대를 가늠할 때 그 안쪽에 끼인 산들은 남으로 흐르는 가야하와 봉오저수지에 쌓여 반원모양의 거대한 섬으로 안겨드는데 그사이 산들은 동서로 두갈래 산골짜기를 이루고있었다.

남쪽의 산야 또한 가관이다. 이 지대는 도문의 북쪽—후안산 골인데 전일 산악회 일행이 올랐던 고려령과 북쪽으로 후안산골짜기가 한눈에 보인다. 봉오골과 후안산골사이에 동서로 앉은 산이 가로 막히여 후안산골은 도중에 동북쪽으로 곬을 사리여 봉오동 상촌쪽으로 이어간다. 후안산골은 남봉오동이라고 부를 때 봉오골을 북봉오동으로 부르니 후안산골과 봉오골은 명실공히 산하나를 사이두고 하나로 이어진 통합체가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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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것이 하나의 시선속에 발아래 펼쳐지는것이 좋았다. 목장님, 심진님과 더불어 선참 초모정자 정상에 오르니 기분이 한결 좋았다. 봉오골치기—그제날 봉오동전투의 력사현장이 동쪽 저 멀리에서 시야에 밟혀오면서 20여리 동서 봉오골 전체가 바로 가까이서 보이는듯 하다. 어언 몇해만이더냐, 봉오동전적지를 답사할 때가 1991년이니 옹근 15년이 흘렀다는 말이 된다. 15년 세월이 흐른후 초모정자 정상에서 다시 봉오동상촌을 굽어보니 정녕 꿈속을 거니는 기분이다. 저런 치기에서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이 지휘한 우리 독립군부대들이 1920년 6월 7일, 유인속에 든 일제침략자 100여명을 일거에 쓰러눕혔으니 그날의 그 멸적의 함성이 귀전에 들리는듯싶다.

또, 봉오동 상촌이 삼개골이기도 하여 북으로 뻗으며 왕청현 소왕청근거지의 마반산과 이어진 북쪽골이며 저 멀리 마반산, 산너머 석현쪽으로 이어진 서쪽골짜기, 동쪽으로 산너머 훈춘쪽으로 빠지는 비파골이 련이어 안겨든다. 봉오동과 그 일대가 발아래 환히 보이는, 초모정자 정상에서만 볼수 있는 기꺼운 정경이다. 력사속에 빠져버린 심진님과 필자는 기분이 둥둥 떠서 어쩔줄 몰랐다.

이윽고 하나둘 전부가 정상에 올랐다. 나중에 수정님이 정상에 다가섰는데 요즘 련일 도서들을 점고한다는 이 연변도서관일군은 얼굴에 피로가 그대로 비껴올랐다. 때는 오전 11시 반으로서 봉오동 어구에서 정상까지 옹근 두시간을 걸은 뒤였다. 잇따라 정상부에서의 간소한 간식모임이 펼쳐지고 목장님, 송이님, 필자는 목장님이 지닌 약주를 굽을 냈다. 이같이 기분좋은 날에 술 한잔 나누지 않는다는것은 안될 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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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정상에서 휴식할 때 필자와 심진님은 정상 동쪽가에 솟은 바위봉우리에 올라 주위를 다시 일별했다. 봉오동 상촌과 상촌서 뻗은 삼개골을 다시다시 확인하노라니 그리도 기쁠수가 없다. 바위로 치솟은 좁은 공간을 따라 20~30메터를 나아가는 기분도 좋았다.

정상에서의 반시간이 잠간사이에 흘러갔다. 일행이 남쪽의 후안산골쪽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후 필자는 봉오골 20여리와 봉오동 상촌 전투현장, 후안산과 고려봉을 두고 간단한 소개를 올리여 봉오골과 초모정자, 이곳 일대는 항일의 이야기 비껴담은 유서깊은 고장임을 환기시키였다. 그리곤 유유히 초모정자산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정오 12시 시점. 생각밖으로 서북쪽 석현까지 산길이 이어진데서 석현의 동쪽구간까지 이르는데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봉오동어구에서 초모정자까지, 초모정자에서 석현까지 산행길을 잡으니 봉오동과 그 주변일대의 력사와 지리가 서서히 드러났다. 근 세시간에 걸치는 산행, 초모정자에 올라 봉오골 굽어보는 시각시각은 빨리도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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