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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돐특집】(27) 김약연 기념비 뒤얘기
2007년 12월 07일 05시 32분  조회:4134  추천:79  작성자: 리함


【90돐특집】(27)
윤동주 발자취4

 

                                  김약연 기념비 뒤얘기



      (올해 2007년 12월 30일은 우리 연변이 낳은 내 고향 시인 윤동주 탄생 90돐이 되는 날입니다. 지난 8월 20일 이후 사정에 의하여 윤동주 탄생 90돐특집을 꾸준히 련재하지 못해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오늘부터 12월 30일 사이 윤동주 탄생 90돐특집을 다시 련재하오니 흥취있는 여러 분들의 왕림을 기대합니다.)

                   
     2004 10 3, 명동~장재 답사차 쪽지를 남긴것이 인연으로 되여 나와 한국인 김재홍선생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뒤 10 14일에는 연변대 박금해선생과 더불어 김재홍선생을 모시고 룡정, 명동 답사길에 오를 기회를 가지였다. 오늘 답사의 최대성과는 룡정 시가지의 김약연선생댁을 확인하고 장재촌의 규암재자리, 김약연선생 생가자리를 확인한것이라 할가~그중에서도 김약연목사기념비에 깃든 뒤얘기는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닐수 .

       앞에서도 밝히였지만 김약연목사기념비는 지금의 명동교회 복원옛터 어구에 자리잡고 있다. 윤동주시인의 어머니 김룡이면 김약연선생의 누이동생이라 관심이 무척 가는 분이신데 기념비를 자세히 뜯어보니 기념비 오른쪽켠에 비를 세운 이와 세운시간이 중문으로 새겨져있었다. 헌데 강덕년간이란 자가 없고” “ 10 4 되여있질 않는가.

내가 어리둥절해 승용차운전사 리선생은 “4 27 “27” 없어졌다고 알려준다. 비문을 새긴 이는 교생(敎生) 김석관(金錫觀)으로 되고 명동기독교회가 세운것으로 나타났다.

김약연선생의 증손 김재홍선생의 말씀에 의하면 1990년도 연변 명동에 처음 왔을 지금의 명동학교자리 뒤켠에서 기념비비석을 발견했다, 광복전 명동교회에서 1943년도 김약연선생 사망 이듬해 세운것이라고 한다.

김재홍선생의 친척집 주인 김범춘씨(2004년에 51)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장재촌사람인 그는 김약연비석은 명동학교자리 뒤가 아니라 지금의 명동교회 남쪽 부근 밭에 파묻혀 있었다고 했다. 여러 사람의 증실에 의하면 김범춘씨의 얘기가 옳았다.

한국의 김재홍선생이 연변 명동에 처음 이른것은 1990 8 1일이라고 한다. 그때 보름 머물러있으며 김약연목사님 기념비를 발견하고 김범춘씨한테 부탁하여 그의 뜨락에 1년쯤 두게 되였다. 그러다가 1992 늦가을에 명동교회어구에 서투른대로 세워두었는데 지방정부에서 지금식대로 다시 세웠다고 여러 사람들이 입을 모았다.

명동, 장재촌 답사로 말할 장재촌 김범춘씨는 인연이 닿는 분이였다. 일찍 연변력사연구소 시절인 1992 4 4 청명날에 나는 동료들과 함께 장재촌에 이르러 김약연묘소와 옛집자리, 우물 등을 답사하고 마을의 어른분들과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는데 이야기장소가 김범춘씨 집이였다. 그해 김범춘씨는 39살의 한창 나이고 이야기 나눈 이들은 조광춘(1926 ), 김기선, 리종순(1923 ), 김범춘씨 등등.

조광춘어른은 원래 룡정현 당안관에서 근무하다가 1969 12월에 장재로 와서 새집 짓고 들었다고 했다. 그의 말씀에 따르면 김약연의 옛집을 당시 구차한 사람인 안명호가 사게 되였는데 일제때 세월에 1원짜리가 당첨되여 돈으로 김약연의 집을 샀다고 동을 달았다. 김기선어른은 룡정화학공장에서 퇴직한 분인데 김약연네는 4형제, 김후연네는 5형제를 거들면서 문화대혁명시절, 1967년경에 낡은것을 파괴하고 새건을 세운다면서 김약연 묘를 파헤치였다, 흙만 헤치다 말았다고 회고했다. 그들은 김약연선생의 후손중 김재홍(43)선생이 주로 활약적이고 재작년(1990) 명동에 잠간 다녀갔다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허나 그후 시간이 10여년 흐르는 나는 일들을 까맣게 잊었고 2004년에 그날의 답사기록을 찾아내서야 1992 청명답사를 다시 떠올리게 되였다. 2004 10 14, 장재에서 김범춘씨를 만났을 나는 1992 청명날 만남과 련계시키지 못했으니 나의 기억력은 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아무렴, 김범춘씨에게 감사를 드려야 했다. 1992 청명만 보아도, 10여년후 2004 10 14일도 그러하고 장재촌 답사취재는 모두 김범춘씨와 이어졌으니 윤동주를 알자면 우선 먼저 김약연선생을 알아야 했고 김약연선생을 알아야 윤동주시인 일가족 전후관계를 보다 헤아릴수 있었다.

2004 10 3, 장재 외딴집 가는 밭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김범춘씨 어머님 김남숙, 김해 김씨였다. 올해 77살로서 장재촌 동구에서 태여나 김약연선생네 전주김씨 마을에 시집오셨다. 그렇게 만난 할머니가 김범춘씨 댁으로 이어지고 김재홍선생을 만난 계기가 되였고 김범춘씨를 통해 다시 할머니로 이어지니 인연이면 잊을수 없는 인연이였다.

김약연기념비와 그에 깃든 뒤얘기 그리고 김범춘씨, 김남숙할머니, 김재홍선생그네들과의 인연속에서 윤동주시인 관련 명동, 장재의 그제날이 살아숨쉬듯 쭈욱 펼쳐져갔다. 한편한편의 답사기는 이렇게 씌여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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