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가 친구로 될수는 없을가
박일
몇개월 전, 필자는 고향친구 A군이 림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었다. 필자와 A군은 서로 다른 도시에서 살지만 퇴직후에도 여러번 만났고 자주 전화를 하면서 가깝게 지내오는 사이였다. 그래서 필자는 A군에게 직접 위문전화도 하고 성의껏 위로금도 보내면서 조만간에 꼭 한번 찾아가 뵙겠노라고 아이들이 깍지 걸듯 약속도 했었는데 어쩌면 거퍼 한달도 안되여 그이가 사망하였다는 놀라운 비보가 날아왔다. 그보다도 충격적인 일은 A군은 림파암 말기란 진단이 나오자 아예 맥을 놓으며 음식을 전페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암이 급속히 악화되여 잘못된 것이 아니고 겁에 질려 죽음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친구 A군이 그렇게 떠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가슴이 먹먹해난다.
사람이 살다보면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이 몸이 아프거나 심신에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이런저런 병이라는 탈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찌보면 병이라는 악마는 행복이라는 기쁨이 우리 몸에 찾아오듯 마시는 공기처럼, 그림자처럼 붙어다니고 또 우리 몸에 침투되여 나쁜 피와 살을 만들려고 애를 박박 쓰는 마귀인 것 같다. 그래서 보면 몸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지내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여기저기가 아파나 약을 먹고 병원을 찾아 의사의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 다시 건강을 찾으며 사는 것이 인간의 일상생활, 또는 삶의 한부분으로 되고있다. 그러니 아무리 밉고 짜증이 나더라도 어쩔수 없이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쩔수 없이 그러한 병마와 싸우며 살아야만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진 모습, 또는 삶의 내용중에 빠뜨릴수 없는 중요한 일환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나 젊은 세대가 아니고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우리 로인세대의 경우에는 더구나 그러하다. 로인세대는 젊은이들과 달리 인간생물체가 발육이 완성된 성숙기 이후에 생기는 신체로화, 즉 신체의 여러가지 기능이 쇠퇴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그런 신체의 로쇠현상으로 말미암아 년세가 많아질수록 신체의 전반적인 기능감소가 심각해지고 더불어 퇴행성 질병이 몸의 이곳저곳을 부식시키는 것이다. 이는 생, 로, 병, 사의 자연법칙이므로 한해가 지나면 나이가 한살 더 먹듯 누구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보면 우리 로인들은 관절염,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치매, 골다공증 같은 전형적인 질병이 몸에 생기게 되는데 이런 질병은 조기발견이 어렵고, 만성적이며 허다한 로인들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질병을 복수로 가지고 있는가 하면 대부분 질병은 또 완치가 거의 불능이란 특성까지 겹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무더운 폭염속에서 두 사람이 사막을 걷다가 몸에 지닌 먹을 물이 얼마나 남았는가를 들여다 보게 된다. 물은 딱 반병이 있었다. 그런데 그 물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태도는 판이하게 달랐다. 한사람은 “물은 아직도 반병이나 있네”하고 말하는데 다른 한사람은 “물이 겨우 반병밖에 없네”하고 대답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생각이 부동함에 따라 이어서 나타나는 자세와 기분도 완전히 달라진다. 물이 아직도 반병이나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신심과 용기가 생겨 몸에서 힘이 솟아나는데 반면 물이 겨우 반병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만과 실망이 몸에 밀려들어 어깨가 처지고 맥이 빠지게 되였던 것이다.
이는 무슨 일이나 마음가짐에 달렸음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전형적인 실례다. 우리가 병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몸에 병이 생겼다고 덮어놓고 두려움부터 앞서고 겁이 나서 쩔쩔매고 소극적이고, 귀찮고, 싫어서 뒤걸음질만 친다면 병이란 악마도 당신을 얕잡아보고 업신여기게 되여 더 포악스럽고 더 기세 사납게 당신의 육신을 아프게 만들 것이고 괴롭히고 고통을 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던 질병이 몸에 생겼다 하더라도 “밥을 꿍꿍 챙겨먹고 정신을 버쩍 차리노라면 나아질 거야.” “약을 먹고 주사 맞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완치될 거야.” “좋은 약, 좋은 의사, 좋은 병원에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이렇게 긍정적인 자세로 밝은 생각을 가진다면 당신은 기필코 그 질병이란 악마와 싸워 이기게 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적극적인 자세와 바른 마음가짐이 있음으로 하여 암과 같은 무서운 질병도 떳떳이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하는 환자들이 기수부지로 나타나고 있다.
바로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질병은 우리의 몸을 해치는 악마라고 한곬으로만 생각하며 그냥 등 돌리고 배척하려고 애 쓸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긴 그래서라도 질병이 사라지고 도망간다면 몰라도 그렇게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하여 절로 피하고 없어질 물건도 아니지 않는가? 우에서도 언급했듯이 로인들의 관절염, 고혈압, 당뇨 같은 질병은 대부분 만성병일뿐만 아니라 완치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당신이 미워하던 고와하던 그 병은 병대로 그냥 몸에 혹처럼 붙어있을 것이다. 그럴바 하고는 마음을 크게 먹고 그 병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면 어떠냐 하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몸에 있는 질병과 공존하며 같이 살아가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사는게 쉽고 사는게 상대적으로 힘이 적게 든다는 것이다. 흔히 로인들의 몸에 생긴 병은 하루 이틀 사이에 걸린 병이 아니여서 그놈이 발작할라치면 얼마나 아프고 어떻게 괴로운지를 우리는 이미 알고있는 경험자들이다. 그래서 아픈 것이 낯설지가 않고 아픈 것이 습관이 되여오고있다. 그렇다고 할때 머리가 아프면 이마를 짚고, 심장이 아프면 가슴을 누르며 “야, 너 그쯤에서 좀 멈추면 안되겠냐?” “고맙다, 너 오늘은 나를 별로 귀찮게 굴지 않아주어서” 하고 속으로 대화도 하면서 그 병과 다정한 친구로, 같이 가는 길동무로 지내자는 그얘기다. 그러면 그 병때문에 늘 불안하고 신경이 곤두서는 일들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 마음이 편안해서 식욕도 늘고 잠도 잘 오고 절로 움직임이 많아지며 무엇을 하고 싶은 충동도 커지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그래서 병이란 “병”자에다 마귀라는 “마”자를 붙여 원쑤 같은 “병마(病魔)” 라고 욕설만 퍼부을 것이 아니라 그 “병” 자에다 친구라는 “우”자를 붙여 길동무인 “병우(病友)”라는 신선한 이름도 불러볼줄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필자의 고향친구였던 A군도 만약 림프암 말기란 진단을 받고 지레 겁에 질려 무너지지만 않았더라면, 한발 더 나아가 그 림프암을 인정하고 그 암과 친구 되여 같이 살아가는 밝은 마음을 가졌더라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없이 펄펄 숨을 쉬며 이 세상에 살고있지 않았을가?!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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