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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11분》

《11분》 (련재8)
2015년 01월 16일 21시 42분  조회:1183  추천:0  작성자: 세계명작


마리아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도착했다. 공항에서부터 두려움에 가슴이 조여왔다. 그녀는 자신이 곁에 있는 남자에게 완전히 매여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 나라도, 이 나라의 언어도, 추위도 알지 못했다. 로제의 태도도 시간이 갈수록 변해갔다. 그는 더이상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지 않았다. 이전에도 키스를 하려 하거나 가슴을 더듬으려 들지는 않았지만 눈길이 확실히 랭랭해졌다. 그는 그녀를 부근 호텔에 투숙시키고 쓸쓸한 표정을 가진 브라질 녀자 비비안을 소개했다. 마리아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의 초보적인 지식을 가르쳐줄 녀자라고 했다.

비비안은 이제 막 외국땅에 발을 디딘 녀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수 없는 눈길로 마리아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외국땅을 밟은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따위는 아예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환상은 버려. 로제는 댄서들중 하나가 결혼할 때마다 브라질로 가니까. 늘상 있는 일이야. 로제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고있어. 너 역시 그걸 알고있으리라 믿어. 넌 분명히 모험, 돈, 남편, 이 세가지중 하나를 찾아 여기까지 왔을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맞혔을가? 누구나 다 같은것을 찾기때문일가? 아니면 이 녀자가 남의 생각을 읽을줄 아는걸가?
《여기 있는 녀자들은 누구나 그 세가지중 하나를 찾아 이곳에 오니까.》
비비안이 말을 이었다. 마리아는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읽는다고 확신했다.

《모험이라면 이곳은 모험을 시도하기엔 너무 추워. 게다가 려행에 쓸 돈도 한푼 없잖아. 돈이라면 숙박비와 식비를 떼고나면 돌아가는 비행기삯만도 족히 일년은 뼈빠져라 일해야 할거야.》

《하지만…》
《나도 알아. 그렇게 알고 오진 않았겠지, 사실, 물어보는걸 잊은건 바로 너야. 누구나 다 그래. 네가 좀더 신중했더라면 서명하기전에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봤다면 네가 어디로 기여드는지 정확하게 알수 있었을거야. 스위스사람들은 입을 다물고있을망정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까.》
땅이 꺼지는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남편이라면 데려온 녀자들이 결혼할 때마다 로제는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어. 그래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걸 금지하고있어. 네가 그쪽 방향으로 뭔가를 하려 들면 엄청난 위험을 겪게 될거야. 이곳은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가 아냐. 베른가와는 반대지.》

베른가?
《여기는 남자들이 안해를 동반하고 오는 곳이야. 이곳 분위기가 너무 가족적이라고 생각하는 관광객들은 녀자를 찾아 다른 곳으로 가지. 물론 춤을 출줄 알겠지? 노래도 부를줄 안다면 급료가 올라갈거야. 하지만 다른 아가씨들의 질투도 함께 올라가. 그러니까 네가 브라질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더라도 다 잊어. 노래는 아예 부르려 들지 않는게 신상에 좋을거야. 특히, 전화는 절대로 사용하지 마. 몇푼 되지 않을, 아직 벌지 못한 돈까지 다 날리게 될테니까.》
《하지만 그 사람이 일주일에 오백딸라씩 지불하겠다고 약속한걸요?》
《두고봐, 알게 될테니.》

스위스에 온지 이주째 되는 날 마리아는 일기에 썼다.

클럽에 모로코라는 나라 출신의 《춤선생》이 있었다. 브라질땅에 한번도 발을 들여놓은적이 없는 그가 삼바춤이라고는 믿는것의 스탭을 하나하나 따라하며 배워야 했다. 비행기를 타고 그 긴 려행을 했는데 잠시 쉴 틈조차 없었다. 첫날 저녁부터 만면에 미소를 짓고 춤을 춰야 했다. 녀자는 모두 여섯명이였는데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고 자신이 여기서 무얼 하고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손님들은 술을 마시고 박수를 쳐대고 키스를 보내고 남의 눈을 피해 음란한 몸짓을 했다. 하지만 그뿐 별일은 없었다.

어제 첫 급료를 받았는데 약속된 금액의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계약에 따라 여기까지 오는데 든 항공료와 숙식비를 면제하는데 사용될거라고 한다. 비비안의 말대로라면 일년은 족히 일해야 돌아가는 항공료를 모을수 있다. 그동안은 어디로도 달아날수 없다.

그런데 달아나야 할가? 나는 이제 막 도착했고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매일밤 춤을 추는게 뭐 그리 대수인가? 전에는 좋아서 췄지만 지금은 돈과 명성을 위해 춘다. 다리가 아픈건 견딜만하다. 가장 힘든건 계속 미소를 짓고있어야 하는것이다.

둘중 하나를 선택할수 있다. 나는 세상의 제물일수도 있고 자신의 보물을 찾아 떠난 모험가일수도 있다. 문제는 내가 어떤 시선으로 내 삶을 바라볼것인지에 달려있다.


마리아는 자신의 보물을 찾아 떠난 모험가이기를 택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들은 접어두고 밤새 울던 울음도 그치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었다. 그녀는 마치 갓 태여난것처럼 살아갈 의지가 자신에게 있다는것을, 따라서 어느 누구의 부재도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기로 했다. 돈도 벌고 세상도 구경한후에 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그러고보니 그녀 주변의 모든것이 브라질의 일반적인 분위기, 특히 고향도시의 분위기와 흡사했다. 녀자들은 포르뚜갈어를 사용했고 남자들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을 늘여놓았고 시끌벅적하게 말다툼을 했고 빡빡한 일정에 항의했다. 지각하기 일쑤였고 사장에게 대들고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녀자라고 착각했고 백마 탄 왕자이야기를 늘여놓았다. 그들의 왕자는 대개 아주 먼 곳에 있거나 결혼한 사람이거나 가난하거나 그들에게 빌붙어 살아갔다. 로제의 홍보책자를 보고 마리아가 상상했던것과는 반대로 그곳 분위기는 비비안이 말한 그대로 가족적이였다. 취업카드에 《삼바땐서》라고 기재되여있었기때문에 녀자들은 초대에 응할수도 없었고 손님과 외출할수도 없었다.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라도 받았다가 들키는 날에는 이주동안 일을 할수 없었다. 모험과 감동을 기대했던 마리아는 서서히 우울과 권태에 빠져들어갔다.

첫 이주동안 그녀는 묵고있던 하숙집에서 거의 나가지 않았다. 특히 그녀가 아무리 천천히 발음해도 도시주민중에 그녀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는 또한 그녀는 이 도시의 이름이 주민들에게는 주네브, 브라질녀자들에게는 제네브라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결국, 텔레비죤도 없는 하숙집 골방에서 오랜 시간을 곰곰히 생각한 끝에 그녀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첫째, 생각하는것을 말하지 못하는 한 결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것이다. 이곳 말을 배워야 한다.

둘째, 모두 똑같은것을 추구하고있는 동료들중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아직은 그럴수 있는 해결책도 방법도 없지만.
제네바에 온지 사주째 되는 날 마리아는 일기에 썼다.

이곳에 온지 정말 오래된것 같다. 아직 이곳 말을 못한다. 라지오로 음악을 듣거나 벽을 골똘히 바라보거나 브라질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숙집에 있을 때는 일할 시간만을, 일을 할 때는 하숙집으로 돌아갈 시간만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살고있는 셈이다.

언젠가는 항공료를 마련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면 브라질로 돌아가 직물가게주인과 결혼하고 위험을 무릅쓴적도 없으면서 남의 실패를 고소해하는 친구들의 험담이나 듣게 되겠지. 아니, 그렇게 돌아갈수는 없다. 차라리 대양우를 나는 비행기에서 뛰여내리고말것이다.

참, 비행기 창문은 열리지 않지. 그건 정말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그 긴 려행을 하면서 신선한 바람을 쐴수 없다는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난 여기서 죽겠다. 하지만 죽기전에 삶을 위해 싸워보고싶다. 혼자 걸을수 있을 때,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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