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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1분》 (련재28.끝) 댓글:  조회:1812  추천:0  2015-02-01
나는 무릎을 꿇고 천천히 그의 옷을 벗겼다. 나는 그의 성기가 아무런 반응없이 선잠에 빠져있는것을 보았다. 그는 그것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나는 발에서 시작해 그의 다리안쪽을 입술로 더듬어올라갔다. 그의 성기가 서서히 반응했다. 나는 그것을 애무하다 입속에 집어넣었다. 나는 그가 그것을 《자, 이제 행동할 채비를 해요!》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의 애정을 가지고 그것에 입을 맞추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기때문에 나는 모든것을 얻었다. 그가 몹시 흥분한 상태로, 완전한 어둠속에 빠졌던 그날 밤처럼 주변에 원을 그리며 내 젖꼭지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내안에, 혹은 내 입속에, 혹은 그가 날 가지고싶어하는 방식으로 갖고싶은 욕망이 일었다. 그는 내 웃옷을 벗기지 않았다. 그가 나를 다리를 벌린채 식탁에 배를 대고 엎드리게 했다. 그러고는 뒤에서 천천히 내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아무 걱정없이 날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없이 그 역시 이미 그것이 꿈이라는것을, 영원히 꿈으로 남으리라는것을 마음속 깊이 깨달았기때문이였다. 내안으로 들어온 그의 성기를 느낌과 동시에 나는 녀자만이 할수 있는 방식으로 내 젖가슴과 엉뎅이를 만지는 그의 손을 느꼈다. 그제야 나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 만들어졌다는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할 때, 또는 우리가 우주를 완벽한것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것이 틀림없는 두 령혼, 잃어버린 두 반쪽으로 만나 서로를 입문시킬 때 그가 녀자가 될수 있었듯이 나 역시 남자가 될수 있었으니까. 그가 내안에서 왕복운동을 하며 날 애무하는 동안, 나는 그가 나만이 아니라 전 우주와 사랑을 나누고있다는것을 느꼈다. 우리에겐 시간이 있었고 애정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았다. 그랬다. 떠나고자 하는 욕망으로 충만한채 가방 두개를 들고 왔다가 즉시 바닥에 던져져 마치 범해지듯 사랑을 나누는것은 멋진 일이였다. 하지만 밤이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는것을, 그리고 지금 이 부엌식탁우에서, 오르가즘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만남의 시작이라는것을 아는것 역시 멋진 일이였다. 그의 성기가 내안에서 꼼짝도 않고있는 상태에서 그의 손가락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나는 첫번째,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오르가슴을 느꼈다. 나는 그를 밀쳐내고싶었다. 쾌감의 고통이 너무 강해 죽을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견뎌냈다. 그것을 받아들였다. 아직 참아낼수 있었다. 또 한번의 오르가즘, 그리고 또 한번…얼마든지… …갑자기, 내안에서 빛이 폭발했다.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것보다 한없이 우월한 존재였다. 그의 손이 나를 네번째 오르가즘으로 이끌었을 때, 나는 모든것이 평화인 장소로 들어갔다. 다섯번째 오르가즘때 나는 신을 만났다. 그의 손이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내안을 다시 더듬기 시작하는 그의 성기를 느꼈다. 《오, 하느님!》 나는 그것이 천국인지 지옥인지도 모르는채 쾌락에 나 자신을 내맡겼다. 그것은 천국이였다. 나는 땅이였고 산이였고 호랑이였다. 호수로 흘러드는 강이였고 바다가 되는 호수였다. 그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졌다. 고통이 쾌락과 뒤섞였다. 《더이상 못하겠어요》라고 말할수도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그건 공정하지 못했을것이다. 그 단계에서는 그와 내가 동일한 존재였으니까. 나는 그가 원하는만큼 내안을 들어오게 내버려두었다. 이제 그의 손톱이 내 엉뎅이에 박혀있었다. 부엌식탁에 배를 댄채 사랑을 나누면서 나는 사랑을 나누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또다시 점점 빨라지는 호흡, 살을 파고드는 손톱, 그리고 점점 더 강하게 내속을 파고드는 그의 성기, 살에 부딪히는 살. 나는 또다시 오르가즘을 향해 나아갔다. 그도 역시, 이 모든것이 결코, 결코 거짓이 아니였다! 《와!》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있었다. 나도 때가 되였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내 온몸이 풀어졌다.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였다. 더이상 들리지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는 감각 그 자체일뿐이였다. 《와!》 나는 그와 합류했다. 그것은 11분이 아니라 영원이였다. 마치 우리가 우리 몸에서 벗어나 기쁨, 리해, 그리고 깊은 우정속에서 천국의 정원을 거니는것 같았다. 나는 녀자이자 남자였고 그는 남자이자 녀자였다. 얼마나 지속되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것이 기도처럼 고요하여 마치 우주와 삶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듯 이름도 시간도 없는 성스러운 무언가로 변해버린듯했다. 곧 시간이 돌아왔다. 나는 그의 웨침을 들었고 나도 그와 함께 웨쳤다. 식탁다리가 덜거덕거리며 힘차게 바닥에 부딪쳤다. 그나 나나 세상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불쑥 나에게서 나왔다. 나는 웃었다. 나는 그를 향해 돌아섰다. 그도 웃고있었다. 우리는 생애 최초로 사랑을 나눈 사람들처럼 서로를 껴안았다. 《날 축복해주오.》 그가 말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있는지도 모르는채 그를 축복해주었다. 나는 내게도 축복을 내려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그가 말했다. 《내가 많이 사랑한 이 녀자에게 축복을.》 그의 말은 아름다웠다. 우리는 또다시 포옹했다. 우리는 어떻게 단 11분이 한 남자와 한 녀자를 그 모든것으로 이끌수 있는지 리해하지 못한채 한참 동안을 그러고있었다. 우리는 피곤하지 않았다. 우리는 거실로 갔다. 그는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내가 기대했던 그것을 했다. 그는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잔에 와인을 따랐다. 책 한권을 가져와 소리내여 읽어주었다. 태여날 시간, 죽을 시간 심어야 할 시간, 심은것을 뽑을 시간 죽일 시간, 치유할 시간 파괴할 시간, 건설할 시간 눈물의 시간, 웃음의 시간 애도의 시간, 춤출 시간 돌을 던질 시간, 돌을 모을 시간 포옹할 시간, 포옹을 풀 시간 가져야 할 시간, 잃어야 할 시간 지켜야 할 시간, 던져버릴 시간 찢어버릴 시간, 꿰맬 시간 침묵을 지킬 시간, 말할 시간 사랑할 시간, 증오할 시간 전쟁의 시간, 그리고 평화의 시간 그것은 마치 작별인사처럼 들렸다. 하지만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알아온 모든것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나는 그를 꼭 껴안았다. 그 역시 나를 꼭 껴안았다. 우리는 벽난로앞 양탄자우에 누워있었다. 마치 내가 늘 현명하고 행복하고 활짝 피여난 녀자였던것처럼 어떤 충만감이 느껴졌다. 《당신은 어떻게 창녀를 사랑할수 있었어요?》 《그때는 나도 리해할수 없었소. 하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당신의 육체가 결코 나만의것이 될수 없다는것을 알았기때문에. 당신의 령혼을 정복하는 일에 집중할수 있었던것 같소.》 《그럼 질투는?》 《우리는 라고 말할순 없어요. 단지 이렇게 말할수 있을뿐이요. .》 바람에 흩어질 말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싶었고 그는 그 말을 하고싶었다. 나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향기가 대기를 가득 채우는 꿈이였다. 마리아가 눈을 떴을 때, 열린 블라인드를 통해 몇줄기 해살이 비치고있었다. 《이 사람과 두번 사랑을 나눴어.》 곁에 잠들어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데 마치 평생을 함께 보낸 사이 같아. 내 삶을, 내 령혼을, 내 육체를, 내 빛을, 내 고통을 이미 다 알고있는 사람 같아.》 그녀는 일어나 부엌으로 커피를 타러 갔다. 복도에 놓인 가방 두개가 보였다. 모든것이 떠올랐다. 맹세, 성당에서 올린 기도, 그녀의 삶, 현실이 되여 마법을 잃겠다고 고집하는 꿈, 완벽한 남자, 육체와 령혼이 하나이며 똑같고, 쾌락과 오르가즘은 별개인 사랑. 그녀는 남을수도 있었다. 잃을것이 없었다. 또 한번의 환상을 빼고는 그녀는 시를 떠올렸다. 눈물의 시간, 웃음의 시간, 하지만 다른 구절도 있었다. 포옹할 시간, 포옹을 풀 시간, 그녀는 커피를 준비했고 부엌문을 닫았고, 전화로 택시를 불렀다.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먼 곳까지 이끌어온 모든 의지력, 그녀에게 떠날 시간을 알려주고 그녀를 보호하고, 어제밤의 추억을 온전히 간직하게 해줄 그 《빛》의 에너지를 끌어모았다. 그녀는 옷을 입고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잠에서 깨여나 가지 말라고 붙잡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는 깨여나지 않았다. 밖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한 집시녀자가 꽃다발을 들고 지나갔다. 《하나 드릴가요?》 마리아는 꽃다발을 샀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신호였다. 이제 당분간 제네바에서는 카페 테라스에 내놓은 탁자들도, 산책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해살 가득한 공원도 볼수 없을것이다. 그녀는 아쉬워해서는 안되였다. 그녀는 떠날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니까. 아쉬워할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리아는 공항에 도착해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네시간동안 파리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그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면서. 잠들기 직전에 그에게 출발시간을 말해줬으니까. 영화에서는 늘 그랬다. 마지막 장면에, 녀자가 비행기를 타려는 순간에, 남자가 절박한 표정으로 나타나 녀자를 붙잡아 키스를 퍼붓고는 항공사 직원들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는 가운데 그녀를 자신의 세계로 다시 데려간다. 그리고 《끝》이라는 자막이 뜨면 관객들은 그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거라고 확신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영화에서는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결코 이야기하지 않아.》 마리아는 위안삼아 스스로에게 말했다. 결혼, 료리, 아이들, 점점 줄어들어가는 성관계, 정부(情婦)가 보낸 첫 련애편지. 순순히 넘어가지 않겠다는 결심, 두번 다시 그런 일이 없을거라는 남편의 약속, 또 다른 정부가 보낸 련애편지, 또 다른 스캔들과 결별의 위협, 하지만 이번에는 남편도 그리 확실한 다짐을 주지 않는다. 안해에게 그냥 사랑한다고 말하는것으로 만족한다. 세번째 정부가 보낸 련애편지, 안해는 남편이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떠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말할가봐 두려워 입을 다물기로, 아무것도 모르는척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니, 영화들은 그런것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영화는 실제 세계가 시작되기전에 끝난다.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녀는 잡지 한권, 두권, 세권을 읽었다. 공항 대합실에서 거의 영원처럼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가 탈 비행기의 탑승을 준비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녀는 비행기에 올랐다.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어깨에 와닿는 손길이 느껴져 돌아보니 그가 서서 환히 웃고있는 마지막 장면을 그녀는 상상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제네바에서 파리로 가는 짧은 려정동안 그녀는 잠을 잤다. 고향에 돌아가 무슨 이야기를 할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귀향한 그녀를 반갑게 맞이할것이고, 농장과 로년을 편안히 보낼 집을 갖게 되였다는 사실에 몹시 기뻐하것이다. 비행기가 착륙하면서 요동을 치는 바람에 그녀는 잠에서 깨여났다. 녀승무원이 다가와 그녀는 C터미널에 내리게 되는데 브라질행 비행기는 F터미널에서 출발하므로 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하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고, 연착하지 않았으니 시간은 충분할거라고, 지상근무요원에게 부탁하면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줄거라고 설명해주었다. 비행기가 승강통로로 접근하는 동안 그녀는 사진도 찍고 고향에 돌아가 자랑도 할 겸 파리에서 한나절 보내는것도 괜찮지 않을가 생각했다. 혼자 거닐며 생각에 잠길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밤의 추억들을 마음속 깊이 묻어둘 시간. 그제야 후날, 살아있다고 느끼고싶을 때 그 추억을 불러낼수 있을테니까. 그렇다, 파리는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그녀는 그날 비행기를 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승무원에게 다음번 브라질행 항공편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표를 살펴본 승무원은 죄송하지만 그 표로는 다음번 항공편을 리용할수 없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그처럼 아름다운 도시를 혼자 구경하다가는 의기소침해질지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녀는 랭정함을, 의지력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한 남자에 대한 그리움때문에 모든것을 망칠수는 없었다. 그녀는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경찰의 검문을 통과했다. 그녀의 가방은 브라질행 비행기로 곧장 옮겨질것이다. 문들이 열리고, 승객들이 달려가 마중나온 안해, 어머니, 자식들을 포옹했다. 마리아는 그 모든것에 무심한듯 행동했지만 또다시 혼자가 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에게도 비밀이, 꿈이 있었다. 마음이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삶은 훨씬 수월해질것이다. 《파리는 언제나 거기 있을거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관광가이드가 아니였다. 택시운전사도 아니였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파리는 언제나 거기 있을거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나오는 말이요. 에펠탑을 구경하고싶소?》 그랬다. 그녀는 에펠탑을 무척이나 구경하고싶었다. 랄프는 손에 장미 한다발을 들고있었다. 그의 두눈은 첫날의 빛으로, 바깥바람이 차가워 그녀가 앉아있기 불편해했던 그가 그녀의 모습을 그렸던 그때의 빛으로 가득했다. 《어떻게 나보다 먼저 도착했어요?》 놀라움을 감추기 위해 그녀가 물었다. 대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정신을 차릴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공항에서 잡지를 읽고있는 당신을 봤어요. 다가갈수도 있었지만 나는 어쩔수 없는 랑만주의자인가봐요. 파리로 먼저 날아가 공항을 거닐면서 세시간을 기다리고 비행기 도착시간을 수도 없이 물어보고 당신에게 줄 꽃을 사고 에서 릭이 사랑하는 녀인에게 하는 말을 당신에게 들려준 뒤 놀라는 당신 얼굴을 상상하는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소.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것이라는걸, 당신이 날 기다리고있다는걸, 세상의 모든 결심과 의지로도 게임의 규칙을 수시로 바꾸는 사랑을 막지는 못할거라고 확신하고싶었소. 영화에서처럼 랑만적인 되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오. 그렇지 않소?》 그녀로서는 그것이 어려운지 어떤지 알수 없었다. 솔직히 알고싶지도 않았다. 그녀가 지금 이 남자를 만났고 그들이 몇시간전에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었고 그 전날 그가 그녀를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했다는것을 알뿐이였다. 또한 그가 그녀가 일하는 나이트클럽의 단골손님이였고 그가 결혼을 두번이나 했다는것도 말하자면 그는 흠잡을데 없는 신랑감은 아니였다. 그녀에겐 농장을 살 돈이 있었고 창창한 앞날이 있었고 삶에 대한 많은 경험과 강인하고 독립적인 령혼이 있었다. 하지만 선택은 늘 그녀 대신 운명이 했다. 그녀는 또 한번 위험을 무릅쓰는것도 나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를 힘껏 껴안았다. 스크린에 《끝》이라는 자막이 뜬 다음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날 누군가가 그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생각을 한다면 마치 한편의 동화처럼 시작하라고 요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옛날 옛적에…》                                    (끝)
29    《11분》 (련재27) 댓글:  조회:2154  추천:0  2015-02-01
마리아의 일기. 그날 저녁, 문을 열어준 그가 가방 두개를 든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걱정 말아요. 여기 눌러앉으러 온건 아니니까. 저녁이나 먹으러 가요.》 내가 재빨리 말했다. 그는 말 한마디 없이 내 가방을 받아 들여놓았다. 그리고는 《이 가방들은 뭐야?》라거나 《와줘서 정말 기뻐.》같은 말도 없이 마치 오래동안 오로지 그것만을 벼르고있었던것처럼.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 되리라고 예감이라도 한것처럼 나를 덥석 끌어안고는 키스를 퍼부으며 내 몸을, 내 젖가슴과 성기를 더듬었다. 그는 내 웃옷과 원피스, 그리고 속옷을 벗겼다. 우리는 거기, 문아래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현관에서, 느닷없이,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 나는 멈추라고 말하는게 낫겠다고. 좀더 안락한 곳에서 시간을 갖고 천천히 우리 성의 방대한 세계를 탐험하는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내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랐다. 내가 한번도 소유하지 않았고, 앞으로 두번 다시 소유하지 않을 남자였기에. 나는 내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 그를 사랑할수 있었고, 내가 결코 가져보지 못했던것 그리고 아마도 두번 다시 가지지 못할것을 가질수 있었다. 적어도 하루밤동안은. 그는 나를 바닥에 눕히고 내가 미처 젖기도 전에 내안으로 들어왔다. 아픈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그는 내가 그의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리해해야 했다. 나는 더이상 그에게 뭔가를 가르치기 위해, 내 감수성이 다른 녀자들보다 뛰여나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거기 있는게 아니였다. 나는 오로지 그에게 《네》라고. 그러면 언제든 환영이라고, 나 역시 그걸 기다리고있었다고, 우리끼리 정했던 규칙을 완전히 무시해버린것이 날 즐겁게 해주었다고. 이제는 우리가 남자와 녀자로서의 본능에 이끌려가기를 원하고있다고 말해주기 위해 거기 있었다. 우리는 가장 관습적인 체위를 취했다. 나는 아래에서 다리를 벌리고있었고 그는 우에서 허리를 움직이고있었다. 나는 쾌감을 꾸미거나 신음소리를 낼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고 나중에 지금의 매 순간을 떠올리기 위해 변해가는 그의 표정을, 내 머리칼을 움켜쥐는 그의 손에 키스를 퍼붓고 물어뜯는 그의 입을 새겨두기 위해 두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전희도 애무도 꾸밈도 없이 그는 내안으로, 나는 그의 령혼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리듬을 조절하며 왕복운동을 했고 가끔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게 좋으냐고 묻지 않았다. 그 순간 그것이 우리 령혼이 서로 소통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였기에 리듬이 빨라졌다. 나는 11분이 다되여가고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가 영원히 계속하기를 바랐다. 좋았다. 오! 맙시다, 너무나 좋았다! 소유하지 않은채 소유당한다는것은! 나는 그 모든것을 두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순간, 우리의 지각이 흐릿해졌다. 마치 우리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것 같았다. 내가 위대한 어머니, 우주, 사랑받는 녀인, 그가 벽난로앞에서 와인을 마시며 내게 설명해줬던 고대의식의 성스러운 창녀의 차원으로 잡고있던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움직임이 점점 더 격렬해졌다. 그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신음하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지도 않았다. 그는 소리를 질렀다! 짐승처럼 포효했다! 문득 이웃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엄청난 쾌감을 느꼈다. 태초에도 그랬을테니까. 최초의 남자와 최초의 녀자가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나눴을 때도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을테니까. 곧 그의 몸이 내우로 무너져내렸다. 서로를 품에 안은채 얼마동안이나 그러고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호텔에서 어둠속에 갇혀있던 날 밤처럼, 나는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나는 그의 심장박동이 진정되는것을 느꼈다. 그의 손이 내 팔우를 가볍게 거닐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나를 짓누르고있는 자신의 체중을 문득 생각했는지. 옆으로 몸을 굴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천장과 산데리아를 바라보며 한참을 그러고있었다. 《잘 자요.》 내가 말했다. 그가 날 끌어당겨 내 머리를 자기 가슴우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한참동안 날 쓰다듬은후에야 대답했다. 《당신도 잘 자요.》 《이웃들이 다 들었겠어요.》 내가 말했다. 그도 알고있었겠지만 그 순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었고, 달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수 없었기때문이다.  《문아래로 찬바람이 들어와요. 부엌으로 갑시다.》 《정말 좋았소》라고 웨치는 대신 그가 말했다. 우리는 일어났다. 나는 그가 바지조차 벗지 않았다는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는 옷을 모두 입고있었고 성기만 밖으로 나와있었다. 나는 웃옷을 걸쳤고 우리는 부엌으로 갔다. 그가 커피를 준비하면서 담배 두개비를 피웠다. 나는 한개비만, 그가 식탁에 앉아 눈으로 《고맙소》라고 말했고 나는《나 역시 감사드리고싶어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의 입은 굳게 닫혀있었다. 마침내 그가 용기를 내여 그 가방들은 뭐냐고 물었다. 《나, 래일정오에 브라질로 돌아가요.》 어떤 남자가 자기에게 중요할 때 녀자는 직감적으로 그것을 느낀다. 남자들 역시 그런 직감을 가지고있을가? 아니면 《사랑해요》,《여기서 당신과 함께 지내고싶어요》, 《가지 말라고 붙잡아줘요》라고 말해야 했을가? 《가지 말아요.》 그랬다. 그는 자신이 나에게 그렇게 말할수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가야 해요. 맹세를 했어요.》 맹세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모든게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믿었을것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것은 대도시(실제로는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였지만)에 와서 숱한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 먼 나라 시골출신 아가씨가 꾼 꿈의 일부였다. 숱한 어려운 순간들을 넘긴후에 맞는 해피엔드였다. 유럽에서 보낸 내 삶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그 령혼을 방문했기때문에 영원히 내것으로 남을, 나를 사랑한 한 사내가 떠오를것이다. 아! 랄프,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은 몰라요. 우리 녀자들은 꿈꾸어오던 남자를 보는 처음 순간 사랑에 빠져버려요. 리성이 우리가 틀렸다고 말하더라도.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도 없이 우리가 그 본능에 대항해 싸우기 시작한다 하더라도 말예요. 우리의 느낌에 휩쓸려가도록 자신을 허락하는 그 순간이 오죠. 내가 공원에서 추위와 고통을 참아가며 맨발로 자갈우를 걸었던 그날 밤처럼요. 당신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은 그 밤에처럼요. 그래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마치 전에 다른 남자를 사랑한적이 없었던것처럼. 그게 내가 떠나려는 리유예요. 내가 여기 머무르게 되면 꿈은 현실이, 당신의 삶을 소유하고 내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이 되여버리겠죠… 그렇게 되면 사랑은 속박이 되여버릴거고요. 꿈은 그냥 꿈으로 내버려두는 편이 나아요. 우리는 한 나라에서, 혹은 삶에서 얻은것을 소중히 여겨야만해요. 《당신은 오르가즘에 이르지 못했소.》 주제를 바꾸기 위해,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고있었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상황을 더이상 어색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그가 말했다. 그는 나를 잃을가봐 두려워하고있었다. 밤이 되기전에 내 마음을 바꾸어놓을수 있을거라 생각하고있었다. 《오르가즘에 이르진 못했지만 엄청난 쾌감을 느꼈어요.》 《당신이 오르가즘을 느꼈다면 더 좋았을거요.》 《당신이 만족하도록 오르가즘에 도달한척할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에겐 그러고싶지 않아요. 당신은 남자예요. 랄프 하르트, 남자라는 낱말에 함축된 아름답고 강렬한 모든것을 가진, 당신은 날 부축하고 도와주었어요. 내가 조금의 굴욕감도 느끼지 않고 당신을 부축하고 도와주도록 날 받아들였어요. 그래요. 나도 오르가즘을 느낄수 있었으면 좋았을거예요. 하지만 느끼지 못했죠. 하지만 난 차가운 바닥, 뜨거운 당신의 몸, 당신이 내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의 격렬함이 너무 좋았어요. 낮에 갖고있던 책들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었어요. 사서가 나에게 파트너와 섹스에 관해 대화를 나누느냐고 묻더군요. 나는 그녀에게 라고 묻고싶었어요. 하지만 그럴순 없었어요. 그녀는 내게 늘 천사같은 존재였거든요. 제네바 도착한 이래로 나에게는 두명의 파트너밖에 없었어요. 하나는 내가 허락했기때문에, 심지어는 애원까지 했기때문에 최악의 나 자신을 일깨워준 파트너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다시 세상에 속한다고 느낄수 있게 해준 바로 당신이예요. 나도 내 몸 어디를, 어느 정도의 강도로, 얼마나 오래동안 만져야 하는지 당신에게 가르쳐줄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당신이 그것을 불평이 아니라 우리의 령혼이 더 잘 소통할수 있게 만들어주는 방법으로 받아들이리라는걸 알고있어요. 사랑의 기술은 그림과 같아요. 테크닉과 인내, 그리고 무엇보다 커플간의 실천을 요구하니까요. 또 대담해져야 하구요. 사람들이 흔히 고 부르는것 너머까지 가야만해요.》 정신을 차리고보니 나는 다시 선생님처럼 말하고있었다. 내가 원한게 아니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랄프는 우리가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있었다. 그는 내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담배를 피워물었다. 30분도 채안되는 동안 벌써 세개비째였다. 《첫째, 오늘밤은 여기서 보내요.》 그것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였다. 《둘째, 우린 다시 사랑을 나눌거요. 근심은 잊고, 더 큰 욕망으로, 마지막으로, 당신 역시 남자를 더 잘 리해해줬으면 좋겠소.》 남자를 더 잘 리해해달라고? 나는 내 모든 밤들을 그들과 함께 보냈는데? 백인, 흑인, 아시아인, 유태교도, 이슬람교도, 불교도들! 그가 그걸 모른단 말인가? 나는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는것을 느꼈다. 대화가 토론의 양상을 띠는것은 좋은 일이였다. 한순간, 나는 하느님께 용서를 빌고 맹세를 깰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현실이 거기 서서 내게 명했다. 꿈을 손상시키지 말고 그대로 보존하라고, 운명의 함정에 빠져들지 말라고. 《그렇소, 남자들을 더 잘 리해하려고 애써봐요.》 나의 랭소적인 표정을 본 랄프가 다시한번 반복했다. 《당신은 당신의 녀성으로서의 성에 대해 이야기했소. 그리고 내가 당신의 몸에서 길을 찾을수 있기 위한 인내를 가지도록, 시간을 들일수 있도록 돕고싶다고 말했소. 나도 거기에 동의해요. 하지만 우리가 다르다는것, 적어도 시간의 문제에서만큼은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생각은 안해봤소?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신에게 불평을 해야 할거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당신에게 섹스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소. 나에게서 욕망이 사라지고말았으니까. 왜인지 알아요? 내가 가지는 모든 성관계가 단 몇년만에 권태와 욕구불만으로 변질되여버렸기때문이요. 나는 내가 사랑했던 녀자들이 나에게 줬던 쾌락을 그녀들에게 주는것이 아주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소.》 《내가 사랑했던 녀자들》,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담배를 피워물며 무관심을 가장했다. 《난 녀자에게 
28    《11분》 (련재26) 댓글:  조회:1533  추천:0  2015-01-31
집에 돌아와서 쓴 마리아의 일기.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일요일,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에 간적이 있다. 그런데 한참후에야 나는 내가 적절치 못한 장소에 와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곳은 신교도들의 교회였던것이다. 서둘러 나가려고 하는데 목사가 설교를 시작했다. 설교중에 자리를 뜨는것은 례의 없는 행동이라 생각되여 그냥 앉아있었다. 그것은 축복이였다. 그날 나는 내가 반드시 들어야 하는것들을 들을수 있었으니까. 《세상의 모든 언어에는 똑같은 속담이 존재합니다. 눈이 보지 못하는것은 마음도 느끼지 못한다는 속담이죠. 그런데 전 전혀 그렇지가 않다고 감히 단정합니다. 우리가 억누르려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감정들은 멀리 떨어져있을수록 마음에는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류배중이라면, 두고 온 집과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려고 애쓸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있다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 한명 한명에게서 그 사람을 떠올릴겁니다. 복음서와 세상 모든 종교의 경전들은 신을 리해하기 위해, 민족을 나아가게 한 신앙을 리해하기 위해, 지구표면을 방황하는 령혼들의 순례를 리해하기 위해 떠난 류배중에 씌여진것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기대하는것을 알지 못했고 우리 역시 그것을 모르고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을수 없고 또 잊기를 원치도 않기때문에 책들이 씌여지고 그림들이 그려지는것입니다.》 례배가 끝날 무렵, 나는 목사에게 다가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나는 내가 외국에서 온 이방인이라고, 눈이 보지 못하는것을 마음은 느낀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너무나 절실하게 그것을 느끼기때문에 나는 떠난다. 마리아는 가방 두개를 들어 침대우에 올려놓았다. 모든것이 끝나는 이날을 기다려온 가방이였다. 예전엔 이 가방들에 많은 선물과 새옷, 눈덮인 스위스의 풍경과 유럽의 대도시를 담은 사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가장 너그러운 나라에서 보낸 행복했던 시간의 추억들을 가득 채우리라 생각했었다. 실제로 새옷 몇벌과 눈이 내린 날 제네바에서 찍은 사진이 몇장 있긴 했지만, 그녀가 생각해왔던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많은 돈을 벌고, 삶을 배우고,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부모님에게 농장을 사드리고, 남편감을 찾고, 가족들을 불러 그녀가 살고있는 곳을 보여줄수 있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녀는 산에는 제대로 올라가보지도 못하고, 그녀 스스로도 알아보지 못할만큼 다른 사람이 되여 정확히 꿈 하나를 이루는데 필요한 액수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갈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했다. 그녀는 그만둬야 할 순간이 되였다는것을 알고있으니까. 그 순간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그녀는 네가지 모험을 경험했다. 나이트클럽에서 댄서로 일했고, 프랑스어를 배웠고. 창녀로 일했고, 한 남자를 미친듯이 사랑했다. 일년사이에 그렇게 많은 파란을 겪을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가? 슬펐지만 행복했다. 그 슬픔에는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매춘도, 스위스도, 돈도 아니였다. 그것은 랄프 하르트였다. 단 한번도 인정한적은 없었지만, 그녀는 산티아고의 길에 있는 성당에서 그녀를 기다릴, 그녀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주변사람들과 친구들을 소개할 차비를 하고있을 그와 결혼하기를 바랐다. 비행기는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한다. 그녀는 그와의 약속장소로 가지 않고 공항근처의 호텔로 직행할가 생각했다. 이제부터 그의 곁에서 보내는 순간순간은, 그녀가 말할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모든것때문에, 그의 손, 그의 목소리, 그가 해준 이야기, 그가 그녀를 사랑한 방식에 대한 기억때문에 견디기 힘든 고통의 한해가 될터였다. 그녀는 다시 가방을 열고 그의 집에서 보낸 첫날밤 그가 준 장난감 기차의 객차를 꺼냈다. 그녀는 몇분간 그것을 바라보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 객차는 브라질까지 갈 자격이 없었다. 그것은 그것을 늘 갈망했던 어린애에게는 부당하고 불필요한것이였다. 아니, 그녀는 성당에 가지 않을것이다. 아마도 그는 그녀에게 질문을 퍼부을것이다. 그녀가  《나, 떠나요》라고 진실을 말하면, 그는 가지 말라고 애원할것이다.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약속할것이다. 그들이 함께 보낸 매 순간 이미 충분히 보여줬던 그의 사랑을 재차 고백할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만나는 법을 배웠다. 다른 어떤 종류의 관계도 그럴수는 없을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유일한 리유일것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는것을 그들은 알고있었으니까. 남자들은 녀자가 《당신에게 의지하고싶어요》라고 말하면 겁을 집어먹는다. 마리아는 전적으로 그녀만의것인,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여있는, 사랑에 빠진 랄프 하르트의 이미지를 가진채  떠나고싶었다.  약속장소에 갈지 안갈지를 놓고 저울질할 시간이 아직은 있었다. 일단은 좀더 실질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했다. 그녀는 가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어디다 치워야 할지도 알수 없는 물건들을 난감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녀가 떠나고 난 뒤 집주인이 와서 그녀가 쓰던 가전제품, 벼룩시장에서 산 그림, 수건과 시트를 발견하고는 알아서 처리할것이다. 스위스의 거지보다는 그녀의 부모가 훨씬 더 그것들을 필요로 하겠지만 모든것을 브라질로 가져가는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 물건들은 그녀에게 한때 모험을 벌렸던 곳을 끊임없이 일깨워줄게 아닌가. 그녀는 은행을 찾아가 예금해둔 돈을 모두 인출하고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단골손님이기도 한 지점장은, 그건 별로 잘한 결정이 아닌것 같다고 말하면서 예금에 대한 리자는 브라질에서도 받을수 있으니 맡겨만 놓으면 게속 수입이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도적이라도 맞으면, 몇달간의 로고가 허사가 될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했다. 마리아는 잠시 망설이였다. 그는 진심으로 그녀를 도와주려는것 같았다.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는 그 돈의 궁극적인 쓰임새는 지페로 남아 돈을 늘이는데 있는게 아니라 농장으로, 부모가 로년을 보낼 집으로, 몇마리의 가축과 많은 로동으로 변하는데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잔돈까지 모조리 인출해 그 용도로 쓰려고 구입한 조그만 가방에 집어넣고 허리띠에 묶은 다음 겉옷으로 가렸다. 그녀는 용기를 잃지 않기를 기도하며 려행사로 갔다. 그녀가 예약해둔 비행기표를 달라고 하자, 직원은 래일 떠나는 항공편은 파리에서 내려 갈아타야 한다고 설명하며 다른 항공편을 권했다.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것은, 다시한번 생각해보자는 유혹이 일기전에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있는것이였다. 그녀는 다리까지 걸어갔다. 다시 추워지기 시작했지만 아이스크림을 샀고 제네바를 바라보았다. 마치 이 도시에 막 도착해서 박물관과 력사적기념물, 유명한 바와 식당을 둘러볼 차비를 하고있는것처럼 모든것이 달라보였다. 이상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어떤 도시에 거주할 때는 그 도시를 탐험하는 일을 계속 미루다가 결국에는 그 도시를 전혀 모르는채 그곳을 떠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그녀는 고향에 돌아가게 됐으니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그녀를 그토록 따뜻하게 맞아준 도시를 떠나게 되여 슬픈거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그렇게도 되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 할수 있는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 모든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도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하는 한 령리한 아가씨를 위해 눈물 몇방울을 흘리는 일뿐이였다. 이번에는 자신이 틀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녀가 들어섰을 때 성당은 텅 비여있었다. 더없이 조용한 가운데 전날밤의 폭풍우로 맑게 갠 하늘의 광채가 훤히 밝혀주는 스테인도글라스를 바라볼수 있었다. 그녀 앞쪽에 제단과 빈 십자가가 있었다. 그것은 죽어가는 한 인간이 매달려있는 처형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 본래의 의미, 공포, 중요성을 모두 상실한 부활의 상징이였다. 그녀는 천둥번개가 치던 날 밤의 채찍을 떠올렸다.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맙소사,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거지?》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성인들의 그림이 눈에 띄지 않아 다행이였다. 그곳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리해할수 없는 뭔가를 찬양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일뿐이였다. 오래동안 생각하지 않고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수를 믿고있었다. 그녀는 성체가 모셔져있는 감실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코 마음을 바꾸지 않을거라고, 반드시 떠날거라고, 하느님에게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에게 맹세했다. 그녀는 한 녀자의 의지를 바꾸어놓기에 충분한 사랑의 함정을 알고있었다. 잠시후, 그녀는 어깨에 와닿는 손길을 느꼈다. 그녀는 얼굴을 옆으로 기울여 그 손에 가져다댔다. 《어떻게 지냈소?》 《잘 지냈어요.》 전혀 불안이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로 그녀가 대답했다. 《좋아요, 커피 마시러 갑시다.》 그들은 오랜 리별끝에 재회한 련인들처럼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키스를 했다. 몇몇 행인들이 못볼걸 봤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그들이 야기한 거북함과 그들이 일깨운 욕망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은 알고있었다. 사실은 그 사람들도 똑같이 하고싶어한다는것을. 그들이 눈살을 찌프리는것은 바로 그때문이라는것을. 그들은 여느 카페와 다를바 없지만 그날 오후 그들이 그곳을 찾았기때문에, 그들이 서로 사랑했기때문에 특별했던 한 카페로 들어갔다. 그들은 제네바에 대해, 프랑스어의 난해함에 대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 담배의 피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둘다 담배를 피웠고 그 나쁜 습관을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커피값을 내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그가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림전시회장으로 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그의 세계, 예술가들, 실제보다 훨씬 더 부자로 보이는 부자들, 가난해보이는 백만장자들, 그녀가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것들에 대해 질문을 해대는 관람객들을 만났다. 모두 그녀를 반갑게 맞았고, 그녀의 류창한 프랑스어에 탄성을 터뜨렸고, 카니발과 축구, 브라질음악에 대해 물었다. 좋은 교육을 받은, 친절하고 호의에 넘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였다. 전시회장을 나서면서 그가 저녁때 코파카바나로 그녀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오늘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저녁식사나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가 좋다고 했다. 그들은 일단 헤여졌다가 나중에 그의 집에서 만나 콜로니광장에 있는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 작은 광장은 그녀가 언제나 택시를 타고 다니는 길목에 있었지만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다. 그와 헤여진 마리아는 이 도시에 단 한명밖에 없는 친구를 떠올렸다. 그녀는 사서를 찾아가 앞으로는 만나지 못할거라고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쿠르드족사람들이 시위를 끝낼 때까지, 그래서 길이 뚫릴 때까지 영원처럼 긴 시간을 택시안에 갇혀 보내야만했다. 하지만 그녀가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된 지금, 그런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도탁했을 때 도서관은 막 문을 닫으려는 참이였다. 《너무 스스럼없이 구는게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속을 털어놓을만한 친구가 전혀 없어요.》 마리아가 들어서자마자 사서가 말했다. 이 녀자에게 친구가 없다고? 한 장소에서 일생을 보내고 매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도 함께 의론을 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마침내 마리아는 자신과 똑같은, 아니면 여느 사람과 똑같은 누군가를 찾아낸것이다. 《클리토리스에 관해 읽은것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아, 다른 얘기를 할수는 없나?》 《남편과 관계를 맺을 때마다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관계중에 오르가즘을 느낀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당신 생각엔 그게 정상 같아요?》 《쿠르드사람들이 매일 시위를 하는건 정상으로 보이세요? 사랑에 빠진 녀자들이 백마탄 왕자를 피해 달아나는건?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농장을 경영할 꿈을 꾸는 처녀는? 남자와 녀자들이 결코 되살수 없는 그들의 시간을 파는건? 하지만 이 모든건 존재해요. 내가 어떻게 생각하건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그게 정상이예요. 자연에 반하는것, 우리의 내밀한 욕망에 반하는건 하느님 눈에는 탈선으로 보일지 몰라도 우리 눈에는 모두 정상이예요. 우리는 우리의 지옥을 찾아헤맸고 수천년을 들여 그것을 건설했어요. 그리고 많은 노력을 한끝에 우리는 이제 최악의 방식으로 살수 있게 됐어요.》 마리아는 사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마리아는 그녀가 결혼하면서 가지게 된 남편 성(姓)만 알고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하이디고, 삼십년이나 결혼생활을 했지만 남편과의 성관계에서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는게 과연 정상인가, 하는 의문을 지금까지 단 한번도 품어본적이 없었다! 《이 모든걸 과연 꼭 읽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성실했던 남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아빠트, 세명의 아이들,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이 한 녀자가 꿈꿀수 있는 모든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몰라요. 당신이 물어본 덕분에 이 책들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혹시 내가 잘못 살아온건 아닌가 해서 몹시 불안했어요. 다들 그런가요?》 《그래요. 제가 장담하죠.》 마리아는 충고를 구하는 그 녀자앞에서 자신이 아주 경험이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좀더 자세히 얘기해도 괜찮겠어요?》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물론 당신은 그런 문제들을 리해하기에는 아직 젊어요. 하지만 바로 그때문에, 당신이 나와 똑같은 실수들을 저지르지 않도록 당신에게 내 이야기를 조금 털어놓고싶어요. 내 남편은 왜 내 클리토리스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을가요? 그는 오르가즘은 질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의 생각대로라면 마땅히 느껴야 하는 오르가즘을 느끼는척하느라 힘이 들었죠. 무척 힘들었어요. 물론 쾌감을 느끼기는 했죠. 하지만 그건 다른 종류의 쾌감이였어요. 마찰이 상부에서 일어날 경우에만… 무슨 말인지 리해하겠어요?》 《네, 리해해요.》 《이제 난 그 리유를 알아요. 바로 이거예요.》 그녀가 탁자우에 놓인 마리아로서는 제목을 읽을수 없는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르가즘을 느끼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다발이 클리토리스에서 G스폿쪽으로 뻗어있어요. 그런데 남자들은 모든것이 삽입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고있죠. G스폿이 뭔지 알아요?》 《일전에 말씀하신적이 있었잖아요. 현관에 들어서서 바로 머리우 천장.》 이번에는 순진한 아가씨로 변한 마리아가 말했다. 《맞아요, 그래요!》 사서의 눈빛이 환하게 밝아졌다. 《당신이 아는 남자들중에서 그것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 몇명이나 되는지 직접 확인해보세요. 아무도 없을거예요! 말도 안되는 얘기죠! 클리스토리스를 그 이딸리아인이 겨우 오백년전에 발견한것처럼 G스폿은 20세기가 찾아낸거예요. 이제 곧 모든 사람이 그것에 대해 떠들어댈거라구요. 더 이상 어느 누구도 그것의 역할을 무시할수 없을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혁명적인 시대를 살고있는지 상상이 돼요?》 마리아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하이디는 녀자들도 활짝 피여나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것을 이 예쁜 아가씨에게 가르쳐주려면 미래의 세대가 그 놀라운 과학적발견의 헤택을 누릴수 있게 하고싶다면 서둘러야 한다는것을 알아차렸다. 《프로이드박사는 남성들의 쾌감이 페니스에 집중되여있듯이 녀성들의 쾌감은 질속에 있는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린 근원으로, 우리에게 늘 쾌감을 주었던 클리토리스와 G스폿으로 되돌아가야만해요! 만족스러운 성관계를 경험하는 녀자들은 아주 드물어요. 내가 비결을 하나 가르쳐줄게요. 체위를 바꿔요. 남자를 눕게 하고 당신이 우로 올라가요. 그 체위에서는 당신의 클리토리스가 그의 치골과 마찰을 일으킬거고, 그러면 당신은 필요한 자극을, 아니, 당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극을 얻게 될거예요!》 마리아는 대화에 주의를 기울리지 않는척하고있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녀에게 있는게 아니였다! 모든것이 신체구조의 문제였다.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는 순간, 그녀는 사서를 덥석 안아주고싶었다. 아직 젊을 때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그녀는 정말 멋진 시대에 살고있었다! 하이디가 공모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모르고있지만 우리 역시 발기를 해요!》 《그들》은 남자들을 뜻하는것이였다. 대화가 아주 은밀했기때문에 마리아가 용기를 내여 물었다. 《남편 말고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가져본적 있으세요?》 사서는 충격을 받은것처럼 보였다. 눈에서는 일종의 성스러운 불빛이 번득였고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모욕을 느낀것인지 아니면 부끄러워하는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잠시후 모든걸 털어놓고싶은 욕망과 감추고싶은 욕망사이의 싸움이 마무리됐다. 하이디는 자신이 원하는 주제를 환기했다. 《녀성의 발기얘기나 해요. 클리토리스 말예요! 흥분하면 딱딱해지는거 알고있어요?》 《어렸을 때부터요.》 하이디는 실망한듯이 보였다. 하지만 곧 말을 이었다. 《볼록 튀여나온 곳을 건드리지 않고 그 주변만 애무해도 강렬한 쾌감을 얻을수 있대요. 경우에 따라서는 아플수도 있다는것을 모르고 무작정 클리토리스끝을 문질러대는 어설픈 남자들도 꽤 있다나봐요. 어때요, 그런것 같지 않아요? 그리고 한번이나 두번쯤 관계를 가진 이후부터는 녀자가 주도권을 쥐는게 좋대요. 녀자가 우로 올라가 어디를 어떻게 누를지 컨트롤하고 자기가 원하는 리듬을 타야 하는거죠. 또 내가 지금 읽고있는 책에 따르면 파트너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대요.》 《남편과는 솔직한 대화를 나누셨나요?》 또다시 하이디는 그때는 시대가 달랐다는 핑게를 대며 답변을 회피했다. 지금 그녀의 관심사는 자신의 지적경험을 누군가와 공유하는것이였다. 《자신의 클리토리스를 시계바늘이라고 보고, 파트너가 열한시에서 한시 사이를 오가게 하는게 좋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마리아는 무슨 말인지 알수 있었고, 책의 내용에도 일리가 있는것 같긴 했지만 동의할수는 없었다. 하이디가 《시계》라는 단어를 다시 입에 올릴 때, 마리아는 다시한번 손목시계를 쳐다보고는 견습기간이 끝나 작별인사를 하러 들른거라고 설명했다. 사서는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것처럼 보였다. 《클리토리스에 관한 이 책을 빌려가지 않을래요?》 《아뇨.》 《오늘은 한권도 안빌려갈건가요?》 《네,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요. 그래서 늘 다정한 친구처럼 대해줘서 고마웠다고 인사드리고싶었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들은 악수를 나누고 서로의 행복을 빌었다. 사서는 마리아가 문을 나설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는 분에 겨워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왜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을가? 그 아가씨가 남편 몰래 바람을 피운적이 있느냐고 감히 물었을 때 왜 털어놓지 못했던걸가? 《좋아, 심각할거 없어.》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데 섹스가 전부는 아니였다. 그래도 그것은 중요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를 둘러싸고있는 수천권의 책들중 상당수에는 사랑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 남자와 녀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헤여지고, 그리고 다시 만난다. 늘 서로 소통하는 령혼, 머나먼 나라, 모험, 고통, 근심이 문제였다. 하지만 《친애하는 신사 여러분, 녀성의 몸을 더 잘 리해하려고 관심을 가져보십시오.》 라고 말하는 장면은 거의 없었다. 책들은 왜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지 않는걸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느 누구도 그 문제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때문인지도 몰랐다. 남자들은 집요하게 새로운것을 추구했다. 남자는 여전히 생식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동굴에 거주하며 사냥을 다니는 원시인이였다. 그럼 녀자는? 하이디의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배우자와 함께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욕망은 결혼후 단 몇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관계의 빈도는 차츰 줄어들었다. 녀자들은 모두 자기만 그런거라고 생각하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고는 매일밤 성관계를 요구하는 남편의 욕망을 견딜수 없는척하며 다른 녀자들을 불안에 빠뜨렸다. 녀자들은 빠르게 다른 관심사에 몰두했다. 아이들, 료리, 아르바이트, 가사, 공과금, 남편의 외도, 여름휴가려행(려행중에도 그들은 그들 자신보다는 두고 온 아이들 걱정을 더 많이 했다) 부부사이의 년대감, 심지어 사랑에도. 하지만 섹스는 아니였다. 그녀는 자신의 딸또래인, 아직 순진하기 그지없고 세상 돌아가는 리치를 잘 모르는 저 젊은 브라질아가씨에게 좀 더 솔직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 변변찮은 일이지만 죽어라 열심히 하며 좋은 신랑감을 만나 결혼하기를 기대하고있을 저 아가씨. 그리고 결혼해서는 몇차례 오르가즘을 느끼는척하고. 생활의 안정을 찾고, 인간이라는 종의 신비스러운 번식에 공헌하고, 마침내는 오르가즘이나 클리토리스니 G스폿이라 불리는것들 따위는 말끔히 잊어버릴 저 아가씨. 그녀는 결국 현모량처가 되여 가정에 부족한것이 없도록 보살피고, 때때로 남몰래 자위를 하고, 가끔은 거리에서 그녀에게 욕망의 눈길을 보냈던 남자들을 떠올리겠지. 체면을 지킨다는것, 왜 세상은 그토록 체면에 신경을 쓰는걸가? 《남편 말고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가져본적 있으세요?》 그녀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던것도 바로 체면때문이였다. 그런 비밀은 무덤까지 갖고가야 해. 그녀는 생각했다. 섹스가 이미 먼 과거사가 되여버렸을 때에도 남편은 그녀 인생의 유일한 남자였다. 남편은 정직하고 너그러우며 늘 한결같은 사람이였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싸웠고 그가 책임지고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애썼다. 모든 녀자들이 꿈꾸는 리상적인 남자였다. 언젠가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욕망을 느끼고 그 남자를 따라갔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만해도 마음이 불편해지는것은 바로 그때문이였다. 그녀는 그 만남을 떠올렸다. 그녀는 산속의 작은 도시 다보스에서 돌아오는 길이였는데, 도중에 눈사태로 인해 기차운행이 몇시간동안 중단되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 하이디는 우선 집에 전화를 걸어 아무 걱정 말라고 하고는 잡지 몇권을 사서 역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릴 차비를 했다. 곁에 있던 배낭과 침낭을 멘 한 남자를 본것은 바로 그때였다. 반백의 머리에 피부는 해볕에 검게 그을려있었다. 그는 기차출발이 아무리 늦어져도 전혀 지장이 없어보이는 유일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태평스럽게 미소를 띤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얘기를 나눌 누군가를 찾고있었다. 하이디는 잡지를 펼쳤다. 그런데 아! 삶의 미스터리한!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이 그 려행객의 눈과 마주쳤다. 그녀는 매몰차게 눈길을 돌릴수가 없었다. 그녀가 이야기를 나눌 의사가 없다는것을 정중하게 암시할 틈도 없이 그가 말을 걸었다. 그는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했다. 이곳에는 심포지엄 참석차 왔는데 기차가 늦어지는 바람에 제네바에 도착해도 비행기를 놓치게 생겼다며 말했다. 《제네바에 도착하면, 호텔 잡는걸 좀 도와주실수 있겠습니까?》 하이디는 그를 바라보았다. 불편한 역에서 장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비행기까지 놓치게 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쾌활할수 있을가? 사내는 마치 그들이 오랜 친구사이라도 되는것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여놓기 시작했다. 지금껏 다닌 려행들, 문학적창조의 신비, 그리고 듣는 그녀가 당황스럽게도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나고 사랑했던 녀자들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하이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있었고 그는 계속 이야기했다. 가끔씩 자기만 너무 떠들어서 미안하다며 그녀의 이야기도 좀 해보라고 청했다. 《전 특별할게 전혀 없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예요.》 그녀가 할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게 고작이였다. 문득 기차가 영원히 도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화는 너무나 즐거웠다. 그 순간 그녀는 소설을 통해서만 만났던것들을 맛보았다. 두번 다시 못만날 사람이였기에 그녀는 대담하게도 마음속에 담아두고만 있던것들에 대해 그에게 질문을 했다. 자기가 왜 그랬는지 그녀는 나중에 도무지 납득할수 없었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힘든 고비를 지나고있었다. 남편은 그녀가 집에만 있길 바랐고, 하이디는 어떻게 해야 남편을 행복하게 해줄수 있는지 알고싶었다. 사내는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몇가지 그럴듯한 조언을 했지만 그녀의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는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은듯했다. 《당신은 아주 흥미로운 녀자요.》 그가 말했다. 그녀가 아주 오래동안 들어보지 못한 말이였다. 그녀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그녀가 당혹스러워하고있다는것을 눈치챈 그는 서둘러 사막, 산악, 잃어버린 도시, 얼굴을 베일로 가린 녀자들, 맨허리를 드러낸 녀자들, 전사, 해적, 늙은 현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차가 도착했다. 그들은 나란히 앉았다. 이제 그녀는 호수가 마주보이는 집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사는 유부녀가 아니라 모험을 찾아 처음으로 제네바에 가는 아가씨였다. 산과 강을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을 정복하려는(남자들은 오로지 그것만 생각했다)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남자곁에 있는게 너무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그녀에게 똑같은 욕망을 보였던 남자들, 하지만 그녀가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물리쳤던 모든 남자들을 떠올렸다. 그날 아침, 세상은 변해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유혹하려는 그의 시도에 넋을 잃고 보조를 맞추는 서른여덟살짜리 소녀였다. 조금은 일찍 찾아온 그녀 인생의 가을녘에, 바랄수 있는 모든것을 가졌다고 믿고있을 때, 이 남자가 불쑥 역에 나타나 허락도 구하지 않고 그녀의 세계속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제네바에서 내렸다. 그는 물가가 무척 비싼 이 나라에서 하루를 더 보내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면서 너무 고급은 아닌 호텔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호텔을 물색해 데려다주자 그는 방까지 함께 올라가 모든것이 제대로 되여있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이디는 그의 의도를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수락했다. 그들은 문을 잠그고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었다. 그가 그녀의 옷을 찢듯이 벗겨냈다. 오, 맙소사! 그는 많은 녀자들에게서 녀성의 고민과 욕구불만을 들어서 그런지 녀자의 몸에 대해 모든것을 알고있었다. 그들은 오후 내내 사랑을 나누었다. 마법은 해질무렵이 되여서야 풀렸다. 그녀는 결코 하고싶지 않았던 말을 내뱉었다. 《가봐야 해요. 남편이 기다리고있어요.》 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들은 몇분동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도 그녀도 《안녕》이라 말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든, 어떠한 낱말도 어떠한 문장도 의미가 없으리라 생각한 하이디는 일어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오고말았다. 두번 다시 그를 만나지는 않을테지만 그녀는 몇시간동안 충실한 안해, 성실한 가정주부, 자상한 엄마, 모범적인 공무원, 늘 한결같은 친구이기를 멈추고 다시 녀자가 되였다. 며칠동안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전보다 더 쾌활하다고 해야 할지 더 우울해졌다고 해야 할지, 그로서는 그녀의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할수 없었을터였다. 일주일이 지나자, 모든것이 예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 아가씨한테 이 이야기를 들려줄걸 그랬어.》 사서는 생각했다. 《하긴 얘기해줬더라도 리해하지 못했을거야. 아직은 서로에게 충실하고 사랑의 맹세가 영원히 지속되는 그런 세계에 살고있을터니까.》
27    《11분》 (련재25) 댓글:  조회:1511  추천:1  2015-01-31
마리아는 몇달전부터 준비했던 일, 려행사를 찾아가 그녀가 달력에 표시해둔 날자에 출발하는 브라질행 비행기표를 구입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제 그녀가 유럽에서 보낼수 있는 시간은 단 이주뿐이였다. 그 기간이 지나면 제네바는 그녀가 사랑했고 그녀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얼굴로 남을것이고 베른가는 스위스의 수도에 경의를 표하는 하나의 이름에 불과할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방, 호수, 프랑스어, 스물세살의 아가씨가(그녀는 전날밤 스물세번째 생일을 자축했다) 세상 모든 일엔 한계가 있다는것을 깨닫기전에 저지른 모든 미친짓들을 감회에 젖어 회상할것이다. 새를 새장에 가두거나 그녀와 함께 브라질로 가자고 요구할수는 없었다. 그는 일생동안 그녀가 만난 사람들중 가장 순수한 사람이였다. 그런 새는 동료와 함께 했던 비행에 대한 향수를 양식삼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살아가야 한다. 그녀 역시 한마리 새였다. 랄프 하르트가 곁에 있으면, 코파카바나에서 보낸 시절이 끊임없이 떠오를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과거였다. 미래가 아니였다. 《이제 곧 나는 이곳에 없을거야.》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괴로워지지 않도록 그녀는 출발하는 순간까지는 《안녕》이라는 말을 하지 않으리라 스스로 다짐했다. 그날 아침, 그녀는 제네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마음을 달랬다. 그 길들, 언덕, 산티아고의 길, 몽블랑다리가 마치 늘 다녔던 곳인것처럼. 얼마전부터 틈만 나면 드나든 카페들이 마치 어릴적부터 알고있었던 곳인것처럼. 그녀는 강물우를 나는 갈매기들의 비행을 눈으로 좇았고, 진렬대를 정리하는 상인,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사무실에서 나오는 회사원, 저 멀리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는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기가 먹는 사과의 색갈과 맛을, 호수 한가운데에서 솟아오르는 분수우에 걸린 무지개를, 그녀곁을 지나는 행인들의 마음속에 깃든 환희를, 욕망의 눈길들과 무표정한 눈길들을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그녀는 세상의 수많은 도시들가운데 하나, 특이한 건축양식과 범람하는 은행광고판만 아니였다면 브라질에 있는 도시와 별 차이가 없을 한 도시에서 거의 일년을 보냈다. 공원 한쪽에 장이 열려 사람들로 붐볐다. 주부들이 흥정을 벌리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프다는 핑게를 대고 조퇴했을 고등학생들이 호수가를 거닐며 키스를 하고있었다. 자기 나라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이 이방인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스캔들만 다루는 타블로이드판신문도 있었고, 늘 스캔들신문만 읽는 사업가들을 위한 진지한 잡지들도 있었다. 마리아는 농장경영에 관한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에 들렸다. 책의 내용은 조금도 리해할수 없었지만 그 책은 그녀가 자신과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말았다는 생각에 빠져들 때마다 그녀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다. 근엄한 노란색 표지에 일련의 그래프들이 들어있는 그 책은 그녀에겐 말없는 동료이자 그녀가 유럽에서 보낸 마지막 밤들을 밝혀준 등대였다. 난 늘 미래를 계획하면서도 현재에 덜미를 잡히지,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독립, 절망, 아픔을 통해 자신을 발견했는지, 어떻게 다시 사랑을 되찾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여기가 종착점이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신기한것은 그녀의 동료들은 몇몇 남자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황홀경을 맛보았다고 떠벌려대곤 했지만 그녀에게 섹스는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사실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녀는 삽입으로는 오르가즘을 느낄수가 없었다. 그녀는 성행위를 너무나 진부한것으로 치부해왔기때문에, 아마도 랄프 하르트의 표현에 따르면 그 《인식의 포옹》을, 혹은 그녀가 추구하는 뜨거움과 기쁨을 다시는 발견하지 못할터였다. 아니면 그녀도 가끔은 그렇게 생각하듯이, 어머니와 아버지들 혹은 랑만적인 문학작품들이 주장하는것처럼, 사랑 없이는 침대에세 쾌감을 느끼는것이 불가능하거나. 평소 늘 심각해보이는, 한번도 말해준적은 없지만 마리아의 유일한 친구였던 도서관 사서는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보였다. 마침 점심시간이였는데 그녀는 샌드위치를 싸왔으니 나누어먹자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리아는 방금 점심을 먹고 오는 길이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번 책은 읽는데 시간이 제법 많이 걸렸군요.》 《전혀 리해가 안되더라고요.》 《예전에 나한테 부탁했던거 기억해요?》 아니,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서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피여오르는것을 보고는 곧 리해했다. 섹스였다. 《당신이 그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문의한 이후로 우리가 구비하고있는 모든 관련서적목록을 찾아봤는데 별게 없었어요. 젊은이들을 가르치는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는 생각에 몇권을 주문했죠. 젊은이들이 최악의 방법을 빌어, 례를 들면 창녀들을 통해 그 문제에 접근하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예요.》 사서는 갈색 종이로 정성스레 표지를 싸서 한쪽구석에 쌓아놓은 책들을 가리켰다. 《시간이 없어서 아직 분류는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대충 한번 훑어봤는데, 정말 질겁을 하고말았어요. 정말 깜짝 놀랐지 뭐예요.》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내기를 하자면 할수도 있었다. 괴상망측하고 불편한 체위들, 사도마조히즘, 대충 이런것들일것이다. 직장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 말하고 자리를 뜨는게 상책이였다. 그녀는 사서에게 자기가 은행에 다닌다고 했는지 가게에서 일한다고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거짓말은 비상한 기억력을 요구한다. 그녀는 사서에게 인사하고 일어설 차비를 했다. 그런데 사서가 말했다. 《당신도 깜짝 놀랄거예요. 례를 들어 클리토리스가 최근에 발견되였다는거 알고있어요?》 최근에? 이번 주에도 한 남자가 완전한 어둠속에서도 마치 자기 손이 탐색하고있는 령역을 훤히 꿰고있다는듯이, 늘 거기 있었던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만지지 않았던가? 《클리토리스의 존재를 1559년 레알도 콜롬보라는 의사가 이라는 책을 출간한 이후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였어요. 예수가 태여난지 1500년이 넘도록 공식적으로는 무시되였던거예요. 콜롬보는 그 책에서 그것을 이라고 기술하고있어요. 믿어져요?》 두사람은 큰소리로 웃었다. 《이년후인 1561년, 가브리엘로 팔로피오라는 또 다른 의사가 자기가 그것을 했다고 주장하고 나섰어요. 물론 둘다 이딸리아 사람들이예요. 그 사람들은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훤하니까. 두 남자는 누가 공식적으로 클리토리스를 세계사에 편입시켰는지를 놓고 론쟁을 벌렸답니다!》 대화가 흥미롭기는 했지만 마리아는 그 문제에 관해서는 깊이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그녀는 애무, 눈가리개, 그녀의 몸우를 돌아다니던 그의 손을 떠올리는것만으로도 성기가 젖어드는것을 느꼈다. 그녀는 섹스에 무감각한게 아니였다. 그 남자는 그녀를 성적으로 해방시켜놓았다. 아직 살아있다는것이 얼마나 좋은지! 하지만 사서는 이미 발동이 걸린 상태였다. 《그후에도 사람들은 계속 그것을 멸시했어요.》 그런것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전문가가 다된듯 보였다. 《오늘날 신문에서 아프리카의 몇몇 부족이 녀성에게서 쾌락을 즐길 권리를 빼앗는다며 떠들어대고있는 성기 훼손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예요. 이곳 유럽에서도 19세기에는 녀성 신체의 그 하찮은 부분이 히스테리, 간질, 바람기와 불임의 근원이라 하여 절제하는 사례가 빈번했대요.》 마리아는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사서는 얘기를 그칠 기미를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더 놀랄만한것은 정신분석학을 정립하신 우리의 친애하는 프로이드박사께서 정상적으로 성장한 녀성의 경우 오르가즘을 클리토리스에서 질로 이동하게 되여있다고 주장한거예요. 그의 충실한 신봉자들은 그 명제를 더욱 발전시켜 클리토리스에 성적쾌감이 집중되여있는것은 미성숙 또는 양성애의 징조라고 주장했고요. 하지만 우리 녀자들은 모두 알고있잖아요. 삽입만으로는 오르가즘을 느끼기가 아주 어렵다는걸. 한 남자를 자기 몸속에 받아들이는것도 좋은 일이죠. 하지만 쾌감은 이딸리아의사가 발견한 그 작은 알맹이에 있어요!》 마리아는 프로이드가 말한 결함이 바로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성은 아직 미숙해서 클리토리스에서 질로 진화하지 못한것이다. 아니면 프로이드가 잘못 생각한것일가? 《C스폿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사서가 물었다. 《아줌마는 그것의 정확한 위치가 어딘지 아세요?》 마리아가 되묻자, 사서는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지만 곧 대담하게 대답했다. 《현관을 막 지나서 바로 머리우 천장.》 질을 건물에 빗댄 비교라니, 참으로 기발했다! 어린 소녀들을 위한 책에서 그런 비유를 읽었는지도 몰랐다. 문에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 몸속 세계를 발견하는 성교육 책자에나 나올법한 표현이였다. 자위할 때 마리아는 클리토리스보다는 혼란, 불안과 뒤섞인 어떤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그 유명한 C스폿을 더 선호했다. 그녀는 언제나 곧장 현관을 지나 천장으로 갔던것이다! 사서의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않을듯했다. 사서는 어쩌면 마리아에게서 자기처럼 성적쾌감을 상실한 녀성을 발견한것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는 무어라도 좋으니 다른것들에 의식을 집중하려고 애쓰면서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행복에 대해, 클리토리스에 대해, 되찾은 처녀성이나 C스폿에 대해 생각할 날이 아니였다. 그녀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 휴대폰소리, 개짖는 소리, 전차가 선로우를 덜커덕거리며 달리는 소리, 발걸음소리, 자신의 숨소리, 태양아래 있는 모든것이 내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녀는 코파카바나로 가고싶지 않았다. 돈은 충분히 모았다. 그런데 리유는 알수 없지만 일을 마저 끝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 같은게 느껴졌다. 그날 오후, 그녀는 장을 보고 돈을 불리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주겠다고 약속한 그녀의 단골중 한명인 은행지점장을 만나고, 커피를 마시고, 우체국에 들러 가방에 다 들어가지 않는 옷가지들을 부칠수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막연히 슬픈 느낌이 들었다. 유럽에서 지낼수 있는 시간이 이주밖에 남지 않아서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유유히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그 모든것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마땅했다. 그녀는 이미 수백번은 건넜을, 호수와 분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사거리에 이르렀다. 건너편 공원 한가운데에 제네바의 상징중 하나인 꽃시계가 있었는데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더는 자신을 속이지 못하게 했다. 그건… 갑자기, 시간이, 세상이 정지했다. 그날 아침 이후로 그녀가 줄곧 생각하고있는 그녀의 되찾은 처녀성은 과연 뭘 의미하는걸가? 세상이 얼어붙은것 같았다. 그 찰나가 지나가지 않고있었다. 마리아는 그냥 지나칠수 없는, 아주 심각하고 중요한 무엇에 직면해있었다. 늘 메모해두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단 한번도 기억해내지 못한 밤, 꿈들처럼 그렇게 치부해버릴수 있는게 아니였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세상이 정지해버렸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그거야! 새, 그녀가 얼마전에 쓴 새 이야기는 랄프 하르트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일가? 아니, 그건 그녀의 이야기였다! 그랬다! 오전 11시 11분, 그녀의 이야기는 그 순간 끝이 났다. 자기 몸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 마리아는 처녀성을 재발견하고있었다. 하지만 그 재탄생은 너무나 깨지기 쉬운것이여서, 거기 계속 머물러있는다면 자칫 영영 잃어버리게 될지도 몰랐다. 그녀는 천국을, 그리고 지옥을 분명 경험했다. 하지만 모험은 이제 막바지에 다달았다. 이주일, 열흘, 일주일을 기다리는것은 불가능했다. 그녀는 서둘러 떠나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꽃으로 만들어진 시계를, 사진을 찍어대는 관광객들과 그 주위에서 뛰노는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슬픔의 리유를 깨달았다. 그녀는 돌아가고싶지 않았던것이다. 랄프 하르트때문도, 스위스가 좋아서도, 모험때문도 아니였다. 진짜 리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그건 바로 돈이였다. 돈! 모든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칙칙한 색갈의 특별한 종이쪽. 그녀는 그것을 믿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믿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그 종이쪽을 가지고 유서깊은, 고객의 비밀을 철저히 지키는 대형 스위스은행을 찾아가 《이 돈으로 내 인생의 몇시간을 살수 있을가요?》라고 물었을 때,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는 팔지는 않고 사기만합니다라는 답변을 듣게 될 때까지는.》 마리아는 자동차가 급정거하는 소리에 놀라 망상에서 깨여났다. 운전자가 큰소리로 투덜거렸고, 한 로인이 웃으면서 빨간 불이니 물러서라고 영어로 말했다. 《난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뭔가를 발견한것 같아.》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행인들은 《나 좀더 기다릴수 있어. 오늘은 돈을 벌어야 하니까. 당장 내 꿈을 실현할 필요는 없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인채 직장으로, 학교로, 직업소개소로, 베른가로 달려가고있었다. 물론 그녀의 직업은 저주받은것이였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그것 역시 모든 사람들이 그러듯이 자신의 시간을 파는것일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듯이 견딜수 없는 사람들을 견뎌내는것, 모든 사람들이 그러듯이 결코 도래하지 않는 미래의 이름으로 자신의 귀중한 육체와 령혼을 내놓는것, 모든 사람들이 그러듯이 조금만 더 기다리는것, 기다리고, 조금 더 벌고, 욕망의 실현을 나중으로 미루는것, 당장은 몹시 바쁘니까, 하루밤에 350에서 천스위스프랑까지 지불하는 손님들이 그녀를 기다리고있으니까. 자신이 벌게 될 돈으로 살수 있는 그 모든것에도 불구하고(누가 알겠는가. 딱 일년만 더하면 그렇게 될지?), 마리아는 생애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랭철하게, 그리고 고의적으로 좋은 기회가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두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파란 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길을 건넜다. 그리고 꽃시계앞에 멈춰서서 랄프를 생각했다. 그녀는 원피스끈을 내려 가슴을 드려냈던 날 밤 그의 눈에 불타던 욕망을 다시 보고, 그녀의 젖가슴과 성기와 얼굴을 만지던 그의 손길을 다시 느꼈다. 그녀는 젖어들었다. 눈을 돌려 멀리 있는 거대한 분수를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몸의 어느 부분도 만지지 않았지만, 바로 거기, 많은 사람들앞에서 오르가즘을 느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너무 바빴다. 코파카바나에 들어서자마자, 마리아가 동료들중 유일하게 친구라고 여기는 니아가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한 동양인옆에 앉아 웃고있었다. 《이것 좀봐!》 그녀가 소리쳤다. 《이 사람이 내가 뭘 해주길 원하는지 좀 봐!》 공모자의 눈길. 입가에 번지는 미소, 동양인이 시가 상자처럼 보이는것의 뚜껑을 열었다. 밀랑은 멀찍이서 그안에 주사기나 마약이 들어있지 않나 흘끗 들여다보았다. 아니였다. 그것은 밀랑도 어떻게 기능하는지 잘 모르는 기구였다. 《누가 보면 지난 세기의 물건이라고 하겠어요!》 마리아가 말했다. 《맞아요. 지난 세기의 물건이.》 마라아의 말에서 드러난 무지에 화가 난듯 동양남자가 대꾸했다. 《백년도 더된 물건이라 손에 넣는데 돈깨나 들었지.》 그것은 몇개의 벨브, 핸들, 전기회로, 금속으로 된 작은 스위치, 건전지들을 조립한것으로, 두개의 선끝이 각각 손가락크기의 유리막대에 련결되여있었다. 옛날 라지오의 내부와 비슷했다. 큰돈이 들만한것은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어떻게 작동하는거예요?》 니아는 질문하는 마리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브라질아가씨를 신뢰하긴 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게 손바닥 뒤집듯 변하니 자기 손님을 노릴지도 모를 일이였다. 《나한테 이미 설명해줬어. 이건 마이올랫 원드(사도마조히즘 성향의 사람들중 특히 을 가진 사람들이 성적만족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치한을 퇴치하는 전기충격기와 비슷하게 생겼다.)야.》 니아는 동양인을 돌아보며 초대에 응하기로 마음먹었으니 함께 나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사내는 자신의 장난감에 대한 마리아의 관심에 기분이 들뜬것 같았다. 《1900년경, 최초의 건전지가 나왔을 때 의학계는 전기가 정신질환이나 히스테리를 치료할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전기를 리용한 여러가지 실험을 했어요. 여드름을 제거하거나 피부에 탄력을 주기 위해 전기를 사용하기도 했죠. 이 량쪽끝 보이죠? 이것들을 여기에 대면 밧데리가 공기중에 아주 건조할 때처럼 정전기를 일으켜요.》 그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그것은 브라질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스위스에서는 아주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상이였다. 언젠가 택시문을 열면서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쇼크를 느꼈던 날 마리아는 그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그녀가 택시비를 내지 않겠다고 항의하자 운전사는 그녀를 아주 무식한 녀자취급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그 현상을 일으킨것은 차가 아니라 건조한 공기였다. 그러한 종류의 사고를 여러차례 경험한 그녀는 그후 겁이 나서 금속으로 된 물건은 가능하면 만지지 않았다. 한 슈퍼마켓에서 몸속에 쌓이는 전기를 줄여주는 신기한 재주를 가진 팔찌를 발견할 때까지는. 그녀가 동양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기분이 안좋잖아요!》 마리아의 끈질긴 추긍에 점점 더 초조해진 니아가 자기 손님임을 과시하기 위해 보란듯이 사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건 당신이 그걸 당신 몸 어디에 련결시키느냐에 달려있어요.》 동양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작은 핸들을 돌리자 막대 두개가 보라색으로 변했다. 그가 재빨리 그것들을 두 녀자에게 갖다댔다. 딱 소리와 함께 방전이 일어났지만 아픔보다는 간지러움에 더 가까운 느낌이였다. 《죄송하지만 여기서는 삼가주세요.》 밀랑이 다가오며 말했다. 사내가 장치를 상자에 집어넣었다. 필리핀아가씨 니아가 그 기회를 리용해 당장 호텔로 가자고 제안했다. 동양인은 약간 실망한듯 보였다. 새로 온 녀자가 지금 같이 나가자고 조르는 녀자보다 바이올렛 원드에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이고있었기때문이였다. 어쨌든 그는 웃도리를 입고 가죽서류가방에 그 상자를 넣으며 말했다. 《요즘은 신형도 나와요. 특별한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겐 류행처럼 되여버렸죠. 하지만 당신이 방금 본 모델은 몇개 없는겁니다. 희귀한 의료기 컬렉션, 박물관 혹은 골동품상에서나 구경할수 있는거죠.》 밀랑과 마리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 《저거 전에 본적 있어요?》 마리아가 밀랑에게 물었다. 《저런 모델은 본적 없어. 저런건 정말 값이 제법 나갈거야. 저 사람 석유회사 고급간부거든. 다른것들은 본적이 있지. 신형들 말이야.》 《어떻게 사용하죠?》 《몸에다 련결시킨 다음… 녀자한테 핸들을 돌려달라고 해. 쇼크를 즐기는거지.》 《혼자서 해도 되는데, 왜 녀자한테 시켜요?》 《섹스에 관한 한 인간은 뭐든 혼자 할수 있어.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는걸 더 좋아하니 얼마나 다행이야. 그렇지 않다면 이 클럽은 파산하고말겠지. 넌 야채가게에서 일을 해야 할거고. 아참, 네 특별손님한테서 련락이 왔는데, 오늘밤에 오겠대. 그러니까 다른 손님은 받지 마.》 《거절할거예요. 그 사람까지 포함해서. 작별인사나 하려고 들렸어요. 나, 떠날거예요.》 밀랑이 그녀의 느닷없는 결정을 책망하는것 같진 않았다. 《그 화가를?》 《아뇨, 코파카바나를요. 모든 일엔 한계가 있는데 오늘아침 호수근처의 꽃시계앞에서 그 한계에 도달했어요.》 《그 한계란게 어떤거지?》 《브라질에 있은 농장 하나 가격이요. 일년 더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벌수 있을거라는것도 알아요. 일년 더 일할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영원히 이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할거예요. 당신처럼, 회사간부, 려객선사무장, 해드헌터, 음반제작자, 그리고 내가 알았던 모든 남자들, 돈으로 내 시간을 샀지만 그것을 나에게 되돌려줄수는 없는 모든 손님들처럼요. 하루를 더 머무르면 일년을 머무르게 될거고, 일년을 더 머무른다면 결코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겠죠.》 밀랑은 사정상 아무 말도 해줄수는 없지만, 그녀의 말을 리해하고 동의한다는듯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였다. 마리아의 결정이 그를 위해 일하는 다른 아가씨들에게 전염될 위험이 있었던것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였다. 비록 축하해주지는 않았지만 마리아가 실수를 범하도록 부추기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샴페인 한잔을 주문했다. 과일 각테일쥬스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이제는 술을 마실수 있었다. 일을 하고있는게 아니니까. 밀랑이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그녀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그녀는 샴페인값을 지불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그냥 놔두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술 한잔 값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그에게 갖다바쳤으니까.  
26    《11분》 (련재24) 댓글:  조회:1577  추천:0  2015-01-30
그의 집도 그녀의 집도 아니다. 브라질도 스위스도 아니다. 어디에 있어도 좋은, 류행을 타지 않는 똑같은 가구가 있고 소위 가족적으로 장식되여 더욱더 개성이 없어보이는 한 호텔일뿐이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아픔, 고통, 황홀경의 추억이 담겨있는 그 호텔이 아니다. 창들은 고행이 아닌 순례의 길인 산티아고의 길을 향해 나있다. 사람들은 그 길가에 있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빛》을 발견하고,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되고, 사랑에 빠진다. 비가 내리고있다. 한밤중이라 거리는 텅 비여있다. 길은, 수세기전부터 매일같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발길에 지쳐 좀 쉬고있는지도 모른다. 불을 켠다. 카텐을 친다. 그에게 옷을 벗으라고 말하고 그녀도 옷을 벗는다. 지금까지 옷을 벗어 몸의 일부를 보여준건 그녀뿐이였다. 어둠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어둠이 눈에 익자 마리아는 어딘지 알수 없는 곳에서 스며들어온 희미한 빛속에서 사내의 몸을 알아볼수 있다. 향수나 비누냄새가 남지 않도록 빨아서 여러차례 헹궈 말린후 곱게 접은 스카프 두장을 꺼낸다. 그에게 다가가 한장을 내밀면서 눈을 가리라고 한다. 그가 잠시 망설인다. 그는 자신이 이미 거쳐온 지옥들에 대해 말한다. 그녀는 그런게 아니라고 그를 안심시킨다. 그녀는 완전한 어둠을 원할뿐이다. 어제 그가 그녀에게 아픔을 가르쳐주었으니, 이제 그녀가 그에게 뭔가를 가르쳐줄 차례다. 그가 스카프로 눈을 가린다. 그녀도 스카프로 눈을 가린다. 이제 미광조차 스며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은 칠흑의 어둠속에 있다. 손을 마주잡고 침대로 간다. 아니, 누워서는 안돼요.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 마주보고 앉아요. 무릎이 닿도록 조금 더 가까이. 그녀는 늘 그것을 해보고싶었지만 한번도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 첫사랑과도, 처음으로 그녀 속으로 들어왔던 남자와도, 그녀가 줄수 있었던것보다 훨씬 더 많은것을 기대하며 천프랑을 내놓았을 그 아랍인과도. 때로는 그들 자신만 생각하며, 때로 오로지 본능에 따라 그녀의 다리사이에서 앞뒤로 허리를 흔들어대며 그녀의 몸을 거쳐간 그 수많은 남자들과도. 그녀는 자신의 일기를 떠올린다. 더이상 견딜수가 없다. 남은 몇주가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남자에게 자신을 바치는것도 바로 그때문이다. 그녀의 비밀스런 사랑의 빛은 바로 거기에 있다. 원죄는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먹은데 있는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없이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것이 두려워 자신이 느낀 마음의 동요를 아담과 나누어가지고싶어한데에 있다. 어떤것들은 나누어가질수 없다. 우리가 좋아서 뛰여든 대양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두려움은 모두들 갑갑하게 한다. 사내는 그것을 리해하기 위해 여러 지옥을 거친것이다. 서로 사랑하자, 그러나 소유하려 들지는 말자. 나는 내앞에 있는 이 남자를 사랑한다. 나는 그를 소유하지 않고, 그 역시 나를 소유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롭게 서로에게 자신을 내준다. 나는 이 말을 수십번, 수백번, 수백만번, 내가 그것을 진실로 믿을 때까지 나 자신에게 반복해야 한다. 그녀는 함께 일하는 창녀들을 생각한다. 그녀는 어머니와 친구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남자들이 오로지 매일 11분만을 위해 산다고, 남자들은 그것을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여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남자들 역시 녀성적인 부분을 가지고있고, 누군가를 만나기를,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를 갈망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처럼 행동하는것, 아버지와 관계를 맺을 때 오르가즘을 느끼는척하는것이 가능할가? 아니면 브라질에서는 성관계때 녀자가 기쁨을 표시하는것이 금지되여있는걸가? 그녀는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아는것이 거의 없다. 이제 그녀는 눈을 가린채, 세상의 모든 시간과 더불어 모든것의 기원을 발견한다. 모든것은 그녀가 그것이 시작되였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곳에서, 그녀가 바라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접촉, 그녀는 창녀들을, 손님들을, 어머니와 아버지를 잊는다. 지금 그녀는 완전한 어둠속에 있다. 그녀는 자신에게 긍지를 되돌려준, 그녀로 하여금 기쁨을 추구한 넋이 아픔의 필요성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한 남자에게 그녀가 해줄수 있는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오후를 보냈다. 《나로 하여금 새로운 뭔가를 발견하게 해준 행복을 그에게도 주고싶어. 어제 그가 나에게 고통을 보여주고, 거리의 창녀와 성스러운 창녀들의 력사를 가르쳐준것처럼. 그는 그렇게 하는것이 행복한거야. 그래서 날 미지의 세계로 인도해준거야. 난 사람들이 령혼에, 삽입에, 쾌락의 절정에 도달하기전에 어떻게 육체에 이르게 되는지 알고싶어.》 그녀는 그를 향해 팔을 뻗으며 그에게 똑같이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가 속삭인다. 오늘밤, 특별할것 없는 이곳에서, 그가 그녀와 세상 사이의 경계인 그녀의 피부를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령혼이 동의하지 않아도 육체는 서로를 리해하는 법이니 나를 만져달라고, 두손으로 나를 느껴보라고, 그가 그녀를 만진다. 그녀도 그를 만진다. 미리 약속이라도 되여있는듯, 두사람은 성적에네지가 빠르게 표출되는 신체부위는 피한다. 그의 손가락들이 그녀의 얼굴을 만진다. 그녀는 그 손가락들에서 나는 물감냄새의 흔적을, 그가 수천수백번 손을 씻어도 영원히 남아있을 냄새를, 그가 태여날 때부터, 그가 자신의 첫 나무와 첫 집을 보고 그것들을 자신의 꿈속에 그리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거기 있었던 그 냄새를 맡는다. 그 역시 그녀의 손에서 그녀가 모르는 어떤 냄새를 맡을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알고싶지 않다. 그 순간, 모든것이 몸이고, 나머지는 침묵이기에. 그녀가 그를 애무한다. 그리고 자신을 애무하는 그의 손길을 느낀다. 밤새 그러고만 있으라고 해도 그럴수 있을것 같다. 그만큼 기분이 좋다. 꼭 성관계로 발전하지 않아도 좋다. 반드시 관계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것을 깨닫자, 갑자기 그녀는 허벅지사이에서 뜨거운 열기를 느낀다. 그곳이 축축이 젖어있다. 그가 그녀의 성기를 만지고 그곳이 흠뻑 젖어있다는것을 아는 순간이 올것이다. 그것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의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것뿐이다. 그녀는 여기, 저기, 더 천천히, 더 빨리…하며 그를 리드할 생각이 전혀 없다. 사내의 손이 그녀의 겨드랑이를 스치고 지나간다. 팔의 솜털이 곤두선다. 그녀는 그 손길을 뿌리치고싶다. 그러나 느낌이 좋다. 그녀가 느끼는것이 고통에 가까운것이라 해도. 이번에는 그녀가 그의 겨드랑이를 애무한다. 그의 겨드랑이가 다른 느낌을 갖고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가 사용하는 탈취제때문일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거지?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의 손가락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망을 보는 짐승처럼 그녀 가슴 주위에 원을 그린다. 그녀는 그가 더 빨리 움직여주기를, 젖꼭지를 만져주기를 원한다. 생각이 그의 동작보다 앞선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있는지 그는 약을 올리듯 한없이 미적거린다. 그가 팽팽하게 곤두선 그녀의 젖꼭지를 가지고 잠시 장난을 친다.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성기가 또다시 욕망으로 녹아내린다. 이제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배우를 돌아다닌다. 다리로 발로 내려간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더듬는다. 그는 그곳의 열기를 느낀다. 하지만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그것은 부드럽고 가벼운, 마치 착각처럼 가벼운 애무다.  그녀가 그가 한대로 그의 몸을 더듬는다. 그녀의 손이 그의 다리에 난 털들을 살짝 스친다. 그녀 역시 그의 성기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를 느낀다. 신비롭게도 그녀는 순간 처녀성을 되찾은것만 같다. 처음으로 한 남자의 몸을 발견한것만 같다. 그녀가 그의 성기를 만진다. 생각했던것보다는 덜 단단하다. 그녀는 흠뻑 젖어있는데… 이건 불공평하다. 남자는 시간이 좀더 많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누가 알겠는가? 그녀가 순결한 처녀들만할줄 아는, 창녀들은 모두 잊어버린 방식으로 그를 애무하기 시작한다. 남자가 반응한다. 그의 성기가 점점 커진다. 마리아는 그의 성기를 잡은 손의 압력을 서서히 높인다. 그녀는 이제 어디를 만져야 하는지를 안다. 우보다는 아래다. 손가락으로 그것을 어떻게 감싸쥐여야 하는지, 표피를 어떻게 아래로 당겨야 하는지도 안다. 그는 몹시 흥분해있다. 그녀가 좀더 강하고 좀더 깊은 접촉을 간절히 바라고있는데도 그는 여전히 부드럽게 그녀의 음순을 애무한다. 그가 그녀에게도 솟아나온 분비물을 그녀의 클리토리스에 대고 문지른다. 젖꼭지 주변에서 했던 원운동을 클리토리스주위에서 반복한다. 그는 마치 그녀 자신인것처럼 그녀를 만진다. 랄프의 한손이 그녀의 가슴을 향해 다시 올라온다. 아, 얼마나 감미로운가! 그녀는 이제 그가 자신을 안아주기를 열렬히 갈망한다. 하지만 안된다. 그들은 서로의 몸을 발견하고있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있다. 그들에게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은 이제 사랑을 나눌수도 있을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분명 너무나 달콤한 일일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것이 너무나 새롭다. 자제해야 한다. 이 모든것을 망치고싶지 않다. 그녀는 첫째날 밤 한모금씩 맛보며 천천히 마셨던 와인을 떠올린다. 그 음료는 그녀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시야를 열어주고, 그녀를 더욱 자유롭게, 삶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해주었다. 그녀는 이 남자도 마시고싶다. 그러면 단숨에 들이키려는 질 나쁜 와인, 머리를 욱신거리게 하고 령혼에 구멍을 내는 그런 와인은 잊을수 있을것이다. 그녀가 동작을 멈추고 랄프의 손가락에 부드럽게 자신의 손가락을 끼운다.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도 신음소리를 내고싶다. 하지만 참는다. 온몸에 열기가 번져가는것을 느낀다. 그도 똑같은것을 느끼고있는것이 분명하다. 에네지가 오르가즘 없이 서서히 퍼져 뇌에까지 이른다. 그녀가 정녕 원하는것은 중단하는것, 끝까지 가는것외엔 아무 생각도 할수 없을 때 그만두는것, 쾌감이 온몸으로 번지고, 정신을 점령하고, 약속과 욕망을 쇄신해 다시 숫처녀가 되는것. 그녀는 눈을 가리고있던 천을 천천히 푼다. 그들은 둘다 벌거벗고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미소짓지 않는다. 그저 서로 바라보기만한다. 그녀는 생각한다. 《난 사랑이예요. 난 음악이예요. 함께 춤을 춰요.》 하지만 그녀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소한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나죠? 그녀가 날자를 제안한다. 이틀후는 어때요? 그가 그녀에게 전시회에 초대하고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망설인다. 그의 주변사람들에게, 그의 친구들에게 인사를 해야 할것이다. 그들은 뭐라고 할가?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가? 그녀가 거절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제안을 받아들이고싶어한다는것을 안다. 그는 그것도 춤의 일부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며 떼를 쓴다. 그녀가 결국 수락한다. 그녀가 원하는것이기에. 그들은 약속장소를 정한다. 우리가 처음 만난 카페?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안돼요. 브라질사람들은 미신을 믿어요.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는 다시 만나면 안돼요. 순환이 마감되여 모든것이 끝날수도 있으니까. 그는 그녀가 그들의 이야기를 끝내고싶어하지 않는다는것에 기뻐한다. 그들은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을 이끌었던, 그들이 서로 알게 된후 함께 떠난 신비스러운 순례의 일부분인,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티아고의 길에 있는 성당에서 만나기로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사기 전날, 마리아의 일기. 옛날 옛적에 번쩍이는 깃털로 뒤덮인 멋진 색갈의 완벽한 날개 한쌍을 가진 새 한마리가 있었다. 그 새는 마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올라 보는 이들을 더없이 즐겁게 해주기 위해 태여난 존재 같았다. 어느날, 한 녀인이 그 새를 보고는 한눈에 반하고말았다. 그녀는 감탄으로 입을 다물지 못한채 마구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감동으로 두눈을 반짝이며 그 새가 나는것을 바라보았다. 새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그녀를 초대했다. 그들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함께 비행했다. 그녀는 그 새를 너무나 사랑했고 숭배했고 찬양했다. 그러던 어느날 녀인은 문득 《혹시 저 새가 머나먼 산으로 훌쩍 날아가버리지는 않을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덜컥 겁이 났다. 다른 새에게는 더이상 그런 애정을 느낄수 없을가봐 두려웠다. 그녀는 하늘을 나는 새의 능력을 질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외로웠다. 그녀는 생각했다. 《새를 함정에 빠뜨려야겠어. 다음번에 나타나면 두번 다시 날 떠날수 없을거야.》 역시 녀인에게 반해있던 새가 이튿날 그녀를 만나러 왔다. 새는 함정에 걸려 새장속에 갇히고말았다. 녀인은 매일 새를 바라보았다. 그 새는 그녀가 불태우는 열정의 대상이였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새를 보여주었고 친구들은 《넌 정말 좋겠구나!》하며 부러워했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가 그녀의것이 되여 더이상 그것을 정복할 필요가 없게 되자 새에 대한 녀인의 애정이 점점 식어갔다. 더이상 날지 못해 자기 삶의 의미를 표현할수 없게 된 새는 점점 쇠약해져갔다. 새는 빛을 잃고 보기 싫게 변해갔다. 녀인은 먹이를 주고 새장을 청소할 때를 빼고는 새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새가 죽고말았다. 그녀는 깊이 상심했고 그때부터 끊임없이 그 새만을 생각했다. 그녀는 새장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구름만큼이나 높이 날며 행복해하는 그 새를 처음 본 그날만을 떠올렸다. 그녀가 자기 자신을 조금만 더 세심히 관찰했더라면 그녀에게 그토록 깊은 감동을 준것은 새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눈부신 자유로움, 끊임없이 퍼덕이는 그 날개의 에네지였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을것이다. 새가 죽고나자 그녀의 삶 역시 의미를 상실하고말았다. 죽음이 찾아와 그녀의 문을 두드렸다. 《왜 날 찾아왔나요?》 녀인이 죽음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 새와 함께 다시 하늘을 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죽음이 대답했다. 《그 새를 자유롭게 놔뒀더라면 당신은 그 새를 훨씬 더 많이 사랑하고 숭배했을거요. 하지만 이제 당신은 내가 없이는 그를 다시 만날수 없소.》
25    《11분》 (련재23) 댓글:  조회:1692  추천:0  2015-01-29
《내가 최근에,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 한 경험은 전에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거였어요. 타락의 한계점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수 있었다는 사실이 날 두렵게 해요.》 말을 잇기조차 어려웠다. 이가 따닥따닥 부딪치고 발이 너무 아팠다. 《쿠마노라는 지역에서 열린 내 전시회에 한 나무군이 찾아왔소.》 랄프가 마치 그녀의 말을 듣고있지 않았던것처럼 말을 이었다. 《그는 내 그림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것을 그림을 통해 정확하게 꿰뚫어볼줄 알았소. 이튿날 그가 호텔로 날 찾아와 물었어요. 행복하냐고, 행복하다면 좋아하는걸 계속하고, 그렇지 않다면 자기를 따라가 함께 며칠 보내지 않겠느냐고. 그는 내가 지금 당신한테 하고있는것처럼 날 돌우에서 걷게 했소. 그는 나를 추위에 떨게 만들었소. 그는 나로 하여금 고통의 아름다움을 깨닫도록 강요했소. 단,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가하는 고통이였소. 그는 그것을 전통 슈겐도(산에서 수행하며 밀교적인 의식을 행하여 득도하려는 종교.)라 불렀소. 그는 내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령혼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육체를 지배하는 법 또한 배워야 하니 그것은 좋은것이라고 말했소. 하지만 내가 고통을 옳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사용하고있다고, 그것은 아주 나쁜것이라고 했소. 그 나무군은 자기가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날 은근히 화나게 만들었소. 동시에 내 그림에 내가 느끼는것이 정확하게 표현되였구나 하는 생각에 자랑스럽기도 했소.》 마리아는 날카로운 돌 하나에 발바닥이 베이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추위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몸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녀는 랄프 하르트의 말을 좇아가기가 힘들었다. 신이 만든 이 성스러운 세상에서 남자들은 왜 그녀에게 고통을 보여주는것에만 관심을 갖는것일가? 성스러운 고통, 쾌락을 주는 고통, 설명할수 있는 고통, 설명할수 없는 고통, 하지만 언제나 고통, 고통… 상처가 난 부분에 다른 돌이 닿았다. 그녀는 터져나오는 비명을 억누르며 계속 걸었다. 처음에 그녀는 자기 본래의 모습, 자기 절제, 그가 그녀의 《빛》이라 부른것을 지키려고 애썼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속이 빙빙 돌아갔지만 천천히나마 걸어보려고 노력했다. 금방이라도 토할것만 같았다. 걸음을 멈추고싶었다. 이 모든게 무슨 의미랴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자존심때문이였다. 이 정도 맨발의 산책은 얼마든지 견딜수 있었다. 평생 걸어야 하는건 아닐테니까. 갑자기 또다른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발에 심한 상처가 생기거나 독한 감기에 걸려 다음날 코파카바나에 출근할수 없게 된다면? 그녀는 자기를 기다리고있는 손님들을, 그녀를 어느 누구보다 신뢰하는 밀랑을, 벌지 못하게 될 돈을, 미래의 농장을, 자기를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를 생각했다. 하지만 곧 고통이 모든 생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녀는 랄프 하르트가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주기를, 그래서 이제 됐다고 신발을 신어도 좋다고 말해주기를 미친듯이 소원하며 또 한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는 마치 그것이 그녀가 모르고있는 그 무엇으로부터 당장은 그녀를 매료시켰지만 머지 않아 그녀 내부에 수갑자국보다 더 깊은 자국을 남기게 될 그 무엇으로부터 그녀를 해방시키는 유일한 방법인양 차가운 표정으로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가 자신을 도우려 한다는것을 알고있었고 자신의 의지력을 증명하기 위해 온힘을 다하고있었지만 고통이 너무 심했기때문에 그녀는 세속적인것이든 숭고한것이든 아무 생각도 할수가 없었다. 오로지 고통만이 모든 공간을 차지하고있었다. 그것은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한계에 다달았다고 결코 더는 해내지 못할거라고 고백하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그녀는 또다시 한걸음을 내디뎠다. 또 한걸음. 이제 고통이 그녀의 령혼을 잠식해 그녀의 정신을 약화시키는것 같았다. 별 다섯개짜리 호텔에서 벌거벗은채, 보드카와 캐비아를 앞에 놓고 허벅지사이에 채찍을 끼고 연극을 하는것과, 살을 에는 추위속에서 맨발로 자갈우를 걷는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디가 어딘지 알수 없었고, 랄프 하르트와 단 한마디의 말도 나눌수가 없었다. 그녀의 세계에는 나무사이로 난 오솔길을 뒤덮고있는 작고 날카로운 자갈들밖에 없었다. 그녀가 막 포기하려는 순간, 아주 묘한 감정이 그녀를 휩쓸었다. 한계에 도달했던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너머로 텅빈 공간이 펼쳐졌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도 알지 못한채 그 빈공간우를 떠다녔다. 이것이 바로 고행자들이 느끼는것일가? 고통의 극단에서 그녀는 의식이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했다. 이제는 준엄한 자연과 꺾이지 않는 그녀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공원, 칠흑같은 어둠에 감싸인 호수, 말없는 사내, 그녀가 맨발로 힘겹게 걷고있다는것을 눈치채지 못한채 산책하고있는 한두쌍의 련인들, 그녀 주위의 모든것이 꿈으로 변했다. 추위 또는 고통때문이였을가?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육체를 느끼기를 그만두고 욕망도 두려움도 없는 그것을 뭐라고 부를수 있을가? 오로지 신비로운 《평화》밖에 없는 상태로 빠져들었다. 고통의 한계는 그녀의 한계가 아니였다. 그녀는 그너머까지 갈수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고통속으로 뛰여든 그녀와는 달리 말없이 고통을 견디고있는 모든 인간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육체의 경계를 뛰여넘은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것은 령혼, 언젠가 누군가 천국이라고 불렀던, 텅빈 상태엔 《빛》때문이였다. 우리가 그너머로 떠다닐 능력을 갖게 될 때에야 비로소 잊혀질수 있는 고통들이 있다. 그녀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딸라와 그녀를 품에 안는 랄프 하르트의 모습이였다. 그는 자기 웃도리를 벗어 그녀의 어깨우에 걸쳐주었다. 추위를 견디다 못한 그녀가 기절하고만 모양이였다. 하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행복했다.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녀가 이긴것이다. 그 남자앞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몇시간이 마치 몇분처럼 흘러갔다. 그의 품에서 바로 잠이 들었던 모양이였다. 눈을 떴을 땐 아직 밤이였다. 방 한쪽구석에 털레비죤이 놓여있었다. 다른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온통 하얀색인 방은 텅 비여있었다. 랄프가 코코아를 들고 들어왔다. 《아주 잘했소. 당신은 도달하고자 했던 곳에 도달했어요.》 그가 말했다. 《코코아는 싫어요. 와인을 주세요. 벽난로가 있고 사방에 책이 흩어져있는 우리 방으로 가고싶어요.》 그녀는 《우리 방》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하려고 했던 말이 아니였다. 그녀는 발을 살펴보았다. 약간 벤 상처를 제외하고는 몇시간만 지나면 없어질 붉은 자국들이 얼룩얼룩했다. 그녀는 절뚝거리며 층계를 내려가 벽난로 근처 양탄자우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 앉을 때마다 그녀는 마치 그곳이 자기 자리인것처럼 편했다. 《그 나무군 말이 신체적훈련을 계속하면, 신체적으로 할수 있는 모든것을 하고나면, 정신이 내가 당신에게서 본 과 류사한 기이한 령적힘을 얻게 된다고 했어요. 당신은 무엇을 느꼈소?》 《고통이 녀자의 친구라는것.》 《그게 바로 위험한거요.》 《고통에도 한계가 있다는것.》 《구원은 바로 거기에 있소. 그걸 잊지 말아요.》 마리아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자기 한계를 넘어섬으로써 그 《평화》를 느꼈다. 새로운 형태의 고통을 발견했다. 그것 역시 그녀에게 묘한 쾌락을 가져다주었다. 랄프는 커다란 데생묶음을 가져와 그녀앞에 펼쳤다. 《매춘의 력사. 당신이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던거요.》 그랬다. 그런 부탁을 한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관심을 끌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지금에 와서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요 며칠내내 나는 미지의 바다우를 떠다녔소. 나는 매춘의 력사라는게 존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소. 흔히 말하듯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생각했을뿐이요. 하지만 그 력사는 존재해요. 그것도 두가지나.》 《그런데 이것들은?》 그녀가 별 흥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약간 실망하는듯했다. 《내가 읽고 연구하고 배운것을 정리해. 그린것들이요.》 《그 얘긴 다음에 해요. 오늘은 주제를 바꾸고싶지 않아요. 난 아픔을 리해하고싶어요.》 《당신은 어제 고통을 느꼈고, 그것이 당신을 쾌락으로 이끈다는것을 깨달았소. 당신은 오늘 다시 아픔을 느꼈고 평화를 찾았소. 그래서 내가 당부하는거예요. 아픔은 쉽사리 중독되는 강력한 마약이니 그것에 습관을 들이지 말라고. 그것은 우리의 일상속에, 감추어진 고통속에, 우리의 체념속에, 그리고 우리가 흔히 사랑탓으로 돌리는 우리 꿈의 와해속에 있어요. 아픔은 본 모습을 드러낼 때는 무섭지만, 희생과 체념으로, 또는 비겁함으로 치장을 하면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이요. 인간은 아픔을 거부할수도 있지만, 그것과 함께하는 방법, 그것과 불장난하는 방법, 그것이 삶의 일부분이 되도록 하는 방법을 늘 찾아낸다오.》 《그럴리 없어요. 고통받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당신이 고통 없이도 살수 있다는걸 리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진전일거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럴거라고는 생각지 말아요. 고통받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하지만 거의 사람들이 아픔을, 희생을 추구하고있소. 그 덕분에 그들은 스스로 정당하다고, 깨끗하다고, 자식, 배우자, 이웃, 그리고 신으로부터 존중을 받을만하다고 느끼는거요. 아, 이 생각은 그만 접어둡시다. 세상을 움직이는것은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중요한 모든것에 대한 포기라는 사실만 알아둬요. 군인이 적을 죽이기 위해 전쟁터로 나간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는 조국을 위해 죽으러 가는거요. 안해가 남편에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고싶어한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녀는 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고생하고있는지 그가 알아주기를 바라오. 남편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직장에 나간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피땀을 바치는거요. 자식들은 부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꿈을 포기하오. 아픔과 고통이, 오로지 기쁨만을 가져다주어야 마땅한 사랑의 증거가 되는거요.》 《그만해요.》 랄프가 말을 중단했다. 주제를 바꿔야 할 때였다. 그가 그림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모든것이 뒤죽박죽으로 보였다. 인물들도 있었지만 휘갈겨쓴 글, 색갈만 칠한것, 아무렇게나 신경질적으로 그은 선, 기하학적인 선도 있었다. 그가 각각 단어를 손으로 짚어가며 설명했다. 그녀는 서서히 그가 하는 말을 리해하기 시작했다. 손짓이 수반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리고 각 문장들이, 그때까지는 그녀 스스로 이것은 인생의 한단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뿐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속해있음을 부정해온 그 세계속에 그녀를 위치시켰기때문이다. 《난 매춘의 력사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었소. 처음것은 당신의 력사이기도 하니 당신도 알고있을거요. 예쁜 아가씨가 자신이 선택한, 또는 다른 누군가가 그녀대신 선택한 여러가지 리유들때문에 살아남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몸을 파는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거요. 로마시대의 메살리나(클라우디우스 1세의 황후, 애인과 함께 남편을 암살하려다가 발각되여 처형당했다. 스스로 창녀촌을 찾아가 밤새도록 손님을 받을 정도로 색정광이였다 한다.)처럼 그것을 리용해 국가를 지배하는 녀자들도 있고 마담뒤바라지(루이 15세의 정부, 뛰여난 침실기술을 발휘하여 한 녀자에 쉽게 싫증을 냈던 루이 15세로부터 오래동안 총애를 받았다.)처럼 신화가 되여버린 녀자들도 있소. 또 녀자 스파이 마타하리(파리의 물랭루주에서 미모의 댄서로 이름을 떨쳤으며 제1차 세계대전무렵에는 독일의 스파이로 활동하였다.)처럼 모험과 불행, 이 둘과 동시에 내기를 벌리는 녀자들도 있소.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영광의 순간을 누리지도, 위대한 도전에 나서지도 못하오. 그들은 인기, 남편, 모험을 찾으러 나섰다가 결국에는 또 다른 현실을 발견하고, 그 현실에 빠져들고 습관을 붙이고, 그것 말고 다른것은 할수 없으면서도 상황을 통제하고있다고 믿소. 예술가들은 무려 삼천년전부터 조각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써왔소. 창녀들 역시 아주 먼 옛날부터 크게 변한건 아무것도 없다는듯 그들의 일을 계속해오고있소. 좀더 알고싶어요?》 마리아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벌어야 했다. 아픔을 리해해야만했다. 맨발로 공원을 걷는 동안 극히 유해한 뭔가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간 느낌이였다. 《고전 텍스트에도,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도, 고대 수메르의 기록에도, 구약과 신약에도 창녀가 언급되여있소. 하지만 그 직업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립법자 솔론이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창(公娼)을 설치하고, 에 대한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했을 때에야 비로소 조직화되였어요. 금지되여있던 성매매가 합법적인것으로 인정되자 아테네의 사업가들은 몹시 기뻐했고, 창녀들은 그때부터 그들이 내는 세금에 따라 여러 계급으로 분류되였소. 가장 싼 창녀는 모르네라 불렀는데 업소 주인에게 속한 노예들이였소. 그다음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호객행위를 하는 페리파테티케였고 마지막이 질적으로나 가격으로나 최고인 헤타이라, 즉 이였소. 그들은 려행을 떠나는 사업가들을 동행했고 고급식당에 드나들었소. 자기 재산을 직접 관리하고 손님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정치에도 관여했소. 당신도 알수 있겠지만 과거에 존재했던것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고있어요. 중세에는 성관계를 통해 전염되는 질병때문에…》 침묵, 감기에 대한 두려움, 이 순간 그녀의 몸과 령혼을 태우기 위해 꼭 필요한 벽난로의 열기. 마리아는 세상이 멈춰버린것 같은, 모든것이 반복되는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 이야기를 더이상 듣고싶지 않았다. 이 남자는 결코 섹스에, 그것이 받아 마땅한 경의를 표하지 않을것 같았다. 《내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것 같군요.》 그녀는 노력했다. 지금에 와서는 좀 불확실해졌지만 어쨌거나 그는 그녀가 마음을 주기로 결심했던 남자였다. 《내가 이미 알고있는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건 날 슬프게 할뿐이예요. 또 다른 력사가 존재한다고 말한것 같은데요.》 《또 하나의 력사는 정반대요. 성스러운 매춘이죠.》 그 말에 그녀는 멍한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성스러운 매춘? 섹스로 돈도 벌고 거기다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고? 《그리스의 력사가 헤로도토스는 바빌론에 관해 이렇게 썼소. 》 마리아는 나중에 그 녀신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였다. 그 녀신이, 그녀가 잃어버렸지만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떤것을 되찾을수 있도록 도와줄지도 몰랐다. 《녀신 이슈타르의 영향은 중동전역으로 번졌고 사르디니아, 시칠리아, 그리고 지중해의 항구들에까지 이르렀소. 로마의 녀신 베스타는 철저히 순결을 지키거나 아니면 누구에게든 몸을 줄것을 요구했소. 베스타 신전의 무녀들은 성스러운 불을 유지하기 위해 청년들과 왕들을 성(性)에 입문시키는 역할을 맡았소. 그들은 에로틱한 노래를 부르며 신들린 상태로 빠져들어가, 신과 일체가 되는 하나의 의식으로서 우주에 그들의 황홀경을 바쳤던거요.》 랄프 하르트는 그녀에게 몇몇 고대문서의 사본들을 보여주었다. 그 사본 아래에는 문서의 내용이 독일어로 번역되여있었다. 그가 시구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선술집 문앞에 앉아있는 녀신인 나, 이슈타르 나는 창녀, 어머니, 안해, 신이다 나는 사람들이 생명이라 부르는것이다 너희들은 날 죽음이라 불렀지만 나는 사람들이 법이라 부르는것이다 너희들은 날 주변인이라 불렀지만 나는 너희들이 찾고있는것이고 너희들이 찾은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퍼뜨린것이다 그리고 지금 너희들은 내 조각들을 모으고있다 마리아가 잠시 흐느껴 울자 랄프가 웃었다. 그녀의 생명 에네지가 다시 돌아왔다. 《빛》이 다시 번뜩이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계속하고, 그림들을 보여주고, 그녀가 사랑받고있다고 느끼게 해야 했다. 《이천년 동안이나 지속되여온 성스러운 매춘이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아마 질병때문이거나, 종교들이 큰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의 규칙들이 많이 바뀌였기때문일거요. 어찌 되였건 그것은 이제 존재하지 않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거요. 오늘날의 세계는 남자가 지배하고있고, 라는 용어는 오로지 옳바른 길을 가지 않는 녀자를 비난하는데에만 사용되고있소.》 《래일 코파카바나로 와줄수 있나요?》 랄프는 질문의 의미를 리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지체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제네바의 영국정원을 맨발로 걸었던 날 밤, 마리아의 일기. 과거에 그것이 성스러웠든 아니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있는 짓이 혐오스럽다. 그것은 내 령혼을 파괴하고, 나 자신과의 접촉을 방해하고, 아픔이 하나의 보상이라고, 돈이면 무엇이든 살수 있고 정당화할수 있다고 가르친다. 내 주변에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손님들은 그냥 받아야 마땅한것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그것은 그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아가씨들은 즐겁게 그리고 애정을 담아 제공하면 좋을것을 돈을 받고 팔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그것은 그들을 파괴한다. 나는 이 글을 쓰기전에 내가 불행하다는것을 인정하기전에 무척 많은 고민을 했다. 나는 어떻게든 버텨야 했고 아직도 몇주를 더 버텨야 한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이 모든것을 정상적인 일로, 내 인생의 한단계에 불과한것으로 여길수가 없다. 나는 그것을 잊고싶다. 난 사랑을 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사랑만이 필요하다. 잘못살 사치를 부리기에는 삶은 너무 짧거나 너무 길다.
24    《11분》 (련재22) 댓글:  조회:1548  추천:0  2015-01-28
테렌스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마리아가 뭔가를 핑게삼아 다시 돌아오지 않을가 잠시 기다렸다. 몇분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품격이 있는 아가씨야,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채찍을 잘 견뎌냈다. 체형(體刑)중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경미한것이긴 하지만, 그는 서로 다가가기를 원하지만 서로 고통을 줌으로써만 그것이 가능한 두 존재사이의 신비로운 관계를 자신이 처음 경험했을 때를 떠올렸다. 저 바깥에는 수백만의 부부들이 매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도마조히즘을 실행하고있었다. 그들은 매일 일터로 갔고 돌아와서는 모든것에 대해 불평을 늘여놓았다. 남편은 안해를 괴롭히거나 안해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그들은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꼈지만 그들 자신의 불행에 깊이 얽매여있었고 하나의 몸짓, 한번의 《더는 못참겠어》로도 충분히 억압에서 해방될수 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테렌스 역시 유명한 영국가수인 안해와 그것을 경험했다. 질투에 사로잡혀있던 그는 걸핏하면 안해에게 시비를 걸었고 낮에는 진정제에 밤에는 술에 취해 사간을 보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 역시 자신의 행동을 리해할수 없었다. 마치 그들이 서로에게 주는 고통이 그들 삶에 꼭 필요한 본질적인것인듯했다. 어느날, 한 연주가가 깜박 잊고 스튜디오에 책 한권을 놓고 갔다. 괴짜들이 득실대는 그 계통에서 지극히 평범해보였기때문에 테렌스가 아주 이상하게 여기던 연주자였다. 책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오스트리아 소설가. 청년 귀족 쿠젬스키의 사랑의 모험이야기를 다룬 대표작 《모피옷을 입은 비너스―1871)》로 이름을 떨쳤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성적기행이 성심리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마조히즘》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그 예쁜 녀자가 옷을 벗어던지고는 짤막한 손잡이가 달린 긴 채찍을 집어 자기 손목에 감으며 말했다. 《당신이 원했으니, 채찍으로 당신을 후려치겠어요.》 《그렇게 해주오. 제발 부탁이요.》 그녀의 정부(情夫)가 속삭이듯 말했다. 테렌스의 안해는 유리로 되여있는 스튜디오 칸막이벽 건너편에서 한창 련습에 열중하고있었다. 그녀는 바깥에 있는 기술자들이 스튜디오내부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수 없도록 마이크를 꺼달라고 요구했고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따랐다. 테렌스는 그녀가 아마도 연주자와 밀회약속을 정하고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깨달았다. 그녀는 일부러 그를 미치게 만들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고통에 길들어있었다. 고통 없이는 더이상 살수 없었다. 《채찍으로 당신을 후려치겠어요.》 그가 손에 들고있는 소설속에서 옷을 벗은 녀자가 말했다.  《그렇게 해주오. 제발 부탁이요.》 그는 미남이였고 음반회사내에서 어느 정도의 권력도 가지고있었다. 그런 그가 이런 생활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가? 그는 그런 상황을 즐기고있었다. 돈, 명성, 인기, 자신이 지닌 그 모든 특혜를 누릴 자격이 없었기때문에, 삶이 그에게 관대했기때문에, 그는 많은 고통을 받아야 마땅했다. 그는 음반제작자로서 큰 성공을 거두고있었는데, 그것 또한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정상에서 하루아침에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아왔기때문이였다. 그는 그 책을 끝까지 읽었다. 그는 고통과 쾌락을 신비스럽게 결합해놓은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안해는 그가 빌려오는 비디오테이프들, 그가 감추는 책들을 보고는 그것들이 도대체 다 뭐냐고,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테렌스는 아니라고, 새 앨범 재킷에 쓰려고 뭘 좀 찾고있을뿐이라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흘렸다. 《우리도 한번 시도해봐야 할것 같아.》 그들은 시도해보았다. 처음에는 섹스숍에서 구한 입문서에만 의존해 아주 조심스럽게 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서서히 새로운 테크닉들을 발전시켜나갔고 한계에 도전하고 위험을 감수했다. 그들은 결혼생활이 점점 더 견고해지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들은 금지된 비밀을 공유하는 공범자들이였다. 그들의 실험은 예술로 확장되였다. 그들은 가죽과 각종 금속못을 새로이 류행시켰다. 그의 안해는 손에 채찍을 든채 가죽부츠와 가테벨트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관중을 광란에 빠뜨렸다. 그녀의 그룹이 발표한 새 앨범은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유럽 전체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테렌스는 젊은이들이 개인적인 성적일탈을 그토록 쉽게 받아들이는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억제된 폭력성을, 강렬하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형태를 통해 표현했기때문이라고 설명할수밖에 없었다. 그룹의 상징이 되여버린 채찍은 티셔츠, 문신, 스티커, 우편엽서 등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적성향을 지닌 테렌스는 자기 자신을 더 잘 리해하기 위해 그 모든것 기원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가 마리아에게 말한것과는 달리, 그 기원은 흑사병을 몰아내고자 했던 고행자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인간은 혹독한 고통도 일단 익숙해지면서 자유로 가는 통행증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한 인간이 자신을 희생해 나라와 세상을 구한다는 개념은 이집트, 로마, 그리고 페르시아에 이미 존재했다. 중국에서는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지상에서 신성(神性)을 대표하는 사람인 천자(天子)가 벌을 받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일년에 한번씩 스파르타 최고의 전사들이 녀신 아르테미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채찍질을 당했고, 군중들은 고통을 꿋꿋하게 참아내고 미래의 전장에서 용감히 싸우라고 함성을 질러 그들을 격려했다. 하루가 끝날 무렵, 사제들은 그들의 등에 난 상처를 살펴보고 그것에서 도시의 미래를 점쳤다. 알렉산드리아 수도원 주변에서 발원한 4세기의 수도단체 《사막의 교부단(敎父團)》은 악마를 쫓고, 구도에서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성인들의 력사에도 그러한 례는 수없이 많았다. 성녀 로사는 가시밭을 뛰여다녔고, 성 도미니크 로리카투스는 매일밤 잠자리에 들기 전 스스로에게 매질을 가했다. 순교자들은 기꺼이 십자가에 매달려 서서히 죽어가거나 스스로 맹수의 밥이 되였다. 모두 고통을 극복하면 종교적황홀경에 도달하게 된다고 단언하고있었다. 아직 공인되지 않은 최근의 연구들에 따르면, 환각을 일으키는 성분을 지닌 어떤 균류는 상처우에서 자라나 환상을 유발시킨다고 했다. 그러한 습속이 수도원을 벗어나 온 세계로 퍼진것을 보면 거기서 얻을수 있는 쾌감이 무척이나 큰것 같았다. 1718년에는 신체적인 훼손없이 고통을 통해 쾌감을 얻는 법을 가르치는 《스스로 채찍질을 가하는 방법에 관한 론설》이 출간되기도 했다. 18세기말 유럽에는 고통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는 곳이 무수히 많았다. 어떤 고문서들에 따르면, 고통을 당하는것뿐만아니라 고통을 가하는것(더 힘들고 덜 강렬하기는 하지만)에서도 쾌락을 얻을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는 왕과 공주들도 하인들을 시켜 자신을 때리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면서, 테렌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리해할수 없으리라고 중얼거리며 우월감을 맛보았다. 엘리트들만 허용하는 페쇄적인 클럽의 일원으로 남는게 더 나았다. 그는 지옥같던 자신의 결혼생활이 어떻게 더없이 즐거운것으로 변했는지를 떠올렸다. 안해는 그가 제네바에 가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남편이 일주일간의 로동을 보상받을수 있는 적절한 놀이를 찾았다며 행복해했다. 방금 방에서 나간 아가씨는 모든것을 리해하고있었다. 그들의 령혼은 닮아있었다. 그는 그것을 느낄수 있었다. 안해를 사랑하기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는 되여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수시로 자신이 한없이 자유롭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관계를 꿈꾸었다. 이제 가장 어려운 실험이 남아있었다. 그녀를 모피를 걸친 비너스로, 그를 모욕하고 가차없이 벌할수 있는 최고의 군주로, 그의 지배자로 만드는것, 그녀가 그 시험을 통과한다면, 그는 기꺼이 그녀에게 가슴을 열어보이고 그안으로 들어오게 할것이다. 마리아가 보드카와 쾌락에 취해 쓴 일기. 잃을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때 나는 모든것을 얻었다. 나 자신이기를 그만두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찾았다. 전적인 굴욕과 복종을 경험했을 때, 나는 자유로웠다. 내가 아픈것인지, 이 모든게 하나의 꿈인지, 이런 일은 단 한번밖에 일어나지 않는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그런것 없이도 내가 살수 있다는건 나도 잘 알고있다. 그런데도 그를 또 만나 그 경험을 다시 하고싶고 더 멀리까지 가보고싶다. 사실, 고통이 약간 두려웠다. 하지만 고통은 굴욕감보다는 훨씬 약했다. 그 숱한 남자들이 내 몸을 자기들 하고싶은대로 가진후에, 그런 수개월만에 처음으로 오르가즘을 느꼈을 때, 나는 내가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느꼈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가? 나는 흑사병에 대해 그가 말했던것,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고통을 바친 고행자들이 그 행위를 통해 쾌락을 찾았다는것을 떠올렸다. 나는 인류를, 혹은 그나 나 자신을 구원하고싶었던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그곳에 있었을뿐이다. 섹스의 기술은 통제력의 상실을 통제하는 기술이다. 그것은 연극이 아니였다. 그들은 그곳에서만 파는 피자를 먹고싶다는 마리아의 요청에 따라 실제로 역에 갔다. 그녀는 자신이 약간 변덕쟁이처럼 구는것을 허락했다. 랄프는 하루 일찍 그녀를 찾아왔어야 했다. 그녀가 아직 사랑, 욕망, 벽난로, 그리고 와인을 찾는 녀자였을 때. 하지만 인생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녀는 오늘은 소리들에, 현재의 순간에 집중할 필요가 없었다. 단 한번도 랄프 생각을 하지 않았기때문이다. 훨씬 더 흥미로운것을 발견했다는 훌륭한 리유도 있었다. 함께 집으로 갈 시간만 기다리며 곁에 앉아 좋아하지도 않을게 뻔한 피자를 열심히 먹고있는 이 남자와 도대체 뭘 할수 있을가? 그가 코파카바나에 들어와 그녀에게 음료를 제공했을 때, 마리아는 말할 생각이였다. 이제 끝났다고, 다른 아가씨를 찾아보라고,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그녀는 누군가에게 전날밤에 대해 말하고싶은 엄청난 욕구를 느꼈다. 그녀는 《특별손님》과 외출한적이 있는 동료 창녀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딴전을 피울뿐이였다. 령리하고 배우는것도 빠른 마리아가 조만간 코파카바나의 다른 녀자들에게 큰 위협이 될거라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그녀가 아는 남자들중에서 그녀를 리해할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랄프 하르트뿐이였다. 밀랑 말이 그 역시 《특별손님》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는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있다. 그것이 사태를 어렵게 만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편이 나았다. 《아픔, 고통, 그리고 많은 쾌락에 대해 아세요?》 그녀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랄프가 동작을 멈췄다. 《나는 모든걸 알고있소. 하지만 이제 그런것에는 흥미가 없어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흘러나왔다. 마리아는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녀만 빼고 모든 사람이 알고있었다는걸가? 맙소사, 무슨 놈의 세상이 이렇게 돌아간담? 《난 내안의 악마와 어둠을 만났소.》 랄프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끝까지 가보았고, 그 분야뿐아니라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모든걸 실험해봤소. 하지만 지난번 우리가 만났을 때, 난 고통이 아니라 욕망을 통해 내 한계들을 발견했어요. 난 내 령혼의 밑바닥으로 뛰여들었소. 그리고 내가 선한것들, 이승의 삶속에 있는 수많은 선한것들은 여전히 갈망하고있다는것을 깨달았소.》 그는 말하고싶었다. 《당신도 그중 하나요. 제발 부탁이니 그 길로 가지 말아요.》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택시를 불러 호수가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영원이라고 느껴질만큼 아주 오래전, 그들이 처음 만났던 날, 그들을 함께 그곳을 걸었다. 마리아는 이상하게 여겼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정신은 전날밤 있었던 일에 아직 취해있었지만 그녀의 본능이 자칫하면 많은걸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해주었다. 호수가에 다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녀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났다. 아직 여름이였지만 밤공기가 차가왔다. 《여긴 뭐하러 온거죠? 바람이 차서 감기 걸리겠어요.》 택시에서 내리면 그녀가 물었다. 《당신이 말한 고통과 쾌락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소. 신발을 벗어요.》 그녀는 언젠가 어떤 손님이 그녀에게 똑같은것을 요구한뒤 그녀의 맨발을 바라보는것을 요구한 뒤 그녀의 맨발을 바라보는것만으로도 흥분했던 일을 떠올혔다. 모험은 그녀를 잠시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것일가? 《감기 걸릴거예요.》 《시키는대로 해요.》 그가 고집을 부렸다. 《오래 있지만 않으면 감기는 걸리지 않을거요. 내가 당신을 믿듯 날 믿어봐요.》 마리아는 그가 자신을 돕고싶어한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이미 쓰디쓴 맛을 경험해본적이 있기때문에 그녀가 똑같은 위험에 처해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도움을 받고싶지 않았다. 그녀는 고통이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그 새로운 세계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브라질을 떠올렸고 거기서는 그런 세상을 함께 나눌 파트너를 찾는것이 불가능하리라는 사실을 직시했다. 그녀의 삶에서 브라질은 그 무엇보다 소중했으므로, 그녀의 스타킹이 금방 찢어져버렸다. 하지만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웃도리도 벗어요.》 그녀는 거절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발밤 이후로 그녀는 조든것에 《예》라고 말하는데 익숙해져있었다. 그녀는 웃도리를 벗었다. 그녀의 몸은 아직은 따뜻해서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한기에 움츠러들었다. 《걸읍시다. 걸으면서 이야기합시다.》 《여기선 불가능해요. 바닥이 온통 돌로 뒤덮여있잖아요.》 《그러기에 하는 말이요. 난 당신이 돌들을 느끼길 원해요. 난 그것들이 당신속에서 고통을 불러일으키기를, 당신에게 상처를 입히기를 원해요. 당신은 분명 쾌감을 가져다주는 고통을 느꼈을거요. 난 역시 그것을 느껴보았소. 나는 그것을 당신 령혼에서 뽑아버리고싶어요.》 마리아는 《그럴 필요 없어요. 난 그게 좋으니까》라고 말하고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추위와 발바닥을 찌르는 뾰족한 돌들때문에 발바닥이 타는것처럼 아팠다. 《당신이 이라 부르는것에 내가 푹 빠져있었을 때, 나는 전시회때문에 일본에 갈 기회가 있었소. 그때 나는 그것이 되돌아올수 없는 길이라고, 그 길로 점점 더 멀리 나아갈거라고 믿고있었어요. 내 삶에는 벌을 주고, 벌을 받고픈 욕망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소. 우린 인간들이요. 우린 죄책감을 가지고 태여나오. 행복이 가까이 오면 두려움에 빠져들고, 우리 자신이 늘 무기력하고, 부당한 취급을 받고, 불행하다고 느끼기때문에 타인을 벌하길 원하며 죽어가오. 지은 죄의 대가를 지불하고 죄지은 자들을 벌하는것, 아! 멋지지 않소? 그래요. 그건 정말 멋진 일이요.》 마리아는 걸었다. 아픔과 추위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랄프의 말에 집중할수가 없었다. 《당신 손목에 난 자국을 봤어요.》 수갑자국이였다. 그녀는 그 자국을 감추기 위해 팔찌를 여러개 차고 나왔지만 뭔가에 정통한 눈은 언제나 원하는것을 찾아내는 법이다. 《당신이 최근에 경험한 모든것이 그 걸음을 내디디도록 당신을 이끌었다면 나로서도 굳이 말릴수가 없소.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삶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걸 명심해요.》 《그 걸음이라뇨?》 《고통과 쾌락. 사디즘과 마조히즘. 당신 좋을대로 불러요. 그것이 당신의 길이라고 확신한다면, 나로서도 어쩔수 없는 노릇이요. 난 욕망을, 우리들의 만남을, 산티아고의 길에서의 산책을, 당신의 빛을 기억할거요. 당신이 준 볼펜을 특별한 곳에 고이 간직할거고, 벽난로에 불을 피울 때마다 당신을 생각할거요. 하지만 두번 다시 당신을 찾지 않을거요.》 마리아는 겁이 났다. 물러설 때였다. 그 사람보다 더 많은것을 아는척하지 말고 진실을 말해야 할 때였다.
23    《11분》(련재21) 댓글:  조회:1536  추천:0  2015-01-27
P.S. 내가 쓴것을 방금 다시 읽어보았다. 맙소사, 내가 얼마나 지적으로 변했는지! 마리아가 일기를 쓰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너그러운 엄마로 혹은 순진한 아가씨로 또 하루저녁을 준비하고있을 때 코파카바나의 문이 열리고 테렌스가 들어섰다. 밀랑은 바 뒤편에 서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브라질아가씨가 영국남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한것이다. 마리아는 그 순간 많은 의미를 담고있지만 그녀에겐 모호하기만했던 말, 《아픔, 고통, 그리고 많은 쾌락》을 떠올렸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론던에서 오는 길입니다. 당신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녀는 웃었다. 그러면서 그 웃음이 환영의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애썼다. 그는 이번에도 의례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그는 함께 한잔 하자거나 춤을 추자고 묻지 않은채 곧바로 그녀의 테블에 앉았다. 《스승이 제자로 하여금 뭔가를 발견하게 할 경우, 스승 역시 뭔가를 발견하게 되는 법이죠.》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요.》 손님과 함께 있을 때는 그를 존중하고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리아는 마음속으로 랄프 하르트를 떠올리며 신경이 곤두섰다. 《더 먼 곳까지 가보고싶지 않아요?》 천프랑. 감추어진 세계. 그녀를 쳐다보고있는 클럽주인. 원하면 언제든지 그만둘수 있을거라는 확신. 부라질로 돌아갈 날자. 찾아오지 않는 또 다른 사내. 《바쁘세요?》 마리아가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하며, 이 녀자가 뭘 원하는걸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난 내 잔, 내 춤, 내 직업에 대한 약간의 존중심을 원해요.》 그는 잠시 망설이였다. 지배하고 지배당하는것은 연극의 일부였다. 그는 음료를 주문하게 하고, 춤을 추고, 택시를 부르고, 택시가 도시를 가로지르는 동안 그녀에게 화대를 지불했다. 그들은 지난번에 호텔로 갔다. 그는 호텔로 들어서면서 처음 만난 날 저녁처럼 이딸리아인 문지기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그때 그 방으로 올라갔다. 테렌스가 성냥을 켰다. 마리아는 그제야 방안 여기저기에 수없이 많은 초들이 놓여있는것을 알았다. 그가 그 초들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해요? 내가 틀리지 않다면, 우리가 함께 보낸 밤이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묻고싶은거죠? 당신 역시 왜 그런지 알고싶은거죠?》 《브라질에는 한 성냥으로 초를 세개 이상 켜서는 안된다는 미신이 있어요. 당신은 그걸 지키지 않는군요.》 그는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당신도 나와 마찬가집니다. 당신은 천프랑때문이 아니라 죄책감과 지배당하고싶은 마음때문에, 콤플렉스와 자신감 결여때문에 날 따라온거죠. 뭐, 그건 좋은것도 나쁜것도 아니예요. 인간의 본성일뿐이니까.》 그는 텔레비죤 레모콘을 집어 여러차레 채널을 바꾸다 도피중인 난민들을 보여주는 뉴스채널에서 멈추었다. 《저 화면들 보이죠?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들을 만인앞에 털어놓는 TV프로그램을 본적 있어요? 신문 가판대앞에 서서 주요기사들을 읽어본적은? 사람들은 모두 아픔과 고통을 즐기고있어요. 홀린듯이 바라볼 때는 시디즘, 행복하다고 느끼기 위해 그 모든걸 알 필요는 없다고 결론짓는것은 마조히즘. 어쨌거나 사람들은 타인의 비극을 열심히 좇고, 때로는 그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하죠.》 그는 잔 두개에 샴페인을 채운 다음 텔레비죤을 끄고 마리아가 알려준 미신따위에는 아랑곳 않은채 다시 초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다시한번 말하죠. 그게 인간의 조건입니다. 락원에서 추방당한 이후로 우리는 고통스러워하거나 타인에게 고통을 주거나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죠. 우리로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예요.》 천둥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폭풍우가 다가오고있었다. 《하지만 난 못해요.》 마리아가 말했다. 《당신이 나의 주인이고 내가 당신의 노예라고 생각하는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워요. 고통을 겪기 위해 을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잖아도 삶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고통을 주고있으니까요.》 초불이 모두 켜졌다. 테렌스가 그중 하나를 집어 테블 한가운데에 놓고 샴페인과 캐비아를 더 내왔다. 마리아는 가방속에 든 천프랑을, 그녀를 매료시키는 동시에 두렵게 만드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움을 통제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하며 서둘러 잔을 비웠다. 오늘밤은 지난번 밤과는 전혀 다르리라는것, 이번에는 그를 위협할수 없으리라는것을 그녀는 잘 알고있었다. 《앉아.》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기도 하고 권위적이기도 했다. 마리아는 복종했다. 열기가 파도처럼 온몸을 휩쓸었다. 익숙한 명령이였기때문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연극이야. 난 연극속으로 들어가야 해.》 명령에 따르는것은 기분 좋은 일이였다.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복종만해야 한다. 그녀는 샴페인을 더 달라고 했다. 그가 보드카를 가져다줬다. 그게 더 빨리 취하게 만들고 더 쉽게 억압에서 해방시키고 캐비아와도 훨씬 잘 어울렸다. 그가 병을 땄다. 마리아가 거의 혼자 마시다싶이 했다. 천둥이 계속 으르렁대고있었다. 마치 하늘과 땅의 에너지가 격렬함을 드러내보이는것 같았다. 모든것이 그 순간의 완벽함에 일조하고있었다. 테렌스가 장롱에서 작은 손가방을 꺼내 침대우에 올려놓았다. 《움직이지 마.》 마리아는 복종했다. 그가 가방에서 크롬 도금한 수갑 하나를 꺼냈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 그는 그의 명령에 따랐다. 그녀 역시 그것을 원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다리사이를 쳐다보는 그를 보았다. 그는 그녀의 검은 팬티를, 스타킹을, 허벅지를 볼수 있었고, 그녀의 음모를, 성기를 상상할수 있었다. 《일어서!》 그녀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몸이 똑바로 서있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녀는 자기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많이 취했다는것을 깨달았다. 《날 쳐다보지 마. 고개 숙여. 네 주인에게 경의를 표해!》 고개를 숙이기전에 그녀는 아주 가느다란 채찍 하나가 가방에서 나와 마치 살아있는듯 허공을 가르는것을 흘끗 보았다. 《마셔. 고개 숙이고 마셔.》 그녀는 보드카를 한잔, 두잔, 석잔 들이켰다. 이젠 더이상 연극이 아니라 현실이였다. 그녀도 어쩔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나의 물건, 하나의 도구라고 느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 복종은 그녀에게 완전한 자유의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이제 더이상 가르치고 위로하고 고해성사를 들어주고 흥분시키는 선생님이 아니였다. 그녀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내앞에 있는, 브라질에서 온 어린 계집아이에 불과했다. 《옷을 벗어.》 욕망이 묻어나지 않는 건조한 명령이였다. 그런데도 지극히 에로틱했다. 마리아는 순종의 표시로 여전히 고개를 숙인채 원피스의 호크를 풀어 바닥으로 흘러내리게 했다. 《네 태도가 시원찮다는거 알아?》 또다시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 《벌을 받아야만해. 너같은 계집아이가 어떻게 감히 내 뜻을 거스를수가 있지? 넌 내앞에 무릎을 꿇어야 마땅해!》 그녀가 막 무릎을 꿇으려는데 채찍이 그것을 중단시켰다. 그가 처음으로 그녀의 살, 그녀의 엉뎅이를 때렸다. 피부가 타는듯이 화끈거렸지만 자국이 남지는 않을것 같았다. 《무릎을 꿇으라고 하지 않았어. 내가 그 말을 했나?》 《아뇨.》 채찍이 또다시 그녀의 엉뎅이를 후려쳤다. 《이라고 말해.》 또다시 채찍, 또다시 화끈거림. 순간, 그녀는 당장 모든것을 그만둘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돈때문이 아니라 테렌스가 처음에 했던 말, 즉 인간은 자신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에만 자기 자신을 알수 있다는 말때문에 끝까지 가보기로 결정할수도 있었다. 그건 새로운 길이였다. 모험이였다. 물론 원한다면 다음에 계속하기로 할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삶의 목표들을 추구하는 녀자, 몸을 리용해 돈을 버는 녀자이기를 멈추었다. 벽난로앞에 앉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 한 남자를 알게 된 녀자는 없었다. 그 순간, 그녀는 더이상 아무도 아니였다. 아무도 아니기때문에 그녀가 꿈꾸었던 모든것이였다 . 《옷을 전부 다 벗어. 그리고 내가 네 몸을 볼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봐.》 그녀는 고개를 숙인채 아무 말없이 그의 명령에 복종했다. 그녀를 관찰하는 사내는 옷을 입고있었고 더없이 랭랭했다. 그는 더이상 그녀가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던 그 남자가 아니였다. 그는 론돈에서 온 오디세우스, 하늘에서 내려온 테세우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를 접수한 랍치범,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심장을 가진 사내였다. 브래지어와 팬티를 벗은 그녀는 무방비인 동시에 든든한 보호를 받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채찍이 그녀의 몸을 피해 허공을 갈랐다. 《계속 고개 숙이고있어! 넌 모욕당하기 위해, 내가 원하는것에 따르기 위해 여기 있는거야. 알아들었어?》 《예, 주인님.》 그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수갑을 채웠다. 《톡톡히 혼을 내주마!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깨달을 때까지 말이야.》 그가 손바닥을 펴 그녀의 엉뎅이를 후려쳤다. 마리아가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는 정말로 아팠다. 《호오! 지금 항의하는건가? 좋아, 내가 본때를 보여주지.》 그녀가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그녀의 입에 가죽재갈이 물렸다. 말을 전혀 못하게 된건 아니였다. 《옐로》 《래드》는 말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이 남자로 하여금 자신을 원하는대로 하도록 허락하는것이 운명이라고 느꼈다. 그녀로서는 빠져나갈 방법이 전혀 없었다. 벌거벗은채 재갈과 수갑이 채워져있었고 혈관속에는 피대신 보드카가 흐르고있었으니까. 또다시 엉뎅이를 후려치는 손바닥.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어봐!》 마리아는 《멈춰》 《오른쪽으로 돌아》 《앉아》 《다리를 벌려》같은 명령에 복종하며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때때로, 손바닥이나 채찍이 아무 리유없이 엉뎅이를 후려쳤다. 그녀는 아픔을, 그리고 아픔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한 굴욕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상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전적으로 봉사하고, 자신의 자아, 자신의 욕망, 자신의 의지에 대한 의식을 놓아버리는, 거의 종교적이라고 할수 있는 느낌이였다. 그녀는 극도로 흥분해 완전히 젖어있었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도 리해하지 못했다. 《무릎 꿇어!》 복종과 굴욕의 표시로 계속 고개를 숙이고있었기때문에 마리아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정확히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서, 다른 행성에서 사내가 채찍을 휘두르고 엉뎅이를 때리느라 지쳐 헐떡거리는 사이, 정작 그녀 자신은 넘치는 에너지로 점점 더 강해지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이 상황을 즐기는 자신을 드러내는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신음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자기 성기를 애무해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사내는 그녀를 만족시켜주는 대신 그녀를 붙잡아 침대우에 팽개쳤다. 그가 란폭하게 그녀의 다리를 벌려 침대량쪽에 묶었다. 그녀는 그 폭력이 그녀에게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으리라는걸 알고있었다. 그녀의 두손은 등뒤로 수갑에 채워져있었고 량다리는 벌어진채 묶여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었다. 그는 언제쯤 그녀속으로 들어올가? 그녀가 충분히 준비되여있다는것을, 그를 모시고싶어한다는것을, 그녀가 그의 노예, 그의 애완동물, 그의 객체라는것을, 그가 원하는것이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여있다는것을 보지 못한단 말인가? 《느끼게 해줄가?》 그가 채찍 손잡이를 그녀의 성기에 대고 지그시 누르고는 우에서 아래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손잡이가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건드리는 순간, 그녀는 자제력을 잃고말았다. 그녀는 그들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자신이 몇대나 얻어맞았는지 알수 없었다. 갑자기 오르가즘이, 수개월동안 수십 수백명의 남자들도 그녀에게 가져다주지 못한 오르가즘이 찾아왔다. 빛의 폭발이였다. 마리아는 자기 령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블랙홀속으로 빨려들어가는것을 느꼈다. 고통과 두려움이 절대적인 쾌감과 뒤섞이면서 지금껏 알고있던 모든 한계너머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녀는 신음했고, 재갈에 억눌린 비명을 내질렀고, 침대우에서 요동쳤고, 수갑과 가죽끈에 스친 손목과 발목에 생채기가 생기는것을 느꼈다. 그녀는 맘대로 움직일수가 없었기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격렬하게 움직였고, 입에 재갈이 물려있었고, 아무도 그녀가 지르는 소리를 들을수 없었기때문에 어느때보다 크게 소리쳤다. 그것은 고통이자 쾌락이였다. 채찍 손잡이가 점점 더 세게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누르자, 그녀의 입, 그녀의 성기, 그녀의 눈, 그녀의 땀구멍, 그녀의 모든 피부가 희열을 부르짖었다. 그녀는 무아지경에서 서서히 깨여났다. 그녀의 두다리사이에 끼여있던 채찍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의 머리칼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수갑과 가죽끈을 풀어주었다. 그녀는 몽롱한 상태로 거기 축 처져있었다. 혼란스러웠다. 그 남자를 똑바로 쳐다볼수가 없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이 내지른 소리가, 자신이 맛본 오르가즘이 부끄러웠다. 그 역시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헐떡이고있었다. 하지만 쾌락은 오로지 그녀만을 위한것이였다. 그는 어떠한 황홀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벌거벗은 몸을 그 많은 명령, 그 많은 웨침, 그 많은 상황통제에 지쳐버린, 옷을 다 입고있는 그 사내에게 바싹 갖다붙였다. 그녀는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다만 자신이 안전하고 보호받고있다고 느꼈다 그는 그녀가 알지 못했던 그녀 자신의 일부분에 도달할수 있도록 그녀를 인도했다. 그는 그녀의 보호자이자 안내자였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렸다. 《내게 뭘 한거죠?》 그녀가 울먹이며 물었다. 《내가 해줬으면 하고 당신이 바란것.》 그녀는 자신이 그를 너무도 필요로 한다는것을 느끼며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라고 말하는것도 듣지 못했고, 나의 유일한 권력은 당신이 나에게 부여한것이였죠. 어떠한 강제도, 어떠한 협박도 없었어요. 오로지 당신의 의지가 있었을뿐이죠. 당신은 노예고 내가 주인이긴 했지만. 나의 유일한 권력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자유를 행해 나아가도록 인도하는것이였죠.》 수갑, 발목을 묶은 가죽끈, 재갈, 신체적인 고통보다 더 크고 강렬했던 굴욕감, 하지만 그가 옳았다. 그 느낌은 완전한 자유의 느낌이였다. 마리아는 넘치는 에너지와 활기를 주체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사내가 완전히 기진맥진한것을 보고 놀랐다. 《당신도 오르가즘을 느꼈나요?》 그녀가 물었다. 《아니, 주인은 노예를 다그치기 위해 있는거죠. 노예의 쾌락이 주인의 기쁨입니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것은 책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은, 실제의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성적환상의 세계였다. 그녀는 빛으로 가득했고 그는 불투명하고 비여버린것처럼 보였다. 《가고싶으면 언제든 가도 좋아요.》 테렌스가 말했다. 《가지 않겠어요. 난 리해하고싶어요.》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강렬한 라신으로 일어나 잔 두개에 와인을 따르고 담배 두개비에 불을 붙여 그에게 하나를 건네주었다. 역할이 뒤바뀌여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쾌락을 준 노예에게 보상을 해주는 녀주인이였다. 《조금 있다 옷 입고 갈게요. 하지만 그전에 얘기를 좀 나누고싶어요.》 《할 말은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원한게 바로 이것이였어요. 그리고 당신은 아주 훌륭했어요. 난 지금 몹시 피곤해요. 래일 일찍 론돈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마리아는 그가 정말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자는척하고있는건지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천천히 와인잔을 비웠다. 그리고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호수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그 모습 그대로의 그녀를, 벌거벗은, 에너지로 충만한, 절정에 도달한, 자신만만한 그녀를 바라보길 갈망하면서. 그녀는 옷을 입은 다음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아무 꺼리낌없이 자기 손으로 직접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이곳에 다시 오고싶을지 아직은 확신할수 없었다.
22    《11분》 (련재20) 댓글:  조회:1403  추천:0  2015-01-26
마리아가 친구로 여기는 사람은 필리핀아가씨 니아밖에 없었지만 평균 서른여덟명의 아가씨가 주기적으로 코파카바나에 드나들었다. 그들이 클럽을 거쳐가는 평균 기간은 최소 6개월, 최대 삼년이였다. 그들은 결혼신청을 받거나 타업소의 스카우트제의를 받아 나가기도 했고 더이상 손님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아가씨에겐 밀랑이 다른 곳을 한번 알아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각자의 손님을 존중하고, 정해진 아가씨를 향해 곧장 가는 남자들에게는 유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것이 관례였다. 이를 어기는것은 불공정할뿐만아니라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지난주, 콜롬비아아가씨가 가방에서 면도날을 꺼내 세르비아아가씨의 잔우에 올려놓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기 단골인 은행간부의 초대를 계속 받아들이면 얼굴을 그어버리겠다고 경고했다. 세르비아아가씨는 그건 그 손님 마음이라고, 그가 자신을 선택하면 자기도 어쩔수가 없다고 응수했다. 그날 저녁, 그 손님이 클럽에 들어와 콜롬비아아가씨에게 인사하고는 세르비아아가씨가 앉아있는 테블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은 함께 음료를 마시고 춤을 추었다. 세르비아아가씨가 《봤어? 그가 날 선택했어!》라고 말하듯 콜롬비아아가씨를 흘끗 쳐다보았다. 마리아는 너무 심한 도발이라고 생각했다. 그 눈길에는 많은것이 담겨있었다. 내가 너보다 더 예쁘기때문에. 지난주에 나와 함께 나갔을 때 좋았기때문에, 내가 더 젊기때문에 그가 날 선택한거야. 콜롬비아아가씨는 잠자코 있었다. 두시간후 세르비아아가씨가 돌아왔을 때 콜롬비아아가씨는 가방에서 면도날을 꺼내여 세르비아아가씨의 귀 근처를 그어버렸다. 깊지는 않게, 위험하지는 않을 정도로. 그날 밤을 영원히 기억하게 해줄 흉터를 남길 정도로만. 두 아가씨는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고 피가 번졌고 겁을 먹은 손님들은 하나둘 클럽을 떠났다. 경찰이 도착하자 세르비아아가씨는 선반에서 잔이 떨어져 깨지는 바람에 얼굴을 베였다고 진술했다. 코파카바나에는 선반이 없었다. 그것은 침묵의 법칙, 이딸리아 창녀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를 빌리자면 오메르타(마피아 계통의 조직에서 외부인에 대해 지키는 침묵의 계률)였다. 사랑에서 죽음이 이르기까지, 베른가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는 베른가 나름의 해결방식이 있었다. 베른가에는 베른가의 법이 있었다. 경찰도 오메르타를 알고있었다. 그들은 그 아가씨가 거짓 진술을 하고있다는것을 알았지만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녀를 체포해 재판을 하기로 한다면 재판기간동안 그녀를 먹여살려야 할테니 스위스 납세자들에게 부담만 주는 꼴이였다. 밀랑은 신속한 출동에 감사한다고 말하고는 이 모든것이 오해이거나 경쟁업소의 허위제보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철수하자 그는 두 아가씨를 불러 자신의 가게에 두번 다시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말했다. 요컨대 코파카바나는 가족적인 업소라는거였고(마리아로서는 그 말을 리해하기 힘들었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평판이 있다는거였다.(이 말은 그녀를 더욱 더 헷갈리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다툼이란 있을수 없었다. 첫째 규칙은 손님을 존중하는것이고 둘째 규칙은 《스위스은행》처럼 철저히 비밀을 지키는것이였다. 이곳의 고객들은 당좌계정뿐만아니라 생활의 건전성에 따라 선별되는, 은행 고객만큼이나 엄격하게 선별된 신뢰할수 있는 사람들이였다. 드물긴 하지만 화대지불을 거부하거나 아가씨들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위협을 하는 손님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코파카바나를 개장한 이래 이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밀랑은 받아도 되는 손님과 받지 말아야 할 손님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가 어떤 기준에 따라 손님들을 분류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아가씨는 아무도 없었다. 아가씨들은 때로는 그가 잘 차려입은 손님에게 다가가 오늘밤 클럽이 만원이고(텅 비여있는데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라고(달리 말하면 두번 다시 오지 말아달라고) 말하는것을 보기도 했고 운동복차림에 면도도 하지 않은 남자들을 반갑게 맞으며 샴페인을 권하는것을 보기도 했다. 코파카바나의 사장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수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좋은 거래가 성립되려면 쌍방이 만족해야 한다. 손님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거나 회사에서 요직을 맡고있었다. 코파카바나에서 일하는 녀자들중 몇몇 역시 결혼을 했고 자식이 있었으며 학부형모임에 드나들었지만 직업을 들킬 위험은 전혀 없었다. 학부형들중 누군가가 그녀를 알아본다 하더라도 침묵을 지키지 않을수 없을테니까. 오메르타는 그런 식으로 작동했다. 이곳에는 동료애는 있어도 우정은 없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사생활을 털어놓지 않았으니까. 동료들과 드물게 간간이 나눈 대화에서 마리아는 회한도, 죄책감도, 슬픔도 발견하지 못했다. 일종의 체념과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듯한, 자부심을 가지고 꿋꿋하게 세상과 대결을 벌이는듯한 묘한 도전의 눈길이 있을뿐이였다. 일주일만 버티면 아무리 신출내기라도 《프로》로 간주되여 결혼을 옹호하고(창녀는 가정의 안정에 위협이 될수 없었다.)일과 시간외의 약속은 잡지 말고 손님이 털어놓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되 자신의 의견을 함부로 피력하지는 말고 손님이 오르가즘을 느낄 때 함께 신음소리를 내고 길에서 경찰을 만나면 인사를 하고 취업카드 유효기간을 넘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정해진 날자에 건강검진을 받으며 마지막으로 직업의 륜리적 법적 측면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들은 창녀라는 직업에 종사하는것이였다. 사람들은 클럽이 손님들로 북적이지 않을 때에는 늘 마리아의 손에 책이 들려있는것을 보았다. 곧 그녀는 그 그룹내에서 《지식인》으로 통했다. 처음에 다른 아가씨들은 그녀가 어떤 련애소설을 읽고있는지 궁금해 흘끗거리다가 책 주제가 경제학, 심리학, 그리고 최근에는 농장경영 등 심각하고 재미없는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녀가 차분히 공부를 계속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마리아에겐 단골이 많았다. 손님이 별로 없는 날에도 마리아는 매일저녁 일을 나갔기때문에 밀랑의 신임과 동료들의 시샘을 받았다. 동료들은 자기들끼리 그 브라질아가씨는 야심이 많고 거만하며 오로지 돈버는 일만 생각한다고 수군거렸다. 너희들도 똑같이 돈때문에 여기서 일하는게 아니냐고 물어보고싶기도 했지만 돈버는 일만 생각한다는 지적이 아주 틀린건 아니여서 그만두었다. 어쨌거나 험담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성공한 사람이 치러야 하는 대가였다. 한쪽귀로 흘려버리고 정해진 날자에 브라질로 돌아가는것과 농장을 사는 일 두가지 목표에 몰두하는편이 나았다. 얼마전부터 그녀의 머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랄프 하르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처음으로 그녀는 부재하는 사랑을 즐길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모든것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것을 조금은 후회하고있었다. 하지만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잃을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녀는 그가 《특별손님》이라고(혹은 《특별손님》이였다고)밀랑이 알려줬을 때 자기 가슴이 얼마나 빠르게 뛰였는지를 떠올렸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걸가? 그녀는 배반당한 녀자처럼 뜨거운 질투심을 느꼈다. 삶을 통해 누군가를 소유할수 있다고 믿는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그럴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것이라는걸 마리아는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질투는 어쩔수 없는것이였다. 질투에 대한 거창한 리론을 갖고있고 그것이 연약함의 증거임을 아무리 잘 알고있는 사람도 그러한 감정을 결코 억누르지 못할터였다.  가장 강한 사랑은 자신의 연약함을 내보일수 있는 사랑이다. 아무튼 내 사랑이 진실이라면(기분전환 혹은 나 자신을 속이고 이 도시에 온 이래로 한없이 늘어나고있는 자유시간을 보내기 위해 택한 수단만이 아니라), 자유가 질투와 그것이 촉발시키는 고통을 극복할것이다. 고통 역시 자연스런 과정의 일부이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안다. 목표달성을 원한다면 매일 일정량의 고통이나 불편을 감수해야만한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그 불편때문에 의지가 약해지지만, 시간이 가면 그 불편 역시 궁극의 충족을 얻기 위한 하나의 단계라는것을 리해하게 되고 고통 없이는 아무리 련습해도 바라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고통에 집착하는것, 그 고통에 특정한 사람의 이름을 부여하고 늘 념두에 두는것은 위험하다. 다행히도 마리아는 그런것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끔 랄프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을가. 그는 왜 나를 만나러 오지 않을가. 기차역과 억제된 욕망이야기를 지어낸 나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것은 아닐가. 사랑한다고 털어놓았다는 리유로 앞으로 영원히 나를 피할 작정은 아닐가. 하고 묻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토록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벽난로, 와인, 그와 함께 의논해보고싶은 생각, 또는 그가 언제쯤 그녀를 만나러 올지 알고싶은 달콤한 욕망 등 랄프 하르트와 관련된 긍정적인 추억이 떠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웃으면서 살아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드렸다. 거꾸로 자신의 마음이 그가 보고싶다고, 혹은 함께 있을 때 왜 그에게 그런 바보같은 말을 했을가, 하고 불평을 늘여놓기 시작하면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아! 그래. 네가 생각하고싶은게 고작 그거야? 아주 좋아, 넌 너 좋을대로 해. 난 더 중요한 일에 전념할테니까.》 그러고는 계속해서 책을 읽거나 자신을 둘러싸고있는 색갈, 사람, 특히 소리, 자신의 발소리, 자동차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주위에서 들려오는 대화의 파편들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면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졌다. 오분후 부정적인 생각이 다시 나타나면 마리아는 받아들여진 동시에 정중하게 거부되여야 하는 그 기억들이 상당히 오래동안 멀어질 때까지 그 과정을 반복했다. 《부정적인 생각들》중 하나는 두번 다시 랄프를 보지 못할거라는 가정이였다. 약간의 연습과 많은 인내로 마리아는 그것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놓는데 성공했다. 그녀가 제네바를 떠나게 되면 그곳은 그녀에게 하나의 얼굴, 촌스럽게 자른 긴 머리칼과 아이처럼 천진란만한 웃음과 나지막한 목소리를 가진 한 사내의 얼굴로 남을것이다. 많은 세월이 흐른후 누군가 그녀에게 젊은 시절에 가본 그곳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아주 아름답고 사랑할수 있고 사랑받을수 있는 곳》이라고 대답할수 있는것이다. 코파카바나에 손님이 없던 어느날, 마리아의 일기.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교제하다보니 그들이 섹스를 다른 마약들과 똑같은 용도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잊고, 긴장을 풀기 위해 사용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른 마약들과 마찬가지로 섹스 역시 유해하고 파괴적이다. 누군가가 섹스든 마약이든 뭔가에 취하고싶어한다면, 그 행위의 결과는 그의 선택에 따라 더 행복할수도 덜 행복할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는것이 문제일 경우에는 《제법 좋은》과 《최고》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내 손님들이 생각하는것과는 달리 섹스는 아무때나 이루어질수 있는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내적인 시계가 있어서 두사람이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각자의 시계바늘이 동시에 같은 시각을 가리켜야 한다.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성적행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쾌감을 느낄수 있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있는 두사람은 놀이와 《연극》을 통해 그들의 시계바늘을 맞추어야 하고 사랑을 나누는것이 단순한 만남 이상이라는것을, 생식기의 《포옹》이라는것을 리해해야 한다. 모든것이 중요하다. 치렬하게 살아가는 존재는 매 순간 희열을 느낀다. 그에게는 섹스가 전혀 아쉽지 않다. 그가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것은 뭔가가 넘쳐나기때문이다. 그의 잔이 다 채워져 넘쳐흐르기때문이다. 불가피하기때문이다. 삶의 부름에 응해야 하기때문이다. 그 순간에만, 오로지 그 순간에만 통제력을 상실할수 있기때문이다.
21    《11분》 (련재19) 댓글:  조회:1555  추천:0  2015-01-25
랄프 하르트는 고민을 멈추고 그들이 방금 창안해낸 놀이에 다시 집중했다. 앞에 앉아있는 녀자가 옳았다. 와인, 불꽃, 담배, 함께 있는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다른 종류의 도취, 다른 불꽃이 필요했다. 어깨끈이 달린 그녀의 원피스우로 한쪽 젖가슴이 드러나있었다. 가무잡잡한 그녀의 속살이 보였다. 그는 그녀를 원했다. 아주 많이.   마리아는 랄프의 눈빛이 변하는것을 보았다. 욕망의 대상이 되고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그녀를 흥분시켰다. 그것은 《너와 사랑을 나구싶어, 너와 결혼하고싶어, 아이를 가지고싶어, 결혼을 약속해줘》같은 관습적인 애정표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니, 욕망은 자유로운 느낌, 공간속의 떨림, 삶을 풍부하게 하는 의지였다. 그리고 그 의지는 산들을 뒤집어놓고,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그리고 그녀의 그곳을 축축이 젖어들게 만들었다. 욕망은 고향을 떠나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프랑스어를 배우고, 편견을 극복하고, 농장을 가지기를 꿈꾸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채 사랑하고, 한 남자의 눈길을 통해 스스로 녀자라고 느끼는 이 모든것의 근원이였다. 그녀는 미리 계산이라도 한듯 천천히 다른쪽 어깨끈마저 내렸다. 원피스가 몸을 따라 흘러내렸다. 이어 그녀는 브래지어 호크를 풀었다. 그녀는 상체를 드러낸채 그가 그녀를 덮쳐 범하고는 사랑을 맹세할지, 아니면 욕망 자체를 통해 섹스의 진정한 쾌락을 느낄 정도로 감수성이 뛰여날지를 생각하며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그들 주위에는 이제 아무 소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벽난로, 그림, 책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욕망의 모호한 대상만이 존재하는, 더이상 다른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몰아지경의 상태로 대체되였다. 랄프는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에 그녀는 그의 눈에서 어떤 망설임을 읽었다. 하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상상속에서 혀로 그녀를 애무하고있었다. 그들은 사랑을 나누고있었다. 땀을 흘리고, 서로 껴안고, 부드러움과 란폭함을 뒤섞고, 함께 소리치고 신음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흥분시켰다. 그녀 역시 자신이 원하는것을 마음대로 상상할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부드럽게 애무해달라고 애원했고, 그의 눈앞에 다리를 벌리고 자위를 했고 랑만적이거나 천박한 말들을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여댔고 여러차례 오르가즘을 느꼈고 소리를 질러 이웃들을 온 세상을 깨웠다. 그녀에게 쾌락과 기쁨을 주는, 함께 있으면 그녀가 그녀 자신이 될수 있는 자신의 성적인 문제들을 털어놓을수 있고, 나머지 밤을, 나머지 주일을, 나머지 삶을 함께 보내고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남자가 거기 있었다. 그들의 이마우로 땀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벽난로를 피웠기때문이라고 그들은 마음으로 서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나 그녀나 한계에 도달해있었다. 갖고있는 상상력을 모두 동원했고, 영원히 이어질것 같은 행복한 순간들을 함께 보냈다. 한발자국 더 나아가면 현실의 그 마술을 파괴하고말것이였다. 그들은 거기서 멈추어야만했다. 아주 천천히, 끝을 언제나 시작보다 훨씬 더 힘들기때문에. 그녀는 브래지어를 다시 채워 가슴을 가렸다. 우주가 자기 자리로 되돌아왔고 주변의 사물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허리에 걸려있던 원피스를 끌어올려 입고는 미소지었고,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 뺨에 갖다댔다. 그 손을 언제까지 그리고 얼마나 세게 붙잡고있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채. 그녀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모든것이 엉망이 되여버릴 위험이 있었다. 그가 겁을 집어먹을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그 역시 사랑한다고 말할수도 있었다. 마리아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사랑의 자유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데에 있으니까. 《느낄수 있는 사람은 상대방을 건드리지 않고도 쾌락을 누릴수 있다는것을 알아요. 말, 눈길, 이 모든것이 춤의 비밀을 담고있죠. 하지만 기차가 도착했어요. 이제 각자 자신의 길을 가야 해요. 이 려행을 당신과 계속하고싶은데…어디까지 가능할가요?》 《제네바로 돌아갈 때까지.》 랄프가 대답했다. 《늘 꿈꾸었던 사람을 찾아 자세히 관찰해본 사람은 섹스 에너지가 성관계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알아요. 가장 큰 쾌락은 섹스가 아니라 섹스에 담겨있는 정열이죠. 정열이 월등할 때, 섹스를 통해 그 춤을 완수하게 되죠. 하지만 섹스는 결코 본질적인게 아니예요.》 《당신은 사랑에 대해 마치 프로처럼 말하는군.》 마리아는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는것이 그녀의 방어수단, 아무것에도 발을 들여놓지 않고 자신을 해방시킬수 있는 방법이였으니까. 《사랑에 빠진 사람은 늘 섹스를 해요. 실제적인 성관계를 가지지 않을 때조차도 그렇죠. 육체들이 만나게 되면 단지 잔이 넘치는것뿐이예요. 그들은 몇시간이고 며칠이고 함께 할수 있어요. 그들은 어느날 춤을 추기 시작해 다음날 끝낼수도 있고 아니면 쾌락이 너무나 커 끝내지 않을수도 있어요. 십여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십일분?》 《사랑해요.》 《나도 사랑하오.》 《미안해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나 역시 그렇소.》 그녀는 일어나 그의 뺨에 키스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튿날 아침, 마리아의 일기.   어제밤 랄프 하르트가 날 바라보았을 때, 그는 도둑처럼 문 하나를 열고 내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떠나면서 그는 네게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오히려 은은한 장미향을 남겨놓고 갔다. 그는 도둑이 아니라 날 방문한 피앙세였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산다. 욕망이 그의 보물이다. 그것이 상대방을 멀어지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가오게 만든다. 욕망은 내 령혼이 선택한, 너무나 강렬해서 주변사람들에게까지 전염될수 있는 마음의 동요이다. 나는 매일 내가 더불어 살고자 하는 진실을 택한다. 나는 실용적이고 효률적이고 전문적이려 애쓴다. 하지만 늘 욕망을 동무삼을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의무감때문도, 내 생활의 외로움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좋기때문이다. 그렇다 욕망은 아주 좋다.
20    《11분》 (련재18) 댓글:  조회:960  추천:0  2015-01-24
또다시 거리, 또다시 추위, 또다시 무작정 걷고싶은 욕망. 그 남자의 말은 틀렸다. 신을 만나기 위해 자기 안의 악마들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어느 술집에서 나오는 대학생 무리와 마주쳤다. 술을 마신 그들은 쾌활하고 아름답고 건강했다. 저들은 이제 곧 공부를 마치고 사람들이 《진정한 삶》이라 부르는것을 시작할것이다. 일, 결혼, 자식, 진부한 일상, 회한, 로쇠,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 욕구불만, 질병, 불구, 의존, 외로움, 죽음.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그녀 역시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 평온함을 찾고있었다. 그녀가 전에는 상상조차 못해본 업종에 종사하며 스위스에서 보낸 시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직면하는 힘든 시기에 불과했다. 그 기간동안 그녀는 코파카바나를 들락거렸고 돈을 벌기 위해 남자들과 호텔에 들었고 손님의 취향에 따라 순진한 아가씨, 팜므파탈, 너그러운 어머니가 되였다. 그것은 최대한의 직업정신과(팁때문에) 최소한의 집착(익숙해질가봐 두려워)을 가지고 투신한 일에 불과했다. 그녀는 주변세계를 통제하며 아홉달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그녀는 자신이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할수도, 아무 리유없이 고통스러워할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삶이 그녀에게 삶의 미스터리중 일부, 삶의 빛과 어둠을 드러내기 위해 비속하고도 이상한 방법을 선택한것 같았다. 테렌스를 만날 날 저녁, 마리아의 일기. 그는 사드를 인용했다. 사드의 작품을 단 한줄도 읽은적이 없지만, 사디즘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 인간은 자신의 한계에 도달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알수 있다는 말은 들은적이 있다. 그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틀린 말이기도 하다. 반드시 자신에 대해 모든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인간존재는 앎만을 추구하기 위해 태여난것이 아니다. 땅을 경작하고, 비를 기다리고, 밀을 심고, 곡식을 거둬들이고, 밀가루를 반죽해 빵을 만들기 위해서도 태여난다. 나는 두 녀자다. 한 녀자는 기쁨, 정열, 삶이 그녀에게 제공해줄수 있는 모험들을 맛보길 갈망하고, 다른 한 녀자는 진부한 일상, 가족적인 삶, 계획하고 완수할수 있는 자잘한 행위들의 노예가 되기를 갈망한다. 나는 한몸속에 살면서 서로 싸우는 주부이자 창녀다. 한 녀자에게 자기 자신과의 만남은 심각한 위험을 안고있는 하나의 게임이다. 신성한 춤이다. 우리가 만날 때 우리는 두개의 신적에네지, 서로 충돌하는 두개의 우주다. 그 만남에 서로에 대한 경의가 부족하면 한 우주는 다른 우주를 파괴한다. 다시 랄프 하르트의 거실. 벽난로에 피여오르는 불꽃, 와인, 바닥에 앉은 두사람. 그녀가 전날밤 영국 음반회사 제작자와 경험한 모든것은 이제 꿈에 불과했다. 아니면 악몽이거나 그것은 그녀의 정신상태에 좌우됐다. 그 순간, 그녀는 삶의 리유를 또는 자신을 바치고 그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완전한 몰아의 헌신을 찾고있었다. 마리아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많은 성장을 했다. 결국 그녀는 실제적인 사랑은 그녀가 상상했던것, 다시말해 사랑의 에너지가 일으키는 일련의 사건들(사랑의 시작, 약혼, 결혼, 출산, 기다림, 함께 늙어가기, 기다림의 끝. 그리고 남편의 은퇴, 질병, 함께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느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랄프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감정들이 아직 육체적인 형태조차 갖추지 못했기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것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고 그에게 자신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삶에 매혹되여있는듯 매우 편해보였다. 그가 웃으며 최근에 대형미술관 관장을 만나러 뮌헨에 갔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럼 날 탐해요. 그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고있는거예요. 당신은 지금 내게서 일메터도 채 안떨어져있어요. 당신은 나이트클럽에서 내 봉사료를 지불했어요. 날 만질 권리가 있어요. 하지만 감히 그렇게 하질 못하고있어요. 날 보세요. 날 봐요. 당신이 날 쳐다보는것을 내가 원치 않을거라고 생각하면서, 내 옷속에 감춰져있는것을 상상해보세요.》 그녀는 이번에도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있었다. 그녀는 코파카바나의 아가씨들이 등이나 가슴이 깊게 파인 야한 색갈의 옷을 입는것을 리해할수 없었다. 그녀는 사무실, 기차, 또는 안해의 친구 집에서 흔히 만날수 있는 여느 녀자들처럼 입어야 남자들이 더 흥분한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랄프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리아는 그가 눈으로 그녀의 옷을 벗기고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그렇게 실제적접촉이 전혀 없는, 식당이나 극장앞에 늘어선 줄속에서 만날수 있는 그런 욕망의 눈길을 좋아했다. 《우린 어느 역에 와있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난 당신옆에 서서 기차를 기다리고있어요. 당신과 나는 서로 모르는 사이예요.그런데 내 눈길이 우연히 당신 눈길과 마주쳐요. 나는 눈길을 피하지 않아요. 당신은 내가 말하려 애쓰는것을 알아차리지 못해요. 당신은 존재들의 을 알아볼수 있을만큼 지적이긴 하지만 그 빛이 밝히고있는것을 볼만큼 감수성이 예민하지는 않기때문이죠.》 그녀는 전날밤의 《연극》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연극을 이끌던 그 영국인의 얼굴을 가능한 한 빨리 기억에서 지워버리고싶었을테지만 그는 그녀의 상상력을 이끌면서 거기 있었다. 《나는 당신 눈을 똑바로 쳐다봐요. 하고 생각하고있을지도 모르죠. 아니면 당신을 멍하니 바라보며 딴 생각을 하고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혹시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서둘러 외면하기가 두렵거나 아무튼 나는 우리가 아는 사이인지 혹은 사람을 잘못 본것인지 결론을 내리기전에 당신에게 날 알아볼 몇초의 짬을 줘요. 하지만 실은 지극히 단순히 남자를 유혹하고싶은것일수도 있어요. 나는 날 괴롭히는 남자를 피해 도피하는 중일수도 있고 날 배신한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바람 피울 남자를 찾아 역에 나온것일수도 있어요. 그저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신과 하루밤 풋사랑을 즐기려는것일수도 있고, 손님을 찾아나선 창녀일수도 있어요.》 침묵, 마리아는 갑자기 딴 생각에 빠졌다. 그녀는 그 호텔로 돌아가 있었다. 《옐로》 《약간의 고통과 많은 쾌락》, 그 모든것이 그녀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그녀가 딴 생각을 하고있다는걸 알아차린 랄프가 그녀를 다시 역으로 데려가려고 애썼다. 《그 만남에서 당신도 나에 대한 욕망을 느끼오?》 《모르겠어요. 우린 이야길 나누지 않아요.》 잠시 산만한 순간, 어쨌거나 이라는 생각이 그녀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진정한 그녀 자신이 솟아나 그녀에게 빌붙어 지내는 가짜들을 내쫓아버렸다. 《하지만 중요한건 내가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예요. 당신은 어쩔줄 모르고있고. 당신은 나에게 말을 걸어야 할가요? 당신은 차갑게 거절당할가요? 내가 경찰을 부를가요? 아니면 같이 커피나 한잔 마시자고 할가요?》 《나는 뮌헨에서 돌아오는 길이요.》 랄프 하르트가 마치 진짜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섹스와 관련된 유명인사들의 얼굴을 화폭에 담을 작정이요. 사람들이 진정한 만남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쓰는 많은 가면들을.》 그는 《연극》을 알고있었다. 밀랑 말에 따르면, 그 역시 《특별손님》이였다. 그녀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미술관장이 라고 묻더군. 그래서 나는 대답했소.  라고. 그랬더니 그가 말했소. 나는 대답했소. 
19    《11분》 (련재17) 댓글:  조회:928  추천:0  2015-01-24
삶은 때때로 아주 새로운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채 며칠, 몇주, 몇달, 몇년이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그러다 한번 문이 열리면, 랄프 하르트를 만난 마리아처럼, 그렇게 열린 공간으로 보물 터지듯 많은것들이 쏟아져들어온다. 한순간 텅 비여있다가, 다음 순간 받아들일수 있는 한계 이상의것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일기를 쓰고 두시간후, 마리아가 코파카바나에 도착했을 때, 밀랑이 다가와 물었다. 《그 화가랑 잔거야?》 랄프는 클럽내에서도 꽤 유명한것이 분명했다. 그가 액수도 묻지 않고 손님 세사람분의 료금을 지불했을 때 그녀는 그 사실을 눈치챘다. 마리아는 어느 정도 미스터리를 남기기 위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밀랑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생활을 그녀보다 훨씬 더 잘 알고있었으니까. 《이젠 너도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가 된것 같구나. 널 소개시켜달라고 계속 졸라대는 이 하나 있어. 난 네가 아직 경험이 없어서 안된다고 대답했고, 그 손님은 날 믿기때문에 순순히 포기했지, 그런데 이제는 한번 시도해봐도 될것 같은데.》 《특별손님?》 《근데 그게 그 화가랑 무슨 상관이 있죠?》 《그 사람 역시 이거든.》 그렇다면, 그녀가 랄프와 했던 모든것을 동료들중 누군가도 했다는것일가? 마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침묵을 지켰다. 그녀는 아름다운 일주일을 보냈고 자신이 일기에 쓴것들을 잊는것은 불가능했다. 《그 사람과 한것과 똑같은것을 해야 하나요?》 《네가 그 사람과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은 손님이 한잔 하자고 해도 선약이 있다는 핑게를 대고 퇴짜를 놔. 특별손님은 더 두둑하게 지불할테니까 후회하진 않을거야.》 저녁나절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시작되였다. 태국아가씨들은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고있었고 콜롬비아 아가씨들은 로골적으로 따분한 표정을 짓고있었고 마리아를 포함하여 세명의 부라질아가씨들은 새로운것도 흥미로울것도 전혀 없다는듯 딴데 정신이 팔린척 하고있었다. 오스트리아아가씨 하나, 독일아가씨 둘, 그리고 나머지는 밝은 색 눈에 하나같이 키가 크고 예뻐서 다른 아가씨들보다 훨씬 빨리 결혼해서 떠나는 동유럽아가씨들이였다. 남자들이 속속 들어섰다. 로씨야인, 스위스인, 독일인, 그들은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에서 가장 비싼 창녀를 살 능력이 있는, 과로에 시달리는 회사간부들이였다. 테블로 남자가 다가올 때마다 마리아는 밀랑에게 눈길을 보냈고 밀랑은 그녀에게 매번 거절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오늘저녁에는 다리를 벌리고 역겨운 냄새를 참아내고 추운 욕실에서 샤워를 하지 않아도 될테니까. 그녀가 해야 할 일이라곤 섹스에 지친 남자에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것뿐이였으니까. 곰곰 생각해보면 선물이야기를 발명해내는 창조성은 아무 녀자나 가질수 있는게 아니였다. 동시에 이런 의문도 떠올랐다. 《남자들은 왜 모든것을 실험해본후에 처음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걸가?》 하지만 그건 그녀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였다. 료금만 후하게 지불한다면 그녀는 그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여있었다. 랄프 하르트보다 더 젊어보이는 사내가 들어왔다. 잘생긴 외모에 검은 머리칼, 완벽한 치렬(齒列), 새하얀 셔츠깃을 세운, 넥타이를 매지 않는 차이나식 정장. 그가 바를 향해 걸어갔다. 밀랑과 그가 고개를 돌려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손님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같이 한잔 하시겠습니까?》 밀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는 사내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그녀가 과일 각테일쥬스를 주문하고 춤추자는 제안을 기다리고있는데 사내가 자신을 소개했다. 《난 테렌스라고 합니다. 영국에 있는 음반회사에서 일하고있죠. 이곳 사람들은 전적으로 신뢰할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으니 이번 만남은 우리끼리의 일로 남을거라고 믿습니다.》 마리아가 브라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그가 말을 끊었다. 《밀랑 말로는 당신이 제가 뭘 원하는지 아신다고 하더군요.》 《당신이 뭘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아요.》 의례적인 절차는 생략되였다. 그는 곧장 계산을 하고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택시에 오르자마자 그가 천프랑을 내밀었다. 순간, 그녀는 유명한 그림들로 장식된 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던 아랍인을 떠올렸다. 천프랑을 받는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그러나 만족스럽기는커녕 오히려 신경이 곤두섰다. 택시가 도시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들가운데 하나 앞에서 멈춰섰다. 자주 드나드는 곳인듯, 테렌스는 문지기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강이 내려다보이는 스위트룸으로 곧장 올라갔다. 그가 아주 비싸보이는 와인병을 따고는 그녀에게 잔을 내밀었다. 마리아는 잔을 기울이며 사내를 관찰했다. 돈많고 잘 생긴 저런 사내가 도대체 창녀에게서 뭘 기대하는걸가? 그가 거의 입을 열지 않았기때문에, 그녀 역시 《특별손님》이란 어떤것에 만족감을 느낄가.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있었다. 먼저 나서서는 안될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 뭔가 시작되면 그가 원하는대로 적극적으로 봉사할 생각이였다. 매일 저녁 천프랑을 벌수 있는것은 아니니까. 《시간은 많아요. 우리가 원하는만큼. 원한다면 여기서 자고 가도 좋아요.》 테렌스가 말했다. 그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겁을 먹은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는 다른 손님들과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완벽한 도시의,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완벽한 방에서, 완벽한 음악을, 완벽한 크기로 틀었다. 그의 정장은 흠잡을데 없이 훌륭했고,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가방은 아주 작았다. 려행하는데 많은것은 필요없다는듯. 아니면 그날 단 하루밤을 묵기 위해 제네바에 왔다는듯. 《잠은 집에 가서 자겠어요.》 마리아가 대답했다. 순간 그녀와 마주 보고있던 사내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다. 정중하던 눈길에서 얼음처럼 차거운 광채가 번뜩였다. 《거기 앉아.》 테블옆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그건 명령이였다! 진짜 명령. 마리아는 복종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것이 그녀를 흥분시켰다. 《똑바로 앉아. 자,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꼿꼿하게 허리를 펴. 안그러면 벌을 내리겠어.》 벌! 특별손님! 찰나, 그녀는 모든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손가방에서 천프랑을 꺼내 테블우에 올려놓았다. 《당신이 뭘 원하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얼음처럼 차거운 푸른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전 아직 준비가 안됐어요.》 사내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걸 알았다. 《와인을 마저 마셔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겠어요. 조금 더 머물러 있어도 좋고, 원한다면 지금 당장 가도 좋아요.》 그녀는 일단 마음이 놓였다. 《코파카바나는 제 일터예요. 주인은 절 신뢰하고 보호해줘요. 그에게는 아무 말 말아주세요.》 그녀는 사정하는것과는 거리가 먼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였다.  테렌스는 다시 자기 자신으로, 부드럽지도 차갑지도 않은, 다른 손님들과는 달리 자신이 원하는것을 정확히 알고있는듯한 남자로 돌아와있었다. 그는 마치 최면상태에서, 시작조차 하지 않은 연극에서 막 벗어난것처럼 보였다.  문득 《특별손님》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훌쩍 가버리는게 현명한 행동일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게 정확히 뭐죠?》 《당신도 알텐데요. 난 아픔을, 고통을 원해요. 그리고 많은 쾌락을.》 《아픔과 고통은 쾌락과는 잘 어울리질 않잖아.》 하지만 그녀는 그 반대도 가능하리라는걸 한번 믿어보고싶었다. 그녀 삶의 많은 부정적인 경험들을 긍정적인것으로 바꿔놓고싶었기때문이였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창가로 데리고 갔다. 호수 건너편에 있는 성당의 첨답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리아는 랄프 하르트와 함께 산티아고의 길을 걸을 때 그앞을 지난적이 있다는것을 떠올렸다. 《저 강, 저 호수, 저 집들, 저 성당이 보이세요? 오백년전에도 저 모든것이 지금과 거의 흡사했어요. 도시가 텅 비여있었다는것만 빼고말이죠. 정체불명의 역병이 전 유럽을 휩쓸었죠.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죽어가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어요. 사람들은 그 역병을 흑사병이라고 불렀죠. 그건 신이 죄악에 물든 인간들을 벌하기 위해 퍼뜨린 대재앙이였어요. 일군의 사람들이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들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것, 즉 신체적인 아픔을 자신들에게 가했어요. 채찍이나 사슬로 자신을 후려치며 저 다리, 저 길들을 밤낮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한거예요.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고통스러워하고 그 고통으로 신을 찬양했어요. 그런데 오래지 않아 그들은 자신들이 빵을 굽고, 땅을 경작하고, 가축들을 먹일 때보다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신체적아픔은 이제 고통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사해주는 쾌락이였죠. 아픔이 기쁨이 되고, 삶의 의미 쾌락이 되였던겁니다.》 그의 눈에서 몇분전에 보였던 그 차가운 광채가 다시 번득였다. 그는 마리아가 테블우에 올려놓은 돈을 집어 거기서 150프랑을 따로 떼여 그녀의 가방에 슬며시 넣어주었다. 《클럽주인에 대해서는 걱정 말아요. 이건 그 사람 수수료입니다. 약속컨대,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이제 가도 좋아요.》 그녀가 지페를 모두 다시 집었다. 《싫어요!》 그건 와인, 식당에서 만난 아랍인, 서글픈 미소를 지은 녀자, 이 저주받은 곳에 결코 되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 한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랑에 대한 두려움, 직업적으로 좋은 기회가 너무나 많다고 잔뜩 떠벌려 엄마에게 보낸 편지, 연필을 빌려달라고 했던 어린 시절의 소년, 그녀 자신과 벌린 투쟁, 죄책감, 호기심, 돈, 자신의 한계에 대한 탐색, 놓쳐버린 운과 기회들때문이였다. 또다른 마리아가 거기 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자신을 선물로 제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희생물로 바쳤다. 《이젠 두렵지 않아요. 더 멀리 가보고싶어요. 필요하다면 날 벌해주세요. 난 반역자예요. 난 거짓말을 했고 배신을 했고 날 보호하고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나쁘게 행동했어요.》 그녀는 게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녀는 말해야 할것을 말하고있었다. 《무릎 꿇어!》 테렌스가 낮고 음울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마리아는 복종했다. 그녀는 그런 방식으로 취급받은적이 한번도 없었다. 잘하고있는건지 아닌지는 알수 없었지만 더 멀리 가보고싶었다. 그녀가 이제까지 해온 일을 볼 때, 그녀는 벌을 받아 마땅했다. 그녀는 새로운 인물,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녀자의 피부속으로 들어갔다. 《넌 톡톡히 벌을 받을거다. 넌 아무 쓸모도 없고 규칙도 모르고, 섹스, 삶, 사랑에 대해 아는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하는 동안 테렌스는 두명의 남자로 분렬되였다. 한 남자는 그녀에게 게임의 규칙을 차분하게 설명했고 또 한 남자는 그녀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녀자로 느끼도록 만들고있었다. 《내가 왜 네 청을 받아들인줄 알아? 누군가를 미지의 세계에 입문시키는것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기때문이야. 그건 그 사람의 순결을, 육체가 아니라 령혼의 순결을 빼앗는거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마리아는 그 말을 리해했다. 《오늘은 질문을 해도 되지만, 다음번부터는 일단 우리 연극의 막이 열리고 극이 시작되면 절대 그걸 중지시킬수 없을거야. 만약 중단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령혼이 일치되지 않았기때문이겠지. 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연극속 등장인물이 되여야 해. 그리고 그 등장인물이 바로 너 자신이라는것을 서서히 깨닫게 될거야. 하지만 그걸 명확히 깨달을 때까지 상상력을 발휘해서 정말로 그 등장인물인척 하려고 애써봐.》 《내가 아픔을 참아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 《아픔은 없어. 점차 황홀과 미스터리로 변하는 느낌이 있을뿐이지. 라고 애원하는것도 극의 일부야. 라고 말하는것 역시. 그러니까 위험을 피하기 위해…고개 숙여! 날 쳐다보지 마!》 마리아는 무릎을 꿇은채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쳐다보았다. 《연극을 하다 심하게 다치는것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두가지 신호를 사용할거야. 우리 둘중 하나가 라고 말하면, 그건 폭력의 강도를 약간 낮추어야 한다는걸 의미해. 둘중 하나가 라고 말하면, 즉시 모든걸 중지해야 해.》 《둘중 하나라고 했나요?》 《역할을 바꿔가며 할테니까.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아. 둘중 어느 누구도 스스로 굴욕을 당하지 않고는 상대방에게 굴욕을 줄수 없을거고.》 그것은 그녀가 알지 못하는 세계, 어둠, 진창, 쓰레기의 세계에서 울려나오는 끔찍한 말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더 멀리 가보고싶었다. 두려움과 흥분으로 몸이 덜덜 떨리긴 했지만. 문득 테렌스의 손이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에 와닿았다. 《이제 끝났어요.》 그가 특별히 부드럽지도, 그렇다고 조금전처럼 성마른 공격성도 담기지 않은 어투로 그녀에게 일어서라고 말했다. 마리아는 여전히 벌벌 떨며 웃옷을 입었다. 그녀의 상태를 본 테렌스가 말했다. 《담배나 한대 피우고 가요.》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럴 필요 없어요. 이것만으로도 당신 령혼속에 길이 열릴테니까. 다음번에 만날 때는 당신도 준비가 되여있을겁니다.》 《오늘저녁이 천프랑의 가치가 있었나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들은 와인을 마저 마셨고, 함께 침묵을 음미하며 음악에 귀를 기울었다. 뭔가를 말해야 할 순간이 왔다. 마리아는 자기 입을 통해 나온 말에 스스로 놀랐다. 《내가 왜 이 진창을 걷고싶은건지 모르겠어요.》 《천프랑.》 《그것때문은 아니예요.》 테렌스는 그녀의 대답에 매우 흡족한듯 보였다. 《나 역시 그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본적이 있어요. 사드후작은 한 인간이 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경험은 그를 극한으로 이끌어가는 경험이라고 말했죠. 우리는 바로 그런 극한경험을 통해서 뭔가를 배우게 되죠. 그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용기를 요구하니까요. 직원을 모욕하는 사장이나 안해를 모욕하는 남편은 단지 심성이 비겁해서 그럴수도 있지만 그런 행위를 통해 삶에 복수를 하는겁니다. 용기가 없어서 감히 자기 령혼의 밑바닥을 들여다보지 못하는거죠. 그들은 야만적인 짐승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어디서 오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섹스, 고통, 사랑이 인간에게 극한경험이라는 사실을 리해하려고 하지도 않죠. 경계를 아는 자만이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는겁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승에서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채 시간을 보내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늙고 죽을뿐이죠.》
18    《11분》 (련재16) 댓글:  조회:1616  추천:0  2015-01-23
마리아는 제네바에 온 이후로 종종 그랬듯 추위와 어둠속을 걸었다. 평상시 그런 산책은 슬픔, 외로움, 브라질로 돌아가고픈 마음, 낯선 언어, 금전문제, 시간적제약들을 불쑥불쑥 불러일으켜 우울증에 빠져들게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40분동안 빛, 지혜, 경험, 마법으로 충만한채 한 남자와 함께 벽난로 불꽃앞에 머물렀던 녀자, 바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을 향해 걸었다. 마리아는 얼마전 호수가를 산책하며 새로운 삶에 뛰여들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동안 그 녀자의 얼굴을 흘끗 본적이 있었다. 그날 오후 그 녀자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마리아는 얼마전 랄프의 그림에서 그 녀자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이제 마리아는 또다시 그 녀자가 곁에 있는것을 느꼈다. 마리아는 한참 뒤 그 마술적인 존재가 늘 그렇듯이 그녀를 홀로 두고 홀연히 사라져버린걸 깨닫고나서야 택시를 잡아탔다. 추억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방금 보낸 좋은 시간을 근심으로 흐트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녀와 처음 만난 오후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는편이 나았다. 또 다른 마리아가 진정 존재한다면 언젠가 다시 나타날터였다. 랄프에게 장난감 기차 객차를 선물받은 날 밤, 마리아가 쓴 일기. 깊은 욕망, 가장 실제적인 욕망, 그것은 누군가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욕망이다. 거기서부터 반응이 일어나고, 남자와 녀자의 게임이 시작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이끌림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순수상태의 욕망이다. 욕망이 아직 이 순수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남자와 녀자는 삶에 대해 열광하고 다음번 축복의 순간을 기다리며 매 순간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들은 경솔한 행동으로 사건을 앞당기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불가피한것은 반드시 발현되리라는것, 진실은 늘 자신을 드러낼 방법을 찾고있다는것을 알고있다. 그들은 매 순간이 너무나 중요하다는것을 알고있기때문에, 망설이거나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어떠한 마술적순간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며칠후, 마리아는 자신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함정에 빠졌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슬프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더 이상 잃을것이 없었기때문에 자유로웠다. 상황이 매우 랑만적이긴 하지만 랄프 하르트는 존경받는 예술가인 반면 그녀는 창녀라는것을 그는 태여나면서부터 관리되고 보호받는 천국에서 살아온 반면 그녀는 세상 반대편에 있는 늘 위기를 겪는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을 랄프 하르트가 깨닫는 날이 오리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는 명문대학을 졸업했고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들을 드나들지만, 그녀는 고작 고등학교를 졸업했을뿐이였다. 그런 꿈은 오래 지속되는것이 아니였다. 마리아도 살만큼 살았으므로 현실이 꿈과 일치하지 않는다는것쯤은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가장 큰 기쁨은 이런것이였다. 현실에 대고 너따윈 필요없다고, 나의 행복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말하는것. 《맙소사, 난 너무 랑만적이야.》 일주일내내 그녀는 어떻게 하면 랄프 하르트를 행복하게 해줄수 있을가 고민했다. 그는 그녀가 영영 잃었다고 생각한 자긍심과 《빛》을 되찾아주었다. 그에게 보상을 해줄 방법이라면 그가 마리아의 전공이라고 여기고있는 섹스뿐이였다. 하지만 코파카바나의 직업적인 섹스라는것은 너무나 뻔했기때문에. 그녀는 다른 정보들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포르노 영화를 몇편 섭렵했다. 하지만 거기서는 파트너의 수에 관계된 몇몇 사항을 제외하고는 흥미를 끌만한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영화가 큰 도움이 되지 않았기때문에. 그녀는 제네바에 도착한 이래 처음으로 책을 사기로 했다. 한번 읽고나면 아무 쓸모도 없어질 책들을 아빠트 여기저기에 놓아두여야 하는것이 거추장스럽긴 했지만. 그녀는 랄프와 산티아고의 길을 걸을 때 봐두었던 서점으로 갔다. 그리고 그 주제에 관련된 책들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책들은 엄청나게 많아요.》 서점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것외에는 관심이 없는것 같아요. 특별 코너에 진렬된 책들 말고도, 저기 보이는 모든 소설책들속에 섹스장면이 적어도 한번쯤은 꼭 들어있어요.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나 인간의 행동에 대한 따분한 훈계로 덧칠을 해놓긴 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건 오로지 그것밖에 없어요.》 그 아가씨는 잘못 생각하고있었다. 마리아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그것을 알수 있었다. 사람들은 세상사람들이 모두 섹스만 생각한다고 믿고싶어한다. 사람들은 욕망이 반짝이도록 만들기 위해 식이료법을 하고, 가발을 쓰고, 미장원이나 헬스클럽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야한 옷을 입는다. 그런 다음엔? 행동으로 넘어가야 할 시간이 오면, 11분, 그것으로 끝이다.  창의성도, 환희의 절정으로 이끌어주는 아무것도 없다. 그 짧은 순간의 반짝임만으로 불꽃을 계속 피울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세상이 책을 통해 설명될수 있다고 믿는 그 금발 아가씨와 왈가왈부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을터였다. 마리아는 특별 코너가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녀는 거기서 게이, 레즈비언, 수녀(교회에서 일어나는 외설적인 이야기)들에 대한 책 몇권과 삽화가 곁들어진 동양의 방중술에 대한 책들을 발견했다. 그중 그녀의 관심을 끈것은 《성스러운 섹스》라는 제목의 책 단 한권뿐이였다. 적어도 다른 책들과는 다를것 같았다. 그녀는 그 책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명상음악을 틀어주는 방송에 라디오 채널을 맞춰놓고 책을 펼쳤다. 책에는 몸을 자유자재로 비트는 곡예사나 따라할수 있을 다양한 체위의 삽화들이 실려있었고 아주 지루했다. 마리아는 사랑이 체위에 좌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경우 체위의 변화는 춤의 스텝처럼 자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만큼 이미 충분한 경험을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책의 내용에 집중해보려고 애썼다. 두시간후, 그녀는 두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는 코파카바나로 일을 나가야 하니 곧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것이였고 둘째는 그 책의 저자가 섹스에 대해 아무것도 리해하지 못하고있다는것이였다. 책에는 리론, 동양의 준거, 피상적인 의식(儀式), 엉뚱한 제안들만 잔뜩 라렬되여있었다. 저자가 히말라야(그녀는 히말라야라는 곳이 어딘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에서 명상을 했고 다른 많은 책들을 인용한것으로 보아 그 문제에 관한 많은 독서를 했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본질적인것을 모르고있었다. 섹스는 리론, 향, 접촉점, 복잡한 체위에 좌우되는것이 아니다. 하긴 그 분야에서 일하고있는 마리아조차도 잘 모르는것을 어떻게 한 녀자(저자는 녀자였다)가 왈가왈부할수 있단 말인가? 아마 히말라야에서 뭘 잘못 배웠거나, 단순함과 열정속에 아름다움이 녹아들어있는 주제를 복잡하게 서술하다보니 그렇게 꼬여버렸을것이다. 이런 한심한 책이 버젓이 출간될수 있다면, 마리아 역시 자신이 구상한 《11분》의 집필을 진지하게 생각해볼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서술할 생각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그럴 시간도 흥미도 없었다. 그녀는 랄프 하르트를 행복하게 해주는데에, 그리고 농장경영을 배우는데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했다. 섹스에 관한 지루한 책을 한쪽으로 치워버린 직후 마리아가 쓴 일기. 한 남자를 만났고, 그에게 빠져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리유를 구실삼아 내가 사랑에 빠지는것을 허락했다. 석달후면 나는 먼 곳에 가있을것이고 그는 하나의 추억에 불과하리라. 하지만 사랑 없이 사는것을 더는 견뎌낼수가 없었다. 나는 한계에 도달해있었다. 나는 랄프 하르트를 위해 하나의 이야기를 쓴다. 그가 나이트클럽을 다시 찾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애 처음으로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사랑하는것만으로 충분하다. 그와 함께 있다는 생각만해도, 그의 발소리, 그의 말소리, 그의 정겨운 눈길이 이 도시에 아름다운 색갈을 입힌다. 내가 이 나라를 떠날 때, 그는 하나의 얼굴을, 하나의 이름을 가질것이고, 나는 벽난로 불꽃에 대한 추억을 가져갈것이다. 내가 여기서 경험한 다른 모든것, 내가 거쳐온 모든 힘겨운 난관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것이다.  그가 나를 위해 한것을 나도 그를 위해 해줄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생각을 했고, 내가 그 카페에 우연히 들어간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만남은 육체가 서로를 보기도 전에 령혼에 의해 준비되는것이니까. 그러한 만남들은 우리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 우리가 감정적으로 죽어 다시 태여날 필요가 있을 때 이루어진다. 그 만남들은 우리를 기다리지만, 우리는 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피한다. 하지만 우리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우리에게 잃을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아니면 우리가 삶에 열광해있을 때, 미지(未知)가 모습을 드러내고 세계는 흐름의 방향을 바꾼다. 누구나 사랑할줄 안다. 그것은 인간에게 내재되여있는것이다.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우고 기억해내야 한다. 단 한사람의 례외도 없이 모두 지나간 감정들의 불길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기쁨과 고통, 추락과 회복을 다시 살아내야 한다. 새로운 만남들 뒤에 존재하는 운명을 알아볼수 있을 때까지.  그제야 육체가 령혼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운다. 그것이 섹스다. 자신이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모르고있지만 나에게 내 령혼을 돌려준 남자에게 내가 줄수 있는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나에게 요구한것도 바로 그것이다. 그는 그것을 가지게 될것이다. 나는 그가 행복해지길 원한다.
17    《11분》 (련재15) 댓글:  조회:1574  추천:0  2015-01-22
또다시 침묵, 이번엔 마리아가 말할 차례였다. 그녀가 그를 도와주지 않았던것처럼 그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직업녀성으로서의 날 원하나요?》 《당신이 원하는대로의 당신을 원해요.》 아니, 그는 절대로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되였다. 그것은 그녀가 간절히 듣고싶어하던 대답이였으니까. 또다시, 지진, 화산폭발, 폭풍우, 이제 함정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해질것이다. 그녀는 그를 진정으로 가져보지 못한채 잃고말것이다. 《마리아, 가르쳐줘요. 아마도 그것이 날 구하고, 당신을 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삶을 되찾게 해줄거요. 당신 말이 맞소. 당신보다 겨우 여섯살 우이지만 난 이미 엄청나게 많은 경험을 했어요. 우리는 각자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죠. 하지만 우린 둘 다 절망에 빠져있어요. 우리가 평화를 누릴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함께 있는거예요.》 그는 왜 이런 말을 하지? 그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동시에 사실이였다. 단 한번 봤을뿐이지만 그들은 벌써 서로를 필요로 하고있었다. 상상해보라, 사정이 이럴진대 만약 그들이 계속 만난다면 어떤 재난이 벌어질지를! 마리아는 령리한 녀자인데다 책을 읽고 인간을 관찰하며 수개월을 보냈다. 물론 그녀에게도 삶의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령혼을, 자신의 《빛》을 찾아야 하는 령혼을 가지고있었다. 그녀는 과거의 자신이 지겨웠다. 브라질로 돌아가 농장을 경영하는것도 흥미로운 도전이긴 했지만 여기서 배울수 있는것들을 아직 다 배우지 못했다. 랄프 하르트는 많은 장애를 극복한 남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 아가씨, 창녀, 너그러운 어머니에게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청하고있는것이다. 얼마나 부조리한 일인가! 다른 남자들도 그녀앞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했다. 많은 남자들이 발기가 되지 않아 괴로워했고 어떤 남자들은 어린애처럼 취급받기를 원했고 또 어떤 남자들은 그녀가 자기 안해였으면 좋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안해에게 여러명의 정부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것만으로도 흥분이 됐기때문이다. 아직 《특별손님》을 만난적은 한번도 없지만 마리아는 인간의 령혼속에 거대한 성적환상의 저장고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남자들중에서 《날 여기서 먼 곳으로 데려가줘》라고 부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대로 그들은 하나같이 마리아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했다. 그들이 가고나면 돈이 쌓이고 기운은 빠졌지만 그 남자들이 그녀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말할수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진정 사랑을 갈구한다면 섹스는 그 갈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면 그녀는 과연 어떤 취급을 받고싶어할가? 첫 만남때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나야만할가? 그녀는 진정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랄가? 《선물을 받고싶어요.》 마리아가 말했다. 랄프는 어리둥절했다. 선물? 그는 관례를 잘 알고있었기때문에 화대는 이미 택시안에서 지불했다. 그녀는 뭘 말하는걸가? 마리아는 그 순간 갑자기 자신이 한 남자와 한 녀자가 느껴야 하는것을 리해했음을 때달았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거실로 데려갔다. 《침실에는 올라가지 말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등을 몇개만 남겨두고 끄고서 양탄자우에 앉았다. 그리고 그에게 마주보고 앉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거실에 있는 벽난로를 바라보았다. 《불을 피워요.》 《이 여름에 불은 뭐 하러…》 《불을 피워요. 당신은 오늘밤 내가 우리의 발걸음을 이끌어나가길 원했어요. 내가 지금 하고있는게 바로 그거예요.》 그녀는 그가 또다시 그녀의 《빛》을 보길 바라면서 단호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그것을 본것이 분명했다. 곧바로 정원으로 나가 비에 젖은 장작 몇개를 들고 와 쌓고 신문지에 불을 붙여 그우에 올려놓았으니까. 그리고 그는 위스키를 가지러 부엌으로 가려 했다. 하지만 마리아가 말렸다. 《내가 지금 뭘 마시고싶어하는지 아세요?》 《아뇨.》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을 념두에 두세요. 그 사람을 생각하세요. 그 사람이 위스키를 원하는지 아니면 진이나 와인을 원하는지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한테 뭘 원하는지 물어보세요.》 《뭘 마시고싶어요?》 《와인이요. 당신도 와인을 마셨으면 좋겠어요.》 그는 와인 한병을 가지고 왔다. 그 순간 불꽃이 이미 장작을 핥고있었다. 마리아는 켜져있던 나머지 등을 모두 껐다. 장작불꽃이 살롱을 비추었다. 그녀는 상대방을 인정하는것, 그가 거기 있음을 아는것, 그것이 관계의 첫걸음이라는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다는듯이 행동했다. 그녀가 가방을 열어 며칠전에 수퍼마켓에서 산 볼펜을 꺼냈다. 사실 물건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걸 드릴게요. 농장경영에 관한 생각들을 메모하는데 필요할것 같아 샀어요. 쓴지 이틀밖에 안됐어요. 하지만 지쳐서 더는 못할것 같을 때까지 공부했죠. 내 땀, 집중력, 의지가 묻어있어요. 이걸 당신께 드리고싶어요.》 그녀는 볼펜을 그의 손바닥우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당신이 갖고싶어할 물건을 사주는 대신 나에게 진짜 나에게 속하는 물건을 당신께 드리는거예요. 선물이죠. 나와 마주보고있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표시, 그 사람 가까이에 있는것이 나한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는 방식이예요. 당신은 이제 내가 당신에게 자유롭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넘겨준 나 자신의 일부를 소유하는거예요.》 랄프가 일어나 서가로 가서는 뭔가를 가지고 와 마리아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가 어렸을 때 선물로 받은 전기기차의 객차예요. 절대 나 혼자서는 갖고 놀지 못했죠. 아버지는 이게 미국에서 수입한, 아주 비싼 장난감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거실 한가운데에 철로를 설치해줄 때까지 기다릴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아버지는 일요일마다 오페라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어요. 덕분에 이 기차는 나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지 못한 대신 지금까지도 말짱한 상태로 남아있죠. 난 철로, 기관차, 집들, 그리고 사용설명서까지 모두 창고에 처박아버렸어요. 그 기차는 내것도 아니고 내가 자주 갖고 놀지도 않았으니까. 만약 그것이 내가 선물로 받았던, 그리고 내가 지금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다른 장난감들처럼 망가져버렸다면! 파괴하려는 열정 역시 아이가 세상을 발견하는 방식이요. 그런데 이 말짱한 기차만 보면 그게 너무 비쌌기때문에, 아버지에겐 따로 할 일이 있었기때문에 아니면 아버지가 철로를 조립함으로써 아들에 대한 사랑을 보이는것을 두려워했기때문에 내가 누리지 못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돼요.》 마리아는 벽난로의 불꽃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알수 없는 어떤 감정이 일어났다. 그건 와인때문도 포근한 분위기때문도 아니였다. 그건 선물을 주고받았는 때문이였다. 랄프 역시 불꽃을 향해 돌아앉았다. 그들은 불꽃이 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다는듯이 그들은 와인을 마셨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거기 함께 있었다. 그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삶에도 말짱하게 남아있는 기차들이 아주 많아요.》 마침내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중 하나가 내 마음이예요.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철로를 조립해줄 때에만 그것을 갖고 놀수 있었죠. 그런데 그건 늘 때가 맞지 앉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사랑했어요.》 《그래요, 난 사랑했어요. 그것도 아주 많이. 너무나 사랑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선물을 달라고 했을 때 난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버렸어요.》   《나로선 리해할수 없는 얘기로군요.》 《어렵지 않아요. 난 내가 몰랐던 사실을 한가지 깨달았어요. 그걸 당신에게 가르쳐드릴게요. 선물은 당신에게 속하는 물건을 주는거예요. 중요한 뭔가를 요구하기전에 줘야 해요. 당신은 내 보물을 가졌어요. 내 꿈들중 몇가지를 쓴 볼펜을요. 그리고 나는 당신의 보물을 가졌어요. 당신이 누리지 못한 어린 시절의 한부분인 객차를. 난 이제 당신 과거의 일부분을 지니고있고, 당신은 내 현재의 약간을 간직하고있어요. 그건 너무나 좋은 일이죠.》 그녀는 그것이 사랑의 유일한 방식이라고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다는듯이, 스스로도 예기치 못한 자신의 행동에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옷걸이에 걸려있던 웃도리를 집어들고는 그의 뺨에 키스를 했다. 불꽃에 홀린채, 아마도 자기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고있었을 랄프 하르트는 전혀 일어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난 내가 왜 그 객차를 계속 간직하고있었는지 알수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모든게 분명해졌소. 그건 벽난로에 불을 피운 어느날 저녁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서였소. 이제 이 집은 훨씬 가벼워졌어요.》 그는 철로, 객차, 기관차, 그리고 기관차에서 연기를 뭉게뭉게 피여오르게 하는 알약들을 다음날 고아원에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오래된 희귀품이라 값이 많이 나갈지도 몰라요.》 마리아는 이렇게 말했다가 곧 후회했다. 중요한것은 그런것이 아니라 마음을 앓게 하는 어떤 감정으로부터 해방되는것이였다. 그녀는 입에서 또다시 엉뚱한 소리가 나오기전에 서둘러 그의 뺨에 다시한번 키스를 해주고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여전히 불꽃을 뚫어져라 바라보고있었다. 그녀가 문을 좀 열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랄프가 일어서자 그녀는 브라질의 이상한 미신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브라질사람들은 누군가의 집을 처음 방문하고 그 집을 나설 때 절대로 자기 손으로 문을 열지 않았다. 자기 손으로 문을 열면 그 집에 두번 다시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된다는 미신때문이였다. 《전 다시 오고싶거든요.》 《우리는 옷도 벗지 않았소. 난 당신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당신을 만지지도 않았소. 하지만 우린 사랑을 나누었어요.》 마리아가 웃었다. 그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래일 코파카바나로 당신을 만나러 가겠소.》 《그러지 말아요. 일주일동안 기다려요. 기다리는게 제일 힘든 일이예요. 난 그 기다림에 익숙해지고싶어요. 당신이 내곁에 없어도 당신이 나와 함께 있다는걸 느끼고싶어요.》  
16    《11분》 (련재14) 댓글:  조회:1611  추천:0  2015-01-21
모든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이틀후, 마리아의 일기.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평화롭게 먹고, 자고, 일할수 없다. 열정은 과거에 속하는것들을 모두 파괴해버린다. 사람들이 열정을 두려워하는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자신의 세계가 와해되는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여 위협을 통제하고, 이미 먼지로 변해버린 구조를 그대로 유지할수 있는것이다. 그들은 낡아버린것의 기술자들이다.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안고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열정에서 찾기를 희망하며 무작정 뛰여든다. 그들은 행복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기 열정의 대상에게 돌리고 불행이 닥치면 그를 죄인으로 삼는다. 그들은 뭔가 신비스러운것이 그들에게 닥쳤기때문에 행복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사건이 모든것을 파괴하기때문에 불행하다. 열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것과 그것에 맹목적으로 뛰여드는것, 둘중 어느것이 덜 파괴적인 태도일가?     사흘째 되던 날, 랄프 하르트가 마치 죽은 자들 사이에서 부활한것처럼 다시 코파카바나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리아는 이미 한 손님과 얘기를 나누고있었기때문에 하마트면 기회를 놓칠번했다. 하지만 그를 보자마자 그녀는 손님에게 춤을 추고싶지 않다고, 실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정중하게 해명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요며칠동안 계속 그를 기다리고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운명이 그녀의 길우에 가져다놓은 모든것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그것에 불만을 갖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그 사치를 즐길수 있었다, 머지 않아 이 도시를 떠날거니까. 그녀는 그 사랑이 불가능하다는것을 알고있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때문에, 자신이 그 단계의 삶에서 기대할수 있는것을 모두 얻을수 있을것이다. 랄프가 그녀에게 뭘 좀 마시자고 제안했다. 마리아는 과일각테일쥬스를 주문했다. 클럽주인은 컵을 씻는척하며 도무지 리해할수 없다는 눈초리로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거지? 밀랑은 그녀가 음료나 홀짝거리며 앉아있는 꼴을 보고싶지 않았다. 마리아가 사내를 데리고 댄스 플로어로 나가자, 밀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그들은 순서에 따라 행동하고있었다. 걱정할 리유가 없었다. 마리아는 자신의 허리를 안고있는 그의 손, 그녀의 얼굴에 대고있는 그의 얼굴, 대화를 전혀 나누지 못하게 만드는, 다행스럽게도 쿵쿵 울리는 음악소리를 느꼈다. 그녀가 용기를 되찾기에는 과일각테일쥬스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들이 나눈 몇마디의 말은 매우 형식적이였다. 이젠 시간이 문제였다. 함께 호텔로 가서 사랑을 나누게 될가? 그건 전혀 어려울게 없었다. 직업상 해야 할 일을 하는거니까. 그것이 열정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릴수 있도록 도와줄테니까. 그녀는 그와의 첫만남 이후로 자신이 그토록 괴로워한 리유를 알수가 없었다. 그날 밤, 그녀는 너그러운 어머니가 될것이다. 랄프 하르트는 다른 남자들과 똑같은 절망에 빠진 남자였다. 그녀가 자신의 역할을 잘해낸다면 코파카바나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 그녀가 스스로 정해놓은 씨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기만한다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체취를 느끼고(냄새가 좋았다), 그의 피부가 와닿는 느낌을 발견하고(촉감이 좋았다), 자신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는것(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사실이지만)을 알게 된 지금 그녀는 커다란 위험에 직면해있었다.   45분만에 그들은 의식의 모든 단계를 거쳤다. 이윽고 사내가 클럽주인에게 말했다. 《내가 손님 세사람분의 료금을 지불하고 그녀를 데려가겠습니다.》 주인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또다시 젊은 브라질녀자가 사랑의 함정에 빠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마리아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랄프 하르트가 이곳 규칙을 그렇게 잘 알고있을줄은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내 집으로 가요.》 그게 최선의 결정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밀랑의 방침에 어긋나긴 했지만, 이번 한번만은 례외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녀자와 함께 사는지 아닌지 확인하는것외에도 유명한 화가들의 생활방식을 두눈으로 직접 보아두면 언젠가 고향신문에 기사를 쓸수도 있을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그녀가 유럽에 있을 때 지식인이나 예술가들과 교제했다고 믿게 될테니까. 웬 말도 안되는 핑게람! 30분후, 그들은 제네바 린근에 있는 콜로니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성당 하나, 빵집 하나, 관공서 건물 하나, 모든것이 제 자리에 있었다. 그의 집은 아빠트가 아니라 삼층짜리 단독주택이였다! 그는 정말 돈이 많은게 분명했다. 또한 그가 함께 사는 녀자가 있다면 소문이 두려워서라도 감히 그녀를 자기 집에 데려가지는 못했을것이다. 따라서 그는 부자에다 독신이였다. 그들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는 홀로 들어섰다. 그리고 곧장 걸어 방 두개가 정원을 향해 나있는 일층 안쪽으로 갔다. 그림이 사방벽을 에워싼 방, 하나는 식당 열할을 하고있었고 다른 방에는 쏘파 몇개, 의자, 책이 빽빽이 꽂혀있는 서가, 재털이와 씻지 않은 잔들이 있었다. 《커피 한잔 마시겠어요?》 마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신은 아직 날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돼. 나는 내가 한 약속들을 어김으로써 나 자신의 악마들에게 도전하는거니까. 하지만 침착해야 해. 내 령혼이 사랑에 굶주려 있긴 하지만, 오늘 난 창녀 또는 친구 또는 너그러운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할거니까. 그 모든것이 끝난 다음에야 나는 당신이 끓여주는 커피를 마실거야. 《저기 정원 안쪽에 내 작업실이 있어요. 내 령혼도 거기 있죠. 그리고 여기 이 모든 그림과 책들 사이엔 내 두뇌가 있죠. 내 생각들도.》 마리아는 자신의 아빠트를 떠올렸다. 그곳에는 정원이 없었다. 책도 없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몇권을 빼고는 공짜로 얻을수 있는걸 굳이 돈을 주고 살 필요는 없었다. 그림 역시 없었다. 언젠가 꼭 한번 구경하고싶은 상하이곡예단 포스터 한장을 제외하고는. 랄프가 위스키병을 집어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아뇨, 전 안마실래요.》 그가 얼음을 넣지 않고 한잔을 따라 단숨에 비웠다. 그러고는 능란한 화술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화가 흥미로울것 같긴 했지만, 마리아는 그가 그들사이에 일어날 일을 두려워하고있다는걸 알수 있었다. 다시 상황을 통제하는것은 마리아였다. 술을 한잔 더 마신 랄프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용건을 전하듯 불쑥 말했다. 《나에겐 당신이 필요하오.》 정지. 그리고 이어지는 긴 침묵. 그는 좀처럼 침묵을 깨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지 한번 두고보자고 마음먹고 마리아도 침묵을 지켰다. 《나에겐 당신이 필요하오, 마리아. 당신이 아직 날 믿지 못한다 해도, 내가 이 말로 당신을 유혹하려 한다고 생각해도, 당신에게 빛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예요. 라고 묻지 말아요. 내가 나 자신에게 설명할수 있는 한도내에서는 당신에겐 전혀 특별한것이 없으니까. 그러나 어쨌건 난 당신외엔 아무것도 생각할수가 없어요. 삶의 비의(秘意)란 바로 이런것일거요.》 《난 그런 질문 할 생각 없었어요.》 《굳이 리유를 대라고 한다면, 내앞에 있는 녀자는 고통을 극복해 그것을 긍정적이고 창조적인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말하겠어요.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게 설명되는건 아니오.》 이야기가 점점 심각해지고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 모든 창조성, 전 세계의 화랑들이 서로 유치하려고 다투는 내 그림들, 날 자랑스러운 아들로 여기는 내 고향마을, 단 한번도 내게 생활비를 청구한적이 없는 전 안해들, 건강하고 괜찮은 외모, 한 남자가 바랄수 있는 모든것을 갖고도…나는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기껏 오후 한나절을 함께 보낸 녀자에게 하고 말하고있소. 당신의 외로움이 뭔지 알아요?》 《네, 그게 어떤건지 알아요.》 《하지만 내가 느끼는, 언제든지 사람들을 만날수 있고 축제와 파티와 연극초대연회에 매일 초대를 받고, 전화벨은 끊임없이 울려대고, 아름답고 지적이고 교양있는 녀자들이 내 그림을 너무나 좋아한다며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매달리는 그속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은 알지 못할거요. 뭔가가 발목을 붙들며 말하죠. 그러면 난 외출을 포기하고 작업실로 들어가 당신에게서 보았던 그 빛을 찾는 일에 몰두해요. 난 작업할 때가 아니면 빛을 볼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가져보지 못한 무엇을 줄수 있죠?》 그가 그녀의 하루밤 몸값을 지불한 손님이라는 사실은 잊어버린채 다른 녀자들에 대한 언급때문에 조금 기분이 상한 그녀가 대꾸했다. 그가 세번째 잔을 들이켰다. 마리아는 마음속으로 그의 목구멍과 위장을 태우고 혈관속으로 섞여들어가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알콜의 경로를 따라가보았다. 그녀도 취기가 오르는것 같았다. 랄프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좋아요. 내가 돈으로 당신 사랑을 살수는 없겠죠. 하지만 당신 입으로 섹스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안다고 했으니 나한테 그걸 가르쳐주시오. 아니면 브라질 얘길 해주든지. 당신곁에 있을수만 있다면 뭐든지 좋아요.》 이제 어떡하지? 《난 브라질의 도시라곤 내가 태여난 곳하고 리우데자네이루, 단 두곳밖에 몰라요. 그리고 섹스에 대해서라면, 내가 당신에게 뭘 가르쳐줄수 있는 립장이 아닌것 같아요. 난 이제 겨우 스물셋이예요. 당신은 나보다 여섯살 위인데다가 나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강렬한 경험을 했어요. 난 내가 원하는게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것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남자들을 만나요.》 《난 남자들이 동시에 한 녀자, 두 녀자, 세 녀자와 해보고싶다고 꿈꿀수 있는것을 모두 해보았어요. 그런데도 많은걸 배웠다고 말할 자신이 없소.》
15    《11분》 (련재13) 댓글:  조회:1509  추천:0  2015-01-20
마리아가 그날 쓴 일기의 일부분. 오늘, 그 이상한 산티아고의 길을 따라 호수가를 거니는 동안, 나와 함께 있던 남자, 나와는 대척점에 있는 삶을 살아가는 화가가 물에 작은 돌을 던졌다. 돌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동심원들이 생겨났고 그것들은 점점 퍼져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오리에게 가닿았다. 오리는 예상치 못한 물결에 겁을 먹기는커녕 기꺼이 함께 노닐었다. 몇시간전, 나는 한 카페에 들어갔고 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신이 그곳에 돌을 던진것과 같았다. 에너지의 파동이 나를 건드렸고 구석에서 초상화를 그리고있던 한 사내를 건드렸다. 그는 돌이 전해준 떨림을 느꼈고 나 역시 그랬다. 이제 어떡하지? 화가는 자기가 찾던 모델을 발견하면 즉시 그 사실을 알수 있다고 한다. 음악가는 자신의 악기가 조률되면 즉각 그 사실을 알수 있다고 한다. 여기, 이 일기속의 몇 문장은 내가 아니라 《빛》으로 가득한, 그리고 내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녀인이 쓰는것이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예전과 다름없이 살아갈수도 있다. 하지만 호수의 오리처럼 수면에 갑자기 이랑을 만드는 파동을 즐길수도 있다. 그 돌은 정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있다. 그것은 두사람의 전격적인 만남의 아름다움을 드러낼수도 있지만 그것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정열은 예기치 못한것이 가져다주는 흥분, 열렬히 행위하고픈 욕망, 꿈을 실현시킬수 있으리라는 확신속에도 있다. 정열은 삶을 인도하는 신호들을 보낸다. 그 신호들을 해독하느냐 마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계획속에 없었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였다고 믿고싶다. 나 자신을 통제하며 사랑을 거부하며 보낸 나날들이 정반대의 효과를 발휘했다. 나는 나에게 다른 종류의 관심을 보여준 첫번째 사람에게 빠져들고있는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았고 그가 어디 살고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를 잃는다 해도 나는 기회를 놓치고말았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것이다. 이미 그를 잃었다 해도 나는 내 삶에서 행복한 하루를 번 셈이니까. 불행의 련속인 이 세상에서 행복한 하루는 거의 기적에 가까우니까. 그날 저녁 마리아가 코파카바니에 들어섰을 때 그가 거기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있었다. 그가 유일한 손님이였다. 호기심 어린 눈길로 마리아를 쫓던 밀랑은 그녀가 전투에 패했음을 알아차렸다. 《같이 한잔 하겠어요?》 《전 일해야 해요. 일자리를 잃고싶지 않아요.》 《난 손님이요. 지금 당신에게 직업적인 제안을 하고있는거예요.》 오후에 카페에서는 그토록 자신만만해보였던 사내가, 붓을 능숙하게 다루고, 고위층 인사들을 만나고, 바르셀로나에 대리인을 부리고있고, 돈도 엄청나게 많이 버는 사내가 지금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듯 약한 모습을 보이고있었다. 그는 들어오지 말아야 했을 곳에 들어와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산티아고의 길에 있는 랑만적인 카페가 아니였다. 그날 오후의 마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때요, 같이 한잔 하지 않겠어요?》 《좋아요. 하지만 지금은 안돼요. 오늘은 예약된 손님들이 있어요.》 그 말을 들은 밀랑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마리아는 사랑의 함정에 걸려들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손님이 없어 한적했던 저녁나절이 끝날 무렵, 그녀가 왜 그를 놔두고 로인, 평범한 회계사, 그리고 보험사 직원을 선택했는지 리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렴 어때, 그녀의 문제인걸. 수수료만 꼬박꼬박 낸다면 그녀가 누구와 자든 그가 상관할바 아니였다. 로인, 회계사, 보험사 직원과 함께 지내고 온날 밤, 마리아의 일기. 그 화가는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걸가? 우리는 국적도 문화도 다르다는것을 그도 알고있지 않은가? 내가 쾌락에 대해 자기보다 더 많은것을 알고있다고 생각하고 나한테 뭔가 배우기를 원하는걸가? 왜 나한테 《난 손님이요》라는 말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을가? 《보고싶었다》든지, 아니면 《함께 보낸 오후가 정말 좋았다》든지, 쉽게 할수 있는 말이 얼마든지 있었을텐데. 그랬다면 나도 대답했을텐데. 나는 녀자고, 연약하고, 게다가 클럽은 나의 직장이니까 여기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고 나의 불안을 리해해야 한다고. 그는 남자다. 그리고 예술가다. 그는 알아야 한다. 인간존재의 목표는 절대적인 사랑을 리해하는것이고 사랑은 타인속에 있는것이 아니다. 우리속에 있다. 그것을 일깨우는것은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우리는 타인을 필요로 한다. 우리 옆에 우리의 감정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을 때에야 우주는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는 섹스에 지쳐있는것일가?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 사람이나 나나 섹스가 무엇인지 모르고있다. 삶의 가장 본질적인것들중 하나를 죽어가게 내버려두고있는것이다. 나는 그가 나를 구원해주길 원하고있고 그는 내가 그를 구원해주길 원하고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주지 않았다. 마리아는 두려웠다. 그녀는 오랜 통제의 세월후에 견디기 힘든 압력이 들어오고 지축이 흔들리고 령혼의 화산이 대폭발의 신호를 보내고있다는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만약 폭발이 일어나면 그녀는 더이상 감정을 통제할수 없을것이다.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했을수도 있는 기껏해야 몇시간을 함께 보냈을뿐인 그녀에게 손 한번 댄적이 없고 그녀를 유혹하려 들지도 않은 그보다 더 자존심 상하게 하는 존재가 있을가? 그 빌어먹을 화가는 도대체 누구일가? 가슴이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는걸가? 그녀는 왜 랄프 하르트 역시 똑같은것을 느끼고있다고 믿는걸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그 남자는 거의 꺼져가는 불길을 다시 지펴줄수 있는 녀자를 찾고있는것이다. 그는 그녀를 특별한 《빛》을 지닌(그 점에서 그는 솔직했다), 그의 손을 잡아 삶으로 돌아가는 길로 이끌 준비가 되여있는 위대한 섹스의 녀신으로 삼고자 하는것이다. 그는 마리아 역시 섹스에 관심을 잃었고 나름대로 문제들을 안고있으며(그렇게 많은 남자들과 동침을 했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삽입을 통한 오르가즘에 도달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날 아침에는 귀향할 계획을 세우고있었다는것을 리해할수 없는 사람이였다. 왜 그를 생각하는걸가, 하고 마리아는 생각했다. 왜? 왜 이 순간 또 다른 녀자에게 다가가 특별한 《빛》이였다고, 자신을 이끌어줄 섹스의 녀신이 될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녀자를 그리고싶어할지도 모르는 그를 생각하는걸가? (모든걸 털어놓을수 있었기때문에 그를 생각하는거야.) 웃기는 소리! 그렇다면 도서관 사서에 대해서도 생각하나? 아니였다. 코파카바나에 나오는 아가씨들중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속내를 털어놓고 지낸 필리핀아가씨 니아에 대해서는? 아니였다. 그들은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들일뿐이였다. 그녀는 찌는듯한 더위에 또는 전날 들르지 못한 슈퍼마켓에 관심을 돌려보려고 애썼다, 아버지에게 그녀가 사고싶어하는 땅에 관한, 가족들이 알면 좋아할 내용들로 가득한 장문의 편지를 썼다. 돌아가는 날자를 밝히진 않았지만 그리 멀지 않았음을 은근히 암시했다. 그녀는 농장경영에 관한 책을 뒤적이며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스위스사람들에겐 아주 쓸모가 많은 농장경영에 관한 책이 브라질사람들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세계는 너무나 달랐다. 오후가 되자, 그녀는 지축의 흔들림, 화산의 부글거림, 터질듯한 압력이 진정되는것을 느꼈다. 그녀는 긴장을 풀었다. 하긴 그런 갑작스러운 정열을 느낀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였다. 그것은 다음날이 되면 늘 식어버렸다. 그랬기때문에 그녀의 세계는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그녀에게는 그녀를 기다리는 가족과 그녀를 기다리며 직물가게가 아주 잘되고있다는 편지를 종종 보내는 남자가 있었다. 그녀에겐 그날 밤 바로 비행기를 타기로 결심한다 하더라도 작은 땅뙈기를 사고 남을만한 돈이 있었다. 그녀는 언어장벽, 외로움, 식당에서 아랍인과 보낸 첫날 등 많은 장애를 극복했고 육체가 하는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령혼을 설득하는데도 성공했다. 그녀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알고있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여있었다. 게다가 그 꿈속에는 남자가 없었다. 적어도 그녀의 모국어를 할줄 모르는 남자, 그녀의 고향에 살지 않는 남자는, 지축의 흔들림이 멈추자, 마리아는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도 당신만큼 외롭고 비참해요. 당신은 나에게서 을 봤다고 했어요. 그건 내가 이곳에 온 이래 남자가 내게 해준 말중 아름답고 진실한 최초의 밀이였어요.》 이렇게 말하지 않은, 라지오에서 옛날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 사랑은 피기도 전에 시들어가네.》 그녀 사랑의 운명이 그랬다.
14    《11분》 (련재12) 댓글:  조회:1589  추천:0  2015-01-19
  그녀는 창녀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끊어서 큰소리로 발음했다. 졸고있던 화학자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여났고 종업원이 계산서를 가지고 왔다. 《그건 창녀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녀자와 상관이 있는거예요.》 랄프가 계산서를 내미는 종업원을 무시하고 당당하게, 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에겐 빛이 있어요.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다른것들의 이름으로 소중한것을 희생할수 있는 존재가 가진 의지의 빛이. 눈, 그 빛은 당신의 눈을 통해 드러나요.》 마리아는 맥이 풀리는것을 느꼈다. 그가 그녀의 도발에 응수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유혹하려 한다고 믿고싶었다. 적어도 앞으로 90일동안은 이 땅에 흥미로운 남자들이 존재할수 있다는 생각을 잊기로 마음먹었던 그녀였다. 《당신앞에 놓인 아니스각테일 보이죠?》 그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아니스각테일밖에 보지 못하지만 나는 그너머까지 봐야 해요. 그 과일이 열린 나무, 그 나무가 맞서야 했던 폭풍우, 그 열매를 딴 손,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건너가는 선박, 그 열매가 알콜과 접촉하기전에 가지고있던 색갈을 보죠. 언젠가 내가 그럴수 있다면 나는 그 모든걸 화폭에 담을거예요. 하지만 그 그림을 보는 당신은 그저 흔하디 흔한 아니스각테일잔을 앞에 두고있다고 생각하겠죠. 마찬가지로, 당신이 아까 거리를 바라보며 산티아고의 길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나는 당신의 어린 시절, 당신의 사춘기, 수포로 돌아간 당신의 꿈들, 미래에 대한 당신의 계획들, 그리고 당신의 의지를, 내 관심을 가장 많이 끈것이 바로 당신의 의지인데, 그 모든걸 그렸어요. 당신이 그 그림을 봤을 때는…》 《나도 그 빛을 봤어요…》 《…거기엔 당신과 비슷하게 생긴 녀자밖에 없었겠지만.》 또다시 당혹스러운 침묵이 이어졌다. 마리아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가봐야 해요. 그런데 왜 섹스가 따분하다고 하셨죠?》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알텐데요.》 《나야 그 분야에서 일을 하고있으니까, 늘 하는 일이니까 알지만. 당신은 기껏해야 서른정도 된…》 《스물아홉이예요…》 《젊고 매력적이고 유명한 화가예요. 그런것에 관심이 있으면 녀자를 구하러 구태여 베른가까지 갈 필요도 없었을텐데.》 《그럴 필요가 있었어요. 당신 동료들 몇몇과 같이 잤죠. 녀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런건 아니였어요. 나한테 문제가 좀 있어서…》 마리아는 질투가 이는것을 느꼈고 겁이 났다. 그녀는 이제 정말 일어서야 할 때가 되였다는것을 깨달았다. 《그게 내 마지막 시도였어요. 이젠 포기해버렸죠.》 바닥에 흩어진 작업도구들을 챙기며 랄프가 말했다.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나요?》 《아뇨, 흥미를 잃어서.》 그건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계산하고 나가서 함께 좀 걸어요. 난,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똑같은것을 느끼지만 아무도 그것을 털어놓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당신처럼 솔직한 사람과 얘기를 나눠보고싶어요.》 그들은 산티아고의 길을 따라 호수로 흘러드는 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은 산너머로 계속 이어지다가 스페인에 위치한 머나먼 고장에서 끝이 난다고 했다. 그들은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행인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주부들, 카메라로 호수 중앙에 있는 분수를 열심히 찍어대는 관광객들, 얇은 천을 머리에 쓴 이슬람녀자들, 조깅을 하는 소년 소녀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모두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믿고싶어하는 전설과도 같은 신화적인 도시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를 찾아나선 순례자들이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그 길을, 붓, 물감통, 캔버스, 연필이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둘러멘 긴 머리 사내와 농장경영을 다룬 책들을 팔에 안은 좀더 젊은 아가씨가 걷고있었다. 둘중 어느 누구도 그들이 왜 이 순례를 함께 하고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졌다. 그녀는 그에 대해 아는것이 거의 없었지만 그는 그녀의 모든것을 알고있는듯했다. 그녀는 사내에게 질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말문이 트이자 그녀는 모든것에 대해 질문을 퍼부었다. 사내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녀는 남자에게서 뭔가를 얻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두차례 결혼했었고(스물아홉의 나이에!),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으며, 왕들과 유명한 배우들을 만났고, 잊지 못할 축제들에 참가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제네바에서 태여났고 마드리드, 암스테르담, 뉴욕, 그리고 관광지로는 전혀 알려져있지 않지만 멋진 산들과 후한 인심때문에 그가 아주 좋아하는 프랑스남부 도시 타르브에서 산적도 있었다. 그의 예술적재능은 그가 실내장식을 맡은 제네바의 한 일본식당으로 우연히 식사를 하러 온 영향력 있는 한 쿠레이터에 의해 발견되였다. 그의 나이 스무살때였다. 그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젊고 건강했다. 원하는것이면 뭐든 할수 있었고 어디든 갈수 있었으며 누구든 만날수 있었다. 그는 한 남자가 맛볼수 있는 모든 쾌락을 경험했고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하지만 인기, 돈, 녀자, 려행, 그 모든것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행했다. 그의 삶에 유일한 즐거움은 그림밖에 없었다. 《녀자들에게 상처를 받았나요?》 그녀가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곧 그것이 《남자를 꼬시기 위해 녀자들이 알아야 할 모든것》이라는 제목의 책이나 잡지 같은데서 끄집어낸듯한 바보같은 질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녀자들에게 상처받은적 없어요. 두번의 결혼생활 모두 아주 행복했어요. 세상의 모든 부부들처럼 배신당하고 배신했죠. 하지만 얼마 지나자 섹스에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더군요. 안해를 사랑했고 함께 있고싶기는 했지만 섹스는… 그런데 우리가 지금 왜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고있는거죠?》 《당신이 말한것처럼 난 섹스산업 종사자니까요.》 《내 삶도 별거 없어요. 드문 일이지만 난 젊은 나이에 성공한 예술가예요. 회화분야에서는 더더욱 드문 일이죠. 예술이 무엇인지 아는건 자기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비평가들이야 입에 거품을 물겠지만 요즘은 모든 쟝르의 그림을 그릴수 있는 사람이 좋은 상을 받게 되여있어요. 난 모든것에 대한 답을 갖고있다고 세인들이 생각하는 사람들중 하나예요. 입을 다물고있을수록 사람들은 그 사람이 지적이라고 생각하죠.》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매주 어딘가에 초대를 받았다. 바르셀로나에 그의 대리인이 있었다. 그 녀자가 돈, 초대, 전시회와 관련된 모든 일을 맡아했다. 하지만 내켜하지 않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몇년간 일한 덕분에 그는 미술시장에서 안정된 수입을 올리고있었다. 《내 이야기, 재미있나요?》 그의 목소리에 뭔가 불편함이 묻어났다. 《흔치 않은 이야기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랄프는 마리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어했다. 《내안에는, 날 만나러 오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세사람이 존재해요. 경탄의 눈길로 남자를 바라보며 권력과 영광에 대한 그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은척하는 순진한 아가씨, 자신감이 없어보이는 남자들을 과감하게 공격해 상황을 통제함으로써 더이상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남자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팜므 파탈(성적매력으로 남자를 유혹해 파멸에로 이끄는 요부, 프랑스어로―치명적인 녀자―라는 뜻). 그리고 마지막으로 충고에 목말라하는 남자들을 토닥이고,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한쪽 귀로 듣고 다른 한쪽 귀로는 흘려버리기도 하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너그러운 어머니, 이 셋중 누구를 알고싶으세요?》 《당신.》 마리아는 이야기했다. 그래야만했다. 그녀는 브라질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모든것을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그녀는 흔치 않은 직업에 종사하고있지만 리오에서 보낸 일주일과 스위스에서 보낸 첫달 이후로는 그리 큰 감정적동요를 겪지 않았다는것을 깨달았다. 오로지 집과 일, 일과 집의 반복이였다. 그녀가 이야기를 끝냈을 때, 그들은 산티아고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 반대편끝에 있는 카페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각자 운명이 상대방에게 예비해놓은것을 생각하고있었다. 《이제 무슨 말을 할가요?》 그녀가 물었다. 《례를 들면 같은 말.》 그랬다. 그날 오후는 여느 오후와는 달랐다. 마리아는 문을 열었고 그 문을 어떻게 닫아야 할지 몰라 불안했고 그 어느때보다 긴장해있었다. 《언제쯤 그림을 볼수 있을가요?》 랄프가 바르셀로나에 있다는 대리인의 명함을 내밀었다. 《륙개월후에도 유럽에 있다면 이 사람에게 전화해요. 유명인사와 보통사람들로 구성된 은 베를린의 한 화랑에서 처음으로 전시될겁니다. 그후에는 전 유럽을 순회하며 전시될 예정이구요.》 마리아는 달력과 그녀에게 남은 90일, 그리고 관계가 어떤 식으로 맺어지든 그것이 품고있을 위험을 떠올렸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뭐지? 사는것? 아니면, 사는척하는것? 지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누군가가 비판도 토도 달지 않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오늘오후가 내가 여기서 보낸 오후들중 가장 아름다운것이였다고 말하는것? 아니면 빛을 말하는, 의지로 충만한 녀자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은채 가버리는것?) 그와 함께 산티아고의 길을 걷는 동안,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안 마이라는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것으로 만족할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삶의 큰 선물이였다. 《당신을 만나러 가겠소.》 랄프 하르트가 말했다. 《그러지 말아요. 난 곧 브라질로 돌아가요. 우린 더 이상 서로 할 얘기가 없어요.》 《손님으로 당신을 찾아가겠소.》 《나에겐 굴욕일거예요.》 《당신에게 구원받기 위해 찾아가겠소.》 그는 그녀에게 섹스에 대한 무관심을 털어놓았다. 그녀 역시 그와 똑같은것을 느낀다고 털어놓고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제했다. 그쯤에서 입을 다무는것이 현명했다. 문득 가슴속에서 탄식이 솟았다. 그녀는 또다시, 이번에는 연필을 달라고 하는게 아니라 잠시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어린 소년과 함께 있는것이다. 그녀는 과거를 돌아보고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용서했다. 그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단 한번 시도한 뒤 포기하고만 자신감 없었던 소년의 잘못이였다. 그들은 아이들이였고 아이들은 대개 그렇게 행동했다. 그녀도 소년도 잘못을 저지른게 아니였다. 그것이 그녀에게 크나큰 안도감을 주었다. 그녀는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그녀는 자기 삶의 첫번째 기회를 망치지 않았던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다. 그것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매는 모든 인간의 성장과정일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리유들이야 여전히 유효했지만 (나는 브라질로 돌아간다. 나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 시간이 없다. 나는 섹스에 관심이 없다. 나는 사랑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고싶지 않다. 나는 농장경영을 배워야 한다. 나는 그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 다른 세계에 살고있다), 삶이 한번 도전해보라고 손짓하고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였다.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나라 관습에 따라 그와 악수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갔다. 진정 사랑할만한 남자라면 그녀의 침묵에 기가 죽지는 않을테니까.  
13    《11분》 (련재11) 댓글:  조회:1651  추천:0  2015-01-18
《감사합니다. 이제 움직이셔도 됩니다.》 막 꿈에서 깨여난듯한 표정을 짓고있는 화학자에게 화가가 말했다. 그러고는 마리아를 돌아보며 스스럼없이 주문했다. 《저 구석에 가서 앉아요. 될수 있는대로 편한 자세로. 빛이 완벽해요.》 마치 모든것이 운명에 의해 결정되여있는것처럼. 이것이 더없이 자연스러운 일인것처럼. 그녀가 평생 이 남자와 함께 지냈거나 혹은 꿈속에서 이 순간을 이미 살아보았기때문에 자신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꿰뚫고있는것처럼. 마리아는 아이스잔과 가방과 책을 집어들고 그가 가리킨 창가의 테블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붓, 캔버스, 다양한 색갈의 물감이 들어있는 유리병들, 그리고 담배 한갑을 옮겨놓은 뒤 그녀옆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그 자세로 가만히 있어요.》 《무리한 요구네요. 끊임없이 움직이는게 제 삶이라서.》 그녀는 말하고나서 스스로 재치 넘치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 말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내의 눈길이 불편했기때문에 마리아는 가능한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애쓰면서 창밖의 거리와 표지판을 가리켰다. 《산티아고의 길이라는게 도대체 뭐죠?》 《순례의 길이예요. 중세때 전 유럽에서 온 순례자들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지방 라코루냐주에 있는 종교도시. 예수의 열두 제자중 한사람인 야고보가 묻힌 곳이라 하여 중세 유럽 최대의 순례지로 번영하였다.)에 가기 위해 이 길을 지났죠.》 그가 캔버스를 펴고 붓을 준비했다. 마리아는 여전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저 길을 따라가면 스페인에 가닿게 되나요?》 《한 두어달 걸릴걸요. 걸어가면 말이죠. 그런데 부탁 하나만해도 될가요? 입 좀 다물어주세요. 십분 이상 걸리지 않을테니까. 그리고 테블우에 있는 그건 뭐죠? 그것 좀 치워줘요.》 《책이예요.》 사내의 명령투의 말에 은근히 화가 난 마리아가 대꾸했다. 자기앞에 앉아있는 녀자가 도서관을 드나드는 교양있는 녀자라는걸 알리고싶었다. 하지만 그는 량해도 구하지 않고 직접 책을 집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실패했다. 특별히 강한 인상을 남기고싶었던것도 아니지만. 하긴 지금 직업상 여기 앉아있는것이 아니니. 매력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후하게 지불해주는 남자들을 위해 아껴두는 편이 나았다. 내가 왜 저 화가와 인연을 맺어야 하지? 서른살이나 된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고있는것도 꼴불견이였다. 그녀는 왜 그가 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가? 카페 녀종업원은 그가 유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니. 저 화학자가 유명하다는 뜻이였을가? 그녀는 그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옷만 봐서는 아무것도 알수 없다. 삶은 그녀에게 가르쳐주었다.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사람들이 실은 정장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부자라는 사실을. (내가 저 남자생각은 왜 하지? 내가 관심있는건 그림인데.) 십분. 화폭우에 불멸의 녀인으로 남을수 있다면 그 정도 시간쯤은 얼마든지 내줄수 있었다. 그녀는 그가 노벨상을 수상한 화학자옆에 자신을 그려넣고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혹 그가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려요.》 그녀는 평소와는 달리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그의 명령에 따랐다. 그녀는 행인들과 산티아고의 길 표지판을 바라보며 그 길이 수세기전부터 거기 있었고 오래동안의 진보, 세계와 인간의 변화에도 살아남았다는것을 생각했다. 좋은 징조가 아닐가? 이 그림 역시 똑같은 운명을 거쳐 오백년후 어느 미술관에 전시될수도 있다… 사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업이 진전될수록 마리아는 처음 가졌던 흥분을 조금씩 잃어갔고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 카페에 들어설 때 마리아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 한창 벌이가 좋은 직업을 그만둘 결정을 내릴수 있는 자신만만한 녀자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또다시 한낱 창녀에게는 사치라고 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불안정한 자신을 느끼고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그 리유를 찾아냈다. 몇달만에 처음으로 그녀를 하나의 대상이나 녀자로서가 아니라 뭐라 표현할수 없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있는 눈길을 느낀것이다. (그는 내 령혼, 내가 느끼는 두려움, 나의 연약함, 삶을 스스로 지배하는척하지만 실상은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과 싸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내 능력을 바라보고있어.) 말도 안되는 소리, 또 실없는 생각을. 《저기요…》 《제발 입 좀 다물어요.》 사내가 말했다. 《지금 당신의 빛이 보이고있으니까.》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슴이 정말 탱탱하군.》, 《허벅지가 정말 매끈해.》, 《열대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엿보여.》 따위. 또는 기껏해야 《보아하니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싶어하는군. 나에게 기회를 준다면 당신에게 아빠트를 한채 장만해주겠소.》 그녀에게 익숙한 말은 이런것들이였다. 그런데… 나한테 빛이라니? 석양이 나를 비추고있다는 말일가? 《당신만의 빛 말이요.》 자기가 한 말을 그녀가 전혀 리해하지 못하는걸 알아차린 화가가 덧붙였다. 나만의 빛? 그렇다면 서른살이나 먹었으면서도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 덜떨어진 화가보다 현실에서 더 유리된 사람은 없을것이다. 잘 알려져있는 바와 같이 녀자는 남자보다 훨씬 더 빨리 성숙한다. 그리고 철학적인 문제로 고민하느라 밤을 새지는 않지만 마리아는 적어도 한가지는 확실히 알고있었다. 화가가 《빛》이라 불렀고, 그녀가 나름대로 《특별한 광채》로 해석한 그것을 마리아 자신은 갖고있지 않다는것을. 그녀는 여느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였다. 그녀는 묵묵히 외로움을 견디고있고 자신이 한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애썼다. 약할 때는 강한척했고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땐 약함을 가장했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모든 정열을 포기하기는 했지만 목표에 근접한 지금에 와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곱씹고있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존재에게 《특별한 광채》같은게 있을리 없었다. 그건 그저 멍청이처럼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으로 한 말이 분명했다. (당신만의 빛이라니! 다른 말을 고를수도 있었잖아. 《옆모습이 참 예쁘네요.》라든가.) 집안에 빛이 어떻게 들어오지? 활짝 열린 창을 통해서. 한사람속으로는 빛이 어떻게 들어오지? 사랑의 문을 통해서. 열려있기만하다면. 그런데 그녀의 문은 닫혀있지 않은가. 진심으로 한 말이라면, 그는 통찰력 없는 삼류화가가 분명했다. 《끝났어요.》 그가 말했다. 마리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림이 보고싶었지만, 보여달라고 하면 교양 없다고 할가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그녀가 부탁하자 그가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가 그린것은 그녀의 얼굴뿐이였다. 그녀와 흡사하긴 했지만 모델이 누구인지 모르고 봤다면 그녀가 거울을 통해서는 볼수 없는 《빛》으로 가득한, 그녀보다 훨씬 강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것이다. 《내 이름은 랄프 하르트요. 한잔 더하겠어요?》 《아뇨, 괜찮아요.》 만남은 이제 슬프도록 예측 가능한 단계로 접어들고있었다. 남자는 녀자를 유혹하려 시도하는것이다. 《여기 아이스각테일 두잔 더 주세요.》 그녀의 대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음료를 주문했다. 그녀에게 달리 할 일이 뭐가 있는가? 농장경영에 관한 지루한 책을 읽거나 이미 수백번은 했을 호수가 산책을 하느니 그녀의 《실험》이 막바지로 접어드는 지금 그녀로서는 도무지 정체를 알수 없는 빛을 그녀에게서 봤다는 남자와 잡담을 나누는것도 괜찮을것 같았다. 《무슨 일을 하시죠?》 사내가 물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접근해왔을 때, 스위스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여하는것을 꺼리기때문에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만 새로운 만남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들었던, 할수만 있으면 그녀가 피하고싶어하는 질문이 떨어졌다. 뭐라고 대답할수 있을가? 《나이트클럽에서 일해요.》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져버린것처럼 홀가분했다. 질문을 하고(쿠르드인들은 어디서 왔죠? 산티아고의 길이라는게 도대체 뭐죠?) 타인의 반응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대답하는것(나이트클럽에서 일해요.) 그것이 그녀가 스위스에 발을 디딘이래 배운 모든것이였다. 《전에 본적이 있는것 같아요.》 마리아는 그가 잠시 주춤하는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작은 승리를 음미했다. 몇분전만해도 그녀에게 명령을 내리고 자신이 원하는것을 확실히 알고있는것처럼 보였던 화가가 이젠 모르는 녀자앞에서 머뭇거리는 뭇사내들과 다를바 없어보였다. 《그럼 그 책들은?》 그녀는 책들을 보여주었다. 농업, 농장경영. 그가 또다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섹스산업에 종사하세요?》 그가 위험을 무릅썼다. 옷차림때문에 창녀로 보였던걸가? 어쨌거나 그녀는 시간을 벌어야만했다. 게임이 다시 팽팽해지고있었다. 그녀는 잃은게 전혀 없었다. 《왜 남자들은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죠?》 그가 책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섹스와 농장경영. 둘다 아주 따분한 분야로군요.》 뭐라고? 그녀는 도전을 받았다고 느꼈다. 어떻게 내 직업에 대해 그따위 말을 할수 있단 말인가? 그래, 그는 내 직업에 대해 잘 모르고있다. 아마 어디서 들은 얘기를 주어섬기는거겠지. 하지만 그냥 넘어갈수는 없었다. 《그래요? 전 그림보다 따분한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고정된 사물, 멈춰버린 움직임, 결코 원본에 충실하지 못한 그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나고 더 교양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뒤처진 화가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양길로 접어든 예술분야. 후안미로라고 들어봤어요? 전 들어본적 없어요. 어떤 식당에서 한 아랍인한테 들은것 말고는. 그리고 그건 내 삶을 털끝만큼도 바꿔놓지 못했죠.》 그때 주문한 음료가 도착했고 대화가 중단되였기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말이 그에게 심했는지 어떤지 알길이 없었다. 그들은 잠시 입을 다물고 앉아있었다. 마리아는 이제 일어서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랄프 하르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있을듯했다. 그런데 테블엔 아직 손도 안댄 각테일 두잔이 놓여있었다. 그것이 자리에 앉아있을수 있는 핑게거리가 됐다. 《왜 하필 농업에 관한 책이죠?》 《뭘 묻고싶은거죠?》 《베른가에 간적이 있어요. 그곳의 제일 비싼 나이트클럽에서 당신을 본 기억이 나요.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당신의 이 너무 강했거든요.》 마리아는 딛고있는 바닥이 쑥 꺼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으로, 그럴 리유가 전혀 없었는데도. 그녀는 자신의 직업이 부끄러웠다. 그녀는 자신과 부모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했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베른가를 찾아간 그였다. 순간, 기대했던 모든 마술은 사라져버렸다. 《잘 들어요, 하르트씨. 난 브라질사람이지만 아홉달전부터 스위스에 살고있어요. 그리고 스위스사람들은 우리가 방금 확인한것처럼 거의 모든 사람이 서로 알고있을만큼 작은 나라에 살고있기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처신해요. 아무도 타인의 삶에 대해 질문하지 않죠. 당신이 한 말은 경우에 맞지 않는데다가 아주 무례했어요. 당신의 목적이 날 모욕하는거라면 시간랑비하신거예요. 이 악취나는 아이스각테일 고마워요. 난 이걸 모두 마신 다음, 담배 한개비를 피우고 가겠어요. 당신은 당장 일어나 가도 좋아요. 유명한 화가가 창녀와 한 테블에 앉아있는건 꼴불견이니까. 내 직업은 창녀예요. 아시겠어요? 죄의식도 없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래에서 우까지 창녀라구요. 그래요, 당신, 내 미덕이 뭔지 알아요? 당신도 나도 속이지 않는것.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거짓말로 당신 같은 사람의 환심을 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저기 저쪽에 앉아있는 유명한 화학자가 내가 뭐 하는 녀자인지 알게 될가봐 두려우세요?》 그녀가 언성을 높였다. 《창녀! 그런데 이거 알아요? 난 그 일때문에 자유로워졌어요. 그리고 정확히 구십일후면 이 저주받은 나라를 떠날거구요. 여기서 번 돈과 눈우에서 찍은 사진으로 가방을 꽉꽉 채우고 질좋은 와인을 고를수 있는 교양과 남자들의 본성을 꿰뚫어볼수 있는 통찰력까지 얻어서 돌아간다구요!》 종업원아가씨가 질겁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듣고있었다. 화학자는 그녀의 말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것처럼 보였다. 무엇이 마리아로 하여금 그런 말을 하게 했을가. 그것은 각테일에 섞인 알콜, 머지 않아 다시 브라질 시골녀자가 된다는 확신, 또한 자신의 직업을 속시원히 털어놓았으니 이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 멸시의 눈길, 별꼴 다 보겠다는 몸짓을 가벼운 마음으로 비웃어줄수 있을거라는 생각때문이기도 했을것이다. 《잘 알아들으셨나요, 하르트씨? 난 아래에서 우까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창녀예요. 그리고 그게 나의 장점이자 미덕이예요!》 화가는 침묵을 지켰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자신감이 회복되는것을 느꼈다. 《이봐요 당신, 당신은 자신의 모델에 대해 아무것도 리해하지 못하는 엉터리 화가예요. 저기 반쯤 잠든채 앉아있는 화학자는 실상은 철도 잡역부일수도 있어요. 그리고 당신 그림에 그려진 다른 사람들 역시 겉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일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내게서 특별한 을 봤다고 주장할리가 없겠죠. 방금 들으신대로 창녀에 불과한 녀자한테서 말예요!》
12    《11분》 (련재10) 댓글:  조회:1492  추천:1  2015-01-17
마리아는 농장경영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책들을 팔에 낀채 도서관을 나왔다. 오후시간이 비여있었기때문에 그녀는 천천히 산책을 했다. 도시 고지대를 지나던 그녀는 태양이 하나 그려져있고 《산티아고의 길》이라고 씌여있는 노란표지판을 우연히 보았다. 저게 뭐지? 마침 건너편에 카페가 하나 있었다. 그녀는 카페에 들어가 종업원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이제 모르는게 있으면 뭐든지 물어보는 습관이 들어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카운터에 앉아있던 아가씨가 대답했다. 아주 고급스러운 카페였다. 커피가 다른 집보다 세배나 비쌌다. 하지만 그녀에겐 돈이 있었고 이왕 들어왔으니 커피를 주문하고 남은 시간을 농장경영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들뜬 마음으로 책을 펼쳤지만 내용이 너무 지루해 독서에 열중할수가 없었다. 차라리 농장경영에 관해 자신의 손님들과 이야기해보는게 나을것 같았다. 그들은 돈을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을 알고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녀는 커피값을 꺼내 탁자우에 올려놓고 일어나서 종업원에게 인사하고 팁을 넉넉하게 주고(팁에 관해서 그녀는 주는만큼 받을거라는 미신적인 생각을 갖고있었다.)문을 향해 걸어갔다. 마리아는 그때 자신을 부르는 한마디를 들었다. 그 부름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채 그녀의 계획들, 그녀의 미래, 그녀의 농장, 그녀의 행복관, 그녀의 녀성적인 령혼, 그녀의 남성적인 태도, 세계속에서 그녀가 점하고있는 위치를 영영 바꾸어놓을 한마디를. 《잠간만요.》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가 들려온 곳을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그곳은 점잖은 장소였다. 남자들이 그런 말을 할수 있는 코파카바나가 아니였다. 《난 갈거니까 붙잡지 말아요.》라고 대답하는것은 코파카바나에서도 녀자들 자유지만. 그녀는 그 말을 무시하려 했지만 호기심을 억누를수 없었다. 그녀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주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서른살가량 된 젊은이라 해야 할가? 주로 나이든 남자들만 상대해온 그녀에게는 젊게 보이는 긴 머리의 남자가 옆에 붓들을 잔뜩 늘여놓고 무릎을 꿇은채 아니스각테일 한잔을 앞에 놓고 의자에 앉아있는 한 신사의 초상을 그리고있었다. 카페에 들어설 때는 미처 보지 못한 사람들이였다. 《가지 말아요. 이걸 끝내고 당신 초상화도 그리고싶어요.》 《전 관심없어요.》 마리아는 대답했다. 그녀는 대답을 함으로써 우주에 빠져있던 하나의 고리를 창조했다. 《당신한텐 빛이 있어요. 스케치라도 하게 해줘요.》 스케치? 그게 뭐지? 그리고 《빛》은 또 뭐야? 하지만 그녀는 허영심 많은 녀자였다. 상상해보라. 저렇게 진지해보이는 남자에게 초상화모델제의를 받다니!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약 저 사람이 유명한 화가라면? 그녀는 불멸의 녀인으로 화폭우에 영원히 남게 될것이다! 그리고 또 그 그림이 파리 혹은 브라질의 살바도르(브라질 북동부 바이아주의 주도―州都)에 전시된다면? 그녀는 전설이 될것이다! 그런데 저 사람은 이렇게 고급스러운, 명사들만 드나드는듯한 카페에 저 란장판을 벌려놓고 도대체 뭘 하고있는걸가? 그녀의 직감이 들어맞았다. 마리아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제네바를 대표하는 인사들? 마리아는 모델인 신사를 쳐다보았다. 종업원은 이번에도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저 신사분은 혁명적인 발견을 한 화학자예요.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신 분이죠.》 《가지 말아요.》 화가가 다시한번 반복해 말했다. 《오분이면 끝나요. 마시고싶은게 있으면 뭐든 마셔요. 내가 살테니.》 마리아는 마치 최면에 걸린것처럼 탁자로 다시 가서 앉아 노벨상 수상자가 한대로 아니스각테일 한잔을 주문하고는 사내가 작업하는것을 바라보았다. 《난 제네바의 유명인사가 아니야. 저 남자, 나한테 다른 속셈이 있는게 분명해. 하지만 저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냐.》 그녀는 코파카바나에서 일을 시작한후로 자신에게 늘 주입시켜온것을 다시한번 무의식적으로 반복했다. 그것은 그녀의 구명튜브였고 사랑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자발적이고 의도적인 포기였다. 이 점을 분명히 하자. 조금 기다리는것쯤 못할게 뭐랴싶었다. 종업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늘 꿈꾸었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그 사내가 열여줄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모델로 성공하고자 꿈꾼적도 있지 않았던가? 그녀는 사내의 작업을 관찰했다. 그는 능숙하고 신속하게 그림을 마무리하고있었다. 아주 큰 그림이였는데 거의 가려져있어서 마리아에게는 다른 부분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건 아닐가? 사내는 오로지 그녀와 하루밤을 보내기 위해 그런 제안을 할 사람 같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를 젊은이가 아니라 사내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나이에 너무 늙어버린듯한 기분이 들것 같았다. 오분후, 사내는 약속대로 일을 끝마쳤고 그사이 마리아는 자신의 계획들을 망쳐놓을 위험이 있는 새로운 만남을 가져봤자 리로울게 하나도 없다며 스스로를 설득하고있었다. (11에서 계속)  
11    《11분》 (련재9) 댓글:  조회:1635  추천:0  2015-01-17
이튿날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프랑스어강좌 아침반에 등록하러 달려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눈부신 색갈의 양복을 입고 손목에 무거운 금팔찌를 찬 남자들, 머리에 늘 베일을 쓰고 다니는 녀자들, 묘하게도 어른보다 훨씬 더 빨리 배우는 아이들, 신앙도 다르고 나이도 다른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였다. 그녀는 그들이 브라질, 카니발, 삼바, 축구를 알고있다는것이, 그리고 펠레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알고있다는 사실이 몹시 자랑스러웠다. 처음에 그녀는 한껏 친절을 베풀어 그들의 발음을 고쳐주려고 애썼다. 《펠레! 펠레라구요!》하지만 다들 그녀의 이름도 제대로 발음해주지 않아 끝내는 포기하고말았다. 이름을 모두 바꿔 부르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외국인들의 그 편집증이란! 그날 오후, 그녀는 프랑스어를 련습하기 위해 두개의 이름을 가진 그 도시에 발을 내디뎠다. 살살 녹는 초콜레트와 전엔 먹어본적이 없는 치즈를 맛보았고 그녀의 고향사람들은 한번도 밟아 본적이 없는 눈을 밟으며 호수 한가운데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분수를 구경하고 벽난로가 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식당에 들어가지는 않고 창가에 서서 벽난로의 불꽃을 구경했는데 그것은 아주 포근한 행복의 느낌을 주었다. 또 그녀는 광고판들이 시계만이 아니라 수많은 은행들도 선전하는것을 보고는 놀랐다. 주민수는 얼마 안되는데 무슨 은행이 그렇게 많은지 리해할수 없었고 은행안에 사람이 별로 없다는것도 묘했지만 그녀는 더이상 의문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마리아는 석달동안 자신의 관능적이고 성적인 본능, 알려진 브라질녀자들의 본성을 억누른채 지내왔다. 그런데 어느날 그것이 깨여났다. 그녀는 프랑스어수업을 함께 듣는 한 아랍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와 만난지 삼주째 되는 어느날 저녁, 그녀는 모든걸 팽개치고 제네바 근교에 있는 산으로 놀러갔다. 이튿날오후에 일터에 나가자 로제의 호출이 기다리고있었다. 사무실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로제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또 당했다고 브라질녀자들은 도무지 신뢰할수가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 제기랄, 모든걸 일반화시키는 저 편집증이라니! 기온차에서 발생한 고열때문에 결근한것이라고 아무리 변명하고 사정해도 로제는 도무지 리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다른 아가씨들에게 나쁜 본보기를 보였다는 리유로 형식적인 절자도 없이 해고당하고말았다. 로제는 그녀를 대신할 아가씨를 찾으러 또다시 브라질로 가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는 훨씬 더 예쁘고 훨씬 더 믿을만한 유고슬라비아 전통무용팀으로 쇼를 구성하는게 차라리 낫겠다고 덧붙였다. 마리아는 아직 젊기는 했지만 호락호락한 녀자는 아니였다. 그녀는 사귀는 아랍남자를 찾아갔고 남자는 스위스의 로동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스위스에서는 로동조건이 법으로 엄격히 규정되여있다는것, 그리고 업주가 그녀 급료의 상당부분을 갈취하고있는게 분명하니 당국에 신고할수 있다는것도 알게 되였다. 그녀는 로제를 다시 찾아가 정확한 프랑스어로 《변호사》라는 단어를 분명하게 발음하면서 항의했다. 로제에게 몇차례 욕설을 듣긴 했지만 결국 그녀는 손해배상금 5천딸라를 챙길수 있었다. 꿈도 꿔보지 못한 액수가 《변호사》라는 마술적인 단어 덕분에 굴러들어온것이다. 그녀는 이제 애인을 자유롭게 만날수도, 쇼핑을 할수도, 눈덮인 경치를 카메라에 담을수도, 그리고 고향으로 당당하게 돌아갈수도 있었다. 그녀는 가장 먼저 고향집 이웃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고있고 연예인으로 성공을 거두고있다며, 엄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숙방을 비워줘야 할 날자고 아직 남아있었고 달리 할 일도 없는 그녀는 아랍인 애인을 만나러 갔다. 그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머리에 그 이상한 천을 쓰고 다녀야 한다 하더라도 그의 종교로 개종하고 그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아랍인들이 부자라고 말하고있었다. 결혼을 할만한 충분한 리유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녀는 마음 한편으로 자신의 종교를 포기하지 않게 된것에 대해 성모 마리아께 감사했다. 이제 프랑스어도 제법 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비행기표를 살수 있는 돈도 있고 삼바땐서취업허가증과 아직 유효한 체류증을 가지고있고 최악의 경우 직물가게주인과 결혼하는 방책까지 마련해두고있는 마리아는 자신이 해낼수 있는 일, 즉 자신의 미모를 리용해 돈버는 일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브라질에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보물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의 이야기를 읽은적이 있었다. 양치기는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하지만 바로 그 어려움 덕분에 마침내 원하는것을 얻었다. 그녀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진정한 운명을 만나기 위해 모델이 되기 위해 해고당했다는것을 분명히 의식하고있었다. 그녀는 작은 방을 빌렸다. 텔레비죤도 없는 방이였다. 당분간 돈을 벌지 못하므로 가진 돈을 아껴야 했다. 이사한 다음날부터 에이전시를 돌아다녔지만 어딜 가나 사진집을 두고가라는 말뿐이였다. 어쨌거나 미래를 위한 투자가 필요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녀는 아주 까다롭고 과묵하다는 유명사진작가를 찾아가 가진 돈의 상당부분을 지불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의 스튜디오에는 엄청나게 큰 옷장이 있었다. 그녀는 평범한 의상, 괴상망측한 의상, 심지어 그녀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알게 된 유일한 브라질사람인 마이우손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좋아할만한 비키니도 입고 포즈를 취했다. 그녀는 사진을 한장씩 더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스위스에서 행복하게 지내고있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고향집에 보낼 생각이였다, 그 사진들을 본 고향사람들은 그녀가 큰돈을 벌었고 부러워 배가 아플만큼 큰 옷장을 가지고있고 고향출신중에 가장 성공했다고 믿을것이다. 《긍정적사고》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은 그녀는 자신의 성공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모든것이 생각대로만 되여준다면 그녀는 브라스밴드가 연주하는 가운데 금의환향하게 될것이고 고향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긴 시장이 도시의 광장에 그녀의 이름을 붙여줄수도 있을것이다. 그녀는 휴대폰을 구입했다. 일을 제안하는 련락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에이전시들에 사진집을 돌리고 다음날부터 값싼 중국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기다림의 지루함을 잊기 위해 미친듯이 공부에 몰두하며 시간을 잊고자 했다. 하지만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갔고 전화벨은 좀처럼 울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호수가를 거니는 그녀에게 접근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같은 장소, 오래된 공원과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아래에서 어슬렁거리는 마약밀매군들을 제외하고는.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의심했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동료 무희가 그건 그녀가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말해줄 때까지는. 옛동료의 말에 따르면 스위스사람들은 남을 방해하는것을 싫어하고, 외국인들은 성희롱죄로 처벌받을가 두려워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거라고 했다. 외출할 힘도, 살아갈 힘도,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릴 힘도 모두 잃고 지쳐버린 어느날 저녁, 마리아는 일기에 썼다. 오늘, 놀이공원앞을 지나갔다. 돈을 쓸순 없어서 구경만했다. 특히 롤러코스터를 아주 오래동안 바라보았다. 로러코스터에 오르는 사람들은 스릴을 만끽하고싶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일단 그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겁에 질려 멈춰달라고 내리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뭘 원하는걸가? 모험을 선택했다면 끝까지 갈 각오를 해야 하는게 아닐가? 아니면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보다는 안전한 회전목마나 타는게 낫다고 뒤늦게 생각한것일가? 지금, 나는 너무 외로워 사랑은 생각조차 할수 없다. 하지만 나는 점차 나아질거라고,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게 될거라고, 내가 여기 있는것은 내가 이 운명을 선택했기때문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 롤러코스터, 그게 내 삶이다. 삶은 격렬하고 정신없는 놀이다. 삶은 락하산을 타고 뛰여내리는것, 위험을 감수하는것,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것이다. 그것은 산을 오르는것과도 같다. 자기 자신의 정상에 오르고자 하고,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면 불만과 불안속에서 허덕이는것. 가족과 멀리 떨어져, 내 느낌을 마음대로 표현할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며 지내는건 괴로운 일이지만 오늘 이후로는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이 놀이공원을 떠올릴것이다. 잠이 들었다가 롤러코스터안에서 갑자기 깨여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가? 갇혔다는 기분이 들것이고 커브가 두려울것이고 거기서 내려 토하고싶을것이다. 하지만 그 롤러크스터의 궤도가 내 운명이라는 확신, 신이 그 롤러크스터를 운전하고있다는 확신만 가진다면 악몽은 흥분으로 변할것이다. 롤러코스터는 그냥 그것 자체, 종착지가 있는 안전하고 믿을만한 놀이로 변할것이다. 어쨌든 려행이 지속되는 동안은 주변경치를 바라보고 스릴을 즐기며 소리를 질러대야 하리라. (10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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