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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11분》

《11분》 (련재13)
2015년 01월 20일 23시 13분  조회:1520  추천:0  작성자: 세계명작


마리아가 그날 쓴 일기의 일부분.

오늘, 그 이상한 산티아고의 길을 따라 호수가를 거니는 동안, 나와 함께 있던 남자, 나와는 대척점에 있는 삶을 살아가는 화가가 물에 작은 돌을 던졌다. 돌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동심원들이 생겨났고 그것들은 점점 퍼져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오리에게 가닿았다. 오리는 예상치 못한 물결에 겁을 먹기는커녕 기꺼이 함께 노닐었다.

몇시간전, 나는 한 카페에 들어갔고 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신이 그곳에 돌을 던진것과 같았다. 에너지의 파동이 나를 건드렸고 구석에서 초상화를 그리고있던 한 사내를 건드렸다. 그는 돌이 전해준 떨림을 느꼈고 나 역시 그랬다. 이제 어떡하지?

화가는 자기가 찾던 모델을 발견하면 즉시 그 사실을 알수 있다고 한다. 음악가는 자신의 악기가 조률되면 즉각 그 사실을 알수 있다고 한다. 여기, 이 일기속의 몇 문장은 내가 아니라 《빛》으로 가득한, 그리고 내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녀인이 쓰는것이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예전과 다름없이 살아갈수도 있다. 하지만 호수의 오리처럼 수면에 갑자기 이랑을 만드는 파동을 즐길수도 있다.

그 돌은 정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있다. 그것은 두사람의 전격적인 만남의 아름다움을 드러낼수도 있지만 그것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정열은 예기치 못한것이 가져다주는 흥분, 열렬히 행위하고픈 욕망, 꿈을 실현시킬수 있으리라는 확신속에도 있다. 정열은 삶을 인도하는 신호들을 보낸다. 그 신호들을 해독하느냐 마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계획속에 없었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였다고 믿고싶다. 나 자신을 통제하며 사랑을 거부하며 보낸 나날들이 정반대의 효과를 발휘했다. 나는 나에게 다른 종류의 관심을 보여준 첫번째 사람에게 빠져들고있는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았고 그가 어디 살고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를 잃는다 해도 나는 기회를 놓치고말았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것이다.

이미 그를 잃었다 해도 나는 내 삶에서 행복한 하루를 번 셈이니까. 불행의 련속인 이 세상에서 행복한 하루는 거의 기적에 가까우니까.


그날 저녁 마리아가 코파카바니에 들어섰을 때 그가 거기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있었다. 그가 유일한 손님이였다. 호기심 어린 눈길로 마리아를 쫓던 밀랑은 그녀가 전투에 패했음을 알아차렸다.

《같이 한잔 하겠어요?》
《전 일해야 해요. 일자리를 잃고싶지 않아요.》
《난 손님이요. 지금 당신에게 직업적인 제안을 하고있는거예요.》

오후에 카페에서는 그토록 자신만만해보였던 사내가, 붓을 능숙하게 다루고, 고위층 인사들을 만나고, 바르셀로나에 대리인을 부리고있고, 돈도 엄청나게 많이 버는 사내가 지금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듯 약한 모습을 보이고있었다. 그는 들어오지 말아야 했을 곳에 들어와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산티아고의 길에 있는 랑만적인 카페가 아니였다. 그날 오후의 마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때요, 같이 한잔 하지 않겠어요?》
《좋아요. 하지만 지금은 안돼요. 오늘은 예약된 손님들이 있어요.》
그 말을 들은 밀랑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마리아는 사랑의 함정에 걸려들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손님이 없어 한적했던 저녁나절이 끝날 무렵, 그녀가 왜 그를 놔두고 로인, 평범한 회계사, 그리고 보험사 직원을 선택했는지 리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렴 어때, 그녀의 문제인걸. 수수료만 꼬박꼬박 낸다면 그녀가 누구와 자든 그가 상관할바 아니였다.

로인, 회계사, 보험사 직원과 함께 지내고 온날 밤, 마리아의 일기.

그 화가는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걸가? 우리는 국적도 문화도 다르다는것을 그도 알고있지 않은가? 내가 쾌락에 대해 자기보다 더 많은것을 알고있다고 생각하고 나한테 뭔가 배우기를 원하는걸가?

왜 나한테 《난 손님이요》라는 말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을가? 《보고싶었다》든지, 아니면 《함께 보낸 오후가 정말 좋았다》든지, 쉽게 할수 있는 말이 얼마든지 있었을텐데. 그랬다면 나도 대답했을텐데. 나는 녀자고, 연약하고, 게다가 클럽은 나의 직장이니까 여기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고 나의 불안을 리해해야 한다고.

그는 남자다. 그리고 예술가다. 그는 알아야 한다. 인간존재의 목표는 절대적인 사랑을 리해하는것이고 사랑은 타인속에 있는것이 아니다. 우리속에 있다. 그것을 일깨우는것은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우리는 타인을 필요로 한다. 우리 옆에 우리의 감정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을 때에야 우주는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는 섹스에 지쳐있는것일가?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 사람이나 나나 섹스가 무엇인지 모르고있다. 삶의 가장 본질적인것들중 하나를 죽어가게 내버려두고있는것이다. 나는 그가 나를 구원해주길 원하고있고 그는 내가 그를 구원해주길 원하고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주지 않았다.


마리아는 두려웠다. 그녀는 오랜 통제의 세월후에 견디기 힘든 압력이 들어오고 지축이 흔들리고 령혼의 화산이 대폭발의 신호를 보내고있다는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만약 폭발이 일어나면 그녀는 더이상 감정을 통제할수 없을것이다.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했을수도 있는 기껏해야 몇시간을 함께 보냈을뿐인 그녀에게 손 한번 댄적이 없고 그녀를 유혹하려 들지도 않은 그보다 더 자존심 상하게 하는 존재가 있을가? 그 빌어먹을 화가는 도대체 누구일가?

가슴이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는걸가? 그녀는 왜 랄프 하르트 역시 똑같은것을 느끼고있다고 믿는걸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그 남자는 거의 꺼져가는 불길을 다시 지펴줄수 있는 녀자를 찾고있는것이다. 그는 그녀를 특별한 《빛》을 지닌(그 점에서 그는 솔직했다), 그의 손을 잡아 삶으로 돌아가는 길로 이끌 준비가 되여있는 위대한 섹스의 녀신으로 삼고자 하는것이다. 그는 마리아 역시 섹스에 관심을 잃었고 나름대로 문제들을 안고있으며(그렇게 많은 남자들과 동침을 했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삽입을 통한 오르가즘에 도달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날 아침에는 귀향할 계획을 세우고있었다는것을 리해할수 없는 사람이였다.
왜 그를 생각하는걸가, 하고 마리아는 생각했다. 왜? 왜 이 순간 또 다른 녀자에게 다가가 특별한 《빛》이였다고, 자신을 이끌어줄 섹스의 녀신이 될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녀자를 그리고싶어할지도 모르는 그를 생각하는걸가?

(모든걸 털어놓을수 있었기때문에 그를 생각하는거야.)

웃기는 소리! 그렇다면 도서관 사서에 대해서도 생각하나? 아니였다. 코파카바나에 나오는 아가씨들중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속내를 털어놓고 지낸 필리핀아가씨 니아에 대해서는? 아니였다. 그들은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들일뿐이였다.

그녀는 찌는듯한 더위에 또는 전날 들르지 못한 슈퍼마켓에 관심을 돌려보려고 애썼다, 아버지에게 그녀가 사고싶어하는 땅에 관한, 가족들이 알면 좋아할 내용들로 가득한 장문의 편지를 썼다. 돌아가는 날자를 밝히진 않았지만 그리 멀지 않았음을 은근히 암시했다. 그녀는 농장경영에 관한 책을 뒤적이며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스위스사람들에겐 아주 쓸모가 많은 농장경영에 관한 책이 브라질사람들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세계는 너무나 달랐다.

오후가 되자, 그녀는 지축의 흔들림, 화산의 부글거림, 터질듯한 압력이 진정되는것을 느꼈다. 그녀는 긴장을 풀었다. 하긴 그런 갑작스러운 정열을 느낀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였다. 그것은 다음날이 되면 늘 식어버렸다. 그랬기때문에 그녀의 세계는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그녀에게는 그녀를 기다리는 가족과 그녀를 기다리며 직물가게가 아주 잘되고있다는 편지를 종종 보내는 남자가 있었다. 그녀에겐 그날 밤 바로 비행기를 타기로 결심한다 하더라도 작은 땅뙈기를 사고 남을만한 돈이 있었다. 그녀는 언어장벽, 외로움, 식당에서 아랍인과 보낸 첫날 등 많은 장애를 극복했고 육체가 하는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령혼을 설득하는데도 성공했다. 그녀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알고있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여있었다. 게다가 그 꿈속에는 남자가 없었다. 적어도 그녀의 모국어를 할줄 모르는 남자, 그녀의 고향에 살지 않는 남자는, 지축의 흔들림이 멈추자, 마리아는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도 당신만큼 외롭고 비참해요. 당신은 나에게서 <빛>을 봤다고 했어요. 그건 내가 이곳에 온 이래 남자가 내게 해준 말중 아름답고 진실한 최초의 밀이였어요.》
이렇게 말하지 않은,
라지오에서 옛날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 사랑은 피기도 전에 시들어가네.》 그녀 사랑의 운명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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