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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11분》

《11분》 (련재12)
2015년 01월 19일 22시 12분  조회:1601  추천:0  작성자: 세계명작

 
그녀는 창녀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끊어서 큰소리로 발음했다. 졸고있던 화학자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여났고 종업원이 계산서를 가지고 왔다.

《그건 창녀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녀자와 상관이 있는거예요.》
랄프가 계산서를 내미는 종업원을 무시하고 당당하게, 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에겐 빛이 있어요.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다른것들의 이름으로 소중한것을 희생할수 있는 존재가 가진 의지의 빛이. 눈, 그 빛은 당신의 눈을 통해 드러나요.》

마리아는 맥이 풀리는것을 느꼈다. 그가 그녀의 도발에 응수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유혹하려 한다고 믿고싶었다. 적어도 앞으로 90일동안은 이 땅에 흥미로운 남자들이 존재할수 있다는 생각을 잊기로 마음먹었던 그녀였다.
《당신앞에 놓인 아니스각테일 보이죠?》

그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아니스각테일밖에 보지 못하지만 나는 그너머까지 봐야 해요. 그 과일이 열린 나무, 그 나무가 맞서야 했던 폭풍우, 그 열매를 딴 손,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건너가는 선박, 그 열매가 알콜과 접촉하기전에 가지고있던 색갈을 보죠. 언젠가 내가 그럴수 있다면 나는 그 모든걸 화폭에 담을거예요. 하지만 그 그림을 보는 당신은 그저 흔하디 흔한 아니스각테일잔을 앞에 두고있다고 생각하겠죠.

마찬가지로, 당신이 아까 거리를 바라보며 산티아고의 길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나는 당신의 어린 시절, 당신의 사춘기, 수포로 돌아간 당신의 꿈들, 미래에 대한 당신의 계획들, 그리고 당신의 의지를, 내 관심을 가장 많이 끈것이 바로 당신의 의지인데, 그 모든걸 그렸어요. 당신이 그 그림을 봤을 때는…》
《나도 그 빛을 봤어요…》
《…거기엔 당신과 비슷하게 생긴 녀자밖에 없었겠지만.》
또다시 당혹스러운 침묵이 이어졌다. 마리아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가봐야 해요. 그런데 왜 섹스가 따분하다고 하셨죠?》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알텐데요.》
《나야 그 분야에서 일을 하고있으니까, 늘 하는 일이니까 알지만. 당신은 기껏해야 서른정도 된…》

《스물아홉이예요…》
《젊고 매력적이고 유명한 화가예요. 그런것에 관심이 있으면 녀자를 구하러 구태여 베른가까지 갈 필요도 없었을텐데.》
《그럴 필요가 있었어요. 당신 동료들 몇몇과 같이 잤죠. 녀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런건 아니였어요. 나한테 문제가 좀 있어서…》
마리아는 질투가 이는것을 느꼈고 겁이 났다. 그녀는 이제 정말 일어서야 할 때가 되였다는것을 깨달았다.
《그게 내 마지막 시도였어요. 이젠 포기해버렸죠.》
바닥에 흩어진 작업도구들을 챙기며 랄프가 말했다.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나요?》
《아뇨, 흥미를 잃어서.》
그건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계산하고 나가서 함께 좀 걸어요. 난,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똑같은것을 느끼지만 아무도 그것을 털어놓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당신처럼 솔직한 사람과 얘기를 나눠보고싶어요.》

그들은 산티아고의 길을 따라 호수로 흘러드는 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은 산너머로 계속 이어지다가 스페인에 위치한 머나먼 고장에서 끝이 난다고 했다. 그들은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행인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주부들, 카메라로 호수 중앙에 있는 분수를 열심히 찍어대는 관광객들, 얇은 천을 머리에 쓴 이슬람녀자들, 조깅을 하는 소년 소녀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모두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믿고싶어하는 전설과도 같은 신화적인 도시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를 찾아나선 순례자들이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그 길을, 붓, 물감통, 캔버스, 연필이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둘러멘 긴 머리 사내와 농장경영을 다룬 책들을 팔에 안은 좀더 젊은 아가씨가 걷고있었다. 둘중 어느 누구도 그들이 왜 이 순례를 함께 하고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졌다. 그녀는 그에 대해 아는것이 거의 없었지만 그는 그녀의 모든것을 알고있는듯했다.

그녀는 사내에게 질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말문이 트이자 그녀는 모든것에 대해 질문을 퍼부었다. 사내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녀는 남자에게서 뭔가를 얻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두차례 결혼했었고(스물아홉의 나이에!),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으며, 왕들과 유명한 배우들을 만났고, 잊지 못할 축제들에 참가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제네바에서 태여났고 마드리드, 암스테르담, 뉴욕, 그리고 관광지로는 전혀 알려져있지 않지만 멋진 산들과 후한 인심때문에 그가 아주 좋아하는 프랑스남부 도시 타르브에서 산적도 있었다. 그의 예술적재능은 그가 실내장식을 맡은 제네바의 한 일본식당으로 우연히 식사를 하러 온 영향력 있는 한 쿠레이터에 의해 발견되였다. 그의 나이 스무살때였다. 그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젊고 건강했다. 원하는것이면 뭐든 할수 있었고 어디든 갈수 있었으며 누구든 만날수 있었다. 그는 한 남자가 맛볼수 있는 모든 쾌락을 경험했고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하지만 인기, 돈, 녀자, 려행, 그 모든것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행했다. 그의 삶에 유일한 즐거움은 그림밖에 없었다.
《녀자들에게 상처를 받았나요?》

그녀가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곧 그것이 《남자를 꼬시기 위해 녀자들이 알아야 할 모든것》이라는 제목의 책이나 잡지 같은데서 끄집어낸듯한 바보같은 질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녀자들에게 상처받은적 없어요. 두번의 결혼생활 모두 아주 행복했어요. 세상의 모든 부부들처럼 배신당하고 배신했죠. 하지만 얼마 지나자 섹스에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더군요. 안해를 사랑했고 함께 있고싶기는 했지만 섹스는… 그런데 우리가 지금 왜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고있는거죠?》

《당신이 말한것처럼 난 섹스산업 종사자니까요.》
《내 삶도 별거 없어요. 드문 일이지만 난 젊은 나이에 성공한 예술가예요. 회화분야에서는 더더욱 드문 일이죠. 예술이 무엇인지 아는건 자기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비평가들이야 입에 거품을 물겠지만 요즘은 모든 쟝르의 그림을 그릴수 있는 사람이 좋은 상을 받게 되여있어요. 난 모든것에 대한 답을 갖고있다고 세인들이 생각하는 사람들중 하나예요. 입을 다물고있을수록 사람들은 그 사람이 지적이라고 생각하죠.》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매주 어딘가에 초대를 받았다. 바르셀로나에 그의 대리인이 있었다. 그 녀자가 돈, 초대, 전시회와 관련된 모든 일을 맡아했다. 하지만 내켜하지 않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몇년간 일한 덕분에 그는 미술시장에서 안정된 수입을 올리고있었다.
《내 이야기, 재미있나요?》
그의 목소리에 뭔가 불편함이 묻어났다.
《흔치 않은 이야기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랄프는 마리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어했다.
《내안에는, 날 만나러 오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세사람이 존재해요. 경탄의 눈길로 남자를 바라보며 권력과 영광에 대한 그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은척하는 순진한 아가씨, 자신감이 없어보이는 남자들을 과감하게 공격해 상황을 통제함으로써 더이상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남자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팜므 파탈(성적매력으로 남자를 유혹해 파멸에로 이끄는 요부, 프랑스어로―치명적인 녀자―라는 뜻). 그리고 마지막으로 충고에 목말라하는 남자들을 토닥이고,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한쪽 귀로 듣고 다른 한쪽 귀로는 흘려버리기도 하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너그러운 어머니, 이 셋중 누구를 알고싶으세요?》

《당신.》
마리아는 이야기했다. 그래야만했다. 그녀는 브라질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모든것을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그녀는 흔치 않은 직업에 종사하고있지만 리오에서 보낸 일주일과 스위스에서 보낸 첫달 이후로는 그리 큰 감정적동요를 겪지 않았다는것을 깨달았다. 오로지 집과 일, 일과 집의 반복이였다.
그녀가 이야기를 끝냈을 때, 그들은 산티아고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 반대편끝에 있는 카페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각자 운명이 상대방에게 예비해놓은것을 생각하고있었다.

《이제 무슨 말을 할가요?》
그녀가 물었다.
《례를 들면 <다음에 또 만나요> 같은 말.》
그랬다. 그날 오후는 여느 오후와는 달랐다. 마리아는 문을 열었고 그 문을 어떻게 닫아야 할지 몰라 불안했고 그 어느때보다 긴장해있었다.
《언제쯤 그림을 볼수 있을가요?》

랄프가 바르셀로나에 있다는 대리인의 명함을 내밀었다.
《륙개월후에도 유럽에 있다면 이 사람에게 전화해요. 유명인사와 보통사람들로 구성된 <제네바의 얼굴들>은 베를린의 한 화랑에서 처음으로 전시될겁니다. 그후에는 전 유럽을 순회하며 전시될 예정이구요.》

마리아는 달력과 그녀에게 남은 90일, 그리고 관계가 어떤 식으로 맺어지든 그것이 품고있을 위험을 떠올렸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뭐지? 사는것? 아니면, 사는척하는것? 지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누군가가 비판도 토도 달지 않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오늘오후가 내가 여기서 보낸 오후들중 가장 아름다운것이였다고 말하는것? 아니면 빛을 말하는, 의지로 충만한 녀자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은채 가버리는것?)

그와 함께 산티아고의 길을 걷는 동안,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안 마이라는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것으로 만족할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삶의 큰 선물이였다.
《당신을 만나러 가겠소.》
랄프 하르트가 말했다.
《그러지 말아요. 난 곧 브라질로 돌아가요. 우린 더 이상 서로 할 얘기가 없어요.》
《손님으로 당신을 찾아가겠소.》
《나에겐 굴욕일거예요.》
《당신에게 구원받기 위해 찾아가겠소.》

그는 그녀에게 섹스에 대한 무관심을 털어놓았다. 그녀 역시 그와 똑같은것을 느낀다고 털어놓고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제했다. 그쯤에서 입을 다무는것이 현명했다.

문득 가슴속에서 탄식이 솟았다. 그녀는 또다시, 이번에는 연필을 달라고 하는게 아니라 잠시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어린 소년과 함께 있는것이다. 그녀는 과거를 돌아보고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용서했다. 그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단 한번 시도한 뒤 포기하고만 자신감 없었던 소년의 잘못이였다. 그들은 아이들이였고 아이들은 대개 그렇게 행동했다. 그녀도 소년도 잘못을 저지른게 아니였다. 그것이 그녀에게 크나큰 안도감을 주었다. 그녀는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그녀는 자기 삶의 첫번째 기회를 망치지 않았던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다. 그것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매는 모든 인간의 성장과정일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리유들이야 여전히 유효했지만 (나는 브라질로 돌아간다. 나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 시간이 없다. 나는 섹스에 관심이 없다. 나는 사랑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고싶지 않다. 나는 농장경영을 배워야 한다. 나는 그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 다른 세계에 살고있다), 삶이 한번 도전해보라고 손짓하고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였다.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나라 관습에 따라 그와 악수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갔다. 진정 사랑할만한 남자라면 그녀의 침묵에 기가 죽지는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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